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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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간식거리와 함께 독서를...

아마 표지에 여인은 303호의 '홍'인것 같다. 그리고 문을 통해 밖을 살피는 검은 고양이는 '권'이겠지.


고문고시원의 내력을 설명하는 '나'와 '총무',  그 앞에 앉아 나도 이 고시원의 역사를 듣고 있다. 조금 읽어나가다가 누군가 '내'방문을 두르리고 있는데, 슬며시 웃으며 총무형과 함께 방을 떠났다.라는 문장을 보면서 유령이구나를 직감했다. 그 생각을 확고히 한 채 이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와서는 워낙 오래된 고시원이다 보니 고양이 두마리가(스포일라나) 슬며시 들키지 않고 떠났을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가급적이면 글을 읽고 독후감(서평이라 하기엔 좀 부끄럽다)을 쓰려고 노력하는데, 이런면에서 좋다. 그냥 책을 덮는것 말고 한번 더 생각을 할수 있어서 말이다. 전문서적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게 되면 무언가 교훈이 될만한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시원.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그저.. 내가 본 고시원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고시원밖에는 없다. 드라마속 고시원은 좀 넓긴하던데, 이 책표지에서 보이는 고시원이 실제와 같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이 자리에는 예전에는 꽤 잘나가는 식당이었지만 불이났고,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그 위에 나이트클럽이 생겼으나 오픈한지 한시간만에 불이 났고, 다시 그 자리에 고시원이 자리잡게 되었다.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한달 3만원이라는 돈으로 창문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또다른 빈부가 결정되는 곳. 방음도 안되는 벽사이에서 모든 것이 노출되지만 서로에게 아는척도 하지 않으면서 이웃이 있으나 이웃이 없는듯 유령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난 이소설을 높은 자리에 앉아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읽었으면 한다. 삼각김밥이 뭔지도 어떻게 뜯어 먹는지도 모르고, 버스값, 지하철 값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하늘까지 닿겠다며 여기저기 쌓아올리는 아파트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집한칸이 없어서 고시원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이런 취업난에 기를 쓰고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처럼 힘든 공무원이 되겠다고 어두컴컴한 작은 방에서 수험서 책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넘기며 공부하고 있을 가련한 청년들.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은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것들한테 밀리고, 적막한 황무지가 되어가는 곳으로 내몰리기만 하는데, 옥탑방에서 기껏 한달살이 하시곤 선풍기나 주고 받으시는 분들께선 과연 국민들의 비참한 삶을 아시기나 할까. 멋드러진 관사가 아니라 나랏녹을 드시는 고위 관계자분들 이런 고문고시원에 방한칸씩 나눠드리고 민생을 살피라고 하고 싶다.


시련이 닥쳐왔어도 고시원 사람들을 서로돕고 또 돕는다. 그들 모습이 우리네 모습같다. 위급한 상황에 빛나는 이름모를 많은 무명씨들 덕분에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문고시원에 살아가는 우리자신들에게 격려하고 싶다. 어느날 갑자기 고문고시원을 나서게 된다해도 그곳을 잊지 말고 살아가라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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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애쓰고 있는데 힘내라니요? - 인생의 오지라퍼들을 상큼하게 퇴치하는 법
이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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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마 어렸을때는 그 말이 진리라 내 곁에 사람들과 기쁨도 같이 슬픔도 같이 했던것만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힘든일을 거치면서 느낀바, 기쁨은 배가 될지 모르지만 슬픔은 절대로 반이 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위로받고 이야기하고 스트레스받고 한결나아진것 같지만 원래 제자리. 나누었던 이가 돌아가고 홀로남게 되면 또다시 같은 무게로 슬픔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나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한참 시간이 지난후에 문득 그 일이 떠 올라 또 속상해하고 맘상해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슬픔도 힘든일도 오롯이 본인 혼자만이 짊어지고 헤쳐나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만났을때, 제목을 처음 접했을때 머리속에 떠오른 말은 '그래, 너나 잘해, 난 이미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는중이야."라는 것이었다. 말은 쉽지. 결국 내일이 아니기 때문에 말로는 이론상으로는 다 쉬운법이다. 물론 다른 사람은 내게 야속할순 있지만,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난 그리 쉽사리 위로를 건네지 못하는 편이다. 다만 '밥 먹었어?'라는 말만 건넬뿐. '힘내', '파이팅'보다 그 말이 훨씬 더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는 세상에 하나뿐인 목걸이라면서 걸어주던 남자친구가 목걸이를 돌려달라며 이별을 고할때다. 물론 뭐, 사람 사귀다 보면 헤어질수도 있겠지만 헤어지는 방식이 너무 격이 떨어진다. 문자로 통보하거나 잠수를 타거나 하는 예의없고 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흔히들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예정되어 있던 여행을 떠났다. 아마 떠나지 않고 집에 콕 박혀서 실연의 아픔을 혼자 온몸으로 견디고 있었다면 난 아마 이 책을 덮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다. 뭐 연인이라는 것이 필수품도 아니고 내 인생 내가 사는거지. 


난 대학 다닐때까지 혼자서 밥먹는거 영화보는거 여행가는걸 못했다. 밥먹을 사람이 없으면 굶거나 아니면 일부러 내가 사줄께 하면서 아는이들을 끌고 다녔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혼자 식당서 밥먹는게 어때서, 혼자 영화보는게 어때서, 혼자 여행하면 어때서.. 오지라퍼들 물럿거라. 독불장군처럼 내 인생을 살아가리다. 그렇다고 안하무인은 말고. 


뻔한 위로는 확실히 좀 지겹고 허무하다. 당연하다. 그것은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 힐링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본문中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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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
밥 버먼 지음, 김종명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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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맞다. 더불어 나도 멈추지 않고 나이 먹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여러가지 현상의 속도를 이야기한다. 거대한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에서부터 우리 주변의 자연의 속도까지 말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는 빠르고 느린 것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것이 빠르고, 또 어떤 정도의 속력이어야 느린 것일까?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달렸던 남자, 우사인 볼트는 100m를 9.58초에 주파했다. 10.43m/s이다. 이 속도는 빠른 것일까? 우리가 느끼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지구와 함께 자전(?)하고 있다. 지구가 약간 둥글어서 위도에 따라 회전속도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적도에서는 1,670km/hr이다. 환산하면 464m/s이다. 밤하늘의 별들을 우사인 볼트보다 44배정도 빠르게 이동하며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우사인 볼트보다 우리가 더 빨리 움직인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럼 박테리아는 어떤가, 가장 박테리아는 1초 동안 인간의 머리카락 두께 정도를 이동한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느리다. 하지만, 자신의 몸길이의 100배를 움직이는 것이라 한다.

도대체 빠르다와 느리다와의 기준은 무엇일까? 속도라 함은 절대적이라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봐야 맞는것 같다. 그리고 약간의 지식, 아니 "앎"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적당한 용어는 떠오르지는 않지만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아는만큼 속도가 보인다'라고 해야할것만 같다. 요즘 수업하는 한팀의 아이들에게 우주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혜성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왜 혜성은 느리냐고 묻는다. 이제 혜성에 대해서 배우는 아이들과 여러 책들과 뭐... 혜성을 접한 차이랄까. 참 빠르게 움직이고도 있는데 우주가 광활하다 보니 마치 정지해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우주에 대해 조금만 더 알게된다면 속도뿐 아니라 많은 것을 알게 될것이다. 그러니 독서를 하고 연륜이 쌓여야 하는 것인가보다.


이 책은 그리 쉽지많은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서 중고등시절 배운 과학이야기만 조금 상기한다면 어렵진 않다. 다만 과학에 흥미가 있느냐 없느냐가 책장을 넘기는 속도에 살짝 영향을 주는 것뿐이다. 예로 '푸코의 진자'라는 쳅터를 보고, 움베르트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생각하느냐, 아니면 지구가 자전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떠올리느냐의 차이랄까. 물론 나도 후자의 푸코의 진자를 생각하고 움베르트 에코의 책을 구입했다가 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기에 읽는 속도가 거의 0m/s에 근접했다가 포기했기에 과연 그 책에 실제 푸코의 진자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지 아닌지는 잘은 모르겠지만서도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자신만의 속도로 움직인다. 그리고 각자의 기준은 항상 변한다. 어렸을때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여전히 난 청소년이었는데, 지금은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다.


자연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나 또한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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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안송이 지음 / 문학테라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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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떤 일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지나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이 참 맘에 든다. 저자는 22년째 스웨덴에 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스웨덴으로 갔다 하니 얼핏 나와 연배(?)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공감하기도 이해하기도 또 위안받기도 하는 책인것만 같다. 유독 눈길을 끌었던 이야기는 저자의 딸 선물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물이는 자폐진단을 받았지만 아빠와 함께 한 모습과 엄마와 함께 한 모습에서 의사는 극명한 차이를 느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마주하는 태도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 딸아이는 내게 껌딱지처럼 달라붙는다. 내가 일을 하다 보니 유독 더 내 뒤만 졸졸졸 따라다니는 아이인데, 내 자신이 힘들고 지치니까 괜시리 짜증이나서 얼마전에 아이에게 화를 내버렸다. 처음으로 내게 말걸기기 무서웠다고 우는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했던지 말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 자신의 삶은 없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20대 대학생이었던 시절, 사회초년생으로의 삶, 30대 때 회복할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좌절감도 있었고, 40대를 접어들면서 나이를 받아들이기도 겁나고, 뭔가 나를 찾고 싶은 마음도 들기도 하고 정말로 견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삶인것 같다. 과연 나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을 다시 찾을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절대로 시간은 약이 될수 없다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정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전쯤 일하던 곳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대학생을 만났다. 참 좋을때다 했었다. 난 언제 대학생었던지.. 길거리에서 아가들을 보면 귀엽다 하지만 다시 키우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내 키보다 살짝 더 큰 아이를 보면서 그동안 전쟁 치르듯 치열했던 삶은 한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어쩜 그 치열했던 삶 속에서 이제는 연룬(?)도 쌓이고 괜찮아지는 중인것만 같다. 앞으로 내 삶에 또 무슨 힘든 일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슬기롭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맞서 싸우기보다 살짝 비켜서서 어서 지나가거라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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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나지윤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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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는 슬픔을 구원할 힘이 있다."

아내를 잃은 저자의 고백,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편지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서로 위로하는데는 아마도 다 이유가 있는듯 하다.

그 마음을 아니까 말이다.

예전에 큰 사고가 나면 안타까운 사연들에 마음을 아파해도 돌아서면 끝일뿐이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 당시 딸아이가 중3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어서였는지 한동안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볼수도 들을수도 없었다. 눈물부터 났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처음 보게 되었을 때 작년 생각이 났다. 투병중인 엄마가 상황이 조금 안좋아져 여러 검사를 받게 되었을 때, 이제 엄마도 나이가 드셔서 그런 상황이 되었다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더니. 엄마가 나의 보호자에서 어느 순간 내가 보호자가 되면서 나이 들어가시는 엄마의 모습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저자가 아내를 떠나 보낸것처럼 나도 그렇게 엄마와 이별을 하게 될 미래에 대한 동변상련의 느낌이 들었다.


"슬픔은 우리의 힘을 벗어난 우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슬픔은 내면의 가장 낮은 곳에 우리의 시작을 축복해줍니다.(글을 마치며 中 p.201)"


삶이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저자의 말을 전하고 싶다. 슬픔속에서 또다른 살아가는 힘을 얻길.

그래서 행복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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