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들
이인철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국민 참여 재판은 2008년 1월부터 시행된 배심원 재판제도. 만 20세 이상의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참여하여 유죄, 무죄 평결을 내리치만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예전부터 외국영화에서는 종종 볼수 있는 배심원제도. 우리나라에서 시행된다라는 이야기는 들은적은 있었는데, 그것이 이제 12년째라는 것이 놀랍다. 검색해 보니 배심원단에 선정되서 재판에 참여한 사람도 적지 않다. 배심원에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게 되서 모두 다 재판에 참여는 하지 않는다. 배심원 선출을 통해 배심원에 선정되면 8인 가운데 평결에 참여하지 못하는 예비 배심원이 또 있다고 한다. 재판에 집중하기 위해 예비 배심원은 나중에  알려준다고 한다. 나에게도 이런 배심원이 되어 재판에 참석하게 될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글쎄, 비슷한 시기에 영화도 함께 개봉이 되어서 혹시나 원작소설이 아닐까 했었는데, 그것은 아닌것 같다. 바로 요 전에 <합리적 의심>을 읽었었는데, 같은 법정물이지만 <합리적 의심>은 판사의 고뇌를 담았다면 이 <배심원들>은 흔히 볼수 있었던 법정 공방을 다룬 것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실현되고 있다지만 잘 모르는 배심원 제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나와있다.

 

연우는 도원그룹 입사 시험에 떨어져서 여전히 취준생의 신분이다. 그러던 어느날 법원에서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으로 선정되었다는 우편물을 받게 된다. 질문지를 작성하다가 피고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음을 알게된다. 설상태. 중학교때 짝이었던 상태는 연우의 잘못으로 정학을 맞게 되었고, 자연스레 자퇴로 이어지게 되었다. 실은 연우의 이런 인연 때문에 아마 재판 당일 배심원 선출시 제외되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야기 진행상 연우는 전혀 피고인을 모른척 하고 배심원 선정 기일에 참석하고 배심원으로 선정된다. 다른 몇몇 소설에서 재판 과정중에서도 종종 배심원의 자격을 잃는 장면을 본것 같은데, 이 이야기는 제목도 배심원들이고 이야기의 한 축을 연우가 담당하고 있기에 그냥 패스하는 걸로.


상태는 음주운전으로 중앙선을 침범하여 교통사고를 내고 임산부를 비롯하여 2명의 사망케 했다. 그러나 상태는 사고가 있기 전에 분명 도진에게 운전대를 넘겨줬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왜 운전석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탑승자들은 모두 상태가 운전을 했다고 주장한다.


도진은 도원그룹 후계자이다. 물론 도진이가 운전을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만 하더라도 벌써 대충 감이 오게 된다. 우리는 재벌가의 뻔뻔한 행태를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당연시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씁쓸하기 이루 말할수 없다. 비록 읽어나가면서 꽉꽉 막혔던 것들이 정말이지 통쾌하게 해결이 되었지만 과연 현실세계에선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가졌든 재력을 가졌든 간에 그네들이 좀 더 도덕적으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올해 100권째 독후감이라고나 할까. 번호로는 100권째이지만, 아직 쓰지 못한게 있으니 순서가 살짝 바뀌긴 했다. 그래도 읽은것은 다 쓰자라는 바람이 이루어지는듯하다. 뿌듯~


제 12회 창비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다. <완득이>를 시작으로 계속 챙겨 보다가 요즘 좀 뜸했는데 다시 만나보게 되어서 반갑다. "부모를 선택하는 시대",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글을 보고, 시험관 아기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부모를 맺어주는 그런 시스템~ 완전 미래세계가 당도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내 부모를 선택할까, 혹은 내 아이는 나를 선택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지없이 나의 생각은 또 꽝!


살짝 유쾌하게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실상은 좀 그렇지 않아 마음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속이 깊은 "제누301"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놓이긴 하다. 부모가 없는 영유아나 청소년들을 정부에서 '국가의 아이들'로 직접 보호 관리한다는 발상으로 시작했다. 아마도 부모를 잃은 아이들, 그리고 버려진 아이들이겠지... 그러면 지금의 보호시설과 별반 다를것이 없는데, 지금처럼 어린 아이들을 입양을 한다기 보다 열세살 이후의 아이들을 입양을 하고, 열여덟이 지나면 사회로 나가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설은 국가가 운영하고 입양코자 하는 부모들에게 혜택이 주어지며 아동입양후 사후 관리가 철저하게 한다는 점이 다르다.


아마도 오늘 아침에 "10년간 1578명을 보호한 베이비 박스"라는 기사를 보고 왔기에 이 이야기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NC(Nation's children)센터의 아이들은 이름이 없다. 그저 1월에 센터에 들어온 아이는 남자는 제누, 여자는 제니라는 방식으로 6월은 준과 주니, 10월은 아키와 알리, 그리고 번호를 붙이는 것이다. 주인공인 제누 301도 1월에 센터로 들어온 아이이다. 제누를 유독 따르는 아키 505는 궁금한것들이 너무 많아. 왜 주노와 줄리가 많은지 아키와 알리는 많은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제누는 8월의 긴 여름휴가와 12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마음 한구석이 아려옴을 느꼈다. 그리도 나도 그 이유가 씁쓸했다. 


피치 못할 사정도 있었겠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한생명과 직결된 문제인데, 열달을 품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서 매몰차게 뒤돌아서는 남자나, 그렇다고 어렵게 낳은 아이를 탯줄도 제대로 떼지 않고 유기하는 여자나 한순간의 쾌락만을 즐기고 책임지지 않는 태도를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혹은 아이들 끌어안았다고 하지만 그 아이를 방임하고 학대하는 사람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또한 부모의 울타리에서 크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그릇된 시선은 또 어떠한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아이들을 보호하는 NC 센터보다는 아이들을 유기하고 방임하고, 아이들을 낳았지만 키우기를 거부하고 버리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센터가 우리에게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센터에서 20년쯤 교육시키고 외부와 단절된채로 생활하게 된다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지 않을까 싶다.


참 속이 깊은 아이인 제누와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가정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가디 "박". 솔직히 '박'이 제누를 입양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의형제로 그렇게 가족이 되는 것도 멋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과 서커스 -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나카가와 요시타카 지음, 임해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첫 시작을 들어가면서 새삼 내가 세계사에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로마제국이라고 함은 이탈리아 반도 및 유럽 그리고 지중해를 넘어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와와 이집트까지 지배하였던 고대 최대의 제국이라고 하는데, 처음 이 책 표지를 보고선 이탈리아 로마만 생각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없다. 이래서 사람은 평생을 배워야만 하는가보다.


"빵과 서커스"라는 말은 로마가 시민들에게 제공한 식량(빵)과 오락 및 휴식거리(서커스)를 가리키며, '포퓰리즘(populism)'의 대명사로 쓰이는 표현이라고 한다. 행복한 시대에는 전란도 없을테고 식량문제도 없을 것이며, 또한 자신의 여가를 충분히 즐길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서 이를 제공한다는 것은 국민이 행복하다기 보다는 무언가로 시선을 돌리기 위한 행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출범한 계기도 민주화를 간절히 원하는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역시 정치적인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확 와닿는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역사가나 역사 애호가의 관점이 아닌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쓴 로마이야기이다. 현재 "남겨진"것들이 말해주는 "사라진" 로마의 이야기이다.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때 나도 엔지니어의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이야기가 조금 어려웠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첫 시작을 가볍게 했던게 문제였으리라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이 좋은 이유가 그냥 내 시선에 낡은 건축물로만 보이는 것에 숨겨진 이야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옛날 건물이야~, 그냥 옛날에 경기장이었데~"라는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다채로운 것을 알게 되는 책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라스트 걸 -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의 전쟁, 폭력 그리고 여성 이야기
나디아 무라드 지음, 제나 크라제스키 엮음, 공경희 옮김, 아말 클루니 서문 / 북트리거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간단히 연결했다. 내 사연을 말한 다음 계속 이야기했다. 나는 연설을 잘하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든 야지디는 ISIS가 집단 학살 죄로 기소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청중들은 세계의 약한 자들이 보호받도록 도울 만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난 우릴 유린한 남자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그들이 벌받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p.389)


제목의 담긴 의미가 끝맺음에 나왔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국가간이나 내전이 발생하면 여자들은 성노예로, 소년들은 소년병으로 끌려가고 또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한다. 그런 비극적인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던 저자의 소원은 아무래도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듯하다. 아직도 여기저기에 끊임없는 내전등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더이상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토록 그녀의 노력은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먼곳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도 그런 아픈 역사가 있으니 말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중동지역에서는 특히 여성들의 지위가 너무 낮고, 게다가 "명예살인"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 그래서 나디아도 처음 ISIS에서 탈출했을때 자신이 성노예로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유린당한것을 선뜻 말하지 못했다. 우리 위안부로 끌려가셨던 할머니들도 돌아와서도 그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그들은 분명 피해자인데 왜 우리는 그녀를 감싸주지 못했던 것일까.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감싸 안고 그런 만행을 저지른 이들이 벌받을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디아가 겪었던 이야기라 성노예와 학살에 촛점이 맞았지만 예전에 읽었던 이스마엘 베아의 <집으로 가는 길>이 떠올랐다. 랩이 좋아 장기자랑에 참여하려 집을 나선 아이들이 소년병으로 끌려갔던 이야길를 담은 이야기이다. 어린 소년병들에게 두려움을 없애겠다고 마약을 시키면서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게 한다. 이 이야기에서도 나디아의 조카들이 일부는 ISIS에 세뇌되어 소년병으로 끌려가는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참 얼마나 슬프고 가슴이 아픈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종교가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약한자들에게 가해지는 만행은 이제 멈춰야 한다. 그녀의 말대로 더이상 이런 아픔을 갖는 여인들이 더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의 모습은 아마도 마들렌일까.. 복수를 결심하는 모습의 마들렌인것 같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마들렌의 어린 아들이 할아버지의 관을 향해 몸을 던진다. 마들렌의 아들 폴은 읽어나가면서 꽤 명석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채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폴은 생명은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져야했고,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마들렌은 아버지의 사업보다는 아들인 폴에게 신경을 더 쓰게 된다. 화려한 복수극을 펼치는 그녀를 보면 사업에도 꽤 수완이 있을꺼라 생각했는데 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는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1927년 즈음이므로 여성의 사회진출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했지 않았나 싶다.


마들렌이 온통 아들 폴에게 정신이 없을때, 그녀와 결혼으로 페리쿠트가에 입성과 동시 사업을 하고자 했던 귀스타브 주베르는 마들렌이 결혼을 거부하자 다른 음모를 꾸민다. 또한 삼촌인 샤를 페리쿠트도 자신에게 형의 재산은 극히 일부만이 돌아오고 거의 모든 재산이 마들렌에게 상속된것에 대한 불만이 있다. 그들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은 마들렌. 대저택을 떠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알게 된 안타까운 사연. 바로 폴의 투신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가정교사이자 마들렌의 내연남인 앙드레 델쿠르에게 끓어오르는 배신감으로 그녀는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 표정이 바로 표지의 저 표정인것만 같다.


어쩌면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다른 이들 모두 그녀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는다면 속절없이 무너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리라 생각해었던 듯하다. 그녀의 복수는 그들을 더이상 재기 불능하게 만들었기에 더더욱 이 이야기는 흥미롭고 독자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흔히들 용서를 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라는 말들을 하지만 난 이 말에 대해 반대한다. 용서를 하든 응징을 하든,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잊고 살아갈수가 없을 것이다. 용서를 했기에 잊었다는 사람들이 과연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일까. 범죄의 피해자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의 트라우마는 삶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용서받기 위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입힌 사람들의 비겁한 변명으로 용서를 하자라고 하는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재기 불능의 처절한 마들렌의 복수를 나는 더욱더 환영하는 바이다.


워낙 스릴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조금더 처절한 복수를 바랬지만 어쩌면 마들렌은 나보다는 조금더 인정이 있는 여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600여 페이지의 두께가 무색할만큼 책장은 아주 잘 넘어가는 이야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