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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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저 여인은 참 낯익다. 유화로 그린것인지.. 그림에 대해 1도 모르니, 하지만 왠지 낯설지 않다. 아마도 이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낯선 느낌을 받지 않아서 일까. 그래서 표지를 표현한것이 아닌가 그냥 나만의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잘못한 사람들』,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그믐밤 세 남자』,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친절한 솔』, 『숨어 살기 좋은 집』, 『엄 대리』, 『개들이 짖는 동안』의 8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는 소설집이다. 단편에 약하지만 그래도 5편 정도는 이해하면서 읽을것을 보면, 내 입장에선 아주 선전한 편이다. 가끔 단편들을 읽을 때면 비로서 이야기에 녹아들때쯤 뚝 끊기는 감이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단편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나게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장르 소설을 선호하다 보니, 비슷하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어서 그랬을까. 안그래도, 작가의 말에 보면 이 소설들을 쓰면서 끊임없이 떠올린 단어는 '가해자'와 '피해자'였다(p.258)라고 나온다. 정말로 올곧은 나의 독서 취향을 저격한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아름다운 소설이 아니라서 미안하다(p.259)는 말을 저자는 덧붙힌다. 뭐, 소설이라고 꼭 아름다울 필요가 있겠는가. 세상의 이면도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싶다.

첫 시작을 여는 『잘못한 사람들』은 몇년전 폐지 줍던이를 폭행해 살해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나'는 세호한테 불려나왔다. 나오는게 아니였는데 말이다. 죽은 세호 아버지는 세호가 어린날 밖에서 화난 일이 생기면 집으로 돌아와 어린 세호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때리고 때렸다고 한다. 그러면 세호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만 했다. 가장 못난 사람들.. 자신에게 화가 나면 어떻게든 혼자서 풀어야지, 그것을 내 가족 혹은 약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화풀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화가 풀릴때까지 꼬투리에 꼬투리를 물고 시비를 건다. 세호는 생활정보지를 제시간에 배포함에도 불구하고 정보지가 없다는 클레임이 들어왔던 것이다. 세호는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못했다고 빌었고, 바로 그때 죽은 아버지가 생각이 났고, 자신도 모르게 욕이 나왔고, 해고를 당했다. 그런 기분에 일찍 도착한 집 근처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폐지 사이에 생활정보지가 보였고, 할머니를 쫓아가다가 시비가 붙었고, 결국엔 할머니를 폭해하기에 이른다. 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잘못했다고 비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나. 잘못한 것도 모르고 비는 사람들. 각박한 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안타까운 가족의 모습을 보게된다. 가족이라 함은 서로의 소유물이 아닌데, 소유물로 생각하고 폭행을 일삼고, 당연히 가족이라는 미명아래 희생을 강요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들을 단죄하지 못한다. 아동학대, 폭행, 가족살인등의 씁쓸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들리는 까닭이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별을 하더라도 좀 더 쿨하게 할수는 없을까. 정말로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이것뿐인지 참 마음 아플뿐이다.

연이어 나오는 작품들도 그리 낯설지가 않다. 낯설지 않게 우리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일들이어서 그러지 않을까. 저자의 아름다운 소설이 아니라 미안하다라는 말을 이해할수 있는것은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탓인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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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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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책과 작가를 잘 연결시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제목만으로 책을 기억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작가를 기억하곤 했다. 하지만 이 요쿄야마 히데오는 왠지 낯설었는데, 접하는 접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낯설지 않은 작가인 것을 알았다. 저자는 2013년 < 64 >를 츨간하며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일본 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렸다'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 어렴풋이 < 64 >라는 소설이 기억이 난다. 2013년이 끝나갈 즈음 그 책을 읽었었다. 아마도 작가의 명성보다는 내용에 끌려서 읽었던 듯 하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소설 제목만 보고 자세하게는 아니어도 결말이 생각나는 것을 보니(당시에는 리뷰를 잘 안 썼다), 꽤 인상 깊었던 듯하다. 그 뒤로 < 64 >의 작가라고 한다면 읽었을텐데, 잊혀졌던 이유가 저자의 건강 악화와 기억 장애로 슬럼프에 빠져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 < 빛의 현관 >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 < 빛의 현관 >은 < 64 >의 탈고가 끝난 후, 여행잡지에 연재했던 이 작품의 개고를 시작했지만 슬럼프와 더불어 작업에 매우 난항을 겪은 탓인가보다. 원래 문장 중 남아있는 것이 10퍼센도 안될거라니, 차라리 새로 쓰는 편이 나았을텐데 그만큼 이 작품에 작가의 노력과 정성, 그리고 애정이 들어가지 않았나라고 생각해본다.

건축사 아오세는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라는 의뢰인의 제안에 따라 Y주택을 설계했다. 설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지만, 만약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직접 만든다라고 하면 얼마나 애정이 깃들지는 짐작이 간다. 사소한 부품 하나하나 신경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애정을 지닌 집이 제 역할을 다 하기를 빌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찬사를 받았던 Y주택은 정작 의뢰인 요시노에게는 외면 당했다. 외면이란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요시노는 집열쇠를 건네받은뒤 그곳에 이사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의 작품이기도 하고 아오세 본인이 만든 집이 제 구실도 하지 못하고 버려진듯한 느낌과 의뢰인의 실종에 아오세는 왠지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래서 조심히 그를 찾아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 Y주택은 자신을 자꾸만 과거로 이끄는것만 같다.

분명 요시노는 실종이 된것 같지만, 그렇다고 살인사건도 어떤 범죄와 연루되었다는 사실도 나오지는 않는다. 왜 내가 만든 집이 집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할까. 그 흔적을 찾아가는 아오세를 쫓아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들을 만날수가 있다. 얼마나 작가의 고뇌와 정성이 들었을까가 느껴지며, 작가의 매력에 취할수가 있다.

또하나 개인적인 작가와의 인연이라면, 물론 나만의 인연이겠지만 작가는 < 루팡의 소식 >이라는 작품으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지난 봄, 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서 선물 받았던 책이 바로 이 < 루팡의 소식 >이었다. 그때는 미처 작가의 이름을 살펴보지 못했었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선물받고 아직 읽지 않았던 책을 읽어봐야겠다. 이 책의 여운을 간직한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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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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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긴 방랑길 위 빛나는 저녁달처럼 서로의 구원이 된 두 사람의 이야기

사라사는 다른집과는 조금은 다른 부모밑에서 자랐다. 저녁밥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괜찮았고, 아빠를 위해서 칵테일을 만들어도 괜찮았다. 그 행복이 지속될꺼라 생각했지만, 아빠는 병에 걸려 돌아가시고 엄마도 없어졌다. 이모네에서 지내게 된 사라사. 그녀는 밤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촌 다카히로가 너무나도 싫었다. 어느날 공원에서 만난 후미를 만나 그의 집으로 갔다. 어쩜 후미는 사라사에게 다시금 부모님과 사는 그런 자유를 찾아준것 같다. 낯선 사람의 집인데도 잠도 푹자게 되었고, 편안함을 느꼈다. 마치 책에서 모든 것을 배운마냥 후미는 엄마의 교육방침으로만 살았고, 사라사와 함께 늦잠자고 피자를 시켜먹는 것등으로 일탈을 느끼곤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후 이모의 신고로 어린이 유괴사건으로 사라사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게 되었고, 아무 생각없이 결정했던 동물원행에서 그만 사람들이 신고로 사라사와 후미는 헤어지게 되었다. 후미는 아동유괴범으로 낙인찍혔고, 오히려 자신에게 못된짓을 한건 사촌인 다카히로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어느새 사라사는 못된짓을 당한 안쓰러운 희생자가 되어 있었고, 후미는 유괴범이 되어버렸다.

15년이 되어 다시 만난 사라사와 후미. 여전히 사회는 그들에게 냉정하다. 정확한 일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짓도 하지 않았던 후미는 가족들에게도 외면받는 유괴범이 되었고, 사회의 냉대를 받았고, 사라사에게 못된 짓을 하던 다카히로는 그녀가 대신 보육원으로 내쳐짐으로써 어떤 비난도 받지 않고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두 남녀의 이야기를 보면서 느낀점은 사회란 참 모순덩어리라는 것이다. 분명 잘못은 저지른 사람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비호를 받으며 청렴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잘못이 없는 사람이지만 다른이들의 편견에 따라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지금의 사회도 얼마나 부조리한가. 온갖 잘못을 하고도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뻔뻔한 가면을 쓰고 자신은 단지 피해자일뿐이라고 호소하면서 말이다.

'그 남자가 정말로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남자와 그 여자밖에 모른다.'(p.353)

글쎄, 소설속 다른 사람들 눈에는 혹인 이 책을 읽는 사람들, 혹은 그저 이런 이야기가 있어 하고 들려주었을때 어떤 사람들은 후미와 사라사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라사와 후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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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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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상황, 부조리한 트릭과 복선 하지만 이상하게 납득 가는 이야기!"

아마도 요 말은 출판사측에서 정한 문구가 아니였을까 싶다. 그에 딱 어울리는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ABC 살인』, 『사내 편애』, 『피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밤을 보는 고양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이 여섯편의 단편중에 단연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작품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ABC 살인사건』과 『밤을 보는 고양이』였다. 원래 구라치 준은 1994년에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일요일 밤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로 와카타케 상을 수상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고 한다. 어쩌면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마지막 이야기인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이 더 반갑지 않았을까. 하지만 저자는 '좀처럼 일을 안하기로 정평이 난 일본의 추리 작가'라는 설명이 있을 정도로 작품을 적게 쓰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보다는 제목때문에 난 이 책에 끌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그다지 재밌다는 생각을 못했지만도. 이유는 아무래도 태평양 전쟁 말기, 실험실에서 한 병사의 시체가 발견되는 이야기라 좀 거부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괜히, 그들이 했던 실험이 떠오르고... 별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본다.

『ABC 살인』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을 패러디 한 작품이라고 한다. 묻지마 살인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주인공은 유심히 그 사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A도시의 A씨, B도시의 B씨가 살해되자 문득 자신의 동생이 D도시의 D씨이므로 이 사건이 마치 연쇄살인인것처럼 동생을 죽인다면 자신은 용의자에서 벗어날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소 C도시의 C씨를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한다. 이제 자연스레 동생을 살해하면 된다. 그런데 느닷없이 D도시의 D씨가 살해된다. 한번이 아니라 연이어 D도시의 D씨가 살해된다. 이일을 어쩌랴. 그렇게도 소리소문없이 사람을 죽이고픈 사람이 많은가. 하긴 나도 정말로 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요때를 노려 살해해보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간혹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있다. 변명 없는 무덤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은 아니지. 실제로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을 일이다. 그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사람이든 동물이든 남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정말로 천벌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밤을 보는 고양이』는 살짝 무서울뻔 했다. 주인공은 휴가를 내고 시골 할머니댁에 내려왔다. 마음의 평안을 주는 곳. 할머니는 고양이 한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마치 무언가를 보듯 허공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귀신이라도 보는 것일까. 하지만 동물들의 통찰력(?)은 대단한것 같다.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미세한 변화를 혹여 사람이 내뿜는 에너지도 느끼는 듯하다. 옆집 할머니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지만 백수인 아들은 할머니 몫의 연금을 타내려고 모든 사람들이 잠든 한밤중에 뒷마당을 파는 것이었다. 예사롭지 못했던 그날의 흙냄새에 고양이가 반응을 한 것이었다. 하마터면 귀신 나오는줄 알고 식겁했다. 하지만, 그렇게 마무리 지을즈음 할머니의 한마디. 정말로 고양이만 그런건지, 동물들은 다 그런것인지 궁금하다. 궁금하다면 책을 확인하는 방법이...(나중에 이 리뷰를 보고 나도 몰라서 책을 다시 찾아보지나 않을지 걱정)

정말로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었는지 아닌지는 비밀. 그래야 독자들도 궁금하고 출판사도 이런 리뷰를 좋아하지 않을까. 뭐, 이건 이웃에게 나눔받은 책이니 서평단인것처럼 좋은식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나는 책들에 대해서 비판하고 재미있네 없네, 서평단이니 더 재미있네 이런식으로 리뷰를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평론가도 아니고, 내가 받아들이는 그만큼만 적으면 되지 않을까. 마치 나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니 내게 잘 보여라라는 식의 리뷰는 내 성격상 쓰지도 못할뿐더러 그렇게 내게 리뷰를 부탁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나는 재미를 못느꼈다면 나와 안맞아서 그럴테고,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그럴테지 생각하는 편이다. 원래 단편에는 약한 편이긴 하지만 이 책은 그닥 나의 약한편이 드러나지 않아서 좋은것 같다. 그만큼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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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우주선의 시간 - 제1회 카카오페이지×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수상작
이지아 지음 / 스윙테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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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카카오페이지 X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특별 선정작

처음엔 이 책의 표지를 보고... 하..... 그런데, 소설을 읽고 나니.. 너무나도 미안하다. 내가 너무 오래된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었나 보다. 아마도 영어덜트가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어덜트인 내가 읽어도 무진장 재미난다.

25년 7일 14시간. 다비드 훈이 나를 떠난 시간..

지구인 우주 경찰 다비드 훈과 그의 정찰선 티스테. 토성으로 정찰을 왔을때, 때아닌 모래폭풍을 만나 잠시 머물러야만 했다. 인간이 늙듯 기계도 조금씩 무뎌지는 탓이었다. 훈의 딸인 피치를 낳을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것 때문에 피치가 아기를 낳을땐 반드시 곁에 있어주기로 했다며, 훈은 반드시 돌아오겠다며 지구로 떠났다. 티스테는 그렇게 모래에 파묻혀 동력을 잃어가고 있을 즈음 어레스 박사가 그를 발견하곤 인간의 몸을 만들어 주고 감정 코드를 삽입해 주었다. 티스테가 눈을 뜨고 처음 한 일은 눈물을 펑펑 쏟아낸 것이었다.

모든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버림을 받고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게 분명하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처절하게 울수는 없다고...(p.162)

인간의 감정을 모를때에도 꽤나 티스테는 훈을 믿고 따랐음에 분명하다. 25년 7일 14일, 훈이 떠나간 시간을 하나씩 세면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를 버리지 말라고, 나를 잊지 말라고, 그래서 처음 한 일이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것을 아닐까.

훈은 지구에 돌아와서 끊임없이 티스테를 찾기 위해 구조선을 보낼것을 요청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날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훈의 딸은 병원에서 근근히 살아가고, 피치의 딸인 롯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며 저녁에는 해커로서 일한다. 오늘날 가장 무서운 병이 폐병이 되었다. 아마도 미래 사회에서도 가장 문제되는 것은 환경인듯하다. 엄마를 청정지역에 가까운 에멀란드 존에 가까운 곳으로 모시는 것이 롯의 꿈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주로직사에서 오래된 제품인 정찰선은 회수해 반납해 주면 거금의 배상금을 주겠다라는 편지가 훈의 앞으로 배달되었다. 비록 훈은 이 세상에 없지만 롯은 엄마를 위해서 정찰선을 찾기 위해 할아버지의 정찰일지를 찾아 토성으로 떠난다. 회사에 반납하고 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너를 보고 싶어 하지만 지금 매우 위독한 상태라고 속이고 말이다.

정말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때론 의도치 않게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훈도 티스테를 찾아오고 싶었을 테다. 그곳에 혼자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아픈 딸을 두고 떠날수는 없었다. 교신이라도 되었다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 것이다. 어쩐지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티스테에게 더 연민의 정이 갔다. 그와는 다른 경우였지만 하염없이 기다린적이 있었다. 이유도 모른채... 비록 25년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를 이해할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니더라도 예전의 나였다면 그 방향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그는 훈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만나러 지구행을 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서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에이트 빌로우>라는 환자를 이송하면서 돌아오겠다는 약속만 남기며 썰매개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주인공(?) 제리는 떠난다. 악천후 때문에 돌아갈수 없었던 제리는 175일만에 돌아온다. 그간의 그의 노력을 모르는 그 썰매개들이 바로 티스테의 입장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재회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 그 영화가 떠올랐다. 상처받는 것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리고 기계든 똑같을 것이다. 어린아이일 적에는 동물도, 식물도, 무생물도 다 그렇게 챙겨주다가 왜 어른들이 되면서 그 마음을 외면하게 될까. 생명이 없다 외면하는 것은 너무나도 야박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어쩜 나는 아직 영어덜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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