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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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망고 >, < 검은 개 >에 이어 저자의 세번째 작품을 만났다. 앞선 두 작품을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에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이 <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는 누아르와 SF가 결합된 장르 소설이다. 내가 읽었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가독성은 정말로 끝내준다.


강원도 정선 인근. 도박에 가진 돈을 탕진한 이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왔던 시계, 옷, 자동차등을 전당사에 맡기고 그 밑천으로 또 도박을 일삼든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 속에 기면증을 앓고 있는 소년 '진'이 있다. 갑자기 발병한 기면증 탓에 학업도 다 마치지 못했고 캐딜락 전당사의 성사장의 밑에서 전당사 일을 돕고 있다. 스페어키를 가지고 두군데 전당사에 차를 팔려던 남자때문에 황금 전당사에서 일하는 진규에 쫓기다가 시간의 공간을 뛰어넘었다. 어찌된일인지 모르는 진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SF가 결합된 소설인만큼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 다수는 공간의 포트를 열 수 있다. 각자 실력들이 다르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되기도 하지만 또 '진'처럼 자신의 능력을 전혀 모른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숨길수 없는법. 자꾸만 누르려 해도 불식간에 터져나오는 것은 어쩔수 없다. 그야말로 축지법처럼 공간을 타고 넘어간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발상이다. 그러나, 이것이 만약에 범죄에 쓰여지게 된다면 이제부터 머리가 아파오지 않을까."어차피 능력이 아니라 저주였어."라는 말이 모든 것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아픈 딸아이의 장기이식을 위해(하필 심장이라니) 범죄조직에 가담했던 심경장. 하지만 그는 이용만 당하고 딸과 아내까지 가족 전부를 잃었다. 그리고 오직 복수만을 하기 위해 돌아왔다. 원래부터 같은 능력이 있었던 이였는지, 진을 아끼고 지키는 성사장.


'누아르'라는 말에 예전 홍콩영화가 생각이 난다. 어릴적 홍콩영화가 대세기도 했고, 홍콩배우를 좋아하는 친구때문에 자주 보러가기도 했다. 그때 생각했던 것이 "저렇게 길거리에서 총격전이 가능하기는 해?"라는 것이다. 영화 '도둑들'을 볼때도 우리나라 도심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한다고라는 생각은 머리속에서 떠나지는 않았지만,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그런 생각은 접을수 있을것이다. 어차피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없을테니까. 이야기를 읽으며 흠뻑 빠져 있었던 것처럼 영화화 된다해도 시간가는줄 모르고 볼것 같다. 그리고 누가 흰 캐딜락을 타고 오는지는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흰 캐딜락을 타고 온 그의 정체를 아는순간 뭉클함을 또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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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크리스토성의 뒤마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이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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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받아본 순간 그 가벼움에 한번 놀랐다. 350여페이지가 넘어가는데 이렇게 가볍다니.. 두꺼운 벽돌책을 선호하지만 그 무게에 가끔은 손목이 아프다. 헌데, 이 책은 가벼워서 책을 들었는지 말았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책들이 이렇게 만들어지면 안될까.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뒤마의 입담에 또 한번 놀랐다. 이렇게 재밌다니 말이다. 고전이라고 하면 살짝 딱딱한 말투나 부자연스러움이 묻어나서 독서를 방해하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는 천생 이야기꾼이라고 불뤼우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입담에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특히나, 언젠가 블로그 이웃이 < 몽테크리스토 백작 >을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고 인생책으로 선정한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으나 방대한 양과 고전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아무래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어 버렸다. 특히나, 뉴턴과 핼리(핼리 혜성 발견자)가 친구였다는 사실만큼이나 알렉상드로 뒤마와 빅토르 위고가 친구사이라는 점이 놀랍다.

연이은 소설과 연극의 성공으로 부유해진 뒤마가 집을 지었는데, 사람들에 의해 "몽테크리스토 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책은 뒤마가 몽테크리스토 성에 살면서 함께 지낸 동물들의 이야기이다. '사람과 동물의 유사성'을 계속 인지시키는 뒤마의 말투에서 뒤마가 길렀다는 동물들이 그 시대의 누구를 닮았는지 가늠해보기도 한다.(p.374)라는 역자의 말을 보면 당시 상황의 풍자가 가미되어진것 같으나 당시 프랑스 사회를 잘 모르니 참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내게는 이 책이 뒤마와 동물들이 어우러져 사는 이야기로만 들린다. 특히나, 동물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맘에 든다. 더이상 개를 키울수 없게되면 그냥 유기시키면 되지.. 개를 익사시킨다니.. 기르던 동물을 유기시키는게 참으로 나쁜일이라 생각했지만, 차라리 그 편이 낫겠다 생각하게 될줄은.. 하지만 뒤마가 그 개를(물론 값을 치르고) 데리고 오게된다. 또한 집에 개들이 13마리까지 되고 먹이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게 되자, 미셸은 개를 내보내자고 하지만 최후의 만찬이 떠오른다며 그 개들을 함께 식사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14마리를 만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뒤마가 사는 동안 프랑스는 열여섯번의 정부가 바뀌었다고 한다. 늘 사람들은 권력이 바뀌게 되면, 그 편에 선다고 하는데, 뒤마는 늘 그 중간에 섰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재능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이야기를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 < 몽테크리스토성의 뒤마 >는 참 거부감 없는 책이다. 그래서 뒤마가 쓴 책들도 읽어볼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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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 폴로어 25만 명의 신종 대여 서비스!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지음, 김수현 옮김 / 미메시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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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예전부터 자판기의 나라라고 할만큼 기상천외한 자판기들이 많은 일본이라서 이 역시 일본다운 발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 일상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대여해서 어떤 잇점이 있을까.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도 예전에 식당에 혼자서 들어가서 밥먹는 것도, 택시를 잡아 타는 것도, 그리고 낯선 길을 가는 것도 혼자하기가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혼자서 하기에는 멋쩍은 일들이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럴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옆에 누군가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오호, 이 서비스 괜찮은데..^^;; 저자는 이같은 현상을 "하지만 없어도 좋지만 거기에 누군가 한 명 있는 것만으로 의뢰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촉매> 같은 구실을 하는게 아닐까.(p.31)"라고 적고 있다. 사실 나도 그랬겠지만 딸아이도 내가 학교에 여러일로 찾아가게 되면, 일부러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깨가 솟고, 당당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혼자서는 괜히 움츠려드는 마음이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다면, 동행을 한다면 당당하게 고개를 들수 있지 않을까. 그게 나와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이면 좋을수도 있지만, 때론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 부담이 없을수도 있을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렌탈서비스를 하면서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기대하게 된다. 저자도 초반에 그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비용을 받지 않고 만약에 발생하게되는 교통비와 식음료 비용만(돈이 들 경우) 받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의아했다. 아직 30대인 저자가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 이런 서비스를 한다면 나는 탐탁지 않을 것 같다. 은퇴를 하고나서 소일거리로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개인 미디어가 발달되어 있는 요즘엔 저자처럼 많은 팔로우의 트윗터를 보유하는 것도 하나의 자산인것 같고, 그로 인해 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책도 써냈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긴하다.

정말로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꼭 밀접한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도 충분하게 가상의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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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랑한 소년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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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북클럽 8월 스토킹 도서

천재 프로파일러 슈나이더가 등장하는 세번째 소설이다. 이 책을 읽는 초반에는 좀 딴짓을 하다가 조금 이야기가 진행되고부터는 도무지 책에서 손을 놓을수가 없었다. 이웃님의 리뷰에서 슈나이더 이야기를 이번편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독자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네번째 이야기인 <죽음의 론도>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이번 이야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전편에서 마지막에 언급했던 살인자 피트 판 론. 그는 바로 5년전에 슈나이더가 직접 잡아 넣은 연쇄살인범이다. 그가 다시 돌아왔다. 5년전 '문맹인' 사건에 연관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되는 가운데, 이야기는 2가지로 진행된다. 살인사건을 쫓아가는 슈나이더와 자비네의 이야기와 그보다는 일주일 정도 앞선 피트 판 론이 수감되어 있는 외딴섬 오스테버잔트에 세워진 교도소로 심리 치료 실습을 나온 한나의 이야기이다. 단순한 실습으로 나온것 같지 않은 한나는 피트 판 론에 대해 무언가 알아낼 것이 있는 듯 행동을 한다.

이번편을 통해 슈나이더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이야기 속에 얽혀 있는 이야기는 하나씩 밝혀질때마다(아니 그의 입을 통해 듣게 될때마다) 어리를 한번씩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가 유일하게 동료로 인정하는 자비네 만큼이나 읽고 있는 독자에게도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아마도 그래서 슈나이더는 남들이 보기에 더 까칠해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원래 그랬던 것일까.

이번편에서 보여준 슈나이더의 모습은 좀 충격적이다. 냉철했던 그에게도 이런 숨겨진 모습이 있었던 것일까 여겨질 만큼 그는 판단력을 살짝 잃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대로 이 시리즈가 끝났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어떤 방법으로든 작가에게 성토대회를 열지 않았을까 싶다. 요네스뵈가 해리홀레에게 그토록 잔인하게 군다고 생각했는데, 안드레아스도 참 슈나이더에게 모질게 구는것 같다. 그래서 더 결말이 안쓰럽기도 했고, 전편을 통해 슈나이더가 어떤 인물인지 알기에 더욱더 그의 결정이 참 쓰라리기도 했다.

그래도 슈나이더가 네번째 이야기로 돌아오니 성토대회는 그만하는 것이 나을듯 싶다. 슈나이더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재밌지 않았나 싶으면서도 네번째 이야기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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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
아밀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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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고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기도 한다. 부럽다. 다재다능한것 같아서. 이 책은 「로드킬」, 「라비」, 「오세요, 알프스 대공원으로」, 「외시경」, 「몽타주」, 「공희」 6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특히나 저자는 「로드킬」로 2018 SF어워드 중·단편 소설 부문 우수상을, 「라비」로 2020 SF 중·단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로드킬」은 꽤 읽으면서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해야하나. 지구가 점점 뜨거워져 사시사철 여름이 되어 버린 미래의 어느날, 정부에서는 진화에서 도태되어 버린 여성들을 '1급 보호대상 소수인종'으로 분류했다. 이는 인류문명 전체의 공익을 위해서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인종으로 지정되었단 말이다. 그녀들은 오늘의 생태계에서는 살해당하거나 '잡아먹힐' 연약한 인종이므로 보호하고 교육해서 정부가 선정한 남자들의 선택을 받아 학교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뭐 이런 말도 안되는 경우가 다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 어제 오늘 연이어 터지는 아프카니스탄의 사태를 보면 말이다. "탈레반이 아프카니스탄 전역을 장악한 첫날 수도 카불의 거리에서는 여성들이 자취를 감췄다. 남성 보호자와 동반하지 않거나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한 여성들이 집에 머문 것이다"라는 기사를 보고, 이시간을 살고 있는 지금도 이 SF를 가미한 이야기 같은 곳이 있구나. 정말로 머지않아 여성이라는 인종을 보호 받아야만 할 존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데이트 폭력에 희생당하고, 감히 목숨을 걸고 이별을 해야하고, 강간 피해자는 날이 갈수록 어려지는 세상인데 과연 여성으로서 설 자리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만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맞서는 이들이 있어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공희」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어렸을적부터 들어왔던 어린처녀를 제물로 바치는데, 젊은 무사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줘서 행복하게 살더라라는 이야기의 후속 이야기인것만 같다. 전적으로 내생각. 그토록 멋진 수를 놓는 것도 함께 살다보니 약점이 되어가고, 불화의 씨앗이 되어 버린다. 이 뿐만 아니라 「외시경」에서도 비슷한 스토리를 볼 수가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작가의 말을 보면 저자 본인은 "곤경에 빠진 처녀"들의 이야기에 오랫동안 얽매여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 나온 여성들은 정말로 곤경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누가 그들을 곤경에 빠트린 것일까. 이 세상은 왜 여성을 곤경에 빠트릴까.. 곰곰히 생각을 하게끔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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