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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자를 쓴 여자 ㅣ 새소설 9
권정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평점 :
잠이 오지 않았다. 낮에 마신 커피때문인지..그러나 민은 창문 밖에서 집을 훔쳐보는 검은 맥고모자를 쓴 여인을 발견했다. 참으로 무례하다. 베란다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집안을 둘러본다. 동수와 함께 자는 검은 고양이 까망이. 제법 커버린 강아지 무지, 그리고 코를 골지는 않지만 깊은 잠에 빠진 남편. 평화로워 보이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은 그러하지 못하다.
사실, 민은 사고로 아이를 잃었다. 은수를 유모차에 태우고 인적드문 약수터에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유모차에서 떨어져 은수는 숨을 거뒀다. 분명 누군가 아이를 해쳤다는 민의 이야기는 묵살당했다. 그리고 나서 우연찮게 추운 겨울에 교회앞에 놓여져 있던 동수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동수는 부부의 아들이 된다. 하지만 그 후부터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강아지 무지를 공격하는 고양이 까망이. 그리고 낯선 동수, 누군가 지켜보는 시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애간장이 끓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래서 일까. 민의 심리상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건 말이다. 한밤중 자신의 집을 쳐다보는 여성을 찾기 위해 CCTV를 설치했다. 밖으로 향했던 CCTV는 점차 집안을 향하며 동수를, 그리고 남편을 훔쳐보게 된다. 단순하게 CCTV가 비치는 방향이 바뀐것이 아니라 민의 의심이 바깥에서 집으로 옮겨오는 것을 표현한게 아닌가. 그만큼 민의 심리는 불안해 보인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 음모를 꾸미는것 같다가도 그녀의 내면 심리가 불안해 보이기도 하다가 종 잡을수 없게 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 왼쪽과 오른쪽이, 위와 아래가,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고 동그라미 안에 뒤섞여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실과 정의, 시대와 역사, 슬픔과 기쁨, 잠깐 스치는 인연들, 나아가 우리 삶이 이럴 것이다.(p.263, 작가의 말 中)
우로보로스,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문 모습으로 우주를 휘감고 있다는 뱀을 말한다. 무한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적 존재. 이야기 속에 "우로보로스"가 등장한다. 무한을 나타내는 상징이라 하는데, 이 이야기가 아무래도 민의 혼란이 외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내적 문제에서 시작인지, 어느것이 진실인지 구분할 수 없음을 빗대어 말하는 것 같다. 어느새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