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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묘점 ㅣ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월
평점 :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제목만 그동안 여러번 듣긴 했지만 선뜻 나서서 읽지는 못했고 이번 독서모임 덕분에 읽게 되었는데, 600페이지의 꽤 긴 이야기였는데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되었다. 마치 책장을 넘기지 않았는데도 책장이 넘어간다고나 할까. 남들 같으면 참 멋드러지게 이야기 할텐데 참.. 글솜씨 부족한 나로써는 어찌 표현할지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건 아마도 나와 잘 맞는다는 이야기일테다.
유명 작가 무라타니 아사코. 첫 소설이 공모전에서 가작으로 입선한 뒤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되었고, 아마도 꽤 유명한 시시도 간지의 딸이어서가 아닐지 모르겠다. 두 번째 작품도 호평을 받으며, 그리 다작을 하지는 않지만 꽤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꽤 까다로운 작가였다. 원고 마감일이 다가왔지만 이번에는 힘들겠다며 하네코로 떠난 그녀를 따라 < 신생 문학 > 노리코는 길을 나서게 된다. 그 곳에서 폭로기사를 주로 팔고 다니는 삼류 기자 다쿠라를 만나게 되었다. 괜한 시비조로 말을 걸어오는 다쿠라와의 만남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벼랑으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경찰은 이 사건을 자살로 결론 짓는 것 같지만, 노리코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안개속에서 봤던 몇몇 장면들.. 잡지사 동료 다쓰오와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무라타니 아사코의 대필작가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떠오르면 사건관계자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행방이 묘연해진다.
앞에는 역시 흰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다. 그 속에서 길과 숲이 나타나고, 돌아보면 지금까지 지나쳐 온 숲이 하얀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마치 백색의 세계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p.30, 31)
마치 안개속을 걷는 듯한 표현이 참 맘에 들었다. 그리고 앞에서 묘사되었던 이 표현때문에 하나둘 자취를 감춘 사람들이 마치 안개속으로 숨은듯 하다. 스스로 숨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본 모습을 잠시 안개에 맡겼는지 모르지만 노리코와 다쓰오의 추적을 서서히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원래 작품해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살짝 초반만 읽어보니 역자는 '오늘날의 독자가 읽기에 좀 따분하지 않을까? 세이초라는 이름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면, 이내 실망하고 불필요한 선입견만 갖게 되는게 아닐까?'라며 걱정을 했다고 한다. 반세기 전에 쓰인 이 작품이 참신하고 날렵한 미스터리들로 단련된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까, 게다가 이 < 푸른 묘점 >은 그의 대표작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음... 그런데 어쩌나. 나는 이 작품을 꽤 재밌고, 전보를 치고, 전화를 하고, 엽서를 보내는 방법에 매력을 느꼈는데 말이다. 바로바로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요즘 시대의 이야기를 보다 전보를 사용하는 옛작품을 읽을때면 살짝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번 이야기는 전혀 그런점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세이초의 대표작도 아니라는 이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는데, 이제 얼마나 세이초에게 빠져들어야 하는 것일까. 책을 읽는 독자로서 작가를 대할때, 기대감과 설렘을 느낄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