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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평점 :
가끔 책태기에 빠지면 히가시노의 책을 읽곤했다. 아무리 두꺼워도 하루에 다 읽게 되는 그의 소설은 책태기쯤은 휙 날려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 소설도 벌써 8년전에 읽었던 이야기이고, 어느 이야기이든 다시 읽게 되면 다른 시선으로 다가오게 마련인데, 한동한 뜸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또 줄줄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이번에 새로 안 사실인데, 히가시노에게 가장 약한점은 역사물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의 이야기에는 역사물은 없었던 것 같다. 작가 본인도 역사물은 무리라며 거절했지만 본격적인 역사물이 아니어도 된다는 편집자의 말에 어찌어찌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역시 그에게는 무리였을까. 이 말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이 책이 역사물에 살짝 걸친것이라고도 생각치 못했을테다.
에도시대에는 있었다는 하지만 지금은 없는 노란 나팔꽃을 쫓는 사람들. 사실 흔하게 봤던 나팔꽃인데, 파란색이 있다는 것도, 노란색이 없다는 것도 알지 못할 정도로 너무 무심했던 것일까.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를 가끔 방문하며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하던 꽃들을 블로그에 올리던 일을 하던 리노는 어느날 할아버지가 살해당한 현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당시는 너무 정신이 없어 미처 알지 못했는데, 할아버지가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꺼려하던 노란꽃의 화분이 없어진 것을 알아채고, 혹시 꽃에 대한 정보를 알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에 올린다. 식물학자라고 밝힌 요스케가 연락해온다. 어서 블로그를 폐쇄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남긴 그에게 따지러 갔다가 그의 동생 소타를 만나 사건을 파헤치게 된다.
초반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만났을때는 무척 신선했었다. 항상 그의 이야기 소재는 신선함은 물론, 대놓고 범인을 가르쳐 주면서 그들의 알리바이를 깨트려 주는 방법을 보여주거나 혹은 전문적인 형사가 아닌 이들이 제약적인 조건에서 사건을 파헤치는듯, 독자들에게 충분히 흥미를 유발하게끔 한다. 또한 그의 이야기속 단서들은 아무 의미없는 것들이 없다. 그 곳에 배치 되어 있는 것들은 다 이유가 있었다. 실은 요즘에 히가시노 이야기와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프롤로그에 언급되었던 이야기를 사건이 해결되어 가는데 다시 만났을때, 예전에 히가시노에게 열광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 생존을 계속하면 허락받은 것일까. 있는 것은 있는 대로 둔다는 게 내 생각이야. 거꾸로 말하면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도록 둔다는 거지. 어떤 씨앗이 사라졌다는 것은 사라질만한 이야가 있다는 거야. 노란 나팔꽃이 사라진 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거야."(p.209)
나름의 이유를 무시하고 역행하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는 대목이다. 히가시노의 이야기는 나름의 메세지를 느낄수도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다. 간만에 읽은 < 몽환화 > 이 책으로 아무래도 히가시노의 책을 다시 읽어야하는 때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