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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궁금해서 일찍 나왔니? - 이른둥이의 탄생을 바라보는 老의사의 따뜻한 시선
이철 지음 / 예미 / 2022년 10월
평점 :
이른둥이와 관계는 없지만, 나도 예전 태어날 때 엄마를 참 고생스럽게 하긴 했다.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엄마를 힘들게 했는지, 목에서 걸려서 엄마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정말 TV에서나 보는 것처럼 '산모와 아기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기로에까지 놓였다고 했었다. 모두들 나를 포기했는데, 엄마만 나를 포기 하지 않아서 결국에 세상 빛을 보게 됐고, 얼굴은 시커멓게 죽어있었고(엄마에게 전해들은 말인데, 사실 여부는 잘 모름) 회복하는데 좀 시일이 걸렸다고 했다. 근데... 어째 들을때마다 살이 붙는것 같은 느낌... 하지만 어쨌든 다른아이들보다 엄마덕을 조금 더 본건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이 책을 본 순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저자는 신생아에게는 출생이란 그야말로 천지개벽이고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이는 경천동지이다(p.21)라고 말한다. 그저 엄마 뱃속에서 모든 것을 엄마가 해결해줬는데,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혼자 호흡하고, 소화시키고, 추운 세상을 접해야 하는 홀로서기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 기억에는 없지만, 태어남과 동시에 이세상 하직할 뻔한 경험(?)이 있는 나로선... 살짝 동지애가 생길지경이다.
'미숙아'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지만 이 단어에는 '성숙하지 못하다' 또는 '미숙하다'라는 느낌이 있다. 뭔가 부정적인 의미 같다. 물론 제 개월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일찍 세상에 나온 아기들은 아무래도 조금 더 도움이 필요하긴 할 것 같다. 경험이 없는 우리는 '미숙아'라는 표현에 별 거부감이 없지만, 정작 본인이나 가족들은 이 단어를 매우 꺼려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직 표준어로 인증받지는 않았지만 신생아학회에서 응모를 받아 '이른둥이'라는 순우리말로 일찍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다고 한다. 이제 우리에게도 '이른둥이'라는 말이 더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이른둥이라고 하면, 괜히 연상되는 것이 많이 아파서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아기, 혹은 인큐베이터가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임신 초기에 아기들의 대부분의 장기들이 형성되기는 하지만,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쓸일이 없던 폐로 펴져야 하고 모든 기능이 제대로 작동 준비를 마쳐야 한다. 그런데 일찍 태어난 아기들은 그 준비가 되어있지 못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른둥이들은 도와줄 방법이 없어서 영아사망률이 꽤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의학기술들이 발전되서 많은 영아들이 이 사회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 의사들 중에서 전혀 환자와 소통할 수 없는 부류라고 저자 스스로도 말을 한다. 그런데, 성인이 되서 찾아오는 아이를 보면 그 느낌이 어떨까.
세상에!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미숙아로 태어나서 내가 진료하였던 환자를 20년이 지나 해후를 한 것이다. 주치의 시절에 그 어떤 신생아 환자와도 한마디 대화를 할 수 없었는데 20년이 지난 후 비로소 첫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p.86)
우리 나라의 인구 감소는 꽤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는 많은 예산을 편성하고는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저자도 여러의견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미 태어난 이른둥이를 잘 살리는 것이라고 한다. 적자가 계속된다고 인큐베이터를 늘리지 않는다거나, 치료비가 부담되어 혹시라도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부담되어 포기하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아기들이 엄마품에서 떨어져 홀로 사투를 벌이는 데, 어른들은 수지타산을 맞춘다는 것 정말 모양빠지는 일이다. 세상이 궁금해서 일찍 나온 아이들, 세상을 맘껏 볼 수 있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