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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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액자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처음엔 이 소설의 전체적인 중심에 있는 오슈 남작이 "나"라는 인물을 통해 이끌어나간다. 그의 수기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막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우리는 좀 멍하게 된다. 과연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말이다.

한 촉망받는 궁정 배우 오이겐 비쇼프의 자살로 촉발되는 사건의 진실들... 이것은 여타의 살인사건이 아니라 자살사건이라는 점이 놀랍다. 그가 처음 한 이야기도 놀랍고 그 후에 연이은 그의 자살, 그리고 약국에서 일하는 여인의 자살... 마지막 양피지의 장을 찢고 심장마비로 숨진 엔지니어까지... 오슈 남작마저 그럴뻔 하였으나 그는 다행히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

환상과 환각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고 심판의 날의 거장을 본다는 것은? 많은 예술가들이나 배우들은 뭔가 영감을 기다린다. 물론 글을 쓰는 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계시를 받길 원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그런 것은 없음을 말이다.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은 글이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내려가는 것이고, 궁둥이로 쓴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어떤 영감이나 환상을 기대하지 말고 묵묵히 쓰면 그런 대작도 탄생하는 법이다.

하지만 여기 이 소설에서 오이겐은 연기를 위해, 그리고 그림을 잘 그렸던 약국여인 역시 심판을 날의 거장을 기다렸다. 마지막 엔지니어는 그 자신의 실험으로 (그가 극복하리라 여겼건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그는 동양에서 전쟁에 참가했으며 그런 용기로 최후의 심판은 두렵지 않다고 공언했는데, 바로 그 전쟁의 경험이 그를 삼켰다.

여기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다. 공포란 절대 극복되어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것을 이길 힘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누구도 진정한 공포를 경험한 사람은 없다고 말이다. 그것을 경험했다고 말한 순간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테니 말이다.

심판의 날의 거장이 환상이든,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든 뭐든 간에 여기서는 극복할 수 없는 무언가로 보인다. 아무 죄도 없는 아이는 왠지 극복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그것도 혹시 모를 일이다. 신경이란 존재가 무엇을 꾸며낼지 모르니 말이다.

책을 덮은 이 순간, 생각해 본다. 과연 그런 것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지... 스스로를 믿는가? 바로 이 질문에 답을 먼저 해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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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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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울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사라지는 서울이 아니라, 사라진 서울이다. 바로 예전의 서울이다. 서울은 매년 가도 그 전과 같지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아마 저자의 사라진 서울도 이런 감각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서울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공항으로 가는 첫 느낌에서 시작한다. 이른 새벽 비행기를 타러 난생 처음 대학 2학년 초 무렵 공항으로 가는 길에 까만 한강변 위로 수많은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쉴새없이 이어지는 차량들... 그 불빛... 그 속에서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희망이었다. 앞으로 내 청춘의 미래에 그런 불이 켜지리라는 희망... 그리고 그곳에서 나도 저 불빛 중의 하나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 말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 희망은 퇴색해지고 고된 서울살이를 통해 느낀 건 서울은 다시 가고는 싶지만 살고 싶지 않은 곳이 됐다. 그래도 저자처럼 그 시대 사라진 서울이 그립기도 하다. 군데 군데 그림이 들어간 이 에세이는 그런 그리움을 간간히 불러일으킨다.

언제였더라....대학 졸업 후 첫 면접을 보러 광화문과 종로 사이를 헤메던 일, 그리고 누군가에게 일의 괴로움을 털어놓으며 피맛골 뒷편에서 생선 정식을 꾸역꾸역 먹던 일, 집 값을 아끼느라 들어간 반지하가 폭우로 인해 물에 찬 일 등.... 물론 그런 암울?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입사 소식을 전해 들으며 가슴 뛰던 일, 그 일은 내가 인사동 뒷길을 걸을 때 일어났다. 온통 은행잎이 거리를 덮던 그 해... 인사동 골목 한 편에 위치한 베이커리에서 차가운 샌드위치를 씹으며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그때 그 거리가 어찌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아직도 내 기억에 각인되어있다.

시간이 날때마다 들렀던 서울대 병원 뒷편의 창경궁... 그리고 그 위의 성곽길 까지 ....

가끔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가던 뚝섬 한강길... 고된 일과 뒤에 나만의 공간을 찾으러 잠시 들렀던 도산공원...

모두 지금의 나에게는 사라진 서울이다.

내가 아는 서울이, 그 시절의 서울이 이렇게 사라질 줄 알았다면 그때의 나는 걷고 또 걸었으리라...

하지만 덜 걷고 덜 보고 덜 나선 덕에 내게 있어 서울의 기억은 그리 풍족하지는 않다.

모든 공간, 모든 기억.... 과연 온전한 것이 있을까?

퇴색하고 미화되는 공간의 시간과 기억들....

그리고 난 지금 내 주변을 돌아본다. 언젠가 이 길도 사라지겠지... 그리고 난 아마 그리워하겠지...

더 열심히 보고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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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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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미인 사관학교로 정평이 나와있고 인터넷에 베네수엘라를 쳐보면 온통 미스 00대회 출신 사진이라든지, 지폐가 거리에 흩날리는 사진들 뿐이다. 스페인 여자의 딸인 저자는 1982년생으로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기자이다.

나라를 잃으면 국민도 없다. 그 말이 이 글을 읽으면서 실감이 났다. 극 중 주인공 아델라이다는 자신의 이웃 여자의 딸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스페인행 비행기를 탄다. 나라를 떠나면서 그녀는 말한다. "좆같은 나라, 다시는 나를 못 볼거다." 그리고 빛으로 나오면서 그녀는 다시 한번 속삭인다. 카라카스 ,그곳은 영원히 밤일 것이라고 말이다. 한 나라를 지탱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그곳의 선량한 시민들일까? 아니면 무력으로 진압하는 폭력집단인가?

소설 속에서 시위대들은 처참히 짓밟히고 죽어간다. 그 죽어가는 모습 역시 끔찍하다. 아델라이드와 결혼할 사이였던 사진기자는 누군가 그 목을 갈라 그 갈라진 목 사이로 혀를 빼서 죽이고, 한 밀고자 남성은 자신의 목을 손을 들고 그 자신의 고환과 음경을 물고 있다. 어느 것이 더 끔찍한 지 서로 서로 대결하는 듯하다. 그들은 이미 인간이기를, 아니 더 나아가 짐승조차 되기를 포기한 듯하다.

거북이 파이를 먹으면서 그 거북이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생각하기 싫어하는 아델라이다... 극 중 아델라이드의 말처럼 스테이크 한 덩이를 얻기 위해서 누가 어떤 칼로 소의 몸을 가르는 지는 애써 생각할 필요가 없다.

여기 나와 있는 베네수엘라의 현실도 그러하지 않은가? 미녀들의 천국 속에 그 안에 있는 것은 버러지가 그득하다. 미신을 믿는 이들은 죽은 이들의 뼈까지 도둑질해간다. 정말 좆같은 나라다. 이런 나라가 국가라고?

세계 제일의 석유매장량을 가지고 있으면서 과연 그 혜택은 누구의 아가리에 쳐 넣고 있단 말인가? 독재가 무력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미화될 수 있다면 그 무력을 진압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또 다른 무력일까....

여기서 보안관 여자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를 위해 일하면서 스스로는 생필품을 빼돌려 돈을 챙긴다. 썩은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은 선량한 시민들의 시위나 투쟁이 아니다. 그 권력이 바로 썩었기에 그 내부에서 무너지는 것이다.

아직 베네수엘라의 사정은 나아지지않았다. 하지만 거기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사랑하고 아이들은 태어난다. 그것이 너무 불행이다. 왜 인간은 (고통받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필요한 생필품을 자국에서 구할 수가 없어서 국경지대인 콜롬바아까지 걸어서 간다고 한다.

권력의 탐욕의 끝은 스스로의 멸망만이 아니라 주변까지 병들게 하는 것에 있다. 그 끝이 무너지는 것은 머지않아 보이지만 대다수 선량한 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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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4
알리나 브론스키 지음, 송소민 옮김 / 걷는사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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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이 넘은 노인 바바 두냐의 이야기...

자신이 하나의 원자로라면 어떨까? 온 몸에서 방사능이 나오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면 말이다. 여기에 바로 그 사람들이 있다. 방사능에 피폭당한 사람들, 바로 체르노보 사람들이다.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그 중심에는 바바 듀나가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 저기서 현재 진형형인듯하다. 일본이 센다이 지역이 바로 그 예이다. 그 쪽에서도 떠난 사람들이 되돌아와서 자신들만의 군락을 이뤄어 살고 있으니 말이다.

바바 듀나가 체르노보를 떠날 수 있게 만든 데에는 어떤 사건, 한 남자의 죽음이 존재했지만 더 나아가 이것은 아이를 지키기위한 바바의 결심이기도 했다. 바바에게는 손녀가 있다. 그녀에게는 아버지를 따라 죽음의 땅까지 온 어린 소녀가 남같지 않게 느껴졌다.

어느날 바바는 손녀의 편지를 받는다. 독일어인지 여타의 외국어인지 그녀는 읽지를 못한다. 손녀 라우라의 편지를 읽기 위해 여기 저기 알아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딸을 만난 후 막상 그 편지가 영어로 쓰였다는 걸 깨닫고 이제 영어를 배워서 직접 읽으려고 결심한다.

한번도 손녀를 본 적도 없고, 태어났다는 딸의 말만 들었지만 바바에게 희망이 있다면 바로 라우라를 만나는 것일 테다. 비록 체르노보에서 망자들과 대화하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녀에겐 10살 어리지만 통하는 이웃인 마르야가 있고, 허약하지만 보살펴주고픈 이웃 페트로프도 있다. 바로 그 이웃들 덕에 바바는 방사능으로 인해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 체르노빌에서 살 수 있었다. 물론 그녀에겐 아끼는 정원도 있고 집도 있지만 정작 그녀가 그곳에 살도록 힘을 준 건 바로 이웃들 아니었을까? 죽음의 땅에 기꺼이 함께 할 사람들 말이다.

자연이 오염되면 가장 피해가 심한 건 바로 아이들이다. 새로 자라나는 생명이다. 여든이 넘은 바바 두냐에게는 손녀 걱정이 제일 크다. 손녀를 위해서 깡통에 돈을 모으는 바바의 모습에서 우리네 시골 할머니의 정이 생각난다.

전혀 다르지 않다. 국경을 넘어서도 내리사랑은 왜 이리 비슷한 모습인지 모르겠다.

끝까지 라우라의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난 바바가 영어를 배우고 그 편지를 읽었으리라 생각된다. 유일한 걱정은 읽기도 전에 편지가 바래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그녀는 해낼 것이다.

다시 체르노빌로 돌아왔으며, 교도소에 있으면서 베갯잇 614개를 재봉했으며, 이웃 마르야와도 재회했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왠지 항상 체르노빌에 있을 것같다. 에브토키야 아나톨예브나로서가 아니라 바바 두냐 로서 말이다. 그곳에서도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니까... 비록 눈 한쪽이 없는 고양이가 태어나는 곳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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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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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해야한다. 노력해야 잘산다. 열정을 가져야한다. 등 등 이런 말은 어릴 적 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미 그 노력에 벌써부터 지친 기분이다. 내가 그런 기분이 들때 누군가는 이런 책을 썼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

학창시절에 난 이런 아이였다. 시험이 끝나고 다음 시험 시작되는 종이 울릴때까지 참고서를 손에서 떼지 못했다. 설마 그때 잠깐 본 것이 시험이 나올리 만무하건만 그냥 왠지 불안했다. 시험이 끝날때까지는 잠시 잠깐의 순간에라도 종이같은 뭔가를 펼쳐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 아무것도 안하는 친구도 있었다. 웃고 떠들고...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그 친구가 더 좋았다. 친구의 여유로움이 난 부러웠다. 시험기간에도 맘껏 소설책을 읽을 수 있고 시험을 봐도 그다지 성적이 떨어지지않는 머리가 좋은 친구가 말이다.

어쩌면 나는 노력에 집착을 했던 것같다. 정확히 노력이란 것이 무언지 모르면서 그냥 그렇게하면 된다고, 그렇게 하니까...하는 여타의 이유로 열심히에만 집착해 온 것이다.

살면서 깨닫는다. 이유없는 열심보다는 이유있는 게으름이 훨씬 더 현명함을 말이다.

책에서 등장하는 프티라는 줄타기 선수는 이런 말을 한다. "난 줄 위에서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러기엔 너무 바쁘다." 그렇다. 두려움은 행동하지 않는 데서 온다. 행동하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진다. 만일 그가 그 외줄에서 생각이란 것을 한다면 그는 바로 떨어질 것이다. 줄 위에서의 집중만이 그를 살게한 것이다.

흡사 비슷한 예로 산을 오르는 산악인은 그 산이 거기있어서 오른다고 했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르고 싶은 산이 바로 앞에 있으니 오를 뿐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과연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포기하기 위한 오만가지 이유가

떠오를 것이다.

생각하면 그냥 하는 것, 그냥 계속하는 것이 답일 때가 있다. 이유는 나중에 찾아도 늦지않는다.

어쩌면 하고싶은 것 역시 지금 그냥 하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시간이란 것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말이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 노력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양면의 감정이다. 이제 그 둘을 잘 다스려가면서 삶에 보다 여유를 두면서 잘 살아가야겠다. 노력해도 안된다고 투정하지말고 할 수 있는 일을 그 상황에서 그냥 하는 것... 내가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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