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기 연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다. 자기 연민이란 자기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한다. 자기 연민이 지나치면 움추려들게 되고 대인관계 역시 소극적으로 변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자기 연민이 지나쳐 속이 쓰린 사람이었다. 왜 나만 이래야해? 왜 쟤는 되고 난 안돼? 왜...왜...왜....
그런 연민의 파도가 몰려올때 난 어찌 할바를 몰랐다. 하루 종일 잠을 자도, 배가 터지게 먹어도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겁이 났다. 난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몰랐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자신을 막내딸처럼 돌봐달라고...... .
하지만 돌보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결국 스스로와 화해하지 못한 채로 세상 가장 어색한 친구가 된 채 어른으로 성장했다. 이제 어른이 된 나에게 내 속의 아이가 말한다. 나와 같이 놀아달라고...외로웠다고... 자기랑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달라고...
난 나 자신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나에게 물어봐주기로 했다. 세상 그 누가 나에게 다정한 말로 위로해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에게 물을 수 있었다.
" 00야, 너 뭐하고 싶니?" " 00야, 너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00야, 우리 오늘은 이런 걸 같이 해볼까?"
내 몸이 젊을 때 몰랐던 사실을 내 몸이 오래되어 삐그덕 거릴때 느낀다. 내 속의 아이를 말이다. 그 안에 조그맣고 소심하게 웅크리고 상처받아 있는 아이를 느낀다.
이제 나는 그 아이를 안는다. 끌어안는다. 다시 또 끌어안는다. 갈비뼈가 아프도록 안는다. 아이가 느껴진다. 비명을 지른다. 좋아 죽겠다는 비명을 지른다.
우리는 모두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간다. 그 길은 누구에게는 고속도로가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시골길이 될 수도 있다. 그 누구에게는 자갈만 가득히 펼쳐진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종착점은 하나이다. 어차피 나중에 종점에서 만나게 된다면 그 길을 조금은 즐겨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를 다 소진시키고 없애고 열심히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제대로 사는 것이 바로 인간됨의 길이다. 짧은 생을 살다가도 그 안이 꽉 차 있는 삶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예수가 그러했고, 윤동주 시인이 그러했고, 또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도 그러했다.
이제 난 내 안의 아이를 혼자 두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마지막은 그 아이와 함께 할 것이기에 말이다.
저자는 암투병 이후 스스로를 돌봤고 극복했고 또 이렇게 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무엇으로 나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돌볼 수 있을 지 진지하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