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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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사실... 고양이가 다스렸어도 이 세상은 더 나았으리라... 왠지 그런 씁쓸한 생각이 든다. 적어도 고양이는 스스로를 멸망시킬 무기를 개발하는 것에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허비하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고양이 바스테트가 써내려간 위대한 모험사... 인간의 역사로, 인간의 승리의 역사로 기록되어지는 것을 막기위해 나탈리를 이용해서 바스테트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아마 그것이 <행성>일 것이다. 거대한 고양이 대 서사극이다.

얼핏 보기에 <행성>은 고양이의 대표격인 바스테트와 쥐의 대표격인 티무르의 전쟁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나온 쥐 티무르는 바로 인간에 의해 희생당한 동물의 대표격이다.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한 동물들이 하물며 실험쥐뿐이랴... 먹기위해 기르는 닭, 소, 양 부터 실험을 위해 하루 하루 살아가는 개, 원숭이, 토끼 같은 동물도 있고, 지렁이, 초파리 등 각종 작은 벌레들은 연구실에서 수도 없이 죽어간다. 아마 쥐의 대왕 티무르는 이 모든 희생당한 생명들의 대표격일 것이다. 그들의 고통은 행성을 날려버리고, 인간들을 모조리 멸망시키고도 남을 분노에 버금갔다.

티무르가 마지막에 고양이 바스테트에게 요구했던 그것...바로 그 분노... 자신이 고통당한 만큼 너도 견딜 수 있나..시험을 당해보라는 것...왠지 고양이 바스테트에게서 예수의 느낌이 나는 것은 왜 일까? 인간에 대한 속죄의식... 그 의식은 고통이 기반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그 의식은 고통을 준 가해자가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가해자를 대속하는 대속자가 받는다. 고양이 바스테트는 인간의 대속자였다.

삶에의 의지를 상실한 인간들은 죽음을 예감하고 마약에 빠져든다. 마약은 일시적으로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여 삶의 고통을 잊게하지만 그 효과가 짧다는 단점이 있다. 더 강한 자극을 위해서는 더 강한 약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약물의 효과가 멈춘다면 고통은 그 전과 다르다. 참을 수 없는 지독한 고통이 몰려올 뿐이다. 인간들은 고양이 바스테트에 비하여 너무도 연약하고 연약했다. 위대한 고양이 바스테트... 그는 기지를 발휘한다. 하지만 스파이 폴을 이용한 교란작전은 엉뚱한 쪽으로 작용해서 오히여 티무르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게 되고, 티무르는 바스테트에게 억지스럽고도 고통스런 제안을 한다.

<행성>은 정말로 극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인간이라는 족속은 영원히 이해불가다. 결국 고양이 바스테트는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기로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 승자가 인간이 아니라면? 어찌 기록을 할 것인가... 바스테트는 집사의 도움으로 역사를 쓰기로 한다. 그리하여 위대한 고양이 바스테트의 상이 뉴욕 한복판에 세워질 것이다.

바스테트가 인간이 개발한 제 3의 눈을 통해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왠지 판에 박힌 지식 그 자체만은 아니었을 것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위대한 여정을 막대한 희생을 감수해내면서 치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식너머의 그 무엇... 앞으로 인간은 바로 그것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바스테트의 길을 다시 되짚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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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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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 이원복 옮김 | 소담출판사

아주 유명한 영화나 뮤지컬이나 소설이나 등 등은 우리를 착각하게 한다. 바로 그것의 원작을 안다고, 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잘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 그 착각은 아마 너무 유명해서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지 않아도, 읽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고 생각한다.

여기 [오페라의 유령]도 내겐 바로 그런 책이었다. 읽었다고 착각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막상 보니 난 이 원작의 오십 프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설은 흡사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미녀와 야수] 또한 떠올랐다. 외모로 인해 불행해진 남자들... 프랑켄슈타인과 오페라의 유령은 비극, 미녀와 야수는 결국 야수가 미남으로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결국 미남으로 환생하지 않는다면 그 끝은 비극이라는 것이다. 남은 생을 홀로 외롭게 보내든지 아니면 세상으로 나와 처절하게 죽든지...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한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도 오페라의 유령 속 에릭도 바로 두번째 삶을 선택했다. 외롭게 홀로 늙어가는 대신 세상과 싸우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무고한 죽음이 있었지만 그들을 온전히 탓하기도 힘든 일이다.

에릭은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거대한 왕국을 지어서 사는 숨어있는 존재이다. 그를 세상 속으로 이끈 여인은 바로 크리스틴 다에... 그녀의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는 분명 그에게는 유혹이었다. 그는 크리스틴에게 음악의 천사로 다가온다. 후에 오페라의 유령이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지만... 에릭은 부모에게도 세상에게도 거부당한 존재이다. 아이가 너무 못생기고 끔찍하다고 어느 부모가 아이에게 가면을 선물할까? 아마 이건 너무 극단적인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에릭은 외모만 제외하면 너무도 완벽하거늘...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크리스틴을 라울 자작에게로 보낼때...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바로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에릭이 죽을때까지 간직하게 되는 금반지...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지로 인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은 바로 그에게는 못 다 이룬 사랑이었고, 빛이었고, 크리스틴 다에였다. 그를 세상으로 나오게 한 빛... 사실상 그 빛이 바로 그를 죽음으로 만들었지만 그는 그 죽음까지 받아들였던 것이다.

에릭을 생각하면 너무 안쓰럽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얼굴을 감추려했다. 보지말라고, 절대 자신을 쳐다보지말라고... 아...슬프다.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본 사람이라면 아마 알것이다. 외모는 흉측할 지라도 그 속에 숨겨진 눈빛만큼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눈빛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면의 존재가 외적으로도 빛나는 마술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외적인 모습을 가꾸기보다는 내적인 모습을 가꾸기에 열심이겠지.... 아... 그런 마법같은 세상이 온다면... 상상만으로도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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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 살인자의 성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5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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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자의 성모

페르난도 바예호 | 송병선 옮김 | 민음사

시카리오...청부살인자를 의미히는 말이다. 어떤 면으로는 생소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이제 종종 볼 수 있는 단어이다. 특히 영화를 통해 나에게 <시카리오>는 익숙하게 다가왔다. 학습된 결과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콜롬비아로 대표되는 나라는 거대한 마약 조직이 있는 국가이고, 그 나라의 최대 수출품 중 하나가 코카인이라는 사실은 무척이나 비극적이다.

페르난도를 따라서 콜롬비아 메데인 곳곳을 탐험하는 일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의 젊은 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알렉시스... 언제 총이 날아들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곳들을 화자는 그야말로 죽기위해 다닌다. 매일 매일 그를 위협하는 자살의 유혹을 친구삼아서 말이다.

시카리오로 활약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소외된 집단,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자들, 어린 나이에 사회를 알게된 어린 가장... 한마디로 그들은 젊었고, 치기 어렸고, 아직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모른다는 것...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아니면 남보다 잘 살기위해서 누군가를 능히 죽일 수 있는 기술을 키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는 것...

어느날 무료하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그 속에 다시 본 테러리스트들... 젊은 살해범들... 고질적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의 역사를 다룬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다시 보게 된 뮌헨 테러의 실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자국의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 이스라엘... 같은 피의 인간을 무차별로 죽이고 그 시체를 능욕하는 테러리스트들, 그리고 어설픈 쇼로 일관하여 결국 인질로 잡힌 선수들 모두 몰살케한 독일 경찰관들의 무능한 대응... 이스라엘은 뮌헨 테러의 장본인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적으로 보고 이에는 이, 살인에는 살인으로 갚아줬지만 어느날 거기에 가담하지않은 평범한 민간인이였던 한 모로코 가장을 살해함으로 신의 분노 프로젝트를 끝내게 된다. 누군가를 죽이면서 양심을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마음의 단단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분노였을까? 아니면 두려움이었을까?

소설 속 등장하는 청부살인자 알렉시스의 마음 속에는 분노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두려움이란 바로 자신이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것... 스스로 죽기 전에 먼저 총을 뽑아야한다. 그의 두려움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바로 상대보다 총을 늦게 뽑을 지 모른다는 것... 먼저 죽이지 못하다는 것 말이다.

다만 여기서 그를 사랑하는 페르난도는 다르다. 그는 삶에의 희망을 못찾는다. 오히려 그의 연인 알렉시스를 보면서 그는 희망을 찾는다. 그의 어질어질한 삶, 그의 위험한 삶, 가감없이 피를 부르는 젊은 손 마디 마디에서 페르난도는 생의 활력을 찾는다. 페르난도에게서는 분노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분노는 이미 알렉시스가 대신 표출해주고 있음으로 그에게는 애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이 남는다.

콜롬비아 역사에 대한 비극적인 소설... 희생되는 젊은 청년들... 페르난도가 그토록 바라는 그의 어린시절 속 메데인의 모습, 사바네타의 모습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일까? 소설을 읽은 후 페르난도의 나라가 궁금해졌다.

* 소설 속에서 주인공 화자는 '나'로 나오지만 나름 저자로 추측하고 글을 썼습니다.


*선물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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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고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인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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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고삐

프랑수아즈 사강 | 김인환 옮김 | 페이퍼로드

흔히들 우스개소리로 이런 말들을 한다. 내가 월 몇백만 매달 들어왔어도 저런 인간과는 안산다... 내가 그런 능력만 있어도 혼자 산다 등 등 .... 아마도 세월의 고단함과 결혼생활의 지속성이 돈이라는 족쇄를 못 벗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할 법한 말들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참고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이혼을 무슨 밥먹듯이 한다. 등등 현 세태를 걱정하고 안타깝게 보는 기성세대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지금은 노인들의 이혼률도 예전보다 무척 늘었다고 한다. 전에는 무턱대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참고 살았는데, 아이들도 다 큰 현재는 혼자 즐기고 살겠다는 심정이다. 다 늙어서까지 권위적인 가장의 수발을 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 가엾다면서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성으로서 경제적으로 얼마가 꾸준히 주워진다면 남성 작가들에 버금가는 훌륭한 여성 작가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이 필요한 의식주가 충족되면 그 나머지는 자기실현, 자아 발달에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내 생각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어느정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가정 주부도 일정한 자기 수익이 있어야한다. 그것은 생활비라는 이름을 넘어서서 있는 것이다.

여기 한 부부가 존재한다. 바로 뱅상과 로랑스... 로랑스는 부유한 상속녀이고 뱅상은 가난하고 무명의 음악가이다. 로랑스는 뱅상이 여기에서 더 발전하고 유명해지는 것을 바라지않는다. 결혼 초기에는 부드러웠던 로랑스...하지만 어떤 불안 때문이었을까? 로랑스는 뱅상을 기르는 강아지 취급하면서 돈으로 회유하고 달랜다. 뱅상은 자기의 음악적 성공을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고 그녀가 주는 용돈을 타서 쓴다. 뱅상 역시 아내가 자신을 인형 취급하고 돈으로 고삐를 죄일때마다 그녀의 지인들을 만나서 바람을 핀다. 내 생각엔 뱅상은 아내를 사랑했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그녀의 그런 성격, 즉 뻔뻔하고 격분하고, 그런 저속함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그녀의 뻔뻔함, 속물적인 성격은 폭주했다. 더 이상 뱅상조차도 감당이 안될 정도로 말이다. 그는 공포를 느낀다. 물론 여기에는 뱅상의 개인적인 성공도 한 몫했고 말이다.

사강은 말하고 있다. 진실은 도달할 수 없지만 욕망할 수 있는 하나의 것이고, 작가는 하나의 강박을 이야기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사강이 말하는 강박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마 돈과 사랑이 아닐까....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말하는 사강.... 그녀에게 사랑이란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일까? 그러기에 그토록 욕망하는 것은 아닐까....

로랑스가 뱅상을 통제했던 황금의 고삐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로랑스는 한가지 착각한 것이 있으니...바로 뱅상이 스스로를 그 고삐에 자신을 묶은 것이지, 결코 로랑스 자신이 고삐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스로 묶은 자, 스스로 푼 것뿐이다. 그러기에 언제든 다른 고삐가 나타나면 스스럼없이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고삐의 주인은 바로 무엇이 될까.... 소설 마지막, 뱅상이 잊을까봐 계속 불었던 휘파람 속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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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 미사키 요스케의 귀환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6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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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미사키 요스케의 귀환

나카야마 시치리 장편소설 | 이연승 옮김 | 블루홀 6

"아무도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라" 소설을 읽는 순간 바로 이 문장이 떠올랐다. 정약용이 목민관을 교육하기위해 만든 <흠흠신서>에는 형법 제도를 어떻게 적용해야하는지 등에 관해 적혀있다. 그리고 그 법 적용이 올바르게 되었는지, 과도한 것은 없는지 항상 살피고 경계하라는 내용 등도 있다.

또 한가지 떠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알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으로 유명해 진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이다. 바로 악마는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에서 악마로 변한 알파치노는 세상의 법을 그의 것으로 할때 인간은 통제된다고 말한다. 바로 악마는 법으로 오는 것이다. 법을 통제할때 인간을 통제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악마가 먼저 알았다는 것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역시 난 놈은 난 놈인가...

소설 <합창-미사키 요스케의 귀환>의 주인공은 단연코 미사키이다. 그의 유려한 추리실력은 억울했던 아모를 살릴 수 있었다. 아모 다카하루는 사건을 취조하던 중 피의자가 죽는 일이 발생한다. 그것도 바로 그의 코 앞에서 말이다. 피의자는 그 자리에서 총을 맞아 사망했고, 아모는 의식을 잃었으며, 가까이 권총에는 그의 지문만 남아있었다. 누가 봐도 딱 억울하면서도 이상한 상황이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하는 미사키 요스케.... 그는 10년전 아모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자신의 유럽 투어 콘서트를 취소하면서 그를 도와주러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온다. 아마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이나 한 듯이 평온하고 절제있는 모습의 미사키.... 아...그의 이런 능력과 절제를 배우고 싶다.

아모의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않는다. 그의 사건뒤에는 바로 빅 픽처가 있었다. 그것은 오래전 발생했던 크레인 사망사고.... 대형 사건 사고 였음에도 애초 그 사건을 유발했던 운전자 헤이조는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무려 열여섯명이나 죽고 스물 아홉명이 부상당한 최대의 끔찍한 사건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 헤이조 사건을 맡았던 인물이 바로 아모였다. 아모는 아마 어떠한 룰을 가지고 사건을 맡았던 듯한데, 단순히 크레인에 부딪히는 사고로 그런 막대한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그 작은 실수라고 말하면 실수라고 할 수 있는 그 일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평생 갖고 갈 상처, 즉 억울한 죽음이 생겼다. 과연 책임은 누구인가.... 피해자는 분명 있는데, 거기에 나서서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형국.... 바로 대형사고의 진실이다.

법 적용은 과연 어떠해야할까... 정의로워야한다.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한다. 법 그 자체의 의미로만 따지면 억울한 사람들은 무척이나 많을 것같다. 소설 속에 등장한 크레인 사건의 유족들처럼 말이다. 다산이 그 옛날에 말한 삼가고 삼가는 것...흠흠신서의 정신...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정책... 그 모두를 다시 살펴봐야되지 않을까... 억울한 죽음은 그 자체로 절대 끝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 고리는 생각보다 끈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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