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자 수확자 시리즈 1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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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자 』​​

닐 셔스터먼 (지음) |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당신에게 만일 필연적으로 고통스러운 선택이 주어진다면 과연 당신의 판단은? 소설 [수확자]는 말한다. 누구를 죽일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죽임을 당할 것인가? 만일 당신이 죽일 수 없다면 다른 이가 당신의 목숨을 수확하러 올 것이다.

때는 미래이다. 인류가 일명 영생에 가까운 기술을 얻었고, 모든 것은 슈퍼컴퓨터인 선더헤드에 의해 조작되고 움직인다. 하지만 그 선더헤드가 하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인류를 죽이는 일이다. 그리고 인류는 자신들의 영생을 위해 필히 누군가를 없애야 한다. 인구는 적정하게 조절되어야 하므로 말이다. 수확자는 그런 신성한 임무를 하는 인간이다. 그들에게는 일명 타인을 수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리고 그 일은 신속하고 깔끔하게, 아무런 악의나 편견 없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 그 수확자의 성품에 딱 부합한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시트라와 로언이다.

세상에 정의롭고, 오히려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자가 누구를 죽이는 데 적합하다니... 어찌 보면 말이 안 되는 일지만 사실 한편으로 보면 그것처럼 옳은 것이 없다. 타인의 죽음에 공감하고, 그들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자는 함부로 수확의 칼을 들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서 복역 중인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자진해서 전쟁에 지원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러시아 정부가 그 살인마를 어찌했을지 모르지만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어찌나 소름이 돋는지... 그것은 자의든 타의든 인간을 무조건 쓰려버려야 할, 무차별적으로 없애야 할 고깃덩어리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쟁이라지만 도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민간인을 쏘지 말아야 하고, 항복하는 포로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 말이다. 소설 속 수확자들 역시 그런 부류가 있다면 그들은 절대 수확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인 것이다.

패러데이는 분명 스스로 규범을 지키면서 수확할 대상을 골랐고, 신중하게 그리고 빠르게 고통 없이 수확했다. 아마 그래서 패러데이의 눈에 시트라와 로언이 들어왔을 것이다. 정의와 도덕에 목마른 자들... 수확자의 임무에 의구심을 품는 자들.... 결국 패러데이의 곁을 시트라와 로언은 떠나게 되지만 이는 곧 더 큰 시련을 의미하게 되는데...... .

아... 과연 시트라와 로언은 다른 수확자인 퀴리와 고더드 밑에서 제대로 된 수련?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시트라와 로언에게 수확의 임무가 부여된다면? 아.... 선더헤드라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묻고 싶다. 선더헤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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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전, 별에서 온 영웅들의 이야기
김효민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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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전, 별에서 온 영웅들의 이야기』​​

김효민 (지음) | 뿌리와 이파리 (펴냄)

난 평소 영웅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요즘은 이 영웅들이 진화를 거듭하는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사실상 외계에서 온 기운이라고 할만한 류의 힘을 타고 나는 듯하다. 얼마 전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환혼] 역시 그런 힘을 지닌 영웅들의 등장한다. 아... 앞으로 우리나라에 이 영웅시대가 올 법한가? 만일 영웅이 난다면 나의 세계가 끝나기 전인 한 오십 년 안에 나왔으면 싶기도 하다. 음... 안 되나?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니까, 말년에 그런 난세의 운의 겪기는 싫으니, 영웅을 바라는 건 무리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영웅은 필요한 법이다. 세상이 항상 백 퍼센트로 완벽히 돌아간 적은 없으니, 영웅은 항시 언제나 모든 시대인들이 바라고 또 바랬던 그 무엇이었다.

당돌한 영웅들의 이야기인 [수호전]의 시기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아마도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 사이에 지어진 이야기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아마 몽골 치하에서 고통받은 한족들이 영웅 출현을 갈망한 시점인가? 전설의 책 [수호전]은 현대에 나오는 많은 영웅들의 이야기, 무협지에 실린 모든 이야기들의 시초가 된 것이리라...... .

[수호전]을 읽으면 필히 진짜 같다. 이 말은 이 글의 인물들이 모두 살아있는 전설의 실제적 이야기에 가깝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상 [수호전]은 불과 5퍼센트의 사실에 95퍼센트의 허구로 이루어져 있다고 평가받는다고 하니 그 믿을 바는 자유일 따름이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 반대로 믿고 싶기도 하다. 인물이 정말로 실제적으로 그려졌고, 왠지 수호전이 그냥 소설로만 취급받아서는 안된다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방대한 수호전을 각 장면 장면을 돋보기로 보듯이 나름 장을 나눠서 설명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장은 제6장으로 호환들과 술, 음식, 연회 부분이다. 수호전에는 술이 등장하는 장면만 600여 곳이고, 술 주가 2000회 언급될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술 한 푼을 먹으면 한 푼의 힘이 나고 열 푼을 먹으면 열 푼의 힘이 난다는 노자심의 말... 아... 역시 그 당시에 술이라는 것의 존재는 이런 힘의 원천이기도 했구나 싶은 것이다. 현재는 술이 유흥의 대명사지만 그 시대에는 술이라는 존재가 힘을 일깨우는 사물로 여겨졌다.

영웅들의 이야기 [수호전] 속의 영웅들은 이미 세상을 달리했지만 그 이야기들의 끝은 언제나 권선징악이었다. 영웅이 아닌 자가 힘을 가질 때 세상은 더욱 악해지고, 가난해졌다. 정말 영웅들이 필요한 힘을 갖는 그런 시대가 속히 도래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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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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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 양윤옥 (옮김) | 소담출판사 (펴냄)

뉴스를 보기가 힘든 요즘이다. 언제나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 무슨 사건이 더 끔찍한 지를 겨루는 것같다. 그 모든 것에 감정이입하고 분노하고... 뉴스를 접하는 것은 너무나 괴롭다. 그렇더라도 외면한다면 왠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왔다 갔다 감정은 시계 추처럼 요동친다. 얼마 전에도 충격적인 기사를 봤다. 초등학생 아들을 혼자 살게 한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아이는 혼자서 학교를 다녔고 밥을 먹고 씻었다. 아버지는 주말에만 자녀를 보러 왔다. 아이의 희망은 금요일 저녁이었으리라... 하루만 버티면 아버지가 오니까 말이다. 반면 일요일 저녁부터 지옥 같은 어둠이 시작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어쩌면 우리 사회가 소설 속에 나오는 렌지 같은 한밤중의 아이를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부터 한 아이는 마을 전체가 키운다고 했는데, 이제 그 마을이라는 시스템, 아이들을 지켜줄 울타리에 대한 공론을 지속해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미 늦었지만 말이다.

히토나리의 소설 [한밤중의 아이] 속 렌지는 나카스라는 후쿠오카시 도심부에 자리한 길쭉한 배 모양의 섬에 산다. 이곳은 특히 환락 시설이 밀집해 있고, 나카강 산책로 주변은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룸살롱, 클럽, 러브호텔 등등의 시설들이 돌아가지만 이곳에 사는 상주인구는 7백 명이 되지 않는다. 또 높은 주택의 가격으로 인해 외곽에 집을 얻고 아이가 있는 호스티스 엄마들은 일터와 가까운 나카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다. 아이는 그곳에서 한밤중까지 엄마를 기다리면서 보낸다. 주인공 렌지는 환락가에 홀로 던져진 채 살아간다. 아이는 차라리 어린이집에서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만 그의 엄마 아카네는 그를 호적에도 올리지도 않아 그 어느 혜택도 렌지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렌지는 모두가 잠든 새벽에 폭력적인 집을 몰래 나와서 거리를 걷는다. 그에게 나카스의 사람들은 한밤중의 아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렌지의 유일한 꿈은 나카스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야마카스 축제에 신여를 매는 것이다. 렌지는 나카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카스에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 렌지는 과연 그 축제에서 다시 사랑받으면서 신여를 메고 달릴 수 있을까? 나카스의 신이 렌지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이 세상의 모든 렌지들은 보호막이 필요하다. 그들의 보호자가 그 역할을 못한다면 사회가 나서야 한다. 아이들은 그 자신들이 스스로 원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한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 만일 아이가 불행하다면 그것은 바로 그 사회가 불행한 것이다. 아이의 얼굴은 바로 그 국가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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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은 여인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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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은 여인』​​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 이창실 (옮김) | 1984BOOKS (펴냄)

평생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서만 사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순간 답답한 생각이 들지만 그 시대가 교통편도 잘 발달되어 있지 않고 다른 장소의 소식을 전해 줄 매체 등등이 없다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불편 없이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풍경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욕심이란 항상 더 더를 외치지만 더 이상 잃을 것도, 가질 것도 없다면 오로지 만족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흰옷을 입은 여인]은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에게 바치는 기록이다. 그 기록들은 에세이지만 한 편의 시처럼 읽히고 낭독되기도 한다. 휴지기가 있고, 공백이 있고, 쉼이 있다. 그렇게 독자는 쉬엄쉬엄 한 템포 고르면서 보뱅이 만들어낸 언어의 유희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보뱅만의 언어로 채색된 한 여성이 있다. 보뱅의 뮤즈이자 성녀인 에밀리 디킨슨... 보뱅의 손에서 그녀는 다시 태어난다. 이미 죽었지만 영원히 죽지 않는다. 에밀리의 장례식에서 탄생된 글의 시작은 다시 그녀의 부고로 끝을 맺는다. 누구에게는 신문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죽음의 소식이지만 누구에게는 일면지에 나와있는 대서특필이다. 보뱅이 기록한 순간의 느낌, 그 찰나 속에서 에밀리는 살아있다.

에밀리 디킨슨은 평생 매사추세츠 애머스트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동네를 잘 돌아다니지도 않아서 그녀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니... 그녀는 조용한 은둔자이자 철저한 소외자였다. 하지만 내면에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여성이었다.

그녀가 장미 도둑을 위해서 남몰래 장화를 준비하고 그 속에 꽃들을 가득 넣은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그 아이는 그 꽃들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녀는 조용한 관찰자이자 행동가였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쏟을 줄 알았다. 그래서 생전에 그토록 많은 시를 남겼고, 그토록 많은 편지를 남겼던 것이리라...... .

보뱅이 찬사한 에밀리 디킨슨... 그녀의 시를 이번 기회에 읽어보고 싶다. 아마 이 책으로 인해 많은 시인들은(죽거나, 혹은 죽지않은) 자신이 보뱅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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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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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유키 하루오 (지음) |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 (펴냄)

죽는다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죽어야 한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어쩌면 나 자신도 수긍해서 닻감개를 돌렸을지도 모른다.

231 페이지

소설 방주는 유키 하루오의 센세이션 한 작품이다. 숨은 범인 찾기에 대한 퍼즐도 흥미롭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죽을 만한 자가 누구인가이다. 주인공인 화자 슈이치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 소설은 흡인력도 대단함과 동시에 묵직한 주제를 독자의 가슴에 던져놓는다.

여섯 명의 등산 동아리 멤버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슈이치는 그 자리에 사촌인 쇼타로를 대동하고 참석한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에서) 그 후 그들은 유아의 제안으로 지하 건축물을 찾아가기로 하는데... 하지만 금방 갔다가 돌아올 줄만 알았던 그곳이 지진으로 인해 폐쇄되면서 필히 누구의 희생이 필요한 상황이 된다. 닻감개를 올린 후 작은방에 고립되어 죽음을 기다릴 단 한 명이 필요하다. 과연 희생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된다. 마땅히 희생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때마침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 과연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가? 그리고 닻감개를 올릴 희생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방주에 비견되는 지하 건축물은 이제 서서히 물이 차오른다. 과연 물이 차오르는 일주일 남짓 한 시간 안에 닻감개를 올릴 희생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자리에 적합한 사건의 살인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과연 그 희생자가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모두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가해자가 희생자가 되고, 그 희생자가 구원자가 된다. 이상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그 상황에 처해있더라면 누구를 지목할 것인가? 굳이 살인자를 찾지 않더라도 만일 어느 하나가 피치 못해서 희생되어야 한다면 모두들 누구의 손을 바라볼 것인가? 극 중 나오는 대사 중 죽는다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죽는 것... 가족이 없는 사람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 등등은 너무 비극적이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것조차 슬픈 일이고, 가족 또한 없다면 더욱더 가여운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회는 필히 그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한다.

얼마 전 홀로 사는 독거노인의 분신자살이 있었다. 의지했던 사람이 죽은 후에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지원금도 못 타고 결국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질러야 했던 노인의 자살... 혼자였다면 아마 슬퍼할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고립된 많은 이들이 비명을 지르지만 사회는 결국은 그들의 희생을 강요한다. 그 희생을 발판 삼아 성장한다. 계속된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그 가치가 떨어지는 폐지 등을 주우면서 말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노인 빈곤율이 1위에 육박하는 나라이다. 그 노인들의 죽음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자의 희생이라 할 수 있을까?

소설 방주를 읽으면서 느낀 또 다른 하나는 증오심이다. 그토록 증오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증오는 바로 자기가해이다. 남을 증오해 봤자 그 남에게 미치는 영향보다 자신에게 오는 영향력이 훨씬 더 큰 법이므로... 증오와 자기가해는 사실 한 끗 차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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