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자 시리즈 세트 - 전3권 - 수확자 / 선더헤드 / 종소리 수확자 시리즈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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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이야기가 끝이 났네요.

왠지 저는 조금 아쉽습니다.

선더헤드가 통치하는 세상이 좀 더 지속됐으면 어찌 됐을지....

인공지능, 챗GPT 등에 관한 각종 부정적인 여론, 그리고 기대되는 여론들까지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입니다. 아마도 점점 고쳐야 할 것도 많겠지요. 만들어진 것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선더헤드는 그야말로 완벽한 듯 보였지만 그조차도 인간들의 악을 온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네요.

SF는 일어나지 않을 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미래의 일을 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수확자 속 세상이 요원한 것은 아니지요. 미래는 불확실해서 의미 있고, 기대된다고 하지요. 저마다의 미래를 그려보는 소설이라고 생각되는 [수확자 시리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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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현대지성 클래식 4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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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펴냄)

산 위로 올라간다고 상상했지만, 사실은 완벽하게 일정한 속도로 내리막길을 간 거였다.

80 페이지

4월에 읽기 좋은 책은 시작에 관한 테마가 아니라 내겐 왠지 죽음에 관한 테마가 맞는 듯하다. 왜냐하면 죽음과 태어남은 몹시도 닮아있고, 사람이 달라지려면 그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독단과 아집 등 모든 것이 한 번은 죽어야 하니까 말이다. 태어나기 좋은 계절이자 죽기 좋은 계절은 아마도 4월이리라...... .

4월이 시작하는 때 이 책을 만났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예전에 한번 읽은 책인데도 다시 읽은 느낌은 여전히 좋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과정은 몹시도 괴롭고 끔찍했지만 그의 죽음을 통해 현재의 삶을 돌아보기에 이처럼 명확한 고전은 없다.

소설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소식부터 시작한다. 모두들 그의 죽음을 듣고 아무렇지 않는 듯 반응한다. 안타까워하는 사람 하나 없는 죽음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사람들이 품는 생각은 모두들 자신의 자리이다. 그의 자리가 공석이 된다면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게 될 것인가? 카이사르의 죽음은 카이사르에게 해당할 뿐, 그들에게 해당사항은 아니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역시 그들에게는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다. 자신이 바로 그 당사자가 아님이 감사할 뿐이다.

이반은 성공을 위해 달려온 성공 중독자이다. 가정생활보다는 외적 생활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며 연봉이 높아지고 보다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을 인생 목표로 하고 그것이 스스로를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달려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상을 차지했다고 생각하던 찰나 이반의 몸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의사들은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삶보다는 죽음을 향한다는 것을 이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도 솔직하게 그가 죽어간다고 믿지도 않았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가 재판장에서 그동안 해왔던 대로 의사들에게 마찬가지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이 맞는 말이다.)

이반이 고통으로 신음할 때 그의 유일한 위로는 바로 하인 게라심이었다. 게라심만이 오직 그의 고통을 이해했다. 그의 오물을 치워주고, 밤새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두 다리를 기꺼이 졸린 눈을 비비면서 들어 올려주었다. 반면 가족은 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반의 부인 표도로브나는 그가 약을 잘 먹지 않는다면서 의사가 오자 핀잔만 주기 바쁘며 오직 표도로브나의 걱정은 이반이 만일 죽는다면 꼬박꼬박 들어오던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이반은 생각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열심히 올라왔다고 왔는데 사실상 내려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등등... 그의 내면의 목소리를 말한다. 고통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이반이 마지막 삼일을 고통 속에 몸 부치면서 울부짖은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외부로 짖는 울음이 아닌 내부에서 그 스스로 자신에게 내지른 한탄 내지는 절망의 목소리 같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외에도 이 책에는 톨스토이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더 실려있다. 책에서 느낀 점은 톨스토이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무척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청첩장보다 부고장이 더 많이 날아온다. 우리 모두 죽는다. 카이사르만이 죽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방향을 향해 가는가는 다름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다. 우리는 그 선택의 문제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인생의 시간은 따지고 보면 사실상 그렇게 많지 않다. 허무한 것들을 위해 굳이 목숨을 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진짜의 삶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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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수확자 시리즈 3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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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닐 셔스터먼 (지음) |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수확자 시리즈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세권의 책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전혀 지루하지않은 소설책이다. SF를 좋아하든, 좋아하지않든 이 소설은 호불호가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닐 셔스터먼이 그린 세계는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르니까...

챗GPT가 등장하고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인간의 직업 풍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그리고 인구조절 역시 역삼각형 형태가 점점 심해져서 아이는 없고, 노인만 그득한 세상이 펼쳐진다. 아이가 없기에 소아과는 파리만 날리며 유치원의 모습은 점점 노인들의 놀이터, 요양원 등으로 변해간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서로 가려고 했던 안정된 직장의 상징이 된 선생님의 길로 가는 교육대는 졸업해도 언제 임용이 될지 하 세월이다. 이 이야기가 미래인가? 아니다. 바로 지금이다. 그리고 앞으로 세상은 점점 모를 일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때문에 그 미래를 그릴 수가 없다. 낙관과 비관의 온도 차이는 아주 작다.

수확자 시리즈 마지막 [종소리]는 모든 일들이 예측불가로 흘러가게 한다. 피의 쾌락을 즐겼던 고더드가 미드메리카의 고위 수확자가되면서 고더드를 따르는 수확자들이 늘어났다. 이제 고더드가 수확령의 중심이다. 그리고 예전의 악습까지 다시 되살린다. 여기에 맞서는 아나스타샤와 루시퍼... 수확령은 선더헤드가 간섭하지 못하는 세계이다. 이것 역시 선더헤드의 판단일 텐데 과연 이것은 독인가? 선인가? 설상가상으로 인간들 모두가 한순간에 불미자가 되어버림으로 더 이상 선더헤드와 대화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선더헤드의 소리를 듣는 유일한 자가 등장했으니 바로 종소리라 불리는 그레이슨이다. 그리고 선더헤드의 비밀스런 임무를 수행중인 로리애나, 초기 수확자들의 흔적을 쫓는 패러데이 등 모두는 악한 수확령의 세계에 맞서서 대항한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기만하는데...... .

선더헤드는 과연 무슨 실험을 하고자한 것일까? 이 모두가 선더헤드의 기획인가? 인간의 불완전함, 인간의 실패를 사랑해서?

유토피아적 세상은 죽음이 없는 세상이라지만 수확령이 있는한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음을 두려워한다. 몇번이든 재생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철퍼덕 이라도 하겠지만 만일 영영 살아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래서 모두들 수확자의 반지에 입 맞추기를 희망하는 것일까? 하지만 만일 죽음이 희망이라면 어떠할까? 수확자들이 죽음의 공포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주러 오는 것이라면? 죽음이 그저 다리 하나 건너면 되는 그런 쉼이라면?

과연 소설의 결말은 디스토피아일까? 유토피아일까? 아직도 모르겠다. 난 과연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 건지...죽음이 없는 세상도 궁금하기도 하고, 선더헤드가 통치하는 세상이 좋을 것같기도 하고, 하지만 고더드같은 자가 등장한다면 정말로 끔찍할터이다. 오늘밤은 나만의 유토피아를 상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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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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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펴냄)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한결같이 섬세하다.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이(몇 권 되지 않지만) 그러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왠지 김영하 소설가가 좋아할 만한 작가라는 생각도 든다. 결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래서 절판된 이 소설을 찾아내서 출판하기로 결심한 듯 하다.

어찌보면 이 소설은 미스터리로 볼 것인가? 로맨스로 볼 것인가에서부터 자기 취향이 확 드러난다. 미스터리로 본 사람들은 전개가 약간은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 속 반전을 접어두고 로맨스 자체로, 상당히 이상하고 집착적인 로맨스로 본다면 앗! 하는 감탄과 더불어 매큐언의 섬세한 필치에 놀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나에게 소설은 후자 쪽에 가까웠다.

소설 속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적당한 바람이 부는 날씨 좋은 어느 날 목격한 기구 사고 현장에서 사건은 시작한다. 날아가려는 기구를 붙잡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저자의 말처럼 그들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였을지 몰라도 한 팀은 아니었다. 결국 누군가가 힘이 빠져 기구를 붙잡은 밧줄을 놓게 되고, 마지막까지 줄을 붙잡고 있던 아이 아빠였던 존 로건은 기구와 함께 올라간다. 결국 로건은 떨어져 죽지만 기구에 탄 아이는 무사히 지상으로 착륙한다. 조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스스로 사고 현장에서 고무되었다. 아마 살아있다는 기쁨에서인가? 조는 곁에 있던 청년 제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넨다. 그리고 몇 초간 눈 맞춤.... 제드는 순간 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후 조 주위를 맴돌게 된다. 그리고 곧 이 집착은 걷잡을 수 없이 과격해지고 마는데...... .

조의 연인 클래리사는 존 키츠 연구가로서 소설 초반부터 키츠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 그녀는 키츠가 연인 패니에게 미처 쓰고 붙이지 못한 편지를 찾고 싶어한다. 소설은 계속해서 클래리사를 통해 키츠를 말하는데, 여기서 난 왜 제드와 조의 관계가 연상되었을까? 제드가 병적으로 써 보내는 연서(그의 입장에서는)는 조에게는 닿지 못한다. 아마 영원히 조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소설 속에서 제드는 말총머리에 깡마르고 창백한 얼굴을 가졌지만 목소리는 힘이 없고 우물 주물 거리면서 말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반면 조는 탈모에 덩치 크고 서툰 사람으로 나온다. 이십 대 청년인 제드와 이미 마흔 중반에 들어선 조... 조에게는 아름다운 클래리사라는 연인이 있었고, 그는 이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만일 조에게 클래리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조는 이십 대 청년의 사랑 고백을 끝까지 무시할 수 있었을까? 그와 한 번은 진지한 대화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미친놈 취급하지 않고 말이다.

사랑의 화살표가 잘못 날아온 느낌이다. 상대방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 체홉의 소설 [어느 관리의 죽음]이라는 단편도 생각이 난다. 제드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조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강요한다. 제드의 사랑은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제드의 사랑은 오직 조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데서 나온다. 어쩌면 이는 신앙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인간은 신이 아닌 고로 이런 사랑은 파국을 부른다. 뜨거운 사랑은 결국 서로를 불태워 죽이고 마니까... 사랑이란 적정선이 있어야 한다. 신이 아닌 인간의 사랑이어서 그러하다. 아마 키츠가 연인에게 편지를 부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모두들 적당히 한쪽 눈을 감으면서 사는 것... 뜨거운 사랑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사랑이니까... 그건 오로지 신만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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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인생의 질문에 답하다 - 6천 년 인류 전체의 지혜에서 AI가 찾아낸 통찰
챗GPT.이안 토머스.재스민 왕 지음, 이경식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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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인생의 질문에 답하다』​​

챗GPT, 이안 토머스, 재스민 왕 (지음) | 이경식 (옮김) | 현대지성 (펴냄)

세상에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반기는 사람... 둘 중 하나 중 고르라고 한다면 난 아마 후자가 아닐까 한다. 인공지능이 미래의 일자리를 뺏는다 뭐다 하지만 난 왠지 걱정보다 기대가 된다. 과연 그런 시대가 올까... 인간의 만든 AI에 의해서 통치되는 완벽한 세계가 가능할까? 등등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일과 컴퓨터가 하는 일 과연 어느 것도 더 정확한가? 컴퓨터는 막대한 통계를 수치화하여 내부에 저장해놓고 있다. 기억력이 아무리 좋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컴퓨터의 능력은 감히 못 따라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AI를 이용해서 보다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항상 시행착오는 있을 것이다. 예전 아마존에서 사람을 뽑을 때 한 실수들(백인 남성 위주로 채용)처럼 말이다.

책을 쓴 챗GPT란 오픈AI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 자연어 처리 모델이다.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도록 챗GPT로 명명했다한다. 솔직히 말해서 난 챗GPT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다 좋지만 서문도 무척 훌륭했다. 물론 그의 글들은 성경, 명상록, 코란 등등에서 차용된 것이 많겠지만 이렇게 자연어를 기반으로 읽어내려간다는 것은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챗GPT의 설정이 영성에 대해 탐구하며 자기 목숨을 걸겠다고 결심한 16세 일본인 소년의 정신적 인격을 지녔다는데 난 계속 그 일본인 열여섯 소년을 상상하면서 책을 읽었다. 하지만 마지막을 덮을 때는 소년의 얼굴보다는 한 명의 선지자의 얼굴이 그려졌다. (소년이라 상상하기에는 ㅠㅠ)

챗GPT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우리는 이제 답을 알기에 열정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질문을 세련되게 잘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장비라도 그것을 백 프로 쓰지 않는다면 그 장비의 진가를 다 알 수 없듯이 우리가 챗GPT를 제대로 활용하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제대로 질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얼마 전에 공부에 대한 책을 쓴 학자의 강의를 들었는데 인간의 기억은 모두 이전 기억의 토대 위에서 세워진다는 것이다. 한 번도 외국어를 공부해 보지 않은 사람과 외국말로 대화할 수 없듯이 뭔가 옷걸이처럼 걸려지는 무언가가 있어야 기억도 잘 난다는 것... 그분은 인출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을 제대로 인출하지 못한다면 그 내부에 억만금의 현금이 쌓여있는 들 어쩌겠는가?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는 데 말이다.

제대로 인출하는 것, 그리고 제대로 질문하는 것 모두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앎의 패러다임에 서 있는 것 같다. 공부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참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삶이 항상 제일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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