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9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이현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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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길』​​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 이현경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이탈리아 샤르데냐 섬에서 태어나서 그 섬을 주제로 여러 작품들을 써온 그라치아 델레나... 이 작가를 이번 흄세 시리즈를 통해 처음 만났다. [악의 길]이란 작품은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서 고치고 또 고친 작품이라고 한다. 개작을 한 이유는 현실적 인물과 구체적 상황 묘사를 해서 삶에 더욱 밀착한 소설을 쓰고자 함이었다니 그만큼 애정이 어린 소설일 것이다.

소설 [악의 길]에서는 명실상부한 주인공 남자인 피에트로 베누가 나온다. 피에트로가 맨 먼저 일거리를 부탁하러 노이나의 집으로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하는 서두는 그 자체로 몹시 인상 깊었다. 서두에서 파악되는 피에트로의 성격은 그 자체로 옹고집스럽고, 거침없이 말하고, 기어코 손에 넣고 마는 집념이 있는 것 같은 캐릭터였다. 흡사 요즘 디즈니 채널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카지노]에서의 최민식 같다고나 할까...

주인공 피에트로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표현한다. 심지어 그가 마리아 노이나를 사랑하는 방식에서도 그것은 드러난다. 엄연히 남편이 있는 앞에서 그녀에게 키스를 하는 도발을 보이기도 하는 피에트로... 어쩌면 그가 프란체스코에게 반감이 있든 없든 프란체스코의 운명은 그 날로 이미 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죄가 없는 프란체스코 로사나는 피에트로의 그녀인 마리아와 결혼을 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영원한 불행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고, 그런 참혹한 일을 저지른 피에트로는 그 즉시 검은 아가리 속으로, 즉 악의 길로 떨어졌다.

어쩌면 피에트로가 걸어가야 했던 그 길은 마리아로 인해 열린 것인 수도 있다. 그녀가 애초에 자신에게 구애를 한 피에트로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그녀 스스로의 마음조차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프란체스코는 희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리아는 피에트로의 마음을 그녀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시험을 했으며 피에트로를 사랑한 사비나에 대한 질투로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마리아와 피에트로, 그리고 감옥에서 만난 안티네라는 사내까지... 이 묘한 삼각관계는 델레나가 말하고 있는 악의 축을 상징한다. 그리고 여기 이제 모든 것의 고리와 그 역학을 알게 된 마리아가 존재한다.

소설 끝부분에서 마리아의 선택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길이 속죄의 길이 될 터이다. 죄를 고백하든, 그렇지 않든지 말이다.

델레나의 [악의 길]은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유혹에 취약한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 피에트로나 마리아, 사비나, 그리고 안티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바른 선택을 하고, 영원히 구속의 형벌을 받지 않을 현명한 결정을 하는 건 바로 온전한 본인의 몫이다. 모든 것은 한 끗 차이다. 그리고 그 한 끗이 어쩌면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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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6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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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노인과 바다] 번역본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지금도 인터넷 서점 조회 DB를 조회해보면 스크롤을 계속 내려야한다. 어린이판에서부터 만화도 있고 삽화 형식도 존재하고, 그림책으로도 존재한다. 그만큼 헤밍웨이의 작품 중 [노인과 바다]는 광범위하게 알려진 작품이고 회자도 많이 된 작품이라 하겠다.

이번에 휴머니스트에서 다시 번역된 [노인과 바다]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우선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마침표의 남발로 그야말로 읽기 좋게만 여겨진 것을 배제하고 물결 타듯이 원작의 느낌을 살려서 번역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난 끊어지는 문장보다 오히려 이런 문장이 한 호흡 쉬고 읽기가 더 편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섬세한 번역의 기술도 이 속에 숨어있다. 솔직히 난 마지막 문장에서 관광객의 오해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청새치의 뼈인데 관광객은 상어라고 오해를 했을까? 그리고 왜 그 웨이터는 티부론(상어의 스페인어)이라고 말했을까 하는 점이다. 번역자의 후기를 읽고서야 오해가 풀렸다. 웨이터는 아마도 상어의 짓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웨이터는 영어를 못하기에 스페인어로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비슷한 의미의 두 단어만 나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오해는 관광객의 몫이므로 독자든 웨이터든 끼어들 바가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번역의 맛이 아닐까? 나름 아.. 하는 깨달음과 흐뭇함이 동시에 밀려온 순간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를 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노인의 철저한 근성, 인간의 근성과 신념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난 이번에는 좀 다른 생각이다. 노인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한 소년 마놀린과의 우정이다. 마놀린은 노인 산티아고를 믿었다. 그에게 있어서 노인은 살라오가 아니었다. 노인은 소년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나 같은 살라오도 마음만 먹는다면, 의지만 있다면 이렇게 될 수 있단다. 이렇게 할 수 있단다. 그러니 하물며 마놀린 너야 말해 무엇하랴...... .

노인에게 있어서 바다는 저항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가 잡은 청새치에게서도 그는 연민의 정을 느낀다. 꼭 먹을 거라 다짐을 하지만 오히려 그 다짐이 귀엽기만 한 건 왜일까? 청새치의 힘 빠짐을 걱정하고, 상처를 걱정한다. 바다는 노인에게 친구였다. 하물며 그를 공격한 상어에게서도 산티아고 노인의 분노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살게 한다.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인생은 살 만하다. 초인적인 힘이 나올 수도 있다. 소년 마놀린은 정말 믿음이 있는 순수한 아이였고, 노인 산티아고는 바다를 사랑하는 진정한 어부였다. 이 소설은 진짜 이야기다. 진짜 소년과 진짜 어부가 나오는 이야기 말이다. 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그동안 상투적으로 제기되어왔던 노인의 투지와 신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사랑만이 보인다. 소년과 바다와 청새치와 갈매기와 바다와 등등 삶에의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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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사도들 - 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 드디어 다윈 6
최재천 지음,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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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사도들』​​

최재천 (지음) | 다윈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펴냄)

다윈이란 누구이며, 또 그 이론은 무엇이고, 아직도 이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형식으로 인류에게 기여하고 있는가?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졌던 의문들이었다. 그리고 정말 다윈주의와 다윈주의자들이 누구인지...

개인적으로 최재천 교수와 리처드 도킨슨의 대화가 인상 깊게 남는다. 그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없애야 한다고 믿는 과학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솔직히 오늘날 우리 사회를 뒤흔든 JMS 등등을 보자면 오히려 종교를 믿음으로 해가 되는 일이 많은 듯하다. 이슬람의 분쟁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사실상 종교라는 것은 어느 정도는 마음의 위로를 얻고자 하고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게 기대어 희망을 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심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오히려 강력한 어떤 마력으로 옳아내는 마성의 종교, 가난한 자는 그 없음으로 더 가난하게 되고, 심령이 약한 자는 오히려 그 약함으로 텅 비게 하는 거짓 종교들... 하여튼 무서운 일이다. 도킨슨도 지금 현재는 종교에 귀이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대신 그 자리를 미신이나 점성술 같은 세력이 대체한다고 한다. 그래서 최재천 교수는 종교를 없애는 일의 무소용을 말하지만 말이다.

다윈주의자란 무엇인가? 다윈주의란 19세기 중반 혜성처럼 나타난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주장한 것에서 출발한다. 아마도 다윈처럼 철저한 관찰자도 없었던 듯하다. 다윈은 무엇이든 끈질기게 연구했으며 그 종의 이어짐을 관찰하고 또 관찰했다. 그리하여 자연선택설, 과학적 진화론이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로 종들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진화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생존과 번식에 맞지 않는 것들은 없어지고 유용한 것들은 살아남아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유용한 것들이 꼭 우수한 것들은 아니다. 열성인자가 우성으로 대물림되는 것도 많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자연선택은 생존과 번식에 기여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더 중요하고 우선이다. 종의 우수성과 특질은 상관없이 말이다.

지식이 부족했을 때 생각하자면 다윈주의자들은 모두 무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이 됐는데 최재천 교수를 보면 아닌 듯하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니 말이다. 물론 독실하다는 것은 교회를 매주 꾸준히 다닌다는 것에 근거하는 말이다. 최재천 교수는 그렇다면 다윈주의자일까... 난 그렇다고 생각된다. 그것도 아주 말이다. 과학적 근거를 믿고 신뢰하고 일상을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보려 한다. 그거면 된 것 아닐까? 물론 종교론적 관점에는 기적에 대한 믿음이 존재한다. 도킨스는 기적이야말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잠식한다고 말한다. 기적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도킨슨과 최재천 교수의 인터뷰를 읽자니 예전에 읽었던 이기적 유전자가 생각난다. 솔직히 번역적인 부분에서인지, 아니면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될 때 읽어서인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다시 그의 저서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도킨슨이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것이 인간이라면 혹은 나라면 과연 그 유전자를 지닌 인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생각과 질문이 많아지는 책이다. [다윈의 사도들]에는 도킨슨 말고도 스티븐 핑커, 피터 크레인 등 많은 다윈의 사도들이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예수의 제자를 칭하는 사도를 다윈의 사도로 불리게 한 것은...ㅎㅎ ) 하지만 왠지 신도 인정할 것 같다. 다윈처럼 신의 창조물을 이토록 집요하게 관찰하고 사랑한 사람도 없는 듯하니 말이다.

다윈주의자든 아니든, 창조론자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이다. 왜냐면 당신은 이 세상을 살고 있고, 세상의 한 부분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세상을 가장 가까이 관찰하고 있는 다윈주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조건 스스로 손해라는 생각이다. 편견은 스스로의 발목을 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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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헤드 수확자 시리즈 2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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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헤드』​​

닐 셔스터먼 (지음) |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펴냄)

개인적으로 이번 수확자들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선더헤드]에 애정이 간다. 각 장 끝 무렵 선더헤드의 아무도 범접 못할 철학을 알 수 있는 코멘트들이 있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모든 것을 아는 존재이고, 온전히 선으로, 일명 순전히 인류에의 보편적 사랑과 지구에의 연민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로 그려지는 선더헤드...선더헤드는 교만이 없는 권력이다. 순전히 인류를 위한 봉사직이다. 그가 만일 육체를 가진 존재였다면 아마 신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았을 터이고 메시아적 존재였을 터... 그는 인간이 낳은 부모이자 부모보다 성숙하고 지혜로운 자식이다.

로언과 시트라는 각자 나름의 수확자로 성장을 했다. 로언은 비록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수확자로의 임무를 마치지 못했고 중퇴자, 도망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졌지만 그 또한 아니었다. 내 생각엔 아마 모든 것은 선더헤드의 계획이지 않았을지 조심스레 점쳐본다. 분명 선더헤드가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결말을 말이다.

시트라에 대한 일도 마찬가지이다. 시트라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수확의 방식을 본인 스스로 결정하고, 수확령에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였다. 그리고 초보 수확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녀의 방식에 딴죽을 걸지 못했다. 즉 시트라는 한 번에 수확령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그녀 스스로의 생각과 힘으로 말이다.

이쯤 되니 선더헤드의 의도가 너무 궁금해진다. 시트라와 로언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정녕 무엇일까? 스스로 피를 묻히기 싫어하고, 생명을 거둘 의무도 권리도 없는 선더헤드가 그들을 통해서 악이라 불리는 것, 아니면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존재들을 거두려는 것일까? 그러기에 선더헤드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아니면 어쩌면 인류를 새로운 시험에 들게 하려는 지도 모른다. 다시 세워지는 에덴... 성경에서 신이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켰듯이 선더헤드에게 이 세상은 다시 세워져야 할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악은 부활한다. 고더드의 부활처럼 말이다. 모든 것은 선더헤드의 손바닥 안이다. 하지만 선더헤드는 규칙 밖에서 행동할 수 없다. 오직 규칙 안에서 스스로의 규범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조력자들을 통해서는 규칙 밖에서도 가능한 일임을 아나스타샤를 구한 그레이슨을 통해서 알 수 있는바.... 아... 앞으로 일들이 너무 궁금하다. 선더헤드는 과연 인류에게 어떤 훈련을 시키려는 걸까... 그 훈련이 과연 옳은 걸까? 인류가 교훈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계속 실수를 되풀이하는 존재에게 어떤 자비가 내려질 수 있단 말인가? 전쟁을 끊을 수 없는 인간임이 다시 생각난다. 슬프다. [종소리]를 빨리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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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레이디가가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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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

미치오 슈스케 (지음) |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펴냄)

재미있는 시도이다. 어느 장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으며 또 알게 모르게 연결이 되고 결말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바뀌는 소설 N이다. 알파벳 N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거꾸로 써도, 똑바로 써도 모두 한 가지 글자이다. 흡사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될 수도 있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와 결말... 흥미로운 문학적 시도를 한 작가 미치오 슈스케에게 관심이 간다.

처음에 책을 펼치면 앞뒤가 바뀌어 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어찌 됐거나 소설의 시작은 첫머리에 있다. 자신이 선택한 장을 찾아서 무조건 읽어가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장은 총 여섯 장이다. 내가 선택한 소설의 장은 첫 번째는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 - 이름 없는 독과 꽃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이다.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이지만 나름 최상의 조합이라고 생각된다. 그냥 무작위로 내키는 대로 장을 선택했지만...왠지 최상의 조합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작가가 원하는 장의 서술 역시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까 하는 본의 아니게 스스로를 칭찬하게 되는 그 무엇이랄까...ㅎㅎ

처음에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을 골랐을 때는 194쪽으로 넘어가라는 소설가의 지령?을 받았을 때 약간 당황했다. 어? 194쪽이 없는데? 대체 어디로 가라는 걸까? 소설 속 페이지도 왠지 뒤죽박죽인 듯 느껴졌기에 페이지를 잘 못 찾는 해프닝? 이 있었다. 194쪽은 그저 표지를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쪽을 생각하지 말고 그저 장을 넘어가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 그것이 더 합리적인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첫 장에서 소녀는 누군가의 호기심? 아니면 부주의로 죽는다. 소녀가 가지고 있는 나비에 대한 인상, 동양인 간호사에 대한 호기심... 등등은 해결되지 못한 채 난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 장은 이름 없는 독과 꽃... 대뜸 자신이 먹은 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화자, 그리고 그 뒤에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 첫째, 둘째 장을 읽기까지 전혀 소설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몰랐다. 그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지닌 단편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셋째, 넷째 장을 읽게 되면서 화자들이 연결되고 등장인물들이 서로 서로 연결되었다. 각 장은 물론 그 자체로 훌륭한 이야기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더욱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디어 밝혀지는 소녀에 대한 진실들...... .

예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바뀌는 설정 드라마, 그리고 어린이용 이야기책도 있었던 것 같다. 새삼 그때가 떠오르면서 추리소설에서 이런 이야기가 느껴져 몹시도 재미있었다. 앞으로 이런 유의 색다른 시도들이 무궁무진하게 발견되고 발전되면 좋겠다.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참여형 독서의 작은 예시가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소설의 결말은 나에게는 어느 정도는 해피엔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소설 속에서 누군가는 원치않는 죽음을 당하고, 누군가는 오해를 받았지만 그래도 책 속의 화자들이 본 다섯 개의 빛줄기, 아름다운 그 꽃, 해수면에 핀 꽃이 어쩐지 새로운 희망의 속삭임 같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듯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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