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 '급류'는 22년 말에 출간되어 약 2년이 지난 올해 초부터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에 꾸준히 오르며 주목을 받고있는 작품이다. 최근 한국소설 분야는 여성작가들이 시장을 거의 주도하는 느낌이라 모처럼 눈에 띄는 젊은 남성작가의 활약이 반갑기도 하다.


요즘 문학계의 새로운 트렌드인지 이 작품도 역주행이라는 표현을 내세워 홍보하고 있는데 나는 생소한 이름의 작가인 점도 고려하여 오롯이 작품 자체만으로 판단하기 위해 일부러 작가와 내용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를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읽어보기로 했다.


일단 초반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먼저 받았던 인상은 아쉽게도 작가의 필력이 내심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그리 높지 않구나...였다. 상황과 배경, 인물 등을 묘사하는 모든 문장들은 거의 두줄을 넘지 않을 정도로 길이가 짧으며 비교적 직선적이고 단순한 표현법으로 구성되어 단조로운 느낌을 받았는데, 물론 이것은 스피디한 가독성이라는 무시 못할 장점도 있겠지만 반면에 웹소설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약 300페이지에 근접하지만 작은 판형에 활자의 크기까지 고려하면 실제로 200페이지를 겨우 넘기는 정도의 중편에 가까운 컴팩트한 분량에다가 간결하고 쉬운 문장에 시원시원하고 빠른 전개로 요즘 시대의 입맛에는 잘 맞는 것 같은데 작가가 어떻게든 장편의 외형을 갖추기 위해 애를 쓴 것인지 군더더기 문장들도 제법 보인다. 



'해솔이 도담의 팔을 잡고 떼어 내며 밀어냈다. 거부의 몸짓이었다...' 라는 구절에서 이 '거부의 몸짓이었다' 같은 문장은 사실 없어도 아무 지장 없고 오히려 빼는게 더 깔끔하다.



바로 이어지는 대목에서도 또다시 '네가 나한테 이런다는 거지...' 라는 대사를 해놓고 '연인들이 다툴 때 흔히 하는 말이었다' 라고 친철한 해설 같은 문장을 덧붙여 놓았는데 작가가 너무 불친절해도 문제지만 너무 친절한 것도 문제가 있다. 무슨 다큐멘터리 나레이션도 아니고 없어도 다 알아듣는 장면에서 굳이 군더더기 같은 부연설명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와의 화투씬에서 '아이구, 시원하다. 도담이 손이 약손이다' 같은 대사들을 비롯하여 뭔가 모르게 영화적 클리셰의 느낌이 나는 시퀀스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꼭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이쯤에서는 이런 장면이 한번쯤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 전형적이지만 무난한 대사로 이루어진 상황을 적당히 만들어 넣은 듯한 느낌인 거다.



초반부에 나온 중성부력에 관한 아빠의 대사나 첫 키스의 추억을 상징하는 귀신 새가 중후반부에 다시 나오는 방식도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떡밥회수 스타일의 클리셰 중 하나다. 



혹시 작가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전체적인 시퀀스의 구성과 연결, 그리고 대사들이 영화적 또는 연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문맥의 흐름상 '엄마'라는 명칭이 훨씬 자연스러움에도 굳이 '미영'과 '정미'라는 이름을 쓰는 모습에서 나는 이 작가가 각본을 쓰던 버릇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해봤다.  



작품의 내용도 역시나 그동안 영화나 소설에서 숱하게 다루어 왔던 치유를 통한 내면의 성장...이라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식상한 코드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경우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눈에 띄는 확실한 차별점이 필요한데 이 작품은 그 차별점을 치유 과정으로 넘어가기 위한 트리거 역할의 어떤 '사건'으로 선택했고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에나 나올 법한 초강력 설정을 집어넣었다.


어떻게 보면 무리수에 가까운 초반의 이런 충격적 설정은 시선끌기용으로는 상당히 괜찮은 작전이고 또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론 아무리 봐도 너무 작위적이고 편의적으로 가져다 쓴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라든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오히려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함과 동시에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오로지 해솔과 도담이라는 두 남녀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만 집중할 뿐 주변인물들의 존재는 그저 주인공 서사 구축을 위한 들러리 정도로 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두 주인공의 심리에만 감정이입한 독자라면 감동적인 사랑이야기라며 극찬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이든 일단 중립기어 넣고 지켜보는 습관이 있는 나에게는 감정이입이 그리 쉽지 않았다.



나같은 경우 작중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50대 유부남의 입장에서 글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부모들이 어떤 계기와 과정으로 서로에게 끌렸는가 하는 점 등, 불륜이라는 파멸적이고 그릇된 선택에 대한 어른들의 뒷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으나 이 책에서는 그저 불륜부모의 자식이라는 설정만 필요했는지 부모의 서사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도담의 아빠 창석은 도담에게 그저 수영을 가르쳐준 적 있었던 성실한 소방관이었을 뿐 엄마와는 실제로 어떤 부부관계였는지 또 불륜녀인 미영과는 어떤 감정의 교감이 있었는지 따위의 보충적인 심리상태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가족을 배신한 아빠라는 평면적 캐릭터로만 남는다. 심지어 배신당한 당사자인 엄마 정미의 심리상태마저도 완전히 제거되어 존재감이 없다. 


이것은 향후 스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담의 정신적 상처 역시 평면적으로 그려지는 원인이 되어 안그래도 비현실적인 사건이라 그 상처의 실체나 강도가 별로 설득력있게 와닿지도 않는데 자기들끼리만 아파하고 달래주는 모양새니 이럴거면 굳이 그런 설정의 사건이 왜 필요한가 싶은 거다.  


만약 작중 인물들이 불륜에 의해 이혼을 하고 원하는 대로 새로운 가족을 결성했다고 가정한다면 부부이자 사돈이고, 새엄마이자 시어머니이고, 새아버지이자 장인어른이 되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콩가루집안 탄생이라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설정이라 기본적으로 이들의 복잡미묘한 심리와 이해관계 등 다뤄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작가는 애초부터 젊은 남녀의 기구한 인연에 얽힌 러브스토리를 만들 목적으로 말도 안되는 기괴한 설정을 가져와서 스토리 진행에 방해되는 요소는 미리 사고사로 없애버린다는 너무나 작가 편의적인 간단한 방법으로 안일하게 처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가는 확실히 젊은이들의 감정과 사랑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어른들의 농익고 숙성된 사랑 쪽은 취향이 아닌 것 같다.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하는데 있어 작가가 사용한 최고 수위가 겨우 '안았다' 정도인 걸 보면 언제나 청소년 관람가 수준을 넘지 않는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가 아닌가 싶다. 



본작 '급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반부를 거쳐 후반으로 갈수록 어설픈 허세를 부리기 보다는 자신의 페이스로 일관된 톤을 유지하는 작가의 진정성이 호감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문맥과 문장의 구성이나 단어의 선택 등에서 문학적 기교나 깊이감 등, 별다른 내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을 뿐 그렇다고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초반의 실망감은 어느새 잊고 그럭저럭 내용을 즐길 수 있었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정대건은 1986년생으로 현재 40대로 접어드는 나이이며, 찾아보니 놀랍게도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영화감독이었다. 



작가의 커리어를 확인하니 비로소 내가 품었던 의혹들이 일거에 해소되며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이 정도면 돗자리 깔아야 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정식으로 개봉한 장편 극영화는 2017년작인 '메이트'가 현재로서는 유일하고 그 이후로는 소설들을 계속 발표하며 작가로 전향한 듯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데, 예전에 리뷰했던 '곰탕'의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김영탁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아마도 이 책이 계속 잘 팔린다면 머지않아 본인이 직접 감독한 영화제작 소식을 듣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84tOD4mFhEk&t=326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8288918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어났음의 불편함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란 옮김 / 현암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에밀 시오랑은 1911년에 태어나서 1995년에 사망한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자다. 대충 살펴보니 20대에는 베를린에서 칸트, 헤겔, 니체, 쇼펜하우어 등의 독일 철학을 탐구했고 30대부터는 파리에 살면서 프랑스어로 쓴 책들을 발표하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으로 나온다. 



이 작가의 글은 대부분 아포리즘에 기반을 둔 스타일로 쓰여지는 특징이 있는데 아포리즘(Aphorism)은 격언, 잠언, 경구 등으로 해석되는 짧은 글귀를 뜻한다.



본작 '태어났음의 불편함'은 1973년에 발표되었고 역시나 아포리즘으로 채워진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막연하고 추상적인 글귀는 취향이 아니라서 심지어 시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본의 아니게 이런 스타일의 글을 접하게 되니 첫대면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주 오래전 우리나라에 칼릴 지브란의 책들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 책을 처음 펼치면서 문득 지브란이나 혹은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작가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극이라는 뉘앙스로 시작하는 이 책은 가면 갈수록 작가의 특이한 사고방식에 도무지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어떤 통찰에 압도당하는 듯한 특별한 느낌도 있었다.


일단 이 작가는 독일 철학은 물론 바흐의 음악과 도스토옙스키와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학, 그리고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교 등의 각종 종교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축적된 자신의 가치관이나 일상적 상념들을 다소 현란한 스킬의 함축적인 언어로 담아내기 때문에, 한번은 고사하고 두번 세번 읽어도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난해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지만 신중하고도 오랜 담금질 끝에 뽑아낸 언어 조합의 결과물이란 점 또한 충분히 느껴진다.



책 초반에 나오는 글귀 중 하나로 언뜻 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현학적인 말장난인가 싶기도 한데 천천히 반복해서 읽다보면 그 '진실'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만큼 이 작가는 태어났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살아있음 그 자체를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심지어 사산아를 부러워하기까지 하는 작가의 성향을 마주하다보면 그 극단적인 염세주의적 또는 회의주의적 또는 허무주의적 사고방식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솔직히 이 정도면 작가가 일찌감치 자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신기한데 자살은 너무 늦은 선택이기 때문에 소용없는 짓이라는 알쏭달쏭한 견해를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는 젊은 시절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하며 이 책에서도 잠과 밤에 대한 언급이 많은 편이다. 깨어있을 때 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으므로 차라리 잠들어 있는게 훨씬 낫다고 여기는 작가에게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증상 또한 정말 치명적인 고통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살면 살수록 살아있다는 것이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뭔가를 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 낫다... 나는 모든 것이 덧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 탁월한 능력이 있고, 그래서 나의 장점은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만일 내게 아이들이 있다면 당장 목 졸라 죽일 것이다... 태어남이 실패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때, 삶은 견딜 만해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나를 견딘다...



아뭏든 이 시오랑의 염세주의는 거의 인간혐오 수준으로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정말이지 쇼펜하우어도 울고 갈 듯 하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이 책에서 얼핏얼핏 감지되는 작가의 정치적 성향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보가 정치를 넘어 훨씬 광범위한 의미를 포함했을 것이라 애써 부정해봐도 히틀러에 대해 다소 후한 평가를 내리는 견해를 보노라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이문열 작가가 꼴보기 싫은 극우 인사라 해도 그의 찬란했던 문학적 성취까지 폄하하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비록 동의할 순 없어도 그냥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 성향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보다는 오히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언급된 부분 등에 더 눈길이 사로잡혔는데, 이렇게 극단적이고 까다로운 시오랑을 매료시킨 포인트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서 다음에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보는 진부한 명제가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시대에 가진 것이 많고 매일매일이 행복해서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삶이 고달파서 죽지 못해 살거나 천국같은 다음 생을 기약하며 매일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이라는 나훈아의 노래가사도 있듯이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조금씩 비워내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거다.


사실 나도 어지간히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마치 비관주의의 끝판왕 같은 이 시오랑 작가 덕분에 거울치료를 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접근으로 시야가 넓어지면서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등 잘 살았냐 못 살았냐 따위를 구분짓는 온갖 기준들은 어차피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허상일 뿐이라는 위안과 함께 뭔가 치유를 받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작가의 생각과는 대척점일 수 있는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이란 말이 자꾸만 머리에 맴돌았는데, 편견없이 마음을 비우고 읽다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철학적 명제에 대해 각자 여러 방향으로 활발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제공하는 책이란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작가가 특히 프랑스어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정제된 언어로 글을 쓰는 스타일로 알려져있는 만큼 이 책의 번역도 그 뉘앙스가 온전히 전달되는 명징한 문장으로 다듬어져 가독성이 높고 이해를 돕는 꼼꼼한 주석 등 대단히 훌륭한 완성도로 처리된 느낌이다.


나는 그가 생전에 한번이라도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생겨서 구글 검색으로 웃는 모습이라도 한번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 정도가 가장 밝은 표정이더라...



아무리 염세주의를 연구하고 그런 사상에 동화되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영역일 뿐 시오랑의 실제 삶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희로애락을 골고루 겪으며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본 경험도 많았으리라 믿고 싶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jR7mvl9IPKg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8060534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네자와 호노부의 역사 추리소설 '흑뢰성'은 2021년 발간 직후 그 해 일본의 모든 미스터리 관련 상을 석권했던 화제작으로 소개되고 있다.


저자 요네자와 호노부는 1978년생으로 현재 40대 후반의 중견작가이며 우리나라에서 '빙과'라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져있고, '빙과'의 성공에 이어 주로 고교생 주인공들을 내세운 학원 미스터리물을 계속 발표하면서 수많은 수상과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화 등 인기작가로서의 명성을 다져온 인물이다.



본작 '흑뢰성'은 흔히 센코쿠시대라고 부르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 탐정물로 대표되는 고전 추리 작법을 접목시킨 팩션 미스터리 장르이다. 작가가 그동안 발표해왔던 청소년 성향의 작품들과는 전혀 결이 다른 소재와 내용이어서 자신의 창작 스펙트럼을 넓혀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이기도 하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현지에서는 평단과 대중의 호평 속에 전례없는 성과를 거둔 것 같다. 


제목 '黒牢城'의 '牢'는 우리 뢰 즉, 소 같은 짐승을 가두는 우리 또는 감옥을 뜻하니까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검은 감옥의 성' 정도가 되겠다. 무협지에서 최종 보스의 은신처 같은 곳이 떠오르는 뭔가 있어보이고 느낌있는 제목인데 의외로 작품 속에서 이 '흑뢰성'이라는 명칭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가 펼쳐지는 유일한 배경이자 무대가 아리오카성이라는 곳이고, 그 성의 성주이자 주인공이 매번 컴컴한 지하 감옥에 내려가서 실마리를 찾는 구성이라 책을 읽다보면 왜 이런 제목이 지어졌는지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이 작품은 팩션이기 때문에 대부분 역사적 실존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아라키 무라시게는 당시 패권을 장악하던 오다 노부나가의 휘하에서 공을 세워 다이묘 즉, 지금의 오사카 근처인 셋쓰라는 지역의 영주 위치까지 올라선 장수인데, 갑자기 주군인 노부나가에 반기를 들고 대항하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혼자 도피했다가 은둔생활 중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까지 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이 책에서는 무라시게가 모반을 일으킨 이후 셋쓰의 아리오카성에 칩거했던 기간 중에서 성을 버리고 도망가기 전의 약 1년간 벌어진 사건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겨울부터 이듬해 봄, 여름, 가을까지 총 4편의 에피소드가 연작으로 이어지는 구성이고 한 계절당 하나씩 독립적인 사건이 벌어졌다가 해결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책 말미를 보면 월간지에 단편 형식으로 실었던 에피소드를 묶어서 펴낸 것으로 나온다.



작가는 무라시게가 모반을 감행한 이유 등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의 공백 부분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교묘하게 메워가면서 밀실 살인 트릭을 활용한 첫번째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각각의 에피소드 모두 탐정과 독자가 두뇌게임을 하며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 주력하는 정통 고전 추리소설의 대표적 트릭과 작법을 기본 골격으로 해서 스토리를 펼쳐간다.


이 작가의 필력은 깔끔한 대사 처리와 흡인력있는 전개 등 흠잡을 데가 별로 없을 정도로 탄탄하면서도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굳이 중간에 한번씩 상황을 요약해주는 일본 작가 특유의 쿠세는 보이지만, 작품의 특성상 잠재적 용의자에 해당하는 서브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읽다보면 누가 누군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어서 여기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시대극에 걸맞는 예스러운 어투와 철저한 고증을 반영한 듯한 디테일한 상황묘사 역시 전력을 다한 작가의 노력에 비례해서 진중한 무게감으로 고스란히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 


또한 이 책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적절한 주석을 비롯하여 분위기에 어울리는 대사톤과 반말과 존댓말의 미묘한 변화까지 맛깔스럽게 살려내는 뛰어난 완성도의 번역도 가독성을 높여주고 있어 만족감을 더해준다.



다만 탐정 역할을 겸하는 무라시게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최후의 방편으로 자신이 직접 지하감옥에 가둔 간베에를 찾아가서 사건 해결의 힌트를 얻는다는 설정은 마치 '양들의 침묵'에서 스탈링이 한니발 렉터에게 자문을 구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작가와 독자 간의 페어플레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사건 현장을 보지도 않고 오로지 무라시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수수께끼를 간파하는 간베에의 전지전능함은 애초에 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수준이다. 게다가 각 에피소드 초중반까지 흩어진 단서들을 조합하면서 이런저런 추리를 해봐도 막상 진범과 범행수법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게 되면 대부분 황당할 정도의 우연적 상황과 의외성에 기댄 결과를 마주하기 때문에 그동안 주어진 단서들은 별 의미없는 연막에 불과했다는 허무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 두번째 에피소드의 범인이 밝혀지는 장면에 이를 때 쯤에는 나머지 에피소드들의 전개 스타일과 해결 방식 또한 비슷하게 반복될 것이라 훤히 예상되면서, 이런 식이면 굳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애써 추리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사건 해결을 위한 적극적 참여자가 아닌 그냥 구경꾼으로서 관망하는 입장이 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본작 '흑뢰성'은 장르소설에서 보기 힘든 책 말미의 수많은 참고문헌이 증명하듯이 작가가 공들인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정통 고전 추리물의 추억을 되살려낸 솜씨로 오랜만에 일본 추리소설의 저력과 자존심까지 다시 한번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기발한 트릭이나 반전 같은 미스터리의 임팩트가 기대에 비해 다소 약하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시대극이라는 측면에서 보여주는 재미가 그 이상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사실 그동안 일본 평단은 호들갑이 너무 심해서 신뢰감이 거의 바닥인 상태였는데 이번 만큼은 나도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cBNiVpCIagA&t=359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7698796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러티
콜린 후버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콜린 후버는 지난번 '우리가 끝이야'라는 작품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이 작가의 글을 한번쯤은 더 읽어보고 싶다고 얘기한 바 있다. 작가에 대해서는 그 리뷰에서 충분히 다루었기 때문에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4833020


이번에 읽은 이 '베러티'는 2018년에 출간되었으니까 나온지 이미 5년이 넘었음에도 지금도 여전히 아마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노출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작품이고 국내에 번역된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판매량이 높은 걸로 나온다.


제목 베러티(Verity)는 '진리', 또는 '진실'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냥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 최진실씨의 진실 정도로 비유하면 딱 맞을 것 같은데, 어쨌든 책을 다 읽고나면 이 제목이 상당히 복선적인 의미로 쓰였다는 것도 알게된다.



역시 이 작가는 글을 잘 쓴다. 문장을 구성하는 스킬이나 플롯을 다루는 솜씨가 확실히 프로작가답다. 시선을 압도하는 첫 시퀀스부터 계속해서 강력한 흡인력으로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도 거의 최고 수준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로 지난번 S.A. 코스비의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리뷰 때 비유법을 예로 들면서 프로 수준에 못 미치는 작가의 실력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 콜린 후버는 같은 비유법을 써도 이렇게 사용한다.



약간의 과장이라면 과장 섞인 비유이긴 하지만 그만큼 이 여자의 심리를 아주 생생하고 또한 맥락에 어울리는 표현으로 처리를 하고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은 'like ~' 즉, '~처럼'이라는 대놓고 비유하는 조사를 쓰지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비유법을 섞어넣은 표현이라 할 수 있겠는데, 실제로 이 집이 굉장히 호화로운 저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인물의 심리와 주변공간을 한꺼번에 묘사하는 효과를 노리는 상당히 감각적이면서도 고급스런 스킬을 구사하고 있다.


무슨 '담배 끝이 용의 눈처럼 붉게 타올랐다' 같은 맥락도 없고 밑도 끝도 없는 마구잡이식 비유와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똑같은 아마존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그 필력은 이렇게 천차만별인 것이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5011369


그런데 내가 볼 때 이 콜린 후버라는 작가는 자기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에 나오는 두 여주인공은 모두 직업이 소설가인데 한명은 무명작가이고 다른 한명은 누구나 다 알 정도의 베스트셀러 스타작가로 설정되어 있다. 그 스타작가의 이름이 베러티다.


초반에 로웬이라는 이름의 무명작가가 베러티의 글을 읽고 주눅들어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베러티는 대단한 작가다. 정말 글을 잘 쓴다'라고 한다.



일반 작가라면 이렇게 베러티가 그저 대단한 실력이라는 간접적인 정보만 가볍게 흘리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끝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콜린 후버는 적당히 말로만 떼우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게 아니라 대범하게도 작품 속에서 베러티가 쓴 자전적 소설을 액자구성 형식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독자들에게 로웬의 느낌이 진짜인지 아닌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고 자신있게 패를 까는 것인데, 이건 자신의 필력에 대한 웬만한 자신감으로는 절대로 시도할 수 없는 설정이다.


물론 그 자전적 소설이 글쓰기 연습을 위한 습작이라는 아주 교묘한 안전장치도 빈틈없이 마련해두었지만, 어쨌거나 이 콜린 후버라는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 같고 또 실제로 그만큼 글을 잘 쓴다. 내가 지난번 리뷰 때 딱 한번 보고도 장르소설가로서는 필력이 최상급이라고 했지 않았나...


아뭏든 이 작가는 기본 베이스인 로맨스 장르에 스릴러적인 요소를 살짝 가미하는 스타일로 봤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반전을 포함한 스릴러 쪽에 비중을 훨씬 더 많이 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남녀간의 미묘한 감정선과 애정행위를 묘사하는 장면에선 로맨스 작가 본연의 모습이 제대로 발휘되어 확실한 팬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런 문장은 확실히 로맨스 장인다운 독특하면서도 감각적인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가 묘사하는 성행위의 수위는 여전히 좀 낮은 편이다. 겨우 15세 관람가 정도? 아마 그래서 오히려 대중들의 사랑을 폭넓게 받고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 '베러티'는 흥미로운 스토리와 그것을 뒷바침하는 작가의 탁월한 필력 덕분에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반전이라는 설정 자체에 너무 욕심을 낸 것인지 뒤끝이 개운하지가 않고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 것인지도 잘 와닿지 않는 점은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


모든 소설이 반드시 갈등해소나 권선징악으로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정리가 필요한데 이 작품은 그런 부분에서의 방향성이랄까... 그런게 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지난번에 읽었던 '우리가 끝이야'가 훨씬 낫다.


그리고 번역도 이 책은 출판사가 달라서인지 번역가가 다른데 그냥 무난한 정도이지 좋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콜린 후버라는 작가의 필력을 번역이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는 느낌이었고, 특히 이 작가는 유머감각이나 통통 튀는 대사처리가 뛰어난데 그런 부분을 살려주는 번역가의 센스가 그다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끝으로 여담 한가지 추가하자면 내가 지난번 '우리가 끝이야' 리뷰에서 남녀 구분없이 모두 '그'라는 3인칭대명사를 쓰는 걸 보고 작가가 약간 페미니즘 성향이 있는게 아닌가 라는 추측을 했었는데, 내 유튜브 영상 댓글에 영문판 원서를 읽으셨던 독자분이 너무나 감사하게도 '여성 3인칭은 분명히 'She'라고 되어있었다'라는 제보를 해주셨다.



'우리가 끝이야'는 결국 남녀를 구분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성향인지 아니면 진짜로 페미니스트인지 뭔지는 몰라도 하여튼 번역가의 지극히 개인적 성향에 의해 그런 표현법이 선택된 것임을 알게되었다. 사소한 단어 하나도 얼마나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지 번역가들은 제발 좀 깊게 고민하면서 번역해주었으면 한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 콜린 후버는 평균적으로 거의 1년에 2편 정도의 신작을 뽑아내는 다작 스타일임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인데 물론 이것은 고정팬들의 관성적인 구매 때문일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하겠지만, 내가 이번에 두편째를 읽어본 결과 이 작가는 그만한 대접을 충분히 받을 만한 실력자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혹시나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재미있는 소설을 찾는다면, 콜린 후버의 작품들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서 읽어본다고 해도 크게 실망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Egel8sk5Mso&t=372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2878902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가 'Razorblade Tears'... 면도날 같은 눈물이라는 뜻일테고, 본문에서도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가슴아픈 심정을 표현하는 의미로 묘사되어 나온다. 한글 제목은 마치 시의 한 구절처럼 멋지게 잘 지은 것 같다.


S.A.코스비라는 작가는 작년 초에 리뷰했던 '검은 황무지'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는데 사실 이 책은 살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바로 번역가 때문에...


'검은 황무지'는 지난번 리뷰 때도 충분히 언급했지만 진짜 번역 엉망이었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3300343


이번 작품은 번역가가 바뀌긴 했다. 그런데 하필 바뀐 번역가가 박영인씨라고... 별반 다를게 없는 수준이라... 박영인이라는 번역가는 그전에 '고리키 파크'와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이라는 작품을 연속으로 읽으면서 번역이 원작을 망쳤다고 느꼈을 정도로 너무 실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시는 이 사람 번역을 읽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더랬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2747035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2715937


번역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게 뻔히 눈에 보였지만 그래도 작가가 어떻게 보면 흔한 이야기를 나름 재미있게 풀어내는 솜씨가 인상적이어서 다른 작품도 한권 쯤은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고, 또한 이 작가가 문장에 기교가 없이 스토리를 직선적으로 쓰는 스타일이라 설사 번역이 좀 미흡하더라도 까짓거 내가 알아서 적당히 필터링 해가면서 읽으면 되겠지 싶어서... 또 거기다 중고책이라 돈을 좀 아꼈다는 위안까지 보태서 이번 구매목록에 겨우 집어넣게 되었다.



작가 S.A.코스비는 '검은 황무지'의 성공 이후 차기작들이 연이어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 판권이 팔리는 등, 현재 미국에서 굉장히 잘 나가는 작가로 자리잡은 것 같다.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 버지니아주 출신 흑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이 흑인 갱스터랩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바이브와 함께 영화같은 액션씬들과 잘 어우러져 기존의 범죄스릴러 장르와 차별되는 신선한 느낌으로 어필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검은 황무지'를 읽었을 때도 느낀거지만 이 작가의 필력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다만 스토리를 연결하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짜임새있고 흥미롭게 연출되어 있어서 킬링타임용으로는 준수한 먼치킨류 액션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쾌감과 만족도가 높았던 것일 뿐...


그런데 이번 작품은 작가가 여러 측면에서 나름의 욕심을 좀 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검은 황무지'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인종차별 문제는 여전히 패시브로 깔려있는데 거기에 동성애를 비롯한 성차별과 성적 정체성, 그리고 세대간의 갈등 등, 현대 미국사회의 복잡한 문화적 인식과 현상에 대한 여러 메시지들을 문학적으로 좀 근사하게 녹여넣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글을 쓸때 단순한 문장을 좀더 고급스러운 문장으로 바꾸기 위해 시도하는 가장 초보적인 방법은 바로 수식어구를 추가해서 비유법을 쓰는 것이다. 예를들면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같은 지극히 심심한 문장을 '노을이 그녀의 도발적인 입술처럼 붉게 물들었다' 라는 식으로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갖다붙여서 살짝 화려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수법인데, 별 것 아니지만 뭔가 신경써서 글을 썼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어디까지나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한 수준이라 고수들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뿐더러 설령 쓴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자신만의 감성과 기교를 더하게 된다.


이 작가는 자신이 이제는 프로작가로서 한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지 이번 작품에서는 문장에 이러한 비유법을 상당히 빈번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허수아비 속에 들어찬 볏짚들처럼' '어린아이들의 애착 담요처럼'... 애착담요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이렇게 '~처럼' 하는 비유법을 한 문단에 사용하고도 또 바로 다음 문단에서도 연속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할 정도로 기회만 있으면 꼭 뭔가에 비유해서 심심한 문장이 되지않도록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작가가 사용하는 비유법은 그리 고차원적이거나 고급스럽지가 않다. '기온은 물로켓처럼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담배 끝이 용의 눈처럼 붉게 타올랐다'... '물로켓', '용의 눈'... 이런 식의 마구잡이 비유법은 앞뒤 문장과의 연계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다소 뜬금없고 생뚱맞은 표현이라 실소가 나온다. 오히려 아마추어 티를 못 벗어나고 있음을 드러내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검은 황무지'는 투박하고 우직스러운 면이 의외로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마치 리 차일드의 '잭 리처'시리즈 흑인버전을 읽는 것 같은 단순명쾌함이 좋았다. 액션 스릴러 소설은 이렇게 그냥 장르적 재미만 있으면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작가가 의욕이 넘쳤는지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을 탓할 수는 없으나 그 덕분에 순수한 범죄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은 상대적으로 좀 약해져 버렸다.


나는 임팩트있는 제목처럼 자식을 잃은 두 아버지의 피눈물나는 처절한 복수극이 펼쳐지길 기대했지만, 작가가 여기에 전형적인 헐리우드 버디액션 스타일의 클리셰적 설정을 집어넣는 바람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오락가락하면서 중간중간에 좀 김이 새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흑백 버디무비 역사야 워낙 오래되서... 시드니 포이티어와 토니 커티스의 '흑과 백' 같은 고전영화는 장르가 다르니까 예외로 치더라도 80년대에 나왔던 닉 놀테와 에디 머피 주연의 '48시간'이라는 영화가 있다.



진지한 액션 쪽을 담당하는 백인남자와 가벼운 유머를 담당하는 떠벌이 흑인남자 조합인데, 여기서 흑백 인종만 서로 바꾸면 딱 이 책에 나오는 두 주인공이다.

 

이 책에서는 샘 엘리엇 닮았다는 백인 아버지가 개그를 담당한다. 샘 엘리엇의 외모가 어쩌면 전형적인 남부 백인남성의 이미지일 수도 있겠다.



하여튼 굉장히 심각한 사건을 파헤치는 와중에 수시로 끼어드는 백인 파트너의 개그는 흑백 버디무비의 티키타카를 살리는 장점으로 활용되는 면도 있지만, 메인 스토리의 무게감을 상당 부분 날려버리는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그래도 중후반부 이발소에서 슬라이스라는 지역 보스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펼쳐지는 긴장감 넘치는 대사와 상황묘사를 비롯한 몇몇 시퀀스는 참 좋았던 것 같다. '검은 황무지'도 그렇지만 이 작가는 주인공이 특정 공간에서 비중있는 빌런들과 마주하고 서로 신경전을 펼치거나 대화로 힘겨루기하는 장면을 흥미롭게 연출하는 재능은 탁월하다. 이런 장점을 극대화했으면 좋았을텐데 엉뚱한 방향으로 신경을 더 많이 쓴 것 같아 좀 아쉽다.



그리고 번역은 너무나 내가 예상한 그대로여서 더 실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한숨 밖에 안나오는 번역 상태를 일일이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일단 이 책에서 가장 거슬리는 번역은 각각의 대사 뒤에 붙는 '~가 말했다'라는 문장이다. 버디무비 형식이라 거의 대부분 두 주인공인 아이크와 버디 리의 대사가 무수히 이어지는데, 말끝마다 '아이크가 말했다' '버디 리가 말했다'가 꼬박꼬박 붙어있다. 물론 원문에도 'Ike said' 'Buddy Lee said'라는 식의 영문 특유의 관성적인 문장이 붙어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한글은 영어와 달라서 '~가 말했다'가 너무 많이 반복되면 이상하게 거슬린다.


따라서 누가 말한 대사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상황이라면, 재량껏 적당히 빼버리면서 책을 읽는 리듬감을 살려주는 것도 번역가의 센스이자 능력이다.



이 부분만 해도 고작 반페이지 분량에 '아이크가 말했다' '버디 리가 말했다'가 각각 두번 씩이나 반복된다. 특히 마지막에 쓰여진 '버디 리가 말했다'는 없는게 훨씬 깔끔하다.


이 책에 끝없이 반복되는 '아이크가 말했다' '버디 리가 말했다'라는 문장은 아마 따로 모아놔도 수십페이지는 될 분량인데 솔직히 반 이상은 빼버려도 아무 지장이 없다. 작품성이나 문학성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않는 문장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이게 정말 읽다보면 짜증이 난다.


그리고 매번 문제점으로 지적해왔던 등장인물들의 어투 설정도 여전히 나아진게 없다. '검은 황무지'도 그렇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도 역시나 마초적 성향이 가득한 거구의 근육질 흑인남성이다. 물리적 폭력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이 작가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비슷하게 개인적 취향인 것 같기도 한데, 아뭏든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이면 그가 내뱉는 대사 역시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톤이어야 한다.


아이크와 버디 리 둘다 비슷한 나이의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극중에서 나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역시 비슷한 또래의 동년배로 보는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백인인 버디 리는 처음부터 반말을 하는데 반해 흑인인 아이크는 존댓말을 한다. 아무리 어두운 과거를 지우고 평범한 사람으로 새출발하려는 의지가 있는 인물이라는 설정이라도, 메인 주인공인 아이크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좀 무게감있고 강한 면모를 보여줄 필요가 있고 그게 이 작가가 구사하는 흑인 갱스터 느와르 장르에도 훨씬 부합하는 이미지라 생각한다.


이른바 '샷 콜러'라고 일컫는 감방 보스로 지냈을 정도의 먼치킨급 피지컬을 무기로 무지막지한 완력과 폭력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인물이 대사 치는거 보면 너무나 선량하고 순둥순둥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겨우 빌런의 보디가드 똘마니한테조차 소지품 검사 장면에서 '작업용으로 들고다니는 칼뿐입니다'... 이딴 식으로 나약하게 얘기하면 뭐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또 한가지 주석... 이 번역가는 언제나 그렇듯 주석 참 열심히 단다. 물론 성의가 느껴지는 주석도 없진 않지만 역시나 절반 이상은 불필요한 생색내기용이다.



'볼베어링' '슈퍼볼' 같은 너무나 대중적인 단어에 굳이 주석을 다는 이유가 뭘까? 물론 기계나 스포츠에 관심없는 사람들은 모르는 단어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게 따지면 주석 못 달 단어가 어디 있겠는가...


아뭏든 이런 주석들은 번역가가 자신이 신경써서 열심히 한 것처럼 눈속임하는 용도에 불과하다. 주석은 본문 내용의 이해를 돕거나 자칫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디테일을 설명해주는 용도로 쓰여야 한다.



이 부분은 눈물 자국과 연관해서 '론 레인저'를 언급하고 있는데도 주석은 그냥 검은 가면 주인공이라는...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대로 받아쓰는 식의 코멘트 밖에 없다. 이건 그 영화에서 인디언으로 나왔던 조니 뎁의 눈물 자국 비슷한 얼굴 분장을 빗댄 말이다.



주석이 이런 점을 짚어주지 않으면 있으나 없으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기도 '더티 해리'가 나오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개인적인 징벌을 내리는 영화의 전형... 어쩌구 하는 지극히 교과서적이고 맥락을 벗어난 내용으로만 주석을 달아놨다. 본문에는 거대한 권총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더티 해리를 인용한 것이다. 그러면 주석에는 당연히 더티 해리가 애용한 '매그넘44'라는 대형 권총이 언급되어야 하고 그래야 독자들이 읽으면서 더티 해리라는 용어가 쓰인 이유를 알 수 있지 않겠나...



이왕 주석을 달거면 제대로 달던가 아니면 차라리 안 다는게 더 낫다.



'단안경'이라고 번역해놓고 또 별도로 주석 달아서 '외눈 안경'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도 참 웃기는 부분이다. 그냥 처음부터 주석 없이 외눈 안경이라고 번역하면 되는 문장이다.



이걸 보고 버디 리가 상대에게 즉석에서 '파나마 잭'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는데, 이건 또 주석을 안 달았다. 상식적으로 한국에서 '단안경'을 아는 사람이 많겠나, 아니면 '파나마 잭'을 아는 사람이 많겠나...


어쨌든 구글 검색을 해보니까 'Panama Jack'은 스페인의 유명하고 전통있는 잡화 브랜드인데, 브랜드 로고가 외눈 안경을 쓴 남자였다.



그래서 버디 리가 일종의 개그를 친 것이다. 주석을 달려면 이런 걸 설명해서 유머코드를 이해하고 같이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나같은 아마추어도 잠깐만 검색하면 알아내는 내용인데...


작가후기를 통해 짐작한 것이지만 이 작가는 남부식 구어표현에 능통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미국 남부 특유의 사투리나 유머도 상당히 많이 들어갔을 것으로 예측이 되는데, 만약 책을 읽으면서 특이한 억양이나 유머코드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것도 전적으로 번역의 책임이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 류승완 감독의 '짝패'를 보면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조폭이 나와서 굉장히 신선한 재미를 주는 부분이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이 작품도 그런 류의 남부 표현법이 읽는 재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 해봤는데... 하여튼 나는 이 책에서 남부 억양 같은거 전혀 못 느꼈다.



'아이크는 휴대전화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하고선 대화하다가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똑같은 문장으로 또다시 '아이크는 휴대전화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가 나와서 읽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황당한 오역 따위는 너무나 사소한 수준이니까... 번역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자.


나는 이 책 읽으면서 주인공 아이크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착해빠진 존댓말을 쓰면, 머릿속으로 내가 알아서 실시간으로 반존대 또는 반말 등으로 재번역 해가면서 읽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영화 스타일의 재미는 확실히 보장하는 작가만의 독특한 매력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검은 황무지'를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작품으로 봤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 내심 기대한 부분이 좀 있었던 것에 비해서는 의외로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필력의 한계와 함께 단점을 더 많이 보게된 것 같아서 못내 아쉽다.


앞으로 이 작가는 책보다는 나중에 영화로 나오게 되면 그냥 영화로만 보면 될 것 같다. 주인공은 이드리스 엘바나 드웨인 존슨이 맡아주면 딱일 것 같은데... 특히 이 작품은 이드리스 엘바가 많이 생각나더라...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F9FZsoYkgos&t=345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2481299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