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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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다 귀찮고, 아무도 보기 싫어지고.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모든 걸 다 접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찾아 온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저 문제가 터지고 하는 통에 피곤했다. 만사가 짜증나기도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싫어졌다. 그럴 땐 정말 직장을 관두고 그냥 쉬고 싶었다. 어디로 떠나고 싶은 건 둘째 문제였다. 그저 쉬고만 싶었다. 하지만 사회 생활이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지. 직장을 관두면 당장 주기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없어지는 셈이니 쉽게 직장이란 건 포기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일도 관두고 집안에만 콕 박혀서 우리 강아지들 털을 쓰다듬으며 책이나 읽고 지내지만, 사회 생활을 할 때는 정말 수시로 모든 걸 관두고 속세를 떠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가끔은 조용한 산 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면 삶의 권태로움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늘 변함없는 생활에서 오는 염증이랄까.

세상도 어지럽고 경제도 어려운데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네, 라고 누가 뭐라 그래도 난 할 말이 많다. 그들이 보기엔 내 생각이 어쩌면 배부른 투정일지는 몰라도, 일 안하고 논다고 고민 없고 생각 없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일할 때보다 지금이 이런 저런 잡생각이 더 많다고나 할까. 나이를 더 먹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등등의 구체적인 고민들. 그렇다고 지금 생활을 접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 마음 내키는 곳에 정착해서 그곳을 터전으로 살 용기는 없다. 그래, 용기가 없다. 

그러하기에 나와 달리 용기를 가지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면 늘 부러움이 앞선다. 이 책을 보면서도 그랬다. 지리산 한자락에 터를 잡고 사는 버들치 시인이나 낙장불입 시인과 고알피엠여사 부부, 최도사등을 보면 누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랴. 책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사는 이들이라고 했던가. 왠지 그런 것도 부럽다. 왜냐면 난 지금 돈도 못버는 주제에 욕심은 많아서 그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흥이나 즐기고 하는 인생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런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 느껴진달까.

하나를 가지면 둘이 가지고 싶고, 둘을 가지면 셋을 가지고 싶고. 욕심은 정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제일 큰 소원이 하나 있다면 돈 걱정 없이 살아 보는 것. 이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겉으로는 체면차린다고 돈에 쪼들려 사는 티를 안내서 그렇지. 책을 읽다가 고알피엠 여사의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가슴에 푹 박힌다. 돈이 있어야 걱정이 생기지. 맞다. 돈이 있어야 걱정이 생긴다. 돈도 없는데 돈 걱정을 해봐야 아무 쓸데 없는 거다. 쿡 하고 웃음이 터지면서도 그래도 난 여전히 돈 걱정을 한다. 도시에 사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연봉 200만원이라며 스스로 부자라 하고, 행복해 하는 최도사. 연봉이 보통 사람 월급 정도(혹은 월급이하)의 돈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그건 아마도 모든 욕심을 속세에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모든 것은 욕심이었다. 욕심때문에 힘들고 불행하고 외롭다. 근데 그걸 버리기가 힘들다. 그래서 책으로나마 이렇게 위안을 받는다. 스스로는 뭘 할 깜냥도 되지 않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비겁할지 몰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이다.

이들의 풋풋하고 순진하고 해맑은 삶의 모습을 보면서 까르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그들의 행복한 순간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때론 절망하고 좌절하는 일이 생길지라도 지리산은 그들의 모든 것을 품어주는 어머니처럼 그들을 늘 품고 있기에 그들은 그들의 삶에 또다른 행복을 더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에 그들의 행복한 기운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파해줄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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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시마씨의 우아한 생활 : 영국여행편
토노 하루히 지음, 마마하라 엘리 그림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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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舊) 명문귀족인 카야시마씨는 막대한 재산을 지니고 있지만 산다는 것에 권태로움을 느끼는 고독한 자산가이다. 호리호리하고 낭창한 몸매에 가느다란 선. 표정없는 얼굴. 모든 일에 의욕이 없는 몸짓.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밴 상류층의 행동은 그를 돋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사랑을 하기 전까지의 카야시마씨는 잘 만들어진 프랑스 인형같았달까. 감정 없는 눈매와 입술은 아름다웠지만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멀게만 했다. 갑작스런 부모의 사망과 어린 나이에 당주가 되어버려 너무나 큰 짐이 어깨에 놓여버렸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원하게 된 상대는 그의 정원을 가꾸는 오만한 정원사였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건 카야시마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신을 늘 지켜만 보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고백을 해온 카야시마씨의 행동에 정원사는 처음에 화를 내지만 의외로 그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는 카야시마씨를 보면서 정원사 역시 그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달콤하고 쌉싸름하게 진행중이다. 

카야시마씨의 우아한 생활 2권 영국여행편은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로 나오는 <파티와 레이디와 영국식 정원>은 카야시마씨를 사윗감으로 점찍은 재벌 토지 켄이치로의 허술한 음모편이다. 자신의 딸인 카즈코와 어떻게든 연결시키고 싶은 토지 켄이치로. 하지만 우리의 카야시마씨는 허술해 보여도 고집이 있어 그 수법에 쉽사리 걸려들지 않는다. 토지 켄이치로의 초대로 그의 별장에 초대받은 카야시마씨는 정원사를 불러 들인다. 영리한 카즈코는 이미 둘 사이를 짐작하고 있었다나 뭐라나. 카즈코 역시 마음에 둔 사람이 따로 있었으니, 불미한 사고없이 이 이야기가 끝날 수 있었달까. 뭐 이건 중요한 건 아니고... 

우리의 오만한 정원사. 나중에 등장해서 카야시마씨의 표정없는 얼굴을 단박에 바꿔 놓아 주신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카야시마씨의 얼굴을 보는 것은 나로서도 무척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형같은 얼굴이 사람 얼굴로 바뀌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두번째 이야기인 <환희의 5월 - 영국여행 편> 이 단행본의 핵심이다. 정확히 말하면 영국식 정원 순례라고나 할까. 다양한 정원들을 보는 것은 이 책의 또다른 재미이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 재미있다고 말하면 심술궂은 표현이려나 - 카야시마씨의 질투 본능이 깨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앞 이야기에선 정원사의 질투 본능이 깨어났겠지만, 워낙 오만한 정원사님이시라 겉으론 표시도 안난다. (푸핫) 

이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정원사가 (이 사람 이름은 한 번도 안나온 것 같은데... 맞나? 기억이 가물가물) 예전에 영국 유학을 하던 당시의 친구인 싱고의 집에 머무르는 것이다. 이곳에서 2주간 머물면서 벌어지는 일이 최고의 에피소드랄까. 싱고는 지금 레슬리라는 멋진 영국 남성과 살고 있지만, 카야시마씨는 혹시 예전에 자신의 정원사와 싱고 사이에 무슨 썸씽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졸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친해 보이는 두 사람이었으니까. 의외로 이런 면에서 순진하고 귀여운 모습을 마구마구 발산해주시는 카야시마씨.   

원래 마초 스타일보다 호리호리한 남성을 좋아하는지라 마마하라 엘리가 그리는 카야시마씨는 완전 내 타입이다. 순진하고 귀엽지만, 자신도 모르게 섹시함을 드러내는 남자. 물론 정원사 타입도 좋지만, 그래도 역시 난 카야시마씨가 더 취향이다. 으... 둘만 생각하면 아주 달달해, 그냥.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도 기대기대~ (간절!)

참, 카야시마씨의 우아한 생활 - 영국 여행편 -에도 짧은 소설이 실려 있다. 이번의 주인공은 카야시마씨의 비서인 코이즈미 마사키의 이야기이다. 카야시마씨와의 면접이 주된 내용인데, 카야시마씨는 그때 이미 정원사를 마음에 두고 있었구나. (笑) 문득, 2권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 비서인 코이즈미는 왠지 쿨뷰티 타입일 것 같은데, 코이즈미 이야기는 따로 없는 걸까?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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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베이컨을 식탁으로 가져왔을까 - 인류의 기원과 여성의 탄생
J. M. 애도배시오 외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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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학시절 역사를 전공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역사학과를 여러가지 학과로 구분한 게 아니라서 사학과 하나만이 존재했다. 그렇다 보니 고고학, 인류학,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등등을 모두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고고학과 인류학은 한국사나 동양사, 서양사와는 달리 개론 정도밖에 공부하지 못했다. 전공필수가 아니라 전공기초 과목이었달까.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무덤 양식의 변천사 정도다. 그렇다 보니 고고학이라 해도 한정된 기간내, 한정된 장소에 관한 것이 다였다. 재미는 있었지만, 깊은 지식을 얻을 수는 없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인류학도 마찬가지로 개론정도만 공부한 것이라 나중에 틈틈히 문화인류학 서적을 읽곤 했지만, 아쉽게도 내게 확실한 지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기억하는 것 하나는 고고학과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주로 남성의 역사를 배웠다는 것이다. 물론 선사시대뿐만이 아니라 기록의 시대 역시 남성 중심의 역사이긴 했지만... 내가 배웠던 바로는 인류 사회의 진화는 3단계를 거쳤다. 첫째로 원시적인 난교 단계, 두번째로 모계 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가부장제 사회. 대부분 이렇게 배웠을 것이다. 모계중심의 사회가 농경사회로 접어 들면서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갔다고. 그러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인류 역사 전반에 있어서 여성은 남성에게 늘 종속되어온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남자들이 사냥을 하면 여자들은 그것으로 음식이나 만들고 애나 낳았던 존재일까. 

사실 여자들이 선사시대에 결코 사소한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가 어렵기는 했다. 고고학이 다루는 기록이라는 것이 대개 정체를 알 수 없거나 이미 죽은 생물이거나 별다를 사실을 알아낼 수 없는 쪼가리에 불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 빙하기의 유물들은 대부분 돌과 뼈로 만들어졌다. 땅속에서 오랫동안 보존되는 물질들이다. 학자들은 주로 남자들이 돌과 뼈를 쪼개서 여러 가지 도구, 특히 뾰족하게 다듬은 던지는 무기들을 만들어 사용했을 거라고 보았다. 하지만 여자들이 사용했을 거라고 간주된 물건들은 식물성이었으므로 오래 보존되지 않았다. […] 따라서 주로 남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고학자들이 돌로 만든 도구와 무기들만을 발굴해서 홍적세와 그 이전의 세계가 남자들의 세상이라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여자들은 대체로 무시되었다. (40~41p) 

선사시대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이다. 그렇다 보니 남겨진 유물로 그 시대상을 추측하고 가설을 세울수 밖에 없다. 그럼, 잘 보존되는 유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주로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들일 것이다. 예를 들면 돌로 만들어진 것들이 그러한 것들이 될 것이다. 돌로 만들어진 무기류는 남성들이 발명하고 남성들만이 사용했을 거란 편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벽화에 남겨진 그림들은 그 생각을 부추긴다. 매머드를 둘러싸고 집단 사냥을 하는 남성들의 모습은 남자들의 로망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은가. 이런 편견과 선입관이 선사시대의 여성의 존재를 완전히 배제하고 깔아 뭉갠 것은 아닐까. 남성들이 중심인 고고학자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남겨진 것만으로 추론하는 가설일 뿐이다.

일부일처제란 남자가 소중한 고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배우자(월경, 수유, 임신 등으로 항상 빈혈에 걸리기 직전이다)와 한두 명의 자식에게 나눠주는 대가로 항상 섹스를 할 수 있는 상대를 확보하고 자식들이 틀림없이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제도다. 사람들은 일단 석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뒤에는 사회적으로 이런 제도가 자리잡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석기는 사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이고, 사냥은 틀림없이 남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논리가 완성되자 남녀의 역할도 그대로 결정되었다. (101p)

사냥을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은 도대체 무슨 근거에 입각한 것일까. 물론 여성들이 자신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남자들처럼 며칠씩 거주지를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남자들이 없을 때 여자들과 아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여성들 역시 작은 동물이나 물고기는 사냥을 했을 것이다. 남자들만 기다리며 손가락을 빨다가는 생존 자체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여전사들이라 칭해지는 아마조네스들은 스스로 사냥을 한다. 물론 이들이 직접 사냥을 해야만 하는 것은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공동체이기 때문이지만,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있다고 해서 남성만 사냥에 나섰다고 주장하는 건 좀 얄팍한 근거가 아닐까.

이 책은 이제까지 논외가 되어 왔던 선사 시대 여성들의 역할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물론 이 역시 추론이고 가설일 수 밖에는 없지만, 상당히 근거있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남성은 사냥을 해서 여자와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돌보고 음식을 만들었다는 현대의 남성상과 여성상을 대입하지 않는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창과 돌도끼만으로 거대한 매머드를 사냥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 당시 몇명의 구성원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는지는 몰라도 매머드 사냥만으로 충분한 고기와 가죽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 좀 이상하다. 매머드같은 경우에는 정말 특별하게 사냥할 수 있었던 동물이고, 평소에는 작은 포유류, 물고기, 조개, 열매 등으로 식량을 충당했을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그러한 것은 여성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건 적당하지 않을 비유인지는 몰라도 사자의 무리는 암사자들이 사냥을 하고 숫사자는 영역을 지키는 일에 매진한다. 사자들은 길고 날카로운 발톱,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소같은 커다란 사냥감을 사냥하기 쉽지 않다. 사자도 그러할 진대 고작 돌도끼와 창같은 무기로만 무장한 선사시대인들이 매머드 사냥을 쉽게 했으리란 생각은 절대 못하겠다. 오히려 다른 동물이 사냥한 사냥감의 찌꺼기를 얻거나 우연히 죽은 사체를 발견해서 매머드의 고기를 얻었다고 하는 편이 더 진실해 보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남자들의 사냥만으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가설은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남자들이 혹가다가 사냥해온 고기는 특별식이었고, 나머지는 여성들이 채집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본다면 남성 중심의 사회가 이때 벌써 존재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또한 여성들이 손놓고 앉아서 남자들의 덕을 보려했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다. 이렇다고 해서 여성 중심의 사회였을거란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별로 없이 서로를 도와가며 공동체 생활을 영위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각자의 역할에 잘 맞는 일을 배분했을 뿐, 남자일 여자일은 따로 없었을 거란 생각이다.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남자들이 사냥을 떠난 동안 여자들은 그곳에 남아 다양한 생필품을 발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완전 정착이 아닌 상태이었다 해도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것은 사냥으로 자주 밖으로 나가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잘하지 않았을까. 이는 정착 생활을 하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정착 생활을 하면서 곡식을 심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면 그에 필요한 것들은 여성들이 더 잘 찾아내고 더 잘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지금까지 우리는 남성중심의 역사관으로 선사시대를 바라봤다. 하지만, 남겨진 유물이 거의 없다고 해서 여성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여성들의 손에 의해 탄생되었을 가능성도 높다고 보여진다. 이는 여성이 우월하기 때문이라는 것과는 다르다. 당시에는 생존이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생존에 필요한 일이라면 누구든 나서서 발명했을 것이므로. 

아직도 이런 남성중심의 역사관이 고고학계나 역사학계 전반에 걸쳐 중요하게 생각되어지고 있지만, 여성 고고학자들의 증가와 그들의 연구는 선사시대의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해 지금까지의 논의와는 상당히 다른 견해를 제시해오고 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인데다가, 유물이나 유적도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 감춰져있던 선사시대의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가설이 등장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 분야에 있어 상당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겠지만 고고학 연구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완벽한 결론은 없을 것이고, 완벽히 증명할 가설도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그 시대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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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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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카스테라를 참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종종 만들어 주셨던 카스테라는 따끈하고 촉촉하고 부드럽고 달콤했다. 엄마가 카스테라를 만들어 주시는 날이면, 나도 열심히 옆에서 달걀 흰자 거품을 내는 데에 동참했고, 카스테라가 동그란 전기 오븐안에서 구워지는 동안 코를 열심히 킁킁거리며 언제 겉면이 먹음직스런 갈색으로 변하는지, 분단위로 확인하곤 했다. 그렇게 구워진 카스테라는, 엄마의 맛이었다. 이제 난 어디서도 그렇게 맛있는 카스테라를 찾을 수 없다.

박민규 작가의 카스테라는 어떤 맛일까. 왠지 작가를 생각하면 새콤한 카스테라나 톡톡 과자처럼 입안에서 튀어오르는 카스테라가 연상된다. 이건 나만 그런 걸까. 하긴 이제껏 작가의 작품은 데뷔작인『지구영웅전설』단 한작품만 읽었으니, 생각의 한계에 부딪힌 것인지도. 그럴 경우 마음을 비우고 책을 읽는 게 좋다. 그리고 난 그렇게 했다.

첫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카스테라>는 한 대학생의 이야기이다. 불쾌할 정도로 외로운 그는 중고가전센터에서 산 냉장고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엔 거대한 소리에 질려하지만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져서 냉장고에 인격마저 부여한다. 그는 냉장고의 올바른 효용에 대해 찾다가 냉장고에 이것저것 집어 넣기 시작한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듯이. 처음엔 책, 그다음엔 아버지, 어머니, 학교, 동사무소, 미국, 그리고 중국 등등등. 그에게 있어 냉장고에 넣지 못할 것이 없다. 그렇게 이것저것 넣던 어느 날 냉장고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느새 냉장고는 텅비어 있었고, 그곳엔 따뜻한 카스테라 한 조각이 남겨져 있었다.

냉장고는 부패를 지연시켜주는 가전제품이다. 그는 어떤 것을 부패하지 않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아니면... 그냥 자신을 번거롭게 하는 세상의 모든 것? 사실 나도 가끔은 내가 싫어하는 것만 상자에 넣어 봉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이 여의치 못하니까 기억의 저장소에서 아주 깊은 곳에 집어 넣어버리거나 봉인해버리지만. 이 소설의 '나'도 그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자신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외부에 대해 스스로가 취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는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아주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 나오는 나는 인턴사원이다. 총 8명의 인턴사원 중 정식 직원이 될 수 있는 것은 단 한명. 죽자고 애를 써도 합격은 불투명하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는 패기도 있고 용기도 있었는데, 군대를 다녀온 후 그는 세상에 동화되는 법을 배웠다. 예전처럼 튀는 존재로는 이 세상을 살기 힘들다는 건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중학교 시절까지는 좀 놀았던 '나'가 어느 순간을 계기로 이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를 깨달은 후 자신만의 산수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너무나도 일찍 깨달았달까. 그는 어려운 집안 사정을 알고 스스로 돈을 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지하철 푸시맨, 주유소 직원 등등. 세상에는 돈이 많아 수학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돈이 없어 산수만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산수 인생은 아무리 바르작거려도 수학 인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 나름의 산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우리 대부분은 산수 인생이 아니던가.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는 세상에 흥미가 별로 없는 나와 듀란의 모험기이다. 둘이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어땠을까. 우주선 (이 아니고) 우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을 연상하면 SF인가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 난 이 둘이 본 것처럼 지구가 개복치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긴 싫다. 사람들이 저지른 환경파괴로 다시 빙하기가 찾아오면 지구가 개복치처럼 은빛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난 당장은 아름다운 푸른 지구를 믿으면서 살란다.

<아, 하세요 펠리컨>은 일흔 두군데의 면접에서 실패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 청년과 다 쓰러져가는 유원지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이야기이다. 서울에서 32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저수지의 오리배 유원지. 그곳에는 제대로 작동하는 건 없다. 낡을대로 낡은 오리배와 굳이 그곳을 찾아오는 세상의 패배자들이 가득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태풍이 심하게 불어오던 날 오리배들이 떼거지로 나타난다. 그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는 보트 피플.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더이상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그들은 희망을 찾아 오리배를 타고 퐁당퐁당거리면서 세계로 뻗어나간다. 하지만 오리배는 오리배일뿐, 모터 보트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물위에 뜨기 위해서 열심히 발을 휘젓는 백조처럼 우리도 조금씩이나마 세상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오리배위에서 열심히 발을 굴리는 오리배 승선자들은 아닌지...

<야구르트 아줌마>는 농담경제학 사전을 읽고 있는 나의 이야기이다. 도도새의 멸종을 자유시장 경제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약소국에 비유해 놓고 있다. 말만 그럴듯한 자유시장경제. 그 시스템은 있는 자의 배만 불리고 있는 자의 곳간만 채운다. 그 시스템에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써도 그 시스템은 우리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그럼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코리언 스탠더즈>는 386세대였던 운동권 선후배 사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학생운동을 하던 시대에는 날렸던 인물인 기하형은 지금은 작은 농촌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와 함께 운동을 했던 동지들은 정치니 뭐니 해서 지금은 모두 한가닥을 하지만 기하형은 그 시절의 눈부신 모습을 잃고 농촌에서 혼자 끙끙거린다. 지원해주던 사람들도 이젠 없다. 정부의 시책은 조변석개이고, 손대는 것마다 실패하고 만다.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누군가 그의 피를 말려 죽일 생각인 모양이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대왕오징어의 기습>은 어쩌면 우리 미래에 닥쳐올 모습일지도 모르지. 수천번의 원폭 실험이 가해진 바다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르니까. 인간들은 혼자 똑똑한 척 하면서 미래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헤드락>은 미국유학중이던 한 학생이 갑자기 나타난 헐크 호간에게 헤드락을 당한 후 달라진 그의 삶에 대해 보여준다. 세상은 헤드락을 거는 자와 헤드락에 걸리는 자, 두 부류로 나뉜다. 헤드락에 걸려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헤드락에 걸렸을 때 반격을 할 수 있는 백드롭을 배우거나, 자신이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헤드락을 걸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다. 세상은 힘 있는 자의 편이니까.

<갑을고시원체류기>는 친구집에서 기숙하던 한 삼류대학생이 고시원에 살게 되면서 보고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얹혀 사는 것도 적당한 때 그만둬야 한다. 어차피 친구집이지, 내 집은 아니니까. 겨우 몸하나 누일 수 있는 고시원. 그곳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 나름의 룰을 가지고. 그가 아주 오랜후에 그 고시원을 떠올리며 했던 생각이 가슴에 와닿았다. 실패했거나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자신을 거부하지 않고 몸을 뉘이게 해 줄 그런 곳이 필요하다는. 비록 웅크린채라도. 마음만은 편안할 테니까.

뭐랄까. 총 10편의 단편들의 이야기는 이리 튀고, 저리 튀어 갈피를 잡기 힘들다. 어떨땐 SF같기도 하고, 어떨땐 판타지같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속알맹이는 지극히 현실적이랄까. 세상과 잘 교류하지 못하는 사람, 취업때문에 맘고생하는 사람, 가족관계때문에 맘고생하는 사람, 세상의 모든 일에 흥미를 잃은 사람,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 등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들이다. 아무리 바르작거리고 애를 써도 그들은 태생부터 남다른 누군가를 쫓아갈 수 없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운명은 그렇게 그들을 속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순응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들을 둘러싼 세상의 벽은 너무 높고 차갑다. 벽바깥으로 튕겨나가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은 우리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서글프고 고달픈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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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조잘 박물관에서 피어난 우리 옷 이야기 아이세움 열린꿈터 7
김영숙 지음, 지문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0년 11월
품절


옷은 사람과 평생을 하는 존재이다. 태어날 때는 벌거벗고 태어나지만, 그후로는 하루라도 옷을 입지 않는 날이 없고, 죽어 땅에 묻힐 때도 옷을 입는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의 경우 계절마다 입는 옷이 달라지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복식의 변화가 뚜렷한 편이랄까. 기본에서 변형되긴 했지만, 그래도 시대마다 차이가 뚜렷한 편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의 복식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차례를 쭉 훑어 보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입게 되는 옷들과 행사나 계절에 따른 옷, 신분에 따른 옷 등으로 나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이야기들은 각각의 옷들이 직접 다른 옷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딱딱한 진행이 아니라 이야기식이라 무척 흥미롭게 읽혔다.

조선시대의 옷들이 전시된 박물관 전시실에 미라가 새로 들어왔다. 조선시대의 독특한 무덤형식인 회곽묘는 미라가 만들어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미라가 입은 옷도 상당히 보존이 잘 되어 있어 당시의 복식이 어땠는지에 대해 잘 알려준다. 옷같은 것은 썩기 쉬운 편이라 보존이 잘 되지 않는지라 복식 연구에 있어서도 책이나 그림과 같은 것으로 추정하는데에 그쳤다면 이런 미라가 발견됨으로써 완전한 의복의 모습을 연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평상복이 아니라 수의이긴 하지만.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입게 되는 옷, 그것은 바로 배냇저고리이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옷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입히기 쉽고, 입었을 때도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요즘도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입히는 게 배냇저고리. 명칭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의 배냇저고리는 저고리라기 보다는 내복처럼 보이니 말이다. 이 파트에서 무척 흥미로웠던 것은 아이들의 배설물 처리를 쉽게 하기 위해 하의는 남아, 여아 모두 치마 형식의 것을 택했다는 것이다. 또한 배만 가리는 배냇저고리도 있었다는 것이 무척 재미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 바람을 담아 배냇저고리에 실을 연결해 그걸로 옷을 여미게 만들었다. 실이란 것은 예로부터 장수를 기원할 때 쓰는 것이니. 또한 배냇저고리는 아이가 컸다고 버리는 게 아니었다. 양반집 자제들의 경우 자신이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품에 안고 과거를 보러가기도 했단다.

신생아 단계가 지나 처음으로 맞는 생일, 돌. 지금도 돌은 가족 및 친지, 친구들을 불러 놓고 성대하게 잔치를 연다. (100일의 경우, 집에서 간단히 가족과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는 옛날부터 내려오던 풍습이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이니 무사히 첫생일을 맞이하는 것 만큼 기쁜 일은 없었으리라.

돌에 입는 옷는 상당히 다양하고 복잡해 보인다. 남자아이의 경우 풍차바지와 저고리, 두루마기, 돌띠, 호건을 썼고, 여자아이의 경우 치마, 저고리, 당의, 굴레를 썼으니. 그래도 아이들이 입는 옷이라 어른옷보다 간편하고 입고 벗길 수 있게 만든게 특징이랄까.

이 파트를 읽으면서 나도 내 돌사진을 꺼내놓고 비교해 봤다. 학이 수놓인 다홍색 치마에 녹색 색동저고리, 그리고 녹색 배자를 입고 있었다. (본인은 여자임) 아마도 학이 수놓인 것은 장수를 의미하겠지? 이렇듯 돌에 입는 옷은 아이의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의 문양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돌상에는 여러가지 물건이 놓이고 아이가 그중 하나를 골라잡게 하는 돌잡이 행사가 있는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상에 놓이는 물건들이 달랐다고 한다. 특히 여자아이 상에는 자나 실, 색지를 놓아 바느질 잘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물건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옷은 기성복을 사입지만 당시에는 직접 옷을 만들어야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위 그림은 아동기의 남자아이가 입는 옷들이다. 요즘말로 도련님 패션이라고 하면 되려나? 오른쪽위에 있는 선복을 입은 그림이 제일 낯이 익다. 왼쪽 그림에 있는 아이가 쓴 복건은 호랑이 눈이 그려진 호건이라고 하는데, 이는 총명하고 용맹하라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다홍색 치마에 색동저고리가 인상적이다. 색동저고리는 돌때까지는 남아여아 구분 없지만 그후로는 여아들이 주로 입는다. 왼쪽 맨 위에 있는 배자는 요즘 들어 다시 유행하는데, 저고리가 짧을 경우 그것을 덮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주 편하다. 물론 이 시기에는 방한용으로 입었지만.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면 드디어 혼례를 올린다. 남자의 경우 사모관대라고 해서 이날만큼은 조정의 관리들이 입는 옷을 입는 것이 허락되었다. 요즘은 폐백을 올릴 때나 아예 전통혼례를 올릴 때 이런 복식을 한 신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부의 경우 옷이 더 다채롭고 화려하다. 신랑의 감색 옷과 조화를 이루는 붉은색 옷이 신부의상의 특징이다. 족두리와 앞댕기, 연지곤지... 요즘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신부가 겉에 입는 옷는 왕비의 옷인 활옷이나 공주의 옷인 원삼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결혼식때 보긴 많이 봤어도 잘 몰랐던 부분인데, 그런 것이었구나.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저세상으로 가게 된다. 남겨진 자들은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상복을 입게 된다. 위에 나온 상복은 상당히 간단해 보이는데, 우리집의 경우 남자는 머리에 쓰는 유건과 두루마기까지 갖춰입었다. 상을 당한 첫째날을 표시하기 위해 두루마기의 한쪽 팔은 벗고 있기도 했는데 이는 첫째날에 다른 사람들이 문상을 오는 것을 피하게 하기 위함 이었다. 요즘은 이런 삼베로 만든 상복이 아니라 남자는 양복, 여자는 검은 한복을 입는 것을 주로 보게 되는데, 내 눈에는 여전히 그게 어색하다. 검은색은 서양의 장례식을 떠올리게 하니까.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그래서 왕족과 양반, 상민, 천민들이 입는 옷이 전부 달랐다. 또한 왕을 비롯한 왕족의 경우에도 그 등급에 따라 수의 모양이나 장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왼쪽 페이지의 영조는 붉은 색 곤룡포를, 고종은 황금색 어의를 입고 있다. 고종이 황금색 어의를 입고 있는 것은 이때가 대한제국시절 이었기 때문이다. 황제이기에 황금색 복장을 갖춘 것이다. 오른쪽 페이지의 그림은 앵삼을 입고 어사화를 꽂은 장원급제자의 모습이다. 관리들은 문관과 무관으로 나뉘었는데, 문관의 경우 학이 그려진 흉배가, 무관의 옷에는 범이 그려진 흉배가 있었다. 딱히 난 문관이요, 무관이요, 라고 하지 않아도 그런 것으로 구별되게 만들었으니 영리한 선택이라고나 할까.

양반가의 경우, 남자는 도포, 창의, 두루마기를 입고 외출했다. 나같은 경우 도포와 두루마기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창의는 처음 들어 봤다. 게다가 도포와 두루마기의 차이점도 이번에 알게 되었달까. 도포는 소매폭이 넓고, 두루마기는 소매폭이 좁다.

양반가 여성의 경우, 화려한 색감의 비단 치마을 입었는데 길이도 길고 폭도 넓어 풍성했다. 그런 반면 상민들은 몽당치마라고 해서 발목이 보일 정도의 길이, 천민은 두루치기라고 해서 무릎이 보일 정도의 길이의 치마를 입었다. 그러하다 보니 옷만 봐도 양반인지, 상민인지, 천민인지 구별이 가게 되어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 신분제가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에는 계절에 따른 옷 순서이다. 여름옷은 주로 삼베나 모시로 만들어졌다. 삼베는 그나마 흔한 직물이었지만 모시의 경우 실을 잣기가 힘들어 고급 옷감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조상님들은 지혜를 발휘하여 등나무로 토시나 등거리를 만들어 옷안에 착용했다. 바람길을 만든 것이다. 또한 잘 때는 죽부인을 안고 자기도 했다. 대나무의 성질이 찬 것이니 그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은 얼마나 시원했을꼬.

겨울옷은 무명(면)으로 만들어졌다.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덕분에 민초들의 겨울이 덜 추워지게 된 것이다. 저고리를 겹으로 만들고 그 속에 솜을 두고 누빈 누비옷은 보기에도 포근해 보인다. 또한 부분적인 방한 용도로 쓰인 토시와 조바위, 남바위는 손과 머리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설피의 경우 지금도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에서 사용하고 있느니 그렇게 신기하지는 않았는데, 멱신은 처음 보는 것이라 무척 신기했다. 짚신만 신는 줄 알았더니 짚으로 부츠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랄까.

지금과 달리 옛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옷을 직접 해입었다. 그렇다보니 먼저 옷을 지을 실이 필요하다. 당시 주로 쓰이던 무명, 삼베, 모시, 비단을 만드는 방법이 총 4페이지에 걸쳐 나와있다. 무명이나 삼베의 경우 주로 상민들 이하가 옷을 해입던 재료이고, 모시나 비단은 양반 계급 이상이 옷을 해입던 소재이다. 비단이나 모시의 경우 실을 만들어 옷감으로 만들기 까다로웠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가격이 올라가게 되고 양반들이 주로 옷을 해입게 된 옷감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지방은 삼베로 유명하다. 특히 수의를 짓는 삼베같은 경우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삼베를 꼬아 실로 만들고 그것을 베틀에 넣고 옷감을 만드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의 옷은 지금과 같이 간단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옛사람들은 옷을 세탁할 때도 조심스레 했다. 특히 상민층의 경우 여벌옷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다. 난 이 부분에서 무척 흥미로웠던 것이 옷을 세탁할 때는 옷을 다 뜯어서 세탁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옷감이 최대한 덜 상하도록 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줄기도 많이 줄었을지도 모르고. 나같은 경우 대부분의 옷을 세탁기에 넣고 휙돌리곤 하는데, 이런 걸 보니 정말 옷을 아낄줄 모르고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책 뒤에 나오는 겨레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우리옷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복식 변천사이다. 한 페이지씩 정도 할애된 것이라 자세하지는 않아도 대략적인 복식변천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옷이란 것은 역사책에서 보여주지 않는 다른 부분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거쳐온 우리옷들. 이 옷들은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려주는 보물과 같은 존재이다. 지금은 비록 그 자취를 감춘채 박물관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옷이라 해도 그 속에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 출처 : 책표지, 책 본문 中 (6~7p, 18~19p, 26~27p, 30+31+36p, 40~41p, 42~43p, 52~53p, 54~55p, 59p, 74~75p, 80+81p, 90+92p, 96~97p, 108~109p, 120~1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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