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편지 바벨의 도서관 1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김상훈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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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기획한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를 보고 탄성을 내지를 사람은 나말고도 많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뛰어난 고전 소설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그 작품들을 골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첫번째 책은 에드거 앨런 포의 책이다.

첫번째 작품인 <도둑맞은 편지>는『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의 탐정 오귀스트 뒤팽이 등장하는 추리물이다. 도둑맞은 편지를 찾기 위해 파리경찰청의 경찰국장이 뒤팽과 '나'를 찾아온다. 경찰국장은 용의자의 집을 샅샅이 수색하지만 어디에서 편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편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의 재미는 경찰과 용의자, 그리고 뒤팽의 머리 싸움이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다. 여기에서의 뒤팽은 안락의자탐정같다고 할까.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 추리한 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경찰국장은 용의자가 시인이라고 무시하고 깔봤지만, 결국 자신들의 논리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 거만한 경찰과 경찰의 머리꼭대기에 있는 용의자, 그리고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한 뒤팽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논리로만 상대를 볼 때 시야가 좁아져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병 속에서 나온 수기>는 여행을 하던 한 남자가 바다 폭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고, 그 상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배에서 보고 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수기 형식으로 표현한 글이다. 세상에는 신기한 일이란 것은 없다고 믿던 사람이 자신의 논리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세상을 만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이 작품은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지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차츰 어떻게 받아들여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마지막 한 줄이 압권.

<밸더머 사례의 진상>은 2년전에 읽었었는데, 여전히 오싹하다. 죽어가는 자에게 건 최면술은 언제까지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될까. 최면술이란 것은 무의식적인 부분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제하는 순간까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이 작품을 읽으면 영화 <얼굴없는 미녀>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오싹해진다.

<군중 속의 사람>은 거리를 관찰하던 한 남자가 군중들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 한 수상한 남자를 뒤쫓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자체로는 단조로워보일 수 있으나 그가 창너머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느끼는 점들은 상당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다. 옷차림이나 행동거지를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달까. 하지만 그가 뒤쫓던 남자의 이야기를 보면 문득 우울해진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혼자인 사람, 즉 아주 고독한 사람이며, 인간들 속에 늘 섞여 있는 악이기 대문이다. 사람든 군중속에서 더욱 고독함을 느끼고, 악인도 보통 인간과 섞여버리면 딱히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집 속에서 최고의 작품은 역시 <함정과 진자>이다. 이 소설은 읽을 때마다 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모습에 전율하게 된다. 종교재판을 통해 사형선고를 받고 지하감옥에 갇힌 사람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 그것은 단두대나 교수형처럼 순간적인 죽음을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기에 자비로운 죽음일 뿐. 이 남자는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죽여 마땅한 사람인 것이다. 어두컴컴해서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공간의 중간은 뻥 뚫려 있다. 다행히 그는 그곳으로 떨어지지 않지는 않았지만 그 뒤에 다가올 죽음의 모습은 한층 더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죽음이 눈앞에서 서서히 다가온다. 보통 사람같으면 미치지 않고서 버틸 재간이 있을까. 공포의 수위를 차츰 높여오는 전개방식에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몇 년에 한 번씩 읽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또한 역자가 달라지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작품 자체가 독특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제일 오래된 책은 1991년에 나온 단편집인데,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포의 작품을 읽고 실망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원래 한 작품을 두 번 이상은 잘 읽지 않는 나이지만, 포의 작품만은 몇 번을 읽어도 그때마다 느끼는 재미가 다르달까. 때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좋았던 작품이 싫어지기도 하고, 싫었던 작품이 좋아지는 그런 작가도 있지만, 포의 경우 내겐 늘 신선한 자극과 재미를 주는 작가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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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바케 - 에도시대 약재상연속살인사건 샤바케 1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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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도시대의 요괴 이야기는 많이 접해 봤다. 에도시대의 수사 이야기도 많이 접해 본 편이다. 그런데 에도시대의 요괴 이야기 + 수사 이야기는? 글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요괴의 소행인 것처럼 보여도 실은 사람의 소행이었다거나 요괴의 소행은 맞는데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요괴가 많았기 때문인듯 싶다.

『샤바케』1권 에도시대 약재상 연속살인사건은 요괴 이야기와 수사 이야기가 적절히 혼합된 소설이다. 주인공 이치타로는 대형상회의 외동아들로 방년 17세. 잘생긴 외모와 멋진 집안을 등에 업고 있지만, 문제는 병약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병에 시달렸고 죽을 고비도 몇 번이나 넘겨야 했다. 결국 집에서는 밥만 잘 먹어도 고마워할 처지인 존재로 부모님을 비롯 주변 사람들의 과보호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행수로 있는 사스케와 니키지의 과보호는 그중에서도 최고점을 찍는데, 17살이나 된 도련님을 아기씨라 부르며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사스케와 니키지는 사실 요괴다. 사스케는 이누가미, 니키지는 하쿠타쿠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치타로가 5살때부터 옆을 지키고 있다. 일단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부탁이라지만, 요괴에게 그런 면의 인정과 의리가 있다니. 물론 요괴가 인정머리도 없고, 의리도 없다는 건 아니지만 인간의 부탁으로 물심양면 골골 도련님을 비호한다는 게 좀 의아하긴 하다. (나중에 왜 이들이 도련님을 비호하는지 다 나오지만...) 사스케와 니키지외에도 수많은 요괴들, 특히 츠쿠모가미인 병풍 요괴와 조그마한 야나리들 역시 이치타로 곁에서 늘 이치타로를 지켜주는 존재이다.

이 골골 도련님은 외출도 거의 삼가는 입장이지만, 몰래 밤마실을 나갔다가 살해된 사람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도 무서운데 살인범까지 나타나 도련님 위기일발! 그러나 곁에 있던 방울 아가씨(방울 요괴인데 이 역시 츠쿠모가미이다)의 도움과 이나리 신사에 있는 요괴의 도움으로 아슬아슬하게 그 순간을 모면한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일의 시작에 불과했으니...

어느 날 한 봇짐장수가 이치타로의 약재상에 찾아와 어떤 약을 찾는다. 그는 갑자기 돌변하여 이치타로와 니키지를 공격한다. 그는 도대체 무슨 약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이치타로를 공격한 범인은 그자리에서 잡혔지만, 그와 비슷한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약재상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그들의 죽음에 공통된 것은 범인들이 특별한 약을 찾고 있다는 것 뿐. 도대체 그들이 원한 약은 무엇인걸까.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금방 피곤해져서 몸져 눕는 도련님인지라 요괴들을 풀어 사건의 단서를 모으기 시작하는 이치타로. 이치타로는 그것들을 조합해 어떤 한가지 가정에 도달한다. 이치타로는 어떻게 보면 이 사건 해결에 있어서의 브레인이고 요괴들은 그의 부하로서 활동을 한달까. 요괴가 인간을 돕는 경우는 특정한 이유에서가 많은데 이들의 관계는 참으로 묘~~하다. 그래도 도련님이 요괴들을 잘 챙겨주니 요괴들도 기분이 좋아서 더 잘 도와준다. 그렇다고 이들의 관계가 기브 앤 테이크란 것은 아니고, 도련님 자체가 사람이 좋아 요괴들을 꺼리지 않는달까. 하긴 5살 꼬마때부터 요괴들에 둘러싸여 자라왔으니 요괴가 사람만큼 친근한 것도 그 이유일지는 몰라도.

건장한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누가미, 하쿠타쿠도 멋지지만, 요괴들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츠쿠모가미인 병풍 요괴이다. 화려한 기모노에 성질도 까칠하시지만, 도련님을 생각하는 것만큼은 다른 요괴들에게 지지않는달까. 또한 야나리들도 무척이나 귀엽다. 특히 책에 실린 삽화중에 야나리들이 도련님에게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모습은 아이들이 도련님에게 놀아달라 떼쓰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외에도 도련님에게 수많은 도움을 주는 요괴들의 모습을 보면 때론 정말 사람같달까. 하지만 요괴는 요괴인게 분명하다. 세상을 보는 시각과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확실히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사악하진 않지만... 사악한 것도 있긴 있다. 좀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방법이 나빴지.

도련님의 밤마실에 얽힌 비밀과 약재상 연속살인사건의 비밀, 그리고 도련님 자신에 대한 비밀이 요괴이야기와 어우려져 한편의 멋진 소설로 탄생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에도 시대의 풍속과 풍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 유머스러움과 미스터리함의 조화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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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전집 1 러브크래프트 전집 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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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라는 달콤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성과 달리 호러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H.P. 러브크래프트의 책은 몇년전 앤솔로지 형식의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 읽었던 작품은 <아웃사이더>라는 작품이었다. 이후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언젠가 꼭 전부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새로운 번역으로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실 이 책말고도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다섯권으로 번역한 책이 있지만 번역 오류가 심하다는 말에 발만 동동 구르며 새 번역 재출간을 기다렸는데, 오래 기다리지 않게 되어 무척이나 기쁘다. 사정상 이제서야 러브크래프트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역시 그 오랜 기다림은 허무함으로 끝나지 않았다.

첫번째 작품인 <데이곤>은 바다에서 표류하던 한 남자가 마주치게 된 끔찍한 광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언덕과 그곳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존재. 그는 구조된 후에도 그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환각을 보았다고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실 바다에서 표류하다 보면 수분 섭취나 음식 섭취가 불가능해져서 환각을 보거나 망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망상이나 환각이 그토록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남겨 지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환상이 아니었다면, 나의 자취를 쫓아 언제든 나를 낚아채 암흑속으로 밀어넣을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니알라토텝>은 이집트에서 온 외계의 신으로 절대적 혼돈과 어둠의 중심을 의미하는 매우 음산한 존재이다. 잔혹하며 냉혹한 니알라토텝과 그가 거느리는 괴물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 인간들. 그들은 죽어가면서 본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있기나 했을까.

<그 집에 있는 그림>은 비를 피해 낡고 오래된 집으로 들어간 한 남자가 그 집 주인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끔찍한 공포에 관한 것이다. 오랜 시간 한가지에 몰두해 그것만 생각한다면, 사람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자신이 늘 보고 있는 그림이 현실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집 주인의 뒤로 보이는 열린 문틈 사이에 있던 것은 과연....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공간인 미스캐토닉 계곡이 처음으로 언급된 작품.

<에리히 잔의 선율>은 주인공 '나'가 오제이유가라는 곳에서 하숙을 하던 당시 들었던 바이올린 연주에 관한 이야기로 오랜 시간이 흐른뒤에도 여전히 그 소리에 관한 기억을 마음속에서 놓지 못하는 화자의 회고이다. 에리히 잔이 살고 있던 5층 창문 너머에 존재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조각의 빛도 스며들지 못할 어둠, 그 뒤에 숨어 있던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는 허버트 웨스트란 사람에 관한 연작 소설이다. 대학 동기인 '나'와 허버트 웨스트가 17년전 아컴 소재의 미스캐토닉 대학에서 연구했던 것, 그리고 그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실종될 때까지 허버트 웨스트가 집착했던 것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연구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를 누덕누덕 기워 이름없는 괴물을 창조했다면, 허버트 웨스트는 시체를 되살리기 위한 연구를 했다. 하지만, 이미 뇌까지 죽어버린 시체가 살아난다 해도 인간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란 기대는 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좀비를 만들어낸 두 사람. 연구에 대한 집착은 끝내 파멸을 불러왔을지니.
이 작품이 섬뜩한 이유에는 죽은 자를 되살리기 위해 비도덕적 행위를 그치지 않는 허버트 웨스트란 사람의 인간성이란 것도 있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되살아난 존재가 완벽히 소멸되지 않고 사라진 경우이다. 때로는 그들 앞에 나타난 적도 있지만, 다른 괴물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머리만 되살려낸 크램패리 대령의 등장은 숨이 막힐 정도의 공포를 가져다 준다.

<벽속의 쥐>는 한 남자가 선조의 영지에서 뼈대만 남은 건물을 복원한 후 겪는 공포에 관한 것이었다. 집의 지하에 숨겨져 있던 것. 그것은 고대의 광기 어린 신앙의 현장이었고,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피가 평범한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준 공간이었다.

<크툴루의 부름>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해낸 신화의 세계의 존재 크툴루에 관한 이야기이다. 깊고 깊은 숲 속에서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이 비밀 의식을 치루고 있다. 그들이 숭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이계의 존재이다. 크툴루는 절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크툴루의 도시가 다시 세상으로 떠오를 날까지 비밀 의식을 진행하며 그의 부활을 기다릴테니까. 크툴루의 부활은, 그 때가 언제이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겠지.

책 뒷쪽에 크툴루 일러스트가 실려 있는데, 이 일러스트를 보면서 문득 영화 <딥 라이징>의 괴물이 떠올랐다. 나만 그런가?

<픽맨의 모델>은 픽맨이라는 한 화가의 이야기이다. 그의 그림은 너무나도 기괴하고 공포스러워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지만, 사실적 묘사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이다. 그가 그려내는 것은 상상의 산물일까, 아니면 우리는 모르고 있지만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일까. 인간의 시야는 좁다. 자신이 본 것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던 믿음이 깨지는 순간, 인간은 어떤 공포와 직면하게 될까.

 <네크로노미콘의 역사>에 나오는 네크로노미콘은 압둘 할하즈레드라는 사람이 쓴 금서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러브크래프트의 창조물이다.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다수 언급되는 책이라 사실성을 가미하기 위해 씌어졌는데, 이 작품으로 네크로노미콘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생길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 났다. 나같은 경우 일본 만화 <가방도서관>이란 작품에서 네크로노미콘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그 책에도 러브크래프트의 이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더니치 호러>는 네크로노미콘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으로 더니치에 사는 윌버란 남자가 실은 인간의 아들이 아니라 요그- 소토스라는 외계의 신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는 설정으로 씌어져 있다. 오랜 시간전부터 마법을 익혀온 휘틀리가의 비극이랄까. 휘틀러가 2층에 갇힌 존재는 광기와 난폭함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이다. 가축이 피가 몽땅 빨린 채 죽어가는 사건을 보면 츄파카브라라는 괴물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것은 더욱 사악하고 거대한 암흑의 존재이지만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윌버가 죽기전 괴상한 모습으로 변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변태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의 습격은 그자체로도 사람들에게 극한의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발자국만 남겨지는 걸 보는 걸 상상해보라. 차라리 눈에 보이는 괴물이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인스머스라는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하는 공포물로 이방인인 '나'가 그곳에서 겪는 극한 공포에 관한 이야기이다. 외부 사람들과 고립된 삶을 사는 인스머스의 사람들. 그들의 모습은 기형이라고만 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다. 술주정뱅이 영감에게 들은 인스머스의 비밀은 사실이라고 믿기엔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날 밤 호텔 방문을 두드리며 찾아오는 존재들. 그는 그들을 피해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바다속에 사는 미지의 존재들과의 교배로 태어난 인스머스의 후예들. 그들은 언젠가 바다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곳에서 무사히 탈출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진실은 더욱 깊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혈통에 관한 깨달음이랄까. 자신의 혈통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이다.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죽음으로 밖에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람과 개구리의 모습을 반반씩 가진 디프원. 비릿한 냄새와 바다쪽에서 떼거지로 몰려나오는 그들의 존재를 상상하면...

<현관 앞에 있는 것>은 문이 열렸을 때 그앞에 있는 존재에 대해 일말의 의심을 가질 때 발생할 수 있는 공포를 그리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가?

마지막 작품인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는 로버트 블록에게 바쳐진 작품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의 이름은 로버트 블레이크이다. 마을에 버려져 있는 오래된 교회. 그곳은 이단의 교회였다. 그곳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후 그곳은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 곳이 되었다. 건드리기라도 하면 깊고 깊은 어둠 속에숨어 있는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자연스럽게 무너질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폭풍우로 전력이 끊어진 밤, 그곳의 어둠에 숨어 있던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인간은 예로부터 어둠을 두려워했다. 현대는 전기란 것이 있기 때문에 한 밤중이라도 두려울 정도로 캄캄한 곳은 찾아 보기 힘들다. 불의 발명으로 어둠을 극복했다고 믿는 사람들. 하지만 그것은 어둠을 한층 더 짙게 만들고, 불이 없을 경우의 어둠을 한층 더 두렵게 만들었을 뿐.

『러브크래프트 전집 1- 크툴루 신화』에는 총 1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크툴루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중심으로 수록되어 있다. 사실 크툴루 신화란 것에 대해서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잘 몰랐었다. 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 읽어 나가면서 왜 스티븐 킹이 그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할까. 스티븐 킹의 저작에서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를 들어 '문'이란 장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작가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문'이란 것은 현실 공간의 문이란 뜻도 있지만, 현실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장치로서의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공포는 문을 열어 괴물이 튀어나왔을 때보다 그 문을 열기 전까지 문 뒤에 있는 것을 상상하는 동안 극대화된다. 이는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자주 느낄 수 있었다.

고대의 신 니알라토텝, 크툴루 신화, 그레이트 올드원, 가상의 책이지만 그 진위 여부를 두고 뜨겁게 논쟁이 벌어지는 금서 네크로노미콘까지 그의 손끝에서 창조된 미지의 존재들은 여전히 그 몸을 문 뒤에 숨기고 언제든 우리를 덮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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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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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으로 나온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하긴 읽으려고 하면 신간이 나오고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긴 했지만. 제목은 시적이고 일러스트는 아름답기 그지 없다. 하지만 먼저 읽은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 책이 아주 놀랍다는데,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발표하는 책마다 독특한 느낌의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라 당연히 내 기대치도 높았다.

나루세 마사토라는 경비, 컴퓨터 강사, 영화 엑스트라 출연 등을 하는 프리터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는 독신남이다. 현재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으며 스테디로 사귀는 여자는 없다. 때로 여자가 그리우면 돈을 주고 여자를 사기도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어서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진정한 사랑은 찾지 못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지하철 역에서 자살을 하려던 한 여자를 구해주는 일이 생긴다. 처음엔 관심밖이었지만, 그녀로부터 연락이 오게 되면서 가끔 데이트를 즐기는 사이가 된다.

한편 같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후배 기요시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인 아이코의 할아버지의 뺑소니 사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나루세에게 사건에 대해 의뢰하게 된다. 그 사건에 관련되어 보이는 것은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호라이 클럽. 예전에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던 경험이 있던 나루세는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결국 그 일을 수락하게 된다. 호라이 클럽, 과연 그곳은 어떤 곳일까.

호라이 클럽은 우리나라로 치면 약장수 같은 집단이랄까. 작은 시골 마을에 천막을 치고 노인들을 모셔 놓고 만병통치약이라면서 권하는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들의 수법은 훨씬 더 사악하고 잔인하다. 노인들의 연금을 야금야금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몰래 보험까지 들어 놓고 사망 후 보험금을 수령하는 보험사기 행각까지 저지른다. 하지만 이는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조작된 죽음을 통한 것이었다. 이 일에 이용되는 것은 역시 호라이 클럽의 먹이가 된 노년의 여성이다. 그녀는 점점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호라이 클럽 사람들이 시키는대로 하고 있다.

노인을 공경하지는 못할 망정,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고 협박과 공갈을 일삼고 결국 사고사로 보이게 살인까지 저지르는 무자비한 집단, 호라이 클럽을 조사하는 나루세는 몇 번의 고비에 봉착하게 된다. 잠입 수사라고나 할까. 한 번은 여동생과 함께 한 번은 기요시와 함께, 마지막은 혼자서. 아무리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고 해도, 탐정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해도 무모해보일 정도로 이 일에 매달리는 나루세를 보면서 감탄스럽기도 하고, 철 좀 들어야겠군 이라는 생각도 했달까. 호라이 클럽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중간중간 탐정 사무소에서 의뢰받은 일로 한동안 야쿠자 똘마니로 살았던 일이나 컴퓨터 강사를 할 때 한 노인의 딸을 찾는 일을 했던 일 등 나루세의 과거지사도 종종 등장해 그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재미만 더한 것이 아니고 그 모든 것이 복선이었을 줄이야.

이 책의 트릭은 끝에 가서야 겨우 눈치채게 된다. 눈치 챈 순간은 누가 뒷통수라도 세게 갈긴 것 처럼 순간 멍해진다. 그리고 미친듯이 앞페이지를 넘기면서 복선들을 확인하게 된다. 헉, 이게 이런 의미였어, 라고 중얼거려봤자 이미 늦었다. 이미 작가의 귀신같은 트릭에 속아 넘어가 버렸으니까. 반전도 이런 반전이 숨어 있다니, 정말 우타노 쇼고 서술 트릭의 최고점이다. 서술 트릭 작품은 늘 이렇게 놀라운 반전을 가져 온다. 정말 교묘한 복선과 복선이 깔려 있었다는 건 책의 결말부분에 가서야 눈치챌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만족스러웠다. 노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공갈, 협박 및 보험 사기라는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과 한 개인의 싸움은 사회파 추리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인들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만들게 한다. 젊은 사람들은 노인은 그저 한없이 늙어가는 존재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젊은 시절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무성한 잎을 달고 있었다 해도 지금은 고목일 뿐이라 생각하는 노인의 삶. 나 역시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이었다. 노인들이 사기에 쉽게 넘어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보면서 우리는 노인들의 삶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또 하나의 이유도 있지만, 그건 스포일러가 되므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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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골목
마마하라 엘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소꿉친구와 첫사랑이라. 난 어린 시절 살던 곳에서 초등학교 2학년때 이사하는 바람에 소꿉친구는 없다. 그래서 한동네에 오래 살면서 소꿉친구로 지낸 누군가가 있는 사람이 때론 참 부럽기도 하다. 게다가 난 첫사랑인가 아닌가 하며 가물가물 넘어가는 바람에 첫사랑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다. 사실 첫사랑이란게 보통 그런게 아니던가. 물론 안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서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융통성이 없어 보여 답답하기도 하달까.

술도가 쿠로다의 후계자 슈스케는 6년만에 영국에서 돌아온 소꿉친구이자 아츠시가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츠시는 슈스케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아츠시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버렸다. 게다가 유학에 관해서는 슈스케와 단 한번도 상의한 적이 없어 슈스케는 문자 그대로 고백 한 번 해보지 못한채 실연을 당했던 것.

다시 돌아온 아츠시를 보자 슈스케는 예전 감정이 다시 떠올라 어쩔줄을 몰라 한다. 슈스케는 원래 전도유망한 축구선수였지만 사정으로 인해 축구를 그만두게 되고 한동안은 방탕한 생활도 했었다. 여전히 그런 기미가 좀 남아 있었지만 아츠시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는 순간, 슈스케는 모든 관계를 정리한다. 그러면서도 언제 아츠시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지 몰라 전전긍긍. 그러나 결정적으로 고백을 할 순간이 다가오게되 는데...

아, 이 얼마나 서툰 남자들인가. 하긴 잘못 고백했다가 소꿉친구 관계마저 와르르 무너진다면 본전도 못찾는 꼴이니 슈스케가 발만 동동 구르는 이유가 이해된다. 특히 아츠시가 미팅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팬더 복장으로 그곳을 찾아가 서툰 고백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오랫동안 간직해온 사랑인데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 두려운 건 당연하니까. (그치만 사실 팬더 분장을 하고 나타난 슈스케, 많이 웃겼다. 아니 많이 귀여웠다.)

중간에 서툰 남자 슈스케가 아츠시에게 살짝 잘못하기도 하지만 미수로 끝나 다행이다. 안그랬으면 관계가 어그러졌을걸. 아츠시 역시 슈스케를 좋아했고, 슈스케의 마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해도 아츠시 성격에 그런 건 상처가 되었을 테니까. 서툴지만 착실하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두 남자의 사랑이야기. 예쁘다, 예뻐!

이 작품에는 정말 멋진 조연들이 많다. 특히 아츠시의 조카 쌍둥이인 미미와 모모. 유치원생인데도 은근히 조숙하지만 너무 귀엽고 깜찍하다. 삼촌과 삼촌 친구의 사랑에 의도하지 않는 태클을 걸 때가 있지만 모르고 하는 일인걸. 아우, 귀여워. 게다가 슈스케의 동생 신이 형을 생각해주는 마음, 요부분도 참 좋았다. 형제의 우정이여! 신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단 이야기?? (푸핫)

가느다랗고 여리여리한 선에 조막만한 얼굴. 실제로 이런 사람들은 없겠지만 마마하라 엘리의 작화는 만화의 장점을 최대로 살렸다. 그게 또 멋지고 말이지. 오래된 책이긴 해도 이런 이야기,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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