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단편집 바벨의 도서관 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외 지음, 연진희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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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은 유럽 문학에서 커다란 위치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러시아 문학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거의 없다. 일종의 편견이란 것이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는 러시아 문학은 난해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개인적인 것인데 러시아인들의 이름은 너무 길고 발음도 어려워서 책을 읽다 보면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일도 많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러시아 문학을 접했던 것은 고교시절인데,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와 알레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었었다. 내 책은 아니었고 아버지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 중 골라서 읽었는데, 당시 고교생이던 나에게는 무겁고 어려웠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다. 하긴 그때도 가벼운 소설을 읽는 것을 즐겼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후 러시아 작품을 읽게 된 것은 바로 몇 년전으로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과 스뚜르가츠키 형제의 작품이었는데, 흥미롭게 읽었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도 큰 걱정없이 손에 잡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인 <악어>이다. 악어를 구경하러 갔던 이반 마트베이치가 악어에게 먹혀버리고 마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풍자소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나이가 악어 뱃속에서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악어 주인인 독일인은 그 사실을 몰랐을 때도 그 사나이를 위해 악어를 죽일 수 없다고 했을 정도이니 악어 뱃속에서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것으로 더욱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반 마트베이치의 친구인 나는 이 문제를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만 그는 엉뚱하게도 자신은 그럴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며, 러시아 경제를 위해서는 악어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한다. 게다가 이반 마트베이치의 아내는 악어 뱃속에 들어간 남편과 이혼할 궁리를 한다. 하지만 제일 가관인 것은 악어 뱃속에 들어간 이반 마트베이치다. 그는 자신이 유명해질 것이라며 '나'를 비서로 삼고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계획하고 떠들어댄다. 이 모든 등장인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를 가져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단편이지만 한편의 군상극이자 풍자소설인 이 작품은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악어>는 배금사상, 물질만능주의, 관료정치의 비판과 더불어 지식인층과 여론지도층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두 편의 신문 기사는 이 풍자극의 정점을 찍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이 작품이 미완성 원고라고는 하지만 난 이 작품 자체로도 훌륭한 완결성을 가진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두번째 작품인 <라자로>는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작품이다. 사실 난 이 작가의 이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최근에 그의 작품 세편이 출간된 것으로 보아 그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가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은 병사한 라자로라는 남자가 예수에 의해 사흘뒤 부활한 뒤의 삶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마을 사람들은 라자로가 부활해서 돌아왔을 때 그의 부활을 기뻐하고 환영했다. 하지만 라자로는 아무것에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아니 오히려 공허함과 음울함만이 그의 주변을 떠돌고 있는 분위기랄까. 죽음이란 것을 체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공포와 공허함은 라자로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고 부질없는 것이라고 느끼게 한다. 비탄과 두려움이 그대로 담겨있는 그의 눈빛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그를 기피하게 만든다.

만약 내가 라자로와 같은 경우라면 난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될까. 때때로 죽음의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사람들은 제 2의 삶이라 하며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라자로와 그들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라자로는 확실한 죽음을 경험했고, 다른 이들은 죽음의 기운만을 느꼈기 때문일까. 결국 비탄과 두려움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삶을 선택한 라자로의 모습은 완전한 죽음 이후의 부활이 기꺼운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한다.

마지막 작품인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역시 안드레예프의 <라자로>와 마찬가지로 죽음이란 것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그 결말은 사뭇 다른 작품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그의 삶 전반을 다룬다. 물론 어린시절의 삶이나 청소년기의 삶에 대해서는 훑듯이 스치고 지나가고, 성인이 된 후의 삶에 대해서 주로 다루긴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부유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고상하며 경쾌한 삶을 살았다. 직장 문제에 있어서도 탄탄대로였고, 사랑스런 여성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후의 삶은 급격히 달라진다. 아내는 임신한 후부터 그에게 짜증을 내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는 등 그의 결혼 생활은 오랫동안 삐걱거렸다. 또한 승진문제에 있어서도 밀리는 등 그는 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다.

올라가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또 올라가는 길이 나오듯 미끄러져 내리던 그의 삶이 다시 행복의 궤도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 생활도 오래지않아 그는 병을 앓게 되고 그것은 그의 삶을 급격히 추락시킨다. 원인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 병과의 싸움에서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하루하루 말라붙어간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된 태도로 그를 대한다고 생각하게 되니, 어찌 하루하루가 편하랴.
하지만 이것이 이반 일리치의 망상만이 아니란 것은 글을 읽으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장례식에 참가한 지인들은 얼른 돌아가 카드 게임을 즐길 생각을 하고, 아내는 좀더 많은 돈을 정부로 받아내길 바란는 첫장면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평소 그의 아내는 그를 배려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도 그를 끊임없이 깎아내렸고, 딸은 엄마를 닮아 다른데에 온통 정신이 팔렸으니, 이런 상황의 이반 일리치를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참을 수 없는 통증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던 이반 일리치는 죽기 얼마전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 보게 된다. 자신의 삶이 어땠는지를 돌아보던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이 옳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죽기 몇 시간 전에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비록 삶은 고통스러웠을지라도 죽은 후의 얼굴이 편안했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구원을 받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에게 때이른 죽음이 찾아온 것을 보면 그를 가엽게 여기면서도 내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반 일리치 역시 죽음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에 더욱큰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하지만 죽음이 완전한 끝은 아니라 생각한다. 비록 끝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또다른 곳에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테니.

러시아 단편집에는 도스토옙스키, 안드레예프, 톨스토이의 작품이 한 편씩 실려 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잘 알려진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은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몇몇 작품의 이름은 댈수 있는 작가이고, 톨스토이 역시 <바보 이반>이나 <안나 카레니나>등의 작품은 읽어본 사람들이 많은 유명한 작가이다. 나 역시 이 두 작품은 읽은 적이 있는데, 하도 오래전이라 줄거리 전체가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안드레예프의 이름은 솔직히 처음 들어 봤다. 하지만 왜 우리에게 낯선 안드레예프가 이 책에 실려 있는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달까. 작품 전반에 흐르는 공허함과 음울함은 왠지 러시아 작가가 아니면 쓰기 힘든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세 작품의 분위기는 모두 달랐지만, 각 작품은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무척 흥미로웠다. 앞으로는 다양한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좀 더 많이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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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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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사는 곳은 인구가 20만이 채 안되는 작은 지방도시이다. 20년전에도 17만 정도라고 했으니 인구의 변화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경은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도시 중심을 제외한 주변의 땅에는 거의 변화가 없지만 시내쪽은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아파트 단지마다 조그마한 수퍼가 있고, 그 근처로는 재래시장이 섰지만 이제 재래시장은 큰 것 두개를 제외하고는 다 사라졌고, 아파트도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대형 평수가 많은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다. 또한 예전의 중심지가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여 한때 주택지로 인기가 높았던 곳은 사양화를 걷고 있고, 예전에는 허허벌판이던 곳이 개발이 되어 그곳을 중심으로 주택지가 새로 조성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공무원, 학생, 그리고 농민을 빼면 다른 직장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만큼 다른 면에서는 낙후되어 있다. 좋은 말로 양반의 도시이자 학문의 도시이지 그것빼면 시체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는 인구수에 비해 꽤 많은 편인데, 그 이유는 시외쪽의 시골에서 시내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울 아부지가 다니시던 초등학교는 이젠 분교처럼 되어 버렸을 정도 시외 인구는 줄어들어 버린 상태다. 그래도 국립대학을 비롯해 대학도 몇 군데나 되어 그쪽으로 진학하는 학생도 꽤 많지만 대부분은 서울같은 대도시쪽으로 진학하는 편이다. 고교생들까지는 많은데, 20대 이후의 젊은층이 별로 없달까. 그나마 학생들이 많아서 그렇지 안그러면 진즉에 고령화되고도 남을 도시다. 이는 단일시로서는 면적이 제일 넓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우스울 정도로 우울한 일일지도.

유메노 역시 그런 도시이다. 인구 12만의 작은 지방 도시. 주변의 작은 도시 3개가 합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퍽도 적다. 하지만 역시 이곳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와 신시가지는 발전하는 한편 구시가지는 날로 몰락해간다. 거대한 마트와 전자 상가는 개인 수퍼와 상점들을 문닫게 했고, 젊은층이 점점 줄어들면서 도시 자체가 고령화되어 간다.

이 소설은 다섯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몰락해가는 한 지방도시의 실상을 때로는 유머스럽게 때로는 잔혹하고 진중하게 묘사하고 있다. 30대 초반의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시청공무원으로 생활보호대상자를 관리하는 케이스워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의 보조만 받으려는 사람들을 물색해 그들의 보조를 끊고, 더이상 보호대상자가 늘지 않도록 조사를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아이하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은 일본의 생활보호대상자는 정말 돈을 많이 받는구나, 그리고 심사를 쉽게 통과할 수도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달까. 우리나라의 경우 심사기준이 까다로운데다가 정작 나오는 돈은 얼마 되지도 않아 보조금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돈데, 유메노의 경우 수십만엔, 우리돈으로 수백만원이 넘는 돈이 생활보호보조금으로 지급된다. 이러니 사람들은 일을 안하고 보조금을 타서 놀고 먹으려는 케이스가 많아졌지만.. 특히 싱글맘에게도 보조금이 이렇게 지급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여기도 재정이 불안해지자 보조금받는 대상을 줄이고 심사기준을 높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하라는 언젠가 현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계기가 그의 삶을 180도 바꿔놓고 만다. 그가 우연히 파칭코 주차장에서 목격한 것은 주부원조교제였다. 한 여인에게 꽂힌 그는 그 주부를 스토킹하기도 하고 다른 여자를 사기도 한다. 이혼한 상태인 그로서는 별로 꺼릴 것이 없지만, 문득 그는 이 주부들을 보면서 자신의 전처도 그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범한 공무원에서 갑자기 일탈 노선을 타게 된 아이하라는 일을 대충대충하다가 한 생활보호대상자 대상에게 찍히고 만다. 사회부적응자인 그에게 목숨의 위협까지 당하게 되는 아이하라는 어떻게서든 그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구보 후미에는 고교 2학년 학생으로 이곳의 정체된 삶이 싫어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어한다. 짝사랑하는 남학생역시 도교대 시험을 볼 예정이라 그 일을 반드시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성적은 아슬아슬하다. 벌써 도쿄 지역의 대학생이 된 듯 자기 주변의 고교생을 깔보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구보 후미에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는 개뿔. 학원에서 돌아오다 덜컥 납치를 당하고 마는데...

후미에를 납치한 것은 게임 오타쿠. 그의 집 별채에 갇혀 하루하루 눈물 마를 날이 없는 후미에는 조금씩 감금생활에 적응해 간다. 이 오타쿠는 완전히 게임에 빠져 그녀를 메일린이라 부르고 자신을 루크라고 할 정도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진 상태로 부모를 상대로 잦은 폭력과 폭언을 구사한다. 후미에는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탈출하려 하지만 감금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또다른 걱정이 생긴다. 무사히 돌아간다고 해도 이미 납치 및 감금 사건에 연루된 것이 세상에 다 알려졌을 것이고 그 뒤에 나올 이야기가 너무나도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진 소문은 솜방망이가 쇠방망이가 되고, 티끌만한 것이 태산이 되어버리니까.

가토 유야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로 전직 폭주족 출신이다. 지금은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직장이란 것이 폭주족 출신들이 만든 회사이다. 일찍 결혼을 했지만 이혼, 아이는 전처가 기르고 있다.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 하지만 배운 것 없고, 기술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노인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일 뿐. 같은 폭주족 출신 후배들은 브라질인들과 싸움을 하지를 않나, 생활보호대상자에서 밀려난 전처는 아이를 그에게 덜컥 맡겨버리고, 그의 선배는 사장때문에 속상해하다가 사고를 쳐버리는데...

호리베 다에코는 40대 후반의 여성으로 대형마트의 보안요원으로 일한다. 식품매장에서의 좀도둑을 잡는 역할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지만 가족관계가 좋지 않아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 동기간인 오빠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이고, 자식들은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아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신흥종교에 빠져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신흥종교집단의 표적이 되어 직장에서 쫓겨난 다에코는 어머니 입원문제때문에 속상해하다 경증 치매에 거동까지 불편한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고 만다. 돈도 없지 직장에선 해고되었지, 신흥종교집단에는 매달 돈을 바쳐야지.

다에코를 보면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달 회비로 2만엔(우리돈으로 20만원이 넘는다)을 납부해야하고, 출가하려면 전재산을 바쳐야 하는데, 왜 교주가 돈욕심이 없다고 할까. 아마도 말빨에 속아서, 자신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는 것에 속아서 그렇지 싶다. 현세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생각하고 내세를 위해 산다니. 그런 교주가 성형수술에 고급 가구에 명품쇼핑을 하나? 거참.

야마모토 준이치는 40대 초반의 시의원으로 현의원을 꿈꾸고 있다. 아버지대부터 정치을 해 온 집안이라 이 지방 유지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부동산 회사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야쿠자와도 손을 잡고 있다.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쳐져 입후보만 하면 당선이 되던 것도 옛날 말. 지금은 은퇴한 정치인의 무리한 요구와 시민단체의 압력으로 골치가 썩어난다. 게다가 마누라는 집을 수리할 계획에 돈을 퍼붓지를 않나 명품 쇼핑에 돈을 들이붓지를 않나, 아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딸은 벌써부터 엄마를 닮아 쇼핑에 맛을 들였다. 현의원으로 출세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였지만, 어느샌가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큰 일을 내고야 마는데...

이들을 보면 10대부터 40대까지의 인물들이다. 즉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하겠다. 10대를 대표하는 후미에는 지방 대학보다는 도교쪽의 대학을 선호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은 여느 지방을 가도 똑같다. 하지만 그 꿈은 납치 및 감금이란 것으로 산산히 부서진다. 20대를 대표하는 유야는 10대 시절의 불량소년, 지금은 노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을 한다. 이른 결혼의 실패로 이혼한 상태에 아들까지 기르게 된 상황. 그의 선배 시바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사장과 시비가 붙어 사고를 친 후 인생 종치게 된 상황에 몰렸다. 30대의 아이하라는 공무원생화을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괜히 우쭐해서 생활보호대상자 선정에 혹독한 칼날을 휘둘렀다 자신이 그 칼을 맞게 생겼고, 거기다가 전처을 묘한 곳에서 만나게 되어버렸다. 40대 초반의 시의원 야마모토는 현의원으로 출마할 꿈을 가지고 있지만, 은퇴한 정치인과 알력싸움에서 큰 일을 저지르고, 야쿠자와 험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즉 빼도 박도 못하는 상태에 몰렸다. 다에코는 신흥종교가 자신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줬다고 믿었지만, 그게 다 거짓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이외에도 부모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히키코모리 게임 오타쿠, 이민 노동자로 사회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브라질인들(디뉴), 공부에는 관심없고 어른들의 말은 그냥 생으로 씹어버리는 고교생들, 폭력과 공갈과 협박이 최선의 해결책이라 믿는 야쿠자, 주부 원조 교제단 등은 유메노란 작은 소도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곳을 묘사한듯 하기도 하다. 하긴 유메노를 세상의 축소판이라 보면 납득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몰락해가는 지방 소도시의 정체와 우울,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대조적인 모습을 비롯해 젊은층이 대도시로 빠져나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혼 가구의 급증 등은 사양길에 접어든 중소도시의 씁쓸한 이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유메노라는 도시에 사는 이들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꿈들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어쩌면 이들이 불순한 꿈을 꿨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몰락할 대로 몰락한 유메노의 사정이 이들의 발목을 붙잡아 버린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결말부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들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아마 죄를 지은 자는 죄를 지은 자대로 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슬그머니 빠져나갈 인간도 틀림없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 일을 계기로 완전한 다른 삶을 꿈꿀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꿈은 꿈이기에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반쯤 부서진 꿈을 이들은 다시 온전한 꿈으로, 온전한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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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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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아직 아이였던 나는 그 시대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이 가장 큰 화제였던지라, 그것들이 아련한 기억 중 그나마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고 보면 그런 건 낭만과 거리가 먼 듯하다. 하긴 그 나이의 꼬마가 낭만이 뭔지 사랑이 뭔지 알리가 없었지. 내가 생각하는 낭만의 시대는 90년대 중반이다. 내가 20대에 접어든 시기였고, 대학생이 된 시기였기에. 고교시절까지 학교란 테두리에 갇혀 감옥같은 생활을 했다고 느꼈으니 대학생활의 자유로움은 달콤한 낭만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뿐.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낭만이란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픔과 상실, 그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천샹, 예러우, 그리고 망허가 살던 시대는 1980년대의 중국이다. 그 시절은 시의 낭만이 흘렀고, 시인들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시인들은 방랑자였고, 시인들은 발길 닿는대로 중국 대륙 곳곳을 누볐다. 천샹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시인 망허를 사랑했다. 그러나 방랑하는 시인을 붙잡을 수 없는 천샹은 그들이 나눈 사랑을 추억하며 몇 달을 보낸후 학교 선배인 라우저우어와 결혼한다. 일곱달만에 아기를 낳은 천샹은 아이의 이름을 샤오촨이라 짓게 된다. 천샹은 비록 망허는 자신을 떠났지만 자신에게 남겨진 샤오촨을 보면서 영원히 그를 곁에 두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를 사랑한다 해도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사람도 아닌 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평생을 내어줄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는 시를 쓸 수도 시인이 되지도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만약 망허가 아닌 다른 시인이었다 해도 그녀는 그런 선택을 내릴 수 있었을까. 사랑이란 것이 때로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결단을 내리게도 한다지만, 천샹의 선택은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혹시 한순간의 열정이 그녀를 사로잡은 건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샤오촨을 낳은 후 그녀가 샤오촨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던 모습을, 언젠가 샤오촨에게 전해질 편지를 쓰던 천샹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한순간의 열정이라 말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파멸은 소리없이 찾아왔다. 그녀가 시인의 아들이라 굳건히 믿는 샤오촨의 생부가 망허가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름을 사칭한 채 한 여자의 마음을 산산히 부서뜨린 자는 아마도 이런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토록 지극한 모성애를 보였던 천샹이었건만, 그 일은 천샹이 모진 마음을 먹게 만들기도 했다. 결국 샤오촨은 천샹의 시골집으로 보내지게 되지만, 그곳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다른 남자의 아이란 것을 알면서도 샤오촨을 자신의 아이로 거두고 천샹을 숭배하다시피 하면서 살아온 라우저우어. 그는 무너진 천샹을 보면서, 샤오촨을 밀어내는 천샹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만을 바라보며 자신만을 사랑해온 여자를 사랑하는 라우저우어는 결국 또다시 천샹도 샤오촨도 잃고 혼자가 되었다. 이미 커다란 상실을 겪은 적이 있던 라우저우어는 또다시 커다란 상실을 겪게 되는 것이다. 상실이란 자주 겪는다고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픔도 절망도 겪으면 겪을수록 더 큰 아픔과 절망으로 돌아올 뿐이다. 결국 라우저우어에게 남겨진 것은 상실의 기억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짜 망허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권위 있는 학술기관에 배치되지만 그곳의 딱딱한 시스템에 숨막혀 한다. 때때로 시를 쓰던 망허는 결국 사표를 내던지고 자유를 찾아 시상을 찾아 여행길에 오르게 되고, 미즈란 곳에서 자신을 알아 보는 예러우란 사회학과 대학원생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게된 망허는 그곳에서 예러우와 하룻밤을 보내지만, 예러우는 다음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린다. 예러우가 한동안 답사 여행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망허는 사후커우란 곳에서 예러우를 기다려 결국 예러우와 재회한다. 예러우는 왜 허둥지둥 망허의 곁을 떠났을까.

당신이 시인이란 게 무서워요. 시인은 항상 새로운 감정을 갈구하고, 신선한 사랑, 낯선 자극을 원하죠. 영원히 신선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시인의 영감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난 평범한 여자예요. 내게 필요한 건 평범한 사랑이예요. […] 당신은 결코 나와 함께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일생을 살 수 없어요. 그런 생활은 당신을 질리게 하겠죠. 당신이 내게 싫증이 나서 어느 날 갑자기 날 내팽개치고 떠날까 두려워요. 내가 당신 인생의 따분한 추억이나 해프닝으로 끝나버리는 게 무섭다고요. 그런 결말은 절대로 원하지 않아요. (129p)

예러우는 망허를 더욱 사랑하게 되기 전에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가 가진 시인의 마음, 그것은 예러우가 망허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겁내게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예러우는 재회했을 때 더이상 망허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사랑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니까. 예러우와 망허 두 사람은 함께 답사 여행을 하면서 자꾸만 없어져 가고 무너져 내려가는 지방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곳 사람들의 한 편의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은 얼마 후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들의 힘겹지만 꿈결같은 여행은 갑작스런 이유로 막을 내리게 된다.

예러우는 자궁 외 임신 상태였고, 고된 여정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예러우의 갑작스런 죽음에 망허는 망연자실해지고 시란 것을 손에서 놓아버린다. 그후 러시아로 건너간 그는 나타샤란 여성을 만나게 되고 또다른 삶을 시작한다. 난 망허가 평생 그녀를 기억하면서 살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른 사람을 만난다. 순수의 시대는 예러우의 죽음으로 막을 내려 버린 것이다. 어쩌면 순수의 시대가 완전히 허물어지기 전에 아름답게 끝나버린 것은 예러우의 죽음이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황톳빛 바람이 부는 황톳빛 대지에서 의지할 것이라곤 단 둘뿐이였으니 그들이 도시로 돌아가 다른 일상을 만나게 된다면 망허의 마음 속에 또다른 바람이 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내겐 들지 않는다.

천샹은 자신이 사랑이라 믿었던 것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삶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시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허락한 예러우는 죽음으로 삶을 잃었다. 망허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시를 버렸다. 사랑했으나 아픔과 절망과 상실을 동시에 맛봐야 했던 이들을 치유해준 것은 시간과 사람이었다. 특히 천샹의 경우 샤오촨이 자신때문에 죽었을거라 생각했을테니 그간의 시간은 지옥과도 같았을 것이다. 샤오촨에게 편지를 쓰고 찢고 또 편지를 쓰고 하는 천샹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릿해져 온다. 비록 한순간은 샤오촨을 버렸을지라도, 어미는 어미였으니까. 그에 비하면 망허는 또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업까지 성공하게 되니 겉으로 보기엔 천샹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훗날 두 사람이 재회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상실을 극복하고 치유의 길을 더 잘 걸어온 것은 천샹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삶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요, 아픔과 상실과 치유의 반복일런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랑이 거짓임을 알게 되고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평생을 같이 하고 싶었던 사람을 불의의 사고로 잃을 수도 있다. 운명의 베틀에서는 행복과 희망의 실이 들어가 짜여지기도 하고, 절망과 아픔과 상실이라는 실이 들어가 짜여지기도 한다. 그 운명의 베틀에서 짜여지는 완성품은 하늘의 부름을 받을 때가 되어서야 그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예러우의 운명의 베틀은 이미 멈췄지만, 천샹과 망허의 베틀은 여전히 덜그럭거리면서 그들의 운명을 짜고 있을 것이다. 한때 천샹의 운명의 베틀에서는 시에 대한 사랑이란 실이 들어가 하나의 무늬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다른 실이 다른 무늬를 짜낼 것이고, 망허의 베틀에서는 예러우란 실이 들어가 하나의 무늬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다른 실이 다른 무늬를 짜내고 있을 것이다. 

시의 시대, 순수의 시대, 길 위의 시대는 저물었을지라도 그것이 영원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음 속에 그리고 정신 속에 새겨진 흔적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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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가게 바벨의 도서관 2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하창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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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조지 웰스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의 원작 소설 <닥터 모로의 섬>과 영화 <우주전쟁>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중 <닥터 모로의 DNA>의 경우 원래 영화 제목은 소설 제목을 그대로 따왔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는 이상한 제목으로 바뀌게되었다. 여튼간에 그의 이름을 잘 모르겠다 하는 사람이라도 영화 제목을 말하면 아하, 라고 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외의 유명 작품으로는 <투명인간>, <타임머신>등이 있다.

첫번째 작품인 <벽 안의 문>은 어린 시절 우연히 발견한 문 안쪽의 세상을 평생 잊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문 안쪽의 세상은 세상 어느 정원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지만, 그곳에서 만난 한 여인은 그에게 그의 이야기가 씌어진 책을 보여주며 이미 이곳에서의 그의 이야기가 끝났음을 시사한다. 그후 그의 앞에 그 문은 여러번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동경하던 문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일에 매달려 그 문을 번번히 지나치고 만다. 이미 그는 처음 그 정원에 들어갔을 때의 아이가 아닌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역시 그런 문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현실의 욕망이 앞서기 때문에 우리는 두 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현실을 버리고 그곳을 택했을 경우 어떤 것이 우리를 기다릴지 모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어린시절에 보았던 것은 어린 아이만이 볼 수 있는 환상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플래트너 이야기>는 플래트너란 사람이 실험을 하다 실종된 후 아흐레 간 머물게 된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폭발로 인해 다른 차원으로 튕겨져 나갔던 것일까. 그곳에서 그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의 영혼이 희미하게 비치는 현실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선과 악이 더 이상 우리가 선택할 대상이 아닐 때에도, 우리 앞에 놓이게 되는 수많은 사건들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여전히 지켜보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영혼이 만약 죽음 뒤에도 계속된다면, 우리의 관심은 죽음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 틀림없다. (89p)

인간의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어쩌면 수많은 영혼들은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도 모르고, 우리와 아주 가까운 장소에서 - 하지만 다른 장소에서 - 배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 엘비스햄 씨 이야기>는 여기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작품이었다. 늙은이와 젊은이의 영혼이 뒤바뀐다, 는 설정은 그 자체로도 끔찍하다. 물론 노인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의미는 아니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구만리같은 젊은이의 인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인간의 욕망에 치가 떨린다. 또한 젊은이 역시 노인의 사탕발린 말에 넘어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닌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렸으니 그 또한 추한 욕망의 제물이 되어버린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끔찍한 것은 마지막 한문장이었다. 최고의 반전!

<수정 계란>은 SF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우연히 획득하게 된 계란 모양의 수정을 들여다 보던 남자는 무엇을 보게 된 것일까. 그 안쪽의 모습에 사로잡혀 결국 사망하게 되는 한 남자. 남자의 삶은 불행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고 아이들은 의붓자식들이다. 그렇다 보니 가족과 행복한 삶을 누리지도 못했고, 그렇다 보니 더더욱 수정 계란 안쪽의 환상적인 풍경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정계란이 어디에서 온 것이고, 그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게 된 순간 오싹함을 느낄 것이다. 

<마술 가게>는 예전에 어디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 어느 책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역시 유쾌하고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진짜 마술이 존재하는 마술 가게. 그곳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지만 어른과 아이가 느끼는 감각은 사뭇 다르다. 마술가게 주인의 마술 시범이 보여주는 환상의 시간. 그러나 그곳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은 아니다. 내 눈앞에 마술 가게의 문이 보이면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으로 발을 들여 놓으리라.

바벨의 도서관 2권 허버트 조지 웰스 편에는 총 5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또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허버트 조지 웰스가 그려내는 환상소설 세계의 짜릿한 맛을 느껴볼 수 있으니 입문서로 더할 나위 없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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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괴동 3
모치즈키 미네타로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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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고 이후 자신의 생각을 떠오르는대로 내뱉는 하시, 그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 내뱉는 말마다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고 결국 자신조차 상처를 입고 있는 소년이다. 하시의 유일한 즐거움은 만화를 그리는 일이며, 그 만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음악을 늘 듣고 즐기는 것 같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오르가즘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견뎌할 수 없어한다. 그때문에 친구와도 가족과도 멀어져 지금은 크리스티아나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뚜렷하게 치료법이 없는 듯 하다. 

마리는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아이로 처음에는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물체에만 반응을 보이지만 그 증상은 점점 심해져 세상은 반쪽으로 보였다가 이제는 움직이는 물체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히데오는 UFO와 접촉을 한 적이 있다는 소년으로 통각실조증에 걸려 어떤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또한 늘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하려고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심각한 건망증 증세로 바로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청년은 경찰차나 구급차의 경광등 불빛에 반응하여 폭주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을 치료하는 건 타마키라는 젊고 유능한 의사, 하지만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진실한 자신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진실한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큰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었으니.... 

완결편인 3권의 내용은 우울하고 슬프다. 진실한 자신을 찾으려했던 타마키는 자신을 받아들여 줬던 사람들 역시 자신을 우스개거리로 생각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시는 수술을 받을 결심을 하게 되었으니. 3권에서 하시의 완전한 속마음이 드러나는데, 난 그걸 알게 된 후, 이 바보같은 녀석이라고 말하고 싶었달까. 생각나는 대로 내뱉으면서 다른 사람을 상처줬지만, 그건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니. 수술중 타마키와의 대화는 가슴을 찌르르하게 만들었다. 하시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펑펑 우는 타마키를 보면서 하시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 그리고 히데오나 하나, 마리가 진정 원했던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 큰 소망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사랑해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따스하게 내밀어준 손, 기댈 수 있는 어깨. 백마디 천마디 말보다 더욱 필요했던 것은 사람의 체온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해란 것은 상대적으로 강자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난 너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널 이해해줄 수 있어, 라는 느낌이랄까. 평등한 관계라기 보다는 상하가 분명한 관계. 때론 이해한다는 말보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이 더 큰 치유일지도 모른다. 히데오가 마리에게 다가가는 방법, 그건 어른들은 간과하고 있던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하시가 그린 마지막 만화는 하시나 하나, 히데오, 마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빙벽안에 갇혀 그안의 세상밖에 모르고 살았던 펭귄들과 하늘을 날 수 있어 다른 펭귄들에게 배척을 받았던 스카이워커. 그의 비행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었고, 자아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꼭 가보고 싶어. 저 끝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도착하면 난 지금과는 또 다른 나로 변할 수 있을 것 같아. (163p)

여행중 만난 닭인 프라이드 우드는 스카이워커와 한동안 함께 여행을 하지만 결국 자신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라이드 우드는 스카이워커가 무척 외로운 존재였다는 것만은 알아주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정상이란 것의 범위는 어느만큼의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는 만큼 정상의 범위는 꽤 넓을 것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살짝 벗어났다고 해서 비정상이란 딱지를 붙이고 그들을 외톨이로 만드는 건 스스로를 정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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