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기사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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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물론, 인간은 매일매일 일정 분량의 기억을 상실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들 중 대부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라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몽땅 잃었을 경우라면? 자신의 이름도 살던 곳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에 어른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이들처럼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은 좌절을 넘어 커다란 절망을 가져올 것이다.

한 남자가 인적이 드문 공원 벤치에서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는 잠시 멍하게 앉아 있으며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를 떠올리려 한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아무리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이나 살던 곳 등 자신에 관한 기억 모두가 사라져 버렸다. 남자는 혼란스럽기만하다. 자신이 가진 물건 중에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도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자는 주위를 돌아보며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만 단편적인 것 하나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이리저리 방황하다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료코. 갈 곳도 없고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그는 료코에게 의지하게 된다.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끼던 그는 문득문득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혹시 결혼한 것은 아닐까, 아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다니던 중이 아닐까. 남자는 료코가 지어준 이시오카 게이치로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지만 늘 마음 한구석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공장에 취직해 남들처럼 살아가게 된 이시오카는 미타라이 점성술학원이란 곳에 들르게 된 후, 이시오카는 마타라이와 금세 친해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어떤 것이 작용했는지는 몰라도 미타라이에게는 모든 것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만사를 달관한 듯한 그의 태도가 마음을 편하게 해줬을지도 모르겠지만.

그후 우연히 료코의 서랍에서 발견한 자신의 운전면허증. 이시오카는 그 운전면허증에 적힌 주소로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지만, 그건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아내와 아이는 죽었다. 이시오카는 혹시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닐까 하며 두려워하지만 아내가 남긴 일기장과 자신이 남긴 일기를 읽으며 자신의 과거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참혹하고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한가지 선택지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전반부에서는 기억을 잃은 남자가 새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경위와 사랑하는 여자 료코와의 생활, 그리고 점성술학원을 운영하는 미타라이와 나누는 우정이 주된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중반부는 이시카와가 아내의 일기와 자신의 일기를 읽으며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된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한듯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과거는 여전히 모호하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내와 자신이 남긴 글뿐이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백지 상태의 뇌는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이시카와에게 남겨지는 건 복수심 뿐인 것이다.

이 작품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또다른 반전을 준비한다. 거기에서 드러나는 진실은 뭐랄까, 작가가 준비해 놓은 섬세한 플롯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느낌이랄까. 엉성하고 나사 하나쯤 빠진 듯한 미타라이가 멀쩡한 정신으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을 보면서 작가가 준비해 놓았던 복선을 그제서야 눈치채게 되는 것이다.

『이방의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것은 '기억을 잃은 사람이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몽땅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다른 무엇보다 자신이 과거에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걱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이라면 몰라도 혹시 범죄에 연루되거나 사람을 해친 과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그의 신경은 벼랑끝에 선 사람처럼 날카로워지리라. 또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기 위해 작은 단서에도 집착하게 되고, 그리고 자신이 찾은 단서를 곧이 곧대로 믿을 수 밖에 없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이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이상, 그것만이 자신과 과거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이시카와가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고, 결국 참담한 진실과 마주쳤을 때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 만약 료코가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미타라이가 옆에 없었다면 이시카와는 더욱 깊은 개미지옥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잃고 온전한 이방의 세계에서 자신의 참담했던 과거와 조금씩 마주치게 된 이시카와와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던 미타라이의 만남은 어쩌면 서로의 파장이 맞았기에 그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석은 같은 극을 밀어내지만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결락감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사람에게 끌리기 때문이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보다는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되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섬세한 심리묘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기억이란 것이 가지고 있는 모호함과 지배력이란 속성, 섬세한 복선과 정교한 플롯을 비롯해 점성술사라는 특이한 직업에 특이한 성격을 가진 탐정의 등장은 이 책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그들의 다른 이야기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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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X50 피프티 피프티
쿠니에다 사이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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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다보면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의 문제로 신경전을 펼치게 될 때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처음에야 '자기 좋은대로 해',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등의 달달한 멘트를 날리며 상대를 배려하는 듯한 행동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관계는 조금씩 바뀌게 된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인간의 속성이란 게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면이 많기 때문이다. 뭐, 안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서로 라이벌 관계를 느끼는 두 사람의 경우에는 어떨까. 그것도 질기고 질긴 악연(?)이 고교시절부터 시작되어 사회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진다면? 이럴 경우에는 굳이 연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우위를 강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을까.

카와니시 와타루와 히가시노 슈조와의 관계가 꼭 그렇다. 고교시절부터 날리던 남자들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연애는 그렇게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게다가 둘의 연애 사이클 또한 비슷해서 시작하는 시기도 끝나는 시기도 - 실은 상대방에게 차이지만 - 비슷비슷하다. 남자들이란 묘한 곳에 경쟁심을 발동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 나이를 먹어도 애다 - 두 사람은 각자의 연애에 있어서도 경쟁심을 발동시키곤 했다. 뭐, 그래도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는 걸 보면 악연은 아닌듯. 그저 성격이 다르고 취향이 좀 다를 뿐, 결국 하는 짓은 똑같다. 친구가 될 수 밖에 없는 둘이랄까.

사실 공 VS 공 만화라고 해서 두사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룰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각자의 연애사정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 흥미로웠다. 원래도 자뻑 기질이 좀 있는데다가 술만 먹으면 말이 많아지는 카와니시와 범생이 타입이 고대로 성장한듯 보이지만 은근히 변태기질이 있는 히가시노가 만나면 솔직히 시끄럽다. 어찌나 수다를 떨어주시는지. 이러니 여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두 사람을 떠나는 것인지도. 어쩌면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눈치챈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겉모습은 여자들에게 인기 많을 타입일지는 몰라도 실제 성격은 그다지 매력은 없다. (내 취향은 아니란 말씀)

연애만 하면 다 깨지고 마는 비운(?)의 두 남자. 그들의 이야기는 웃기게 그려지긴 했지만 어찌보면 서글프기도 하다. 나름대로 연애관이 확실한 편인데, 그것에 맞춰줄 여자가 없으니. 게다가 겉모습만 보고 다가왔다가 그들의 다른 모습에 놀라 휭하니 사라지는 여자들도 문제일지도.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둘이 제대로 된 사랑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일부분에 집착하는 버릇을 버려!

다음권이 나올지 아니면 이렇게 끝난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엔 이들은 평생 이러고 살 것 같다. (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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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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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는 철저한 모계집단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대장 암컷코끼리는 무리 중 가장 연장자로 무리를 통솔하는 의무를 가진다. 코끼리의 경우 이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에 물웅덩이가 있는 곳, 먹을 곳이 풍부한 곳, 위험이 적은 곳 등 수많은 시간을 살아오며 얻은 지혜가 꼭 필요하다. 그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두머리 암컷 코끼리이다. 이렇다 보니 상아를 얻기 위해 인간이 나이든 코끼리를 죽일 경우, 무리는 대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것들만이 남아 무리 자체가 존속할 수 없게 되어 결국 그 무리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하기에 나이든 코끼리는 코끼리 무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다면 인간사회는 어떠할까. 예전만 해도 노인은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노인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많이 달라졌다. 의학의 발달과 평균수명의 증가로 노년층 인구가 급증하게 되고, 반대로 출산율은 감소하게 되어 인구성장모형은 역피라미드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출산율은 높지만 영유아 사망률이 높고 평균수명도 지금보다 현저히 낮아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정체된 인구성장모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이후 베이붐 세대가 태어났고, 그들은 현재 60대 초반이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은 형제자매가 많다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 아부지쪽은 7남매, 엄마쪽은 5남매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무렵 -1970년대 -에는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홍보사업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수명이 점차 연장되어 그런지 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구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사람들의 결혼율과 출산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대신 평균수명의 급속한 증가로 출생률과 사망률이 동시에 떨어져 어린 인구는 적어지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도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일본 역시 2차세계대전 이후의 베이비붐 세대로 인해 폭발적인 인구성장을 이루었고, 원래 장수국가였던지라 평균수명 역시 꽤 높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국민연금은 바닥을 드러내게 되고, 젊은이 하나당 노인을 7명 책임져야 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정규직보다는 파견직이나 프리터를 하는 인구 비율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부담은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놀고 먹으면서 제 권리 다 찾는 노인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인구조절구역』은 이러한 현대 사회의 노인문제와 관련한 소설이다. 노인들의 수가 급증하자 정부는 70대이상의 노인들의 살인을 종용하는 <노인상호처벌제도>라는 것을 도입한다. 이는 지정된 지역의 70대 노인들에게 서로를 죽이도록 하는 것이다. '실버 배틀'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30일동안의 배틀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를 남기게 한다. 만약 기한을 넘기거나 생존자가 둘 이상이면 남아있는 모든 사람은 정부에 의해 처형당하게 된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게된 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몇가지 없다. 죽임을 당하는 것이 싫으면 상대를 죽이고 살아남거나, 자살을 하거나, 아는 사람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하거나.

거동이 가능하고 아직 기력이 충분한 노인들은 총기류 같은 무기를 구입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에 있는 날붙이 등을 이용해 서로를 죽이기 시작한다. 장소에 따라 노인들이 적은 곳도 있고 많은 곳도 있지만 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미야와키쵸는 60명가량의 노인들이 있다. 그들은 한때는 이웃이었지만 이제는 서로가 적이다. 죽고 죽이는 배틀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들의 자식들은 손을 놓고만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배틀을 방해하는 사람 역시 처형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 젊은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해줘. 그러기 위해서 너희 노인들이 죽어줘. (151p)

개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치매나 오랜 병으로 가족들이 고통받는 경우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오랜 병에 효자없다는 우리말 속담도 있다. 같은 핏줄이요 나를 낳아준 부모지만 이들은 그저 살육을 지켜볼 뿐이다. 때로는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의 부모를 죽이기도 하고, 배틀 대상인 사람을 찾아가 자신의 부모를 죽여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잔혹한 학살극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때로는 그 장면이 너무 잔혹해서 눈을 돌리고 싶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코믹함이 잔혹함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츠츠이 야스타카는 특유의 코믹함과 스피디한 전개로 잔혹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그런 장면은 인간말종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죽음에서 최고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들의 죽음은 개죽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잉여 인간으로 취급되어 도살당하는 것 뿐이다. 정부는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 싫어 노인들이 스스로 그 일에 나서게 만드는 최악의 집단일 뿐이다. 

아직 걸을 수 있는 노인에게 휠체어를 제공하여 걷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자기 손으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노인에게 밥을 지어줘 스스로 음식을 만들 수 없도록 해버렸구요. 결국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노인들이 범람하게 된 거지요. 일사(一事)가 만사(萬事)라는 양식이야말로 이 배틀의 간접 원인이라고요. (242p)

정부는 복지제도를 만들어 노인을 우대해오는 정책를 펴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목을 조르자 이번에는 노인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생각인가. 

현대사회에 있어서 노인의 활동은 제한되어 있다. 게다가 치매나 노환으로 오는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 가족의 부양부담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방법밖에는 없는 것일까. 이 소설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등골이 찌르르한 느낌을 받게 한다. 어쩌면 이런 것이 근미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70대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이 소설을 집필했다는 작가의 소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70대의 노인이 본 현대 사회, 그리고 그가 상상하는 근미래사회. 츠츠이 야스타카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이고, 노년의 작가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상대를 죽여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 노인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죽을 수 있는 존재이며, 도덕도 양심도 생존이란 단 하나의 문제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노인들은 더이상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존재,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인류의 지혜를 전달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쓸모없는 존재, 죽어주는 것이 마땅한 잉여인간으로 치부되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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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홈즈걸 2 : 출장 편 -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 명탐정 홈즈걸 2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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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점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20대 어성 두명의 활약을 다룬 코지 미스터리 명탐정 홈즈걸 제 2권. 어쩌다 보니 - 어쩌다 보니? 2권만 달랑 샀잖아! (ε= 퍽) - 2권부터 읽게 되었다. 서점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이라니, 서점이란 공간자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웠달까. 지금이야 대부분의 책을 (삑) 모든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서점에 가는 것을 즐겼던 사람중의 하나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내가 사는 곳은 지방의 중소도시로 예전에는 그런대로 큰 서점들이 몇군데나 있어서 돌아다니면서 책구경을 했지만, 어느 샌가 서점은 하나둘씩 없어지고, 있는 서점도 확장이 아니라 대폭 축소된 공간에서 제한된 책들만 판매한다. 주로 참고서와 잡지류를 파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도시는 학교가 꽤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만화류는 거의 들어오지도 않고, 소설도 베스트셀러류만 들어온다. 그렇다보니 자연히 서점에 발을 끊게 되었달까.

그렇다해도 난 몇달에 한 번씩 서울에 가는 길에 대형서점에 들르곤 한다. 넓고 넓은 매장을 둘러보는 것만 해도 즐거움이 넘쳐나는 곳. 하지만 대형서점들 대부분의 특징은 잘 보이는 곳에는 베스트셀러들만이 산처럼 쌓여 있다는 것이고, 베스트셀러는 회전율이 빨라 금세 다른 책으로 바뀐다는 특징을 가진다. 하지만 작은 서점에서는 구할수 없는 희귀본이나 비싼 책들도 있고, 원서 종류도 다양해서 몇시간이고 지루하지않게 시간을 보낼수 있기도 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너무 많이 산만하고, 작은 서점에서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은 없다는 것이 단점일 것이다.

교코는 지방에 있는 세이후란 서점의 직원이다. 대형서점은 아니지만 단골 고객도 많고 책종류도 다양한 편이라 교코는 세이후에서 일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코앞으로 예전 동료였던 미호가 보낸 편지가 한 통 도착한다. 미호는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의 유서깊은 서점인 마루우도에서 근무하고 있다. 미호의 편지에는 마루우도에 유령소동이 일어나 서점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교코는 처음엔 별로 내켜하진 않지만 결국 동료직원이자 명탐정인 다에와 함께 신슈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전혀 예상밖의 사건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 유령이 27년전 유명 작가를 죽인 작가의 제자의 유령란 것이었다. 그 사건에 대해 당시 사건 관련자를 탐문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27년전 사건의 비밀. 인터뷰 대상인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건을 아키오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믿고 있었다. 다른 범인이 있다는 확신과 사라진 원고가 있다는 소문은 사실인 것일까.

일단 세이후와 관련한 알리바이 미스터리로 가볍게 시작하는 이 소설은 신슈로 공간이 바뀌면서 오래전의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란 다소 무거운 이야기로 넘어간다. 관련자들을 탐문하면서 보여주는 다에의 모습은 다소 엉뚱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명확하고 빈틈이 없다. 법학부 학생이라 뛰어난 추리력을 가지고 있지만 손재주라곤 전혀 없는 다에의 모습은 무거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가볍게 느끼게 해준다. 또한 전문탐정이 아니기에 때로는 허점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조차 매력적이다. 사실 다에가 스케치북에 그리고 적은 것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인데, 이런 것을 보면 때때로 똑똑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엉뚱하기 그지없다.

이 사건에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질투, 그리고 의심이란 것이 얽혀있었다. 인기 작가의 문하생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대필을 해야 했고,자신있게 쓴 자신의 작품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데뷔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 수업이란 것은 정말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 해도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죽은 글일 것이다. 또한 재능이 별로 없을 경우 노력만으로 되지 않을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런 부분이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살해당한 스승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제자의 아픈 상처를 헤집어 놓았는데, 그것이 그의 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픔이 좋은 글의 토대가 될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자의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타인이 간섭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명탐정 홈즈걸 2 : 출장편』은 현재 일어난 유령 소동과 27년 전 사건 미스터리한 관계를 풀어가는 부분도 재미있지만, 서점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대형서점과 중형서점, 그리고 지방의 소형서점에 대한 출판사들의 차별대우를 비롯해, 독서가들의 감소와 온라인 서점들의 증가로 인해 점점 입지가 좁아져가는 오프라인 서점들의 아픈 현실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또한 각각의 서점이 내는 분위기가 다른 이유를 비롯해 현대 사회에서 서점이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홈즈걸의 다른 시리즈도 무척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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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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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혼자서 귀를 파지만 어린 시절에는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엄마가 귀청소롤 대신해주셨다. 움직이면 큰일난다, 라는 말에 꼼짝도 않고 귀를 대고 누워 귓속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것을 듣는 순간은 시원하면서도 무서운 그런 복잡미묘한 기분을 가지게 하는 시간이었다. 귓속으로 귀이개가 들락날락 할 때마다 뭐랄까, 간지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이 작품을 읽다 보니 옛날에 엄마 무릎을 베고 귀청소를 하던 생각이 문득문득 났달까.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의 손님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로 저마다의 고민도 있고, 저마다의 사정도 있는 사람들이다.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연령층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느끼는 귀청소를 하는 시간에 대한 느낌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듯 하다. 

한 소년은 할아버지가 귀를 파는 것을 마지막으로 임종하는 순간을 지켜보고, 할아버지가 행복해하며 돌아가신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한다. 사춘기적 호기심이 더해진 작품인데, 첫장면은 임종이란 다소 무거운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이 에피소드의 끝장면은 풋하고 웃음이 터져버린다.

긴머리 남자는 첫사랑 여인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의 딸이 그에게 찾아와 전하는 이야기는 아련함을 남긴다.

동선동 일기는 귀 파주는 가게 근처에서 귀청소를 할때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은밀하게 엿듣는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인데, 변태적이라기 보다는 노년의 비밀스러움을 즐기는 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엿볼수 있었다.

검을 잘 다루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달인은 대사가 하나도 없지만 그림만으로 충분히 그 내용을 전한다. 검의 명수이지만 작은 생명 하나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남자. 그는 짚단 베기를 할 때 잠자리가 앉아 있는 곳을 피해 벤다거나, 그를 찾아온 길고양이 가족에게 자신이 먹을 밥을 선뜻 내놓기도 한다. 그런 그가 겪고 있는 문제는 모기가 귓속에 들어가 앵앵댄다는 것. 물론 죽여서 꺼낼수도 있겠지만 그는 굳이 야마모토 귀파주는 가게를 찾아간다. 살아서 앵~~하고 날개짓하며 날아가던 모기의 운명은 그후 비극이 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따스함을 안겨 준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남자는 권고퇴직당한 후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후에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떠돌이 개와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중 소소한 행운도 만나고, 불운도 만나게 되는 남자는 야마모토 귀파주는 가게에서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단지 귀청소일 뿐인데 불면증은 싹 사라지고 달디 단 잠을 잘 수 있었던 남자. 이런 걸 보면 행복은 정말 소소한 데에 깃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레온나, 즉 비를 부르는 여자는 이혼녀이자 싱글맘이다. 그녀가 뭐만 하려 하면 비가 온다나. 그런 사람이 있다. 소풍을 가려하면 비가 오고, 생일만 되면 비가 오고, 결혼식날도 비가 오고, 결국 이혼까지 했다. 그녀의 인생은 불운으로 점철되어 보이지만, 귀파주는 가게를 다녀온 그녀의 운명은 180도 변했다. 이는 귀파주는 가게의 작은 마법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들 부부와 아이가 만들어낸 삶의 작은 마법이 아니었을까.

이외에도 불감증에 시달리는 여자, 어린 시절 시원하게 귀를 파주던 감각을 잊지 못하는 여자, 출산의 두려움을 가진 여자 등 각 에피소드는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편 한편마다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달까. 또한 작화 자체는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 어렵지만 각 인물들의 개성을 잘 담아 내고 있다. 또한 귀를 파는 순간에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이 담긴 손끝, 발끝의 모습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에 수록된 총 9편의 에피소드들은 짧은 분량이지만 그나름의 완결성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때로는 풋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때로는 미묘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한 작품들은 우리 삶의 긴 시간에서 찰나를 점하고 있는 귀청소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우리 인생의 모든 시간 중에서 극히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 그 시간은 각각의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에게 꼭 어울리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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