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편지 바벨의 도서관 1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김상훈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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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는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신선함을 주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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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기둥 바벨의 도서관 4
레오폴도 루고네스 지음, 조구호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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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네번째 책은 레오폴도 루고네스의『소금 기둥』이다. 레오폴도 루고네스는 스페인에서 태어났지만 청년 시절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후 강경 사회주의자 지식인 그룹에 들어가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그 이듬해 시집을 펴내면서 문단에 데뷔한 작가이다. 주로 시와 평론 활동을 해왔던 작가로 소설은 3권을 펴냈는데, 여기에 실린 작품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직접 선정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수르>는 자신의 침팬지 이수르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치려던 한 남자가 남긴 기록이다. 이 남자는 원숭이 종류는 원래 인간이었지만 말문을 닫고 원시세계로 돌아감으로써 원숭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이수르에게 차근차근 인간의 말을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없이 많은 난관에 봉착했고, 그는 이수르가 자의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수르는 정말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말을 하지 않았던 것 뿐일까. 그렇다면 마지막 문장은 진실일까, 아니면 그의 집착에서 나온 환상이었을까.   

<불비>와 <소금 기둥>은 성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두 작품 모두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불비>는 어느 날 한 도시에서 일어난 수수께끼같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청명한 여름 하늘,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하늘에서 뜨거운 놋쇠 비가 떨어져 내린다. 첫 불비는 강도가 약해 도시 사람들은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두번째 내린 불비는 그 강도가 점점 세진다. 혼란에 빠진 도시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간다. 이 작품을 보면서 오랜 시간전에 살던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신의 벌이라 생각했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어떤 것이라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대체 어떤 연유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몰라 혼란에 빠진 사자의 등장시켜 이같은 일을 겪은 인간의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려워지는 것. 그러나 하늘은 청명하기만 하고, 그 누구도 그에 대한 대답을 내려주는 이가 없다.

<소금 기둥>은 한 수도사가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소금 기둥으로 변해버린 롯의 아내를 구원하려 하지만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려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롯의 아내 역시 천사의 경고를 어기고 뒤를 돌아봤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다. 이 수도사 역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봤을 때 무엇을 봤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멸해졌다. 인간은 때로 유혹에 너무나도 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때로는 호기심을 억눌러야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앞의 두 작품이 성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된 이야기라면 <압데라의 말>은 헤라클레스 신화를 차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압데라라는 도시는 말로 유명한 도시이다. 사람들은 말을 사랑했고 잘 돌봐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들은 사람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말썽을 부리는 정도를 넘어 인간들을 공격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광포해진 말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토록 사랑했던 말들에게 공격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그때 영웅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주석에 헤라클레스와 관련된 내용이 없었더라면 사자를 등에 지고 나타난 영웅이 누굴까 했을 것이다. 원래 이야기에 따르자면 압데라 시는 말에게 잡아먹힌 자신의 친구 압데라스를 위해 헤라클레스가 세운 도시라고 한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원래 이야기에 변형을 가해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구성한 작가의 능력이 정말이지 놀랍기만 하다.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은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일을 겪은 한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의 선을 따라 그림을 그렸을 때 나타난 한 형체. 정말 잘못 본 것이거나 잘못 따라 그렸다고 믿고 싶지 않았을까.

<프란체스카>와 <줄리엣 같은 할머니>는 두 작품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프란체스카>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이야기에서 그 모티브를 따오고 있다. 난쟁이이자 곱사등이인데다 난폭하고 잔혹하기까지한 귀족에게 속아 결혼하게 된 프란체스카는 그의 동생 파올로를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를 가슴 속 깊이 품었었지만, 그것은 마음으로도 족했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다. 눈빛에 담긴 애절한 마음을 본 난쟁이 귀족은 결국 둘을 죽여버리고 만다. <줄리엣 같은 할머니>의 올리비아와 에밀리오는 나이차가 20살이나 나는 고모와 조카 관계이다. 우정같은 사랑을 40여년간 지속해온 두 사람. 그들은 어느 날 밤 나이팅게일의 마법에 빠져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는 순간에 이르지만... 아 무심한 달빛이여. 달빛은 밤의 종다리, 로미오와 줄리엣이 헤어질 시간을 의미했으니...

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형수와 시동생, 고모와 조카이다. 즉 도덕적인 면에서나 윤리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서로에게 마음을 허락해서는 안되는 사이이다. 그러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야기는 비도덕적인 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마음 속 깊이 묻어 둔 사랑, 바라보기만 해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에서는 달빛이 중요한 장치로 쓰이고 있다. 한쪽은 그들의 사랑의 파멸을 가져왔고, 한쪽은 고백의 순간을 막아버렸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더욱더 안타까운 사랑이 되어버렸다.
 
『소금 기둥』에 수록된 총 7편의 작품은 공상과학과 환상, 성서와 신화의 내용의 각색, 공포, 사랑 이야기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는 레오폴도 루고네스란 작가의 작품 경향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도록 안배한 보르헤스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더라면 난 레오폴도 루고네스란 작가의 이름조차 모른채 살았을지도 모를테니까. '아르헨티나 문학의 전 과정을 단 한사람으로 축소해야 한다면' 그 사람이 레오폴도 루고네스가 될 것이란 보르헤스의 말처럼 이 작품집은  나에게 여전히 생소한 아르헨티나 문학에 대한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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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
츠하라 야스미 지음, 고주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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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憂愁)란 단어는 근심과 걱정이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우수라는 단어를 보면 쓸쓸함과 적막함이란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우수에 찬 눈빛이란 단어에서도 연상되듯이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을 필시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만의 문제이기에 누구도 알아줄 수 없다, 그런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첫번째 작품인 <백합나무 그늘>은 루피너스 학원 동급생이었던 마야의 장례식장면으로 시작한다. 고작 스물 다섯의 나이에 난치병으로 생을 마감한 마야가 죽기 전에 만들었다는 기묘한 작은 길에 대한 수수께끼는 사이코가 몰랐던 마야의 과거와 그녀가 비밀로 감추어 두었던 옛날 일을 드러나게 한다. 그녀가 그토록 친한 사람들에게까지 비밀로 남겨 두고 싶었던 것, 그것은 그녀가 어린시절 겪어야만 했던 안타깝고도 아픈 사연이었으며 꼭 지켜야만 했던 약속을 의미한 것이기도 했다.

<개는 환영하지 않아>는 대학 시절 사이코와 시지마가 함께 강의를 들었던 교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교수의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은 날 저녁 벌어진 사건. 피해자는 교수의 집 정원안에 있는 집에서 살던 인물이었다. 다행히 강도상해사건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도대체 범인은 무엇을 노렸던 것일까. 도도새의 일화와 하치코의 이야기는 이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기묘한 이야기로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은 사람의 끝없는 욕심이었다. 사람은 왜 이리도 과거에 집착하는 것일까, 를 곰곰히 생각케 한 작품.  

<첫 밀실>은 사이코와 시지마, 키리에가 대학교 1학년이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네편의 작품중 처음으로 마야가 생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연히 옛날에 해결했던 사건의 관계자를 만나게 된 사이코. 그 옛날 사건이란 밀실안에서 살해당한 한 여학생에 관한 것으로 당시 범인이 어머니로 밝혀졌지만, 실은 그 속에 더 깊은 사연이 들어 있었다. 가족이란 도대체 어떤 식으로 허물어질 수도 있는지를, 그리고 가족이기에 절대로 끊어낼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4년전의 사건, 그리고 지금에서야 밝혀지는 진실. 

<자비의 화원>은 고교 졸업식 전날 일어난 루피너스 학원 내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칼에 찔린 채로 발견된 이사장.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이사장을 살해한 것일까. 루피너스 탐정단의 고교시절 마지막 활약상을 담은 작품이자 『우수』의 마지막 작품으로 수록된 이 작품은 루피너스 탐정단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란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나 역시 쓸쓸한 마음이 들었달까.

츠하라 야스미의 루피너스 탐정단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인『우수』는 총 네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 <개는 환영하지 않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작품은 각 사건의 관계자들의 숨겨진 사연과 아픔을 담고 있다. 수수께끼가 품고 있는 것들은 아픔과 쓰라림, 그리고 환상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동반하고 있지만, 그것은 대개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드러나게 된다.

그러하기에 수록 작품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울하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드는 것은 사이코의 언니 후지코와 후지코의 상사인 코고가 등장할 때 최고점을 찍는다. 이들이 등장하면 분위기는 급반전된달까. 물론 네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도 웃음이 터지게 하지만 후지코와 코고는 그 이상을 보여준다. 푸흡, 하고 터지게 만드는 웃음 코드. 그러고 보니『아시야 가의 전설』도 이런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런 게 츠하라 야스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작가 특유의 코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는 현재로부터 시작해 고교시절 졸업을 바로 앞에 둔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적 구성을 가지는데, 오히려 이런 구성이 더욱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더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마야의 죽음에서 시작되는 작품이 살아 생전 건강하고 발랄했던 마야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넘어가면서 아릿한 아픔과 그리움까지 느끼게 된다. 비록 그때 그 시절 친구들 중 한 사람의 불귀의 객이 되었고, 다른 친구들 역시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추억은 그들의 마음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비록 과거와 관련된 사건들이란 것이 이 작품들의 공통된 점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즐거움, 행복함, 하지만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함께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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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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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도대체 어떤 상황이 되면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범인은 타고난 살인자는 아니다. 그래서 그 동기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동기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그 동기가 너무 복잡해서 하나로 연결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노리즈키 린타로의『잘린 머리에게 물어봐』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가와시마 이사쿠는 살아있는 몸을 석고로 뜨는 라이프캐스팅에 의한 인체조각를 하는 전위조각가이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한때는 큰 이슈가 된 인물이었으나 일본의 시걸이란 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작업이 평론가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으면서 작품 생활을 접고 조용히 은거하던 그가 10년만에 친딸인 에치카를 모델로 한 라이프캐스팅 석고상을 만든다. 그러나 작품이 완성되자마자 그는 쓰러지게 되고 결국 며칠만에 세상을 뜨고 만다. 

가와시마의 장례식이 끝난 후, 석고상의 머리가 깨끗하게 절단된 채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석고상의 머리를 잘라간 것일까. 이것은 모델이 된 조각가의 딸 에치카에 대한 살인 예고인것일까. 가와시마 이사쿠의 동생 아쓰시는 이 문제를 추리작가이자 탐정인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의뢰하게 된다. 수사 초기부터 가와시마 이사쿠의 전시회를 담당한 큐레이터 우사미 쇼진이 사사건건 끼어들어 노리즈키 린타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만 우사미는 의외로 이 사건과 가와시마의 석고상에 대해 통찰력있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석고상의 머리를 잘린 범인이 밝혀질 때 즈음해서 조각가의 딸 에치카가 실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만 남은 사체로 발견된다. 도대체 에치카를 노린 것은 누구인가.

추리 소설에서 목이 잘린 사체라는 것은 일종의 트릭을 의미한다. 사체의 신원을 밝히기 어렵게 만들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랄까. 굳이 사체를 숨기고 싶으면 목을 자르지 않고 사체 자체를 파묻거나 수장시키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목을 잘라 머리만 들고 가게 된다. 잘린 머리는 작기도 하거니와 인간의 사체를 전부 옮기는 것보다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다른 이유로 머리가 잘리기도 한다. 내가 전에 읽었던 다른 작품에서는 사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머리를 잘랐던 경우도 있었다. 머리만 놔두고 몸통만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경우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든 말든 상관없단 태도였달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체의 머리는 신원확인을 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 잘리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굉장히 미묘했던 것은 목이 잘린 석고상의 경우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고, 에치카의 경우 머리만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에치카의 신원을 숨기고 싶었다면 머리를 숨겨야하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머리만이 발견되게끔 만들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석고상의 머리는 왜 발견되지 않은 것이며, 우사미는 몸통만 남은 석고상을 왜 빼돌린 것일까. 우사미의 경우 그가 큐레이터란 것을 생각해볼 때 몸통만 남은 석고상을 빼돌린 이유가 설명된다. 이 작품이 작가의 유작인만큼 그는 전시회란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니까. 이런 걸 보면 예술하는 사람들이란...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사건 수사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증거품인데 몰래 빼돌리고 숨기기까지 하다니 말이다.

책을 펴들고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이 책의 미스터리에는 가족문제를 비롯해 상당히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나온 갈등이 포함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와시마의 가족관계는 꽤나 복잡했기 때문이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드러나는 가족의 비밀은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할 정도로 복잡기묘하기 때문이다. 생각이상의 것이 숨어 있었달까. 또한 예술가와 그의 작품이 관련되어 있는 만큼 그쪽에 관한 이야기에도 집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우사미 쇼진이 내놓은 메두사의 머리에 관한 의견이라든지 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우사미 쇼진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인물중의 하나인데 처음에는 분명이 노리카즈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이지만, 결국 사건보다는 예술이란 것에 더 집착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건을 더 꼬이게 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그외에도 에치카를 스토킹하던 인물인 도모토도 에치카의 실종과 관련한 행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그에게도 신경을 잔뜩 기울일 수 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우사미를 비롯해 노리카즈를 빼놓은 인물 모두가 수상쩍어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현직 경찰, 아들은 추리소설가이자 명탐정이라는 노리즈키 부자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아들 노리즈키는 처음에 아버지에게 이 사건에 대해 숨기고 독자적인 수사를 펼치지만 에치카가 실종된 후 목만 남은 사체로 발견됨에 따라 아버지와 공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리즈키는 수없이 많은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고 수수께끼의 중심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명탐정이란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게(?) 많은 실패를 거듭한다고 할까. 하긴 노리즈키 역시 사람이니 실패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딱 보면 척이다 라는 천재도 아니다 보니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하나하나 검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직접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증거를 찾기도 하는 등 노리즈키의 수사는 매우 인간적이다, 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작품의 경우 살아있던 사람의 머리보다 잘린 석고상의 머리가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사미 쇼진의 해석도 흥미롭지만, 그 뒤에 감춰진 비밀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는 후반부에서 충격적인 한마디로 정리되는데, 이는 이보다 앞선 노리즈키의 꿈이 복선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노리즈키의 꿈은 예지몽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 이게 그런 의미였군, 이란 말이 저절로 나왔달까. 그외에도 무심코 넘기기 쉬운 것들이 모두 복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책의 결말부에서이다. 그렇게 보자면 작품 전체에 섬세하고 촘촘한 복선이 깔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반전도 준비되어 있다. 

오해가 만든 증오에서 나온 일그러진 관계, 그리고 그것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되풀이되면서 또다른 참극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사건의 범인은 이제까지 읽었던 작품들 중에 가장 흉학한 범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인간성이 결여되었다고 보여진다. 속물적이며 즉물적이라고 할까.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은 연쇄살인도 아니요, 단 한명의 희생자만 나오는데다가, 진행이 좀 느린 편이라 초반부는 약간 지루한 감이 있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속속들이 밝혀지는 사건의 인과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그 치밀한 구성에 감탄하게 되고 인간적인 탐정 노리즈키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논리적으로 증명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에 그 진실을 한꺼번에 떠뜨려내는 부분은 결말이 주는 속시원함과 더불어 사건 속에 감춰진 어둠을 직시하게함으로써 비뚤어진 인간관계와 구제할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한 씁쓸한 마음도 함께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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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12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무서운데... 스즈야님 리뷰 보니까 마구 읽고 싶어지네요. :)

스즈야 2011-02-12 23:56   좋아요 0 | URL
이 책 강추합니다. 약간 두꺼운 편이지만 금세 몰입해서 읽으실거예요.. ^^
 
이웃집 그 사람 - 뉴 루비코믹스 600
키노시타 케이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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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동주택 생활이 늘어나고 단독주택이라도 이웃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집이 많은 요즘은 이웃을 잘 만나야 편하다고 한다. 그건 꼭 도움을 받는 관계라기 보다는 폐를 끼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미이다. 그건 예전처럼 이웃사촌이란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웃과 가깝게 지내고자 하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일이다 뭐다 해서 바쁘게 지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된 나가노 출신의 마츠다군은 도쿄로 이사를 하면서 자취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사 후 이웃에게 첫 인사를 하러 갔던 마츠다군은 작은 여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야오토메를 만나게 된다. 부스스한 머리에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추리닝 차림에 제대로 된 일도 하지 않아 보이는 야오토메를 보면서 마츠다군은 경계심이 발동한다. 하지만 하나와 야오토메와 자주 만나게 되면서 마츠다군은 자연스럽게 경계심을 풀리게 되고 이웃사촌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이웃이 되어 간다.

하나의 아빠일까. 야오토메씨의 직업은 무엇일까. 마츠다군은 점점 옆집 그 남자가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물어 봐도 잘 대답도 안해주고, 놀리듯 얼버무리는 야오토메. 하나의 말에 따르면 야오토메는 아빠는 아니란다. 요씨라고 부르는 하나와 야오토메의 관계는....?

야오토메가 바쁘면 하나를 돌봐주기도 하고, 같이 밥도 먹는 사이가 되어 가지만 마츠다군에게 있어 야오토메는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어쩌면 어른의 여유라고나 할까, 그런게 곳곳에서 드러나 가끔 마츠다군은 약이 오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야오토메가 집을 비우게 된 사이 하나가 열이 나고, 마츠다군은 하나를 병원으로 데려간다. 어린 마음에 놀란 마츠다군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야오토메. 그러나, 야오토메의 고마움 표현이!? 엉겁결에 당한 키스에 마츠다군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는 못하고, 야오토메가 자신을 놀리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드는 동시에, '좋았다'라는 생각도 한다. 어이쿠야!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야오토메와 점점 야오토메가 좋아지는 마츠다군. 뭐랄까. 야오토메를 보면 어른의 여유가 느껴진다. 뭐, 때로는 그게 심술맞아 보이기도 하지만,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니다. 특히 과거에 그렇게 아픈 상처가 있었으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당시 얼마나 큰 죄책감이 들었을까. 그리고 하나를 보면서 얼마나 미안하게 여기고 있을까. 말로는 아이가 싫다고 하면서도 하나의 일이라면 열일 제치고 달려오는 야오토메를 보면 그게 아니란 걸 다 안다.

키노시타 케이코의 작품답게 풋풋, 발랄, 상큼하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마츠다군은 귀엽기 그지없다. 순진하기도 하지만 '날 좋아해줘요.'라는 고백을 할 만큼 배짱도 두둑하다. 야오토메의 경우 아무래도 나이도 있고 인생 경험도 풍부한지라 어른의 여유가 팍팍 느껴진다. 마츠다군을 가지고 논다는 느낌은 없는데, 은근히 요리조리 빠져나간달까. 마츠다군 입장에서 보면 손에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사람이 야오토메다. 이 아저씨도 첨엔 뭐 이래, 이랬는데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라나, 뭐라나. 원래 부스스한 머리에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고 추리닝만 걸치고 다니는 아저씨 타입은 딱 싫지만 야오토메는 마음에 든다. 아마도 겉모습과는 달리 속마음은 무척이나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게다가 이 작품의 감초 역할을 하는 하나도 엄청 귀엽다. 요즘 아이처럼 되바라지지도 않고 말이지. 

특별한 장소, 특별한 사람들, 특별한 일은 거의 나오지 않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알콩달콩 엮어가는 이야기가 참 좋다. 그리고 소프트해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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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씨 너무 좋죠~! 후후. 이런 어른 너무 좋다니까요. :)
저도 이 책 재밌게 읽었는데, 오랜만에 리뷰 보니 너무 반갑네요!

스즈야 2011-01-22 01:2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요씨 겉으로 보기엔 별론데 알고 나니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더군요. 키노시타 케이코의 인물들은 매력이 흘러 넘쳐요. 소프트한 매력도 좋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