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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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이란 단어를 보면 우리는 먼저 사랑 고백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누구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고백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지만 고백이란 것이 늘 즐겁고 행복한 기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책『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좀 다른 의미의 고백이다. 여기에서의 고백은 수치스러운 사실의 고백이다.

나는 이 글이 단순히 흥미로운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상당히 유익하고 교훈적인 글도 되리라고 믿는다. […] 대개는 체면을 중시하고 남을 배려하는 조심성 때문에 자신의 과오와 결점을 남들 앞에 드러내기를 꺼리지만, 그런 소망이야말로 내가 그 조심성을 버리고 기탄없이 내 잘못을 고백하는 이유일 것이다. (9p)

이글만 봐도 이 자전적 에세이가 작가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작품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작가 토머스 드 퀸시의 수치스러움이자 스스로 잘못이라 하는 것은 아편에 관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진통제로서 아편을 사용했지만 어느새 아편이 주는 쾌락에 물들어 아편을 과용하고 남용하게 된 작가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해 어떻게 아편을 시작하게 되었고, 아편 중독이 되어 어떤 생활을 했고, 그후 아편 때문에 어떤 고통을 겪었으며, 아편을 끊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다른 이들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책의 1부는 토머스 드 퀸시가 아편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관한 글이지만, 대부분은 청소년시절에 겪은 고통의 체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누이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 이후 후견인들에게 맡겨진 드 퀸시의 어머니와 드퀸시의 형제들. 그러나 그들은 후견인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드 퀸시는 그들에게 반발했다. 결국 학교에서 도망 나와 런던에까지 이르게 되는 드 퀸시의 나날들은 굶주림등과 같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때 얻은 위장병은 20대에 몇년간 잠잠했으나 결국 재발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드 퀸시가 위장병 때문에 아편에 손을 댄 것은 아니었다. 치통이 심해 아편을 진통제로 처방받았고 그후 그는 아편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오오, 맙소사!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가! 내 마음이 가장 낮은 나락에서 하늘 높이 올라갔다! 내 안에 세계가 계시되었다! 고통이 사라진 것은 이제 내 눈에는 지극히 하찮은 일이었다. 이 소극적인 효과는 내 앞에 펼쳐진 적극적인 효과의 거대함에         그렇게 갑자기 드러난 신성한 쾌락의 심연 속에 삼켜지고 말았다. (86p)

그대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오, 공정하고, 교묘하고, 강력한 아편이여! (106p)

아편은 드 퀸시에게 있어 고통을 진정시켜 주는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당시 아편은 일상적인 약으로 쓰였다고 책에 나온다. 또한 술값보다 싼 편이라 누구나 아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드 퀸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문인들 역시 아편을 상습적으로 복용했다고 여기에 기록하고 있다. 즉, 아편은 드 퀸시 뿐만 아니라 다른 문인들에게도 창작의 영감을 주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드 퀸시는 아편을 복용함으로써 더욱더 머리가 명쾌해졌다는 이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습복용은 중독 현상을 수반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진통제역할을 했던 아편은 쾌락을 주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물론 창작의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옅어지게 되고 끔찍한 악몽의 시대가 펼쳐졌다.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깨어났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더 이상 잠자지 않겠다." (163p)

얼마나 고통스러운 꿈을 꿨으면 더이상 잠을 자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될까. 인간이 피로를 풀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데에는 휴식이 꼭 필요하다. 특히 수면은 인간에게 있어 꼭 필요한 부부으로 잠을 자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드 퀸시는 잠을 자는 것을 거부할 정도가 되었느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으랴. 결국 그는 아편을 끊을 결심을 하게 된다. 아편이 주는 일시적 작용으로 자신의 인생을 담보잡히기엔 그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3부의 내용은 드 퀸시가 아편을 끊으면서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앞의 1, 2부와 다르게 매우 딱딱한 문체로 씌어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몇년이 지난 후에 씌어진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앞부분과는 좀 단절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앞부분이 산문시같은 문학적 느낌을 담뿍 담고 있었다면 뒷부분은 보고서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앞부분의 내용에서는 세익스피어, 밀턴과 같은 문인들의 글이나 신화나 성경의 내용을 차용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시적인 느낌을 주었지만, 뒷부분은 할 말만 하고 끝맺고 있다. 어쩌면 더이상 긴 이야기가 필요 없다는 작가의 판단이 개입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 독자들의 관심이 맴도는 진짜 중심은 아편쟁이가 아니라 아편이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쾌락을 가져오든 고통을 가져오든, 아편의 불가사의한 작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목적이 달성되면 이 글의 역할도 끝난 것이다. (164p)

이것은 위에 인용된 문장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아편이란 것의 속성을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알려주고, 그것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뒷부분은 간략하게 덧붙이는 것으로 마무리된 듯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작가의 반생을 담고 있는 산문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희곡이나 시, 소설에서 따온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해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해 때로는 휘몰아치듯 올라가기도 하고, 때에 따라 감정이 뚝 떨어져 서글픔을 느끼게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번역본을 읽으면서는 보를레르처럼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보르헤스의 말처럼 '가장 슬픈' 이야기라는 표현을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작가의 이야기에 대해 서글픈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이 책이 초판본을 바탕으로 번역된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책들은 개정판을 중심으로 변역본이 나오는데 그것은 왜일까. 개정판은 초판과 달리 앞부분의 이야기가 균형이 맞지 않을 만큼 덧붙여져 있다고 한다. 아편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계기에 대해 지나친 변명을 하는 느낌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개정판을 낼 무렵에는 아편이 금지되었기에 드 퀸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자기 변호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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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공포에 관한 11가지 짧은 이야기
앰브로스 비어스 외 지음, 오경희 옮김 / 글읽는세상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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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포문학을 좋아하면서도 이제서야 발견하게 된『괴담 - 공포에 관한 11가지 짧은 이야기』는 엠브로스 비어스의 작품이 실려 있는 책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이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1년전. 그때는 다른 장르의 책들을 읽느라 공포장르에서 손을 뗀 시기였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는 종종 보곤 했지만.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다.

목차를 살펴 보니 사실 엠브로스 비어스 외에는 아는 이름의 작가가 한 명도 없다. 그렇다 보니 좀 걱정되기도 했는데, 첫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걱정은 깡그리 날아가 버렸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폐광산에서 노다지를 캔 기분이랄까.

이 책에는 총 11명의 작가의 작품이 실려있다. 그것은 또다시 세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는데, 첫 카테고리는 '미지의 존재'와 관련된 것이다. 마리오 조르다노의 <지하의 집>은 뱀파이어, 아데라이데 네레프의 <늑대인간의 냅킨>은 제목 그대로 늑대인간이 등장한다. 귄터 잘만의<은을 자아내는 거미>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와 관련한 것이다. <지하의 집>의 경우 과학과 논리를 신봉하는 의사가 자신이 인식하고 있던 범위 밖의 세상을 마주했을 때, 그 공포는 어떤 것을 의미할까, 를 생각해 보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더이상 전설을 믿지 않는다. 그저 옛이야기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현실 속에 존재한다면, 그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실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믿지 않았던 것이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 주는 공포만큼 가장 큰 공포는 없을 것이다. 

<늑대인간의 냅킨>은 저주란 것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보통 늑대인간이라고 하면 늑대인간에게 물렸을 때 늑대인간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늑대의 저주가 그 시작이었다. 가련한 동물을 재미로 학대하고 죽이던 조상의 업이랄까. 어쨌거나 이 냅킨이란 것이 이 작품에서 아주 흥미로운 포인트다. <은을 자아내는 거미>는 구전되어 내려오는 일종의 전설같은 것이다. 그 전설이 실제였다면?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과 그 구원의 실마리가 되는 아이.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두번째 카테고리인 '혼돈이 낳은 기이한 아이들'에 속하는 작품은 총 네작품이다. 헨키 헨첼의 <메피스토펠레스의 오류 수정>은 SF적인 공포물이다. 인공지능 컴퓨터 메피스토텔레스. 사실 나의 경우 컴퓨터를 인간에 가깝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공포다. 기계는 기계로만 존재하면 된다는 입장이랄까. 그것이 뒤집어질 경우, 그 끝은 파멸뿐이다. 헤닝 파벨의 <완성하라!>는 매일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그 꿈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된 후, 무릎을 치며 감탄했던 작품이다. <개와 바다>는 조난당해 바다를 표류하는 한 남자와 한마리의 개의 이야기로, 남자의 이기심에 분노하다가 마지막 부분의 인간의 착각에는 쓴웃음이 나와 버린 작품이다. 엠브로스 비어스의 <폐쇄된 창>은 다른 작품집에서도 읽었었는데, 역시나 마지막 문장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세번째 카테고리인 '홀로 남겨진 밤들'은 소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혼자'라는 것이 포인트이다. 원래 무서운 일은 혼자 있을 때 잘 벌어지지 않던가. 한스외르크 마르틴의 <13일의 금요일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한 한 아이의 이야기인데, 누군가 곁에 있어도 혼자만 잠들지 못하는 것도 공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난 무서워서 미칠 지경인데,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잠만 잔다면? 이 작품 역시 마지막 반전이 압권. 헤닝 클뤼버의 <톰 홀로 집에>는 부모님이 한 집안에 같이 있지만 톰에게만 공포가 찾아온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포를 혼자 감당해야할 순간,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베레나 C. 하르크센의 <트롬벨리이 피튼 뱀>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고통과 분노를 안고 죽어간 무엇인가가 잠든 아이를 노린다. 클라우스 뫼켈의 <물고기들과 지낸 밤>은 복수를 하는 물고기들의 이야기이다. 보통 물고기는 머리가 나빠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세 잊어버린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물고기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자신들을 괴롭힌 누군가가 혼자 있는 때를 노린다면? 앞으로 낚시는 절대로 못할 것 같다. (지금도 낚시는 하지 않지만...)

전설속의 존재들, 구전으로 전해오는 존재, 인간의 우위에 선 컴퓨터, 악몽속으로 찾아오는 존재들, 혼자 있을 때만 찾아오는 두려운 존재들. 우리는 이것을 혼돈이 만들어낸 환상과 악몽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이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낯선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괴담』. 이렇게 스토리의 짜임새와 구성이 좋은 책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낯선 작가들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존재하겠지만, 때로는 용기를 내서 선택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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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작품 보관함에 담아둬야 겠습니다~

스즈야 2011-03-14 23:2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전 참 인상깊게 읽었거든요. 저도 엠브로스 비어스를 검색하지 않았으면 모를뻔 했어요. 교님께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
 
고독한 미식가 - 솔로 미식가의 도쿄 맛집 산책, 증보판 고독한 미식가 1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 / 이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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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맛있는 음식을 거부할 사람이 없듯 나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맛집으로 소문난 집을 찾아가서 먹는 것을 즐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집은 대부분 손님들의 회전율이 빠른 곳으로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그런 집보다는 시끌벅적한 곳보다는 조용한 곳, 화려한 음식을 내는 곳보다는 소박한 가정식 음식을 내는 집을 선호하게 되었다. 내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싫지만 내 뒷사람이 줄을 서고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쫓기듯 식사하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외식을 한다면 그런 집을 주로 찾게 된다. 그렇다 보니 늘 가는 곳만 가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선뜻 낯선 곳에 들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노가시라 고로는 외국에서 잡화를 수입하는 무역상이다. 그래서 고객들을 만나는 일도 잦고, 출장도 잦은 편이라 늘 낯선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물론 예전에 들른 적이 있는 곳이라면 그런 음식점을 찾겠지만, 낯선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처음 보는 곳이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배가 고픈 상황에서도 아무곳에나 선뜻 들어가는 법이 없다. 일단 먹고 싶은 것을 정하고 그런 음식을 파는 곳을 찾는다든지, 가게의 분위기를 잘 살피고 들어간다든지 하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아무데라도 들어갈 법도 한데, 이 남자에겐 그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총 19편의 연작단편으로 이루어진『고독한 미식가』는 이노가시라 고로가 선택한 음식점과 그곳에서 먹는 음식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주로 도쿄의 음식점이 나오지만 때로는 도쿄가 아닌 곳의 음식점과 그곳에서 파는 음식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미식가라는 제목과는 달리 아주 평범한 음식들이다. 우리는 미식가라고 하면 아주 희귀한 재료로 만든 비싼 음식이나 호텔 주방장처럼 요리 수업을 오래 한 사람들이 만든 음식을 내놓는 곳에서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노가시라 고로는 그런 면에서는 조금 다른 미식가이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사람이랄까. 그래서 그가 먹는 음식은 모두 평범한,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고른 음식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우연히 만난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먹지 못하거나 불편함을 느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노가시라 고로가 먹는 음식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것 몇가지를 들라면 야키니쿠, 오마카세 정식, 비엔나 소세지 카레, 돈까스 샌드위치가 있다. 야키니쿠의 경우 얼마나 잘 먹던지 보는 내가 배가 부를 정도였달까. 미식가 이전에 대식가였군, 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마카세 정식의 경우, 이름이 재미있어서 기억한다. お任せ(오마카세)란 '맡겨만 주세요'란 뜻인데, 말그대로 주방장이 모든 것을 일임하는 요리이다. 주방장이 고른 재료와 요리법으로 만들어진 요리라, 이런 것은 주방장을 잘 알지 못하면 선뜻 시키기 힘들텐데도 이노가시라는 선뜻 시켜서 먹고, 또 추가 주문까지 하는 것을 보니 꽤나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비엔나 소세지 카레는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무척 특이한 요리라서 기억나고, 돈까스 샌드위치는 야채는 하나도 없고 돈까스만 달랑 들어간 샌드위치라서 기억난다. 내가 생각하는 샌드위치란 야채가 듬뿍 들어간 것이 대부분인데, 돈까스만 달랑 들어가 있다니, 먹다가 목이 막힐까 겁난다. 

그외에 내가 좋아하는 타코야키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오사카의 풍경이 그대로 담긴 그림도 멋졌고, 타코야키 포장마차에서의 손님들의 농담도 재미있었달까. 완전 단골손님들로 꽉 찬 분위기 속에서 홀로 고독함을 맛봐야 하는 이노가시라. 타코야키의 맛은 좋았을지라도, 마음은 조금 불편하지 않았을까. 나같은 경우 그런 게 싫어서 음식을 사올 때는 주로 포장을 해오는데, 이노가시라 역시 포장을 하려다 발복 잡혀서 그곳에서 먹게 되었지. (笑)

음식 이야기와 더불어 그곳의 분위기, 때때로 떠오르는 추억에 관한 이야기까지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없어 보인다. 아마도 한 사람이 평생 먹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면, 책 수십권은 탄생하지 않을까. 음식이란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다. 물론 사람이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에너지를 공급받는다는 원칙은 깨지지 않겠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음식이란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건조하고 삭막한 현대 사회. 그곳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쓰지 않고 혼자 식사를 하는 이노가시라 고로. 음식을 먹는 순간 만큼은 그는 자유다. 그리고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 그러하기에 그는 진정한 미식가인 것이다.

뒷편에 수록된 스토리 작가 구스미 마사유키의 낯선 음식점 체험기와 다니구치 지로, 구스미 마사유키, 그리고 소설가 가와카미 히로미의 대담도 무척 즐거웠다. 특히 대담편에서 한 컷트에 하루를 꼬박 쓴다는 다니구치 지로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배경이 이토록 섬세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달까. 마지막 스토리로 뭔가 모르게 뚝 끊겨졌다는 느낌은 들지만, 대담이 있어 그 부분을 상당히 완충해 주었다. 한 권쯤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건 어려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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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적거리는 곳 보단 조용한 곳이 좋아요. 리뷰 읽다보니 어떤 느낌의 책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걸요. 음식이야기와 관련된 책이라.. 평범한 것이 특별함을 낳는게 좋아요. 일상의 소박함도 좋고요. 장바구니로 가는군요ㅎㅎ

스즈야 2011-03-14 23:2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전 다니구치 지로 원래 좋아하는데요, 음식 이야기도 참 맛있게 썼더라구요.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다니구치 지로의 자연과 인간에 관한 만화도 강추합니다.

2011-03-1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과 인간에 관한 만화라면 <신들의 봉우리>와 같은 작품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 책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다니구치 지로씨의 책이 생각보다 많아서 뭘로 먼저 시작할지 고민이 되네요.
처음은 어떤 작품이 좋을까요? (권수는 상관없어요)

스즈야 2011-03-15 21:35   좋아요 0 | URL
시튼 시리즈도 좋구요, 동토의 여행자도 좋아요.
좀 다르지만 개를 기르다도 좋구요.
전 아직 신들의 봉우리는 못읽었답니다.... 읽을게 너무 많아요.. 아니, 읽고 싶은 만화가 너무 많다는 말이 맞을지도.. ^^;
 
목소리 섬 바벨의 도서관 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김세미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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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보물섬』을 읽으면서 모험을 꿈꿔 본 적이 있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읽으면서 선과 악이란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이란 이름이 절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린이 명작동화 중의 한 권인『보물섬』을 읽으면서 환상의 모험에 대한 꿈을 꾸면서 자랐다. 바벨의 도서관 5권은 이렇듯 대표작 한 두 권만 언급해도 아하,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소리 섬>은 마법을 사용하는 장인 칼레마케를 따라 목소리 섬으로 가서 조개껍질을 금화로 바꾸는 걸 본 케올라가 욕심을 부리다 칼라마케에게 버려진 후 떠돌면서 겪게 된 모험 이야기이다. 장인인 칼라마케의 눈에 띄면 죽임을 당할까 두려운 케올라는 숨어 살 섬을 살다가 버려진 듯한 한 섬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혼자서 편안하게 살았지만 어느 날 그는 이 섬이 바로 목소리 섬이란 걸 알게 되고 두려움에 빠진다. 하지만 배를 타고 다른 섬에서 온 부족의 도움을 받아 그는 아내도 얻고 한동안은 행복하게 살지만 그 부족이 식인종이란 것을 알게 되는데....

욕심을 부리던 케올라가 여러 가지 난관을 헤치고 다시금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인데, 그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지나던 배에 구조되지만 그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기껏 도망친 섬은 장인이 마법을 부려 나타나는 목소리 섬이고,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부족을 만났더니 식인종이고... 어떻게 보면 케올라가 겪는 일들은 머피의 법칙을 따른다고나 할까. 웃음이 큭큭하고 나오면서도 묘하게 케올라를 동정할 수 밖에 없다. 마법의 환상과 모험의 아슬아슬함과 즐거움이 넘치는 작품.
<병 속의 악마>는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병을 사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병 속에 있는 악마가 소유자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악마가 이루어주는 소원에는 반드시 댓가가 따르는 법이니. 악마의 도움을 얻어 훌륭한 집을 짓고 결혼식을 하게 된 케아웨는 결혼 직전 자신이 끔찍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그 병은 다른 이에게 팔아 버렸다. 더 좋지 않은 것은 그 병의 가격이 내려갈대로 내려가 지금 자신이 산다면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을 지경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병에는 자신이 산 가격보다 더 싸게 팔아야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그 병을 마지막으로 소유한 사람은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괜히 악마의 병이 아닌 것이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병을 손에 넣고 결혼을 했지만, 죽어서 지옥불에 떨어질 것을 생각하면 케아웨는 잠도 안온다. 사랑하는 아내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이다. 케아웨의 아내는 그 사실을 알고 남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병을 살 것을 결심하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주인공들같은 사랑을 하는 부부와 그들을 파멸시키려는 악마의 시험. 부부의 사랑에 감동하고, 그 병을 팔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부부의 모험담이 어우러진 작품.

<마크하임>은 예전에 앤솔로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번역이 다르니까 작품의 느낌도 확실히 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파산직전에 이른 마크하임이 돈을 훔치기 위해 한 중개상을 살해한다. 그러나 그후 누군가 가게로 찾아오는데... 악행을 부추기는 한 남자의 등장과 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마크하임의 대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돈을 잃는다손 쳐도, 다시 빈곤에 빠진다고 해도 내 안의 한 부분, 더 나쁜 쪽이 선한 쪽을 끝내 깔아뭉갤까? 악과 선이 강하게 치고 들며 나를 양쪽으로 세게 끌어 당기지만, 나는 둘 중 하나만 사랑하지 않고, 둘 다 사랑해. (139p)

선과 악은 늘 공존한다. 특히 인간의 마음은 늘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고 흔들린다. 악행을 부추기는 남자와 자신의 마지막 선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마크하임의 모습은『보물섬』의 존 실버나,『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지킬 박사의 모습을 연상시키게 한다.

<목이 돌아간 재닛>은 제목부터 으스스하다. 50년전에 악마를 만났던 목사의 이야기. 그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그토록 완고한 노인이 되어 버린 것일까.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악이란 것은 늘 사람 주위를 배회하고 있고,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떨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 중 <목소리 섬>과 <병 속에 든 악마>는『보물섬』처럼 흥미롭고 환상적인 모험이야기에 부부의 사랑이란 것을 더한 작품이다. 마법사나 악마가 등장하지만 살떨리게 무섭다기 보다는 유쾌한 어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론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쓰라림을 맛보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여인들이 그들을 구원해주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결말 부분 역시 해피엔드이다. <마크하임>의 경우 선과 악의 대립, 즉『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면이 부각된다. 하지만 그보다는 덜 무겁다. 마크하임의 선과 악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싸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작품인 <목이 돌아간 재닛>은 악마를 만나게 된 신부의 이야기인데, 공포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목이 돌아간, 이란 표현을 읽고 난 엑소시스트에서 악마에 씌어 목이 돌아가던 리건의 모습을 떠올려버렸다.   
 
마법과 악마가 존재하고, 모험과 사랑이 존재하는 환상적인 이야기와 선과 악의 대립, 악마와 대결하는 신부의 이야기까지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들은 유쾌한 이야기와 더불어 인간이 진실로 추구해야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토록 하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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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키벤 3 : 간사이편 - 철도 도시락 여행기 에키벤 3
하야세 준 지음, 채다인 옮김, 사쿠라이 칸 감수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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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타고 일본 일주여행을 하는 나카하라 다이스케. 그의 여행 목적은 일본 철도의 탄생과 더불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다양한 철도 도시락 에키벤을 맛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큐슈, 츄고쿠와 시코쿠 여행을 끝내고 이제 간사이 여행에 들어간 다이스케. 천년고도 교토를 비롯해 오사카, 고베, 나고야 등 일본의 옛모습을 간직한 간사이 여행에서는 어떤 에키벤을 맛보게 될까.


다이스케의 간사이편 여행루트를 살펴 보면 토요오카에서 시작해 카메야마에서 끝을 맺는다. 역시 섬나라 일본답게 해산물 요리가 많은 것도 특징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일본 토종소인 와규를 이용한 에키벤이 종종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럼 다이스케와 함께 고고씽~~

토요오카 역의 명물은 무려 만엔이나 하는 버들고리 도시락. 왜 이렇게 비싼가 했더니 이 버들고리도시락의 바구니가 비싸기 때문이란다. 전통공예품과 도시락을 결합한 아이디어. 역시 일본인들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도시락 내용물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지만, 전통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달까. 삐딱하게 보자면 장삿속이군, 이라고 하겠지만 전통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돈을 선뜻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듯.

와다야마 역으로 가는 길에는 후쿠치야마 성이 있다. 무려 400년이 된 고성. 오다 노부나가를 습격한 아케츠 미츠히데의 성이다. 와다야마역의 에키벤은 타지마 마을 와규 도시락이 유명하다. 이 타지마 마을 와규가 고베로 가면 고베 비프가 된다. 그다음에 도착한 히메지역은 히메지성으로 유명한 곳.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손꼽히는 히메지성은 일본의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공주님'버스란 관광 버스도 있단다.

반슈아코는 자신의 주군의 복수를 위해 오오이시 쿠라노스케가 이끄는 47명의 사무라이가 상대 사무라이를 죽인 후 할복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오오이시 신사에는 이들 47명의 충신들의 동상이 있다. 일본 특유의 문화로 사무라이란 것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사실 일본인이 아닌 이상 이들의 충성심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해치는 사람이 득시글대는 현대 사회를 생각해 보면 일본인들이 사무라이의 충성심에 열광하는 이유가 납득이 가기도 한다. 반슈아코역의 명물 도시락은 거나한 충신장 도시락으로 이 도시락에는 일본 술이 딸려 있다. 또한 젓가락에는 충신장의 이야기가, 포장지에는 술마시는 법도에 대한 것이 적혀 있는데 도시락 포장 용기나 젓가락 포장지에도 일본의 역사를 담아내는 일본인들이 부럽기도 하다.

니시아카시의 잘나가는 문어밥. 이건 정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도시락이다. 게다가 용기도 문어단지 모양! 정말 귀엽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내륙이지만 제사상이나 잔칫상에는 문어가 빠지지 않았다. (물론 상어도 빠지지 않지만) 그래서 문어를 어린 시절부터 즐겨 먹었는데 숙회가 아닌 양념된 문어는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간사이 여행의 동반자인 케이트는 외국 사람답게 문어를 '악마의 해산물'이라 하며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맛을 보고는 금세 빠지게 되었다나? 또한 물고기선반 어시장에서 만드는 타코야키 비슷한 계란부침도 어찌나 먹고 싶던지. 타코야키의 원조이지만 몽실몽실한 느낌이라니! 아, 먹고 싶다!

요코하먀항과 더불어 일본의 미항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고베항. 이곳에는 고베 비프로 만든 도시락이 유명하다. 하지만 다이스케가 먹은 해선장 도시락도 침이 꿀꺽. 다이스케의 표현에 따르면 정통중식을 먹는 느낌이라는데, 어떻게 도시락으로 정통 중화요리를 먹는 느낌을 낼 수 있는 것이지? 고베에서 또다른 유명한 것은 고시엔! 다이스케도 지금은 이렇게 뚱뚱하지만 예전엔 야구를 했다나? (푸핫)

타코야키하면 오사카, 오사카하면 타코야키. 그리고 오코노미야키! 왜 이렇게 광분을 하느냐. 난 타코야키와 오코노미야키를 진짜진짜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이라 일본 전통 타코야키나 오코노미야키와는 맛이 다르겠지만, 생각만 해도 침이 꾸울꺽! 특히 오사카역의 호랑이당 도시락에는 오코노미야키와 타코야키가 들어있단다. 식으면 맛이 없을 것 같은데, 맛이 있다는 것을 보면 도시락에 넣은 음식들은 따뜻할 때 먹는 음식들과 만드는 법이 좀 다른 것 같다. 참으로 신기한 것 중의 하나. 역시 도시락의 천국, 일본답달까.

교토는 천년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곳으로 옛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도시. 내가 좋아하는 도시랄까.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교토라고 하니 간사이벤이 떠오른다. 내가 간사이벤을 전부 구별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이지만 말하는 걸 들어보면 간사이쪽 사투리란 것은 알 수 있는데 뭐랄까, 참 귀엽다. 특히 말끝에 ~や를 붙이는 게 귀엽게 들린다. 本当라는 말은 ほんまや로 一番은 一番や로, 그리고 누구 씨 할 때의 ~さん은 ~はん이란 표현도 참 정겹달까.

교토는 어딜 가도 문화재란 말이 있을 만큼 옛모습이 많이 남아 있지만, 여기에선 언급되는 건 간사이 사철 이야기가 주가 된다. 좀 아쉬운 부분. 하긴 이들은 관광을 목적으로 다니는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나? 하지만 다이스케는 경유하면서 이런저런 관광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잠시 들르기도 한다. 그중에서 요시노산의 10만그루 벚나무 이야기나 홍법대사가 도깨비의 도움을 받아 다리를 세우던 중에 완성을 하지 못한채 다리 기둥만 남았다는 하시쿠이이와 등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우지야마역의 이세신궁도 빠질 수 없지. 겐지모노가타리를 읽다 보면 이세 신궁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또한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화과자점 '아카후쿠' 본점도 여기 있단다. 세상에 300년 전통이라니.


그외 눈에 띄는 에키벤으로는 시라하마역의 키슈 색실공 도시락. 이 도시락 용기는 색칠을 해서 저금통으로도 쓸수 있다고. 색실공이라고 하니 요코미조 세이시의 <악마의 공놀이 노래>가 떠오르누만. 거기에 등장하는 공이 바로 색실공이다. 그리고 고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츠사카소등심 소고기 도시락이나 움메타로 도시락에도 눈길이 간다. 마츠시카 소등심 도시락은 일본 에키벤중 가장 비싼 에키벤으로 무려 10,500엔. 그러나 난 그건 너무 비싸서 패스, 움메타로 도시락이 마음에 든다. 뚜껑을 열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유일한 도시락이라나. 아이디어가 참 다양하다.  

이번에 다이스케와 함께 간사이 여행을 하는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케이트란 아가씨이다. 유학생으로 방학동안 여행하는 중인데 우연히 다이스케와 만나 동행하게 된다. 이 아가씨도 상당히 먹보시더란 말씀. 어찌나 잘 드시는지. 원래 잘 드시는 다이스케 아저씨가 움찔하시더이다. 근데, 남자 동행과의 만남은 없는 건지. 시꺼먼 남자 둘이 여행을 다니는 건 보기에 그런가? 그래도 아내까지 있는 남자가 여성과 동행이 되다니. 앞으론 다른 색다른 동행을 기대하고 싶은데 과연 그 바람은 이루어질지...

사진 출처 : 책 뒷표지, 에키벤 가이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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