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과 신부 1
나카무라 아스미코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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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BL계에서 유명한 작가 나카무라 아스미코의 순정 만화가 드디어 나왔다. 보통 한 장르만을 집중적으로 그리는 작가들은 다른 장르가 쥐약이나 마찬가지인데, 의외로 그림체가 순정에도 잘 어울린다. 여기서 그림체만 언급하는 이유는 스토리는 이쿠하라 쿠니히코가 담당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처음엔 스토리에 적응이 안되었다. 나카무라 아스미코의 다른 작품들의 스토리 전개와는 너무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느낌이랄까. 나카무라 아스미코의 작품 성향의 경우 어두운 작품이든 밝은 작품이든 차분한 면이 있는데,『이방인과 신부』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전개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별로? 그건 아니고, 생각했던 전개와 달라서 그렇지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는 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정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현대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시보레에서 나온 콜벳이 등장하는 걸 보면... (콜벳은 2007년 단종된 차종이다)  사랑의 도피 중인 세라 하츠지와 하구마즈카 이타루는 어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세상을 만드려는 아이들의 조직 <불타는 기린>과 경찰에 동시에 쫓기고 있다. 둘은 교회로 들어가 결혼식을 올리려 하지만 변태성향이 풍부한(?) 신부의 방해로 결혼식은 커녕 마취제를 맞고 쓰러진다. 신부가 히츠지를 안고 유유히 변태취미를 즐기러 가는 동안 <불타는 기린>에서 나온 세라 쇼고(히츠지의 아빠)와 늑대소년 이누모리 에이지가 교회에 나타난다. 히츠지는 자신의 힘으로 신부에게 벗어나 이타루에게 달려오지만 쇼고에게 잡히고, 이타루는 에이지의 칼을 맞고 쓰러진다. 그후 히츠지는 쇼고와 에이지에 끌려가고, 곧이어 도착한 경찰의 총격에 이타루는 쓰러지고 말지만, 마로니에와 미유땅이란 소녀 2인조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지게 된다.

아아, 첫권부터 정신없다. 등장인물의 수도 많거니와 그 캐릭터들이 너무 독특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게다가 잔혹한 아이들이 등장하고, 이 아이들이 세계를 야금야금 정복해가는 모습은 섬뜩하기조차 하다. 특히 <불타는 기린>조직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는 토가와 긴은 아이답지않게 냉혹하기만 하다. 토끼탈을 쓰는 등 동물탈을 쓰고 있는 모습이나 달콤한 아이스크림, 캔디, 도넛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아이들인데, 부르는 노래며 하는 짓은 잔인한 어른들 저리 가라 수준이다. 왠지 이녀석들이 크면 지금 있는 어른들보다 더 무서운 어른이 될 듯한 예감이...

여튼간에 1권은 아직 도입부라 그런지 수수께끼만 잔뜩 안겨준다. 일단 이타루는 원래 <불타는 기린> 조직의 일원이었다는 것, 그리고 토가와 긴과 함께 찍은 사진 속의 인물이란 것은 알겠다. 또한 히츠지는 어떤 목적에 의해 탄생한 아이일 것이란 감도 어렴풋이 온다. 히츠지의 아빠 쇼고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같은 느낌이랄까. 겉과 속이 상당히 다른 인물로 보인다. 그것은 히츠지의 뒤를 쫓는 경찰의 증언(?)에서도 드러난다. 쇼고와 동창생이었던 도쿠다이지는 쇼고의 다른 모습을 알고 있지만 감질날 정도로 정보를 조금밖에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제일 궁금한 것은 이타루의 정체이다. 이타루가 히츠지를 데리고 도망을 친 이유가 뭘까. 자신의 몸에 남겨진 흉터와 연관된 일이겠지? 이타루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해낸 이름없는 괴물을 닮았다. 그렇게 보자면 히츠지는 그 이름 없는 괴물의 신부? (프랑켄슈타인이라 알려진 괴물은 원래 이름이 없다. 그 괴물을 창조한 창조주가 프랑켄슈타인 박사) 이런 식으로도 생각이 되지만, 섣부른 추측은 금물.

『이방인과 신부』는 밝고 명랑해 보이는 분위기와는 달리 상당히 음울한 작품이다. 세라 히즈지가 가진 비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어린이들의 조직 <불타는 기린>과 그에 맞서는 이타루의 활약. 아이들이 나오는 이야기인 만큼 너무 비극으로 치닫지 않으면 좋으련만..


이것은『이방인과 신부』 1권 부록인 책갈피와 일러스트 메모장. 이타루는 여전히 곰의 모습을 하고 있구나. 곰의 모습을 벗어나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이타루를 꿈꿔 본다. 아이들은... 무조건 행복해야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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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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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공화국이란 이름은 초등학교 시절 잡지의 인터뷰에서 처음 접했었었다. 인터뷰이가 누군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람이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도미니카 공화국을 말했는데, 그 당시로 내 생각으로는 인터뷰이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라고 손꼽을 정도라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난 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염소의 축제』를 읽으면서 도미니카 공화국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사실 라틴 아메리카는 내 관심밖에 존재하던 곳이었고, 그중에서도 작디 작은 섬나라인 도미니카 공화국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기억할 만한 꺼리가 내게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체 게바라 평전 등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 전부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반면 문명화정도가 낮아 오랜 시간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다. 도미니카 역시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었고, 그래서 공용어는 영어, 종교는 가톨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염소의 축제』는 1930년 정권을 잡은 트루히요가 공포 독재정치를 펼친 31년간의 도미니카 공화국의 상황과 독재자의 마지막  날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는 세가지 시점으로 서술된다. 첫번째는 트루히요 정권하에서 권력의 중심부에 서 있던 카브랄의 딸 우라니아, 두번째는 트루히요, 세번째는 트루히요를 노리는 암살자들이다. 이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트루히요 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입장과 각각의 사람들의 처한 입장에서 서술되는 주관적 입장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흥미롭다.

일단 우라니아의 이야기를 살펴 보면, 우라니아는 14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간 후 35년간 도미니카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친척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살던 우라니아가 35년만에 도미니카로 돌아와 아버지를 만난 것은 왜일까.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였는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가 되어 버렸기에 용서를 하고 싶은 마음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하지만 의외로 우라니아는 아버지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다. 당시 도미니카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진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생긴 일을 추궁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우라니아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물어진 입은 열릴줄을 몰랐다. 우라니아는 왜 14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보내진 것일까. 아마도 우라니아가 게속 이곳에 머무른다면 위험스런 상황에 처해질지도 모른다는 아버지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라니아 역시 아직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가 마음 속에 꽁꽁 봉인해 둔 것, 그 끔찍한 일은 무엇일까. 그 일을 잊기 위해 우라니아는 공부에 몰두했고 지금은 세계은행에 근무하는 엘리트가 되었다.

어쩌면 이후에 들어선 정부들이 너무 엉망이어서 많은 도미니카 사람들은 트루히요를 그리워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권력 남용과 살인, 부패와 비밀 염탐, 격리와 두려움을 잊어버렸다. 공포는 이미 신화가 되어 버렸다. (168~169p)

그녀가 도미니카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곳에 와서 정리해야만 할 일. 그것은 아버지와 만나 풀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토록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우라니아는 트루히요 정권과 도미니카의 역사에 대해 계속 조사해왔다. 그것은 어쩌면 오래전에 난 상처에 대한 치유의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터뜨려야만 할. 그것을 해결해야만 우라니아는 또다른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겠지. 

트루히요 편의 이야기와 암살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트루히요 정권의 권력구조와 독재정권이 만들어낸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은 트루히요 편의 경우 트루히요의 개인적 문제에 대한 부분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암살자들의 경우 트루히요 추종자에서 암살자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70대가 된 트루히요는 전립선에 문제가 생겨 요실금으로 고생하고 있다. 한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은 인물이 말년에 들어서는 요실금으로 고생한다니. 인생의 아이러니가 이런 것일까. 또한 그의 자식들 중에 제대로 된 인물이 하나도 없다. 정권을 물려주고 싶어도 물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물쓰듯 쓰는 돈, 여자와의 스캔들 등 아비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자식들 뿐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협조적이었던 미국도 트루히요 정권에 등을 돌리고 경제봉쇄등으로 압력을 가한다. 왕좌에서 군림해온 왕이 이젠 안팎으로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인 물을 썩게 마련이고, 어제의 우방은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수없이 증명된 것이니...

암살자들은 트루히요 추종자들이었다. 그의 카리스마와 지배력, 공포가 주는 것은 일종의 마취제이자 환상이었다. 하지만 마취는 시간이 흐르면서 약효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깨기 마련이고, 환상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옅어져 결국 없어지고 만다. 그러하기에 트루히요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암살을 꾀하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트루히요가 살아있는 한 자기를 비롯한 수많은 도미니카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불쾌감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며, 매 순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며 한 사람이면서도 두 사람이 되어야 하는 형벌 속에 살아가야 한다고, 즉 공적인 장소에서는 진실을 감춘 채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247p)

그는 야수를 죽일 것이고, 하느님과 교회는 그를 용서할 것이다. 그는 자기 손을 피로 더럽히면서, 조국을 피흘리게 했던 야수의 피를 씻어버릴 작정이었다. (322p)

암살자들의 이야기는 트루히요의 차자 지나가길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풀어놓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도미니카 공화국을 둘러싼 내외적 상황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염소의 축제』1권은 카브랄을 통해 권력의 중심에 있다 몰락한 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카브랄과 우라니아의 뒤틀린 부녀관계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또한 권력의 중심이자 공포의 중심이 된 트루히요가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유지했으며. 어떤 몰락의 과정을 겪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암살자들을 통해 트루히요 추종자들이 어떻게 그에게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라니아의 아버지는 우라니아에게 어떤 대답도 주지 않았고, 암살자들이 트루히요를 죽인 뒤 도미니카 정부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도 피상적으로 밖에 묘사되지 않았다. 독재자가 죽는다고 바로 질서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의 죽음 뒤에는 커다란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혼란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트루히요의 사후 도미니카의 변화, 그리고 우라니아와 아버지의 대화는 향후 어떤 식으로 펼쳐지게 될까. 우라니아는 과거의 망령을 떨쳐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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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헤도로 Dorohedoro 6
하야시다 규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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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때문에 도마뱀 머리가 된 사나이 카이만. 자신에게 걸린 마법을 풀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마법사의 세계로 잠입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단서를 찾기 쉽지 않다. 한편 엔의 마법때문에 마법사의 세계로 떨어진 니카이도 일행은 드디어 엔과 마주하게 된다. 마법사들이 자신의 파트너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 블루 나이트 기간 동안 엔은 니카이도를 자신의 파트너로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도로헤도로』6권은 블루 나이트 뒷 이야기를 비롯해서 엔의 저택에서 일어난 수수께끼의 살인 사건 해결, 엔의 과거사 그리고 좀더 진전된 꿈을 꾸는 카이만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탄바 고기 파이집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리스에 대한 단서를 추저하는 카이만의 꿈은 여전히 미궁을 헤매는 느낌이다. 틀림없이 진전된 것은 맞는데 본인이 기억을 못하니 문제지. 게다가 카이만의 활약... 거의 없다. 도대체 마법사의 세계에 잠입한 이유가 뭐야!!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한편 실종된 신을 찾아 헤매던 노이는 무사히 신을 되찾아 악마의 집에서 계약을 갱신한다. 그리고 엔은 니카이도와 강제인수합병식의 계약을 맺는다. 으, 마법사들의 계약서는 몸안에 있다고 하지만, 계약방식도 참 엽기적이군. 자신의 몸안에 상대의 계약서를 넣으면 계약 완료라나. 그렇게 되면 상대를 지배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엔이 노리는 건 그런 거였어. 그리고 엔이 니카이도와 파트너 관계가 되어 궁극적으로 밝히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드러난다. 이것은 아마도 카이만과 관계있을 듯 싶은데, 정작 카이만은 기억을 못하니. (쯧쯧)

엔의 과거지사를 보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점이 많다. 어린 시절의 엔은 전혀... 귀엽지 않았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마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여튼간에 바람직하지 못한 어른으로 자라난 엔이 패밀리를 조직한 일, 6년전 엔이 일으킨 전설적인 사건과 관련있는 일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쑥쑥 뽑혀나온다. 십자눈 조직의 보스와 맞장을 뜬 엔. 그리고 목없는 시체의 뒷모습. 이렇게 보자면 이 목없는 시체가 카이만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나중에 머리가 자라난 것은 아마도 다른 마법이 작용했을 공산이 크고.
6권을 보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카이만과 엔은 절대적인 악연일 수 밖에 없단 것이랄까. 그 접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겠고. 뭐, 일단은 좀더 두고 보자구.

아, 맞다. 박사와 존슨을 비롯해 등등등은 엔의 저택에서 고문을 받지만 존슨의 작은 친구(?)의 덕분으로 탈출에 성공. 그리고 노상강도 행위를 하다 노이와 신을 만나게 된다. 일단 박사에게 도움을 받았던 신은 박사를 구해준다. 푸하, 이런 의리도 있군. 역시 신도 좋아.

그리고, 기본적으로 시니컬한 성격에 똥건방이 더해지고, 공짜에 환장하는 성품이 더해진 에비스는 매력이 뚝 떨어졌다가 이번에 회복세를 보인다. 오호라, 은근히 착한 면도 있군. 근데 이번에 변신한 건 진짜 웃겼다, 에비스. (푸하하하핫) 게다가 후지타는 파트너가 생길거라고 좋아했는데 너의 배앓이땜에 파트너쉽을 맺는 게 물건너 갔으니, 후지타는 정말로 비운의 사나이군. 그래도 에비스가 있어서 좀 나아졌을지도. 쵸타는... 엔에게 구박만 받잖아. (끄응)

왠지 초반부에 비해 스피드감은 좀 떨어지는 면이 있어도 여전히 재미는 있다. 숨고르기중인가? 하긴 지금 엔의 파트너가 된 니카이도와 카이만이 딱 마주치면... 솔직히 말해서 좀 걱정된다. 억지 계약이든 뭐든 간에 계약을 맺으면 꼼짝없이 4년동안 파트너가 될 수 밖에 없나??? 가여운 니카이도. 아, 엔이 죽으면 계약이 자연스레 파기가...(쿨럭) 뭐, 이래 잔인한 생각을...


6권 부록인 캐릭터 팝업은 엔 패밀리의 보스 엔과 귀염둥이 키쿠라게. 키쿠라게를 크게, 엔을 작게... 만들 수는 없었나? (笑) 농담이고, 엔의 저 알로에 머리는 머리를 감으면 산발이 된단다. 머리를 풀어헤친 엔, 카리스마는 전혀 없었어. 오히려 웃겼다구. 그러니 이 머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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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테크 바벨의 도서관 10
윌리엄 벡퍼드 지음, 문은실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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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열번째 책은 윌리엄 벡퍼드의 작품이다. 영국작가이지만 아라비아의 종교와 문화를 모티브로 쓴『바테크』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 유일한 장편이다. 다른 작품집의 경우 각 작가의 작품중 거의 접해본 적이 없는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왜 이 책만 장편 소설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윌리엄 백퍼드란 작가의 작품 중 유일한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중에는 여행기 두 편과 일기와 전기 등이 있지만 소설같은 문학 작품은 없다. 이 작품은 원래 1782년에 프랑스어로 씌어졌지만, 1786년 S.헨리가 영역본으로 나온 것을 벡퍼드가 개정한 것이다.

고딕 소설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아라비아의 아바시데스 족의 아홉 번째 칼리프인 바테크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모험에 나서게 되는 환상적인 모험소설이다. 칼리프는 거대한 부와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군림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바벨의 탑을 쌓아올리기도 하고 세상의 보물을 끌어 모으기도 한다. 어느날 그는 언월도 하나를 손에 넣게 된다. 그곳에 적혀 있는 글귀는 칼리프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상인의 모습을 하고 왔던 악마는 칼리프에게 이슬람 신앙을 버리고 어둠을 숭배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칼리프는 지하에 있는 불의 궁전의 문을 열 자격을 얻고 세상의 모든 보물과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부적, 그리고 아담 이전의 술탄의 왕관을 얻게 될 것이라 한다. 탐욕스러운 칼리프가 이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불의 궁전에 다다르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백성들을 짓밟고 육욕에 지배당하는 칼리프는 이미 자신의 백성들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두려움과 절망이 넘쳐난다. 신앙을 버리고 백성을 저버린 칼리프는 양치기의 모습으로 나타난 지니가 보여준 마지막 구원의 가능성마저 저버리고 불의 궁전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생각했던 화려한 세상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영원히 불타는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곳인 것이다.

그것은 고삐 풀린 정열과 악독한 행위에 대한 징벌이었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징벌이었다. 그것은 창조주가 인간의 지식에 쳐놓은 울타리를 넘는 눈 먼 야망에 대한 응징이었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응징이었다. 순수한 지성에게만 제한된 발견을 노리는 것으로 오만에 도취되어, 인간이란 무지하고 비천하게 생겨먹은 존재임을 알지 못해 스스로 불러들인 응징이었다. (190p)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주인공인 칼리프 뿐만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 카라티스는 칼리프보다 더욱 잔혹한 인물이며 칼리프가 악마의 유혹에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어둠을 숭배하고 있던 인물로 나온다.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어머니란 존재이다 보니 칼리프 역시 악마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가버린 것이 아닐까.  '모르는 것으로 남겨 두어야 할 것을 알려고 하고, 제 힘을 넘어서는 것을 짊어지려 애쓰는 경솔한 인간들, 필멸의 자들에게 비탄을 내려라' 라고 씌어진 언월도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있었다면 칼리프가 지옥에 떨어질 일은 없었으리라.

사실 칼리프가 떨어진 지옥의 모습은 그다지 끔찍하지 않았다. 물론 영원히 불타는 심장을 가지고 배회하면서 살아야 하는 형벌은 끔찍함 그 자체이지만. 오히려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칼리프가 저지른 악행이 지옥 바로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카라티스가 저지른 짓도 지옥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는 인간으로 지켜야할 도덕과 윤리와 사회의 규범이 있다. 아무리 왕일지라도 만능은 아니며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어둠을 숭상하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말로에는 구원이란 영원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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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의 노예들 바벨의 도서관 9
잭 런던 지음, 김훈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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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아홉번째 책은 잭 런던의 단편소설집이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에 소개된 작가들 중 내가 가장 많은 작품을 접했던 작가가 바로 잭 런던이다. 꿈이란 것을 통해 선사시대 이전의 인간들의 삶을 그려낸『비포 아담』,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한『야성이 부르는 소리』, 그리고 미래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독재우익에 맞서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인『강철 군화』가 바로 그것이다. 다양한 작품을 써내는 작가였지만, 살아 생전에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채 미국 문학계의 이단아로 불렸던 잭 런던. 그의 소설에는 그의 삶이,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황금을 좇아 알래스카로 건너갔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은 모험소설의 재미뿐만 아니라 혹독한 기후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잘 보여준다. 

이번에 읽은『미다스의 노예들』은 잭 런던이 써낸 다양한 문학적 성향을 두루 훑어볼 수 있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진주잡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마푸히의 집>은 백인들이 자신들의 재력과 힘으로 원주민들을 압박하는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무엇이 승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연의 힘앞에는 권력도 재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직 살아 남겠다는 의지, 그리고 작은 집이나마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희망이 자연의 힘도 물리칠 수 있었다. 백인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커다란 진주에 불과했지만 마푸히의 가족에 있어서는 희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삶의 법칙>은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나이가 너무 많아 더이상 부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짐이 되어 버려지게 된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처음에는 안간힘을 써서 버티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고려장 풍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일본 영화 <나라야마부시코>에서 산에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혹독한 기후앞에서는 부족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누군가는 부족 전체를 위협하는 인물이 된다. 만약 인정에 이끌려 가족들이 노인을 이끌고 함께 길을 떠났다면 가족은 혹독한 추위에 몰살당했을지도 모른다. 잔인한 운명, 하지만 그것을 결국 자연스러운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노인의 마지막 모습이 여전히 잊히지가 않는다.  

<잃어버린 체면>은 잔혹한 고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의외로 결말이 유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자신들이 핍박하고 괴롭혔던 원주민들에게 역으로 끔찍한 고문을 받고 죽게될 운명에 처한 한 백인이 기지를 발휘해 잔혹한 고문만큼은 피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편안하게 죽고 싶다, 라는 건 그곳에 있던 누구라도 바라던 일이 아니었을까. 사기를 치려면 당당하고 담담하게. 남자가 한 일은 바로 그것이었다.

<미다스의 노예들>은 제목만을 봤을 때는 배금주의로 똘똘 뭉친 이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말이 영 틀리지는 않다. 미다스의 노예들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이 비밀집단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부유한 자들을 압박해가는 방식은 냉혹하며 철저하다. 부유한 자들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돈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부자들만의 자존심일까. 무고한 사람들이 죽든, 자신이 결국 자살을 택하든 결코 그들과 타협하지 않는 그들의 머릿속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어쨌거나 형태가 어떻게 변화했든지 간에 지금도 이 투쟁은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달라짐으로써 겉모습만 변했을 뿐. 

<그림자와 섬광>은 평생을 라이벌 관계로 살아온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다. 그럼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증명한다. 서로를 적대시하고 라이벌 관계로 여기지 않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가 되었다면 이들의 운명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까.  

타히티나 알래스카에서 지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과 서로의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를 적대시하고 배척하는 인물(혹은 계급과 계급)을 다룬 소설은 잭 런던이 추구했던 문학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타히티를 배경으로 한 <마푸히의 집>과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하는 <삶의 법칙>은 잔혹한 자연앞에서 인간이 택할 수 있는 두가지 선택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 작품은 대항, 한 작품은 순응이라는 대조점을 보여주기에 더욱 흥미롭다. 미국 현대문학의 이방인이자 방랑자로 살았던 잭 런던의 작품은 풍부한 자전적 경험과 생존 당시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때로는 에둘러 표현하고 때로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잭 런던의 소설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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