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0일
바르트 무이아르트 지음, 한경희 옮김 / 낭기열라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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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아무런 설명없이 시작해서 뚝, 하고 끝나버렸다. 솔직히 말해 당황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디찬 바람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온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닿지 못했다. 도대체 왜?

바르트와 베니는 서로가 한 켤레의 신발이라 부를만큼 단짝인 친구다.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꼭 두 짝이 있어야만 하는 한 켤레의 신발. 그런 두 친구가 누군가를 피해 도망을 간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묵직한 발걸음을 힘겹게 뗀다. 바르트는 옷 속에 품고 있는 죽음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만 하다.

한해의 마지막 날, 바르트와 베니는 베트예만의 집에서 오리를 죽이고 말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베트예만은 우리 엄마가 자기 것이라고 여겼지만 엄마는 우리 것이었다. (53p)

바르트는 베트예만과 가까이 지내는 엄마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혹시 새아빠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사는 남자로 상스럽고 욕을 잘하며 폭력적이다. 그런 베트예만을 바르트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초대받은 베트예만 앞에서 식탁을 엎어버렸다. 소년 바르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부의 몸짓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일로 돌아온 것은 베트예만의 폭력이었다.

그리고 한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바르트는 베트예만의 집에 들렀다가 그의 집이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본다. 크리스마스 때 있었던 일에 대한 분노와 베트예만에 대한 미움은 당사자가 아닌 오리에게로 돌아갔다. 오랜 기간 우리에 갇혀 있던 늙고 힘없는 오리. 바르트는 베트예만 대신 오리를 괴롭히고 결국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르트의 개, 엘머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싶었다. 아니면 우리가 좀 더 나이가 들어버려서 예전에 일어났던 어떤 일을 돌이키고 있는 것이었으면 싶었다. (50p)

바르트는 오늘 있었던 일이 없던 일이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했다. 베니의 집으로 몸을 피하지만 그곳으로 베트예만이 찾아온다. 그 상황에 바르트는 공포를 느낀다. 끝까지 피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직접 맞부딪혀야 하나. 바르트의 머리속은 고민으로 꽉 차있다.

하지만 바르트는 결국 베트예만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다시 그 상황에서 도망을 치고 만다. 그런 바르트를 쫓아온 것은 베니의 엄마였다. 베니의 엄마의 따스함에 바르트는 안도한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베니의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베니의 엄마는 바르트에게 베트예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아주 외로운 사람이라고. 하지만 바르트의 입장에선 그 말이 이해될 듯 말듯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를 이해하기엔 그에 대한 공포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점을 잘 생각해 봤다. 나 자신을 보니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 수 있었다. 베니랑 베니 엄마가 곁에 있는데도, 늘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있는 마을 저 길 너머에 엄마랑 로나가 있는데도 말이다. 베트예만이 왜 손톱을 물어 뜯으며 창밖을 내다봤는지 이해가 갔다. 외로운 건 끔찍하니까. (56p)

바르트와 베트예만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양보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르트의 베트예만에 대한 거부와 배척,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베트예만과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바르트를 궁지로 몰고 간다. 게다가 베니는 그런 바르트의 공포와 절망을 부추긴다. 베니는 오리 사건을 일으키게 한 발단을 제공했고, 바르트가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겼으며, 엘머에 대한 복수를 하도록 부추긴다. 친구라면 말려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베니는 그럴수록 바르트를 죄어오기만 한다. 칼과 맨손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베니를 보면서, 자신의 일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닌데도 바르트를 자극하는 베니를 보면서, 도대체 이 소년은 어디까지 비뚤어져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베니가 돌연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르트의 엄마와 동생이 베트예만의 집으로 왔을 때 거짓으로 상황을 꾸며낸다. 그리고는 바르트를 남겨두고 베트예만의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바르트는 자신의 엄마와 동생, 베니가 베트예만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절망과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정말 혼자 남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를 더 꼭, 더 다정하게 안아줄 두 팔이 필요했다. (76p)

나를 위로해줄 엄마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들 지하실과 헛간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104p)

바르트는 베니의 행동으로 더욱더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엄마도 동생도 베트예만과 잘 지내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혼자라고 느꼈을 터인데 말이다. 엄마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 아니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 한 켤레 신발같았던 베니 역시 자신을 배신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엘머는 죽어 버렸다.

아이들은 어른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취할 때 대부분은 무시하거나 거부의 몸짓을 보인다. 어른은 아이들이 상대하기에 너무나도 거대한 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트예만처럼 폭력적인 사람에게는 거부나 무시의 의사에 대한 반응이 폭력으로 되돌아온다. 크리스마스때의 일이 그랬던 것처럼. 만약 그때 베트예만이 조금 다른 행동을 취했더라면 이 둘의 상황은 좀더 달라질 수 있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베트예만이 참을성있게 굴었더라면, 바르트의 걱정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먼저 헤야려 주었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상황까지 치닫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르트 역시 베트예만이 가족도 없이 오랫동안 혼자 살아 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잘 몰랐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베트예만에 대해 그토록 강한 거부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안개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베트예만과 그에게서 철저히 등을 돌리고 있는 바르트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 둘의 골은 너무나도 깊어졌고 회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해의 마지막 날 모든 것을 바로 잡고 새해를 새롭게 시작할 기회는 아주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베트예만의 속마음이 어떤지, 바르트의 엄마가 가진 생각이 어떤 것인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베트예만의 경우 바르트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는 손을 내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한 소년의 굴절된 시각에서 그려지는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적합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거부와 배척,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부른 폭력의 악순환, 그리고 그 폭력을 부추기는 이. 바르트가 베니를 보면서 베트예만의 모습을 떠올린 것처럼 난 바르트의 얼굴을 상상하며 베트예만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고 만다. 바르트가 선택한 맨손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차갑고 감정없는 베트예만의 플라스틱 손이 되어버릴 것을 떠올리게 되고 만다.

제발, 더 늦기 전에 그 완고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기를.
뒤로 돌아서서 어긋남의 근원으로 돌아가 잘못을 바로 잡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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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일
바르트 무이아르트 지음, 한경희 옮김 / 낭기열라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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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척, 거부,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부른 폭력의 악순환이 만든 외로움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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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개 방실이 책공장더불어 동물만화 2
최동인 지음, 정혜진 그림 / 책공장더불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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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가 일어나고 벌써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언론보도를 통해 용산참사에 대해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뿐이었고, 그 참사에 관련된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용산개 방실이』는 용산참사 희생자 중 한명인 故 양회성 씨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용산참사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양회성 씨의 가족은 부인과 아들 둘, 그리고 요크셔 테리어종 강아지 방실이가 있다. 양회성 씨는 여느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처럼 개를 짐승인 주제에 집에서 산다고 생각할 정도로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방실이 전에 키우던 뽀미란 개는 대소변도 잘 못가리고 도둑이 와도 짖을 줄도 몰라 집이 몽땅 털린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후 오랜 시간이 지나 양회성 씨의 부인은 방실이를 입양했다.

인간과 반려동물이 만나는 일이 다 그렇듯 방실이도 운명처럼 우리 가족이 됐다. 미리 정해져 있던 일처럼. (51p)

원래 입양할 개는 방실이의 형제견이었으나 그 강아지가 강한 거부반응을 보여 방실이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아들 둘은 모두 개를 좋아하지만 양회성 씨는 방실이를 처음부터 좋아하지는 않았다. 애교 많고 사람에게 친근하게 구는 방실이였지만 양회성 씨의 마음을 열기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양회성 씨 가족이 운영하던 복집은 나름대로 장사가 잘 되었고, 부부는 일하는 보람을 느끼면서 살았다. 가게에 놀러간다는 말을 할 만큼 양회성 씨는 가게에 애착을 가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재개발 이야기가 또다시 터져나온 것이다.

근데 재개발하면 돈 번다는데 우리도 그런가? 새 가게도 주고 인테리어 비용도 주고 그러는 건가? (77p)

이런 생각은 재개발 소식을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했던 생각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가게에 투자한 돈만큼은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재개발은 가진 자에게만 미소를 허락했다. 건물에 세를 들어 가게를 하던 양회성씨 가족에겐 재개발로 인한 이득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게를 차리면서 3억원 정도를 투자했는데, 평가 금액은 5,00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도대체 그 돈을 가지고 어디에서 장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는 동안 주변 상가들이 하나둘씩 비어가고 용역들이 여전히 이사하지 않은 철거민들을 위협하면서 돌아다녔다. 장사조차 할 수 없게 가게 집기를 모조리 부수었다. 땀 흘리며 삶의 보람을 찾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던 가게는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 그들은 어떤 보장도 받을 수 없었다.

그동안 방실이와 조금씩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 양회성 씨는 재개발이 현실화된 후 방실이에 대한 애정이 더욱더 깊어져갔다. 처음에는 옆에도 오지 못하게 했지만 어느새 방실이는 우리 딸내미가 되었고, 자신은 방실이의 아빠를 자처했다. 모임에 나가서도 방실이가 보고 싶어 얼른 집으로 돌아 갔을 정도다. 비오는 날 방실이 간식을 사러 나갔고, 간식을 씹어서 먹였을 정도로 방실이를 사랑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망루에 올라가는 걸 말리지 못했다. 다만 얼마라도 건져야지란 생각에. 아이들 아빠도 두려움을 애써 감추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리지 못했다. (247p)

거지처럼 한 푼 못 받고 쫓겨나도 그냥 우리 다섯 식구 함께 살 수 있으면 그거면 된 거였는데… 그땐 왜 그걸 몰랐을까…. 문을 열고 나가는 당신을… 망루에 오르는 당신을… 왜 말리지 못했을까…. (252p)

양회성 씨를 포함한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가 시위를 시작했고, 그것은 폭력진압으로 이어졌다. 화재로 다섯명의 철거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언론은 정부의 편을 들어 그들을 테러리스트라 불렀고, 철거민의 화염병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다고 하는 등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더욱 몰아댔다. 그런 상황에서 방실이는 양회성씨의 사망 이후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이십여일을 버티다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보통 동물들은 죽음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방실이의 경우를 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듯 하다. 사랑하던 아빠의 부재, 그리고 가족들의 슬픔. 그것은 방실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안실에서 영정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유가족들을 한 가족씩 돌아보던 방실이. 방실이는 그렇게 떠나고야 말았다.

이 책은 용산참사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양회성씨 개인의 삶과 그가 사랑했던 방실이란 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삼부자가 야구를 보며 즐거워하던 일이며, 등산을 갔다 금낭화 사진을 찍어 부인에게 보낸 일이며, 새 양복을 입고서 아이처럼 즐거워하던 양회성씨의 모습은 우리 이웃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강아지 방실이를 막내딸이라 여기고 사랑하던 양회성씨의 모습은 그가 평범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단 것을 보여준다.
 
용산참사가 일어난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일은 현재진행형이다. 진상규명은 제대로 되지도 않았고, 또다른 재개발 지역에서도 우리 이웃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아픔이 너무나도 크다. 어쩌면 내일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고, 내 이웃이 겪을 수도 있는 일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개발이란 번드르르한 명목하에 서민을 짓밟고 가진 자의 손을 들어주는 현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일을 너무 쉽게 잊고 너무 쉽게 용서한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될 일, 용서해서는 안될 일이 있게 마련이다. 용산참사는 바로 그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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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3 - 완결
고아라 지음 / 북폴리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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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변하는 고양이 홍조와 대학생인 솔아, 알아, 고구마, 재선이 엮어가는 알콩달콩한 이야기 그 세번째.

재선을 짝사랑하는 솔아는 고구마와 재선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재선의 자퇴 소식을 듣게 된다. 아직 고백도 못해봤는데, 마음을 전할 기회 한 번 없었는데. 솔아는 마음이 아프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고구마와 송별회를 하던 솔아는 집에 잠시 들렀다가 쓰러져 있는 홍조를 발견하게 된다. 병원으로 달려간 솔아는 홍조의 몸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얼마뒤. 재선의 이사를 도와주게 된 솔아. 홍조는 또다시 사람 모습으로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본다. 홍조는 얼마나 이렇게 솔아를 몰래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왜 홍조가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홍조가 나오는 부분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재선의 전화를 받고 후다닥 뛰어나가는 솔아를 보면서 홍조는 솔아가 두고간 핸드폰을 손으로 쾅쾅 내려친다. 그것만 없으면 솔아가 나가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일까. 게다가 홍조는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된 곰 이야기를 듣고 마늘을 먹는 일까지 하게 된다. 고양이에게 마늘이 좋을리 없다. 사람도 생마늘을 많이 먹으면 속이 타는 듯 아픈데, 홍조는 오죽할까.


어느날 홍조는 외출했다 돌아오는 솔아를 나무위에서 기다린다. 함께 바라다 본 풍경. 조금 높은 곳일뿐인데, 세상은 달라 보인다. 둘은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중에 왜 홍조가 솔아를 나무위로 올라오게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가슴이 아파 왔다. 근데, 솔아는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구나. 아니 연결시켜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일지도.

그후 솔아는 고양이 홍조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픈 홍조가 많이 신경쓰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솔아의 생일날 재선이 찾아오게 되는데...


재선의 자퇴와 유학. 솔아에게 이건 재선을 만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솔아는 홍조를 내버려두고 정신없이 뛰어나가는데, 그 순간 고양이 홍조는 사람 홍조로 바뀌어 솔아를 붙잡는다. 가슴이 울컥했다. 우리 강아지들도 우리 고양이들도 내가 외출하는 순간마다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내가 신발을 신는 동안 물끄러미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눈들, 눈들. 그 눈들은 묘하게 슬프다.

홍조는 솔아가 나갈 때마다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겉으론 무심한 듯 보였어도. 그래서 사람으로 변신해 솔아 곁을 맴돌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강아지들도 우리 고양이들도 그런 마음일까. 그렇게라도 늘 함께 하고 싶어 할까. 집안에서도 늘 사람을 따라 다니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 아마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솔아는 꽃거지 홍조가 고양이 홍조란 사실을 이때에서야 눈치채게 된다. 그리고 정신없이 보낸 생일을 지나고 솔아는 꿈을 꾼다. 자신이 고양이가 되고, 홍조가 사람이 된 꿈을. 그러면서 자신이 홍조를 그동안 어떻게 대했는지 깨닫게 된다. 홍조는 늘 이런 마음으로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하는.

나도 우리 강아지들이나 고양이들에게 '이따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따가 놀아줄게, 이따가 안아줄게. 언니 지금 바빠. 조금만 기다려. 우리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내고 있을까. 아마도 하루의 대부분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계단을 오르고
모퉁이를 돌면
 '어서와'라고 맞아 준다.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아
고양이가 아니어도 괜찮아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이순간 웃을 수 있다면
조건은 필요하지 않다.
(276~281p)

계속 널 기다리고 있었어. 어서와.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115p, 1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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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봉을 찾아라!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작은도서관 32
김선정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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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교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당시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다니던 때에는 한 반에 50여명의 아동들이 함께 공부했다. 수업 외에는 그다지 기억나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활동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쉬는 시간이면 와글와글 떠들고 수업시간에는 선생님 말을 들으면서 필기하고,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을 것 같긴 하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때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성함도 마찬가지. 이건 나의 큰 단점 중 하나인데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 못한다. 그래서 그런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다른 건 기억을 잘 하는 편인데 유독 얼굴과 이름을 기억 못하는 건 문제가 많다. 상대에 대해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할까.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난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누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편이니까. 여기에 나오는 최기봉 선생님처럼.

최기봉 선생님은 중년의 남자 교사이다. 초등학교에 근무한지 꽤 오래되었지만 학생들과는 좀 거리가 먼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때라곤 고작 야단을 칠 때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최기봉 선생님께 어느 날 선물이 도착했다. 15년전의 제자로부터의 선물이라는데, 당최 그 제자가 누군지 기억이 안난다. 어쨌거나 최기봉 선생님은 제자로 받은 도장 두 개를 아이들 잘잘못을 따지는데 이용하기 시작한다. 울보 도장을 많이 받은 아이는 벌로 교실 청소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울보 도장을 많이 받는 아이는 세명. 공포의 두식이들이라 불리는 현식이와 형식이, 그리고 인간세탁기라 불리는 공주리가 바로 그 아이들이다. 공포의 두식이들은 말썽쟁이들로 늘 말썽을 피운다. 그에 비해 공주리는 말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지만 수업에도 딱히 흥미가 없어 보이는 아이이다. 그러나 최기봉 선생님은 이 아이들에게 벌을 줄 뿐 다른 관심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최기봉 선생님의 두개의 도장 중 최고야 도장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교내 곳곳에서 최고야 도장이 찍힌 흔적이 발견된다. 최기봉 선생님은 일단 의심이 가는 아이를 추궁하지만 아이들은 절대 자신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최기봉 선생님은 기초 조사표를 보면서 아이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용의자인 아이들에게 도장특공대란 이름을 붙여주고 도장이 찍힌 곳을 신고하고, 도장을 훔친 범인을 찾으라고 하는데...

『최기봉을 찾아라!』는 도장을 훔쳐간 범인을 찾는 추리 형식의 동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최기봉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무관심은 이 사건을 통해 표면위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지냈던 최기봉 선생님. 그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난, 따뜻한 정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보라야, 남에게 정을 주는 법도 몰랐어. 난 너희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사람이 되려고 했지. 있는 듯없는 듯한 사람,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람, 아무 영향도 안주는 사람, 기억에 남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 버리는 사람 말이야. 그렇게 사는 게 가장 편하고 좋았거든." (79p)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의외로 오래 간다. 맨날 화만 내고 야단만 치고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했던 이유는 또다시 상처받기 싫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런 무심한 선생님으로부터 또다른 상처를 입게 되었을 것이다. 

도장에 얽힌 비밀과 최기봉 선생님의 사연, 그리고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조손 가정에서 자란 형식이, 그리고 도장을 훔쳐간 범인이 품고 있는 사연 등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이런 부분이 가슴에 확 와닿는 건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 가족 관계 등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열어야 통하게 되고 유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닫고 살았던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서로에 대한 교감과 상대에 대한 이해는 마음을 여는 순간 시작되는 마법이다.  

책에 실린 삽화는 재미있게 그려져 있으면서도 글의 내용을 아주 잘 전달해주고 있다. 등장인물의 특징을 아주 잘 잡았다고 할까. 그래서 그림만으로도 등장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쏙쏙 들어온다. 그리고 배경도 무척 섬세하다. 대포집 풍경이라든지, 도장을 훔쳐간 범인이 드러나는 상황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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