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익명이란 것은 익명의 기부자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좋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익명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블로그에서 쓰는 닉네임은 내 이름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름이다. 이 닉네임을 통해 난 또다른 사람으로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런 네트워크 상에서 만나는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가 없다. 상대도 나에 대해 잘 모르고 나도 상대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쓰는 글에는 나에 대한 짐작을 할 수 있는 글들이 포함되긴 하지만 그것으로 나에 대해 전부 알 수는 없다. 물론 일부러 숨기는 것도 많지만. 꼭 필요한 정도만 공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익명으로 또다른 세상에서 살아갈까. 어쩌면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부딪히는 현실과는 다른 편리한 점이 많아서 그렇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어찌보면 얄팍한 관계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정도로만 사람을 대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처음부터 선을 긋고 시작한다는 느낌이랄까. 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꼭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시대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더 작은 존재가 되어 간다. 사람과 사람이 더 많이 접촉할 수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컴퓨터 뒤에 몸을 숨기고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있다.『상자인간』에 등장하는 남자가 상자속에 몸을 숨긴 것처럼 철저한 익명성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와 우리가 다른 것은 그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숨기려 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컴퓨터 뒤에 숨어 있긴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네트워크에 연결한다는 점이다. 숨긴다는 것은 같지만, 아예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숨기는 것과 존재는 드러내지만 다른 얼굴로 드러낸다는 차이점이랄까.

책을 읽으면서 무척 혼란스러웠다. 화자는 남자임이 분명한데 이 이야기가 어디에서 어디까지 연결되는지가 헷갈렸다고 할까. 마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싶어서 상자인간이 된 한 남자. 그는 상자안에서 모든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게 그는 상자속에서 밖을 엿보는 것이다. 완전한 고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자신의 세계에서 고립시킨다고 할까.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보는 자이다. 그것도 엿보는 자이다. 그는 어느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상자속에 들어가 살아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모두 버리고 세상에서 부유하는 존재랄까. 하지만 세상은 그를 보지 않는다. 보이지만 보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는 세상이 복잡해져서 사람의 존재가 작아진 것과 함께 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가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너무나도 적다. 그래서 이 상자인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베 고보의 다른 작품인『타인의 얼굴』은 자신의 얼굴을 잃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본 뜬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면『상자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두 편의 작품 모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한 사람은 철저히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어찌 보면 두 인간형 모두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즉, 네트워크 상에서 철저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고도로 발달된 사회 그리고 사람의 존재가 작아진 사회에서 자신을 열외인간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부분이자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카르테 1 신의 카르테 1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작품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난 병원도 싫고 의사도 싫다. 어릴 때부터 자주 병원신세를 져야 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병원에만 가면 더 아픈 느낌이 든다. 온통 아픈 사람밖에 없어서 그렇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의사들의 냉담한 태도도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몇년 전 하도 여기저기가 아파서 병원에 진료받으러 간 적이 있다. 집 가까운 곳에 종합병원이 있어 일단 그곳에서 진찰받았지만 더 많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에 갔다.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도 2~3시간을 기다려 3분 진료받았다. 질의응답이 전부, 나머지는 검사, 검사, 검사. 지리한 검사가 이어지고 며칠을 기다려 검사 결과를 받았다. 근막통증증후군이란 생소한 병명. 되게 거한 병같지만 알고 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를 받자고 피검사에 소변검사, X-레이 촬영에, MRI까지 찍었다. 사실 이건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인데 치료방법은 약물, 주사, 재활치료등 정도다. 그러니 그다지 심각할 건 없는데 괜히 사람 겁주고 있어, 이런 느낌이었달까. 

검사비는 둘째치고 제일 기분이 안좋은 건 역시 의사의 태도였다. 하루에도 수십명씩 환자를 봐야 하는 점은 십분 이해하지만 환자를 단지 케이스로만 보는 게 제일 싫었다. 의사 입장에선 내가 인간으로 보이기나 할까, 이런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달까. 이런 건 수없이 경험해 봤다. 문진으로 잘 모르겠으면 무조건 검사. 그리고 주사나 약처방. 병원을 다닐 때마다 늘 이런 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병원도 의사도 싫다. 물론 그들이 그냥 의사가 된 건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건 실력이 좋은 의사는 많지만, 좋은 의사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신의 카르테』는 지방의 한 병원에 일하는 의사의 이야기이다. 그의 이름은 구리하라 이치토. 이 병원에서 5년 근무한 의사로 결혼은 1년전에 했다. 이정도 설정만 보면 대충 그렇고 그런 의학 소설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근데 이거 첫페이지부터 묘하다. 조금 더 읽으면 어디가 묘한지 알게 된다. 책 본문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이 의사 말투가 올드하달까.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고 그의 소설『풀베개』를 무척 좋아해서 소설 전문을 달달 외울 정도라서 그런지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게다가 그가 다른 의사들에게 붙인 별명인 늙은 너구리, 늙은 여우, 자약 선생 등을 비롯해 그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인 온타케소의 거주민인 남작님과 학사님등을 봐도 나쓰메 소세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것이다. 별명을 붙인 걸 보면『도련님』이 떠오른다. 그건 그렇고.

구리하라는 내과를 담당하는 의사이지만 근무하는 병원에는 인력이 부족해서 응급실 담당도 하고 있는데, 구리하라가 근무하는 날이면 환자들이 더욱더 많다는 미스터리한 의사이기도 하다. 며칠 밤새는 건 기본이지만 나름대로 이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구리하라. 그가 대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노령의 환자들로 중병을 앓고 있다. 특히 기억나는 환자는 노령의 암환자인 아즈미씨. 남편과 사별한 후 외롭게 살아온 할머니인데 대학병원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구리하라가 일하는 병원에 재입원한 환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생, 할머니를 방문하는 노신사와의 일화와 구리하라가 아즈미씨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생일을 챙겨주던 장면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고이더니 결국 아즈미씨가 천국에서 보낸 편지를 읽는 순간, 으흑하는 신음과 함께 책의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꽤나 유머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편이지만 환자와 의사와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아즈미씨의 죽음때문이 아니었다. 노신사와 아즈미씨의 오래된 인연과 그들의 사연, 구리하라의 생일 선물, 그리고 천국에서 보낸 편지가 내 눈물샘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단순히 신파극이었다면 눈물이 이토록 나오지 않았으리라. 

또한 학사님과의 일화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학사님의 사연을 듣는 것까지는 괜찮았으나 남작님이 학사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그토록 힘든 시간을 보낸 학사님의 앞날을 위한 축복이 담긴 선물이랄까. 이런 선물은 세상 어떤 선물보다 값지리라. 동이 트지 않는 밤은 없고, 멈추지 않는 비도 없다는 구리하라의 말처럼, 사람의 인생은 늘 양지와 음지가 함께 존재한다. 음지의 시간이 길었다 해도 언젠가 해가 뜨는 양지의 시간이 오게 마련이니까.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남작님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무심하게 말하는 듯한 구리하라의 말투에 웃다가 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마음이 먹먹해지다 눈물을 터뜨리게 만드는『신의 카르테』. 의사 출신 작가라서 그런지 의료행위를 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세심하다. 또한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오마주랄까 그런 면도 많이 보인다. 직접 책제목을 언급하는 것도 그렇지만, 등장인물에 별명을 붙이는 것이나 문체등에서 그런 것을 많이 느낄 수 있달까.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눈물이 난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뭉클한 적은 있었어도 으흐흑, 하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울었던 책은 거의 없다.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의 사연이 등장함에도 신파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좋았다. 또한 나름대로 고충을 앉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같은 느낌도 좋았다.

의술은 단순한 고도의 기술이 아니라 인술이라 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 그것이 구리하라의 장점이자 환자들이 구리하라를 신뢰하는 점이다. 물론 구리하라는 실력도 좋은 편이라는 건 따로 덧붙이지 않아도 되겠지. 구리하라같은 의사들이 좀더 늘어난다면, 환자를 단순히 케이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봐주고 그들의 속내도 들여다 봐주는 의사가 있다면 환자들은 덜 고독해질지도 모르겠다. 아즈미씨의 말처럼 아프다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내가 얼마만큼 아픈지는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덜 외롭지 않을까. 세상이 덜 원망스럽지 않을까.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는 소설의 맛을 더하고, 유머러스함과 눈물콧물 쏙 빼게 만드는 사람들의 사연은 감동을 더한다. 2010년에『신의 카르테』2권도 발간되었다고 하는데, 2권도 얼른 만나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크릿 가든 1 - 드라마 소설
강이을 지음 / 뮤진트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시크릿 가든 방송 소식을 들었을 땐,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원래 드라마를 꼭꼭 챙겨보는 스타일도 아니고, 한 번 보면 뒤가 궁금해서 계속 봐야 하는 것도 싫어서 그냥 무시했었다. 그치만 여기저기서 시크릿 가든 이야기가 나오고, 우연히 재방송을 봤다가 나도 영락없이 시가 폐인이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종방 3주 정도를 남기고 시청을 시작했던지라 나머지 부분은 재방송으로 찾아 보곤 했지만 전부 볼 수는 없어서 처음 시작이 어땠는지를 비롯해서 중간중간 필름 끊기듯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만난 드라마 소설. 물론 드라마처럼 영상도 소리도 없지만 그래도 못본 아쉬움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재벌 2세 남자와 가난한 스턴트 우먼 여자. 딱 봐도 신데렐라 스토리의 설정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빠지면 남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드라마가 신데렐라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신 신데렐라 스토리랄까.

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김주원. 그는 백화점 사장이다. 사랑이나 연애엔 관심도 없으니 결혼 역시 자기와 비슷한 수준 - 학벌, 집안, 외모 등등등 - 의 사람을 만나서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랬던 그가, 길라임이란 여자를 만나면서 확! 달라지게 된다. 첫만남은 사촌형 오스카의 뒷처리 문제로 만났지만 여느 여자와는 너무나도 다른 길라임의 존재가 그의 마음 한자리를 크게 차지한 것이다. 처음엔 그냥 호기심 정도였지만, 자꾸만 생각나고, 자꾸만 만나고 싶고.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런지에 대해 당혹해한다. 

길라임 역시 처음엔 돈많은 부잣집 아들 김주원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몸에 밴 친절, 자연스러운 배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주원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상위 1%, 사회지도층 운운하는 모습이 오히려 너무 뻔뻔스러워서 밉지 않은 김주원이었다고 할까. 길라임에게 있어 김주원은 아무리 세게 던져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부메랑같은 존재였다.

이렇듯 캐릭터부터 정형화된 캐릭터를 벗어던진 시크릿 가든. 시크릿 가든의 가장 큰 매력은 정형화되지 않은 캐릭터에 있다. 멋지고 근사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재벌 2세, 눈물 질질 짜는 가난한 여자 캐릭터를 벗어나 일이나 여자 관계에 있어서는 쿨했지만 진짜 사랑을 알게 된 후 자신의 감정을 어쩔줄 몰라 아이처럼 굴기도 하는 빈틈 있는 재벌 2세와 자신의 일에 있어 모든 열정을 쏟고, 남자 앞에서 굽히지 않는 강인한 매력의 여자 캐릭터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실력은 눈씻고 찾아 보려야 볼 수 없는 한류스타 오스카와 그의 첫사랑 CF 감독 윤슬, 액션스쿨 감독 임종수를 비롯해 여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죄다 괜찮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윤슬이 아직은 오스카 괴롭히기에 매진하고 있긴 해도 말이지.

스토리를 보자면 판타지 성향이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다. 내가 보기엔 로맨틱보다는 코미디 쪽이 우세하달까. 말장난같기도 한 이들의 대사는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특히 주원앞에서 염장지르듯 주고받는 오스카와 라임의 이야기라든지, 주원과 라임의 입씨름이라든지. 그리고 몸이 바뀌어 서로 당황해하는 두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웃음이 더 많이 나온다. 

아직은 밀고 당기기 중. 그리고 바뀐 몸에 적응 중인 두 사람. 여기에 주원의 엄마 문분홍 여사의 등장은 두 사람의 앞으로의 관계에 대파란을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직은 그다지 큰 트러블은 안나온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엔딩이 어떤식으로 나왔는지는 다 알지만 그래도 재미있는건, 시크릿 가든만이 가진 통통 튀는 매력이랄까.  

참, 소설을 읽다 보니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설정이 보였고, 몇 장면 정도는 빠진 것도 눈에 띄었다. 완전 똑같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달까. 그래도 전체 스토리 흐름에 있어서는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와 나 사이의 거짓말 - 카렌 코믹스 026
미사사기 후리 지음 / 대명종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아마기 히사야는 누나가 연예기획사 사장이란 이유만으로 인기 아이돌 야기하시 코쥬의 매니저를 떠맡게 된다. 티비를 볼 때도 뉴스 이외엔 보지 않았던 데다가, 예전에 하던 일도 이런 연예계 일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아니 아예 상관도 없다는 게 맞다. 어떤 사정으로 일을 그만 두고 이혼까지 한 상태의 동생을 누나 입장에서는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갑자기 매니저라니. 아마기 히사야는 처음엔 이 일에 대해 고개를 휘휘 내젓지만 자신이 담당한 코쥬와 가까워지면서 나름대로 이 일에 적응해 나가는데... 
 
아이돌 X 매니저 아저씨 커플링이라. 나쁘진 않다. 뭐 나름 괜찮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커플링이 괜찮다 해도 이야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일. 게다가 코쥬나 히사야나 딱히 드러나는 성격이 없다.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코쥬는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인해 마음을 닫고 지내는지라 겉으로 보긴엔 쌀쌀맞은 성격이지만 그 누구보다 사람을 그리워한다. 또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면 그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면도 있고, 어린 나이에 연예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순진무구, 천진난만 캐릭터랄까.

그에 비하면 히사야는 겉으로 보기엔 유한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쿨한 사람. 다른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늘 선을 긋고 산다. 하긴 이혼에 아이와도 헤여져야 했으니 그후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히사야를 보면서 귀축 카츠야 캐릭터가 자꾸 생각나서 첨엔 엄청 적응이 안되었다. 귀축 카츠야 얼굴에 성격은 데레데레? 사실 나중엔 좀 다른 성향도 나오긴 하지만 말이지. 어쩄거나 히사야가 데레데레면, 코쥬가 츤데레라거나 여왕수 캐릭이면 더 좋았을지도. 둘다 밍밍한 성격에 코쥬는 완전 아이 수준의 천진함을 가지고 있어서 전혀 몰입이 안되었달까. 게다가 나중에 나온 그 아자씨는 뭐냐구욧!

작화를 맡았던 미사사기 후리는 그림만 좋은 작가였더냐, 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밍밍한 캐릭터에 이도저도 아닌 스토리. 꽂힐 부분이 하나도 없는 그런 작품이었다. 음, 그리고 작가 후기를 보면서 허걱!했던 건 작가는 이 작품에 만족한다는 것.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을 가진다는 게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독자의 만족도도 좀 생각을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이란 나라는 우리에게 있어 꿈을 상징하는 나라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미국으로 수많은 사람이 건너갔다. 다른 나라보다 유독 미국으로 유학가는 것을 부러워했고,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란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어떤 일을 해왔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이젠 알기 때문이다. 한미 FTA 협상을 보면서,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장면을 뉴스에서 보면서 우리나라는 왜 이토록 미국에 휘둘려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록 이 책에는 우리나라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떤 식으로 지탱되어 온 나라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이 하는 짓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근본은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우리 군대는 도덕적 목적이 아닌 경제, 정치, 군사적인 목적에 이용되어 왔습니다. 미국의 팽창은 1823년 먼로주의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먼로주의는 아메리카 전 대륙을 미국의 영향권으로 선언했는데 이는 '명백한 운명설' -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지배할 운명을 갖고 있다는 이념- 과 함께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미국은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민주주의라는 축복'을 다른 나라와 '낙후된 사람'들에게 전해 줄 권리를 신에게서 받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16p)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개척의 역사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 포장된 말일 뿐 실제로는 침략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이미 그곳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단물 다 빼먹은 후에는 원주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내쫓고 그 땅을 자신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 원주민들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백인들에 의해 자신들의 땅에서 내쫓겼고, 투쟁으로 맞설 경우 학살당했다. 운디드니 학살에서 백인들은 인디언들을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고, 30분도 안되는 시간에 250명의 인디언을 학살했다. 운디드니 학살은 인디언에 대한 백인들의 행태에 대한 일부분의 모습일 뿐이다.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했고, 결국 인디언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이란 이름이 붙은 불모의 땅으로 내쫓겼고, 자신들만의 문화도 잃어버렸다.

오늘날 미국은 빈자에 맞서 부자를 옹호하며 기득권을 수호하는 전 세계적인 반혁명 운동의 리더가 되었다. - 아놀드 토인비 (153p)

아메리카 대륙을 손아귀에 넣은 뒤 미국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기존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배를 하고 있는 나라를 독립시켜주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또다른 식민정책을 폈던 것이다. 이는 지금도 미국을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필리핀을 스페인에서 독립시킨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또다른 지배의 형태가 되었다. 필리핀 지배는 중국으로 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필리핀 전쟁에서 2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10살 이상의 사람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필리핀 소수부족 중 하나인 모로족 주민은 900명 중 단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모로족의 무기는 벽돌 뿐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 학살을 이끈 우드 장군에게 "장군들과 장병들의 빛나는 승리를 축하합니다. 당신들은 성조기의 명예를 아주 훌륭하게 드높였습니다" 라는 말로 극찬했다. 학살을 두고 성조기의 명예를 드높인 전투였다니. 이런 욕지기나오는 발언은 비단 루즈벨트 대통령뿐 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수많은 대통령들의 망언은 책 곳곳에서 우리를 분노케 한다.

라틴 아메리카나 아랍권 국가에 대한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구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재자들의 장기 집권등이 이어졌다. 이는 미국의 비호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라틴 아메리카에 뿌려진 미국돈을 더 불리기 위해 미국은 독재자들의 지배를 묵인했다. 아랍권 국가의 경우 석유란 천연자원때문에 고통받았다. 미국은 드러나지 않게 독재자들을 조종했고 자신의 이득을 챙길수 있는 이상으로 챙겼다. 이라크 전쟁이 명분없는 전쟁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절대로 정의를 위한 전쟁은 아니었다. 그것은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넓히기 위한 전쟁일 뿐이었다. 

또한 미국은 군수사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군수 사업은 전쟁이 일어나야 돈을 벌 수 있다.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 않아도 무기만 팔아 먹으면 되니까. 지금도 미국은 각종 무기를 다양한 나라에 팔아 넘기고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있었던 군사훈련은 전쟁을 통한 무기판매는 아니었지만, 미국의 또다른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자주국방은 이제 완전히 물건너 가버린 것일까?

해외에서의 모험이 미국내의 파업과 저항운동의 반항적 에너지를 외부의 적을 향해 돌려놓지 않겠는가? 그것이 국민들와 정부를 단결시키지 않겠는가? ★ 애국주의는 계층의 불만을 잠재우는 한 방법이었다. (39p)

미국은 두보이스의 생각에 딱 들어맞는 국가였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부자와 빈자 사이에 인위적인 하나의 이익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기적인 전쟁과 국제적 라이벌이 필요했던 것이다. (95p)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다양한 목적이 있다.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싶거나 다른 나라를 자신의 지배력 안에 두고 싶을 때, 그리고 국민들의 불만이 터지기 일보 직전 전쟁을 일으켜왔다.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을 두르고 전쟁을 일으키면 국민들은 그것에 정신이 팔려 국내 정세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 중에는 이기기 위해 어떤 무기를 사용해도 상관없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한 네이팜탄과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 두 무기는 모두 민간인에게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미국이 저지른 만행은 이루말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때로는 전쟁의 명분을 위해 다른 나라와 짜고 자신들이 공격을 받은 것처럼 만들어 상대 국가를 침략했다. 완전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이렇듯 미국은 자신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파렴치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도덕이나 윤리보다는 자본의 논리가 앞서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뒤 원주민들을 배척하고 학살했다. 인종차별은 오랜기간 동안 미국내의 유색인종들을 괴롭혀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살을 찌우기 위해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군수사업이 국가 기간산업이기에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막대한 무기를 팔아 넘겼고, 때로는 직접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면 그것을 해외의 적들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위해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켰다. 자국 기업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구 제국주의 국가들에게서 독립한 후에도 독재자들이 수십년간 독재정치를 펴는 것을 묵인해 왔다. 아랍권에서는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확장하기 위해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켜왔다. 더이상의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미국은 세상의 중심도 아니요, 민주주의의 선진국도 아니다. 오직 부자 백인들만을 위한 나라로 존재해 왔으며 어떤 것에 대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될 시에는 가차없이 배척했다.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고,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이 대한민국의 구세주라 떠받들어 왔다. 일제시대에 친일파였던 무리들은 친미파로 돌아서서 미국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미국이 우리나라를 대하는 태도가 미국의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한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치, 경제, 국방 등 어느 것 하나에도 미국의 입김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제국주의는 신자유주의와 결합해 또다시 세계 곳곳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의 허수아비가 되어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의 호의적인 얼굴 뒤에 감쳐진 괴물의 모습을 똑바로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역사를, 자본의 논리와 전쟁으로 점철된 그들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미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