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Ⅱ
돈 드릴로 지음, 유정완 옮김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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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이런 변화하는 세상은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우리는 몰개성인 사회, 거대한 군집을 이룬 대중사회에서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디쯤에 속할까.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개성이 가장 잘 표출되는 예술은 어디쯤에 위치할까.

이 책의 주인공 빌 그레이는 소설가이다. 그는 은둔한 소설가이며 일명 사라진 작가들에 속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있고, 세번째 소설을 벌써 몇 년째 계속 고쳐쓰기만 하지 출판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진작가 브리타를 불러 자신의 사진을 찍게 한다. 이는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일까. 아니 오히려 자신을 더욱 숨기는 작업에 불과했다. 그 사진은 말 그대로 빌이 사라진 작가가 된 후에야 세상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둔하며 살아 가던 빌은 레바논의 테러조직에 잡힌 한 시인의 석방을 위한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 모임은 열리기도 전에 테러 공격을 받게 되고 그후 빌은 스스로 레바논행 배에 몸을 싣지만 결국 배에서 숨지고 만다. 정말 사라진 작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빌의 이야기는 요즘의 출판계에 대한 이야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위 잘 나가는 작가, 잘 팔리는 작가에 끼는 빌과 그의 책은 그가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서 지워버림으로써 더욱 신화적인 존재가 된다. 또한 레바논의 테러조직에 잡혀 있는 시인을 석방시키기 위해 시 낭독회를 여는 등의 행위라든지 포로와 빌 그레이의 맞교환으로 세계의 이슈를 집중시키자는 등의 이야기는 예술이 정치적 도구로 타락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마오쩌뚱이 시를 쓰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예술적인 감각으로 인민을 포섭하고 선동했다는 이야기와 맞물려 예술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또다른 예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티비 중계로 보여지는 호메이니의 죽음은 군중심리와 군중의 광기를 보여주는 한편, 예술에 대한 정치적 탄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빌이 구해내야 할 포로는 레바논의 테러조직에 잡혀있으며, 그를 구하기 위한 시 낭독회는 테러로 무산된다. 빌과 연계되어 테러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설 중에 나오는 세계무역센터와 관련한 이야기는 이 소설이 1991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섬뜩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보자면 이 소설은 빌이 상징하는 소설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빌이라는 소설가를 내세워 이 시대의 예술이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지만, 빌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불어 진행시킴으로써 대중사회가 된 현대사회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야기는 문선명총재가 주관하는 통일교 신자들의 합동결혼식으로 시작된다. 모두 6,500쌍이 결혼하는 결혼식. 이들은 거대한 덩어리로 보일 뿐 개인의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똑같은 옷, 똑같은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한 양키스타디움에서 자신의 딸을 찾으려는 부모는 자신의 딸을 찾아낼 수가 없다. 어느새 딸은 한 개인이 아니라 군중의 일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신부 중의 한 명인 캐런은 한동안 통일교에서 단체생활을 하며 포교를 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통일교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그곳을 탈출하게 된다. 그렇게 만난 것이 빌의 비서인 스콧이고 그후 빌의 집에서 기거하게 된다.

캐런을 보면 무척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젊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종교단체의 논리에 흠뻑 빠졌고, 그곳을 나온 이후에도 노숙자들에게 포교를 하기도 한다. 캐런은 빌의 집에 살면서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대중사와 군중이란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그녀가 늘 보고 있는 것은 텔레비전에서 비춰주는 군중들의 모습이다. 어쩌면 그녀가 관심을 갖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삶, 개인의 영역을 중시하고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군중속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한 현대인과 예술과 같은 정신적 면을 자극하는 것보다 커다란 사건 사고등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것에 익숙한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대중속에 속하지 못할 때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어디엔가 소속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건물안에 사는 사람들이든 건물밖에 사는 사람들이든 상관없으며, 그럴 경우 그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여겨진다. 합동결혼식의 신랑신부, 호메이니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 아부 라자드의 소년병들은 모두 집단일 뿐이다. 특히 소년병들은 자신의 얼굴을 두건으로 가리고 있다. 이 두건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한 것 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신념 아래 모인 집단이란 것을 의미한다.

『마오Ⅱ』는 작품 전반이 대중사회의 면면을 다각도로 보여주는지라 책을 읽는 내내 흑백으로 이루어진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마지막 장면만은 컬러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탱크가 호위하는 결혼 행렬에 속한 사람들은 분명한 색감으로 개인의 얼굴로 다가온다. 이는 통일교의 집단결혼식과는 대비되어 극적 반전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듯 보여도 결국은 하나의 시스템안에서 부속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희뿌연 안개에 삼켜진 현대사회일지라도 그속에 희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 역시 정치적 탄압을 받아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어도, 자본주의의 논리에 지배되어도 여전히 아름답게 꽃을 피울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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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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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여년 전부터 정조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예전같으면 영정조 시대로 묶어 영조와 정조를 비교하는 것이 일반론이었으나, 지금은 따로 떼어내서 영조와 정조 시대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예전의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정조는 18세기 조선에 혁신을 가져온 왕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떠한 논지로 서술될까. 이는 저자의 머리말 부분을 통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정조에 대해 상당히 의외의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 정조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내리는 데에 있어 대치점에 있는 인물이 바로 강이천이란 선비이다. 그렇다면 정조와 강이천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저자는 왜 이 두 주인공을 내세워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문화투쟁에서 말하는 문화란 정치, 사회, 경제 등과 같이 세분화된 특정분야가 아니라 그 총합으로서의 문화다. 내가 서술하고 싶은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의 문화투쟁은 총체적 의미의 문화사다. (62p)

우리는 문화라고 하면 책, 음악, 그림과 같은 예술분야를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실제로 문화는 총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언어, 관념, 신앙, 관습, 예술, 기술 등의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문화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로 특정분야가 아닌 총체적인 의미에서 살펴보고자 한 저자의 의도가 위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조와 강이천 사이에서 일어난 문화투쟁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당시 소북에 속해 있던 강이천은 예언서『정감록』의 예언과 천주교의 교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신비주의적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 정조는 강이천의 움직임에 그다지 주목한 것 같지 않지만, 강이천이 뜻을 같이 하는 무리를 만들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자 그에 대해 제재를 가하게 되었다. 그것이 처음에는 문체반정이라고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후에는 천주교 탄압으로 이어지게 된다. 강이천을 비롯한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된 인물은 유배를 가게 된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 정순왕후의 섭정이 이어지면서 이 사건은 다시금 떠올랐고 강이천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청나라인 목사까지 사형당하게 된다. 이것이 강이천 사건의 대략적인 모습이다.   

강이천은 중국도 망하고, 조선도 망하는 일대격변을 상상했다. 바다의 섬에서 진인이 출현하고, 그 전조로 서양의 대형 선박들이 조선 해안에 출몰하는 데다 서양 종교가 유행하는 놀라운 새 시대의 도래를 그는 엄연한 사실로 믿었다. (237p)

그는 한편으로 중국과 조선의 기성 왕조가 붕괴될 시운이 박두했다고 믿었고, 그날이 오면 자신을 비롯해 동지들이 뜻을 펴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 기초한 것은 아니었고 예언과 소문 그리고 몇 가지 징후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243p)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본 강이천은 몽상가일 뿐 행동가는 아니었다. 예언서의 글을 믿고 진인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것은 스스로 직접 무언가를 하겠다는 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누군가 나타나 세상을 바꿔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강이천은 소북 출신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않는 당파 소속이다. 또한 장애인이란 핸디캡도 가지고 있었기에 성리학적 사상으로 단단히 무장한 조선사회에 반감을 품었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렇다면 정조는 왜 강이천에 주목했을까. 당시 조선시대는 서양선박의 출몰과 더불어 기존 사회에 대한 반감의 움직임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신분제로 인한 차별,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남녀차별 등에 지친 사람들이 천주교의 교리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더불어 조선이 멸망할 것이란 예언이 덧붙여 이 이야기가 일파만파 퍼져나간다면 조선은 그 뿌리부터 흔들릴 수도 있었다. 철저한 유교이념하에 세워진 조선은 성리학적 기반에서 성장해 왔고, 그것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기 때문에 이에 배치되는 사상은 극도로 위험한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사상의 중심에 서있던 사람이 강이천이다. 이러하기에 정조는 강이천의 움직임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고, 성리학적 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는 조선사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성리학적 이념을 더욱 강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패관소품을 금지하고 글씨체까지 통일시키게 만든 문체반정으로 나타난 것이다.

정조는 사회적 통제를 바랐다. 그것도 현상적이기보다는 좀 더 깊은 의미에서, 완벽한 '세뇌'를 추구했다. 그가 추구한 완벽한 세뇌란 독서의 폭을 한정하고, 해석을 격식화하고, 나아가 글씨체까지도 통일하는 것이었다. 과장되게 말하면, 정조는 조지 오웰이 묘사한 "빅 브라더"의 내면화를 꿈꾸었다고 하겠다. (147p)

문체반정은 정조의 보수반동 (150p)

왕은 거의 신경질적이고 광적이라 할 만큼 이 문제에 집착했다. (231p)

이러한 정조의 움직임에 대해 저자는 위와 같이 서술하고 있었다. 난 솔직히 말해 이렇게 극단적으로 정조를 몰고 가는 것에 대해 심기가 불편해졌다. 틀림없이 앞에서는 총체적인 면에서 접근한다고 했는데, 너무 편협한 이야기로만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한 나라의 왕이었다. 성리학적 이념을 기반으로 한 사회를 부정하는 이야기에 대해 정조가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었겠는가. 정조는 절대로 강이천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지에 있는 인물이었다. 강이천의 사상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 될테니까. 이런 면에 대해 저자는 간략한 서술로 마무리해 버리고, 정조를 보수반동이라 칭했다. 이걸 거꾸로 말하면 정조가 진보개혁적인 인물이 되려면 조선왕조를 부정해야만 한다. 그러하기에 이런 극단적인 표현은 역사가로서 자제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문장의 신경질적이고 광적이란 표현도 너무 극단적이다. 이런 부분이 무척 거슬렸다. 그래서 저자의 가설과 논리적 검증이 흥미로웠음에도 불구하고 껄끄러운 기분을 내내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시대는 분명 사회적 정치적으로 근대를 향한 태동이 있었던 시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일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왔다. 이 시기는 양반의 세상이었고, 노론의 세상이었다. 만약 천주교 사상이 일파만파 퍼져가고 강이천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생각이 조선사회를 휘몰아쳤다 할지라도 그 결과가 어찌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후로도 조선사회는 백년도 넘게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선사회가 그후로도 지속된 것은 정조가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자들의 싹을 미리 다 잘라버렸기 때문이라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러면서 정조와 흥선대원군, 고종을 한자리에 놓고 같은 묶음으로 묶어버리기까지 한다. 고종은 재위기간이 조선왕 중 3번째에 달할 정도로 오랫동안 왕의 자리에 있었다. 고종은 왕의 자질이 좀 모자랐던 사람으로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고, 자신의 힘이 되어줄 사람들을 차례차례 숙청한 후 친일파만 남겨두었던 왕이며, 자신에게 위협이 닥치자 외세를 끌여들여 결국 조선을 망하게 한 왕이다. 이런 고종을 어떻게 정조와 한자리에 나란히 놓을 수 있는지 난 이해가 안된다.  

게다가 결국 강이천 등을 죽음으로 몰고간 것은 순종과 정순왕후였다. 정조가 급사한 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종의 섭정을 맡아서 한 인물은 정순왕후로 정순왕후는 정조와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정조는 이들을 처벌하긴 했지만 죽음까지 몰고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순왕후는 이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명했고 결국 이들은 옥사와 사형으로 이승을 떠났다. 결말이 그렇게 났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끝까지 정조와 강이천을 세트로 묶고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의 중반부 이후로는 대부분 천주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정조와 강이천의 이야기가 아니라 강이천과 천주교의 이야기가 되었달까. 또한 문화투쟁은 어느새 사라지고 천주교 탄압과 관련한 이야기만 나온다. 강이천 사건에 있어 천주교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총체적 접근이란 표현과는 달리 천주교를 중심으로한 이야기에 치우치고 있다. 물론 천주교가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이라든지 강이천 등이 천주교를 믿게 된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이 자체가 문화투쟁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이쯤에서 강이천 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강이천이란 사람에 대해 큰 신뢰를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언서나 도술을 믿고 진인이 나타나 세상을 바꿀거란 생각을 했으며, 천주교도 종말론같은 것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자 했다는 느낌이다.

친구들에게 그는 왕이 자신의 점수를 깎기 때문에 합격하지 못한다고 불평했던 것이다. (70p)

강이천은 성균관시절 자신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는 것은 왕의 훼방이라 생각했다고 위 문장에 나온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아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강이천은 알게 모르게 정조에 대한 불만을 키워온 듯 하달까.

김정국의 고발 소식에 놀라 불안에 빠진 그가 자기를 고발한 김신국을 비롯해 친구 김려와 김건순 등을 되레 고발했던 것이다. (78p)

"시운"이 오래 못 간다는 말은 나라가 곧 망한다는 뜻이다. 함부로 이런 말을 했다가 유언비어를 퍼뜨린 죄 또는 반역죄를 뒤집어 쓰기 십상이다. 강이천은 이런 식의 진술을 통해 김이백과 김직순을 위험에 빠뜨리려했다. 그런데 피의자들 가운데 정작 "시운"을 즐겨 논한 것은 강이천 자신이었다.  (216p) 

이 사건으로 국문을 받으면서 보인 강이천의 태도는 날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잠잠히 넘어갈 수 있었던 사건 - 정조는 처음에 이 사건을 크게 문제삼지 않으려 했다 - 을 오히려 크게 만든 것이 본인이었다. 그리고 사상교류를 하던 벗들을 되려 고발하기까지 한다. 또한 자신에게 역모의 죄가 씌워질까 두려워 다른 사람에게 그 죄를 씌우려 했고, 국문때마다 말을 바꾸고 자신이 미리 준비해간 말만 하는 등 강이천은 제 살 길 찾기에 바쁜 인물이었다. 이를 보고 저자는 현란한 전략이라며 강이천을 치켜세우고 있다.
 
더불어 강이천은 자신이 포섭하려는 김신국에게 전답을 팔고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고 한 것을 들어 사회정의가 실현된 사회를 꿈꿨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강이천은 자신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는가. 이 책에는 그런 언급은 없다. 희귀한 그림이나 책 등이 집안에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신과 지인들의 유흥을 즐기는 용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래도 강이천이 신분차별이 없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이상사회를 꿈꾸던 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저자의 태도이다.

아직 이 사건에 관해 많은 자료를 읽지 못한 상태지만 나는 정조의 몇 마디 발언을 통해 이 사건의 본질이 일종의 문화투쟁이라고 믿게 되었다. (114p)

나는《조선왕조실록》을 읽어내려 가며 사건 발생 초기에 정조와 노론 실세들 사이에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딱히 이를 입증할 근거가 없었지만 그런 "냄새"를 맡았다. (232p)

'정조의 몇 마디 발언을 통해'라는 문구가 내 눈에는 저자의 고정된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또한 입증할 근거는 없지만 그런 '냄새'를 맡았다니. 역사가에게 있어 상상력은 필수다. 가정을 하고 가설을 세우고 근거를 찾아 자신의 논지를 입증하는 것이 역사가의 몫이지만 이런 것은 도를 지나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다양한 책과 논문, 다른 역사연구가의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논지를 펼치고 있다. 또한 정조시대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고, 김홍도나 박지원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내린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이름없는 선비 강이천을 내세워 18세기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도 훌륭한 시도라 생각한다. 하지만 때때로 너무 치우친 발언이나 극단적인 발언을 이용함으로써 균형감각을 잃은 서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조의 경우 이 사건에 국한한 정조의 극단적인 모습을 묘사하기에만 급급했고, 반대로 강이천은 약간 비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대부분은 치켜세우는 양극단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을 정확히 말하라면 강이천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정조를 악역으로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도 더불어 말해두고 싶다.

훌륭한 업적을 많이 세우고 후세에 칭송받는 왕이라고 해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기술했다면 읽는 나 역시 조금 더 균형있는 시각으로 이 사건에 대해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정조에 대해 너무 폄하하는 발언이 많다 보니 내 입장에선 반발심이 생겼다고 할까. 역사가는 누구보다 공정한 입장에서 역사를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균형이 좀 어긋나 보인다.

난 저자의 말처럼 정조를 보수반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조가 살던 시대는 극히 보수적인 시대였으며 자신의 정통성이나 왕조의 정통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정조가 기존의 가치관과 이념을 고수하려고 했던 것이 보수반동일 수는 없다. 오히려 요즘 세상이, 요즘 정부가 보수반동이지 않은가. 현상을 유지하기는 커녕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 요즘 정치판이 아닌가. 정조는 신분제를 완화하고 보수적인 당파인 노론을 억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으며 화성 건설을 통해 이상적인 도시 건설을 꿈꾸는 등 이 시대에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모두 배제한 채 문체반정과 천주교 탄압에만 중점을 맞춰 근대사회의 태동을 막고 근본적인 싹을 잘라버렸기에 조선의 근대화가 늦어졌다는 저자의 발언은 너무 치우져 있다. 

우리는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역사는 사람의 손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것을 작성하는 사람들의 주관을 배제할 수 없고 후세에 그 기록을 해석하는 사람의 주관이 배제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역사가는 공정해져야 한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고자 하면 보이는 것도 그런 것일수 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역사가에 있어 스스로 균형감각과 중심점을 잡는 태도는 무척 중요하다. 난 역사가가 쓴 책을 읽는 사람이지만 나 역시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의 논지와는 반대로 정조의 역성을 들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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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견 마사의 사건 일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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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탐정 이야기는 많았지만, 탐정견은 처음이다. (또 있나? 본인으로서는 모르겠다) 미미여사의 1997년 작품인『명탐견 마사의 사건일지』는 마사라는 탐정견이 등장한다. 탐정견이라고 해서 마사가 직접 사건을 해결하거나 인간의 말로 소통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마사는 인간의 말을 전부 이해한다. 물론 인간의 눈으로 보자면 하스미 탐정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는 경찰견을 은퇴한 노견이지만, 인간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작품집에는 촌 다섯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첫번째 작품인 <마음을 녹일 것처럼>은 사기꾼 가족에 대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인데, 경찰과는 다른 이들만의 대응방식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경찰같으면 수사방침에 따라 행동하겠지만 이들은 탐정가족이기에 좀 다른 방식을 쓴달까. 독에는 독으로!가 해결지침이 된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기꾼 가족의 딸, 이 아이는 커서 뭐가 되려는지... 참 씁쓸한 뒷맛이 남았달까. 그래도 마사와 하스미 일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마음을 녹일 듯한 이야기였달까. 특히 어린 시절 이토코가 마사에게 마음을 써주는 장면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손바닥 숲 아래>는 알리바이 트릭이 나오는 이야기인데, 1인 3역이 아닌 3인 1역이란 점이 흥미로웠던 작품. 딱히 큰 사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마사가 위험에 처할 뻔 했던 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달까. <백기사는 노래한다>는 빗나간 부정이 초래한 비극적인 사건. 요즘은 자식을 적게 낳는 집이 많아서 그런지 자식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맹목적인 부모가 많다. 하지만 그런 부모일수록 남의 집 자식 귀한 줄은 모른다. 엇나간 부모의 사랑과 더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마약 문제도 함께 다룬 작품으로 백기사의 의미를 알고 마음이 짠해졌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백기사도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는데 말이지. 마지막 작품인 <마사의 변명>에는 작가와 이름이 동일한 소설가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읽는 사람을 잠시 멍하게 만드는 작품이랄까. 근데, 이거 진짜 픽션맞죠?

여기에 실린 작품 중 가장 큰 충격을 준 작품이랄까, 그게 바로 네번? 실린 <마사, 빈집을 지키다>이다. 제목으로 보자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이게 전부 페이크다. 앞서 나온 사건들도 제목만 봐서는 그 내용을 알 수 없듯이 이 작품도 마찬가지. 동물학대와 가족의 붕괴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작품이다. 도대체 연결점이 없을 듯한 두 사건은 견고하게 맞물려 있는데, 이게 더 충격이었다. 보통 동물 학대를 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범들이 어린 시절 동물학대를 시작으로 차츰 인간에게까지 범위를 넓혀가는 일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졌지만, 여기에서는 좀 다른 동기의 동물살해가 존재했다. 일종의 전통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는데, 연쇄살인범의 싹이 되거나, 전통적인 동기거나 간에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동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쨌거나 여기에 나오는 사건은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로 끔찍했고, 더불어 학대와 방치로 인해 죽어간 하라쇼의 이야기에 분노하고 슬퍼했다. 바보같은 하라쇼, 차라리 도망이라도 치면 좋았을 걸. 개의 충직함이란 건 때로 너무나도 바보같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결말은 참 싫다.

일본이란 나라는 많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으며, 펫산업이 잘 발달된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동물에 대한 보호법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잘 되어 있지 않다. 동물은 소유자의 소유물 혹은 기물로 취급되기 때문에 이런 학대와 방치에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는 마사의 마음은 얼마나 씁쓸할까. 아마도 마사의 눈에 비친 인간세상은 요지경일 것이다. 그래도 하스미가 사람들처럼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어 조금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마사가 보는 인간세상은 참 이상할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에 사람을 속이고, 죽이기까지 하니까. 딱히 위협도 없는 작은 동물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괴롭히고 죽이기까지 하니까. 왜 사람들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까, 왜 사람들은 자신보다 힘이 약한 존재를 지켜주지 못할까.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우리들은 이렇게 살고 있을까. 하지만 이런 인간세상을 보는 마사의 눈은 시니컬하지만은 않다. 그속에서도 다정함을 찾고 따스함을 찾고 있다. 

탐정견 마사와 콤비를 이루는 20대 여성 탐정이 등장하기 때문에 일종의 코지 미스터리이기도 하지만,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인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설정도 곳곳에 등장하는『명탐견 마사의 사건일지』.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후속 시리즈도 나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1997년 이후 더이상의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 한 권으로 끝난 모양이다. 참, 마사는 작가의『퍼펙트 블루』에 등장한 경찰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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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헤도로 Dorohedoro 7
하야시다 규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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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때문에 도마뱀 머리 사나이가 된 카이만은 자신에게 마법을 건 마법사를 찾아 마법사의 세계로 잠입, 그럴듯한 성과는 올리지 못한채 탄바의 고기파이 가게에서 알바중이다. 한편 니카이도 일행은 엔의 마법때문에 마법사의 세계로 뚝 떨어져 니카이도는 엔과 억지로 파트너 계약을 맺고 카스카베 박사 일행은 고문을 받다 극적 탈출에 성공한 후 신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마법사의 세계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

카이만은 니카이도가 마법사의 세계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그녀를 찾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던 중 탄바의 파이가게가 엔의 성에서 파이를 파는 행사를 열게 되어 탄바와 함께 엔의 성으로 향한다. 카이만은 어디서나 눈에 띄는 자신의 머리를 감추기 위해 여장을 단행! (의외로 잘 어울렸다.) 니카이도를 찾을 필요도 없이 니카이도는 엔과 함께 파이경연대회 행사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미 계약을 맺은 후라서 니카이도는 카이만을 엔의 적으로 인식, 결국 둘은 배틀 모드로!

실력이 출중한 두 사람이 만났으니 용호상박이랄까. 그러던 중 카이만이 교회 지하로 추락하고 니카이도도 그곳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불시에 당한 공격으로 엔의 계약서가 니카이도의 몸밖으로 나오고 니카이도는 일시적으로 엔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 마침 그곳에 있던 쵸타는 악마 아스의 힘으로 니카이도로 변신, 니카이도와 카이만은 아스의 도움으로 엔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주하게 된다. 

『도로헤도로』7권은 일단 니카이도와 카이만의 재회, 그리고 엔으로부터의 도피 생활의 시작이 중심이 된 내용으로 진행된다. 곁가지로는 카스카베 박사 일행의 피 튀기는 모험담과 리스와 십자 눈들의 데면데면한 재회가 이어진다. 일단 카스카베 박사는 신의 도움으로 엔의 성에서 잘 지내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카스카베 박사는 자신의 아내인 마법사를 찾아 히드라 숲으로 들어가지만 그곳에서 변종 십자 눈들을 만나 호되게 당한다. 그곳에 먼저 도착한 노이는 십자 눈 일당에 쓰러져 있고, 신도 공격을 당해 쓰러지게 된다. 그동안 마법사의 신체구조에 대해 연구를 했다고 하더니 강력한 노이와 신을 한 방에 쓰러뜨리는구나. 

그리고 리스와 만난 십자 눈 일당은 극도의 빈곤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무래도 보스가 사라진 후로 주욱 몰락의 길을 걸었던 듯. 좀 불쌍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왠지 십자 눈들은 정이 안간다니까. 그러고 보면 카이만의 눈에도 십자 표시가 있고, 카이만의 입안에는 리스의 망령이 있는데, 도대체 카이만의 정체가 뭐야? 여전히 카이만의 정체는 미궁을 헤매는 중. 카이만이 나름대로 기억을 해내긴 하고, 여러가지 단서들이 포착되긴 하지만 역시... 잘 모르겠단 말야. 알고 보면 카이만이 제일 위험한 인물!?

카이만과 니카이도는 엔의 마수를 피해 우정의 도피를 잘 할 수 있을지, 카스카베 박사 일행은 십자 눈 일당들의 손아귀를 벗어나 무사히 홀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무력하게 쓰러진 신과 노이는 언제 부활할지, 모든 상황이 손에 땀을 쥐게 했던『도로헤도로』7권! 


7권의 부록인 캐릭터 팝업은 원래는 60대의 노인이지만 마법때문에 소년의 모습으로 변한 카스카베 박사와 그의 충실한 파트너 바퀴벌레 인간 존슨. 카스카베 박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람같이 달려오는 존슨의 모습이 무척 의지할만 하다. 난 사실 바퀴벌레는 질색팔색하는 1人이지만, 존슨은 귀여워하기로 했다. 특히 귀찌귀찌하고 우는 울음과 긴급상황을 알리는 쇼킹쇼킹이란 말이 트레이드 마크인 존슨의 활약, 다음 편에서도 기대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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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역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발효 이야기 파랑새 풍속 여행 3
이이화 원작, 박남정 지음, 백명식 그림 / 파랑새 / 2010년 11월
절판


발효식품하면 우리는 된장, 간장, 고추장같은 장류를 비롯해 김치류, 젓갈류, 막걸리나 소주같은 주류, 술을 발효시켜 만든 식초,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치즈나 요구르트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집에서 먹는 반찬들은 대부분 발효식품을 이용해서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며 조물조물 무친 나물반찬이며, 한국인의 식탁에서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김치 등은 우리 먹거리 중 발효 식품에 속한 것들이며 발효 식품을 이용한 음식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발효 식품을 먹게 되었고, 어떻게 발효 식품을 먹기 시작한 것일까. 이 책은 요즘처럼 인스턴트 음식이 판치는 시대에 새롭게 주목받는 발효 식품들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 그리고 청국장은 모두 메주를 기본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메주를 잘 띄워야 그해 장맛이 좋아진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가면 시렁에 주렁주렁 매달린 메주가 있었다. 메주를 띄우는 시기는 초겨울 무렵으로 난방을 한 방에서 메주를 띄우는데 그 냄새가 제법 고약했다. 그래서 방에 들어갈 때마다 코를 쥐었던 기억이 난다. 메주는 새끼줄을 이용해 매달았는데, 이 새끼줄이 메주를 발효시키는 역할을 한다. 잘 띄워진 메주에 소금물을 붓고 잘 숙성시킨후 액만 받은 것이 간장이고, 남은 메주덩어리를 다시 숙성시켜 만든 것이 된장이다.

장이란 것은 기본 양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에 많은 정성이 들어갔다. 장 담그는 날은 말을 뜻하는 오(午)자가 들어가는 날을 기본으로 했는데, 말이 콩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물을 뜻하는 수(水)자나 신맛을 뜻하는 산(酸)자와 비슷한 신(申)자가 들어가는 날은 장이 묽어지거나 시어지기 때문에 이날을 피해서 장을 담갔다. 이는 얼핏 보면 얼토당토않은 소리같지만, 얼마나 정성을 많이 기울여 장을 담갔나를 반증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집은 요즘 장류를 모두 사서 먹지만, 예전에 할머니가 계셨을 당시엔 집에서 모든 장을 담갔다. 어린 시절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가 소금물 농도를 재는 농도계를 이용하는 건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림처럼 계란을 띄우는 것도 보긴 했지만. 근데 그때는 이미 아파트에서 생활했던지라 장맛이 별로 없었던 기억이... 대신 할머니 댁에서 만드는 장은 시골장이라서 그런지 아주 맛이 좋았다. 장을 만들 때는 메주에 소금물을 붓고 붉은 고추와 참숯을 넣는데 이는 세균 번식을 막아주기 위한 용도였다. 특히 숯의 경우 벌건 숯을 넣어 살균 효과를 내도록 했다. 6개월쯤 지나 간장을 떠내 장을 달이고, 남은 메주 덩어리는 다시 숙성시켜 된장으로 만든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장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장이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흉년이 지거나 전쟁으로 굶주리는 백성이 있을 때는 나라에서 구휼미뿐만 아니라 장도 함께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전쟁이 있을 경우에는 장독이 파괴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예전 시골풍경이라고 하면 장독대가 조르르 놓인 장면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요즘은 시골이라도 이런 풍경은 보기 어렵고 장을 전문으로 만드는 집에 수천개 이상의 장독이 놓인 장관은 가끔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장독대는 집 앞쪽에 약간 높게 만들었다. 장독은 옹기로 만들어 깨지기 쉬웠기 때문에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이렇게 만든 것이다. 맑은 날은 장독 두껑을 열어 햇빛을 쪼여주고, 흐린 날은 장독 뚜껑을 닫아 장을 보호했다. 또한 장독 역시 매일 닦아 옹기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맛있는 장이 되기 때문이다.

고추장은 간장, 된장 만드는 법과 좀 다르다. 곱게 빻은 고춧가루와 메주가루, 찹쌀가루, 엿기름 가루등을 이용해 만드는데, 다른 장류와는 달리 좀 늦게 만들어진 장이다. 왜냐하면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장류에 비해 고급장으로 대우받았다.

고추장 중에 순창에서 만들어진 고추장이 유명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 임금님 밥상에 진상되던 고추장이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순창은 물이 좋고 날씨가 좋아 미생물이 번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감칠맛이 나도록 겨울에 고추장을 담근다고 한다. 나 역시 순창 고추장을 다른 고추장에 비해 더 선호하는 편으로 내 입맛에 딱 맞다.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는 고추장이 당연히 없었을 터. 그래서 매운 된장이라고 하여 된장에 산초나 후추를 넣은 것을 먹었다고 한다.

간장, 된장, 고추장은 발효 시간이 꽤 긴 편이다. 그래서 장을 담그고는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와는 달리 단 며칠만에 발효시켜 먹을 수 있는 장이 있었으니 바로 냄새로 유명한 청국장이 바로 그것이다. 메주콩을 삶아 짚은 꽂은 후 뜨끈뜨끈한 방에 두고 이틀을 두면 끈적한 실이 생기는데 그게 바로 청국장이다. 냄새는 좀 고약하지만 구수하기는 누구도 따라올 것이 없다.

장류가 기본적인 양념의 역학을 하는 발효 식품이라면 젓갈류는 반찬으로 이용되었다. 젓갈을 숙성시키는 것을 삭힌다고 하는데, 얼마나 잘 삭혀지느냐에 따라 젓갈맛이 좌우된다. 젓갈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졌기에 예전에는 100종류가 넘는 젓갈이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냉장고 등 음식물 보관이 용이한 전자제품이 많아져서 예전만큼 많은 젓갈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젓갈은 대부분 반찬으로 쓰이지만 다른 음식의 베이스가 되는 경우가 있다. 즉, 김치에 사용되는 젓갈은 양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내가 어릴때 엄마가 집에서 김치를 담글때 멸치젓을 사서 달인 후 체에 걸러 사용했다. 젓갈 달이는 냄새가 어찌나 지독하던지. 지금이야 액젓 종류가 잘 나와서 그걸 사용하지만 말이다. 김치에 쓰이는 젓갈은 주로 멸치젓과 새우젓, 까나리액젓이지만, 반찬으로 만들어지는 젓갈은 생선과 좁쌀밥으로 만든 식해를 비롯해 내장으로 담근 젓갈, 알로 만든 젓갈 등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난 특히 창란젓과 오징어젓갈을 좋아하는데 내게 있어 밥도둑이 바로 젓갈이다. 오늘도 젓갈에 야채를 썰어넣고 비벼서 한그릇 뚝딱했을 정도이니까.

한국인의 밥상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김치다. 그런데 고추가루가 들어간 배추김치는 20세기가 되어서야 담그기 시작했다. 고추는 임진왜란 후에 들어왔지만 배추가 18세기에 들어왔고 그때부터 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김치들은 존재했다. 고추가루 양념이 없을 때는 맨드라미로 빨갛게 색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김치 종류는 지역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했다. 요즘에는 사시사철 채소가 재배되고 지역의 경계도 없었지만 오래전에는 계절에 따라 지역의 특색에 따른 김치들이 존재했다. 각 지역 고유의 맛이나 계절 고유의 맛이 사라진 건 좀 아쉽지만 다양한 김치를 때와 상관없이 먹을 수 있다는 건 역시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 술은 대부분 곡주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포도같은 과일을 숙성시키거나 말이나 양의 젖을 발효시킨 술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마시는 탁주와 소주는 모두 곡식으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중 할머니 댁과 관려된 기억은 시렁에 걸린 메주나 장독대뿐만이 아니다. 할머니는 술도 집에서 직접 담그셨는데 딱딱한 빵같은 누룩이며 방안을 떠억 차지한 커다란 장독이 아직도 기억난다. 술이 발효되면서 보글보글하고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던 기억도 있다. 예전에는 이렇듯 집집마다 술을 만들면서 고유의 술맛을 가진 술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집에서 술을 담그는 집도 없을 뿐더러 소규모 술도가가 공장화되면서 일정한 맛을 술이 대부분인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소주로 유명했다. 바로 그 유명한 안동소주의 산지로 증류식 소주를 만들던 고장이다. 지금은 안동소주 브랜드가 다양화되고 술도수도 많이 낮아진 것들도 판매하지만 역시 안동 소주는 45도의 술이 가장 좋다. 가격이 다른 소주에 비해 비싼 편인데 그것은 증류를 이용한 방법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만든 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전에는 술을 만들때도 온갖 정성을 다했으니 그것이 약이라고 하는 말도 영 틀리지는 않다.

이런 막걸리와 소주를 혼합해 발효시키면 식초가 된다. 서양에서는 포도주를 발효시켜 식초를 만들기도 하는데, 역시 우리나라는 막걸리와 소주를 이용한 식초다. 이외에도 감같은 과실을 발효시켜 식초를 만들기도 한다. 식초는 이런 천연재료로 만든 것 뿐만 아니라 석유에서 뽑아낸 빙초산을 희석한 화학식초도 있다. 그러나 이런 화학식초가 몸에 좋을리 없다. 우리 고유의 식초는 모두 천연재료를 발효시켜 만든 것이므로 건강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천연재료로 만든 식초를 선택해야 한다.

장류, 젓갈류, 김치류, 술과 식초까지 우리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발효 식품은 그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런 발효 식품은 다른 나라에서도 보이는 특징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발효 식품처럼 그 종류가 다양하게 발전되지는 않았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우리 고유의 발효 식품. 인스턴트 입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이런 깊은 맛을 전부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건강을 생각한다면 천연재료로 만든 발효 식품을 먹는 것이 좋다. 사람의 몸도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하기에 자연에서 나온 것들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일 수 밖에 없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위에서부터 순서대로 10p, 38~39p, 29p, 44~45p, 26p, 47p, 52~53p, 59p, 66~67p, 77p, 94~95p, 102~103p, 111p, 119p, 128~129p), 책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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