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걸 고스트 걸 1
토냐 헐리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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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비(wannabe)란 말이 있다. 이 단어는 마돈나 워너비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1980년대 마돈나를 동경하던 10대, 20대 여성들이 마돈나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녀의 외모, 사상까지 따라하게 된 현상을 의미한다. 요즘은 마돈나 워너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워너비 족이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연예인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고, 또래 집단의 우상을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이 작품『고스트 걸』의 주인공인 샬롯 어셔는 또래 집단에 속한 여학생을 닮고 싶어하는 소녀이다. 콕 집어서 이야기하자면 그녀의 외모를 닮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샬롯은 왜 또래 집단의 여학생을 닮고 싶었던 것일까. 샬롯은 지극히 평범한 여학생으로 학교에서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편이다. 그런 샬롯이 좋아하는 건 학교에서 가장 인기남인 데이먼으로 학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학생인 페튤라의 남자친구이다. 여름방학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샬럿은 데이먼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가득차 학교에 등교하지만, 이게 웬일, 곰돌이 젤리를 먹다 그것이 목에 걸려 사망하고 만다.

참으로 허망한 사인이다. 이렇게 죽은 샬럿은 유령이 되어 유령학교에 다니면서 갖가지 해프닝을 일으킨다. 샬럿이 다니는 학교는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함께 있으며 다른 유령 학생들 역시 산 자들을 곁에서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샬럿은 유령이 된 기회를 이용해 데이먼을 스토킹하기 시작하고, 페튤라에게 빙의하려다 실패를 거듭한 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페튤라의 동생 스칼렛의 도움을 받아 스칼렛의 몸에 빙의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죽은 데다가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고백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죽은 게 원통한 샬럿은 죽은 후에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하긴, 미련을 전혀 남기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샬럿의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비록 유령이 되었지만 좋아하는 남학생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빙의를 통해 그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래도 죽은 자와 산 자들의 세상은 너무나도 다르다. 하지만 샬럿은 자신의 마음에만 치중하다 보니 곧잘 그 선을 넘어 버리게 되고, 유령 학생들이 지내는 공간에 가해지는 위협에도 모른척 방관하기만 한다. 

이 소설은 겉으로 보기엔 이팔청춘들의 사랑 이야기나 인기인이 되고 싶어하는 요즘 아이들의 심리를 그려낸 소설같지만 실제로는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 주는 소설이다. 샬럿이 페튤라처럼 되고 싶어 한다거나, 스칼렛에게 빙의해서 데이먼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하는 것은 모두 겉모습에 국한된 이야기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샬럿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자신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외모에 대한 집착과 인기인이 되고 싶은 욕망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어찌 보면 죽어서야 깨닫게 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러한 미련과 욕망을 버리기 위해 산 자들 가까이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척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샬럿은 나중에는 오히려 그것을 즐겼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다른 유령학생들은 모두 무거운 짐을 하나씩 가슴에 품고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상태로 부유한다. 이 미련과 집착,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풀어줌으로써 이들은 드디어 가벼운 마음으로 이승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샬럿은 어떻게 보면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똑같이 유령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은 후에야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드디어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물론 이런 것은 판타지적 요소가 다분하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따라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느냐 보다는 어떻게 살아 왔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10대를 겨냥한 소설답게 낙관적인 면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10대들의 문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는 어른인 내가 읽어도 꽤나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소중한 것에 대한 가치는 항상 너무 늦게 깨닫게 되지만 그래도 깨닫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가장 좋은 것은 후회하기 전에 깨닫는 것이겠지만... 샬럿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난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당신은 지금도 기회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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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로 가자 2
츠다 마사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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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가 문을 연지 어언 405년이 지난 후의 에도 시대. 지금은 헤이세이 20년이다. 이 말인즉슨 에도 시대가 현대까지 주욱 이어지고 있단 것. 그래서 현대적인 분위기가 약간 가미되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신분제, 풍습, 거리 풍경 등은 에도 시대 그대로이다.

하타모토 사쿠라이 가의 숨겨둔 자식이었던 소우비는 에도로 오게 되고 오라버니 키오우의 밑에서 살게 된다. 처음에는 에도란 곳에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조금씩 에도에 적응하게 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면서 한층 더 씩씩하게 성장해 나가는 소우비의 모습을 보는 게 무척 즐거운『에도로 가자』2권.

이 작품 자체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단편단편이 모여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는 듯 해 이번에도 총 6편의 이야기가 각각의 완결성을 가지고 진행된다. 그중에는 빈농의 자식으로 요시와라에 팔려가는 어린 소녀의 안쓰러운 이야기도 있고, 미토가의 후계자 미치사토와 오라버니 키오우의 이야기에 여자옷을 입어 보는 소우비의 이야기도 있다. 소우비가 현재 입고 다니는 옷은 하카마에 하오리, 즉 남자 옷차림이다. 뭐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소년이라 잘 어울리지만 고소데를 입은 모습도 참 예쁘더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남자옷을 입고 있어도 예쁜 미치사토도 있지만.

에도 시대 신문인 '카와라반'에 등장한 도련님의 모습에 웃음이 푸핫. 우키요에의 인물화처럼 그려진 도련님이라니. 하긴 현대라도 에도 시대이니까 그럴수 밖에 없나. 파파라치의 등장은 현대적인 요소가 살짝 가미된 부분이겠고. 이 에피소드와 관련해서는 역시 도련님은 무사가문의 후계자란 느낌이 팍팍! 평소에는 뭐 하나 빠진 듯한 도련님이지만 이럴 때 보면 역시 훌륭한 가문의 후계자란 생각이 든다. 그런 경우가 좀 드물긴 하지만. 잘 성장하면 멋진 사내가 되겠군. 

그외에도 여름도 아닌 봄에 다녀온 담력시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자세히 안봐서 몰랐는데, 그에겐 그림자가 없었구나. 오호. 일종의 학교 유령이야기인데, 해를 끼치지 않으면 같이 수업을 받아도..(쿨럭) 

제일 마지막 이야기는 소우비의 또한명의 오라버니 이야기. 소우비의 아버지는 정말 얼마나 많은 자식을 두고 저 세상으로 간 것일까. 선대를 가장 많이 닮은 듯한 아들의 등장에 미치사토도, 소우비도 눈동자에 하트가 뽕뿅. 아직 어린 것들이... 말이지. (笑)  

이런저런 에피소드도 재미있지만 에도 시대 풍습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도 이 작품의 쏠쏠한 재미랄까. 1권에서는 에도시대 번과 무사의 계급과 관련한 설명이 있었고, 2권에는 옷입는 법과 머리 묶는 법에 따른 성별, 신분, 나이가 구별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며, 무사가 차는 칼 두자루에 대한 이야기, 닌자가 쓰는 수리검의 종류, 에도 시대 신문인 카와라반, 그리고 가부키에 대한 이야기까지 흥미로운 부분도 많다.

아직 어린 도련님에 어린 아가씨가 등장해서 딱히 러브라인같은 건 없지만 이 아이들을 보는 것만 해도 무척 즐겁다. 아이들이 주는 순수함이 즐겁달까. 급성장하고 있는 - 한 권에 한 살씩 나이를 먹고 있음-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모습도 나오려나? 소우비의 성장도 궁금하지만 미치사토가 성장하면 어떤 남자가 될지 무척 궁금하다. 근데 상투를 튼 미치사토를 생각하면, 벌써 웃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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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2
이와모토 나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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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대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하루노 긴이치로는 면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그의 고향 아메나시는 고교생 이상의 젊은이는 고작 3명에다 특산물도 관광자원도 없는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산업과 겸 관광담당으로 일하게 된 긴이치로는 여름축제에 메구미의 야키소바 판매를 시도하는 등 침체된 아메나시의 부흥을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이번에 그가 도전할 분야는 마을의 새로운 관광상품 개발이다. 그는 지난 봄에 스미오와 메구미와 함께 보러간 벚나무를 관광상품으로 개발, 벚나무 축제를 열기로 결심한다. 일단 문화재 지정부터 받은 후 부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 다행히 마을 주민들도 대형마트 유치 실패의 아픔을 딛고 긴이치로의 계획에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이다. 더불어 특산물 개발에도 나선 마을 주민들은 묵은 농지를 다시 개간하기로 마음먹는다.

침체된 농촌을 되살리기 위한 젊은이들의 노력과 그들의 사랑, 희망, 꿈을 그린『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2권의 내용은 새로운 마을 축제 만들기와 진행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물론 문을 닫았던 놀이동산의 재개장문제라든지, 옆마을 축제와 축제기간이 비슷하다든지의 문제점이나, 새로운 축제를 도입하는 부분에 있어서의 마을 사람들의 반대 등 부정적 요소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아주 긍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간다. (부정적인 내용이면 힘이 빠질거야, 틀림없이)

이 긍정적 분위기에 한몫한 것은 긴이치로에게 깜짝 고백을 한 후 잠적, 그후 도쿄에서 연극배우로 성공을 거둔 스미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건 사실 따지고 들자면 농촌마을에서 거의 백만분의 일의 확률로일어날 일이겠지만, 나이 어린 스미오가 자신의 고향에 대해 숨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부분을 보고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다. 보통 도시에서 성공하면 고향이야기는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어쨌거나 이런저런 도움과 긴이치로의 노력과 마을 사람들의 합심으로 제법 구색을 갖추어 가는 마을 축제는 과연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성공할 수 있을 듯 한데 말이다. 

그리고.
뒤에 실린 단편 이야기 조금 더. (단편이지만 제법 분량이 많다. 그렇다는 건 아메나시 본편 이야기 분량이 적다는 것) 고교생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작품인데 풋풋하고 귀엽다. 약간 심심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꿈을 통해 더 예쁜 꿈을 꿀 수 있다는 건 청춘들의 특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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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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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장편 데뷔작이자,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인『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제목을 보면 Y의 비극이라는 엘러리 퀸의 소설 제목이 먼저 눈에 띈다. 그러나 엘리리 퀸의 Y의 비극을 읽은지 20년도 넘은 데다가, 당시 난 초등학생이었던지라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어쨌거나 제목에 이렇게 엘러리 퀸의 소설 제목을 가져다 붙인 것을 보면 일종의 오마주 소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속에 엘러리 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미스터리 작가들의 이름과 소설 제목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이는 아마도 학생 아리스가 추리소설 연구회에 소속된 회원이기 때문이리라.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아리스가 탐정은 아니고, 추리소설 연구회 부장인 에가미가 탐정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뭐 작가 아리스 시리즈에서도 조수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역시나 이때도 그랬군, 이란 생각이.

이 작품의 스토리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여름 합숙을 위해 야부키산 캠프로 향한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 연구회 학생들이 그곳에서 다른 팀들과 합류하게 된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나름대로 사이좋게 캠핑을 즐기던 젊은이들은 갑작스런 화산 분화로 산속에 고립되게 된다. 생각보다 큰 폭발이 이어져 혼란스러운 가운데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살인 현장에는 y라는 다잉 메세지가 남겨져 있었다.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재해도 무서울 지경인데 - 게다가 길이 끊겨 고립되었다 - 살인사건까지 발생하는 지경이니 제정신으로 있는 것이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처음에 가벼운 기분으로 캠핑을 왔다가 인생을 살면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두가지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으니 말이다. 소설은 범인의 윤곽을 드러내주는 듯 하지만 모두 페이크. 실제로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는 설정은 대부분의 추리소설 팬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첫 장면에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의 이름이 나와도 관망세다. 물론 그쪽으로 눈길이 자꾸만 갈 수 밖에 없지만, 서술 트릭이 아닌 이상 첫장면에서 이름이 언급된 사람이 범인일 확률은 낮다. 물론 이름이 언급되어도 일본처럼 성으로만 표기되는 경우에는 서술트릭으로 처리해 반전을 줄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성이 아니라 이름이 나오기 때문에 일단은 그저 그 인물을 주시할 수 밖에 없달까. 사실 신경을 안쓰려고 해도 범인일지도 몰라, 라는 설정이 등장하면 이 인물에 대해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한 것이니.  

만월의 묘한 기운의 묘사로 오컬트적인 분위기도 나오는데, 이것도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한다. 만월의 밤에 일어나는 각양각색의 사건들이나 달과 인간의 관계라든가, 에 대한 이야기들. 사실 화산이 폭발하고 어수선한 상황이라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것이라도 믿고 싶지 않을까. 달에 홀려서 살인귀가 되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의 동기란 것이 나중에 에가미가 범인을 밝히는 장면에서야 나오고, 그 동기란 것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동기없는 살인사건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는 그 동기를 듣고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나도 동감이다. 보통 추리 소설을 읽다 보면 동기란 것이 참으로 뚜렷하고 이해받을 만한 것이 등장하지만, 현실에서 보자면 살인의 동기란 것이 뚜렷하지 못한 것이 많다. 고작 저런 이유로, 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근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살인을 저지른 범인 입장에서는 그보다 확실하고 뚜렷한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란 그래서 더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처럼 동기없는 살인사건으로 보이는 사건이 더 현실적인지도 모른다. 물론 갑작스런 화산폭발로 인해 고립되는 상황은 작위적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 작품은 클로즈드 서클 - 다잉 메세지 - 로직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고립된 산중, 살해당한 사람들이 남긴 메세지, 그리고 에가미의 논리적인 추리와 범인 찾기의 구성은 추리소설의 기본 요소를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 물론 동기면에서는 좀 부족하다 여겨질지 몰라도 어떻게 생각해 보면 좀더 현실성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큰 이유가 필요 없다, 랄까. 처음 만나 합류하게 된 타인들 사이에서 피어나던 우정과 사랑의 느낌이 화산 폭발과 살인 사건으로 인해 불신과 배척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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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1 밀리언셀러 클럽 19
엘러리 퀸 외 지음, 제프리 디버 엮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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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서스펜스, 스릴러, 미스터리, 호러 등 장르 문학을 좋아하는 1人이지만, 서스펜스와 스릴러의 구별은 여전히 잘 안된다. 예전에 이 단어에 대해 설명을 들은 것 같은데도 여전히 책만 잡으면 그 구별이 모호해진달까. 아무래도 이런 장르들은 여러 요소들이 살짝 혼합되어 있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세계 서스펜스 걸작선』1권에 수록된 작품은 총 여덟작품이다. 그중에서 내가 이름과 작품을 연관시킬 수 있는 작가는 둘 밖에 안된다. 그래도 작품을 읽다 보니 이름을 확실하게 몰라서 그렇지 대부분 그들이 쓴 작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반갑기도 했고.

이 작품집은 앤솔로지 단편집이다. 앤솔로지 작품집의 특성은 역시나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아직 낯선 작가라면 그들의 작품 성향이나 그들에 대한 정보도 살짝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워낙 많은 작가가 있다 보니 때로는 어떤 작품을 일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장르소설 팬들의 공통적인 고민일테니까.

엘러리 퀸은 정말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그의 작품 중에는 드루리 레인이 등장하는 작품과 필명과 같은 엘러리 퀸이 등장하는 작품이 있는데, 여기에 소개된 <황태자 인형의 모험>은 엘러리 퀸과 그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엄청난 가치를 가진 황태자 인형을 훔치겠다는 범행 예고장을 보낸 범인과 엘러리 퀸의 두뇌 싸움이 가장 큰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자신의 자취를 남기는 괴도의 등장은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아르센 뤼팽이나 란포의 괴도 이십면상, 명탐정 코난에 등장하는 괴도 키드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들의 범행은 무척 대담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공통점일듯. 물론 여기에서의 범인은 위에서 언급한 범인들처럼 멋진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대담성을 보여 준다는 것이 또하나의 재미였다. 또한 크리스마스의 선물 쇼핑에 대한 부분을 보면서 왠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영화 <솔드 아웃>이 생각나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런 건 우리나라에선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그런지도.

'탐정 소설의 어머니'라 불리는 안나 카타린 그린은 최초의 여성탐정을 등장시킨 작가로 <사라진 13쪽>에서는 여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가 등장한다. 중요한 서류 중 한 장이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사건이 일어난 저택의 비밀이란 부분이었다. 오래전 비극이 시작된 곳이자 모든 것이 묻혀 버린 그곳. 약간의 호러소설 느낌이 나기도 하는 작품이었다.

리사 스코토 라인의 <숨겨 갖고 들어가다>는 법정을 배경으로 한다. 검사보인 톰 모란이 자신의 쌍둥이 딸 중 하나를 법정에 몰래 데려가면서 벌어진 해프닝에 관한 이야기로 재판 과정의 흥미로움과 숨겨서 데리고 간 딸의 대단한 활약이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다. 유쾌하다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으로 톰 모란은 진땀을 뺐겠지만 이 작품을 읽은 독자인 나로서는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었달까.

<800만가지 죽는 방법>을 필두로 하는 매트 스커더 시리즈와 <자신이 보가트인 강도>를 포함한 버니 로덴바가 등장하는 시리즈물로 유명한 로렌스 블록의 <배트맨의 협력자들>은 배트맨 상표등록법 위반 제품을 수거하러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평범한 이야기인줄 알았다가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아하,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 이민자나 제 3세계 국가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왠지 좀 씁쓸한 여운을 줄 수 밖에 없는 작품.

이 작품집의 편저자이자 영화 본 콜렉터의 원작자인 제프리 디버의 <주말 여행객>은 범인과 인질 사이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기가 압권인 작품이었다. 인질이 범인에게 동화하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니라 범인이 인질의 말발에 넘어간다는 설정이랄까. 완전 짜릿짜릿. 찌릿찌릿.

프레데릭 브라운의 <그 여자는 죽었어>에는 알콜중독자, 마약중독자, 창녀 등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원래는 상류층 자제의 자식인데다 아내와 아이까지 있는 몸이지만 지금은 뒷골목에서 알콜 중독자로 살아가는 하워드 페리의 반전 인생이야기랄까. 근데 이런 사람이 이런 행운을 거머쥐어도 되는 건지.

네이트 헬러라는 사립 탐정을 창조한 작가 맥스 앨런 콜린스의 <원칙의 문제>는 잔인한 살인 장면이 나오는데 거꾸로 쓴웃음이 지어진다. 범행을 저지르는 인간은 역시 그렇게밖에 살 수 밖에 없나,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어떻게 보면 원칙대로 사는 거지만.

얀윌렘 반 드 비터링의 <힐러리 여사>는 사실 빌 클린턴의 전부인 힐러리 클린턴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뉴기니의 타리앤드 군도에 사는 소수 부족민의 전통과 관습이 외부에서온 침입자 세력과 연관되어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면 될까나. 오래전에 벌어진 한 사건에 대해 들려주는 한 남자의 감정없는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섬뜩하다.  

오래전에 씌어진 작품들이 많아서 그런지 심장을 조여오거나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느낌을 주는 작품은 그다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요즘 나온 책들과 비교해 보자면 오히려 심심할 정도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자면 이런 작품들이 기초가 되고 바탕이 되었기에 점점 더 강력한 임팩트를 가진 책들이 나오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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