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징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83
요꼬미조 세이시요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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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드디어 읽었다. 혼징살인사건.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를 읽다 보면 늘 혼징살인사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도대체 그 사건이 뭐길래 긴다이치 코스케를 일본에서 이렇게 유명한 탐정으로 만들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그 궁금증이 풀렸다. 또한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라 긴다이치 코스케의 과거사같은 개인적인 부분도 나와서 더욱 흥미로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역시 외모였달까.

혼징살인사건

이치야나기 家의 장남 겐조의 혼례가 치뤄진 밤, 사람들은 비명소리와 가야금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다. 사건 현장인 겐조의 신방은 본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별채인데다 그날 밤 눈이 왔다 그친 상태이기 때문에 완벽한 밀실이 되었다. 눈위에 찍힌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고, 방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도대체 범인은 언제 이 범행을 저질렀고 어떻게 빠져나간 것일까.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답게 이 작품 역시 한적한 시골 마을의 유서 깊은 가문을 배경으로 하며,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가족들이 등장한다.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독특한 성격이 이 사건을 일으킨 큰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사건의 진실을 알고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으니까. 도대체 머릿속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길래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건지 말이다. 

트릭이란 면에서도 정말 대단한 트릭이 아닐 수 없다. 패러디를 하자면 '이 트릭이 대단하다'랄까. 도대체 이런 복잡기묘한 트릭을 생각해 낸 것이 일반인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지만, 범행 동기를 생각하면 이런 트릭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트릭을 절묘하게 완성시키기 위한 예행 연습이 필요했던 것도 당연한 건지도. 일본식 가옥의 특징을 이용한 기가 막히는 밀실 트릭이었다고 할까. 살인사건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옳지 않겠지만, 이 사건은 정말이지 밀실트릭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비부인 살인사건

하라 사쿠라 극단의 단장 하라 사쿠라가 오사카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공연당일 하라 사쿠라는 콘트라베이스 케이스 안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그녀는 죽은 채로 배달이 된 것이다. 이런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범인은 누구이고, 도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하지만 하라 사쿠라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에 또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흥미로운 부분은 범행 동기란 것과 하라 사쿠라가 언제 어디에서 피살되었는가에 하는 것에 있다. 도쿄와 오사카를 몇 번씩이나 오가면서 펼쳐지는 스토리 전개는 이 작품의 역동성을 더해준다.

이 작품은 오래전에 일어난 사건을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은 유리 린타로라는 사람으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 중에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제외하고 처음 만나는 탐정이 바로 유리 선생이다. 긴다이치 코스케와는 다르게 사건을 해결해 가는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달까.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증명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경우 경찰의 조사에 자신의 추리를 덧붙여 한방에 해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이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사건 발생에서 해결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제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유리 선생의 가설을 따라가면서 스스로 추리하기도 하는 등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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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러브 2 - 뉴 루비코믹스 990
니시다 히가시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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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의 비서인 신카이 타카히로는 미국 방문 중 마피아 조직에 납치되었다. 타카히로를 감시하고 있는 건 마피아 조직의 피래미 잭이란 남자. 타카히로는 잭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에게 조금씩 끌리기 시작한다. 조만간 자신을 구해주리라 생각했던 양부는 타카히로를 모른체하는 상황에서 잭은 오히려 타카히로를 보내주려 한다. 우여곡절끝에 마피아의 손에서 벗어난 타카히로는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잭에게 일본으로 오라고 권하게 된다. 잭은 잠시 망설이다 타카히로를 따르기로 하고 일본으로 오게 되지만, 타카히로는 일본에 도착한 잭에게 매정한 태도를 취하고 만다.

납치와 감금이란 상황을 겪으면서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건 그때만의 감정이었을까. 타카히로는 막상 일본에 온 잭을 보면서 당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잭의 입장에서는 타카히로만 믿고 일본으로 왔으니 그런 타카히로의 태도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한다. 한편 비리 스캔들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양부때문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타카히로는 그것을 구실로 잭을 멀리하고 있다.

잭은 일본어를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일본에서의 생활에 차츰 적응해나가지만 자신을 대하는 타카히로의 태도가 불만이다. 결국 몇 번의 다툼이 있게 되고 잭은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러나 그때 타카히로의 양부가 자살하고 마는데...

『LIFE, LOVE』2권은 일본에 온 잭에게 매정한 태도를 취하는 타카히로와 그런 타카히로에게 실망과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잭의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멀어지면 보고 싶고, 가까이 하기엔 자신의 입장이 용서가 되지 않고, 타카히로는 그런 상태랄까.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양부에 대한 마음도 타카히로를 갈등하게 만드는 한 요소가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이런 타카히로의 태도가 좀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 미국에서의 상황이란 것이 애매모호한 구석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어려운 시간 속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돌봐준 것이 잭이기 때문에 끌린 것인지, 정말 잭이 좋아서 끌리게 된 것인지 스스로 판단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잭의 경우 자신의 마음을 확신하고 왔건만 타카히로는 이런 애매한 태도만을 취하니 당연히 화가 나겠지. 이런 잭을 돌봐 주고 이 둘의 사랑을 엮어 주는 건 룸메이트 존과 케리이다. 사랑이란 것에 대해 누군가가 조언을 해주기는 참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이들이 없었더라면 잭은 일본 생활에 적응도 못했을 것이고, 타카히로의 태도에 실망해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을 수도 있으니까.

타카히로의 제일 큰 문제점은 양부였다. 자신의 위에서 군림하던 양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질질 끌려다닌다고 할까. 그런 타카히로가 아버지의 망령을 떨치고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잭이 취한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징적인 행위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예전의 타카히로는 죽고, 새로운 타카히로로 태어났으니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자신으로 우뚝 섰으니까. 안그랬으면 타카히로는 영원히 양부의 망령에 잡혀 살았을 것이다.

결말부를 보면서 한숨을 깊게 내쉰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해피엔딩이니까. 사건 후 1년 만에 다시 만난 그들. 이젠 더이상 서로를 피하지도 숨어 있지도 않을테니까. 이제 이들에게는 사랑하며 살아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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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헤도로 Dorohedoro 9
하야시다 규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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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의 자신의 파트너를 정하는 블루 나이트에서 억지 춘향식으로 엔의 파트너가 되어 버리고 만 니카이도는 자신을 구하러 온 카이만과 함께 엔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을 치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자칸 마법 학교에서 카이만은 자신의 과거의 일부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은 자칸 마법 학교의 학생이었고, 리스의 친구였다는 것을 어슴프레 하게 깨닫게 된 카이만은 자신이 마법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카이만이 떠올리는 건 아직 일부에 불과한지라 확실히 결론은 이렇다 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왠지 카이만은 아이카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을 괴롭히는 못된 선생을 처리한 후에 도대체 아이카와와 리스 사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리스의 시체를 떠메고 가는 사람의 모습. 그리고 리스의 시체에서 튀어나온 또다른 리스. 그리고 카이만의 입속에 자리잡은 리스의 영혼. 이렇게 보자면 또다른 리스가 생겨나면서 카이만에게 마법을 걸었고, 리스는 영혼의 형태로 카이만과 공존해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실체를 찾을 때까지의 공존이랄까. 일단 상상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카이만의 몸속에서 분리되어 나온 건 뭐지? 그게 카이만의 실체인가? 그게 빠져 나온 후 카이만의 눈에서 십자 문신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니카이도가 본 남자의 모습은 원래 카이만의 모습인 것 같은데, 아이카와의 얼굴을 확실하게 본 적이 없어서 아직 단정을 할 수는 없다.

한편, 니카이도를 돕던 악마 아스는 다른 악마에게 끌려가 처분을 당한다. 다시 마법사로 돌아가게 되었달까. 음. 그렇군. 아스 역시 원래는 마법사였다가 악마 시험을 통과해 악마가 되었구나. 그래서 니카이도를 도왔구나. 뭐 그것 말고도 니카이도와의 오랜 인연에 관한 이야기가 이번에 다 나오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듯. 하지만 이것 하나만 더. 꼬마 니카이도 정말 귀엽다. 아장아장 아기 때의 니카이도인데, 도대체 니카이도의 마법은 어떤 마법이기에 스스로 마법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건지는 아직 좀더 기다려야 할 듯. 참, 아스가 다시 마법사로 돌아가면서 쵸타에게 걸린 마법이 풀렸다. 

엔은... 당연히 열받았지. 쵸타를 버섯으로 만든다는 협박을 하던 찰나, 쵸타의 실수로 엔의 계약서를 살짝 찢는 실수를 범했는데 엔이 쓰러져 버렸다. 호오, 계약서에 문제가 생기면 그게 고스란히 마법사에게 나타나는구나. 엔은 잠시 쓰러져 있어도.... 문제 없다. (푸하) 미안, 엔. 난 그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오. 

에, 그리고 카스카베 박사 일행은 마법사의 세계에서 홀로 다시 돌아간다. 십자눈의 보스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한데... 어쨌거나 그의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는 한 십자눈의 수수께끼도 풀리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인데, 여전히 그정체는 미궁속에 있으니. 솔직히 말해서 이 만화는 수수께끼가 너무 많아! 뭐 그게 도로헤도로의 재미지만.

참, 맞다. 내가 좋아하는 에비스는 기억을 찾더니 집으로 간다고 짐을 싸서 나갔다. 에비스의 기억 속에 있는 집과 부모에 관한 추억은 그다지 즐겁지 않은 것 같았는데 좀 걱정되는군.  

『도로헤도로』10권은 커다란 사건을 예고하는 듯 하다. 니카이도가 하는 말 중 그날 밤이 카이만과 이야기한 마지막 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게 좀 애매하다. 기억을 잃은 도마뱀 머리 인간 카이만과의 마지막 이야기라고 보면 카이만의 정체가 완전히 밝혀진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엔이 만약 급속도로 건강을 회복한 후 니카이도를 탈환(?)해서 감금이라도 한다는 설정을 해 본다면... 그건 아닌가. 하여튼 카이만이 자신의 본모습을 찾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확실한 듯 하다. 아, 정말이지, 궁금하네, 궁금해.





뜨아아... 9권 표지를 보고도 깜짝 놀랐지만, 캐릭터 팝업을 보면서도 깜짝! 왜 쵸타만 블링블링한 핑크색 표지에 꽃들이 핀 잔디가 배경이냐고. 푸하. 하긴 여기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들은 남자보다 강한 캐릭터들이라 이런 블링블링한 표지에 어울릴 캐릭터가 없긴 하군. 근데 이번에 표지를 보며 깨달았다. 쵸타, 그 가면을 쓰면 앞은 보이니?

사진 : 캐릭터 팝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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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알파 6 - 신장판
아시나노 히토시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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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태풍으로 카페 알파가 부서진 후, 알파는 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파가 알고 있는 세계는 알파가 살고 있는 곳 뿐. 알파가 알고 지내는 사람은 알파가 사는 곳 가까이 있는 사람들 뿐이지만 그 속에서 지내는 동안 알파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졌고, 알파는 그것을 좀더 확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파는 느긋한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풍경과 마주하고, 기분 좋은 체험을 거듭한다. 이번에 알파는 공항에 도착해 또다른 로봇을 만난다. 그는 로봇 중에서는 꽤나 드문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나이. 알파와 나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같이 하늘을 난다. 그때 알파와 나이는 기묘한 체험을 한다. 마치 알파가 새처럼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은. 알파는 알파형 로봇 중에서도 특수한 로봇인걸까. 또다시 알파에 대한 수수께끼가 하나 더 쌓였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나이와의 만남은 또다른 인연을 맺어준다. 물론 알파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나이이 친구 중 모모코란 사람은 나이의 사진을 자주 받아 보는데 그것을 전달해 주는 것은 바로 코코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또 이어진다. 왠지 이런 걸 보면 스너프킨이 한 이야기인 세상 모든 사람은 우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나이와 모모코의 우정, 모모코와 코코네의 우정이 알파와 모모코까지 연결시켰으니까. 이런 장면을 보면 가슴이 따스해져 온다, 왠지. 이런 게 또 카페알파의 매력이지.

이렇게 알파는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추억을 쌓는다. 알파의 도보 여행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가로등 모양의 나무가 빛나는 장면이었다. 이미 사람들은 길을 잊었어도 길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사는 것 같아도, 그 반대로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알파는 때로는 군옥수수 판매를 하는 등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도 하지만, 금세 떠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길이었던 곳이 점점 높아지는 바닷물때문에 사라져 가는 모습도 보고, 자연발생적인 화재가 발생해 주변 풍경이 바뀌어 가는 모습도 바라본다. 알파의 여행은 느긋하지만, 그 느긋함 속에도 풍경은 알게 모르게 바뀌어 간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아도 뒤를 돌아보면 언제 이만큼이나 왔나 싶은 생각이 들때가 많으니까. 

알파는 약 1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단 1년인데 타카히로는 알파보다 키가 한뼘만큼이나 더 컸고, 주유소 할아버지는 다리를 다쳤다 나았고, 코코네는 네번이나 들렀었다. 알파가 없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알파가 알지 못한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렇게 보자면 우리는 그 많은 것들의 대부분을 모른채 살아가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런 빈 공간은 우리가 살면서 만들어 가는 추억으로 채워진다. 그 추억은 과거의 일부가 되어 차곡차곡 우리 마음에 쌓이고 있다. 알파 역시 지난 일들을 추억으로 떠올리며 다가올 시간을 살아가겠지.

『카페알파』6권은 알파의 여행과 그녀가 쌓은 추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이 살던 세상을 벗어나 좀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풍경을 지나쳐오는 알파의 이야기는 느릿하게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순식간에 지나는 시간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처럼 사랑스러움과 아쉬움을 동반하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는 진료소 선생님께 듣는 초기 로봇들의 이야기와 선생님의 성을 따른 코우미이시 알파란 존재의 이야기가 나올 듯 한데, 혹시 비행기를 타고 있는 알파 실장과 관련된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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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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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가족이라구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속에 이 문장이 붕붕 떠다녔다. 세상에나,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막장 가족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그보다 더한 가족이 있다니. 책 제목에도 불량가족이란 말이 나와 있긴 하지만, 이건 완전히 불량을 넘어선 가족이다.

이야기의 화자는 이 집안의 막내딸 권여울로 현재 고교생.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은 팔순을 넘긴 할매로 이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꼬장꼬장한 성격인지라 여울이에겐 늘 잔소리만 하는 잔소리꾼 할매다. 여울의 아버지는 채권 추심일을 하고 있는데, 불곰이란 별명답게 욱하는 성격에 주먹이 먼저 나오는 때때로 폭력적인 아버지이다. 삼촌은 아버지의 동생으로 예전에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뇌경색 후유증으로 몸이 좀 불편해서 일은 안하고, 집에서 주식만 하고 있는 주식 폐인이다. 여울에게는 오빠 한 명과 언니 한 명이 있는데, 모두 이복형제다. 즉, 여울의 아빠는 세 여자를 만나서 각기 자식 한 명씩을 만든 것인데, 오빠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으며 언니는 여울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욕쟁이이다.

허허참. 도대체가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네. 이런 말이 먼저 나올 정도다. 그래도 그들의 속사정을 조금 들여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할매는 지금은 집을 나가고 없는 할배의 세번째 신부였는데 할매는 그런 것도 모르고 속아서 결혼했다. 장남인 여울의 아빠 역시 여자 세명에게서 자식 세명을 봤으니, 참 물려 받는 것도 좋은 것만 물려 받을 것이지 할배의 나쁜 점만 쏙쏙 닮은 게 여울의 아빠다. 또한 심각한 일이 닥쳐도 대충 모른척 넘기고, 그저 잘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통에 없는 돈 있는 돈 다 까먹고, 지금은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00만원 짜리 집에 살면서 월세를 못내 보증금까지 까먹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아빠다 보니 제대로 된 결혼도 못했고, 결국 엄마없는 아이 셋을 떠안게 되었다. 삼촌은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건강도 안좋고 재산도 부인이 다 가지고 미국으로 잠적한 상태인지라 돈도 없고, 아이들 소식도 예전에 끊겨 버렸다. 그래도 자존심은 남아 있어서 주식으로 대박을 노린단다.
 
이런 환경에서 살다 보니 여울이는 언젠가 집을 나가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울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고 있는 불량 학생이다. 학교 식권을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팔지를 않나, 집에서는 아빠 지갑과 할머니 지갑에서 몰래 돈을 빼내기도 한다. 여울이의 유일한 즐거움은 코스프레 하는 것이다. 코스프레를 통해 잠시나마 다른 인물이 되어 자신의 숨통을 틔우는 것이다. 여울의 친구로는 류은이와 참새가 있는데, 둘 다 집안 환경이 넉넉한 편이라 여울이와는 비교되는 부분이 많지만, 여울이는 무난하게 이 친구들과 사귀고 있다. 여울이는 첫사랑도 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코스프레에서 만난 세바스찬(캐릭터명, 혹시 흑집사 세바스찬인가. 연미복을 입었다고 하니)이다.

집에만 들어가면 숨통이 턱턱 막히지만, 그래도 여울이는 발랄한 여고생이다. 짝사랑이지만 틀림없이 사랑도 하고 있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니가 생모를 만나러 가는 걸 보면서 자신의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근데 왠일인지 집에서는 여울이의 생모에 대해 절대 이야기를 안한다. 그래서 여울이는 엄마가 더 보고 싶다.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으면서 살고 있는 여울이네. 드디어 일이 차례차례 터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폭력에 언니와 오빠가 차례차례 가출. 밥버러지 취급을 받는 삼촌마저 가출. 게다가 아버지 일이 꼬여 가난한 살림에 차압까지 들어오게 된다. 이런 일들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져 정신을 차릴 틈이 없다. 도대체 이 집안에 평화와 안정은 찾아 오기나 할까.

이 집의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이 돈과 가부장적 권위만 내세우는 무능한 아버지때문이다. 오빠의 다발성경화증은 돈이 없어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해 심각해졌고, 지금은 치료비가 많이 나올까 전전긍긍. 언니는 미술을 배우고 싶어하지만 아버지는 학원비는 커녕 무급으로 부려먹기나 한다. 언니가 가출한 후에는 이 일을 여울이에게 시켜서 여울이는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하니 누가 더 버틸 수 있으랴. 갈 곳 없어서 뭉쳐 있는 무늬만의 가족이 쉽사리 헤채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이유가 한 몫한다.

언니와 오빠, 삼촌은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탈출했다. 어떻게 보면 가족의 위기기 불평불만만을 입에 달고 살던 가족들의 독립심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독립은 불가피했으니까. 결국 스스로 한사람 몫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해체가 오히려 이 가족 구성원들이 정신을 차리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비록 가족이 완전히 붕괴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지만 이는 어쩌면 이 가족에게 필수적인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여울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언니, 오빠, 삼촌이지만, 여울이와 할머니가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 그들이 다시 돌아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한솥밥을 먹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한,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 한, 이 가족의 붕괴와 해체는 겉모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런 붕괴와 해체의 과정을 겪어 다시 하나의 가족이 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결속력을 가진 가족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보통 이런 소재를 바탕으로 씌어진 이야기는 가족의 붕괴와 해체의 과정을 거쳐 불량가족이 우량가족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많은데, 이 작품은 결말이 전형적이지 않아 좋았다.

여고생의 눈으로 본 천하제일의 불량가족의 모습은 살아있는 듯 그 캐릭터가 생생하다. 게다가 요즘 여고생들이 쓸 법한 말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그러한 장점을 더욱 부각시켰다고 생각한다. 여울이의 성격을 잘 담아낸 말투에 몇 번이나 웃음이 터지기도 했는데, 조금 가슴이 아팠던 것은 여울이가 보는 어른들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게 많다는 것이었다. 또한 친구들과 꺄르르거리며 웃고 떠들고 지낼 나이에 벌써 가난에 찌부러져 허덕거리는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여울이가 코스프레에 빠진다거나, 그곳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정에서 엄마의 정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울이지만, 여울이는 절망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울이는 처음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콩가루 집안의 불량 가족 레시피에 희망이란 양념을 더하면 언젠가는 튼튼한 콩나무 가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족의 해체를 계기로 부쩍 성장한 여울이. 이런 아픔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을 떠올리면 여울이의 처지가 가엽기도 하지만, 여울이의 처지를 안쓰럽게만 생각하면 이건 여울이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난, 여울이를 응원하련다. 권여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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