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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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 도대체 되는 일이라곤 없고,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난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정말이지 그 정도가 심해질 때는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에휴, 내 팔자가 이런가 보다 하고 포기한 채 또다시 똑같은 날들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카모메 식당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나와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핀란드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있는 작은 일본 식당인 카모메 식당의 주인인 사치에는 올해 서른 여덟살의 여성으로 일본에 있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둘이서 살아왔다. 아버지는 합기도의 고수로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사는 분이다. 딱히 자신의 뜻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아버지의 말을 따르며 살아온 사치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직접 음식을 준비하게 되면서 요리에 대한 재능에 눈을 뜨게 된다. 요리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사치에는 문득 새로운 곳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 후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을 때 핀란드로 훌쩍 떠난다.

핀란드에 와서 작은 식당을 차리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 계속 이어진다. 그나마 식당을 찾아주는 건 토미라는 청년으로 일본 문화에 푹 빠진 오타쿠 청년뿐. 언젠가 손님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보내는 사치에는 절대 서두르지도 지레 힘빠져 하지도 않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사치에는 한 카페에서 만난 미도리란 일본인 여성과 마음이 맞아 함께 살게 되고, 미도리는 카모메 식당일을 도와주게 된다. 미도리는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했지만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실직한 상태의 40대 여성이다. 자신을 부담스러워 하는 형제들에 질려 미도리는 눈을 감고 지도에서 아무데나 짚은 곳인 핀란드로 무작정 온 것이다.

그리고 또 한명의 일본인 여성은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아온 50대의 여성인 마사코이다. 평범한 생활을 해오던 마사코는 남동생이 일으킨 문제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핀란드로 여행을 오게 되었고, 마침 일본 식당인 카모메 식당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마사코는 처음에는 그저 여행객으로 머물렀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에 푹 빠져 그녀 역시 이곳에 머무르기로 한다.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 이들 세 여성은 모두 평범하고 평온하지만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중 사치에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핀란드로 왔지만, 나머지 두 여성은 가족 문제때문에 우연히 핀란드에 왔다가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고 또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다. 이들 세 여성의 공통점은 용기와 도전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만약 일본에 그냥 머물렀다면 이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때문에 골치를 썪였을 테지만, 무모한 용기라도 낸 것이 그녀들의 삶을 바꾸었다. 물론 거기에 작은 행운이 따랐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행운도 용기있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라 생각하면 묘하게 납득이 간다.

카모메 식당은 특별한 식당은 아니지만, 점점 특별한 식당이 되어간다. 거기엔 주인 사치에의 인품이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늘 놀러 와서 공짜 커피를 마시고 가는 일본문화 오타쿠 청년 토미에게도, 사연이 있는 여인들인 미도리와 마사코에게도, 그리고 어느날부터 카모메 식당 창문을 들여다 보며 노려보다 가는 핀란드 여인에게도 친절한 마음과 여유를 가지고 대했기 때문에 카모메 식당이 특별한 식당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음식이 맛있는 곳은 많지만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식당은 의외로 적다. 사치에의 식당은 음식도 맛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다. 가족조차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대해 속상해 하던 사치에나 마사코에게, 남편의 배신으로 생기를 잃고 살아가는 핀란드 여인인 리사에게 당신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편안함과 배려심은 카모메 식당만의 특식일지도 모른다. 비록 오니기리는 핀란드인에게 인기가 없는 음식이긴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 얼굴에는 미소가 계속 떠올라 있었다. 때로는 너무나도 진지해서 웃음이 터져버리는 일본식 유머 코드에, 엉뚱한 일본 문화 오타쿠 청년 토미의 말에 큭큭 웃기도 했다. 정형화된 삶의 틀안에서 안주하고 살던 여성들이 그 틀을 벗어나 새로운 만남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샘이 나기도 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또다른 여인인 리사의 경우 자신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그 틀안에서 변화를 주어 인생을 새롭게 시작했다. 리사에게 있어 가장 큰 치유는 카모메 식당 사람들과의 만남이었고, 그들이 전해주는 따스한 마음이었다. 나의 경우 내 고향, 내 나라를 두고 떠날 깜냥도 안되고 그럴 능력도 안되는 사람인지라, 나의 경우에는 리사가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모습에서 더 많은 위안을 얻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우리 대부분이 리사같은 경우가 아닐까. 

우리 삶을 살펴보면 어제의 삶이 늘 오늘의 삶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오늘의 삶이 꼭 내일의 삶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늘 똑같은 삶일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면 사람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런 일이 닥친다고 해서 계속 흔들릴 수는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달라진 인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 인생을 새로운 것으로 채워가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야 한다. 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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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 크툴루 신화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2
모리세 료 지음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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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러브크래프트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크툴루 신화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외계의 신이나 고대신들을 비롯해 다양한 마술서등이 등장하는데, 그 모든 것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 크툴루 신화이다. 이 크툴루 신화는 러브크래프트와 그와 친하게 지냈던 작가들이 창조해낸 가장의 신화체계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정말로 실재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섬뜩함이 들 정도로 정교한 체계를 가진다. 이런 정교한 짜임새의 크툴루 신화를 체계적으로 해설한 것이 바로 이『도해 크툴루 신화』인데, 러브크래프트의 책을 접하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크툴루 신화를 채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고, 이미 읽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더욱더 자세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구성은 총 4장으로 나뉘는데, 1장은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외계의 신들과 고대 종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크툴루, 아자토스, 니알라토텝, 요그 소토스, 슈브 니구라스, 다곤(데이곤) 등에 대한 설명이 삽화와 함께 등장한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외계의 신들과 고대 종족들 간의 상관도도 나와 있는데, 이것을 통해 이들 사이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는지 적대적이었는지, 군림인지 종속인지에 대한 관게도 잘 알 수 있다.

2장은 금단의 책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러브크래프트라고 하면 역시 네크로노미콘을 빼놓을 수 없다. 네크로노미콘은 가상이지만, 이 책이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니까. 금단의 서적에 관한 부분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이 책들을 누가 소장하고 있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그림도 나와 있다. 또한 이 책들에 관한 설명을 읽다 보면 어느 작품에 나왔던 것인지도 알 수 있는데, 나 역시 이미 읽었던 작품 속에 나온 인물들의 이름과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다시 작품 내용을 떠올리게 되는 등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정보로는 좀 아쉬운 부분도 있었으나 이 책은 좀더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웠다. 이는 이 책 전체에 공통되는 사항인데, 각 항목에서 작품 이름까지는 거론되지 않더라도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어떤 작품인지 곧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3장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장소에 관한 장이다. 이 장소들 중에는 러브크래프트의 후예들이 창조한 장소도 나오곤 해서 더욱 흥미로웠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곳은 역시 미스캐토닉과 아캄, 인스머스, 던위치 등인데 이외에도 많은 장소가 언급되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장이 3장이기도 한데 이는 북미대륙 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아시아, 아프리카, 극지방 등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대륙과 바다를 포함해 우주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우주는 화성이나 토성, 명왕성 같은 우리가 잘 아는 행성을 비롯 창조된 우주까지 설명한다. 또한 꿈속을 통해 갈 수 있는 드림랜드도 소개되어 있는데, 내가 아직 드림랜드 편의 이야기를 읽지 못해서 조금이나마 그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 볼 수 있었다.

4장은 금단의 지식에 손을 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러브크래프트 본인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로버트 해리슨 블레이크 편에서는 러브크래프트와 로버트 블록이 자신의 소설속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중 <어둠속을 헤매는 자>가 어떤 이유로 집필되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어서 더욱 재미있었다.

100가지가 넘는 키워드로 크툴루 신화에 대한 해설을 접할 수 있는『도해 크툴루 신화』는 크툴루 신화에 대해 다양한 각도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자신이 읽었던 작품속에 등장하는 외계의 종족이나 고대의 신을 비롯해 각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며, 도해와 도식을 통해 이해가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좀 아쉬웠던 부분은 역시 작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위의 그림은 각각 한국판 표지와 일본판 표지 그림이다. 둘 다 크툴루를 묘사하고 있는데, 한국판 표지를 보면서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이게 크툴루라고? 물론 일본판 역시 그다지 완성도가 높지는 않으나 한국판 보다는 좀 낫다. 한국판 그림은 옛날에 그려진 조악한 괴물 만화에나 등장할 법하다. 차라리 표지 그림을 바꾸지나 말지. 표지 그림에서 실망, 그러나 본문 그림도 역시 실망이다. 어떻게 보면 순정만화체 그림같은 괴물들이 주르륵 등장해서 무서움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다. 특히 난 니알라토텝에 엄청 많은 기대를 걸었는데, 내가 상상하던 니알라토텝은 어디로 가셨는지... 작화에만 좀더 신경썼더라면 200% 만족이었을텐데, 작화 때문에 100% 만족은 커녕 80%정도 만족이다. 그나마 책 내용이 받쳐줘서 이 정도로나마 점수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사진출처 : 한국판 책(左), 일본판 책 표지(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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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抱天) 2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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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가공의 인물인 애꾸눈 점쟁이 이시경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결합시켜 이시경이 실존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는 포천. 포천 2막의 내용은 정도령의 협박으로 이시경이 자신의 또다른 스승 전우치를 찾는 이야기와 이시경이 왜 한쪽 눈을 잃은 애꾸눈 점쟁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2막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이시경의 십대 시절의 이야기로 그가 진정한 눈을 뜨게 된 과정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이시경은 자신의 스승 화담 서경덕과 그의 제자들이 조정의 미래를 점치는 이야기를 듣고 비서(秘書)를 훔쳐 달아나 이천년 정희량의 제자 행세를 하며 점을 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었다. 이시경은 또다른 사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등을 점치는데, 이런 점괘가 조정을 어지럽힌다고 하여 이시경은 대역도죄인으로 낙인찍힌다. 결국 죄인으로 잡혀들어가게 된 이시경은 갖은 고문을 당하지만, 스승인 서경덕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만은 건진다. 하지만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맹인으로서 살아가던 이시경은 어느날 앉은뱅이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 여인을 맞은편 강가로 옮겨주게 된 후 한 쪽 눈을 뜨게 된다. 이시경이 옮겨준 여인은 다름아닌 지장보살이었던 것이다. 그전까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살 것인가, 자신을 위해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이시경에게 내려진 해답은 바로 이것이었던가. 어차피 스승처럼 살지는 못하니 범인으로서의 삶이 반, 점쟁이로서 세상에 보시하는 삶이 반이된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점을 치는 사람은 자신의 사주를 읽어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일은 자신의 안위나 이익보다는 세상에 보시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이시경 역시 그런 연유로 자신의 앞날을 읽지 못해 죄인으로 체포되고 고문을 당하는 과정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잔인한 일이겠지만, 그가 진정한 눈을 뜨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이 바로 이런 과정이었을지도. 

이렇게 이시경은 애꾸눈 점쟁이가 되어 살아가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인 서경덕이 사망하고, 이시경은 또다른 스승인 전우치 밑에서 수행을 한다. 전우치는 소설 전우치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도술이 뛰어난 인물로, 진도령 역시 전우치의 제자였으나 전우치와는 다른 길을 걸어갔다. 전우치는 비록 도술을 이용해 나라를 들썩거리게 만들기는 했으나, 기본은 민초를 위하는 자였으나 정도령은 그에 욕심을 더해 백만석과 더불어 조선을 자신의 세상으로 만들려던 인물로 등장한다. 정도령은 전우치를 찾기 위해 이시경을 협박하게 되고, 이시경은 전우치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에 소문을 흘려 놓는다. 과연 전우치는 정도령을 응징하기 위해 세상에 다시 나타나게 될까. 

이 책에는 실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화담 서경덕과 그의 제자들을 비롯 기녀 황진이까지 많은 인물들이 실존인물이다. 또한 추노꾼같은 사람이나 광대 등도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졌던 인물 중에 고도리가 있는데, 죄인을 고문하여 거짓자백을 하게 만드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죄를 만드는 모습에 고개가 휘휘 저어지더이다. 이시경 역시 고도리의 고문으로 눈을 잃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났으니. 이 고도리가 칼을 맞고 화상을 입고도 불사신처럼 다시 살아나 자신을 응징한 추노꾼들을 몰살시켰는데, 그 후엔 어떻게 되었는지도 무척 궁금하다. 제발 안나오면 좋으련만. 포천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인물이 바로 고도리였으니까.        

점쟁이와 점이라는 다소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로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들이 딱딱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하나의 단점이라면, 이 만화는 점이란 이색적인 소재를 사용해 한층 부드럽고 재미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풍속이나 언어풍습등을 접하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특히 지금은 쓰지 않는 말들이 많이 나와 그 재미를 더한다. 순우리말의 재미라고 할까. 현재 우리가 쓰는 말의 대부분은 한자어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런 풍부한 우리말이 지금은 사라졌다는 점이 무척 아쉽지만, 이렇게 이 작품을 통해 조선시대의 풍속과 언어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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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3 -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희망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 월드김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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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뉴스에서 파키스탄 광산 폭발로 인한 사망자 수가 45명으로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나라 역시 예전에는 광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있을 때는 광산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광산 사고가 아니더라도 진폐증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 사람이 많았다. 이처럼 광산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광산업은 다른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가난한 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천연자원 채굴같은 1차 산업은 아무래도 기술은 부족하지만 노동력은 풍부한 나라에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매몰된 광산 역시 칠레에서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광산 중의 하나였다.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의 후미진 구석에 위치한 산호세 광산은 난개발로 인해 광산의 구조가 마치 개미굴처럼 되어 있었다. 좀더 많은 구리를 채굴하기 위해 안전을 무시하고 굴을 파들어 갔기 때문이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잃는 사람도 속출하는 광산이지만 다른 광산에서 일하는 것에 비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유로 광부들은 이곳에서 묵묵히 일을 해왔다.

2010년 8월 5일,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산이 무너져 내렸고 안에서 작업하던 광부 서른세명이 매몰되었다. 다행히 이들 중에는 큰 부상자가 없었지만, 무너져 내린 암석이 70만톤이나 되는 너무나도 거대한 것이라 안에 있는 장비로는 도저히 이것을 처리할 수 없었다. 사고의 충격과 매몰되었다는 고립감은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광산 내부에 있는 대피소에는 먹을 것이 거의 없었고, 깨끗한 물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특기를 살려 그곳에서 생존해 나갈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적은 음식, 덥고 습한 공기, 딱딱하고 축축한 바닥. 보통 사람들이라면 며칠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지만 이들 광부들은 서로 분열하는 대신 공생과 공존의 방법을 모색했다. 물론 그룹이 나뉘어지긴 했어도 '함께 살아서 나간다'라는 것만은 모두 동의하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극단적인 순간에 처해지면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분열로 인해 서로를 죽게 만들 수도 있고, 절망의 늪에 빠져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도록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살아나가서 가족을 다시 만난다는 희망을 절대로 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이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으리라.

이 책은 기자인 조나단 프랭클린이 칠레 산호세 광산 구조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매몰된 광부들과의 인터뷰를 종합해 쓴 책이다. 보통 이런 비극적인 사건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드라마틱한 감동을 주기 위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한 논픽션이란 느낌보다 극적인 요소를 첨가한 픽션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 많은데, 이 책은 객관성을 많이 유지한 책이었다. 드라마틱한 역사적인 인간승리라는 부분만 강조했다면 오히려 이 책의 감동이 반감되었겠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한 덕분에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더 많았다. 구성적인 면을 보자면 광부들의 이야기와 구조팀 및 광부들의 가족등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데 이는 광산 안팎의 상황을 교차시켜 보여줌으로써 마치 그 구조상황을 직접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광부들의 가족은 구조현장에서 숙식하며 이들 광부들이 구조되는 날까지 함께 있었는데, 특히 이들의 편지가 광부들에게 많은 힘을 주었다.  

광부들의 이야기에서 특히 내가 주목한 부분은 그들의 심리적 변화가 여러 단게로 나뉘어진다는 것이었다. 매몰되었을때 느꼈던 공포와 절망을 딛고 공존공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단계, 광산밖 구조팀의 노력으로 그들의 생존을 알리고 가족과 연락이 닿아서 기쁨과 감사와 환희가 넘치던 단계, 그리고 그후에 음식과 다른 많은 것을 공급받으면서 구조팀이나 정부에 대해 불만을 품기 시작하고 광부들의 룰이 무너져 내리던 단계 등으로 진행된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했던 부분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발견했을 때의 감사함과 기쁨은 사라지고 광산내부에서의 나름대로의 편안한 생활로 인해 이들의 결속이 약해질 때였다. 일단 희망이 보이고 죽음이란 것이 저멀리 물러나자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불만과 불평이 쏟아져 나온다니. 물론 이들은 그토록 힘든 시간을 넘겨 생존해 왔으니 그런 불평과 불만을 토로해도 될 권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부분을 보니 이들은 철인이 아니라 역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달까. 

이들의 귀환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 지하 700m에 매몰된 후 69일 만에 매몰된 광부 전원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 결과였다.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서 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었다. 총 서른세명의 광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룰을 만들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그것을 실행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들이 만든 가장 큰 기적이다.

하지만 난 아직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이들의 사고와 구조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척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들은 평생 이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갈 것이 분명하니까. 이들은 분명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기적의 생존자들로 기억될 것이지만,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일지,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 우리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저 부디 앞으로는 평안한 생을 보내기를, 매몰된 광산 속에서 그토록 염원했던 사랑하는 가족과의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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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관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6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추영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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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일본 미스터리 3대 기서 중 하나로 잘 알려진『흑사관 살인사건』. 나는 아직 이들 책 중 단 한 권도 접하지 못한지라 일단 오구리 무시타로의 이 작품을 먼저 선택하게 되었다. 이 작품을 제일 먼저 선택한 이유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번역문제로 말이 많은 작품이라 먼저 읽어 치우자, 라는 생각때문이었달까. (笑) 스스로도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일단 내 목표는 이것을 첫번째로 하여 두번째는 나카이 히데오의『허무에의 제물』, 마지막으로 유메노 큐사쿠의『도구라마구라』를 읽는 것이다. 그건 이 정도로 이야기해 두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과거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넣어둔 성관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흑사관(黑死館). 흑사관의 원래 명칭은 후루야기 성관이지만, 사람들에게는 흑사관이란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이 흑사관의 주인 산테츠 박사는 유럽에서 의학과 마술을 연구한 인물로, 남녀 네명으로 구성된 서양인을 자신의 자식으로 삼고 흑사관에 감금한 채 길러 왔다. 흑사관이 지어진지 약 40여년, 흑사관의 주인 산테츠 박사가 기묘한 방법으로 자살한 후, 흑사관에는 더욱 음침한 공기가 흐르게 된다. 그리고 도저히 사람이 저질렀을 것 같지 않은 살인사건이 연속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흑사관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은 정말 기묘해서 범인이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밀실에서 발견된 빛으로 둘러싸인 시체, 갑옷속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사용인을 비롯해 죽지는 않았지만 역시 기묘한 방법으로 범인의 공격을 받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정말 지옥에서 악마가 찾아오기라도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게다가 흑사관 내부의 모습도 기괴하기 이를 데가 없다. 서양식 건물인 흑사관 내부는 다양한 용도의 방과 기기묘묘한 장식품으로 가득찬 곳이다. 이런 장식품 하나하나 역시 모두 의미를 가지고 범인에 의해 재배치 되는 등 이 작품은 탐정인 노리미즈 린타로와 범인의 두뇌 싸움이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탐정으로 등장하는 노리미즈 린타로는 백과사전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인데, 솔직히 말해서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반도 이해하지 못하겠더이다. 문학, 철학, 종교, 과학, 음악, 신비주의 등 다양한 학문적 지식을 곁들여 이 사건을 수사해 나가는 노리미즈는 수없이 많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입증해 나가는 식으로 사건을 파헤친다. 하지만 이 사람 역시 인간인지라 때로는 잘못된 가설을 세우기도 하지만 결코 기죽지 않고 또다른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다양한 학문적 지식을 이용한 비유인데, 이런 부분들이 제대로 번역이 되어 있지 않다보니 자꾸만 맥이 끊기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런 부분은 좋은 번역이었을지라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데, 번역이 엉망이니 뜬구름 잡는 소리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근데 문제는 노리미즈만 이런 박학다식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집사도 그렇고 사서실 담당 노부인도 그렇고 비서도 그렇고 얼마나 박학다식하신지, 노리미즈와 선문답 같은 대화를 나누시더이다. 그렇다 보니 검사인 하세쿠라나 수사국장인 구시마로가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벙찐 듯한 표정을 짓는 게 그냥 마구 상상이 되더이다. 나도 역시 그랬으니까.  

번역의 문제에다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줄줄 늘어 놓아 읽기 힘든 부분은 분명 있었으나 작품 자체로만 평가를 내린다면 이 작품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후루야기 家 혈통과 관련된 비밀, 감금된 채 40여년을 살아온 남녀 외국인 네 명에 관한 비밀은 이 작품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작품은 마술과 저주, 등신대의 걸어다니는 인형 등이 등장해 신비주의적이고 오컬트적인 냄새가 퐁퐁 풍기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손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이 가장 큰 매력이다. 범인은 도대체 이런 복잡 기괴한 트릭을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런 트릭은 역시 이 기묘한 가족 구성원의 특성과 깊이 연괸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수긍이 가게 되는데, 이런 부분은 감히 독자로서는 추측하기도 어려운 부분이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감춰둔 비밀이라고 생각된다.

『흑사관 살인사건』은 많은 독자들에게 '번역이 최악인 작품'으로 악명이 높은(?) 작품이라 읽기 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읽기 시작했건만, 도대체 뜻을 알 수 없는 비문들의 난립으로 읽는 내내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좋은 번역이었을지라도 워낙 작품 내용이 복잡 기괴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번역이 엉망이다 보니 내용 파악은 고사하고 문장의 뜻을 파악하는 것도 많이 힘들었다. 보통 이 정도 분량의 책이라면 몇 시간 내에 읽을 수 있겠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나눠서 며칠에 걸쳐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번역만 제대로 되었더라면 정말 재미있었을 작품인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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