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못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5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이희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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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무척 고민했었다. 일단 제목이 너무 촌스러웠고, - 촌스럽기 보다는 너무 적나라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란 점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랄까. 왠지 중국하면 무협지나 무협 드라마 같은 게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즉 심각하게 과장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책을 읽어가면서 처음에 가졌던 우려는 점점 가시기 시작했고, 읽으면서 책 내용에 푹 빠져 들었다. 이거 진짜 재미있다, 라는 느낌이었달까. 또한 중국인도 아닌 네덜란드인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썼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매우 재미있게 썼다는 점도 무척 신기했다.

이 책의 주인공 판관 디공은 디런지에라는 실존 인물로 당나라 시대의 인물이다. 판관하면 포청천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건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 하지만 판관 포청천 드라마를 너무 오래전에 봐서 잘 기억이 안나는데, 그건 나만 그러려나.

각설하고.
디런지에가 지방관료로 근무하는 베이저우에서 수상쩍은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난다. 첫번째 사건은 골동품 장수의 집에서 머리 잘린 시신이 발견된 사건이고, 두번째 사건은 무술의 달인 란사부가 목욕탕에서 독살된 사건이다. 

첫번째 사건인 머리 잘린 시신 사건은 남편이 용의자가 된다. 하지만 그당시 출타중이었던 남편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니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하게 된 것일까. 이 사건이 해결되기 전에 일어난 두번째 사건. 두번째 사건의 경우 란사부가 칠반으로 다잉 메세지를 남겨두었다. 하지만 그 모양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수사에 난항이 거듭된다. 디런지에는 자신의 수하와 더불어 사건을 수사하며 용의자의 폭을 좁힌다. 일단 두 사건은 연관이 없는 사건으로 파악, 두 명의 범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사건 수사를 하던 디공의 수하가 피살되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머리 잘린 시신의 경우 대부분 신원확인을 어렵게 하기 위한 트릭으로 존재한다. 이 사건의 경우 골동품 장수의 집안에서 발생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시신이 골동품 장수의 아내일 것이란 추측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사건 해결을 늦춰지게 만든 것이다. 요즘은 지문 확인이나 DNA검사를 하지만 당시에는 간단한 검시 정도로만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 아주 적은 단서만 가지고 사건을 수사하고 추리해내는 디공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결말부를 읽으면서 앞에 나왔던 것들이 복선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그 또한 매우 치밀했다.

두번째 사건의 경우 어렴풋이 여성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란사부처럼 무술의 달인을 죽인 독살이란 방법은 주로 여성이 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완력면에서 뒤지기 때문에 선호하게 되는 살해 방법이 독살이 많은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란사부가 남겨놓은 칠반 다잉 메세지가 사건 해결의 핵심이 되지만,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이 정말 만만치 않은 여성이었달까. 미인계를 쓰는 건 물론이요, 6개월전 남편살해란 또다른 사건을 저질렀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여성을 수사하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증거불충분이란 것이었다. 얼마나 교묘한 방법으로 살해 행각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얼마나 뻔뻔하게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강조하는지, 이제껏 악녀들을 많이 보긴 했어도 고개가 휘휘 저어질 정도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재판과정에서 디공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고 결국 자신의 목숨마저도 위태로운 처지가 되지만 한 여성의 도움으로 이 사건을 극적으로 해결하게 된다.

『쇠못살인자』는 여러 면에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범인들의 살해 방식과 증거 인멸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수사과정과 공개재판이란 점이었다. 용의자를 심문하고 때로는 고문을 하기도 하는 등 요즘 법체계에서 보자면 불법이 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것들이 다 허용된 모양이다. 고문이 허락되었다는 점이 가장 충격적이었달까. 만인이 보는 앞에서 태형을 당하는 여인이라. 하지만 그런 것도 그 여인이 저지른 끔찍한 범행에 비하면 덜 충격적이었다. 정말이지 여인들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달까. 물론 그런 방법이 요즘 세상에서는 씨알도 안먹히겠지만, 이 사건이 벌어진 때를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간다.

주인공 디런지에의 캐릭터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날카로운 분석력과 행동력은 판관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요소이겠지만 인간적인 면도 무척이나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디런지에이다. 아내가 세명이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 이 시대에는 당연한 것이었다 - 아름다운 여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면이나, 사건 해결의 의욕이 앞선 나머지 자신의 목숨을 거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 역시 무척 인간적인 부분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실수는 하는 법이랄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집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사심 한조각 용납하지 않는 냉정한 면도 있다.

그리고 당대 중국의 풍습을 묘사한 부분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점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소녀들이 유곽으로 팔려오는 것이며, 중국 결혼 풍습에 있어 두드러진 남녀차별같은 것도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어둠과 음험함,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광기의 살인 행각. 인간은 정말이지 다양한 동기로 다른 이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그것을 합리화한다. 이런 점이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점이 아닐까. 가끔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에게 동정이 가는 경우도 가끔씩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절대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한 사람은 정상참작이 되긴 했지만... 이 부분이 깜짝 트릭같았달까. 원제를 보니 납득이 가긴 했지만. (복수형이었어.) 

디공 시리즈 다음 작품도 기대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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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남자 호랑이남자 1 - 뉴 루비코믹스 965
혼마 아키라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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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 아키라의 작품은 이제껏 딱 두 권을 읽었는데, 두 권 다 몹시 마음에 들어 혼마 아키라는 내게 있어 호감도 급상승의 작가가 되었다. 먼저 읽었던『최후의 초상』과『사랑이 신을 죽일 때』는 진중하면서도 약간 무거운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 작품은 완전 빵빵 터지게 만들더이다. 물론 이 사실에 대해서는 다른 분의 리뷰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읽어 보니 완전 내 타입의 만화였다. (아흑, 부녀자 가슴에 불을 지르는 만화는 아니였지만, 요런 분위기의 발랄한 작품도 좋다니까)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외과의사 우즈키는 어느 날 밤 총상을 입은 한 남자를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지혈이라도 해줄까 싶어 옷을 벗겼더니, 어이쿠야, 야쿠자님이셨습니다. 원래 겁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 일단 죽지 않을 정도로 지혈을 해주고 잽싸게 도주하던 우즈키는 그래도 의사인지라 약을 챙겨들고 다시 돌아와 야쿠자의 총상의 소독과 봉합을 끝내고 다시 잽싸게 도주.
 
다음날, 병원에 떠억 하니 나타나신 야쿠자. 어젯밤 혼미한 정신 속에 우즈키를 '스즈키'로 잘못 알아듣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천사를 찾으러 나타나신 것이었다. 그 여성에게 한 눈에 반했다는 야쿠자 노나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우즈키는 입 꾹 다물고 모른척 하려 했지만, 이거 웬일, 노나미의 부하가 위장입원까지 하게 된 것 아닌가. 

언제 들킬까 싶어 두근반 세근반 하던 우즈키의 살얼음판 같은 나날들. 그러나 위장된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으니... 이 야쿠자 노나미님께서 우즈키에게 새삼 반하신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호랑이 문신 야쿠자 X 겁많은 토끼같은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 

아, 정말이지. BL물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키득키득 거리고 웃었다. 특히 토끼와 호랑이로 변신한(?) 모습의 두사람을 보면 웃음이 빵빵 터진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다니. 작가의 상상력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물론 동물로 의인화한 사람이나 동물귀 + 동물 꼬리를 달고 나오는 캐릭터들은 본 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런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의 경우 대부분이 섹시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설정을 했지만, 이건 코미디를 위한 설정이었달까. 

게다가 이제까지의 근엄한 캐릭터의 표정은 어딜 가고 - 최후의 초상에 등장한 마피아의 얼굴과 이 작품에 등장한 야쿠자의 얼굴 차이 - 이렇게 웃긴 표정이 연달아 나오는지. 코믹한 부분이 많지만 스토리의 중심은 잘 잡혀져 있다. 게다가 노나미의 진심도 잘 담겨져 있고. 토끼 선생은 무서워서 벌벌 떠는 장면이 많지만, 노나미의 경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달까. 그런 것도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

토끼같은 의사 선생을 좋아하게 된 호랑이 문신의 야쿠자의 이야기와 야쿠자 내부의 후계자 다툼 문제까지 잘 혼합시킨『토끼 남자 호랑이 남자』제 1권. 처음에는 노나미가 무섭기만 했지만 점점 그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가는 토끼 선생 우즈키의 변화와 남자 취미, 어린아이 취미는 없다는 야쿠자 노나미가 순수한 우즈키를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이 찡하게 다가온다. 

뒤에 수록된 단편은 아주 머리 좋은 꼬마와 그보다 나이가 16살이나 많은 결벽증 형의 이야기인데, 요건 사실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음. 토끼와 호랑이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랬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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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맞아요 이 작품은 정말 발랄하죠. 처음에 놀랐답니다. 내가 아는 혼마 아키라님 맞는가 해서. :)

스즈야 2011-04-11 01:33   좋아요 0 | URL
이런 분위기 참 좋더라구요. 인생은 장미빛이다도 비슷한 분위기여서 좋았어요..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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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미스터리 소설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토머스 페인이 실존 인물인줄도 몰랐고, 게다가 책 제목에 사건이란 말이 떡 하니 박혀 있으니 당연히 그런 쪽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인문 교양 서적이다. 호오라, 그렇군. 그래도 제목이 흥미로우니까 한 번 읽어 볼까. 하고 읽게 된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이다. 어째 보면 참 불량한 동기로 읽게 된 셈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토머스 페인이 쓴 책을 읽어 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셈이다. (본인의 독서에 있어서)

토머스 페인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사람으로 칭해지는 인물로 미국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립혁명에 사상적 기초를 마련한 <상식>과 <인권>이라는 책을 쓴 작가로 위대한 개혁가, 민주주의의 씨앗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는 후대에 재평가된 것으로 살아 생전에는 급진적인 개혁가이자, 반역자로 몰려 말년에는 가난과 병으로 쓸쓸하게 죽어갔다.

이 책은 토머스 페인이 사망한 집에서 출발하여 그의 유골이 옮겨진 경로를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따라서 토머스 페인의 살아 생전의 행적이 곳곳에서 언급이 되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사상을 잇는 후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페인의 사상을 잇는 자들은 페인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주된 사상에 반하는 인물들이었다. 그 시대의 이상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었다고 할까. 1800년대 초반에서 1900년대 중반까지의 사회, 정치, 경제 등 당시 사회 상황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지극히 당연시 하는 인권, 평등, 평화, 이성주의가 그 시대에는 얼마나 급진적이며 이상주의적이었나를 역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말은 현대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대사회가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다. 현대 사회 역시 나름대로의 계층이 존재하며,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처우를 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부의 분배 문제 역시 상위 1%가 독점하고 있는 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이들이 활동하던 시대는 신분계급이 여전히 존재했고, 흑인 노예들은 당연히 인간이 아닌 존재였고, 여성들은 남자에게 종속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부를 독점하는 것은 일부 계층에 국한되는 것이 당연했고, 권력 역시 부를 독점한 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하기에 이들이 주장했던 왕정 폐지와 공화국 수립, 노예제 폐지, 여성의 권리 보장, 부의 공정한 분배, 평화주의 등은 당시 사회권력층에 있어서는 커다란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현대사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물론 시대의 흐름이 예전의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서서히 분해시켰겠지만, 누군가가 선지자가 되어 점을 찍고, 그 점을 후세들이 연결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훨씬 더디게 이런 것들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정형화된 인간 사회와 제도가 바뀌는 것은 쉽게 이행되는 일이 아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탄압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배척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일 것이다.

이 책은 토머스 페인의 사상적 계보를 잇는 사람들의 활동에 관한 책으로 당대에 활약했던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어려운 이야기만이 나열되어 있다거나, 딱딱한 이야기로만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니다. 토머스 페인의 유골의 행적을 따라 영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매우 흥미롭다. 저자가 이 책을 서술하는 말투 역시 이 책의 재미를 더한다. 조금은 시니컬한 말투도 포함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알아 듣기 쉽게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이런 것은 인문학 책에서는 보기 힘든 말투라서 마치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당시 시대 상황이나 널리 퍼져 있던 사상이나 학문, 연구 등에 대한 이야기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고, 때로는 소설적 서술 방식을 차용하여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토머스 페인의 유골은 이리저리 옮겨지면서 분실되고 겨우 뇌의 한조각만이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가 세상에 전하려고 했던 사상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그들이 살던 시대에 비해 분명 달라진 점이 많지만 여전히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며, 평화가 쉽게 깨어지고, 곳곳에 차별이 남아 있는 등 인권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할 것이 많다. 토머스 페인과 그를 잇는 사람들이 바라던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우리 역시 그들의 사상을 이어받아 우리 앞의 미래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영원히 이어질 투쟁이 될 것이다. 완벽한 이상적 사회란 존재하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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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 바닷마을 다이어리 3 바닷마을 다이어리 3
요시다 아키미 지음,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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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쿠라를 배경으로 한 네자매의 일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담아낸 바닷마을 다이어리 시리즈 제 3편.

스즈가 카마쿠라로 온지 벌써 1년.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왔다. 스즈와 세자매는 야마오카로 재를 지내러 가게 된다. 그곳에서 들은 충격적인 소식은 아버지의 부인이었던 요코가 벌써 재혼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에 스즈는 화가 나지만, 엄마를 따라가지 않고 그곳에 남아 있던 카즈키가 안쓰러워진다. 세자매에게 있어서 비록 나쁜 아버지긴 했지만, 스즈와는 예쁜 추억을 많이 남겼던 아버지. 매미소리, 카지와 개구리 소리, 그리고 반딧불이의 반짝임은 스즈와 세자매에게 조금씩 다른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두번째 에피소드인 <누군가와 함께 본 불꽃놀이>는 스즈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유야와 말이 잘 통하는 스즈는 유야의 다정함과 배려심에 마음이 끌린다. 어쩌면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스즈는 축구부원중 유야와 말이 가장 잘 통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유야는 벌써 여자 친구가 있는 모양이다. 스즈의 첫사랑은 비록 고백조차 해보지 못하고 끝났지만 언젠가 스즈도 멋진 사람과 함께 불꽃놀이를 함께 볼 날이 오겠지?

스즈의 둘째 언니 요시노는 요즘 새로운 계장때문에 골치가 다 아프다. 불꽃놀이도 못보러 가고, 그 좋아하는 시음회도 못가고. 직장 옥상에서 불꽃을 보며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 요시노. 표현은 하고 있지 않아도 역시 토모아키와 헤어진 상처는 남아 있는 듯 하다. 요시노는 계장이랑 잘 어울릴 듯 한데...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서로 알 수 있겠지.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은 수술후 재활 치료를 받고 축구부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된 유야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야의 이야기는 어떻게든 빠질 수 없는 이야기라니까.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겨운 나날을 잘 극복해 가고 있는 아이니까. 오른발을 주로 쓰는 선수였지만 오른발을 수술로 절단한 후 왼발을 쓰려고 노력하는 유야. 그러나 사람들은 잘 몰랐다. 오직 후타만이 유야의 노력을 꿰뚫어 보고 있었달까. 우리는 가끔 재능을 잃어버린 사람을 안타까워만 하지,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곤 한다. 후타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있었다. 이 녀석, 크면 아주 좋은 남자가 될 거란 생각이...

이 에피소드에서 인상적인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커튼을 싫어하는 스즈의 이야기였는데, 요코도 오지 않는 병실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키며 혼자 앉아 있어야 했던 스즈의 모습이 못내 가여웠다. 중환자이다 보니 다른 환자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커튼을 계속 쳐놨고, 그것이 스즈의 시간을 멈추게 했었다. 하지만, 카마쿠라로 이사온 후 스즈의 시간은 느리게 나마 다시 흘러 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멈춰버린 시계>는 큰 언니 사치의 이야기이다. 사치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아내와 별거중인 소아과 의사. 그 사람의 아내는 병을 앓고 있어 쉽게 이혼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사치에게 있어서는 많이 힘들었겠지. 이 사랑을 계속해도 될까, 라고 생각할 만큼. 그러던 중 이 소아과 의사는 미국으로 떠날 결심을 하고, 결국 사치는 이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행복한 순간도 많았겠지만, 역으로 힘겨운 시간도 많았을 사치. 그녀에게 다시금 사랑이 찾아오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나눌 누군가를 만나기를 바라 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3편은 막내 스즈의 첫사랑과 실연, 큰언니 사치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나오지만 새로운 인연을 암시하는 부분이 존재해서 그렇게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요시노 역시 상처를 모두 극복한 건 아니지만 요시노에게도 새로운 인연이 나타날 듯 보이니까. 이런 말을 하면 네자매가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사람의 인생이란 건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 아니던가. 그 과정이 때론 너무나도 힘겨워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남녀간의 사랑이든, 가족의 유대이든, 친구와의 우정이든. 그 모습은 각기 다를지라도 말이다.

일단 정발된 건 3권까지다. 이 작품이 일본에서 계속 연재가 되고 있는지 이것으로 끝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완결이란 말이 없으니 후속편을 기대해도 되려나. 스즈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큰 언니 사치가 결혼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카마쿠라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더 듣고 싶은데.  뒷 이야기가 꼭 나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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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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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오단장(追想五断章)이라... 솔직히 단어만 봐서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추상이란 건 추억이나 회상을 뜻하는 것 같고, 단장은 찾아 보니 짧은 이야기를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추상오단장이란 '추억을 되새기는 다섯가지 짧은 이야기'란 뜻이 되나?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그냥 단순한 추억이나 기억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어쨌거나 제목은 대략 그러한 뜻으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삼촌의 고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 스고 요시미츠는 어느날 한 여성으로부터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다섯편의 소설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휴학중이었던 요시미츠는 톡톡한 사례금에 혹해 선뜻 그 의뢰를 받아들인다. 그 작가가 쓴 소설은 동인지 등에만 게재되었던지라 그 소설을 찾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지만, 요시미츠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일에 매진한다.

요시미츠가 찾아낸 카노 코쿠뱌쿠라는 필명으로 씌어진 리들 스토리는 결말 부분이 모두 생략된 소설로 기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창작인 것일까, 아니면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요시미츠는 이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 작가의 가족사에 대해서 조사할 수 밖에 없었다. 조사 중에 드러난 사실은 '앤트워프의 총성'이란 22년전의 사건으로 의뢰인 카나코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던 사건이다. 22년전 그날밤 일어났던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카나코가 찾고 있는 소설과 이 사건의 연관성은 무엇일까.

기적의 소녀, 환생의 땅, 소비전래, 어두운 터널, 그리고 눈꽃이란 제목을 가진 소설의 공통점은 가족이 등장한다는 것과 가족 중에 누군가가 반드시 희생될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모든 이야기의 화자는 남자로 여행을 하던 도중에 겪었던 사건에 관한 것으로 소설 속 소설이라고 할까. 또한 제일 앞에 등장하는 나의 꿈이란 작문 역시 깊은 의미를 가진 이야기인데, 이 글은 카나코가 중학교에 다닐 당시 썼던 이야기로 이것 또한 이 소설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섯개의 리들 스토리의 행방을 찾고,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그 소설과 22년전 발생한 앤트워프의 총성이란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는다, 라는 설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그 소설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알았을 때는 괜히 찡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수수께끼 부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만한 것이란 느낌이 들지만, 이 소설은 결말보다 작중에 등장하는 다섯개의 리들 스토리의 내용, 그리고 그 소설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흥미로운 책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다음 리들 스토리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그 결말은 어떤 것일까를 더 궁금해 하면서 읽었기 때문에 나중에 리들 스토리에 대한 작은 반전이 나왔을 때는 살짝 놀라기도 했다. 아, 그렇게 생각하면 전혀 달라지는구나, 라는 느낌이었달까.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쓸쓸한 편이다. 집안 형편으로 인해 휴학할 수 밖에 없었던 요시미츠, 아버지의 사망 이후 비어 있는 공간이 못견디게 쓸쓸한 요시미츠의 어머니, 아내와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헌책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요시미츠의 삼촌 등의 모습은 행복했던 과거만을 곱씹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나코 역시 과거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의 하나라고 할 수 있고, 카나코의 아버지 역시 살아있는 동안 내내 과거의 사건에 매달려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보자면 제목인 추상오단장은 작중에 나오는 다섯개의 리들 스토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지난날을 추억하고 지난 시간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이들 다섯명의 이야기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의 요시미츠의 행보라든지 카나코의 편지 내용은 짊어진 무거운 과거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쓸쓸하고 암울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걷히는 느낌이 든달까. 과거의 일은 이미 일어나 인간의 의지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에 속박되느냐 아니면 그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느냐는 당사자의 의지에 달린 일일 것이다. 요시미츠와 카나코의 선택처럼.

우리 인생은 결말을 알 수 없는 리들 스토리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판단과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 판단과 선택이 어떤 결말을 가져 올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앞을 보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 자신의 리들 스토리의 납득할 만한 결말을 얻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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