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쿠사마 사카에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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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아주 신난다. 그도 그럴 것이 쿠사마 사카에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어 나오니까. 그도 그럴 것이 쿠사마 사카에는 양이나 그림으로 승부하는 작가가 아니라 스토리로 승부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아무래도 예전 작품의 경향이랄까 그런 게 많이 보인다. 얼마 전에 읽은『지하철의 개』는 따스한 느낌이 많은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은 뭐랄까, 차가우면서 뜨거운, 그런 느낌이다. 아마도 캐릭터들의 성격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진짜 마음에 든다. 근데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서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단 말이지...

러시아어를 전공하는 히로세 키요타카는 친구에게 빌린 책 사이에 끼어있던 연애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친구에게 돌려주기 위해 매일 터널에서 기다린다. 그곳에서 만난 한 성냥팔이. 그의 이름은 하나시로 세이지로로 밤에는 성냥팔이로 위장하고 남자들을 만나지만 낮에는 작은 출판사의 어엿한 사장이다. 히로세와 하나시로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그들은 차곡차곡 인연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고교시절 한 통의 연애편지로 인해 삶이 뭉개져버렸던 하나시로는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히로세는 그걸 가능하게 해줄수 있을까. 이들의 연애편지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

한편 히로세가 가진 편지를 쓴 아리하라 미네오는 편지를 되찾으러 예전에 살던 하숙집으로 되돌아 갔다가 하나시로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와 진이치로와 만나게 된다. 그 편지의 상대가 히로세란 것을 알고 있는 사와는 그걸 빌미로 아리하라의 발목을 붙잡는다. 처음부터 꼬여버린 인연으로 만난 두 사람. 아리하라는 히로세를, 사와는 하나시로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고백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연애편지란 것을 매개로 만남과 엇갈림을 반복하는 남자들. 이들이 새로 써가는 연애편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까.

이 작품은 캐릭터들이 무척 매력적이다. 히로세 키요타카는 어떻게 보면 부잣집 도련님에 순진하게 성장해 왔지만 어느날 우연히 만난 하나시로에게 푹 빠지게 되고, 하나시로는 고교시절의 아픈 상처를 안고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다 히로세를 만나면서 사랑에 눈뜨게 된다. 어떻게 보면 여전히 순수한 사람이란 느낌이 든달까.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라든지, 히로세가 가지고 있는 편지를 몰래 훔쳐본다든지, 그러면서도 히로세의 마음에 불안해 한다든지. 굉장히 귀여운 커플이다.

그런 반면, 사와와 아리하라는 좀 어둡고 음습한 면면이 보인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방식은 조금 삐뚤어져있다. 아직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두 사람. 이 두사람은 이 인연을 어떻게 이어나갈지 무척 궁금하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커플이 되어 마음을 나누기 시작하면 더 뜨거워진다니까. 아, 2권이 얼른 보고 싶다.

음.. 이 작품의 배경은 아무래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 제국고등학교라든지 전쟁후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잘 모르겠지만, 우에노 공원에서 남창을 살 수 있었지만 단속이 있었다는 이야기나, 히로세가 입고 있는 가쿠란에 망또라든지, 평상시에도 젊은이들이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게 어색하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라 대충 그렇게 짐작을... 아마도 쇼와 시대가 아닐까 하는 정도. 확실한 게 안나오니 더 궁금해졌잖아! 

에, 그리고 겉표지를 벗겨봤다가 헉, 했다가 푸핫!
뭐랄까. 나중엔 어찌나 웃었던지.... 작가님 센스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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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오 쿠사마 사카에님 작품이네요. 이건 처음 보는 건데!
인물들이 무척이나 매력적이게 느껴져요. 얼른 책을 통해서 만나고 싶네요.
게다가 2권도 나올 예정이라니! 개인적으로 장편 좋아해서, 더 기대가 되네요.

스즈야 2011-04-11 01:27   좋아요 0 | URL
최근에 쿠사마 사카에의 작품이 마구 쏟아져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1人입니다.. ㅎㅎ 이거 강추합니다. 종전직후 쇼와시대 이야기거든요. 으... 가쿠란과 망또... 모에스러웠습니다.. ^^
 
평생 계속할 수 없는 일 1 - 슈퍼 루비코믹스 068
야마다 유기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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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책 원서로 읽었어요. 각각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변호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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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야 2011-04-02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는 요기에 → http://blog.aladin.co.kr/770669166/4561819
 
목요일의 연인
무라카미 사치 지음 / 인디고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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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가미 사치의 책은 예전에 원서로 읽은 적이 한 번 있는데, 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포로(とろこ) 뭐시기란 책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엔 번역이 안되어 나온 것으로 아는데, 하여튼 그 책은 BL물 뿐만 아니라 다크 판타지 풍의 작품, 가족 이야기를 담은 순정만화 풍의 작품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원래 그런 작가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그다음엔 관심을 별로 갖지 않았는데, 요 책은 책 표지가 귀여워서 사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 정확히 말하면 모에 포인트랄까 - 가쿠란에 의사 가운. 모에롭다, 몽로워. 사실 작화는 그다지 좋은 작가는 아니지만, 되게 순수해 보이게 그린달까. 하여튼 이번 작품도 그런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었다.

표제작이자 첫번째 실린 단편인 <목요일의 연인>은 10살 차이가 나는 사촌간의 이야기이다. 요우지는 치과의사, 세이는 고등학생이다. 화과자 가게를 물려받는 게 싫어서 밖에서 혼자 사는 요우지에게 세이가 찾아온다. 사실 요우지는 세이가 어렸을때 부터 좋아하고 있었단다. 윽. 쇼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쇼타와는 다르다. 그저 세이가 좋으니까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음, 하여튼 내가 그다지 좋아하는 설정이 아니라서 이야기는 여기서 패스.

<가르쳐줘, 사랑이든 연애든>은 고교생 X 선생님이 학식오빠 X 선생님으로 다시 만난다는 설정. 학식오빠가 무었이더냐. 우리말로 하면 급식 오빠쯤 되려나. 아마키가 고교생일 때 화학 선생님과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고교를 졸업하면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졸업식날 선생님은 "자신은 교복입은 아이에게만 관심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그러나 여전히 선생님을 잊지 못하던 아마키는 선생님과의 재회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찬스를 만들어 간다. 사실 난 이 선생님이 어린 애들만 좋아하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무지무지무지무지 순진한 사람이었군. 푸핫. 나이 차이가 10살이나 된다는 것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꽁꽁 숨겨왔다니... 선생님, 참 귀여웠어요. 

<밤, 그대의 꿈을 꾸다>는 리맨물. 아흑. 내가 좋아하는 리맨물. 서로 밀고 당기는 두 사람의 이야기랄까. 딱히 극적인 전개라든지 이런 건 없는데, 은근 귀여운 사람들. 그러고 보니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어느 부분이든 귀여운 구석이 있는 듯. 

<옆집의 그사람>부터 <그 후의 옆집 사람들>은 주욱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제일 마음에 들었달까. 재택 디자이너인 아리마와 옆집 남자의 애인이었던 사에키의 만남에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까지,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까지 이 커플도 참 귀여웠다는... 무라카미 사치의 그림은 어떻게 보면 초보자가 그린 그림같은 느낌이 들어서 순수해 보인달까. 그래서 귀여워 보였나? 하여튼 사에키를 이해하고 감싸주고 아껴주는 아리마를 보면서 나도 이런 남자를 만나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푸핫. 

아, 하나 빠뜨릴뻔 했군. 아리마 머리 묶은 모습도 머리를 풀고 정장을 한 모습도 참 좋더라~~ 머리카락을 반만 묶은 남자가 이렇게 귀여워 보이다니, 내가 그동안 BL에 굶주렸었나.... 는 아니고, 원래 내 취향이다. 난 머리를 묶은 게 예쁜(?) 남자를 좋아하는 경향이. 물론 2차원 한정이지만! 블*치의 렌지도 그래서 좋아하잖아!!!!

순진한 모습의 캐릭터들의 아기자기 알콩달콩 귀여운 러브 스토리. 나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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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쇼타는 패스예요. 어쩐지 코드가 좀 안 맞아요.. ㅎㅎ
옆집의 그 사람 재밌을 것 같아요! 제목도 좋고.. ㅋㅋ
저는 블리치의 긴을 좋아합니다.. 그 눈매가 참을 수 없어요!(전체적인 것도 물론 좋아합니다. 고런 캐릭터 자체가 모에스러워요ㅋㅋ) 나츠메 이사쿠님 그림체를 좋아하는 것도 눈매때문이라고 해야하나.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어요! ㅋㅋㅋ

스즈야 2011-05-15 23:33   좋아요 0 | URL
음.. 역시 그러시군요. 저도요. 쇼타는 아무래도.. ^^;
어른들의 이야기가 좋아요. 그래서 학원물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요. 옆집의 그 사람, 전 진짜 맘에 들었어요. 으흐흐흐. 제가 다 두근거렸다능.

오, 저도 긴 좋아해요. 사실 긴을 좋아하는 이유가 성우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렌지도 마찬가지로 성우분이 좋아서.. 참 블리치는 만화책이 아니라 애니로만 봤어요. 그것도 어찌나 길던지. 그래도 진짜 재미있어서.. 으흐흐..
 
싸우자 귀신아! 2 퇴마록 -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임인스 지음 / 보리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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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안(鬼眼)을 가지고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귀신을 보아 온 봉팔이. 유난히 귀신들의 시달림을 많이 받았던 봉팔이는 귀안을 없애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퇴마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런 봉팔을 도와주는 건 입시생이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죽은 혜림이란 소녀이다.

첫번째 에피소드인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중2병이란 것을 다루고 있다. 중 2병이란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증상으로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고 고독하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중 2명이 꼭 청소년들에게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고독은 어느 연령대에나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이는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열다섯살 소녀이다. 하지만 새집으로 이사한 후 자연이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고 그후 이상한 것까지 보는 경험을 한다. 혼자 있는 것이 너무나도 무섭지만 자연의 엄마는 가장이기 때문에 자연이와 함께 있어줄 수 없다. 그렇게 2년. 자연이는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고독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특히 누군가 자신곁에 꼭 있어줬으면 하는 시간에 혼자 있게 된다면 그 고독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만약 자연이의 엄마가 그때 자연이 곁에 있었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항상 누군가가 자신의 곁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한 순간을 겪게 되지만 단순히 누군가가 옆에 없다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마음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자연이에게 자살한 령이 빙의된 것은 마음에 빈틈이 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작 중학생인 자연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냉정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것은 스스로 떼어내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네티즌이다>는 일명 악플러들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이다. 연예인 홈피에 악플을 달고, 그녀가 자살한 후에도 조금의 뉘우침도 없이 여전히 악플을 달던 네티즌들이 하나둘씩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환생을 포기한 그녀의 령이 복수를 시작한 것이다.

악플이란 문제는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모니터 뒤에 숨어서 닉네임으로 다른 사람을 마구 짓밟는 사람들. 나 역시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나와 별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악플을 다는 것일까. 자신의 삶에 불만을 느끼고 사회에 불만을 느끼지만 표출할 곳이 달리 없어서?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너무 비겁한 것 아닐까.

나 역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몇몇 악플때문에 짜증이 치밀어 오른 적이 있다. 내 대처방법은 단순했다. 그래서 어쩌라구요? 바락바락 대들면서 싸워 봤자 그런 악플을 쓴 사람이 반성할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난 그냥 무시하거나 후승인으로 덧글을 달 수 있게 작은 조치를 해두었다. 하지만 이런 건 정말 가장 초보적인 방법일 뿐이다. 악플이 근절되지 않는 한에서는. 저승사자의 말처럼 언젠가 그런 일들이 그들 스스로의 목을 조이는 날이 오게 될까. 그럴때 그 사람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오를까.

<고양이가 우는 날>는 길고양이를 키우는 소설가의 이야기이다. 써내는 소설은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애인은 그의 곁을 떠난다. 그후 어미 잃은 길고양이를 발견한 소설가는 길고양이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그속에서 소재를 얻어 멋진 소설을 써내고 잠시 행복한 시간이 이어진듯 보이지만, 변심했던 애인이 돌아와 그를 마지막까지 기만한다. 그녀의 손에 죽임을 당한 고양이는 묘령(猫靈)이 되어 소설가를 지키고자 하는데...

때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람의 심성이 동물만큼이나 고우면 좋을텐데라는. 내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긴 하지만, 동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태어나는 것 같다. 사람은 쉽게 배신하고 쉽게 돌아서지만, 정을 준 동물은 배신하지 않는다. 죽어서도 그 소설가를 지키고자 했던 고양이 운명이. 이런 이야기는 역시 가슴이 아프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엔젤>은 수호천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3년이나 짝사랑한 그녀지만 고백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죽은 남자는 수호천사가 되어 그녀의 곁을 맴돈다. 정말 좋은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지켜주기 위한 그의 사연을 보면서 그녀와 예전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보면서, '사랑'이란 뭘까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싸우자 귀신아 2편은 1편과 달리 네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1편이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요즘 아이들의 안타까운 모습과 죽음을 그리고 있다면, 2편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다고나 할까. 인간이 외로움을 느끼는 건 단순히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하지만 외로움이 깊어지면 독이 된다. 그 독은 상대방과의 균형 잡힌 관계를 깨뜨리기도 하고,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 그리고 자신의 중심의 균형을 잃지 않는 노력을 평생해 가면서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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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이 재밌다고 한번 보라고 그랬는데, 생각보다 가벼운 내용은 아니었군요.
조만간에 한번 봐야 겠습니다.

스즈야 2011-04-11 01:29   좋아요 0 | URL
가벼운 내용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좋았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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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대들에게

안녕하신가.
4월의 신록처럼 눈부신 푸르름을 자랑해야 할 나이지만 웬지 김장 배추처럼 소금에 푹 절여지고, 너무 익어 쪼글쪼글해진 파짠지처럼 기운없는 20대를 보내고 있는 그대들을 보면 나도 참 안타깝다네. 도대체 이 시대의 20대들은 왜 이런 절망과 고통의 한가운데 내쳐지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등록금 인상때문에 휴학을 하거나 자퇴를 하는 그대들을 보면서, 좀더 좋은 스펙을 쌓기 위해 밤잠 설치고 노력하는 그대들을 보면서 난 나의 20대를 생각해 봤다네.


난 94학번이라네. 그대들과는 10여년 이상 차이가 나는 학번이지. 벌써 서른 중반이고. 나도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대들처럼 눈부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네. 쪼글쪼글 찌들어버린 수험생 생활만 끝나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그런 건 오래가지 않았다네. 집을 벗어나 처음 맛본 자유에 어쩔 줄 몰라 했었지. 오히려 자유가 더 나를 구속하던 시기였어. 그래서 그런지 쉽게 이런저런 것에 휩쓸리게 되더군.

내가 대학에 다니던 당시에는 학생운동 역시 활발하긴 했지만 거의 끝물이었다네. 그래도 열심히 학생운동을 했지. 하지만 그건 지금과는 좀 다른 상황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이었어. 정부와 학교 재단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시기였지. 그래도 운동하던 선배들은 졸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직장도 잘 잡고 그래서 우리도 그럴 줄 알았지. 1997년, 지금 생각해도 고개가 휘휘 저어질 IMF사태가 올 때까진 말야.

94학번은 일명 저주받은 학번으로 불렸다네. 입학시험이 수능으로 바뀌면서 우린 수능 첫세대로서 실험실의 쥐신세가 되었어. 그전까지는 학력고사였거든. 그렇게 입학을 하고 적당히 용돈벌이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회란 곳에 대해 배우기도 하던 시기를 지나 졸업할 때가 되니 IMF사태. 하루에 100여개 회사가 도산을 하는 등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지. 졸업을 앞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네. 내가 학교에 다닐 땐 빠르면 3학년에 취업준비를 했고, 토익 시험 점수 외엔 별다른 스펙이란 것도 없었거든. 사실 스펙이란 말도 없었지. 그런 우리가 막상 얼어붙은 취업시장에 내동댕이쳐졌을 때, 그 기분을 짐작할 수 있겠나.

하지만 사회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어. 왜냐면, 자기 코가 석자였거든. 내가 회사에서 잘릴 판인데 갓 대학을 나온 사회초년병들에게까지 관심을 베풀 어른은 없었어. 그래도 나름대로 어렵게 어렵게 취업을 하고 그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온 우리 학번들은 결혼을 하고 집을 살 시기가 되자 집값 폭등으로 인해 은행빚을 진 사람도 나오고, 집 있는 가난뱅이가 된 사람도 속출했지. 재테크라고 해봐야 부동산밖에 몰랐던 세대들에게 있어 집값 폭등과 은행금리 인상 등은 요즘 말로 하우스푸어를 양산했지.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내 또래, 즉 90년대 중반학번들이라네. 

참 구질구질하다, 그지. 물론 내 또래들이 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야. 개중에는 분명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 멋진 집, 멋진 차등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다들 힘겨운 시간들을 겪어 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라네. 나의 경우 그 당시 직장을 구하기 보다는 학생 신분으로 눌러 있는 방법을 택했다네. 요즘 그런 학생도 많지? 휴학을 통해 스펙을 쌓거나 그런 이유로. 나 역시 막막해서 그랬어. 그래서 편입을 하고 공부를 했지. 그후에 택한 직업는 대학때 전공과는 정말 상관없는 직업이었어. 나름대로 일을 해왔지만, 몸이 아파서 그만 두었고 지금은 반자발 백수로 살고 있다네. 결혼? 안했지. 돈도 없고. 그렇다고 죽고 싶거나 그럴 정도로 좌절하고 절망하며 사는 건 아니라네. 

다시금 목표가 생겼거든. 물론 요즘의 그대들처럼 이런저런 스펙도 없고 흔한 어학연수 한 번 못다녀왔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겼거든.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 하지만 희망은 놓고 싶지 않다네. 이런 내가 그대들과의 경쟁을 한다면 확실히 불리하겠지만 그래도 나에겐 남은 삶의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다네. 난도쌤의 말에 24살정도 된 그대들의 나이라면 인생의 시계에서 채 아침 8시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 있었지. 난 30대 중반이니까 정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려나? 그래도 아직 아침에 속한다네. 그러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 나보다 더욱더 가능성 많은 그대들이 포기하고 좌절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네. 

요즘 시대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가까운 나라 일본의 경우만 해도 프리터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거든. 정규직장 대신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사람들말야. 게다가 파견사원도 많은 게 일본이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많지.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대우는 유난하지. 일자리는 줄고 실업자 수는 점점 늘고, 이런 상황에서 내게 자리가 돌아 올까 걱정하는 건 당연해. 그것이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겠지.

하지만, 내가 20대 때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요즘 20대들에 대해 많은 걱정과 격려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내가 말했듯이 내가 졸업할 무렵엔 다들 자기 코가 석자인 지경이었던지라 우리는 완전히 잊혀지고 버려진 세대가 되었거든. 이런 말을 하면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7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은 유신세대,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은 386세대, 그리고 지금 그대들은 88만원 세대라 불리지. 90년대에 20대를 보낸 우리들은 무엇이라 불릴까. 우린 그저 잊혀진 세대야. 그땐 20대였고, 지금은 그저 30대이지.   

20대는 당연히 불안한 나이라고 생각해. 그건 시대를 초월해 공통된 점이겠지. 그리고 각 시대마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존재했겠지. 나도 그랬으니. 모습은 달라도 다 힘든 때를 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일종의 성장통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물론 내 입장에서도 이런 성장통을 겪지 않고 살아왔으면 더 좋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어. 하지만 그런 성장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시대를 그대들은 살고 있어. 그대들 중에는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고 나가겠다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은 무섭고 힘들고 노력에 비해 성과는 적은 것에 좌절하고 분노하겠지.

그래도 생각해 보게. 그대들을 걱정하고 격려하는 따스한 마음과 손길이 이곳저곳에 있다는 것을. 또한 그대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이는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분도 많다는 것을. 찬바람 쌩쌩부는 허허벌판에 혼자 서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바람을 함께 맞아주고 공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20대는 20대란 이유로 아름답다고 생각해. 비록 고통스러운 성장통을 거쳐야 하는 시간일지라도. 난 지금 누군가가 다시 20대로 돌아가라고 하면 그렇게 할거야. 그러고 싶을 만큼 20대는 아름다운 나이라네. 당장 눈앞의 일에 힘겨워하고 좌절하지 말기를. 지금 당장의 목표에만 급급해 주변에 무관심해지지 않기를 바라네. 앞으로의 시간은 그대들의 시간이라네. 그것만은 잊지 말게나. 힘내시게, 아름다운 그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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