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아이들 -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 이야기 문학동네 청소년 8
박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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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 중국에 간 적이 있었다. 심양에서 내려 연변 - 백두산 - 북경에 이르는 코스였는데, 그때 조선족을 처음 만났다. 조선족의 말투도 그렇고 북한과 인접한 곳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조선족은 한국인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가이드나 한식당을 경영하는 사람들을 먼저 만나서 그런지 그들의 생활은 우리와 별반 다름없이 느껴졌었다. 오히려 중국과 북한 국경 근처에서 아릿아릿한 아픔이 생겨났고, 그것은 두만강 근처에서 손을 씻고 있는 북한주민을 보면서 더욱 심해졌다. 결국 두만강 푸른물에~~하는 노랫가락에 눈물을 줄줄 쏟았던 적이 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만날 수 없었던 북한주민이었을지라도 내 동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두산에서 1박을 할 때 식사 시간에 맞춰 조선족이 공연하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졌다. (솔직히 말해 난 개인적으로 관광지에서 누가 공연하는 걸 보면서 밥 먹는 것을 꽤 불편하게 생각한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가운데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은 갓 잡은 송아지 고기를 구워먹으며 파티아닌 파티를 하는데 그들은 그 비를 쫄딱 맞으면서 공연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몹시도 불편했다. 그랬다. 그당시 조선족은 내게 있어 딱 그정도의 존재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몇 년이 지나면서 난 조선족들을 한국땅에서 많이 보게 되었다. 대부분 여성으로 식당에서 일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난 남자 조선족을 중국에서밖에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말을 섞지 않는 이상 조선족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별반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무심하게 지나쳤다.
 
난 조선족은 한국인이라는 생각보다는 한국에 나와있는 북한 사람처럼 느끼게 된달까. 아마도 그건 그들의 말투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 하나 살기도 힘든 세상이었기에 뉴스에서 조선족에 관한 안타까운 뉴스가 나와도 뉴스를 볼 당시에만 안타까워하고 또 금세 잊어버렸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 올해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나온 조선족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대접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때때로 뉴스를 통해 듣게 되지만 조선족 부모들이 중국땅에 두고온 아이들과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일이 없는듯 하다. 어떤 예능프로그램에서 조선족 특집이 나왔을 때 부모를 10년이나 못봤다는 이야기를 스쳐듣긴 했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만주에 사는 조선족의 수는 200만. 그중 40만이나 되는 사람이 한국에 와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네 쌍에 한 쌍 꼴로 이혼을 했다. 그들은 각각 재혼을 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고 그후엔 아예 한국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을 악착같이 벌어 다시 만주로 돌아가는 사람이 극히 드물며 돌아간다 해도 이혼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책은 한국땅으로 돈을 벌러간 부모들에게 방임당하고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3~4년은 기본이고 10년정도나 부모와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은 조선족 학교에서 너무나도 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고 커야 할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기에 일이 이런 사태까지 가버린 것일까. 아이들의 부모는 대개 3~40대로 그들의 아이들은 취학전 어린 아동에서 고교생까지의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3, 4살 무렵에 부모와 떨어져 십대가 되어 부모를 만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의 존재감이란 얼마나 될까. 그래도 돌아와주면 다행이다. 어느날 갑자가 연락이 뚝 끊기고 송금까지 끊기면 아이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 것일까. 

한국에 나가 일하는 어른들이 고생이라면, 이곳에 남은 자녀들은 고통이지요. (27p)

우리 가족 한 번 잘 살아보겠다고 택한 한국행. 그것이 설마 비수가 되어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꽂힐 거라 생각하고 떠난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막상 한국에 나가보니 중국에 살 때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취해 핏줄로 이어진 자식을 끊어내 버리는 부모가 너무 많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남은 아이들은 사춘기를 일찍 겪고 너무나도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다. 부모가 모두 한국으로 떠나버린 경우 의지할 친지가 없으면 - 친지들 역시 한국으로 떠난 사람이 대부분이다 - 할 수 없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곳의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하다. 남겨진 아이들은 다각도로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속출하고 있으며, 한족에게 의지하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안그래도 조선족 문화가 한국 문화에 휩쓸려 휘청휘청하고 있는데 이젠 한족의 문화까지 그 자리를 넘본다. 학교에서도 조선어보다 중국어를 배우는 곳이 늘어나고 있어 조선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신의 문화를 꿋꿋이 지키며 존재해 온 조선족 사회의 기반까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부터 조선족들이 백 년 넘게 지켜 온 고유의 문화, 가족 윤리, 성 윤리가 일거에 망가졌다. (200p)

몹쓸 한국병은 한국에 돈 벌러 간 부모를 변화시켰고 조선족 사회의 독특한 문화 유산을 흔들어 놓고 있다. 한국을 좋아하면서도 증오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국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한국 사회를 싫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바람만 아니었으면, 부모와 헤어져 살 일도 없을테고, 부모가 이혼해서 버림받는 일도 없었을테니까. 또한 한국에 불어닥쳤던 부동산 투기 바람이 이젠 만주에까지 불어닥친단다. 한국에 들어와 돈을 벌어간 사람은 어김없이 아파트를 산단다. 그래야 돈을 번다고. 한국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불순물만 가득 싣고 가는 바람이고, 한국병은 그냥 병이 아니라 속부터 먹어 들어가 결국 조선족 문화와 조선족 사회의 기반까지 침식하는 암이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눈에서 더 큰 원망의 눈물이 터져 나오기 전에 부모님들께서는 하루빨리 돌아와 달라는 겁네다. 그 고생을 하러 가서 가정마저 깨져 버린다면 한국 취업은 희망보다 절망이 더 크지 않겠습네까? (65~66p)

앞으로 10년 뒤 우리 학생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가족에 대해 뭘 좀 알아야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거 아닌가요? (82p)  

좀 더 나은 살림살이를 위해,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낼 학비를 벌기 위해 한국으로 나간 조선족 부모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희생시킨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이런 문제때문에 희생된 가정과 남겨진 아이들이다. 가정과 아이들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지만 그것이 역으로 가정을 산산히 부서뜨리고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변했다면 이것이야 말로 본말전도가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아픔이, 눈물이, 고통이 부디 자식들을 만주땅에 남겨두고 한국으로 건너온 부모들의 가슴에 가닿았으면 좋겠다. 제발 남겨진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면 좋겠다. 그래서 처음 한국에 나오면서 어떤 결심을 하고 나왔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가난해도 좋으니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따뜻한 밥을 먹고 정담을 나누고 싶다는 아이들의 바람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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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우드 2
안성호 지음 / 누룩미디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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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사라지고 콘크리트로 뒤덮여버린 도시에 나무가 가득한 집이 한 채 있었다. 그집에 사는 건 설씨란 사람으로 유일한 가족인 조카는 그의 나무사랑에 넌더리를 내면서 다른 도시로 가버렸다. 그후 그의 집에서 불이 나고 설씨는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이곳이 아닌 저 먼곳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 설씨가 눈을 뜬 곳은 도시에서 사라진 나무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땅, 언덕. 언덕의 지배자는 무아라는 소녀이다.

설씨앞에 나타난 로우라는 소녀는 무아를 피해 설씨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며 다섯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설씨는 로우의 말에 따라 언덕을 빠져나가기 위해 길을 나서고 아본이란 청년과 주밤이란 소년을 만나 동행하게 되지만 무아가 호락호락 그들을 내보내줄리 없었다. 결국 무아의 손에 잡힌 세사람. 이들은 로우의 도움으로 무아의 감옥에서 탈출하지만 언덕은 너무나도 넓었다. 도대체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있을까 라고 생각될 만큼.

『키스우드』2권은 아본과 헤어지게 된 설씨와 주밤이 저쪽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향해 가는 과정과 무아와 로우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마와 토르래강까지의 동행, 그후로는 설씨와 주밤 둘이서 헤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저쪽 세상에서 나무를 사랑했던 설씨를 알아보는 것인지 나무들은 설씨에게 길을 만들어주고, 길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아가 만든 지옥이 이들 앞에 나타나면서 이들에게 큰 위협이 닥치게 된다.

한편 무아를 막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로우. 자신의 언덕에 저쪽 세상에서 죽어버린 나무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무를 미워한 무아와 무아가 언덕의 지배자로 살아가게 된 과정이 설명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무아의 존재이다. 도대체 무아는 누구일까. 무아의 힘의 원천을 생각해 본다면 무아 역시 버려진 어떤 것을 대변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로우의 소멸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무아의 폭주로 인해 설씨와 주밤은 더욱더 큰 위기에 몰리고 그 영향은 저쪽 세상까지 퍼져나간다. 이렇게 언덕은 또다시 소멸해 버리는 것일까.  

또한 설씨의 집에 불을 지른 방화범의 정체 역시 밝혀지는데 그 방화범의 정체를 알고 약간 충격을 받았으나 이내 그 이유가 이해되었다. 나무를 사랑하며 나무를 위해 살아왔던 설씨가 자신이 사랑하는 나무에 불을 지른 이유, 그 이유는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것이었다. 사랑하는 조카와의 관계까지 산산히 무너뜨리면서 지내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분명 깃들었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식처럼 사랑한 나무에 스스로 불을 지른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나무에 불을 질렀던 설씨, 그리고 그때문에 언덕으로 오게 된 설씨. 하지만 언덕의 나무들은 설씨를 완전히 내치지 않았다. 평생 그가 돌봐왔던 나무들 중에도 상당수가 언덕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리라. 숲이 설씨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건 아마도 나무를 평생 돌봐왔던 사람에게만 허용된 것이겠지. 나무와 설씨의 대화는 무아와 로우의 대화는, 그리고 로우와 설씨의 대화는 호수에 일어난 잔잔한 파문처럼 마을을 적신다.

1, 2권을 읽으면서 나무가 없어지고 숲이 사라지는 지구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왜 우리는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함께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지구 최대의 숲 공존 역시 인간들의 손에 의해 파괴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저질렀던 일을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콘크리트 숲속에서 아름답게 살아 숨쉬던 설씨의 정원을. 작은 목소리지만 설씨에게 말을 걸어오던 나무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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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요 계장님!
키노시타 케이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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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라, 책 표지를 봐도 제목을 봐도 이건 확실하게 리맨물이로군. (내가 좋아하는 리맨물~~) 그럼 장편인가 싶었더니, 아니다. 단편집이로구나. 계장님 시리즈를 비롯, 연하공들이 대거 출연! 솔직히 말해 난 연하공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키노시타 케이코의 연하공들은 어리광이나 다짜고짜 밀어붙이는 게 없어서 연하공이라도 좋다. 

일단 계장님 시리즈부터! 
계장님 카리야는 부하직원 시시도와 술을 마시다가 갑작스레 "좋아해요, 계장님"이란 고백을 받게 된다. 그저 상사로서 좋아한다는 말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아니었다? 하지만 술에 취해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 말로 시시도를 자극하고만 귀여운 계장님. 그러나 시시도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마음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듯, 카리야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는다.

함께 한 출장여행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화점에서 예쁜(?) 속옷까지 사입었건만, 시시도의 반응은 영 시큰둥하다. 그런 시시도에게 부아가 치밀어 오른 계장님, 결국 한마디 하고 마는데... 아이쿠야, 부장님, 생각보다 성질이 급하시군요. 노말이었던 당신이 위화감을 가질까봐 나름대로 시시도가 배려한 것 같구만... 이렇게 귀여운 계장님과 침착하지만 나름대로 변태스러운 시시도의 사랑이야기, 무지하게 귀여웠습니다.

<츠키야마 일기>는 삼십대 중반의 편집기자와 나이 어린 천재 작가와의 이야기인데, 이 어린 작가의 유혹기술이 참으로 어설퍼서 귀여웠달까. 게다가 그걸 보면서 안넘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편집기자 츠지야마도 되게 재미있는 캐릭터였다. 그치만 역시 어른은 어른다워. 급박한 순간을 모면하는 재치하며, 어린 작가 선생님을 다독이는 말하며... 작가 선생, 츠키야마에게 배워서 알겠지만, 어른들의 사랑은 그렇게 급하지 않다구~~ 

<사랑일까!?>는 학원물인데 선배와 후배사이의 이야기이다. 여자애의 고백을 거절하는 핑계로 테니스부 선배를 끌어들였다가 그 선배에게 반한 후배의 이야기랄까. 풋풋하고 귀여운 고교생들의 모습이 상큼상큼.

<다정한 비> 역시 학원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선 학생과 선생님 커플이다. 들고양이같은 학생과 다정한 선생님이랄까. 역시 선을 지켜주는 선생님의 모습은 키노시타 케이코의 작품 성향 그대로. 이런 점이 꽤 마음에 든단 말야...

<찌릿찌릿~~>은 10년동안의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묘하게 슬펐던.. 결국 고백도 못하고 끝나버린 사랑이었네. 딱 2페이지인데 감성이 잘 살아 있었다. 그래도 아쉽긴 하두만...

뭐랄까. 키노시타 케이코의 만화는 BL만화계의 치유계 작품이랄까. 사실 작화가 대단히 뛰어난 건 아니지만 스토리가 잔잔하고 다정해서 참 좋다. 오늘처럼 기분이 꿀꿀한 날에 딱 어울리는 작가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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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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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전문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책을 고를 때 책소개를 유심히 보게 된다. 책소개 부분을 보다가 눈에 띄인 단 한 글자 '유령'. 난 그것만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엔 책 선택의 이유치고는 참 별 것 없어 보이겠지만, 유령이란 소재는 내게 있어 무척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는 무척 타당한 이유였다.

『나사의 회전』은 1898년에 발표된 소설이라서 고딕소설이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순문학에서 유령이 어떻게 표현되고 유령의 존재가 어떻게 그려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고딕소설과는 확실히 다른 유령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고딕소설이 주는 섬뜩함이나 소름끼치는 두려움이 전혀 배제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유령이 주는 공포나 유령 자체의 끔찍함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따라 그 공포가 배가되어 가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한 저택에서 두 아이의 가정교사가 된 스무살의 아가씨가 듣고 보고 경험한 것들이 수기형식으로 씌어진 이 작품은 도입부가 있고, 그 다음에 수기가 등장한다. 이 수기의 화자는 자신을 고용한 아이들의 백부의 하인이었던 피터 퀸트와 아이들의 가정교사였던 제슬 양의 유령을 목격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외에는 다른 누구도 유령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가씨가 잘못된 것일까. 어쩌면 아가씨의 눈에만 보였을지도 모른다. 요즘 말로 하자면 영감(靈感)이 뛰어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가정교사는 유령을 목격한 후 유령이 노리는 것은 사랑스러운 두 아이라 생각하고 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인간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는 것을 믿는다. 누가 아무리 뭐라 해도 자신이 생각한 것을 믿는다. 유령의 존재가 있든 없든 가정교사의 눈에는 유령이 보였고, 그 유령이 아이들을 노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은 퀸트나 제슬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가정교사는 아이들이 유령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내에서는 아이들이 유령을 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이 몇군데나 등장하기 때문이다. 밤중에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거나, 정원에 나가 있다거나, 혼자 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넌다거나. 이러한 아이들의 행동은 분명 아이들도 유령의 존재를 알고 있거나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건 가정교사의 생각일 뿐, 아이들은 직접적인 언급은 전혀 하지 않는다. 

고용인 중 한 명이 그로스 부인은 가정교사가 본 유령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지만 실제로 목격하지는 못했다. 가정교사의 말을 들으면서 차츰 그 이야기에 휩쓸려가게 되는 인물이다. 작품내에서 그로스 부인이 유령의 존재를 믿든 안믿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로스 부인 역시 사랑스러운 두 아이, 마일스와 플로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순진함과 천진함을 믿고 있는 두 사람은 아이들의 사랑스러움 뒤에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그걸 긍정하지는 못한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에 넋이 나가버렸다고 할까. 실제로 남자아이인 마일스는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구체적인 이유가 끝까지 나오지 않는데, 가정교사나 그로스 부인은 마일스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잘못이라 믿어버린다. 이 아이들 역시 무척 흥미로운데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읜 탓인지 무척이나 조숙하다. 특히 마일스의 경우에는 어른들처럼 애매모호한 말을 하며 가정교사를 착각속으로 밀어 넣는 존재이기도 하다. 무턱대고 사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또래 아이답지 않은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때때로 가정교사를 자신의 손바닥안에 쥐고 흔드는 모습까지 보이니까. 

이렇게 유령이란 존재와 유령이 아이들을 데려갈 것이란 두려움은 자신이 특별한 사람으로 이곳에 왔다는 자부심과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이란 책임감 등과 맞물려 가정교사를 궁지로 몰고 간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해 버리는 것, 그것이 그녀의 첫번째 과오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말수가 적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 입장에서 마음대로 해석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이 결국 커다란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에 이르게 된다.

작품의 결말부를 읽으면서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듯 했다. 한편으로는 클라이막스에서 뚝 끊긴다는 그런 느낌도 있었다. 모호한 부분이 결국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 끝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유령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가정교사의 심리적 변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단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결말이 더욱더 큰 임팩트를 가져오는 것이 분명하다.

이 뒤에 이 가정교사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도입부에 그녀의 수기를 소개하는 더글라스란 인물에 의해 묘사되기 때문에 궁금증은 풀렸지만 좀 이상한 것은 그녀의 그후 행적과 그녀에 대한 더글라스의 감정이란 부분이었다. 그 부분의 위화감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수기에 남긴, 그당시 블라이에서 벌어졌던 기묘한 일에 관한 부분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섬뜩했다. 하지만 잊으면 안되는 것은 수기란 것은 편지처럼 화자가 진실만을 말한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입장에서 씌어진 것이기에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녀가 목격했던 유령의 존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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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사랑 - 뉴 루비코믹스 1035
쿠사마 사카에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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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앗.. 만화책 표지를 보며 두근거린 것도 오랜만일세~~ 왼쪽의 청년(하지메)가 오른쪽의 회사원(마히루)를 어찌나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는지. 표지만 봐도 두 사람의 성격이 딱 나오는 것 같다. 하지메는 순수하다 못해 천진난만한 성격이고 마히루는 약간의 츤데레랄까. 그게 또 마히루를 엄청 귀엽게 만드는 요소이긴 하지만...

스스로를 제법 수완이 좋은 영업맨이라 생각하고 있던 나카가와 마히루에게 어느날 새로운 거래처를 담당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그곳은 금방이라도 망할듯한 부품공장으로 사장은 경영경험 제로의 천진난만 순진무구한 청년 오카자와 하지메이다. 혹시나 이게 권고사직을 의미하는 것인가 싶어 잔뜩 의기소침해진 마히루는 명랑쾌활발랄하기 그지없고 몸안에는 긍정마인드만이 있는 것 같은 하지메에게 화가 나지만 어느새 그런 긍정마인드에 휩쓸린 탓인지 서서히 하지메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된다. 

마히루라 불리는 자신의 여자같은 이름도 싫었고, 연하남자는 더더군다나 싫었다. 그런 마히루였지만,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하지메가 싫지는 않다. 이런게 바로 인연이라구욧, 마히루씨! 

『한낮의 사랑』은 두 사람이 사귀기까지의 과정보다는 사귀어가면서 생기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 물론 사귀기 전까지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후의 이야기가 비중이 더 크단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두 사람 뭐 이렇게 빨리 사귀는거야, 라는 생각도 들겠지만 부자연스럽지않게 술술 넘어간다. 그런 묘미에다 마히루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하나둘씩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에, 아직 어린 청년이라 그런지 망상 + 오해 + 질투 삼종세트를 귀엽게 분출하는 하지메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마히루는 어른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것에 비해 하지메는 소년같달까. 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진지한 면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또한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숨기지 않고 분명하고 떳떳하게 밝히는 대목도 좋았는데, 이 장면에서도 어른스러운 마히루의 모습이 돋보였달까. (하지메의 아버지에게 이야기할 때) 반면 마히루의 아버지를 찾아갈 때는 몇번이나 거절을 당해도 꿋꿋하게 다시 찾아가는 마히루와 하지메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웃음이 빵터지기도 했고. 하지만 제일 웃겼던 장면은 마히루의 아버지에게 겨우 인정을 받았던 자리에서 마히루의 발언이 아니었을까. 푸핫. 지금 생각해도 그건 아니잖아, 마히루씨. 너무 긴장했나봐. 뭐 그런 면도 사랑스러운 마히루였습니다만...

본문을 다 읽고 겉표지를 살짝 벗겨보면 속표지에 후기 만화와 후기가 있다. 요것도 또 하나의 재미랄까. 너무나 어른스러운 마히루의 상사 이가라시와 아이같은 하지메의 대면장면. 아, 정말 하지메도 귀엽다니까. 참, 그러고 보니 멋진 이가라시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었군. 이분도 참 재미있으셨단 말야. 특히 딸이 시집간다고 하는 장면에서 이거 완전 진지한 장면인데 난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진지 + 코믹함이 적절하게 어우려져서 작가의 감성이 물이 촉촉이 올랐단 느낌이다.

참 ! 또 하나더. 이 작품의 원제는 真昼の恋이다. 이거 완전 의미심장한 제목인데!! 真昼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한낮, 대낮이란 뜻이 있지만 발음으로 보면 마히루, 즉 남자 주인공의 이름과 똑같은 발음이다. 즉 음으로만 생각한다면 한낮의 사랑, 그리고 마히루의 사랑이란 뜻으로도 읽힌달까. 마히루의 사랑, 이것도 좋은데? 역시 이것도 작가님의 물오른 센스! (좀 덧붙이자면 - 책에도 나오지만 - 마루히의 이름은 正午라고 쓰고 마루히라 읽는데 보통은 쇼고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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