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천녀 2 (완결) - 젊은날의 백일몽과도 같은 환상기담!
요시다 아키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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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주 오래전, 하늘에서 천녀가 내려와 신관 남자와 부부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카노家. 
카노家의 손녀 사요코는 마치 천녀가 환생한 듯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 주위는 빛보다 어둠이 둘러싸고 있는 듯 보인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살아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사요코는 여성들에겐 선망과 질투의 시선을, 남자들에겐 욕망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어 아직 고교생이지만 사요코는 여느 여고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요코에게 매료되기라도 한듯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기 시작한다. 사요코를 괴롭히던 남학생, 사요코를 범하려던 교사. 이들은 각각 사고사와 자살이란 꼬리표를 달고 죽어버렸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카노家의 재산을 노리고 있는 토노 家의 마수가 사요코를 조금씩 압박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노家는 몇백년동안 내려오던 유서깊은 가문으로 신을 모시면서 살았다. 카노家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무녀가 되었고, 그러하기에 철저히 모계중심, 여성우선의 집안이지만, 토노家는 벼락부자 집안으로 피로 범벅된 내분과 갈등을 품고 있으며, 지독할 정도로 남자 중심의 집안이다. 토노家는 카노家의 재산을 손에 넣기 위해 아들 아키라와 카노家의 사요코를 맺어주려 한다. 사촌 료의 약점을 틀어쥐고 집안의 권력을 등에 업고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 아키라는 사요코를 손에 넣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뭐, 그렇다고 해서 카노家라고 깨끗하기만 한 건 아니다. 토노家 출신으로 카노家에 시집온 사요코의 숙모는 사요코의 아버지와 불륜 행각을 벌이고, 어머니는 소녀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사요코에게 있어 가족이란 할아버지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카노家의 중심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은 사요코에게 어떤 결심을 하게 만드는데... 이 결심은 사요코의 주변을 비극의 도가니로 더욱 거세게 몰아 붙이기 시작한다.

『길상천녀』2권에는 사요코의 어린 시절의 숨겨진 비밀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 사요코가 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있는지 대략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능력은 솔직히 단순히 그것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하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어쩌면 정말 사요코에겐 특별한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더 설득력있는 건 역시 과거와 연관된 부분이다. 그것이 사요코를 특별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작품은 사요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좀더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여성들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는 작품이다. 특히 사요코처럼 특별한 경우 그 삶의 질곡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달까. 남들보다 몇배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자들을 공격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니까.

나도 여자인지라 사요코에 대한 또래의 동경이 이해가 된다. 이런 부분은 남자 입장에서 보기엔 이해가 잘 안되겠지. 병원에서 죽은 남학생의 경우 사요코에 대해 집착과도 같은 미움을 보였던 이유가 아마도 여성인 사요코에게 힘으로 제압당한 후 자존심이 많이 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들은 상대 여성이 자신보다 강하면 찍어 누르고 싶고 콧대를 꺾어주겠다고 결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키라 역시 그런 부류였고.  

사요코의 결심이 무조건 옳다, 라고 하기엔 나도 거리낌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묘한 납득도 간다. 사요코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은 기존의 남성중심의 질서에 편입되든지, 아니면 자신이 만든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을 테니까. 결말을 보면서 사요코를 사랑의 여신 길상천이라 부르긴 힘들지만, 그래도 사요코는 단 하나는 지켜냈다. 어쩌면 사요코에 있어 그것은 모든 비극을 상쇄할 희망의 씨앗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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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가 된 샌드위치 백작 - 누군가의 이름에서 비롯된 재미있는 단어 이야기
존 베멀먼즈 마르시아노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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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공부를 할 때,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책 한 권을 진득하게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한시간만 들여다 보면 지친달까. 내가 하는 공부 역시 일단 시험 대비용이기 때문에 그런 수험서만 들여다 보면 슬슬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그럴 땐 난 과감하게(?) 책을 덮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택한다. 그럴 경우 택하는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이 아니라 - 한 번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기 때문에 - 외국어 공부와 관련된 재미있는 책을 찾는다.

외국어와 관련된 책인데 재미있는 책이 어디 있나고? 잘 찾아 보면 꽤 많다. 수험서처럼 빡빡한 책이 아니라 에세이처럼 읽으면서 단어공부를 하거나 그 나라 문화에 대해 배우거나 할 수 있는 책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그런 책은 교양서 정도로 읽으면 좋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된다. (그런 건 욕심이 지나친 거라 그러지요) 그래도 꽤 도움이 많이 된다.

『샌드위치가 된 샌드위치 백작』은 사람의 이름에서 파생한 영단어에 관한 인문교양 영어단어책이다. 인문교양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단어에 관한 설명에서 그 단어의 어원이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짧지만 당시 역사 등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짤막한 토막 상식이지만 단어의 유래에 관한 설명으로는 딱 적당하다고 보여진다. 

이 책의 원제는 Anonyponymous라고 하는데, 딱 봐도 길고 어려운 단어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단어는 저자가 만들어낸 단어니까. 물론 이 단어를 만들면서 조합한 두 단어도 사실 어렵긴 하지만... 이 단어는 익명을 뜻하는 annoymous와 시조를 뜻하는 eponymous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Anonyponymous에 '익명의 시조(始祖)'라는 뜻을 붙였다. 이는 누군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단어의 기원을 찾아 그것과 함께 단어의 뜻을 설명한다는 뜻이다. 책의 제목에 나온 샌드위치 백작에서 먹는 샌드위치가 나왔듯이, 이 책에 수록된 단어도 처음 그 단어가 누구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럼 누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까. 여기에 수록된 단어들 중에는 실존 인물의 이름을 따온 것도 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나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 희곡이나 문학 작품 등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 등 다양한 이름이 기원이 된 단어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도 있고, 어라라 이건 처음 보는 것인데 하면서 이런 기원이 있었군 하는 신기한 기분이 드는 단어도 많다. 

나같은 경우 달력에서 월(月)을 뜻하는 단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 이름, 요일을 뜻하는 단어는 게르만 신들에서 따온 이름이란 것이라든지, 입밖으로 꺼내긴 좀 쑥스럽지만 마조히즘이나 새디즘이 실존 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란 건 알고 있다. 또한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를 처형한 단두대를 만든 기요탱이란 인물 등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다. 하지만 실루엣도 사람 이름에서 따왔다니 깜짝 놀랐다. 그밖에는 개들에게 던져주고 물어 오게 하는 프리스비가 원래는 파이접시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나 견종의 하나인 잭 러셀 테리어나 도베르만 핀셔의 이름이 사람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란 것을 보고 무척 재미있었다.

또한 기포가 나오는 욕조를 뜻하는 저쿠지와 관련된 따스한 이야기, 초대형을 뜻하는 점보와 관련된 안타까운 이야기를 비롯해 푸흡하고 웃음이 터질 만한 유래를 가진 단어, 조금은 민망하지만 의외의 수확이었어란 생각을 하게 해준 단어들이 무척 많다. 만약 단어와 발음과 뜻만 설명해 놨으면 정말 지루했을 테지만 저자의 유머러스한 글과 그림이 유쾌하면서도 즐겁게 재미있는 단어 공부를 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연상으로 인한 기억은 기억이 꽤 오래 남는 편인데, 어쩌면 특이한 단어들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겨질지도 모르겠다.

그외에도 단편 지식으로 다양한 모자의 이름의 기원이 된 사람들의 이름, 성서에 등장한 인물과 관련된 단어, 사람의 이름을 딴 요리, 슬랭등에 관한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었다. 특히 슬랭은 예전에 슬랭만을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역시나 재미있다. 욕이라고 생각하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지만, 슬랭 속에도 역시 그 문화권만의 고유한 특성이 살아있기 때문에 알아 둬서 나쁠 건 없다. (내가 욕을 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 욕을 할 때 알아 듣긴 해야 하니까 필요하고, 그리고 슬랭이 꼭 욕만을 뜻하는 건 아니라 은어도 많으니 꽤 재미있다) 이런 문화적 특성은 슬랭 뿐만 아니라 그 단어가 만들어진 상황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누군가의 이름이 기원이 되어 만들어진 단어는 당대 문화를 반영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쓰이는 단어도 있지만 사멸 직전이나 다시 부활한 단어 역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부록 참조)

누군가의 이름이 기원이 된 단어도 이렇게 많다니!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인상적인 사람이었기에 단어까지 만들어질까 싶은 생각이 들어 신기하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그럴수 밖에 없구나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한다.

공부를 하다 지쳤을 때, 소설처럼 긴 내용을 읽을 시간이 안나는 자투리 시간 밖에 없을 때, 이럴 때 단어의 기원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단어 사냥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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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헤도로 Dorohedoro 11
하야시다 규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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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의 억지 파트너가 된 니카이도와 도피 중인 카이만. 둘은 이제껏 용케 엔의 추적을 잘 피해왔지만 절체절명의 순간 니카이도가 마법을 쓰는 바람에 엔이 이들이 도피한 곳을 찾아냈다. 감히 자신의 파트너를 납치한 카이만에 대한 분노때문에 엔은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고 카이만은 도마뱀 머리만 남긴 채 용암속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때, 카이만의 몸에서 분리된 형체, 그것은 바로 리스였다.

엔은 니카이도를 저택으로 데려오지만 니카이도는 엔의 파트너가 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회복 마법도 전혀 듣지 않은채 나날이 쇠약해져만 가고 있다. 한편 용암속으로 떨어지는 카이만을 구해낸 카와지리(악마였을 때의 이름은 아스)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 나타난 건 평범한 인간이었다. 자신은 카이만이 아니라고 하는 이 남자, 그렇다면 이 사람은? 역시나 그랬군. 역시나 그였어. 그렇다면 카이만의 마법 학교 기억과 리스에 대한 기억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리고 카이만의 도마뱀 머리안에 리스의 망령이 존재했던 이유도 이와 결부해서 자연스럽게 밝혀진다. 어쨌거나 카이만의 도마뱀 머리가 떨어지면서 분리된 리스의 망령은 리스의 본체와 결합해 기괴한 모습의 이형의 존재를 만들어 낸다. 그의 이름은 커스. 생김새도 기괴하기 그지 없지만 그 능력 또한 기괴하기 짝이 없다. 도쿠가가 왜 그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는지 자알 알 것 같다. 그런 놈은 건드려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한편 거의 두 동강이 난 에비스는 여차여차해서 부활! 그런데 이번에는 쵸타의 머리핀때문에 예전보다 더 이상한 아이로 거듭난 에비스. 얘의 운명은 도대체... 에비스, 너도 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고 있구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드디어 십자눈 조직의 보스가 등장했다. 6년전 엔의 대결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십자눈의 보스와 엔의 대결. 이번엔 얄짤없이 엔이 너덜너덜. 솔직히 엔이 정말 싫었지만 그렇게 된 걸 보니 좀 불쌍하더구만. 그래도 그 덕분에(?) 쵸타의 마법도 풀리고, 버섯 도시로 변해버린 도시도 정상화되는 등 엔의 마법이 발동된 곳이 정상화되긴 하지만 엔이란 중심축이 없어져버린 마법사의 도시는 곧 일대 혼란에 들어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엔 패밀리는 분열, 십자눈 조직의 부활이 될 듯.

이 십자눈 보스의 정체는 아직도 불분명하지만 카스카베 박사의 이야기 등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아이가 십자눈 보스일 가능성이 크다. 십자눈 보스의 가공할 능력은 아마도 마법사들에게 심어진 작은 악마를 스스로의 몸에 이식함으로서 생겨난 것이라 짐작되는데, 이번엔 엔을 먹어치웠으니(?) 버섯 마법도 십자눈 보스의 소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렇게 프랑켄슈타인 마법사가 된 부작용은 없으려나. 엔마저 처치한 솜씨를 보건대 앞으로 이 십자눈 보스에 대적할 마법사는 시간을 다루는 마법사인 니카이도밖에 없을지도.

그러고 보니 니카이도 어디로 간거지? 그 몸을 해가지고!! 일단 엔이 죽어버렸으니 계약은 파기되었을 테지만 몸이 그 꼴이라서 어디가서 쓰러지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도마뱀 머리 카이만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 아니 마법사란 표현이 맞겠지 - 그는 기억을 되찾지 못한 상태이고, 하여튼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아, 불안해.

 

이번 팝업 캐릭터는 아이카와. 리스의 마법학교 동기인데 이 아이카와가 앞으로 커다란 역할을 할 듯. 아무래도 리스를 도마뱀 머리 안에 들어간 것도 아이카와의 마법때문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아무리 생각하면 뭐해. 본인이 기억을 전혀 못하는구만. 아이카와, 얼른 기억을 되찾아줘. 니카이도가 너무 슬퍼하기 전에! 여자를 울리는 남자는 못쓰는 법이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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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서유요원전 대당편 1 만화 서유요원전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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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고 그 볼륨에 깜짝 놀랐다. 보통 만화는 150~200페이지 정도인데, 이 작품은 두배 정도인 400페이지나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놀란 건 대당편만 10권이란 것. 400페이지로 잡아도 무려 4,000페이지나 된다는 이야기이다. 역시 대단한 작가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서유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어린 시절 책으로 먼저 접했던 기억이 있다. 그후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으로 서유기가 각색되어 나왔고, 일본 만화중 서유기를 기본 얼개로 한 또다른 판타지 작품이 있다. 나도 좋아하는 작품이라 만화책은 물론 애니메이션도 챙겨 봤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서유기란 작품은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좀 다른 점이라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과 일본 판타지 만화의 경우 엔터테인먼트적인 경향이 강했다면 이 작품은 꽤나 진중하고 무거운 편이다. 그러나 가독성이 정말 좋아 지루함은 전혀 없다. 오히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 정도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서유기의 손오공과는 달리 인간의 자식이다. 화과산 기슭에 있는 마을에 사는 손오공은 출생부터 남다르다. 국원에 의해 납치된 어머니가 낳은 자식이 바로 오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출생은 남달랐지만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오공은 어느날 화과산에 들어갔다가 스스로를 제천대성이라 칭하는 무지기의 부름을 받는다. 거대한 원숭이 요괴인 무지기는 오공에게 자신의 이름을 이을 자라고 하지만 오공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당한 어머니를 보고 복수심에 금환을 쓰게 되는데 그것이 오공과 무지기를 연결시키는 연결점이 된다.

하지만 그 고통이 너무 심해 모든 기억을 잃고 떠돌이가 되어 살아가다 인간들에게 잡힌 오공은 지나가던 현장법사의 기도로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 압송당하던 중에 만난 홍해아와 길동무가 되어 당에 맞서기로 한 오공은 유흑달을 찾아 가던 길에 용아녀를 만나 유흑달이 당에 패하고 도망하는 중이란 말을 듣는다. 오공은 홍해아와 잠시 헤어져 용아녀와 함께 백운동에 들어가 그곳에 적혀 있는 비문에 적힌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의 배경은 수말당초. 수나라가 망하고 군웅할거의 시대에 들어간 중국을 당태조의 아들들이 하나씩 병합해 가는 중이다.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백성들, 그리고 각각 황제가 될 꿈을 안고 일어선 군웅들의 싸움에 백성들의 고통은 점점 더해가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도적떼까지 설치는 판이니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야인이 되거나 전쟁에 휘말려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오공 역시 자신을 돌봐주던 가족이 죽고 야녀가 된 어머니마저 살해당하는 등 어린 시절엔 많은 고통을 당하지만 용아녀를 만난 후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잡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비문에 적힌 자신의 운명이라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금고봉을 뽑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반발하기도 한다. 내가 왜 그런 운명에 따라야 하냐는 뜻이겠지. 당연히 소년 오공의 입장에선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남다른 출생과 몰살당한 가족, 자신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각지에서 일어나 전쟁을 일으키는 군웅들을 보며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무지기란 요괴의 뒤를 이어야 한다니, 그것만큼 오공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일이 더 있을까. 그러나 그것이 오공이 걸어 가야 할 운명이었으니, 그저 피한다고 될 일만은 아닌듯 하다. 그러니 아마도 앞으로의 전개에 오공의 성장이란 요소가 맞물려 돌아갈 건 분명해 보인다.

「서유요원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유기에 중국사와 판타지와 기담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정말 작품 구상부터 스토리와 작화부분의 세세한 묘사까지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아니면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그가 아니라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작품이 아닌가 하는 감탄이 책을 읽는 내내 나오고 만다. 정말 필생의 역작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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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천녀 1 - 젊은날의 백일몽과도 같은 환상기담!
요시다 아키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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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표지만 보고서는 판타지나 고전물일줄 알았다. 근데 첫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이거 뭐야? 하는 말이 튀어 나오고 말았다. 현대물이군. 생각과는 좀 다른데... 그래도 요시다 아키미니까, 기대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카노 사요코는 절세의 미모를 가진 17세의 소녀로 양녀로 다른 곳에 보내졌다가 본가로 돌아왔다. 전학생인 사요코에게 남학생은 물론 여학생들 마저 동경의 눈길을 보낸다. 물론 사요코의 미모에 남자친구를 뺏길까 싶어 사요코를 견제하려는 불량 여학생 무리나 사요코에게 웬지 모를 거부감을 느끼는 토노 료가 있긴 했지만. 

사요코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학교내에서 빛을 발하지만 그 나이 또래의 소녀답지 않은 어둠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랄까. 사요코는 유이코와 마리 등 반친구들도 사귀 게 되는 등 나름대로 즐거운 학교 생활을 보내지만 늘 그녀를 노리는 사나운 눈빛들이 존재한다. 특히 료와 사귀는 여학생 그룹은 사요코를 손봐주려 하지만 역으로 사요코에게 호되게 당할 뿐이다. 

하지만 사요코를 노리는 건 이들뿐 만이 아니다. 사요코를 손봐주려다 실패하고 자존심 상한 남학생을 비롯해 학교 선생까지, 사요코에게 손을 대려한 자는 사고사를 당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도대체 그녀에겐 어떤 힘이 숨어 있기에 이런 어둡고 음험한 일들만 벌어지는 것일까.

미모와 재력. 이 두가지는 사요코의 발을 묶는 존재일 뿐이다. 그토록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부잣집의 딸이 아니었다면 여자애들의 질투때문에, 자신의 집안의 재산을 노리는 토노 아키라의 음험한 흉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을테지. 그런 사요코가 가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남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칠수 있는 사요코의 어둠이 무서웠다. 

카노가와 토노가 사이의 얽히고 설킨 복잡한 사정. 그리고 사요코를 노리는 음험한 손길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사요코의 영역을 침범한 자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 

작화를 볼 때는 이게 오래된 작품이란 걸 감안해야 한다. 솔직히 절세의 미녀라고 하기엔 사요코의 미모가 좀 아니다 싶긴 하지만, 이 작품이 나온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토리 하나만큼은 무척 매력적이란 걸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을 묶어 놓은 운명과 시시각각 자신을 조여오는 덫을 헤쳐나가는 여성의 이야기이니까. (개인적으로 이런 강한 여성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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