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바시 동반자살 - 뉴 루비코믹스 1049
히노데 하임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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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모노에 모에하고, 시대물에 훅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표지만 보고 이 책을 골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왼쪽의 검정색 기모노, 그리고 오른쪽의 후리소데. 와우, 표지 정말 예쁘닷! (얼핏 보면 순정만화 삘이 팍팍 나지만, BL입니다. 요즘은 미혼여성만 후리소데를 입지만 에도시대에는 남성들도 후리소데를 입었습니다) 게다가 에도 시대물!!!!

『니혼바시 동반자살』의 원제는 日本橋心中인데, 이 心中이 동반자살이란 의미다. 첨에 이 단어을 만났을 때 엄청 당황했지. 차라리 정사(情死)라는 표현을 쓰면 동반자살이라고 알아먹을텐데, 心中이라는 한자어만 봐서는 당최 뜻을 짐작하지 못했다. 사전을 찾아 보고야 동반자살이란 의미란 걸 알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마음 속이라는 뜻은 しんちゅう라 읽고, 동반자살이란 뜻은しんじゅう로 읽습니다) (비슷한 제목으로는 오우기 유즈하의 동경심중(東京心中)이란 작품이 있었지요)

각설하고.
『니혼바시 동반자살』에는 총 다섯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니혼바시 동반자살>과 <한 송이 비녀와 사랑의 그림>은 니혼바시의 요시초라는 유곽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니혼바시 동반자살>의 시작은 현대물로 시작한다는 것인데, 전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듯. (아~~ 전생, 이런 거 무지 좋아합니다)

시골에서 에도로 상경한 무사 세이에몬은 요시초에서 츠키노스케라는 아름다운 남창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돈이 없는 하급 무사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츠키노스케는 세이에몬에게 자신의 마음을 허락한 것이다. 슬픈듯, 안타까운듯 보이는 츠키노스케의 얼굴 뒤에 감춰진 과거는 세이에몬과 츠키노스케의 사랑을 비극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부디 현세에서 이루시길...

<한 송이 비녀와 사랑의 그림>은 츠키노스케의 친구인 쿄야와 야나기야의 큰서방님 레이와의 이야기이다. 레이의 정체가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레이의 정체를 말할 수는 없지만, 레이 역시 무척 멋진 남자였다. 쿄야에게 다정하고 자신의 동생을 무척 아끼는 남자랄까. 이 둘의 이야기도 비극으로 끝나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휴우~~ 다행히 비극은 아니었다.

<요괴변신과 부초괴담>은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요괴가 등장한다. 음, 그리고 에케이란 스님도 등장하는데 이 요괴와 에케이란 스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사람을 사랑한 요괴, 요괴를 사랑한 사람의 이야기랄까. 보통 이런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다행히 이 커플도 해피엔드~~~ (개인적으로 해피엔드를 사랑합니다)

<도라지 저책의 후리소데 결투>는 무사와 시동의 이야기이다. 에도 시대에는 남색이 유행했었고, 그건 무사들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남자들의 진지한 이야기에 코믹함이 더해져서 무척 즐겁게 읽었던 단편.

마지막 작품인 <형제의 의리와 시라하마 동반자살>은 에도 시대의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에도시대라고 하면 일단 먼저 무사가 떠오르긴 하지만, 헤이안 시대가 귀족 문화가 융성한 시기였다면 에도시대는 상인과 평민들의 문화가 발달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어린 시절 한 동네에 살았던 후지헤이와 센스케의 재회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의리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변하는 이야기이다. 너와 함께라면 죽어도 좋다, 랄까. 이런 말을 아무런 고민없이 내뱉을 수 있는 후지헤이의 옆모습이 참으로 믿음직스러웠다. 이 말은 너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괜찮다는 의미일테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난 정사(情死)란 것을 매력적이라 생각할 만큼 바보는 아니다. 물론 정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나의 경우엔 그럴 용기가 있으면 어떻게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랄까. 하지만 에도 시대는 좀 달랐을지도 모른다. 무사란 계급에 있던 사람들의 경우 체면을 위해 할복이나 결투를 하기도 했으니까. 정말 목숨을 걸고 사랑을 해야 했을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자면 에도시대는 현대와는 다른 로망이 살아 있던 시기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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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지 못해 - 러쉬노벨 로맨스 234
아이다 사키 지음, 사쿠라기 야야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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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노벨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는 아이다 사키의 소설은 나름대로 많이 찾아서 읽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아직 읽지 못한 책이 꽤 있다. 이 소설도 그중의 하나인데, 아무래도 등장 인물이 일반인같아서 제외시켜 뒀을지도. (흐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일반인을 별로 안좋아합니다) 게다가 아이다 시키는 경찰이나 야쿠자(혹은 마피아)가 등장하는 어둠의 세계의 이야기를 특히나 잘 묘사하기 때문에 이 소설에 별로 거는 기대는 없었다. 그래도 아이다 사키니까 적어도 실망을 시키지 않으리란 생각을 했달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단 것.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나.

일단 표지에 있는 인물에 대해. 왼쪽에 발가벗고 있는 녀석은 스무살의 대학생으로 이름은 마사미치이고, 연인과 막 헤어진 상태이다.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34살의 형사로 이름은 쿠몬, 마사미치의 옆집에 산다. (이런 우연이!) 근데 아무리 봐도 쿠몬의 얼굴은 스물 일고여덟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무 젊게 그렸어. 약간은 아저씨삘이 나도 좋았을텐데. (아, 요즘 제가 아저씨에 푹 빠져서... 이렇습니다)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컬러일러스트. 하나는 마사미치가 맞는데, 마사미치와 같이 있는 이 안경낀 섹시한 남자는 누구지? 마사미치가 혹시 두 남자를 만나게 되는건가, 하는 야릇한 상상을 해봤는데, 속았어, 속았어, 완전 속았어. 마사미치가 분통을 터뜨릴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난 공감하고 말았다. 이 사람도 쿠몬이라잖아!!!!!!!!!!!!!!!!!!! 이게 어떻게 동일인물일 수가 있어!!!!!!!!!!

표지 일러스트와 안쪽 컬러 일러스트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흥분해렸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마사미치는 연인과 헤어진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게이바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은테 안경,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 매력적인 얼굴. 단 하룻밤만이라도 좋으니 위로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마사미치는 이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건 하룻밤의 꿈일 뿐, 더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마사미치의 앞에 이 남자가 나타났다. 옆집 남자로. 게다가 어젯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구깃구깃한 양복에 헝클어진 머리로. 도대체 한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거지? 마사미치는 속았다는 생각에 쿠몬에게 까칠하게 굴기 시작한다. 하지만 쿠몬은 마사미치가 싫지 않은 듯 그의 곁으로 자꾸만 다가서는데...

처음엔 싫었지만 자꾸만 그에게 끌리고 마는 마사미치와 대놓고 마사미치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쿠몬. 두 사람의 밀고 당기기가 이 책의 작은 재미라면, 쿠몬이 수사하는 사건 해결은 이 책의 또다른 재미이다. 암만, 형사가 사랑만 해서는 쓰나, 수사도 해야지. 다른 소설에 비해 형사 이야기의 비중이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범인이 그 사람이라뉘! 사실 이건 뭐, 작가가 범인을 깔고 앉아 독자에게 전혀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짐작도 못할 사람이 범인이란 것만 밝혀둔다.  

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조연들 중, 아이바. 딱 한장면에서 얼굴이 나오는데 근사하게 생겼구나. 비록 사랑을 얻지는 못하지만 든든한 지원자로 남아주는 아이바는 멋진 캐릭터. 물론 질투도 하고 해서 마사미치에게 싫은 소리도 하지만, 반듯한 사과를 할 수 있다는 건 역시 멋진 거지. 그리고 친구인 타마루도 굉장히 귀여운 녀석이었다. 마사미치의 성벽을 이해해주는 친구일 뿐만 아니라, 마사미치가 위험에 처했읉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니까. 작가 후기에는 아이바와 타마루 커플링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와 있던데, 글쎄. 난 둘을 연결시키는 것보다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참, 일본 원서 표지를 보다가 빵 터졌다. 번역본 그림과 약간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사미치에게 옷을 입힐 수는 없으니 나름대로 가위질을 하셨군요. 그러고 보니 옛날 만화책을 보면 억지로(?) 옷을 입히거난 꽃을 뿌려서 몸을 감추기도 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건가??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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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2
박해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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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제목과 표지 사진을 보면서 한국의 아파트에 관한 내용이란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읽었던 부동산 투기나 아파트 과열 경쟁, 그로 인해 양산되는 하우스푸어와 관련된 내용, 즉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아파트의 정치 · 경제적 문제에 대한 담론일 거란 선입관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목차를 읽어나가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본문을 읽어나가면서는 내 선입관이 완전히 깨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 책은 내 생각보다 광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한국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정치 · 경제· 사회· 문화 · 역사의 변천사를 담고 있다.

책은 픽션과 팩트라는 각각의 부제를 달고 총 2부로 나뉘어진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픽션을 보면 무척 흥미로운 시각으로 진행된다. 어떻게 보면 무척 추상적이다, 라는 생각도 들지만 곰곰히 뜯어 살펴보면 매우 구체적인 시각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선의 모험>은 마포 아파트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건설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 모더니티란 개념이 처음 정착되기까지의 여정을 훑어보며 설명되고 있다. 처음엔 항공사진으로 시작해서 밀라노의 거리, 경성의 거리를 지나 마포아파트 건축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모더니티란 개념의 도입과 관련이 되어 있다. 한국사회에서의 아파트의 출현이란 종래의 전근대적인 개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주거형태의 도입이었기 때문이다. 반발과 수용의 시기, 그것이 바로 마포아파트 시대였고, 한국 사회의 현대적인 주거형태의 첫 정착지가 되었다.

<아파트의 자서전>은 아파트 자체가 주체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花樣年華>의 내용과도 맞물리는데 아파트를 처음 경험한 사람들이 아파트를 어떤 방식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아파트가 어떤 식의 영향을 사람에게 주고 있는지, 아파트 생활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이런 부분은 아파트 문화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데, 주거 공간이 변하면서 함께 변화한 생활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파트가 어떤 식으로 현대적인 계층 사회를 만들어 나갔는지에 대한 것도 이 부분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영웅시대>의 경우에는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그의 인생을 통해 아파트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아파트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제와 결합되어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사회 내에서 중산층이라 불리는 계급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팩트는 앞에 나온 이러한 이야기를 사실적인 서술방식으로 보여준다. 픽션의 이야기가 조금은 추상적이었다면 팩트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내용의 서술방식에만 차이가 있을 뿐 큰 흐름은 픽션의 것과 같다. 픽션을 읽고 팩트를 읽으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진달까.

한국사회에 있어서 아파트란 것은 단순히 하나의 주거문화형태에 그치지 않는다. 조국 근대화 사업 방안에 맞춰 탄생한 아파트는 우리의 삶은 크게 바꾸어 놓았다. 예전같으면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말을 썼겠지만, 지금은 내 아파트 마련의 꿈으로 바뀌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다행이겠지만, 이는 재건축이나 재개발 붐과 맞물려 일반인에게까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꿈을 꾸게 했고, 용케 돈을 번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끝물에 걸려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집을 가진 빈자(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아파트는 어떤 지역, 어떤 브랜드, 면적 등에 따라 다른 계층을 양산했고, 미래를 저당 잡아 현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단순히 면적을 넓혀 이사하는 재미가 아니라 몇 채의 아파트를 소유하면서 그것으로 떼돈을 벌려는 투기 심리 또한 그 언저리에 위치해 있다. 지나친 욕심은 미래를 위한 자리를 조금도 남겨 놓지 않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에 전해질 것이다.

이런 자기충족적 욕구는 한국 사회와 정치에 대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어쩌면 1960년대 마포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계획했던 정부의 음모가 이제 그 틀을 완벽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아파트는 대개 획일화된 구조이기 때문에 각 가구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상품들이 개발되어 왔고, 그것이 또하나의 아파트 문화로 자리잡았다. 또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상권의 발달등으로 이어졌고, 가정의 생활양식 역시 많은 변화가 보였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의 산업 전반에 있어 급속한 발달을 가져온 계기가 되기도 했으나, 반대로 상품회전율이 급속도로 빨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십년이상 쓸 제품을 이젠 채 5년도 쓰지 않고 바꾸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파트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돈을 빨아들여 건설회사의 배를 불리고, 기업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돈주머니로 전락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주의 의미가 아니라 소유의 의미로 변질되어 투기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존재, 또다른 계층분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존재, 경기를 부양한다면서 건설회사의 배만 불려주는 정부의 경제 정책의 중심이 되는 존재가 되어 버린 한국의 아파트. 한국의 아파트는 언제쯤이면 원래의 목적에 근접한 구조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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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할리의 마차
히로아키 사무라 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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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무한의 주인』의 작가로 잘 알려진 사무라 히로아키의 신작이다. 이『브래드 할리의 마차』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꽤나 많은 반감을 사고 있는 듯 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런 건 궁금해서 못참는다.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 (별로 안좋죠)- , 나 역시 읽고 나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 어떤 면에서 불편했느냐. 이 만화를 그린 작가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 그건 후기를 봐도 마찬가지다 - 이 만화를 보면 일제시대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폭동과 소요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년에 한 번 고아원 출신 여자 아이들을 공급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무기수들의 성적 욕구가 폭력성으로 이어지기 전에 그를 막기 위한 방법이라는데, 도대체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참 궁금하다. 

수십명의 남자들이 고작 열서너 살 된 여자 아이를 집단으로 윤간한다, 라. 게다가 폭력성 정도가 높은 무기수일수록 여자아이에 대해 가하는 폭행의 수위도 높아진다. 이 여자아이들은 고작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약 일주일간 살아 있게 되면 독약으로 살해한 후 암매장한다. 설정을 보면 무척 잔혹한 이야기이다. 여성이란 존재를 물화(物化)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자 아이들은 단지 수감자들의 성적 요구를 배출할 존재일 뿐이다. 끌려온 여자 아이들은 파스카의 양이라 불리며, 수감자들은 이 일주일간을 파스카의 축제라 부른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그들 중에는 죄책감으로 그 사실에 눈을 돌려버리는 수감자도 있고, 끌려온 아이를 탈출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간수도 있다. 또한 파스카의 축제를 기다린 한 수감자가 파스카의 양이 되어 끌려온 자신의 딸을 데리고 탈출하려다 사살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고작 그런 것으로 이 여자아이들의 고통을 무마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이런 행위는 정당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끌려오게 된 것일까. 책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브래드 할리의 마차를 타는 것은 대외적으로는 귀족 가문인 브래드 할리家의 양녀가 된다는 의미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양녀가 아닌 파스카의 양이 되어 죽어간다. 브래드 할리의 양녀가 되어 브래드 할리 성공녀 가극단에 들어가 공연을 할 수있는 자격을 얻는다는 것은 고아가 된 소녀들의 꿈이기도 했지만, 그건 꿈에 불과한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꿈을 안고 브래드 할리의 마차를 타기 위해 서로를 해치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도 있었고, 브래드 할리家의 양녀가 되었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해 사라진 소녀의 이야기도 있었다. 매년 많은 수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선택되지만 브래드 할리家로 오는 아이들의 수가 턱없이 적어 그것에 의문을 가지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 이 책의 내용을 차곡차곡 뜯어 보면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한 어둠과 악마적 본성을 그리고 있는 듯한 내용으로 보이지만 결말부가 어수선한 데다가, 설정 자체가 불쾌해서 불편한 기분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가 후기를 보면서 또다시 불쾌해진 점은 이 작품의 의도가 "야한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야한 만화가 될 수 있는 거지. 집단 윤간이 어떻게 야한 만화가 되는 거지? 도대체 이런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다음엔 여고생이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데, 이 말은 불쾌함의 최고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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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 슈퍼 루비코믹스 069
아이다 사키 글, 유기 야마다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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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돌아오셨다!!!
오빠도 아니고 웬 형님?? (이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본인은 여자라서 남자에게 형님이란 말은 원래 쓰지 않지요. 원래는! - 야쿠자였던 형님이기 때문에 형님이 돌아오셨다는게 맞는 표현이겠지요)

보고 싶었어요, 사와라기씨. 아이다 사키와 야마다 유기의 환상적인 콤비의 전작『고작 사랑이잖아』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사와라기씨가 돌아왔다. 홀아비의 몸으로 마코토를 키우고 있는 이즈미와 형사가 된 신의 사랑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된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이즈미를 늘 뒤에서 서포트해주던 형님의 포스를 잊을 수 없었다. 마약관련 사건으로 체포되면서 "재판에도 오지말고, 면회도 오지말고, 출소하면 제일 먼저 찾아갈테니 기다리고 있어"란 말만을 남긴 사와라기씨의 이야기가 더 보고 싶었는데, 이 작품으로 완전 소원 성취한 셈이다.

이야기는 5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 사와라기가 교도소에서 만났던 슈야란 청년과 재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대체 그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슈야는 부모의 어머니의 학대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타인을 믿지 못하는 성향으로 자라왔고, 그것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성격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교도소에서도 역시 그런 생활을 이어져 사와라기와는 다른 야쿠자 조직에 속해 있던 소네의 여자로 살아간다. 출소하면 야쿠자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기로 마음먹은 사와라기는 슈야의 접근을 허락치 않지만 소네에게 폭행당하던 슈야를 구해주고 만다. 이후 사와라기는 먼저 출소, 스낵바를 차린 후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사와라기 앞에 슈야가 호스트로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채 나타난 슈야는 사와라기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지만, 어느 비오는 날 밤 버려진 고양이를 안고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이때부터 두 사람과 한 마리의 동거가 시작된다. 그러나 여전히 사와라기는 슈야와의 거리를 두고 있다. 교도소 시절과 전혀 변함없는 슈야의 태도가 문제였겠지. 슈야는 사와라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조금씩 변화해 나가기 시작하지만, 우연히 출소한 소네와 맞닥뜨리게 되고 마는데...

야쿠자 생활을 깨끗하게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와라기는 이전과 같은 포스는 없어졌지만, 한층 부드러워졌다. 어떻게 보면 약간 초췌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예전의 날선 인상은 많이 없어졌달까. 물론 때때로 예전의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 아마도 어쩔 수 없겠지 - 많이 부드러워졌다. 형님일 때도 좋았지만 역시 이 모습이 더 맘에 든다. 개인적으로는.

슈야를 귀찮아 하면서도 슈야의 변해가는 모습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사와라기의 표정은 잊을 수 없다. 그런 둘 앞에 나타난 소네는... 천하제일의 악당이었다. 생긴 것도 기분 나쁘게 생겨서. (쩝)

슈야의 경우 처음엔 이제껏 자신이 타인과 맺어온 관계방식대로 사와라기에게 다가가지만, 그것으로 사와라기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랑받고 싶으면 변해라.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스스로의 손으로 잡아라. 슈야에겐 이게 정답이 아니었을까. 처음엔 슈야란 캐릭터가 참 별로였는데,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자니 조금은(?) 사랑스럽게 느껴지게 되었다. (사와라기씨를 봐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이렇게 변해가는 슈야와 슈야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사와라기 앞에 나타난 소네때문에 결국 슈야는 사와라기의 곁을 떠나고 만다. 슈야가 사와라기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단 하나였으니까. 이런 걸 보면 슈야의 삶도 참 파란만장하다. 고작 스물몇살에, 이런 일 저런 일,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다 겪고 마니까.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은 참 멀었다. 그리고 힘들었다. 하지만 쉽게 얻어지는 사랑은 쉽게 식기 마련이고, 쉽게 사라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이 둘 사이에선 이런 일들이 필요했을지도 모르지.

조연으로 등장한 하스미씨. 무척 멋있었습니다. 사와라기를 여전히 잘 보살펴 주고 있기도 하고, 사와라기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이 분도 나름대로 사와라기를 지켜주는 분이었지. 그리고 사람은 아니지만 꼬마란 이름을 얻는 고양이. 아웅, 귀여워. 특히 밥 달라고 양양거리는 거 보면서 깨물어 주고 싶었다. 전편의 주인공인 이즈미와 신은 여전히 알콩달콩 귀엽게 사랑하고 있고, 훌쩍 커버린 마코토는 귀염성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귀엽다.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게 탈일지도..  

참.. 형님 이야기가 소설로도 나왔단다. 슈야와 사와라기씨의 후일담을 담은 花片雪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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