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메 우인장 10
미도리카와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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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 시절부터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고 느껴왔던 나츠메 타카시는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며 살아가지만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왔다. 그런 나츠메 앞에 나타난 먼친척 시게루 아저씨와 토오코 아줌마는 나츠메를 사랑으로 거두어 주고, 나츠메는 그 사랑속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나츠메의 할머니였던 레이코역시 요괴를 볼 줄 알았던 사람으로 나츠메처럼 외로운 생활을 했었다. 그당시 요괴들과 대결하여 그들의 이름을 받아놓은 것이 바로 우인장. 나츠메는 그속에 이름이 적혀 있는 요괴들의 이름을 돌려주기도 하고 때로 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지내고 있다. 나츠메의 곁에 있는 야옹선생(개인적으로는 냥코센세란 표현이 입에 붙었습니다. 애니에선 냥코센세라고 불러서)는 우인장을 노리고 있지만 그건 나중의 일. 일단은 나츠메의 수호요괴로 붙어 있다. (본래 요괴의 모습은 멋지지만 마네키네코에 봉인되어 있던 몸인지라 사람들에겐 괴상한 고양이 모습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다라 쪽을 훨씬 좋아합니다.)

『나츠메 우인장』10권에는 두펀의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처음 시작할 땐 네다섯 편 정도의 에피소드가 실려있었지만 점점 갈수록 이야기가 복잡해지고 나츠메에게 닥치는 위험수위도 높아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첫번째 에피소드에는 나츠메의 초등학교 동창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나츠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거짓말을 한다고 했던 그런 부류의 아이로 이름은 시바타. 시바타는 왜 갑자기 나츠메의 앞에 나타난 것일까. 나츠메는 친구들과 함께 있다 시바타의 출현에 당황하고 만다. 자신이 지켜오고 있는 선이 무너질까 두려웠던 것이겠지. 겨우 행복과 안정을 찾은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시바타가 싱글거리면서 나타났을 땐 만화속으로 뛰어들어 한대 팍 치고 싶었달까. 그치만 시바타의 사연을 알게 된 후 그 마음이 가라앉긴 했지만, 역시 나츠메를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은 싫다.

시바타가 나츠메를 찾아온 건 자신이 만나는 여학생에 관한 일 때문이다. 무라사키란 이름의 그 아이가 진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단다. 나츠메는 시바타와 함께 그녀를 만나 보고 사람이라 말하지만, 야옹선생은 그날 밤 나츠메에게 요괴 냄새가 묻어 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여학생은 정녕 요괴였던가.

죽어가는 등나무 요괴인 무라시키와 평범한 인간 아이인 시바타의 이야기에 가슴이 찡해졌다. 요괴와 인간 사이는 너무나도 멀어 보이지만, 인간은 요괴를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지만, 그건 요괴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로만 인식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들 중에는 요괴 이상으로 인간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존재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요괴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 가슴이 아플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미스미산의 월분제 이야기이다. 10년마다 풍월신과 불월신이 만나 내기를 하고 그 내기에서 이긴 신이 미스미산을 다스리게 된다. 만약 풍월신이 이긴다면 마스미산의 초목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지만 불월신이 이긴다면 미스미산 주변은 메마르게 된다. 원래 인간들의 축제에서 비롯되었지만 인간들이 점점 그 축제를 멀리하게 되고 신을 모시지 않게 되자 요괴들이 그 축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풍월신이 몇년전 얼치기 퇴마사에게 봉인된 후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 이대로 풍월신이 나나타지 않는다면 불월신의 승리가 될 것이고 미스미산 주변은 재앙이 내릴테지. 풍월신을 모시는 흰삿갓패는 나츠메에게 풍월신을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풍월신 역학을 맡아주길 청하는데...

나츠메의 풍월신 분장. 의외로 무척 잘 어울리더군. 나토리도 깜빡 속을 정도. 나츠메를 닮은 요괴라는 표현에 빵터지고 말았다. 히이라기는 단박에 알아 봤는데 말이지. 어쨌거나 나츠메는 나토리와 히이라기등의 도움으로 - 물론 야옹선생(마다라)의 도움도 받았다 - 이 난제를 무사히 풀어나가게 된다. 늘 느끼는 거지만 히이라기는 좀 시니컬하면서도 다정하다니까.

이 이야기에서 안타까웠던 건 사람들의 믿음이 사라지자 신의 힘이 미약해져 얼치기 퇴마사의 봉인도 풀지 못한 풍월신의 모습이었다. 불월신은 그런 풍월신의 모습을 보고 함께 떠나기를 요청한다. 그건 어쩔 수 없겠지. 더이상 사람들의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선 그들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니까. 이렇게 사라진 신들이 얼마나 많을까. 예전에 나온 츠유카미 역시 그런 존재였던 기억이 아는데, 사람의 믿음이 줄어드니 점점 작아져 엄지공주 사이즈가 된 츠유카미는 자신을 믿어주던 마지막 사람이 세상을 떠난후 사라지게 된다. 역시 풍월신과 불월신도 나중에는 그렇게 될 운명이었겠지.

이 에피소드를 보면 나토리가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요괴는 퇴치해야만 할 존재로 여겼던 나토리가 불월신을 퇴치하기 보다는 풍월신을 제자리로 돌려 놓길 원하기 때문이다. 예전같으면 무조건 퇴치! 라고 했을 나토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나츠메 역시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가면서 많이 밝아지고 편안해진 모습을 보이는데 나토리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나토리의 경우 이미 너무 오랫동안 요괴를 증오해왔기 때문에 그게 쉽지는 않을지라도 말이다. 

변함없이, 아니 점점 더 요괴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나츠메의 성장담이자 인간과 요괴 사이의 우정, 믿음, 사랑등에 관한 따스한 치유계 만화, 나츠메 우인장. 다음엔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찾아올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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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지 않는 꽃 - 뉴 루비코믹스 935
쿄야마 아츠키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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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교 야구부 선후배 사이인 이마이와 히키다는 이마이가 졸업도 하기전에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야구부 연습을 하게 되면서 자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자 서로의 애틋한 마음은 더욱더 커져 전화로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히키다는 같은 반 여학생인 오카다로부터 뇌물이라며 발렌타인 초콜렛을 받게 되는데, 이마이는 그게 몹시도 신경쓰이는 눈치다. 히카다는 자기가 받은 초콜렛은 그저 의리 초콜렛이라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설렌 모양이다. 알고 보니 그 초콜렛은 그림 모델이 되어달란 부탁때문에 받은 것이지만...

오키나와 원정 훈련을 마치자마자 히카다를 만나러 온 이마이에게 부쩍 남성다움을 느끼게 된 히키다는 그런 남성다움을 동경하면서도 이마이의 사랑을 받으며 느끼는 자신의 소녀다운 감정에 당혹해한다. 결국 고민에 빠진 히카다는 야구부 은퇴까지 열심히 야구에만 매달리겠다고 선언하는데...

졸업생과 재학생의 차이는 무척이나 크게 다가온다. 하긴 나도 고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니 고등학생은 전부 꼬마로 보이더라. 우습게도. 게다가 자주 만나지 못하면 서로간에 틈이 생기기 쉬운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그냥 선후배 사이라면 별반 달라질 일도 없겠지만 연인사이라면 그 갭이 엄청나게 커보인달까. 고작 한살 차이뿐인데도 졸업반인 이마이가 더욱 남자다워졌고 어른스러워졌다고 느끼는 히카다의 마음은 바로 그런 것에서 온 것이겠지.

이마이 X 히키다 시리즈 제 3권이자 완결편인『시들지 않는 꽃』은 졸업을 경계로 나뉜 이마이와 히카다가 예전처럼 서로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을 잘 포착해내고 있다. 의리 초콜렛, 그림 모델, 그리고 '사귀자'는 고백을 받았다는 히카다의 말에 질투하기도 하는 이마이의 모습이나 이마이의 부쩍 달라진 모습을 보며 자신의 남성다움과 소녀다움 사이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히카다의 모습이 참 귀엽게 다가왔다. 물론 두 사람은 심각했겠지만, 보는 나로서는 참 귀엽기만 하더이다. 

오키나와로 원정훈련갔다가 돌아오자마자 히카다를 찾아오거나, 고백을 받았단 말에 학교까지 찾아와 히카다를 보고 싶어하는 이마이의 모습이 참 귀엽다. 이거 겉으로만 남자다워졌지 결국 애잖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이란 게 그런게 아니던가. 아무리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도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버리는 게 사랑아니던가. 그런 이마이의 감정이 표정을 통해 뒷모습을 통해 사소한 작은 몸짓 하나를 통해 전달된다. 

히카다 역시 자신을 만나러 왔지만 오카다와 함께 있는 이마이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오카다에게 질투도 하고. 자신은 결코 예쁘고 귀여운 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기도 한다. 그치만 이마이가 정말 좋아하는 건 히카다뿐인 걸. 떨어져 있으면 사소한 것도 불안이 된다더니 히카다나 이마이나 그 말이 꼭 들어맞는다. 

번외편으로는 히카다의 졸업과 성인식 장면도 나온다. 가쿠란(차이나칼라 교복)이나 야구복을 입은 히카다가 수트를 입은 모습을 보니... 아고 귀여워라. 근데 본인은 그게 무척 신경쓰이는 듯하다. 누가 뭐라면 어때. 이마이가 그렇게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는데, 히카다군!

예쁘거나 잘 그려진 작화라고 하긴 어렵지만 감성이 풍부하고 사소한 동작하나로 감정을 잘 표현해내는 쿄야마 아츠키의 그림은 따스하고 다정하다. 이마이와 히카다의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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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펫숍 오브 호러즈 Petshop of Horrors 8
아키노 마츠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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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 신주쿠 가부키쵸의 차이나타운으로 이사한 D백작의 펫샵.
꿈과 희망과 사랑, 혹은 욕망의 충족,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新 펫숍 오브 호러즈』8권에는 총 4편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데, 첫번째 에피소드는 D백작의 조부가 60여년전에 팔았던 펫을 되찾으러 가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댐건설 문제로 신구가 대립하는 요코미조틱(?)한 집안에서 66년전 사라진 시즈카가 종유석 동굴안에서 잠들어 있는 채로 발견된다. 백작과 동행한 라우 태자는 그녀를 깨우고 마는데... 사랑하는 약혼자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던 시간동안 변해버린 세상과 만나게 된 시즈카는 라우와 백작의 도움으로 꿈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녀가 마무리해야할 일이 있었으니...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D백작 버전. 아니아니 라우 태자 버전이려나?

두번째 이야기는 왕자님(깜장 고양이)가 저지른 깜찍한 짓때문에 혼란스러워진 신주쿠의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이다. 박물관에서 몰래 가져온 화석공룡알은 백작의 펫숍안에서 부화하게 된다. 펫숍밖으로 나간 새끼 공룡은 사람들에게 혼란과 공포를 안겨주는데... 

세상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은 너무도 많다. 그런 것이 발견되면 사람들은 혼란과 공포, 그리고 동시에 호기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당연히 있어야 할 장소를 잃어버린 존재는 결국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왕자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큰 교훈을 얻었겠지?

세번째 이야기는 겉으로 보기엔 결혼사기극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한 여성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욕망의 대립이란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 두 츠바키가 동인인물... 맞죠?? 웬지 자신은 없지만) 하나의 존재에 깃든 두가지 욕망. 결말부에서 뜨악...했다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라우 태자의 비서인 친과 관련한 내용이다. 늘 라우 태자 뒷편에서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친의 개인적인 이야기랄까. 오랜 기간 태자를 모시며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았던 친이 누군가의 감언이설에 휩슬려 개인적인 욕망에 눈을 뜨게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한 두번쯤 닥쳐오기 마련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잘 극복해냄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고 너무 휩쓸려 버린다면 결국 자기자신을 파멸로 이끌겠지만. 다행히 친은 잘 극복하고 자신의 자리로 잘 돌아온다.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라우태자에게 더욱 충성하는 인물이 되었을지도!?   

『新 펫숍 오브 호러즈』8권에서는 백작이 어떤 펫도 팔지 않는다. 그래서 가게가 유지가 되겠소, 백작? 그 땅값 비싼 신주쿠에서 말이죠. 뭐, 그러지 않아도 기본 손님들이 있으니까 별 문제 없으려나요... 좀더 신기한 것을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으음. 그런 의미에서 8권은 쉬엄쉬엄 쉬어 가는 느낌이었다.

백작은 변함없이 희미한 미소를 띄운 가면같은 얼굴을 보이지만, 스위츠 앞에서는 역시 어린아이같은 얼굴로 돌아가 버린다. 이게 D백작의 가장 큰 매력이겠지. 그러고 보면 예전엔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날카롭단 느낌이 많았는데, 점점 갈수록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라우 태자는 예전 시리즈에 등장한 미국 형사보다는 훨씬 괜찮은 캐릭터라 생각하고 있다. 라우 태자는 중국계 마피아이지만 그런데서 오는 무서움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귀염성이 점점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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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동화 - 전래동화 천 년 후 이야기
Horang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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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어린 시절에 읽을 때와 어른이 되어 읽을 때의 느낌이 무척 많이 달라진다. 어린 시절엔 순수하게 곧이곧대로 받이들일 수 있었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뭔가 께름칙한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인어공주만 해도 그렇다. 어린 시절엔 '이 얼마나 예쁜 사랑인가' 라고 생각했다면, 어른이 되어서 읽었을 땐 자신을 구해준 인어공주도 못알아 보고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왕자를 보면서 이런 쳐죽일 X(또 과격한 표현이! 네, 그렇습니다. 전 이런 면에서 무척 과격해집니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달까. 일종의 판타지가 와장창하고 무너져 내린 것이겠지.

그런 면에서 보자면『천년동화 - 전래동화 천 년 후의 이야기』는 기존의 판타지를 재구성하고 현실성을 덧입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의 사고방식에 발맞춘 색다른 판타지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新 견우직녀전 - 엇갈린 시선
어린 시절엔 견우직녀가 일년에 한 번 칠석때만 만날 수 있는 연인들이란 게 무척 가슴아팠다. 하지만 그들이 일년에 한 번 밖에 만날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견우직녀에 대한 판타지가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자기들이 할 일은 안하고 놀러만 다녀서 그렇게 되었다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야,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름답지 않는 이야기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이런!

견우직녀전을 새롭게 구성한 '크로우맨'은 이름없는 만화가인 견우와 출판사에서 일하는 직녀의 이야기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며 작품을 그리지만 번번히 출판사에서 퇴짜맞던 견우는 직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이 그려왔던 만화를 과감히 포기하고 대중들의 수요에 발맞춘 만화를 그리게 된다. 그렇게 그녀 곁으로 한발짝 더 다가섰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랑이 아름답다고 믿을 수 있는 건, 사랑이 기쁨이요, 행복이라고 믿을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시선을 마주할 때이지, 서로의 시선이 엇갈릴 때는 아니다. 견우는 직녀를 바라봤지만 직녀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말부를 보면 견우의 사랑은 근본적인 지점에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라 나온다. 그것은 두 가지 착각이었다.

新 우렁각시전 - 이미 사랑이었다
난 우렁각시전을 보면서 나도 우렁각시가 되고 싶다기 보다는 나에게도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다. (본인은 여자입니다, 쿨럭) 살림이나 요리는 관심도 없고 만사 귀찮아서 누군가 대신 해줬으면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이야기는 사랑의 관점보다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비뚤어진 어린이였습니다, 전)

새로운 우렁각시전은 학창시절 집단따돌림으로 결국 학교를 중퇴, 히키코모리로 살고 있는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둘은 채팅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고, 남자는 여전히 대인기피증때문에 여자를 만나기를 꺼려하지만, 여자는 조금씩 그의 곁으로 다가오게 된다. 더이상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남자는 그 여자를 멀리 하기 시작하는데...

참 아이러니한 사랑이었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후에야 사랑이 시작되었다니.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미 이 남자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기억을 잃은 후에도 다시 사랑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新 선녀와 나무꾼 - 사랑이라 쓰고 집착이라 읽는다
어린 시절엔 잘 몰랐지만 어른이 되어 읽은 선녀와 나무꾼은 어떻게 보면 남성의 이기적인 욕망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나무꾼은 선녀의 날개옷을 감춰 그녀의 발을 지상에 묶어 버렸지만, 나중에 그녀가 날개옷을 발견했을 때 다시 천상으로 날아가 버린 것은 결국 나무꾼이 선녀의 마음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증거였으니까. 

선녀를 사랑하는 나무는 오랫동안 사귀어온 그녀가 결혼한다는 소리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나무는 채팅사이트에서 만난 deer80의 충고대로 그녀의 약점을 잡아 그녀를 붙잡게 된다. 약점을 잡아 사랑하는 이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욕심에서 이미 이 사랑은 빗나갈 대로 빗나가 버렸다. 결말이 어떻든 이 사랑은 비극일 수 밖에 없다. (작가님의 생각과 전 반대입니다)

新 박씨부인전 - 당신은 이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박씨부인전은 재미있게도 성형이란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 못생겼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변호사가 된 한 여성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수십번의 성형을 거듭한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낳은 희생자처럼 보여도 또한편으로는 새로운 인간상의 구현이기도 하다.

전래동화는 해석하기 나름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도 능력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지만 현대적으로 재구성될 여지가 무척 많다는 걸 여기에 실린 작품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이런 식의 해석도 가능하구나 싶은 느낌이랄까. 작화부분을 보면 색감이 무척 아름다웠는데, 특히 그것은 배경부분에서 특히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처럼 수채화 느낌이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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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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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이 발달하면 인간은 더욱 이성적인 존재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이성의 껍데기로 자신의 야만성을 교묘히 가리는 존재가 되는 것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오는 강력범죄 뉴스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지능범 사건이라는 사기사건 같은 것도 늘어났지만 반대로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현대 사회이다. 교묘하게 증거를 인멸하고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며 범행강도를 점점 더 높여간다. 이런 사건이 늘어난다는 것은 범인이 피해자를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 물화(物化)된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이 작품 속 범인이 모든 것을 한편의 연극처럼 여겼듯이 말이다.

주택가의 한적한 공원에서 여성의 팔 한쪽과 핸드백이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하는『모방범』은 피해자의 가족, 범인, 가해자의 가족, 경찰 등 다양한 사람들을 내세워,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입장에서 범죄를 맞닥뜨리게 되고 그에 의해 무너지고 변해가는 삶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범인의 동기나 범행방식 등이 중요시되지 않는 건 아니다. 범행동기와 범행방식을 통해 범인의 삶과 범인의 심리에 대해 파고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성으로 볼 때 범행에 대한 추리와 범행동기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의 가족

작품속에서는 다양한 피해자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많은 피해자의 가족이 존재하게 되지만 포커스를 받는 인물은 공원에서 발견된 핸드백의 주인인 후루카와 마리코의 할아버지인 아리마 요시오와 핸드백의 첫발견자이자 예전에 일어났던 일가족 참살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유족인 쓰카다 신이치 두 사람이다.

신이치는 자신의 가족이 몰살당한 것은 자신의 탓이라 자책하며 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신이치는 또다른 살인사건의 증거가 버려진 현장을 발견하게 되니, 정말 일반인이라면 평생 겪어도 되지 않을 일을 연속으로 겪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신이치를 괴롭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범인의 딸이 수감된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신이치를 집요하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다른 일같으면 차라리 잊어버리려는 노력이라도 하겠지만, 자신의 가족이 참살당한 일을 잊을 수 없는 신이치는 괴로움에 번민한다.

요시오 할아버지는 귀한 손녀딸이 행방불명된지 3개월에 돌아온 건 핸드백 뿐. 게다가 경찰의 미숙한 처신에 마리코의 엄마이자 자신의 딸인 마치코마저 정신착란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마리코가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듯 했다. 자신의 딸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담대하게 처신할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그런 반면 마리코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마리코와 별거중인 시게루는 이 상황에서 이혼까지 요구하고 나오는 것이다. 요시오의 고통은 범인의 전화로 가중된다. 요시오를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 하지만 요시오는 침착함과 냉정함으로 범인의 도발에 쉬이 넘어가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해 나간다. 하지만 세상은 요시오가 희생자의 가족이란 것을 알고 그들 피하기 시작한다. 그 근처에라도 가면 역병이라도 옮을 듯이. 그 범죄가 자신에게 옮겨올까봐 걱정이라도 하듯이. 맛있는 두부를 만드는 두부 가게 할아버지에서 단숨에 희생자의 가족이란 낙인이 찍혀 더이상 일반인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주위 사람이 갑자기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일은 일반인에게 너무도 갑작스럽고 익숙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피해자 본인이나 유족은 그런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매뉴얼이 없으니까요. 악의를 품은 인간이 친절을 가장하고 접근해와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늘 사기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권 / 269p)

뿐만이 아니다. 손녀를 죽인 범인에게 희생당한 또다른 희생자의 가족들을 이용해 사기를 치려는 사람까지 나타난다. 희생자의 가족의 고통보다는 그들이 고통때문에 사리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것이다.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들 자신의 마음이야. 정말 웃기는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래. 난 그게 싫어. 난 아무리 자신을 책망해도, 조금씩 죽어가도, 가만히 이를 악물고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인간이 아니야. 이제 더이상은 싫어." (3권 / 280p)

모든 범죄 중에서 가장 잔혹한 범죄는 살인이다. 요시오의 말처럼 살인은 피해자 뿐만 아니라 그 가족마저 철저히 무너뜨린다. 신이치가 자신의 가족참살에 대해 떨칠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듯이 요시오 역시 손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요시오는 진범 X가 잡힐 때까지 잘 버텨오지만 진범이 잡힘과 동시에 무너져 내린다. 그를 지탱하고 있던 축이 일시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때 오열하던 요시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진범이 잡혀도 마리코가 돌아올 일은 영영 없기 때문이다. 이게 가장 큰 고통이 아닐까. 범인이 밝혀져도 범인이 잡혀도 범인이 사형된다고 해도 희생된 가족은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피해자 혹은 희생자

범인들에게 농락당하고 살해당한 여성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납치되었고, 감금되었고, 고통받다 살해당했다. 이는 범인의 이야기에서 자세히 나오는데, 이 희생된 여성들은 여러번 살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여자에게 있어 강간은 살인이나 다름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범인 중 한 명인 구리하시 히로미는 여성들을 강간하고 사진까지 남겼다. 피해자 여성들은 살아 남기위해 그 모든 것을 이 악물고 견디지만 결국 용도가 다한 물건처럼 페기처분되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을 다시 한 번 살해한 것은 그 뉴스를 시청하는 대중들이다. 살해당해 버려진 여성들에겐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 사람들은 왜 여성이 피해자일 때 그토록 잔인해지는 것일까. 특히 원조교제를 한 사실이 드러난 한 피해자 여성의 경우 범죄의 희생자가 된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여겨진다. 당연히 살해당한다? 도대체 누구의 논리이기에 이런 논리가 나온 것이지? 세상에 당연히 살해당하는 사람은 없다. 그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인생을 살아 왔건 당연하게 희생되어야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세상의 눈은 그렇지 않다. 뭔가 남자관계가 복잡했으니까 그럴 것이고, 만약 그런 사실이 드러나지 않으면 멋대로 상상하기도 한다. 뭔가 드러나지 않는 게 있을거야, 라고.  

"우리들 여자는 거의 항상 살해당하는 측에 있어." (3권 /300p) 

위 문장을 보고 난 여러가지 의미의 살해를 떠올렸다. 직접적으로 목숨을 빼앗기는 것도 살해이지만, 강간을 당하는 것도 일종의 살해이다. 또한 매스컴과 대중들의 입방아에 올라 씹히다 버려지는 것도 살해이다. 이럴 경우 자신에게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살까지 하는 피해자 여성들이 많은데, 이런 건 매스컴과 대중에 의한 간접살해라고 말하고 싶다.  

용의자와 가해자의 가족

가해자의 가족 이야기는 다카이 가즈아키의 여동생 아야코와 신이치의 가족을 살해한 범인의 딸인 히구치 메구미로 집중된다. 나중에 다카이 가즈아키는 범인이 아니라 밝혀지지만, 일단 용의자 혹은 범인으로 낙인찍힌 순간 그 사람은 범인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나중에 아무리 정정보도가 나가도 사실은 뒤바뀌지 않는다. 진실은 안개 너머에 존재하고 상상이 덧입혀진 사실만 존재하는 것이다.

처음 아야코가 등장했을 때 내가 생각한 아야코는 꽤나 강한 여성의 이미지였다. 어린 시절부터 구리하시 히로미에게 이용당하는 오빠를 지켜주려 했고, 자신의 오빠가 범인으로 몰리자 그것을 해명하고 의혹을 풀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세상의 눈앞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아야코는 히구치 메구미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야코가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은 다카이 가즈아키와 구리하시 히로미와 동급생이었던 아미가와 고이치가 등장하면서이다. 아미가와 고이치는 아야코의 마음을 완전히 휘어잡고 그녀의 생각이나 행동마저 조종하기 시작한다. 대중의 무서움을 맛본 아야코에 게 있어 지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상대는 아미가와 고이치뿐인 것이다. 무너져가는 아야코를 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아미가와 고이치가 누군지도 모른채 그렇게 기대다니, 마음같아서는 책속으로 뛰어들어 정신차리라고 해주고 싶었다. 워낙 힘겨운 일을 겪다 보니 아야코는 어린 시절 자신이 만난 아미가와 고이치가 어떤 존재였던지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아야코는 결국 이용만 당한채 버려졌다. 

한편 신이치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메구미는 이기적인 것의 모든 것을 모아놓은 부류다. 자신의 아버지가 범행을 저지른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에 고개를 휘휘 저을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석방되면 외국으로 여행을 갈 꿈을 꾸는 모습에 이 아이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용의자 혹은 범인

처음에 범인은 구리하시 히로미와 다카이 가즈아키로 보도되지만 다카이 가즈아키는 범인이 아니다. 다카이 가즈아키는 어린 시절부터 구리하시 히로미에게 이용당해왔다. 하지만 자신이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라 선천적인 질병때문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후 부쩍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고, 그것은 나중에 구리하시 히로미를 구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구리하시 히로미는 어둠에 깊이 발을 담궈 버렸고, 그 결과 다카이 가즈아키는 범인 X의 새로운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다카이 가즈아키는 어찌보면 무척 안타까운 인물이지만 결국 자신의 가족을 '범인의 가족'으로 만들어버린 인물이기에 그에게 동정이 가지 않는다.

구리하시 히로미는 자신의 누나의 망령에 지배당하면서 살고 있었다. 태어난지 1개월만에 죽어버린 누나는 어머니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에 히로미는 그에 대한 반발로 여성들을 납치, 감금, 고문, 살해한 것으로 나온다. 히로미는 누나의 망령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히로미의 부모, 특히 어머니의 경우에 히로미를 정신적 · 신체적으로 학대한 것은 맞지만, 그런 사정이 있다고 해서 히로미의 범행 동기에 대해 절대 수긍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계획한 브레인은 범인 X이다. 그 역시 나중에 밝혀지지만 남다른 집안 사정등 어두운 과거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행을 저지를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은 모든 범행을 자신의 훌륭한 연극 한 편이라 생각했고,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 경찰, 대중 모두를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여겼다.

"진정한 악이란 이런 거야. 이유 따위는 없어. 그러므로 피해자는 자기가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지 모르는 거야. 원한, 애증, 돈, 그런 이유가 있다면 피해자도 납득을 할 수 있겠지. 자신을 위로하거나 범인을 미워하거나 사회를 원망할 때는 그 근거가 필요한거야. 범인이 그 근거를 제시해주면 대처할 방법이라도 있지. 그러나 애당초 근거 같은 건 없었어. 그거야말로 완벽한 '악'이야." (2권 / 203p)

그는 자신의 범행을 순수하게 즐긴다. 세상이 너무 재미없었기 때문에, 자신은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목받고 싶은 생각에서 모든 범죄를 기획했다. 요즘 범죄 중에는 이런 무차별적인 범죄도 많이 일어나는데 범인 X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무대에만 집중한 나머지 자신이 실패할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관찰자 혹은 구경꾼들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는 관찰자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을 취재해 르포를 쓰는 것, 그것이 그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난 시게코를 보면서 또다시 기자란 사람들에 대한 구역질을 느꼈다. 그녀가 쓰는 건 이야기이지 결코 진실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취재를 바지런히 한다 해도, 그녀가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쓴다 해도, 그녀가 쓰는 문장에서 사람들의 이미지는 재창조되고 사건은 또다른 옷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주위의 눈이란 그런 것이다. 진실이 자신에게 직접 닥쳐와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는 한, 인간은 그것과 직면할 수 없다. 자신에게 가장 편하고 안락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설득력을 지닌 해석을 '진실'로 채택하는 것뿐이다. (3권 / 377p)

시게코나 매스컴 관련자들, 그리고 사건의 추이를 바라보는 대중들은 주위의 눈일 수 밖에 없다. 내가 겪지 않은 이상 그 사건에 대해서는 상상할 뿐이고, 나름대로 납득할 결론을 내버리는 것이다. 나 역시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주위의 눈이 될 수 밖에 없다. 나나 나와 관련된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발표된 사실들을 납득해 버린다.

경찰은 '용의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매스컴은 '범인상'을 추측하느라 바쁘다. 사람들은 겁을 먹으면서도 다음 희생자가 누구인지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 (2권, 95p)

끝이자 또다른 시작

이 모든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신이치가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을 직시하고, 메구미의 시선을 피하지 않게 된 것처럼, 마치코가 서서히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을 보이는 것처럼, 요시오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다시 일어난 것처럼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 갈 것이다. 물론 그 상처는 희미해질 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꽤나 오래전에 카피캣(Copycat)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시고니 위버 주연의 영화로 모방범죄에 관한 영화였는데, 모방범죄가 일어나는 하나의 패텬을 보여준 영화였다는 기억이 난다. 그후에 미드에서 본 모방범과 모방범에 관한 이야기들에서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수되는 모방범, 감옥에서 또다른 모방범을 양산하는 수감자 등에 관한 내용이 주로 등장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이 끔찍한 연쇄살인범이 저지른 범죄가 또다시 부활할 것이란 생각에 등줄기가 오싹해져왔다. 그리고 그런 범죄는 또다시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길 것이다.

<1~3권 통합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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