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스웨덴 내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여성인신매매 및 성매매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던 다그 스벤손과 미아 베리만 살해 사건인 엔셰데 사건을 비롯해 변호사 비우르만 살해 사건까지 3중 연쇄살인범의 용의자로 지목된 리스베트를 찾기 위해 세 팀의 조사팀이 꾸려졌다. 한팀은 경찰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또 한 팀은 아르만스키의 팀원, 나머지 한 팀은 잡지 밀레니엄의 미카엘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각각 수사를 진행하되 아르만스키의 팀원은 경찰과 공조수사를 하게 된다.

경찰팀은 리스베트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미리암 우(밈미)를 심문하며 리스베트에 대해 또다른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팀장인 부블란스키가 없는 동안 한스 파스테가 끼어들어 그녀를 모욕하는 발언을 한다. 또한 리스베트와 친분이 있는 여성락밴드 이블 핑거를 찾아가 또다시 난장판을 친다. 도대체 이런 남성우월주의 마초들이란, 정말이지 머리 속이 똥으로만 가득하다. 모욕적인 언사는 물론이고 상대방의 인격까지 침해하는 발언을 하는 그를 보면서 이가 박박 갈렸다. 하지만 그의 방법은 경찰로서는 용인되지 않는 것이다. 경찰 동료인 소니아에겐 빰을 한대 맞고 이블 핑거의 리더였던 아가씨에게 한소리 듣는 걸 보고 속이 후련해지긴 하지만 여진히 화가 난다.

한편 리스베트의 전 직장동료인 니클라스 에릭손은 리스베트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어 미리암이 돌아와 심문을 받고 있다는 정보를 싸구려 타블로이드 신문에 돈을 받고 팔아 넘긴다. 경찰과 공조 수사도 하겠다, 더러운 돈 좀 벌어보겠단 심산이겠지. 이건 특종 중의 특종이니까. 게다가 여자 경찰인 소니아에게 모든 걸 뒤집어 씌우려는 작당을 하는 걸 보니 속에서 열불이 나더라. 물론 나중에 이 모든 것이 드러나 경찰수사에서도 아르만스키의 회사에서도 잘리게 되지만, 그동안 이 인간이 저지르고 다닌 추접한 짓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리스베트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무얼 하고 있었을까. 리스베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숨어 지냈다. 예전 베네르스트룀의 돈을 횡령하는 동안 변장한 신분으로 살아 갔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3중연쇄살인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뉴스가 나오고 미리암이 경찰에 심문을 당하고 모욕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슬슬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다. 리스베트는 미카엘과는 컴퓨터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미카엘에게 살라라는 인물의 중요성에 대해 귀띔한다. 여성인신매매 보다 살라라는 인물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미카엘의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이야기에 당혹해 하지만 리스베트가 헛된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름대로 살라라는 인물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각각의 팀이 수사를 진행해도 좀처럼 리스베트의 거취가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미리암이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리암의 납치를 목격한 복서 파올로 로베르토는 납치범의 뒤를 쫓아간다. 그 납치범은 맙소사. 예전에 리스베트가 목격한 남자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 파올로는 이 남자가 리스베트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모르지만, 미리엄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걸 목격하고 미리엄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 2미터가 넘는 키에 단단한 주먹, 그리고 맷집까지. 파올로와 미리엄은 목숨을 건 사투끝에 이 남자를 물리치고 도망가는데에 성공한다. 그후 파올로의 신고에 의해 발견된 그 창고 근처에서 시신이 발굴되고 리스베트는 용의자선상에서 제외된다.

미리엄과 파올로가 폭행당한 사실을 알게 된 리스베트는 이젠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이 모든 사건의 뒤에 있는 살라와 결착을 보기로 한 것이다. 리스베트와 살라 사이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기에 이렇듯 서로를 증오하는 것일까. 사실 살라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난 '헉'과 '헐'이라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이 살라가 리스베트가 말하는 '모든 악'과 관련된 인물이었으며, 리스베트의 과거와 가장 밀접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살라의 정체를 알고 한 번 놀라서 그런지 금발 거인의 정체가 나왔을 땐 '흠'이란 반응만 나왔다. 리스베트가 13살때 겪었던 일. 그것은 리스베트의 인생을 13살에서 멈춰버린 사건이었다. 리스베트가 제복을 입은 사람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 이유도 이 일을 통해 밝혀진다. 이것을 보니 리스베트의 반사회적 행동이 납득이 갔다고 할까. 이런 일을 겪으면 당연히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은 스웨덴의 사회복지문제도 은근슬쩍 꼬집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리스베트의 말만 들어줬다면, 리스베트의 인생이 그토록 외롭고 아프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리스베트는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을 증오한다. 리스베트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이 날아오면 주먹을 내지른다. 리스베트는 먼저 상대를 건드리는 일이 없지만, 누군가가 그녀와 그녀의 주변에 손을 대면 그 상대를 절대 그냥 보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리스베트가 폭력적인 여성이란 것은 아니다. 주로 해킹을 통해 사회적 매장을 시키는 정도의 일을 하지만 상대가 폭력적으로 나오면 리스베트 역시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 뿐이다. 그게 리스베트의 룰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스베트와 살라 사이엔 해결해야 할 오래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리스베트는 자신의 목숨이라도 걸 상태였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 위해 살라에게로 향했다. 오, 리스베트.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서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밀레니엄 2부『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여성인신매매과 연관된 무기밀매, 마약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스웨덴 사법기관에 대한 비판, 정보를 팔아 넘기는 사람과 그 정보를 이용해 싸구려 가십거리 기사를 쓰는 기자, 리스베트가 과거에 겪었던 사건과 관련해 사회복지전반의 문제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살라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솔직히 말해서 너무 많이 앞서나간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즉 살라의 과거와 리스베트의 과거가 그렇게 연결되는 점이 스웨덴 전체 안보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건 너무 황당한 확대처럼 느껴지는 점이 분명있었지만 리스베트에 대한 많은 의문점이 풀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스웨덴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파헤치는 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도 신경쓰인다.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종 일기 세미콜론 코믹스
아즈마 히데오 지음,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아즈마 히데오라. 작가의 그림은 낯이 익은데 실제로 작품을 접한 적은 없다. 아마도 이 단행본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간되는 작가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솔직히 말해 평소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을 작풍인데, 이 작품에는 묘하게 끌렸달까. 뭔가 엄청난 것을 내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예감은? 적중! 역시 만화는 작화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단 걸 다시금 되새겼다. (아, 그렇다고 해서 작화를 아예 무시하고 싶은 사람은 아닙니다)

실종일기.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스스로 실종상태에 돌입했던 아즈마 히데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오랫동안 만화가 생활을 해왔던 그가 갑작스런 충동에 이끌려 연재하던 작품을 모두 내팽개치고 잠적한다. 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일단은 자신의 만화가 생활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상태였다는 것만은 말해 둬도 좋을 듯 싶다.

어쨌거나 갑작스럽게 모든 연재를 중단한 작가는 노숙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노숙자 시기의 생활은 <밤을 걷다>편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주택가 뒷편에 있는 야산에 터를 잡아 살게 된 작가는 낮에는 숲속에 숨어있고, 밤에 음식을 구하러 다닌다. 주로 쓰레기통을 뒤져서 음식물 쓰레기로 나온 것을 주워먹고 담배는 꽁초를 주워 피우고, 술은 병에 남은 걸 모아서 마시는 등 나름대로 노숙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때로는 추위에, 때로는 배탈때문에 고생한 일도 많지만 어느 정도 지나자 노하우가 쌓여 나름대로 즐거운(?) 노숙생활을 즐긴다.

하지만 어느날 밤 경찰에게 붙잡혀 경찰서에 갔다가 신분이 밝혀져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후 한동안 또다시 작업에 매달리지만 또다시 원고를 펑크내고 달아난다. 또다시 시작된 노숙생활은 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충실해진다. 그렇게 얼마를 살았을까. 이번엔 우연히 만난 사람의 소개로 가스공사 노동을 시작한다. 새로운 집도 생기고 직장도 생기고, 그러면서 가스 공사 일에도 재미를 붙여가게 된다. 가스 공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리를 걷다>편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만화에서 도망친 작가가 가스회사 홍보만화를 그렸다는 것이다. 몸속을 흐르는 만화가의 피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가스일을 통해 육체노동의 즐거움을 배워 한동안 일을 했던 작가는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데뷔작부터 만화가 생활을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을 읽다 보니 만화가란 정말 힘든 직업이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달까. 콘티를 짜는 일이라든지, 출판사와의 협상문제라든지 하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그보다는 만화가란 정말 고된 일을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많이 연재할 때는 한달에 140장 정도를 그렸다는 말에 혀를 내둘렀다. 아내가 어시로 일을 해도 둘이서 그만은 분량을 감당하다니. 만화가들이 연재를 펑크내는 이유도 알겠단 생각이 들었달까. 인기 만화가일수록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건 당연할테고 그렇다 보면 자연히 일도 많아지겠지. 게다가 자신이 그리고 싶은 작품보다는 출판사가 원하는 걸 그려야 한다는 불만도 쌓이겠고. 하여튼 작가 자신이 연재하던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은 분량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만화가의 고된 노동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의 이야기인 <알코올 중독 병동>은 말그대로 알콜중독과 치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작가가 알콜의존상태를 넘어 중독상태가 되어 환각이 보이고, 자살충동을 느끼는 부분에서 그려진 그림이 무척이나 섬뜩했다. 동글동글한 그림인데 이렇게 무섭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다른 부분에서도 감탄을 했지만, 이런 부분이 특히나 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달까. 고작 4등신 정도의 인물이 등장하는 코믹한 그림체인데 깊은 인상을 준다. 스토리 역시 밝고 가볍게 진행되지만 실제로는 꽤나 무거운 이야기란 것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는 모두 작가가 직접 체험한 일들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는 것도 힘들텐데 어두운 경험을 코믹하게 그려내기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 뒷편에 수록된 대담에 잘 나와 있는데, 작가는 "자신을 제3자의 시점에서 보는 게 개그의 기본입니다" (196p)라는 말로 일축한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읽었다가 감탄을 하면서 내려 놓은 게 바로 이 작품이다. 자신을 개그의 소재로 삼고 있지만 자신을 비하하는 내용은 없다. 이런 건 정말 대단한 재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사회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따로 존재하며 글쓰는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의 글을 분업해서 쓰고 있다. 하지만 근대까지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동시에 공부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서양의 경우 철학자들이,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의 양반계층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 들어서 서민문학이 태동하고 발달하긴 했지만, 근간을 이루는 것은 역시 양반들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조선시대 양반들의 글은 딱딱하고 따분하며 상징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평을 받지만 그 시절에 남겨진 모든 글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에 등장하는 이옥과 김려의 경우 당시 유행하던 당송체보다는 패관소품을 즐겼던 인물들로 그들이 남긴 글 역시 당대의 딱딱하고 고루한 글들과 다르다는 평을 받고 있다. 18세기 후반의 문인이었던 그들의 삶과 우정, 그리고 그들의 남긴 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픽션이 절묘하게 조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유배에서 돌아와 부여 현감으로 봉직하고 있는 김려는 어느 날 이옥의 아들 이우태의 방문에 잊고 싶던 과거와 조우하게 된다. 성균관 수학 시절의 친우였던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당송체보다는 패관소품같은 문장형식을 즐겨 썼다. 하지만 왕인 정조는 패관소품에 대해 강력한 금제령을 내렸었고, 이에 불복한 이옥과 김려는 강이천 유언비어 사건에 휘말려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 시절의 기억은 김려에게 있어 지우고 싶은 과거였다. 하지만 이우태의 등장으로 다 아물어가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우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김려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옥의 영혼과 마주하게 된다. 유배를 가던 당시의 이야기며 유배지에서의 생활 등에 대한 글을 이옥과 함께 나누게 된 것이다. 친우였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서로 멀어지게 된 후 김려의 마음은 늘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김려가 남긴 글들을 읽으며 과거와 마주하게 되고, 잊고 싶은 과거의 무거운 짐과 상처, 그리고 친우였던 이옥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떨쳐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김려는 그 당시 자신이 어떤 글을 썼는지를 기억해 내고, 그 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유배지까지 가는 여정은 죽을 정도로 힘들었고, 유배지에서의 생활 역시 고달팠으나 그곳에서 나눴던 사람들과의 정이 그를 버티게 해줬건만 유배가 끝나자마자 그것을 모조리 과거 속으로 집어 넣고 잊으려 했던 김려는 자신이 지금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뒷간 갈 때 마음과 다녀온 후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한때는 친우였지만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 친구를 외면했던 자신의 모습, 유배지에서의 고달픈 삶속에서 나눴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 그리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함께 나눴던 것들을 잊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삶 한부분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이우태의 방문으로 잊고 지냈던 이옥의 글을 읽고, 자신이 유배기간동안 썼던 글을 다시 읽음으로써 김려는 자신이 예전에 추구했던 글쓰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또한 진정한 글이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비록 이들의 글이 양반이라는 신분을 뛰어 넘지는 못한 글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이들은 18세기 조선시대의 글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사람들이란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김려와 이옥이 쓴 글은 본문 곳곳에 인용되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특히 유배지로 가는 여정 동안 김려가 남긴 일기와 유배지에서 쓴 다양한 글들은 그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김려가 이제껏 자신이 모르던 다양한 삶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들을 소상하게 보여준다. 특히 정을 나누던 연희에 대한 사모의 마음이라든지, 한양에서는 구경하지도 못하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들은 책읽기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또한 이옥의 섬세한 관찰이 돋보이는 글들을 비롯해 본인의 개성이 담뿍 담긴 글을 읽다 보면 이게 정말 조선시대에 씌어진 글들인가 싶을 정도로 흥미롭다. 끝끝내 자신의 붓을 꺾지 않았던 이옥과 한때는 자신의 붓을 꺾고 세상이 원하던 글을 쓰던 김려가 그후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약간의 판타지적 설정,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다양한 흥미점을 창출해낸다.

또한 책 뒷부분에는 정조의 문체반정과 강이천 사건에 대한 해설이 덧붙여져 있는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후반의 정치, 사회, 문화적인 맥락을 짚어볼 수 있는 부분으로 이 소설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변화란 것은 대개 설렘과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요즘 시대의 경우 새롭다는 것이 설렘이란 감정을 많이 동반하겠지만, 이들이 살던 시기는 변화보다는 현상태의 유지가 더 중요했던 시기였다. 그러하기에 세태와 맞지 않는 이들의 글이 배척되고 외면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뜻인즉슨 흰봉선 따위 세상에 하나 쓸모는 없어도 제멋에 잘 살더란 이 말 아니겠소? (21p)

이옥이 쓴 글, 김려가 쓴 글은 지금은 멋진 글이라 평해지지만 당시에는 쓸모없는 글이었고, 정조의 이념에 반하는 글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던 이옥은 흰봉선화처럼 제멋에 살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그들에게 있어 그 길은 멋진 길이었고, 멋진 삶이었고, 멋진 글이었으니, 이 또한 멋진 일 아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로헤도로 Dorohedoro 14
하야시다 규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완결편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이제껏 수수께끼에 싸여 있던 것들이 마구마구 튀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다.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눈 보스의 존재이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할 듯 싶다.

십자눈 보스에 의해 궤멸 직전까지 갔단 엔 패밀리는 터키가 소유한 숲속 땅 밑에서 근근히 살아가며 반격을 준비하는 중이다. 노이의 마법으로 엔의 시체는 복구시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기 때문에 엔을 완전히 되살리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엔 패밀리는 십자눈 조직이 점거하고 있는 엔의 저택에 후지타를 보내기로 한다. 마법 능력은 부족하지만 그러하기에 오히려 안전한 것이 후지타니까. 모두들 후지타를 귀찮아 하는 것같으면서도 이럴 때 보면 같은 패밀리라고 많이 챙기는 모습이 훈훈~~ 후지타, 임무 수행 잘 하고 와. 에비스도 기다리니까.

니카이도는 여전히 자신의 마법을 완벽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여전히 악마 수행중이다. 니카이도가 자신의 마법을 구현하려면 일단 평생 쓸 마법 연기 분량을 한 번에 만들어 내야 한다. 카와지리는 니카이도의 마법을 끌어 올리기 위해 또하나의 방편을 준비하는데, 그것은 성공확률 반반의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니카이도가 누구더냐, 자신의 트라우마를 멋지게 극복하고 큐브를 완성한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야스모의 운명을 되돌리는 데에 성공하지만, 마법연기 분출이 십자눈 보스의 눈에 띄고 만다. 이거 위험한데. 십자눈 보스가 이걸 놓칠리 없지.

십자눈 조직은 보스의 명령을 받아 마법사들을 사냥하는 중이다. 말이 좋아 사냥이지 피의 살육, 도륙이다. 도대체 지금도 그렇게 센데 얼마나 더 많은 마법사를 희생시켜야 하나. 정말이지. 이런 상황에서 파이가게 주인인 탄바 역시 사냥감으로 점찍힌다. 탄바는 십자눈 무리와 싸우지만 보스가 나타나면서 전세 역전. 그러나 키리온과 후쿠야마의 도움으로 간신히 참수는 면하지만 어떻게 봐도 이들의 마력으로 보스에게 대항하기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후쿠야마가 십자눈 보스의 칼을 파이로 만들었을때 키리온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데... 

아, 드디어 나왔다. 그리고 모두가 목격했다. 십자눈 보스의 또다른 모습을. 십자눈 조직원들은 정말 충격받았겠지. 나야 대강 짐작하고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말이지. 그러나저러나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끝나버리면 도대체 다음엔 어떤 전개가 펼쳐지려나. 

아직 리스가 건 저주도 남아 있고, 십자눈 보스의 마력도 훼손되지는 않는 듯 하다. 겉모습만 달라졌을 뿐이지. 그러기 때문에 마지막 완결권인 15권의 역할이 아주 중요할 듯 한데,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궁금하다. 하야시다 센세, 멋지게 마무리해주셈~~ 



『도로헤도로』14권의 부록 캐릭터 팝업은 파이 가게 싸장님 탄바다. 탄바는 생긴 것도 무시무시하고 입도 걸지만 사실은 마음이 아주 따뜻한 캐릭터다. 제발 그 마스크만 좀 벗어주면 좋으련만... 마법사들은 도대체 저런 악취미의 마스크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5-27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공사 정말 대단하다능... 저는 완결나면 봐야겠어요.

스즈야 2011-05-30 22:12   좋아요 0 | URL
담권이 완결이예요... 6월에 나온다는데, 엄청 기대중입니다. 원래 이런 만화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건 완전 제 취향.. 쵝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1 밀레니엄 (뿔)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36년전 발생한 대재벌 방예르家의 하리에트 방예르 실종 미스터리가 해결되고, 부정한 기업가 베네르스트룀의 비리에 대한 폭로 기사가 나간지 벌써 1년이 흘렀다. 환상적인 팀웍을 보였던 미카엘과 리스베트 사이에선 로맨스도 진행되었지만 결국 그 로맨스는 꽃도 피우지 못한채 싹으로 시들어 버렸다. 그럼 그동안 리스베트는 어디로 간 것일까. 베네르스트룀의 부정 사건을 파헤치며 그가 은닉한 재산을 몽땅 자기 통장으로 넣어둔 리스베트는 돈에 있어서는 여유가 넘치기 때문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동안 스웨덴에서 떠나 있고 싶은 생각도 들었겠지. 첫사랑이자 처음으로 마음을 연 상대에게서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리스베트였으니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밀레니엄 두번째 시리즈『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1권은 리스베트의 여행,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리스베트의 모습과 또다른 폭로 기사를 준비하는 미카엘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미카엘이 이번에 준비하는 폭로기사는 여성인신매매와 관련한 것이다. 인신매매조직은 점조직처럼 보여 추적하기 힘들고 여성의 성을 사는 남성들 역시 판사나 경찰등의 공무원을 비롯해 기자 등 꽤나 유명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이 기사가 나오면 달가워할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란 건 분명하다. 또한 인신매매조직이란 것 자체는 별거 없어 보여도 파고 들면 마약거래나 무기밀매 조직과도 연관되는 등 일종의 화약고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조직을 건들든 여성을 샀던 사람을 건들든 간에 건드리면 좋은 꼴을 못본다는 거지.

한편, 리스베트의 현재 후견인인 변호사 비우르만은 리스베트에게 이를 박박 갈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고 생각했던 리스베트가 그런 반격을 해올지 꿈에도 몰랐을테니까. 본인의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남탓만 하는 꼴이라니. 이런 인간들이 밖에 나가면 존경받는 사회지도층의 얼굴을 하고 있지. 추접한 인간.

그리고 이번에 역시 흥미로운 인간들이 새로 등장한다. 인신매대단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하고 있는 다그 스벤손이 추적하던 사람중 살라라는 이름를 가진 자가 등장하는데 그와 연결된 사람들이 아주 위험한 인물이란 것이다. 그들 중에는 '아리안 형제단'과 연관된 사람도 있는데 이 '아리안 형제단'은 스웨덴 나치조직과도 관련이 있다. 어쨌거나 살라와 연결된 인물들은 인신매매 뿐만 아니라 무기밀매와 마약밀매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구심점이 되는 것이 살라란 인물이다. 하지만 살라에 대해서는 정보가 극히 적어 실명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 살라라는 인물이 밀레니엄 두번째 시리즈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여행에서 돌아온 리스베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의 일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해킹을 한다. 그러다가 미카엘의 컴퓨터를 통해 여성인신매매와 관련한 기사를 보게 되고 다시 다그 스벤손의 자료까지 해킹한다. 그것을 통해 리스베트는 살라라는 이름을 보게 되고, 그후 다그 스벤손과 그의 애인 미아 베리만을 찾아간다. 리스베트는 왜 이들을 찾아간 것일까. 그러나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겨를도 없이 이 두사람은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 비우르만 역시도 총으로 살해당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아마도 리스베트는 범인이 아니겠지만 범죄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총에서 리스베트의 지문이 나와 경찰들은 리스베트를 주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리스베트의 과거 기록을 보고 그녀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는 단정을 내리는데... 아, 또 화가 나기 시작한다. 물론 리스베트의 과거 행적이 그녀를 모르는 사람 눈에 좋아 보일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리스베트를 범인이라 가정하는 경찰들의 행태에 넌더리가 났다. 특히 마초기질이 강한 경찰 한스 파스테와 아르만스키의 회사에서 일하는 니클라스 에릭손의 발언과 생각에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줄 알았다. 갈수록 점점 더 하겠군, 이란 생각이 들었달까. 특히 니클라스 에릭슨은 리스베트에 대해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파스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듯 싶다. 

경찰은 리스베트를 치료했던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을 통해 그녀가 반사회적이며 아주 위험한 인물이라는 증언을 얻는다. 하지만 미카엘이나 아르만스키는 리스베트에 대해 전혀 다른 발언을 해 경찰은 혼란스럽다. 하여튼 경찰이나 검찰이나 어떻게든 껀수 하나 건지려고 발버둥치는 꼴이 보여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건 역시 한스 파르테때문에 더해졌지. 이 인간은 완전 남성우월주의자 마초다. 재수없는 인간의 표본되시겠다. 하지만 경찰이 용의자를 확보, 수사를 진행하는데도 불구하고 리스베트의 머리카락하나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녀가 살던 아파트에는 밈미라는 친구가 이미 살고 있었고, 리스베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리스베트, 도대체 넌 어디에 있는 거지? 설마, 아직 그 정체가 무엇인지도 드러나지 않은 야수의 발톱에 이미 잡혀버린 건 아니겠지?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으면서 느끼게 된 것은 이 작가가 도입부를 아주 길게 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리스베트의 여행을 포함해 리스베트가 스웨덴으로 돌아와 새로운 생활을 하는 부분이 아주 길게 묘사되어 있다. 두번째 시리즈에서 진행될 사건은 후반부에 들어서야 터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지루한 정도는 아니지만, 좀 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은 든다. 하긴 원래 10부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 납득이 되기도 하지만. 

밀레니엄 첫번째 시리즈는 재계와 관련된 사건을 다룬다면, 두번째 시리즈는 인신매매조직을 비롯해 사법체계에 대한 비판을 다룰 모양이다. 형사사건이 발생했으니 당연한 건가? 이번에는 어떤 식의 폭로가 이루어질지 자못 기대된다. 한편 리스베트의 과거에 대한 실마리도 조금씩 풀려 나오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악'이란 것은 어떤 것인지 좀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