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사나이 -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기홍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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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리부는 사나이>는 제 15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예전부터 문학동네 책을 좋아했었고, 또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작품을 몇 작품 접해본 나로서는 이 책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이제는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을 기다리는 입장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이 책은 200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은 남자 대학생이다.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는 극히 적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느날 수연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수연은 그보다 2살 연상으로,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수연과는 편안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지만, 이 남자에게는 고민이 한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과동기 정현과 하룻밤을 함꼐 보냈다는 것인데, 비록 아무런 일은 없었지만, 대학 1년생이 여학생과 단둘이 하룻밤을 지냈다는 이유로 그는 과에서 배척을 받는 존재가 되고, 수연이외에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외에 그가 교류를 하는 사람은 같은 하숙집의 우진이란 학생과 이반이란 사람, 그리고 카페 fragile의 사장 정도랄까. 하지만, 그런 인연을 통해 그는 조금씩 자신의 벽의 깨(fragile) 나간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학교 축제 기간에 우연히 본 타로점에 나타난 점괘. 수연은 자신의 뒤집은 카드인 DEVIL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그후 다시 연락해 온 수연에게 그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일단 주인공 남자의 성장 소설이다.
주인공인 <나>가 자신의 벽을 깨고 다른 사람들과의 접점을 찾아 나가는 부분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진과의 만남으로 인해 소설만을 읽던 그가 다른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되고, 수연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없던 그는 카페 fragile에서 이반이나 개구리 사장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의 폭을 넓혀 나간다.

20대. 그리고 대학 신입생이란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의 삶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에게서 독립을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를 맛보게 되는 시기도 바로 이 시기이다. 무절제하고 방종으로 치닫기 쉬운 나이이기도 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설게를 할 나이도 바로 이즈음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신의 사고의 틀,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좀더 성숙하게 되는 게기를 시기를 묘사한 것이므로 성장소설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연의 이상한 행동과 수연이 겪었던 일 - 피리부는 사나이-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 소설은 급격하게 회전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짐작대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이다. 쥐떼를 피리로 유인해 쥐를 없애 주었지만, 정작 아무 보답도 받지 못한 그가 피리 소리로 아이들을 유혹해 사라져 버린다는 이야기.
바로 그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는 세계 각국의 여성들의 실종과도 관련이 있으며, 수연과도 관련이 있다. 수연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한 번 만난 적이 있고, 그후 묘한 일을 겪었으며, 지금도 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이 소설은 무대가 유럽으로 넒어진다. 게다가 재벌의 딸인 이유리를 비롯해, 테러조직과 테러를 막기 위한 조직들이 등장하는데, 피리 부는 사나이와 관련있는 이유리라는 여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미묘해져 간다.

갑자기 무대가 한국의 서울에서 영국의 런던으로 바뀌는데, 순간 나는 주인공이 시공간 타임 리프라도 한 듯 느껴졌다. 왜 평범한 대학생이 갑자기 테러조직을 쫓게 되는 거지? 그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지? 그가 여성들을 납치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일까...

수많은 궁금증이 책 후반부로 가면서 내 머릿속을 둥실 떠다녔다. 평범한 대학생 이야기가 갑자기 국제적인 테러조직과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난 이 부분에서 아연실색 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길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의 과정이 너무 간단하게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부터 숲길에 조금씩 빵조각을 떨어 뜨리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약간이 복선이 깔려 있기는 하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런 변화에 미처 내 마음은 이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속시원한 대답을 주지도 않았다. 왜 수연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가야만 하는지, 피리 부는 사나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없다.

다만,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작품의 주인공이 피리 부는 사나이의 꿈을 꾸고, 다시 길을 나서는 것으로 끝난다. 이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중이란 것일까.

사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테러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하기에 주인공이 수연과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는 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숙제가 되어버렸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좀더 작게 생각해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세계의 변혁을 가져올 인물이 아니라 개개인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방식은 폭력성을 띄는 것이라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주인공이 자신만의 세상을 박차고 나와 더 큰 세상과 접촉하게 된다는 계기를 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주인공은 착실하게 정신적 성장을 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2004년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다. 테러, 자연재해, 살인, 실종 사건 등 여러가직 국제적 사건이나 사회적 문제등을 묘사하고 있다. 확실한 이름은 거론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면 아,, 이사건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또한 문학, 그림, 음악등 예술등에 관한 토론이나 이야기도 이 책을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란 동화, 그리고 대학생 주인공의 이야기를 적절히 접목시켜 김기홍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탄생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일상과 비일상을 교묘히 접목시켜 한 남자의 정신적 성장과 사랑과 우정 등 청춘의 빛나는 시기를 매끄럽게 잘 표현해냈다는 것에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페이지가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난 한번도 손을 떼지 않고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그만큼 매력적인 소설이다.

지금, 당신에게도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가 들려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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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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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이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조용한 방 가운데 내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만이 들려 왔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 소름이 끼쳤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난 내 감상의 고백이다.

이 소설은 싱글맘이자 학교 교사인 모리구치 유코의 딸 마나미의 죽음으로부터 약 1년간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나미의 죽음은 처음에는 사고사로 알려지지만, 사실은 그 학교 학생 두 명에 의한 것이었다.

총 6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진 각 챕터는 이 소설의 주요 등장 인물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한다.
성직자는 마나미의 엄마이자 교사인 모리구치 유코가 종업식날 학생들 앞에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와 범인에 대한 언급, 그리고 범인에 대해 자신이 내린 단죄를 고백하는 형식이고, 순교자는 모리구치의 반 반장이었던 기타하라 미즈키가 모리구치가 떠난 후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을 문학상 응모작 형식으로 작성한 것이다. 자애자는 범인 A의 엄마의 일기장에 씌어진 내용이며, 구도자는 시모무라 나오키의 모놀로그이다. 신봉자는 와타나베 슈야의 입장에서 서술되며, 마지막 전도자는 다시 모리구치 유코가 화자가 되어 슈야에게 전화를 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장마다 서술자를 달리하다 보니, 좀던 심층적으로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해낸다. 만약 3인칭이나 화자가 한 사람이라면, 관찰하는 식으로 서술되었겠지만, 각각이 1인칭 모놀로그 식으로 서술되다 보니, 똑같은 사건이지만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그렇다 보니, 등장 인물 개개인의 삶의 확실히 들여다 볼 수 있고, 각각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떤 식으로 생각해 왔고, 어떤 식으로 상대해 왔는지, 빗장을 채우고 가둬 놓은 마음속 비밀을 들여다 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렇다 보니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인간이란 이기심과 자기애만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란 것이었다.

고백은 학교란 곳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크게 보면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흉악 범죄의 저연령화, 인명을 가벼이 여기는 풍조, 자신의 자식이라면 간이고 쓸개고 나 내주는 모친, 집안 일은 나몰라라 하는 부친,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와 마마 보이, 누군가에 대한 분노를 쉽게 표출하는 요즘 아이들과 자신이 피해자가 되기 실허 급우를 이지메하는 아이들, 자의식 과잉에 휩싸여 날뛰는 교사까지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고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지는 인물 뿐이다.

게다가 마나미의 엄마이자 중학교 교사인 모리구치 유코가 마나미를 죽인 아이들에게 내린 제재 방법은 심리적 압박과 더불어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확대된다. 그 결과 범인 A는 히키모코리가 되었다가 모친을 살해한 후 감금되었고, 범인 B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게 된다. 하지만, 모리구치 유코에게서 그 어떤 후회나 미안함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자기 자식을 죽인 범인들을 용서할 수 없고, 갈갈이 찢어 죽여도 분이 안풀릴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이 영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막을 내린 그녀의 복수극으로 그녀가 과연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녀는 마나미를 잃고 남편마저 세상을 떠난 후 더이상 세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런 일을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교실에서 마지막 훈화처럼 시작되어 무섭고 끔직한 고백으로 전환된 그날부터,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었다. 종업식날 담담한 어조로 그날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범인을 밝힌 후 약 1녀이 지나, 마지막으로 범인 B에게 전화를 했을 때 모리구치 유코는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니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사람이 사람을 어디까지 단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람은 어디까지 악한 것이고, 어디까지 선한 것일까.
또한 절대적 가해자와 절대적 피해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아이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의 칼날을 내리 꽂는 모리구치 유코의 행동은 과연 정당한 것이었을까.
하지만, 14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흉악 범죄를 저질러도 법척 처벌을 받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모리구치 유코가 이들에게 복수할 방법은 이런 것 밖에 없을 것 같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모든 참극을 빚어 낸 것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방관한 사회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압도적 필력과 스토리 전개 방식, 그리고 주요 등장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이야기구조에 정신없이 파묻혀 책을 읽기는 했지만, 역시 뒷맛이 씁쓰름한 건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할법 하고, 사건의 성격상 알게 모르게 은폐되는 일도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미쳐서 제멋대로 날뛰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어둠을 보게 만든 고백.
고백이란 정적인 제목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어둡고 음울하게 진행되었던 스토리와 결말로 인해 한동안 이 씁쓸한 여운은 쉬이 걷힐 듯 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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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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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대부분 눈치 챈 모양이군요.
효과는 바로 알 수 없습니다. 부디 두세 달 후에 혈액검사를 받아보세요. 효과가 있다면 통상 5년에서 10년이라고 하니 그동안 차분히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실감해 보세요. 두 사람이 자기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마나미에게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사죄하기를 절실히 바랍니다. 그리고 학급 교체는 없으니 모두들 결코 두 사람을 몰아내지 말고 따스한 눈길로 지켜봐 주세요. 이 학급에서 경솔하게 죽고 싶다는 메세지를 보내는 사람은 더 이상 없지 않을까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직접 선택할 여지가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되면 시한은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일까요? '효과가 없으면?' 그렇군요, 부디 교통사고를 조심하라고 말해두지요.-55쪽

역시 아무리 잔인한 범죄자라도 제재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결코 범죄자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재는 평범한 세상사람들의 착각과 폭주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77쪽

나오키는 불결이라는 갑옷과 함께 남들 이상으로 가지고 있던 상냥한 마음씨도 씻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제가 사랑했던 나오키는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잃고, 당당하게 구는 살인자 아들에게 어미인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147 쪽

나는 온몸에서 생명의 증거를 몽땅 벗겨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문득 몇 달전에 보았던 비디오가 떠올랐다.
아아, 그런가. 좀비가 되었구나.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좀비. 더군다나 내 피는 생물 병기다. 그렇다면 온 동네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면 재미있으려나?-195쪽

어머니의 발목을 붙잡는 원인이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했지만 어린 탓에 그 수단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때 몇 번이고 기도하지 않았던가.
병에 걸리고 싶다, 라고.
그 소원이 뜻하지 않게 이런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상 밖, 아니, 예상을 초월하는 전개였다. 그것도 대성공이라는 전개. 어머니도 살인범 아들보다는 중병을 앓는 아들을 더 걱정할 테고, 만나러 오기도 편할 것이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때 나는 돌연 생기가 솟았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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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 MW 1
테츠카 오사무 글 그림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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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즈카 오사무라고 하면 우리는 제일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바로 우주소년 아톰(원제 : 철완 아톰)이다. 귀엽고 똘망똘망한 로봇 소년 아톰이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적들을 쳐부수는 애니메이션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애니메이션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제국주의를 위한 애니메이션이란 이야기도 회자되고 있다.
아톰은 일본, 아톰과 싸우는 거대한 적들은 바로 미국을 상징한다고 이야기되어 진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측면은 한 단면에 불과하다. 데즈카 오사무가 우주소년 아톰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과학 기술문명의 급속한 발달이 가져온 부정적인 측면이었다. 즉, 인간의 편의와 이기를 위해 발달해온 과학 기술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고, 인간이 발딛고 살아가는 지구를 파괴해 가는 것을 더욱더 강조하고 있다.

왜 아톰 이야기를 먼저 꺼냈냐면,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속에는 과학기술문명 발달의 부정적인 측면을 꼬집고, 인간의 악한 본성을 나무라는 것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뮤 역시 그러한 면과 전혀 동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아톰을 보는 대상이 조금 어린 연령층이라면 뮤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만화이다. 뮤라는 가공의 생화학무기가 가져온 비극과 그것이 십수년이 지난 후에도 악몽처럼 남아 한 인간을 파괴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십육년전 오키나와 근처에 있는 작은 섬 오키노마 후네지마에서 발생한 참극. 그것은 한 외국의 군사 시설에서 흘러나온 뮤라는 치명적 생화학 무기로 인한 것이있다. 그것으로 인해 섬 주민 800명을 비롯, 섬에 머무르던 모든 사람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가 몰살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조용하게 처리되어 지금 그 참극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 사건 관련자 외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섬에 생존자 두 명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둘은 현재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유키 미치오와 신부인 가라이다.

유키는 뮤에 중독된 후유증으로 뇌와 심장이 공격당했고, 현재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단 몸의 고통뿐 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말살된 학살의 현장을 본 목격자라면 그 정신적 충격은 이루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키는 자신을 망가뜨린 뮤를 찾아내 전세계에 퍼뜨리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할 생각으로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한다. 그 와중에 아이도, 어른도, 남자도 여자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이용하며, 살인도 불사한다.
신부 가라이는 유키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같은 참사를 겪었던 동료이자 유키에 대한 애정으로 늘 마음이 흔들린다.

뮤에서는 유키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자를 강간하거나, 수단이나 도구로 여자들을 성적으로 이용하고, 결혼을 빙자해 이용하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유키와 가라이의 동성애 묘사 장면도 많다. 하지만, 동성애물이라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그것은 동병상련을 겪는 두 사람의 상처 핥아주기 정도로 생각하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주욱 읽으면서 든 생각은 과연 유키의 행위들이 정당하냐는 것이었다. 유키의 반사회적이고 악마적인 행동은 과연 뮤에 중독된 후유증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유키가 원래 자신의 내면에 품고 있던 악함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어떤 이유이든 간에, 그가 저지른 행위는 악행임에는 틀림없다.

수단과 방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 이런 생각도 아니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 주변의 것을 모두 파괴하고 싶은 충동뿐이었을까.
나는 결국 유키는 악에 가깝다고 판단내렸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더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다.
물론 가라이가 했던 방식이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십 수년 전 은폐되었던 사건이 지금 드러난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정치가는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군중들은 군중심리에 이끌려 뮤와 뮤에 의해 벌어진 참극에 대한 진실을 까발리라 하지만, 어느새 그것은 잊혀지고 말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아직 미국의 영향이 남아있던 시기(오키나와는 미군 점령지였다), 일본의 주권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가를 외치던 검사를 보며, 난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렸다.

아직도 정치적 군사적으로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우리는 미군들이 일으킨 범죄나 미군 군사 시설로 인해 생기는 피해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겉모습은 독립국가이지만, 속으로는 미국의 지배를 받는 현실에 통감한다.
더불어, 어느 나라에나 있는 정치의 부패와 더불어 은폐된 사건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조금 이야기가 엇나간 것 같지만, 뮤는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였다. 폭력, 살인, 테러, 강간을 비롯해 돈으로 움직이는 정치, 권력으로 움직이는 국가 등 여러가지 사회악을 유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폭넓게 묘사하고 있는 뮤는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만화 이상의 만화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없이 선에 가까운, 또한 한없이 악에 가까운 것만이 존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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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나스다 준 지음, 양윤옥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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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독일의 사랑 나무 이야기란 민담으로 시작한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어, 그 나무에 편지를 넣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이야기처럼 소설의 주인공 쇼타가 살고 있는 쇼난의 히로마치 숲에도 오래된 벚나무가 편지를 전해주는 사랑 나무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거의 이용하는 사람은 없고 지금은 쇼타가 아르바이트하는 아다치 교수와 어떤 소녀와의 편지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왠지 동화같다.... 처음엔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인공인 쇼타는 중학교 2년생인데다가, 이런 이야기로 먼저 시작을 하니 말이다.
사실, 동화같은 이야기도 맞고, 성장 소설도 맞다.
그리고 약간의 미스터리가 섞여 있기도 하다.
왠지 장르가 뒤죽박죽 섞여 있어 복잡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설의 전반부는 쇼타가 일하는 사스케도 심부름 센터가 해결하는 일을 주로 보여 준다. 도난당한 돈을 찾아주고, 도난범을 찾는다든지, 호텔에서 없어진 아이를 찾는 등...
그러나 중반부로 넘어 가면서 사스케도 심부름센터의 딸 케이의 진짜 아빠 찾기가 시작된다. 도대체 케이의 진짜 아빠는 누굴까.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케이의 이야기는 어른들의 과거 이야기로 흘러 간다. 케이의 엄마인 구미씨와 함께 사진을 찍은 도시히코란 남자, 그리고 치과의사인 요코씨, 케이의 지금 아빠 사스케씨는 옛날엔 어떤 관계였을까.
게다가 아다치 선생의 손녀이자 도시히코의 딸 마리까지 등장함으로써 수수께끼는 더욱 더 커진다. 설마 케이와 마리가 이복 자매?

그 이야기는 옛날 도시히코가 고교 시절엔에 쓴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이야기로 연결되며 궁금증을 더한다. 그 이야기는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가 우주를 삼십만년동안 여행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별을 닦아 주는 이야기로, 별닦이 토끼가 별을 닦아주고 그 별이 빛나면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고, 별이 빛이 나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란다.

결국 도시히코와 요코가 닦아 달라고 했던 별은 빛을 발하지 못했고, 구미씨와 사스케씨의 별이 빛나게 되었던 모양이다. 즉, 케이의 진짜 아빠는 사스케씨였다. 그 먼 옛날 독일 여행에서의 오해로 모든 것이 어긋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케이의 현재 고민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독일 민담과 창작 이야기가 적절히 뒤섞여 동화 같은 분위기를 내면서도, 가족의 비밀을 푸는 미스터리 형식과 쇼타와 케이의 첫사랑 이야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난삽하게 뒤죽박죽된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어울려 매끄럽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스다 준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다. 그래서 굉장히 흥미가 갔고, 제목 또한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따뜻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 지금은 어른이 된 우리들이 거쳐왔을 케이와 쇼타의 이야기, 그리고 케이와 쇼타가 커가면서 격을 지금 우리의 이야기.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고, 절대 단절되지 않는다. 그 연결고리가 이 소설속에 고스란이 녹아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곧 다가올 어른들의 시간을, 어른들에게는 지나버린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일억백만광년 머너에 사는 토끼.

왠지 어디선가 나만의 별을 닦아 줄 별닦이 토끼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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