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어 앉은 오후 - 제4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이신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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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회 문학동네 신인 작가상을 수상한 이신조의 기대어 앉은 오후는 퍼즐같은 소설이었다. 그렇다고 장르 자체가 미스터리는 아니다. 다만 이야기의 전개 구조가 그렇단 말이다.

첫 장면은 비행기 추락사고로 시작된다.
왜 뜬금없이 비행기 추락 사고?
그럼 이때 등장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과거지사, 즉 비행기 추락 사고 직전까지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큰 줄거리일까.
난 적어도 그렇게 짐작했었다.
그러나 곧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이 소설은 20대 여자와 50대여자가 중심 인물로, 평행선을 달리듯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여자가 어떠한 접점을 갖게 되고, 나란히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대 중반의 은해는 포르노 영화 더빙을 하는 성우이다. 은해의 엄마는 후처로 위로는 이복 오빠가 두 명있다. 그런 탓인지, 은해는 엄마의 사랑이라고는 받아 보지도 못했고, 그것은 어떤 결핍으로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50대의 윤자는 평범한 삶을 살아 온 주부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의 교수와 불륜 관계에 있던 딸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지게 된다. 집안의 자랑이었던 딸은 임신한 상태였다. 그후 윤자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남편과 아들과 소원한 관계가 된 그녀는 작은 물건을 훔치는 행위로 자신의 상실감을 보상받고자 하나, 그건 결코 치유가 되지 못했다.

은해와 윤자가 만난 것은 한 스포츠 클럽 수영 교실에 등록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처음엔 데면데면한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어찌보면 딸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가진 윤자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상처를 가진 은해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은해는 윤자에게서 자신이 바라던 어머니의 모습을, 윤자는 은해에게서 죽어버린 딸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물흐르듯 잔잔히 진행되는 스토리이지만, 세부 묘사는 여성 작가답게 섬세하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에 그 장면장면이 새겨질 정도로. <기대어 앉은 오후>는 제목 그대로 상처와 상실이란 고통을 나누며 서로르 품어주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에 두 여자가 기대어 앉은 모습을 떠올리게 해 준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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純情ロマンチカ 第12卷 (あすかコミックスCL-DX) (コミック) 純情ロマンチカ (コミック) 12
中村 春菊 / 角川書店(角川グル-プパブリッシング)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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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가을에 출간되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는...
여름에 나온다고 생각한 것이 안나와서 신경안썼더니.. 으음...

일단 내용은 늘 그렇듯이, 비슷하다.
미사키와 우사기는 러브러브하면서도 괜한 걱정으로 골머리 썩히기 일쑤.
특히 미국에서 온 우사기의 사촌 미즈키의 등장으로 미사키 슬슬 열이 받는다.
미사키는 자신이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신을 적대시 하는 미즈키가 대하기 어렵고, 미즈키는 입만 살았는지, 미사키에게 얼마나 쏘아 대는지...

우사미가에는 이상한 사람들만 모여 있나..
미즈키가 사촌형을 좋아한다는 건 알겠는데, 왜 미사키에게 질투를 하는 건지..
여자라면 내가 이해한다. (일본은 사촌이라도 결혼할 수 있으니까)

근데, 알고 보니 후유히코(우사기의 아버지)가 미사키 X 우사기 감시역으로 보낸 것!?
지난 11권에서 어느 정도 마음을 허락한 것 같았더니,
후유히코 은근히 뒤끝있구나..
하긴 자신의 소중한 자식이 남자를 좋아한다는데, 그정도로 끝난게 다행이지..
암만, 그렇고 말고.

건 그렇고, 요번엔 타카히로(미사키의 형)이나 하루히코(우사기의 형)이 전혀 출연을 안한다. 타카히로에게 자신들의 관계를 밝힌다더니, 왜 그에 대한 언급은 더이상 없지?
미즈키의 난입으로!?
그런 걸까?

게다가 하루히코는 미사키를 좋아한다고 계속 고백해오더니, 요번엔 아예 등장도 안하고.. 나 은근히 하루히코 좋아하는데 말이지... 음...

하여간 취직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미사키.
취업 설명회도 나가고, 마루카와 쇼텐에서 편집부 아르바이트도 하는 둥 미사키 나름대로 열심히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한편, 후유히코에게 한 소리 들은 우사기는 급 우울 모드로!?

거기다가 미사키를 좋아하는 카오루코마저 귀국하는데..
우사미 일가 총 출동이로구나~~~~

미사키는 우연히 학교서『자★칸』의 팬인 토도 신노스케와 친구가 되어 사인회가 열리는 후쿠오카로 가기로 하는데, 우사미 일가도 총 출동!!!! (이건 마지막 페이지다만...)

어쨌거나, 취직 준비로 마음이 불안한 미사키, 취직을 하면 미사키가 나간다고 할까봐 지레 겁이 나는 우사기. 우사기의 문제는 맘속에 담아 두고 이야기를 안하다는 것. 그건 미사키도 마찬가지 이지만, 서로 그런 식으로 숨기기만 하면 답답하지 않니?

요번 12권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은 역시 흙더미를 쌓아 놓고 굴을 파는 놀이 장면이었다. 굴이 뚫리는 순간, 미사키의 손을 낚아채 키스하는 우사기. 요 장면이 참 예뻤다. 물론 미사키의 고백이 먼저 있긴 했지만...(근데 그것도 고백이라 할 수 있을까?)

순정 미니멈은 노와키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고아원에서 자란 노와키가 자신이 고아라는 것을 알고 가출을 단행했다가, 우연히 어린 히로키를 만났다는데... 물론 두 사람은 어린 시절 만났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다. (오호라.. 재미있는 설정이야)

순정 에고이스트는 노와키의 생일편!
레스토랑도 예약하고 선물까지 준비했건만, 노와키의 일이 바빠서 결국 생일 축하를 제대로 해주지 못한 히로키. 그러나 그 다음날이 노와키의 휴일이라 둘이서 하루종일 함께 보내기로 하지만, 이게 뭐니?
노와키의 선배 츠모리가 난입!?

순정 로맨티카도 순정 에고이스트도 난입으로 시작해 난입으로 끝나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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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구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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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체스판에서처럼 다음 말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것은 또다른 구제가 될 수도 단죄가 될 수도 있었다.
남자는 마지막 수를 잘못 두었다.
타임 리미트.
체크 메이트.
왕은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뭔가 추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내가 성녀의 구제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이러한 것이었다.
이 책의 제목에서도 언급된 구제.
구제의 뜻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거나 고통받는 사람을 제도(濟渡)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진정한 구제의 의미를 알았을 때는 소름이 끼칠 수 밖에 없었다.

자택에서 마시마 요시다카라는 남자가 독살된다.
사건의 용의자는 이혼을 통고받은 아내 아야네.
그러나 사건 당시 그녀는 홋카이도에 가 있었다.
도저히 사건 시간에 맞춰 도쿄 - 홋카이도를 오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것은 철벽같은 알리바이.

도대체 홋카이도에 가 있던 여자가 어떻게 남편을 독살할 수 있었을까.
갈릴레오 시리즈에 등장하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는 그것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허수해(虛數解)라 불렀다.

성녀의 구제는 앞장에서 이미 범인도 그 동기도 언급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위한 추리소설일까.
추리 소설에서 중요시되는 세가지 요소는 범인, 동기, 그리고 트릭.
이 소설은 바로 범인이 사용한 트릭에 대한 소설이다.

사실 독살이란 것은 굉장히 어려운 살인 방식중의 하나이다.
피해자가 안심하고 독극물을 섭취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제 1 포인트기 때문이다.
만약 피해자가 범인을 의심하는 상태라면 독살은 절대로 이루어 질수가 없다.
그리고, 독살은 대부분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있을때 발생한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독살해나가는 방법이 아니라면, 피해자와 범인이 한 장소에 있어야지만 독살은 실행된다.
그런데, 범인이 없는 곳에서 일어난 독살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 방법에 대해서 아무런 추리도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유가와의 뒤를 졸졸 쫓으며, 그가 하는 말, 그가 한 실험에 집중했다. 천재 물리학자라 불리는 유가와 마저도 쩔쩔 매게 만든 범인의 트릭은 경악 그 자체였다.

딱 한가지 내 짐작대로 답이 나온게 있다면, 범인이 사용한 마지막 트릭정도였을까. 그러나, 이건 누구나 맞출수 있을 것 같다. 범인이 쓴 마지막 트릭은, 자신이 사용한 트릭의 증거 인멸이었으니까. 남편이 독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굳이 해야만 했던 일을 떠올리면, 그 마지막 트릭은 쉽게 추측이 될 것이다.  

언뜻 보면 치정 살인 정도로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이 사건은 꽤 오래전의 과거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얽히고 설킨 관계, 사랑과 배신. 그리고 단죄.
어찌보면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트릭 하나 만으로 그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보면, 왠지 안타까움을 주는 주인공들이 많았다. 하지만, 성녀의 구제에 나오는 주인공만큼 무섭고 철저한 범인은 처음이다. 그녀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 그것은 굉장한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언제든 기폭 장치만 눌러지면 바로 터져버리는 폭탄이었지만, 그것을 그 오랜시간 동안 잠재워 둔 것은 바로 범인의 냉혹함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성녀의 구제에 나오는 범인에 대한 동정은 전혀 없다. 그녀도 그것을 바라지 않을 테니까.

성녀의 구제에서는 범인도 매력적이지만, 난 여형사 우쓰미 가오루에게 반했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두고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모습은 정말 최고였다. 사실 구사나기가 야마네에게 홀린 듯 한 것이 걱정이었는데, 역시 유가와의 말대로 구사나기는 뼛속까지 형사다. 덕분에 나도 범인의 마지막 트릭을 일찍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제와의 의미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성녀의 구제. 범인과 동기보다는 그 트릭에 중심을 두고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은 최고였다. 

당신은 그녀의 구제의 진실한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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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네 신지에서 꽃이 지다 - 뉴 루비코믹스 스폐셜
Renaissance Yoshida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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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접하기 전, 만화인데도 대사량이 엄청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배송을 받고 책을 휘리릭 넘겨본 순간, 난 깜짝 놀랐다. 만화라기 보다는 그림 소설같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그림체도 펜터치가 너무도 강해 눈이 아릴 정도였다. 

이 작품은 아카네 신지라고 하는 한 유곽이 늘어선 거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등장 인물로는 카이코 쥬우자(혹은 쥬우젠), 후카자와 코조, 하니야 시로가 주요 등장 인물이며, 그외에도 롯카, 나나오, 센 등이 등장한다.

카이코 - 후카자와, 그리고 후카자와 - 하니야로 연결되는 사랑의 행로가 일단 이들 관계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카이코는 유곽의 점장이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며, 검도부 부장이고, 쥬우자 혹은 쥬우젠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그는 어머니와 근친상간 관계를 가졌으며, 후카자와에게는 지배자로, 롯카와는 결혼을 약속했다.

후카자와와 하니야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소꿈친구이자, 검도부 소속이다. 
후카자와는 카이코와의 관계를 위해 카이코의 가게에서 남창으로 일하고, 그후 카이코와 관계를 갖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삼촌과도 관계를 가진듯 하다) 그러나 카이코의 지배 방식은 그를 학대하는 수준에 가깝다. 언제나 어둠의 주변에 있는듯한 그의 속내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 처음엔 도통 알 수가 없었지만, 결국 후반부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후카자와의 경우, 카이코의 지배를 받고, 그와의 관계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치 않았다. 비뚤어진 사랑일까. 그러나 카이코의 버림을 받은 후 그는 무너질대로 무너져 학교에서 마크 X란 별명으로 불리며, 동급생들의 성욕을 배출하는 출구 역할을 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하니야의 경우, 후카자와를 좋아하지만, 그건 후카자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 중에 가장 정상적인 녀석으로 보이지만, 역시 이 녀석도 좀 독특하다. 하니야는 카이코에게 버림받은 후 망가질 대로 망가진 후카자와를 구해주고 서로 관계를 맺게 되지만, 어느새 하니야를 좋아하게 된 후카자와의 고백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런 하니야를 본 후카자와는 몹시 실망하는데....

언뜻 세 사람의 관계를 봐도 심상치 않다. 사랑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행복감 혹은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카이코와 후카자와의 관계는 카이코가 일방적으로 후카자와를 막다른 길로 몰아 넣고, 힘들게 한다. 그러나 후카자와는 그것도 카이코의 사랑이라 믿고 매달리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다.

후카자와와 하니야의 관계는 후카자와가 하니야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갖게 되는 순간 흔들리게 된다. 왜, 서로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은 어긋나게 될까. 그렇다고 하니야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건 하니야만의 사랑 방식이었기 때문이니까. 물론 결국 하니야 역시 자신만을 향해 있던 마음을 버리고, 후카자와를 선택한다. 

서로를 바라 보는 것 같아도 미묘하게 어긋난 시선들. 과연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카이코는 결국 사랑이란 걸 몰랐던 게 아닐까. 그가 사랑이란 것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이미 모든 것은 저쪽 편으로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그가 내린 선택은 단 한가지 밖에 없었다.

왠지 굉장히 추상적인 느낌의 서평이지만, 책 내용 자체도 굉장히 추상적이었다. 물론 구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많았지만, 사랑 자체가 구체화 할 수 없는 무정형의 것이기 때문에 그 표현 방식이 이렇게 바뀐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번 읽었을 때는 대사 분량이 많아 어느 것이 누구의 대사인지도 헷갈렸고, 나나오의 대사는 철학적이라든지, 혹은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 많이 두 번을 정독했다. 그러면서, 인물들의 표정이나, 등장하는 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등장하는 꽃의 경우 작가 후기에서 작가가 상세히 밝혀주어 참고하여 본 내용과 접목시켜 생각할 수 있었다.

본 편외에 수록된 네 작품은 번외편 형식으로 실려 있는데, 난 은근히 장어 축제가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음울하고 몽상적인 작품 전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코믹한 부분이 있어 즐겁게 읽은 게 그 이유가 아닌가 한다. 

어긋난 시선들과 어긋난 감정들이 화살처럼 연신 쏘아지는 <아카네신지에서 꽃이 지다>는 내가 둔중한 충격과 감상을 전해준 작품이었고, 그 여운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뭉근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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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 - 제2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전혜성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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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요네즈하면 난 영화 <마요네즈>가 떠오른다. 김혜자씨와 지금은 고인이 된 최진실씨가 모녀로 나왔던 마요네즈. 그곳에서 머리카락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있던 엄마와 엄마와 갈등을 겪는 딸이야기.
바로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 바로 이것이다.

병자인 엄마가 한동안 딸 아정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는 그닥 매끄럽지 않았던 아정은 엄마가 오신다는 사실 그 자체에 이미 질려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기만 한 그녀.

그렇게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거꾸로 흘러간다.
어린 시절 회상속에서도 엄마와 아정의 관계는 매끄럽지 않았다. 장녀라고 무조건 칭찬하고 잘 되길 바랐던 엄마는 그 반대로 부담감도 안겨주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무뚝뚝한 성미에 술을 마시기만 하면 엄마를 두들겨 팼다.

젊은 시절 한 미모를 자랑하던 엄마였지만, 쉰도 안되어 중풍으로 쓰러졌고, 그후엔 당뇨니 뭐니 해서 지금도 입에 약을 달고 산다. 병으로 쓰러졌을 때 아버지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회복한 엄마는 아버지가 쓰러지자 그대로 방치한다. 그동안의 복수였을까. 아니면, 그저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정은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괴롭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 온다.
남의 자서전 일을 쓰는 일을 억지로 떠맡은 것도 엄마와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엄마는 아정의 아이들을 잘 보살펴 줄 생각도 못한다. 자신은 병자라면서.

아정과 엄마의 대립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다.
엄마의 철부지같은 행동, 숨막힐 듯한 가족 환경.
비록 다른 가족이야기는 거의 언급이 되지않고, 엄마와의 갈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것으로 다른 가족과의 관계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읽는 내내, 가족이란 게 뭘까, 특히 모녀사이란게 뭘까.. 라는 생각을 해 봤다.
우리들 부모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그리고 네가 부모 심정을 알 날은 네가 부모가 되는 날이라고.

난 아직 결혼도 안한지라, 아직 부모님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엄마가 아정의 엄마같았고, 내 집안 환경이 아정의 가정 환경 같았다면 나도 아정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했을까.

가족이기에 편하고, 기댈 수 있고, 든든하다.
그러나 아정의 경우를 보면 가족이라 그 치부가 더 깊숙이 보이고, 외면하고 싶어한다.
특히나 자신밖에 모르는 것 같은 어머니에 대해서는 정말 한순간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 들어 엄마의 외할머니 이야기와 아버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면서, 둘 사이의 단단한 벽은 약간씩 흔들린다. 물론 삼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쌓인 그 앙금이 쉬이 없어질리는 없다. 하지만 계시는 동안 그 껍질을 깨고 하고자 하는 아정의 마음은 마직막 문장에 잘 나와 있다.

가족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 가정에 태어나는 것은 우연일까.
사실 가족이란 고를 수 없다. 물론 결혼이란 수단을 통해 남편을 고를 수는 있지만, 그 나머지 가족은 고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태어난 가정과 가족은 내가 고를 수가 없다. 그런 우연과 필연이 기막히게 조화가 되어 생겨나게 되는 가족..

이 소설은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 하면서도, 가족의 새로운 결합을 암시한다.
아정의 표현에 따르자면 자신의 원래가족은 낡은 가족,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새 가족이라 명명된다. 그 사이의 괴리감은 여전히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틈이 메꿔질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왜냐면, 가족이니까. 
답은 그것 하나다.

뒷페이지에 수록된 심사평에서는 새로운 모성애의 모습이나 새로운 엄마의 모습을 강조한 문구가 많이 눈에 띄었는데, 난 그것보다는 오히려 엄마와 딸의 관계에 더 관심이 갔다. 엄마와 딸은 친구처럼도 지낼 수 있지만, 엇나가면 진짜 불편한 관계도 된다는 것을 나도 예전에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20대에는 엄마와 참 갈등이 많았다. 
하지만, 30대에 들어서면서 그 갈등은 조금씩 풀려 나갔고, 지금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꽤나 부드러운 관계가 되었다. 
이 소설을 보면서 엄마와 나의 관계를 되짚어 보고, 가족이란 게 어떤 것인지 되짚어볼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세상에는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엄마들이 존재하고, 또한 그만큼 다양한 가족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난 아정과 아정의 엄마를 보면서, 난 그래도 엄마랑 저런 사이는 아닌데, 나와 가족과의 관계는 저렇지는 않은데, 라고 은연중에 비교하며 안도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삼 엄마와 내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나는, 괜시리 엄마에게 못되게 굴던 어린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엄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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