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루미코의 인어시리즈 1~3 박스 세트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다카하시 루미코는 <이누야샤>나 <란마 1/2>로 우리에게 꽤나 친숙한 작가이다. 란마 시리즈는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으로 이누야사 시리즈는 tv판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을 싹 쓸어서 볼만큼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인어시리즈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시작했다.
다카하시 루미코 극장이란 이름으로 인어의 숲 시리즈 11화  +  옴니버스 13화, 총 24화로 방송된 것을 몇번이고 볼 만큼 좋아했지만, 만화책으로는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만화종류는 원작보다는 애니메이션을 즐기게 된 것이 큰 이유이긴 하지만, 이젠 원작만화를 더 즐겨보게 되었다.

인어.. 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가.
보통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역시 그랬고.
바닷속 깊은 곳에 살면서 아름다운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인어들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여타의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어들도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딱히 떠오르는게 많지 않지만, 나츠메 우인장에서도 인어는 아름다운 얼굴로 등장한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인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인어의 고기는 불로불사를 가져다 준다고 하는 믿음. 그것이 바탕이 되어 이 시리즈가 그려졌다.
불로불사,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다만, 그것은 백만분의 일의 확률로 성공하게 되며, 보통은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거나, 나리소코나이가 되어 끔찍한 몰골로 영원히 살아야 한다. 불로불사의 몸이 된 자는 목을 베지 않으면 죽을 수가 없고, 일단 인어의 고기를 먹으면 그 먹은 시점의 몸상태로 영원히 살아가게 된다. 
또한 인어들은 사람처럼 살아 갈 수도 있다. 인어가 수명이 길긴 하지만, 역시 늙어가기 때문에 인어들은 인어 고기를 먹고 살아난 자를 잡아 먹고, 젊음을 되찾는다. 
이상이 간략하게 살펴본 다카하시 루미코의 인어시리즈에 나오는 인어의 특징이다.

사람은 누구나 불로장생, 혹은 불로불사를 꿈꾸는 것일까.
먼 옛날 진시황도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건 모두 인간의 덧없는 꿈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시리즈처럼 인어가 실제로 있고, 그 고기를 먹고 살아나 불로불사의 몸으로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이 만화의 주인공인 유타는 500년전 인어의 고기를 먹고 불로불사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결혼해서 행복했던 것도 한때.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은 차례차례 죽음을 맞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몸이 된 그는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가기 위해 끝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인어를 만나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그가 여행길에 만나는 사람은 죄 인어 고기가 주는 불로불사를 꿈꾼다.
그러던 중 인어들의 젊음을 되찾기 위한 제물로 길러지는 마나를 만나게 되고, 둘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유타와 마나가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유타보다 오래 살았던 사람도 있고, 유타보다는 적게 살았지만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오래 살아온 자들도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과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인어 고기를 먹고 살아 남은 자는 몇몇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동료를 찾는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보다 더 어려운 것이기에.

중간중간에는 유타의 과거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과거와 관련된 인물들과의 관계를 보면, 유타가 왜 그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는지 또 어떤 과거를 거쳐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간의 욕심은 예나 지금이나 그 끝을 모른다. 불로불사의 삶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채, 우선 불로불사라는 말에 이끌려 인어 고기를 덥썩 물었다가 즉사해버리거나 나리소코나이가 되어 평생을 죽지도 못하고 괴롭게 살아 가는 인간 군상들.

이 시리즈에서는 인어 고기 뿐만 아니라 인어의 피, 인어의 재를 사용한 에피소드도 있다. 그리고 역시 제일 독특한 것은 인어의 간을 이용한 반혼술로 시체를 되살려내는 에피소드인 <사리공주>였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시체라도 좋으니 사람을 되살리고 싶다는 욕망 역시 인간의 어둠과 맞물려 있는 욕망이라 보여진다.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연 그것에 끝이란 것은 있을까.
인어라는 소재를 사용해 판타지 만화로 그려졌지만, 그 깊숙한 곳에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욕심을 그려낸 수작 <인어 시리즈>
단순히 판타지라고 보는 것 보다는 그 속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음미하면서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덧 일 주일 - 제9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전수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서로 통한다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말이 잘 통하는 경우와 마음이 잘 통하는 경우.
전자의 경우,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깊이는 없다.
후자의 경우,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깊이도 있으며, 든든하기도 하다.
당신에게는 당신과 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십니까?

<어느덧 일주일>은 사람 사이의 소통을 소재로 씌어진 소설이다.
우리는 타인과 한없이 가까워지길 원하면서도, 또 반대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도 원한다.
사실상, 어른이 되어 가면서 사람들과 가까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은 그전 순수하게 받아 들여졌던 일도, 어른이 되면 자꾸만 거리를 두게 된다.
이해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그만큼 거리가 생긴다.
그렇다고 거리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상대를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준태와 기연은 사실 불륜 커플이다.
기연의 남편이 남도로 떠난 일주일동안 이 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서로를 갈구하면서도 어차피 가지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기연은 남편이 있는 여자이니까.
또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준태와 기연은 겁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을 자신의 영역 깊숙히 끌어들인다는 행위 자체는 자신을 그만큼 드러내고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준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버지와의 소통을 어려워하고, 기연은 남편과의 소통이 어렵다. 자연스레 서로 결핍되어 있는 부분이 톱니처럼 딱 맞아 떨어져 서로 편안한 관계가 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바뀌면 어떻게 될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새로운 소통 관계의 출발을 암시하는 문장으로 끝난다. 어떻게 보면 소설 전반적인 내용에 비해 급선회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준태와 기연의 이야기도 하고 있지만, 그외에도 세상은 수없이 많은 소통의 단절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 노숙자 아저씨의 상대없는 고함과 삿대질, 일부 빗나간 종교인들의 외침, 조합원들의 농성...
이 모든 것은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행위이지만, 정작 자신에게 돌아오는 건 메아리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은 완전히 소통이 단절되는 것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준태는 기연의 오빠와 조금이나마 소통을 하게 된다. 대학 입학 후 스스로의 울타리에 갇혀 버린 한 남자와 아버지와 소통을 하지 못해 무거운 마음을 가진 남자의 소통. 이것은 두 남자가 아버지란 존재와의 사이에서 느끼는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결핍에 대한 상처 핥아주기로 보인다.
기연의 오빠는 지나친 기대를 하는 아버지로 인해 마음을 닫아 버렸고, 준태는 아버지와의 나이 차이 때문에 서로 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가족들과의 소통이 가장 원할할 것같지만, 그렇지 않은게 현실이다.

가족이란 작은 울타리, 그리고 사회라는 큰 울타리를 아우르며 사람들 간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어느덧 일주일>은 가볍게 읽히면서도 묵직한 주제를 담아낸다. 하지만 암시적으로 드러난 결말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 온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떻든 사람과의 소통에 있어서의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같은 소설.
이 책 제목도 그렇고, 책의 목차를 봐도 그렇고, 책을 읽고난 후에도 이런 느낌이다.
이 책은 미국의 만화 영웅들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슈펴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이 등장하지만, 이는 겉모습에 불과하다.
이들 영웅들은 미국의 실체를 까발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까.

미국은 세계의 경찰 운운하며, 정치 경제 뿐만 아니라 군사 문화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지배 하에 두고자 하는 나라이다. 그러한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을 미국 만화의 영웅들의 활약으로 화려하게 치장해 놓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치장하는 것은 미국을 우상화하고 이상적인 나라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치켜세움으로서 끌어 내리고 깔아뭉개고 있다. 

힘이란 것 하나로 세계 평화를 지키는 슈퍼맨, 돈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배트맨, 원더우먼은 문화적인 측면을, 아쿠아맨은 군사적 측면에 대한 지배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미국이 일으켰던 수많은 전쟁이나 경제 협상, 그리고 제 3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친미파 정부의 수립등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어떨 때는 비유적으로 어떨 때는 드러내 놓고 치켜 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바나나맨은 누구일까.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즉 겉모습은 황인종이지만 속은 백인을 추종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바나나맨은 미국 영웅들 사이에서 그들과 같은 영웅이 되고 싶어하지만, 결국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진다. 황인종은 결코 미국에서 영웅이 될 수 없기에.

그러함에도 금붕어 똥처럼 영웅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바나나맨은 우리 사회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푸른 지붕아래 살고 계신 분들, 당신들 이야기이다. 

대한민국헌법을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개뿔이.
대한민국 대통령은 당선이 되면 미국에 제일 먼저 인사를 간다. 겉보기에는 하나의 독립된 국가이지만 속은 여전히 미국의 식민지다. 정치 경제 문화 군사적으로.

대통령은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으로 쌀개방을 하더니, 이젠 미국산 쇠고기도 수입한다. 아직도 대한민국 내에는 미군 기지가 득시글 거리고, 미군들에 의한 범죄 행각도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헐리우드 영화는 극장가에서 판을 치고, 헐리웃식 영웅들을 보면 우리 청소년들은 부러워하고 우상으로 삼는다.

세계 지배 전략이고 뭐고를 떠나서 우리나라만 봐도 그런 판국이다. 이 지구영웅전설은 그러한 미국의 이야기를 냉소적인 시각으로 코미디화 시켰다. 하지만, 그래서?
문제는 문제 제기로만 끝나버린 아쉬움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만행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이제 쉬쉬하는 문제도 아니요,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풍자와 냉소로 미국의 실체를 까발리는 시도는 좋았으나, 결말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모두 진실이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중에서 몇 퍼센트가 진실이라 생각하는가.

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내가 보는 모든 것이 과연 진실일까, 난 편견과 선입관에 사로 잡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오싹해졌다.

이 작품은 일단 화자가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지만, 첫 페이지에 나와 있듯이 그 당시 소년이었던 미치오가 어른이 되어 회상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따라서, 그것을 생각해 보면, 소년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사건이 아니라 어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이야기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 이이야기를 먼저 하냐면, 이 소설은 읽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때 고작 세 살이었던 미카(미치오의 여동생)의 발언이 너무나도 어른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어른이 된 미치오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이런 위화감은 금방 사그라 들 것이다. 하지만, 책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그런 위화감은 싸그리 사라진다.

여름 방학을 앞둔 종업식날, S의 집에 들렀다가 S가 목을 매고 죽은 사실을 발견한 미치오. 미치오는 학교로 달려가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리지만, 선생님과 경찰이 도착했을때 이미 S군의 사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후, 일주일이 지나 S는 거미로 환생해 미치오의 앞에 나타난다.
과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갑자기 S의 환생체가 등장하면서 난 당연히 혼란에 빠졌다.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판타지가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일단 도입부이다 보니, 그냥 궁금증을 꾹 참고 읽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은 후반부에 나오니 안달할 필요는 없다.

S의 등장은 묘한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S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자살이 아니며, 살해당한 것이고 범인은 I라고 한다. (일부러 이니셜로 작성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혀달라고 하는 S의 부탁에 미치오는 여동생 미카와 함께 진실을 추적해 나간다. 

아직은 범인에 대한 정황 증거밖에 없는 상태, 미치오는 I를 미행하고 그의 집을 뒤지는 등 여러모로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의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던 중, 사건과 관련된 사람인 다이조와의 만남은 점점 더 I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준다.

S의 죽음과 아홉구의 동물 사체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정황는 점점 범인을 I로 몰아가지만, 뭔가 찜찜하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수수께끼가 풀리기는 커녕, 점점 복잡해져 간다. 도대체 진범은 누구인가.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 누구나 하는 것이 있다. 그건 사건의 진상과 범인에 대해 추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 역시 미치오의 뒤에서 미치오가 보는 것을, 듣는 것을 느끼는 것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며, 범인을 추적해 나갔다. 하지만, 어딘가 계속 위화감이 생긴다. 틀림 없이 무언가를 놓친 게 있지만, 그것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일까.

마치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는 라비린토스(미궁)에 빠진 듯한 느낌이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단서를 제공하고, 작가는 적절한 복선들을 배치해 두었다. 그러나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의 암흑은 더욱더 깊어졌다. 도대체 이 위화감은 무엇이지. 하지만 결국 스스로 알아내지는 못했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속에 있잖아요"라는 미치오의 이야기.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미카의 존재도, 도코 할머니의 존재도, 스미다의 존재도. 
미치오의 세계를 엿본 순간 난 모든 것에 경악했다.
그리고 이젠 뭘 믿어야 할지 모르는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내 팔에 소름이 돋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왠만한 책으로는 충격을 잘 받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 책은 날 진정한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진실이란 믿는 자에 따라서 그 모양을 바꾸어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가 끝나면 만납시다 - 뉴 루비코믹스 553
에스도 에무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예전엔 그림체가 예쁜 만화가 좋았다.
그리고 무조건 하드한 만화가 좋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게 싫어졌다.
그림체보다는 스토리가 좋은 만화가 좋아졌다.

에스트 엠은 우연히 골랐다가 굉장히 마음에 든 작가다.
과한 느낌은 없다. 오히려 애잔한 부분이 더 컸다.
그런 느낌은 마음속에 오랜 여운을 남긴다.
이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다.

이 단편집은 춤, 영화, 음악, 그림 등 예술적인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 <커튼 콜>과 <쇼가 끝나면 만납시다>는 러시아 출신 댄서와 헐리웃 영화배우의 이야기를, <caf'e et cigarette>은 화가와 갤러리를 운영하는 남자의 이야기이고, <Rockin'in my head>는 한때 유명했던 락그룹의 기타리스트와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기타리스트 청년의 이야기이다. <nero>와 <모노크롬>의 경우, 두 사람의 정체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가슴 한구석이 너무나도 따스해졌다. <쓰르라미, 무더운 날의 골목길>은 교토의 기온 마츠리에서 피리를 연주하던 두 사람의 이야기인데,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커튼 콜>, 그리고 <쇼가 끝나면 만납시다>의 테오와 댄 커플링을 제외하고는 자극적이거나 에로틱한 장면은 전혀 없다. 이 두 사람의 경우도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오히려 애틋하게만 느껴졌다. 특히 카르멘과 호세의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의 모습은 쉬이 잊혀지지 않을듯 하다.

개인적으로 <nero>와 <모노크롬>에서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둘이 기대고 있는 장면이 너무나도 예뻐서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의 정체는 둘째치고 말이다.

<쓰르라미, 무더운 날의 골목길>은 과거의 추억과 결부되어 애절한 느낌이 가득했다. 서로를 마음에만 품고 살아야 했던 그들을 생각하면 요즘 사랑은 너무 순간적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가진 각각의 사연은 내 가슴에 촉촉히 스며드는 봄비같았다. 오랜만에 정말 괜찮은 작가를 만났다고, 난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