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개들 -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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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을 1회부터 주욱 읽어 오고 있는데, 분위기가 어느새 많이 바뀐 걸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가족 이야기나 삶의 묵직함등 조금은 묵직한 주제였다면, 어느 순간부터 블랙 코미디나 풍자를 빌어 쓴 소설들이 눈에 띈다.

내 머릿속의 개들 역시 블랙 코미디이며 풍자극이라 볼 수 있다. 마치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이 겪어온 일들과 심정을 토로하듯이 씌어진 이 소설은 왠지 무성 영화의 변사가 재치좋은 입담으로 그 내용을 이야기해 주는듯 하다.
시종일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작가의 청산유수같은 언변술에 이리 취하고 저리 취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껄껄대며 웃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묘하게 마음속이 가라앉았다. 효용과 가치 창출로만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현대 사회나 자본과 권력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 미의 기준이 일률적인 잣대로만 매겨지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어이없을 정도로 과장된 단어를 사용해서 드러 낸다.

사람은 실업자 상태인 A와 언젠가 실업자가 될 B로 나누어 생각하는 주인공 나 고달수는 어느 날 미국 물 먹고 자칭 팝 아트 예술가가 되어 나타난 마동수에게 한가지 제안을 받는다. 그것은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만들어 달라는 것.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혼을 위해서? 고달수는 처음엔 도덕적 양심이란 것으로 마동수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백수 주제에 그걸 거부할 양심은 곧바로 우주 멀리 날려버리고 마동수의 제안을 받아 들인다.

자, 작전 개시!
그런데, 막상 고달수의 아내 말희를 만나보니 은근히 말도 잘 통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일단 돈을 받았으니, 착착 작업을 진행시키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계절이 두 계절이나 지났다. 그 무렵 말희의 예전 사진을 보게 된 고달수는 말희에게 다이어트를 제안한다. 고달수의 말에 따르면 대리석에서 비너스를 발견하는 것이라나?

호오라.. 알고 보니 고달수도 쭉쭉빵빵한 여자가 좋은 천상 남자로구나. 역시 말이 통한다는 정신적 교류와 몸은 달리 반응하는 고달수는 역시 평범한 남자, 보잘 것 없는 그릇을 가진 남자였다. 어쨌거나 일단 말희는 고달수의 사랑고백(?)에 넘어가 다이어트를 하지만, 그녀의 몸은 단 것을 원했고, 모든 것은 도로아미타불이로다.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 고달수는 말희에게 마동수가 제안했던 이야기를 던지고 그녀 곁을 떠나버린다. 그후 다시 실직자 상태로 지내던 고달수는 말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막상 그녀가 곁에서 없어진 후에야 정신을 차린 고달수는 그녀를 위해 피둥피둥 살을 찌운다.

아아.. 이 무슨 멍청함이란 말인가.
뚱뚱한 여자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녀를 날씬쟁이로 만드는 것도 아니요, 자신이 뚱뚱해져서 그녀와 비슷한 몸매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그 것이 사랑이 아니더냐. 하여간 뚱뚱한 고달수는 뚱뚱한 말희를 찾아 나서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읽으면서 큭큭대고 웃었다.
현란한 말솜씨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절한 비유에 맞장구쳤다.
그러나 결국 쓴웃음이 지어졌다.
이 모든 설정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자, 즉 효용성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사회를 한껏 비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희는 마동수에게 돈줄이기도 했지만, 결혼 당시에는 그럭저럭 봐줄만한 통통함이었다. 그러나 도미행 이후 말희는 설탕중독자가 되었고, 마동수는 성공한 팝아티스트가 되어 마누라를 버릴 음모를 꾸민다. 굳이 사회 전체를 들먹이지 않아도, 필요에 따라 결합하고 필요에 따라 버리기도 하는 현대 사회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가. 마동수의 마지막에 묘한 쾌감이 생겨났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이유는.

사람은 죽으면 다 똑같다.
하지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고 있다.
웃으면서 이 책을 읽어도 마음이 묵직해지는 것은 결국 이 사회를 비꼬거나 비웃어줄 수는 있을지언정 바꿀수 없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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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 우키요에를 따라 일본 에도 시대를 거닐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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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우키요에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냈다.
그러던 중 우키요에에 관한 책이 신간으로 등장한 것을 보고, 얼른 구입했다.

사실, 난 우키요에에 대해 아는 것은 전무하다.
단지 에도 시대 풍속화의 일종이며, 유명한 화가로는 호쿠사이 정도를 아는 게 다였다.
그리고 그 시대 판화를 일컬어 우키요에라고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우키요에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준다.
우키요에의 발생부터 그 마지막까지를 담고 있으며,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함께 서술함으로써 우키요에에 대한 접근을 한층 친밀하게 만들어 준다.

예술이란 것은 그 시대 상황과 동떨어질 수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그림만 가지고 설명을 해봤자 이해가 안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은 그림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함께 이야기한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먼저 언급하고, 그에 맞는 우키요에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도 시대, 막부 말기의 상황에서 성행했던 우키요에.
그것은 민초들이 그림과 같은 예술에 한층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고, 그 시대 소식을 전하는 파수꾼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처음에는 배우나 유녀의 그림을 시작으로 해서, 민중들의 생활상, 풍경화까지 다양한 소재로 그림이 그려지고 판화가 찍혀졌다.
이 흐름은 막부의 지배 상황과 상당히 일치한다. 막부의 지배력이 강했을 때는 막부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우키요에는 만들어질 수가 없었지만, 막부의 지배력이 약해지면서, 막부와 정치를 비판하는 우키요에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흐름에 맞춘 우키요에의 발전상 이외에도 이 책에는 우키요에의 세부 장르에 대한 파트도 있다. 미인화, 춘화, 풍경화, 기담을 바탕으로 한 무서운 그림까지 볼 수 있다.
당대의 유명한 아름다운 유녀들의 그림을 보면 대체로 비슷비슷한 느낌을 준다. 저자가 말했듯이 그 당시 미인화란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에 가까운 모습이었기에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울이란 소재를 사용한 우타마로의 그림은 그런 정형화된 포즈나 모습에서 벗어나 색다른 즐거움을 전해 준다.

일본의 춘화는 농염하면서도 절제미가 있다. 보일듯 보이지 않는 숨겨진 농염함이랄까. 조금 놀라웠던 것은 수간같은 것을 표현한 춘화였는데, 징그럽다는 느낌보다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상상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민중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우키요에는 그 시대의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당시에는 사진이란 것이 없었기에, 당시 풍속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림이다. 그러나 고급 화가가 그린 그림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귀족의 생활상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의 민화처럼 우키요에는 그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다.

풍경화같은 경우에는 요즘 말로 하면 시리즈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아낸 우키요에는 당시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로망을 이루어주는 매개체였음에 틀림없다. 현대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여행에서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다. 여행지의 사진을 보며, 그곳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우리나 에도 시대 우키요에 풍경화를 보면서 그 아쉬움을 달래는 그당시 사람들 사이에 이런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난 특히 요괴 그림에 관심이 많다. 일본에는 팔백만 신이 존재한다고 할 만큼 신도 요괴도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도깨비도 사실은 일본에서 건너온 '오니'를 바탕으로 만들졌을 만큼, 우리나라는 요괴의 종류도 귀신의 종류도 그다지 많지 않아, 난 자연스레 일본 요괴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책 분량때문에 도판 목록이 많지 않아 아쉬운 점은 많았으나. 이렇게나마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책 후반부에는 서양미술에 영향을 준 우키요에와 서양 미술에 영향을 받은 우키요에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상파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도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외에도 모네나 드가 같은 화가들 역시 우키요에에서 받은 느낌을 자신만의 그림으로 그려낸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예술이란 건 역시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우키요에의 탄생에서 소멸, 그리고 그것이 끼친 영향을 비롯해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씌어진 책이다. 따라서 한 작가와 그의 작품만을 다룬 책같은 것에 비해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처럼 우키요에에 대해 거의 모르는 초보자들에게는 우키요에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전체적인 흐름의 파악을 한 후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작가를 찾아내고, 그 작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은 우키요에에 대한 길나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그림인 우키요에. 하지만 그 그림들이 주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언젠가는 꼭 도쿄 하라주쿠에 있는 오타 기념 미술관을 찾아가 우키요에를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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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사각 - 201호실의 여자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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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역시나 우리말도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이리라. 그러다가 원서 제목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
도착은 到着(목적지에 다다름)이 아니라 倒錯(본능 감정 및 덕성의 이상으로 사회도덕에 어그러진 행동을 보이는 일)이란 의미였고, 사각은 四角(네모)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死角(눈길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나 범위)를 뜻했다.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到錯) 시리즈 두 번째 소설인 도착의 사각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이다. 이게 시리즈물인줄 모르고, 일단 제목과 책 표지에 이끌려 구입했는데, 첫번째 시리즈물인 도착의 론도를 먼저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내 손에 들어온 것이 이 책이므로 천천히 책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책 뒷표지의 큰 글씨가 먼저 들어왔다.
"그냥 속았습니다. 아주 유쾌하게...."
이 글씨를 보고 나서 든 처음 생각은 '이 책은 분명히 허를 찌르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였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난 절대 속지 않을 거야. 꼭 그 비밀을 내가 먼저 알아 내고야 말겠어.' 란 것이었다.
결과는?
작가가 설정한 상황 중 두 어가지는 짐작대로 였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무참한 나의 패배였다.
그러나 분하지는 않았다.
작가의 트릭은 적당한 눈속임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으므로.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여럿이지만, 중심 인물은 세명으로 압축된다.
알콜의존증 환자이자 번역가미며 관찰하는 남자 오사와 요시오, 관찰 당하는 여자 시미즈 마유미, 요시오와 마유미를 관찰하는 남자 소네 신키치.

요시오와 마유미의 경우 일기라는 형식을 도입해 화자는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다. 신키치를 포함한 나머지 인물들은 3인칭 서술, 즉 작가 시점에서 서술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액자형 소설이라고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마지막 장을 읽으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이정도로)

반년전 요시오는 자기의 맞은편 맨션에 사는 한 여자가 죽은 것을 본 후 알콜의존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병원 신세를 진다. 퇴원후, 그는 다시 번역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또다시 그 곳에 새로운 여자가 입주한다. 그의 병적인 엿보기 취미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후 요시오의 삶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닫는다.

요시오가 살고 있는 집 맞은편 맨션에 새로 들어온 여자 마유미, 그녀는 어느 날부터 꺼림칙한 시선을 느낀다. 눈을 들어 보니 맞은편 집에 사는 남자다. 그녀는 그를 애써 무시하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꺼림칙한 일들이 자꾸만 생겨난다.

신키치는 요시오와 함께 병원 생활을 같이 했다. 천성적으로 술을 좋아하고 절도를 일삼던 그는 요시오가 마유미를 엿보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에게 적당한 복수를 하기 위해 마유미와 요시오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언뜻 봐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등장 인물들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반감이 교차되고 부딪히면서 주변의 상황이 꼬여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어둠이 세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읽으면서 한 자도 빼놓지 않으려 정독했다.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작가의 트릭에 절대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혼자서 추리를 하고, 상황를 판단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를 감싸는 위화감. 그러나 그게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거지?

그러다가 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과 맞딱드렸다.
그리고 적잖이 당황했다. 
책 후반부 8장이 봉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추리 소설을 뒷쪽부터 읽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나는 결론이 궁금하고 트릭이 궁금해도 참으면서 찬찬히 읽어 가는 편이라, 막상 봉인된 부분을 만났을때 움찔했다.
도대체 얼마나 큰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일부러 봉인을 했을까.
칼을 들어 천천히 한장씩 개봉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비밀이자, 이 책에 사용된 트릭의 결정적 비밀을 알게 되고, 난 아연실색했다. 물론 내가 추리한 것 중에 일치하는 것도 두어가지 있었지만, 그건 별게 아니었다. 이 봉인된 부분이야 말로 작가가 400페이지 정도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배치해두었던 복선과 모든 수수께끼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이 부분을 위한 것이었던가. 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동시에 머릿속에 번쩍하고 불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까지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책.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머리를 굴려도 작가가 궁극적으로 지켜내려 했던 트릭에는 접근 불가!
항간에 이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책에서는 트릭을 풀지 못하겠으면 그냥 작가의 트릭에 속아라!
정도로 바꾸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시야는 생각외로 꽤 좁다. 그래서 사각지대가 많이 발생한다.
당신은 작가가 치밀하게 계산해 놓은 트릭의 사각 지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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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붉은 색을 싫어한다 - 뉴 루비코믹스 718
에스도 에무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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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토 에무는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다. 물론 이전까지는 내가 몰랐던 작가란 말이기도 하다. BL계도 워낙 작가층이 두텁다 보니, 내 취향에 꼭 맞는 작가를 찾기가 힘들다.
난 새로 알게 된 작가가 있으면, 그 작가의 책을 일단 한 두권 사보고,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책은 몽땅 구입하는 편이다. 에스토 에무도 그런 작가중의 하나이다. 

에스토 에무는 <쇼가 끝난 뒤 만납시다>란 작품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무용수, 화가, 락커 등 문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 작품은 내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적은 양의 대사지만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는 대사, 그리고 화려하다기 보다는 멋진 작화가 주는 기쁨, 그리고 스토리의 아름다움은 BL이란 장르가 주는 기존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색다른 장르로서 바라 보게 만들 정도이다.

내가 BL계에 입문한지 아직 2년여지만, 그동안 많은 작가를 만났다. 하지만, 처음엔 이 장르가 주는 겉모습의 즐거움에 치중해서 정신없이 탐독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좋아하는 작가도 많이 생겼고,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을 위주로 읽고 있다.

에스토 에무의 <어리석은 자는 붉은 색을 싫어한다>는 표제작 외 3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어리석은 자는 붉은 색을 싫어한다>는 투우사와 소를 해체하는 작업을 하는 정형사의 이야기이다.

원래 난 투우를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물을 이용해서 유흥을 즐기는 것을 죄 싫어한다. 하지만, 그런 걸 한 수 접고, 만화 자체의 스토리만 보면 정말 멋지다. 투우를 하는 장면도 멋지지만, 슬럼프에 빠진 라피타에게 마우로가 해준 이야기는 정말 인상에 많이 남았다. 그리고 남자들의 몸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 아마도 이 만화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작화도 내 마음에 쏙 든다.

이외에도 정형사 마우로의 이야기인 원탁의 사자, 구두장인과 작가 이야기인 BABY, STAMP YOUR FOOT, 축구장 경비원과 한 축구팬의 이야기를 담은 Tiempos extra와 마지막 단편인 안무가와 댄서의 이야기를 담은 류미엘까지, 이 단편집 역시 신선한 소재와 독특한 이야기 흐름으로 가득하다.

난 다른 작품중에서는 BABY, STAMP YOUR FOOT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마지막 장면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에스토 에무의 만화는 소재 자체의 특이성도 있지만,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나 직업이 정형화 되지 않는 점이 참 좋다. 멋진 그림들은 눈을 사로잡고, 멋진 이야기는 가슴을 사로잡는다. 그게 바로 에스토 에무의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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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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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網恢恢 疎以不失(하늘의 그물은 엉성하지만 하나도 놓치는 것이 없다)

즉, 하늘의 그물은 그물코가 커서 다 빠져나갈 수 있을 것 처럼 보여도, 절때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마타이치가 사건을 한 건 해결하면 늘 하는 말인데, 이 말은 이 책의 내용과 딱 맞아 떨어진다.
죄를 짓고 그 죄가 감추어질 듯 보여도, 결국 그 진상은 다 드러나게 되고, 그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는 말이다.

이 책에는 총 7가지의 요괴와 7가지의 사건이 나온다.
얼핏 요괴와 관련된 사건인 듯 해도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마음속 어둠과 그 인간의 업에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결말은 요괴퇴치인듯 보여도, 결국엔 죄를 지은 사람을 응징하는 것이다.

추젠지 아키히코(통칭 교코쿠토)가 나오는 교코쿠 나츠히코의 교코쿠도 시리즈(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 광골의 꿈)에서는 모든 것을 눈에 보이지 않은 어떤 것 - 요괴일 수도 있고, 망량일 수도 있다- 를 떼어냄으로써 사건이 해결된다. 

항설백물어와 교코쿠도 시리즈가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정반대이다. 항설백물어는 겉으로는 요괴의 소행으로 만들고 일을 해결하지만, 교코쿠도 시리즈는 사람이 벌인 일이지만, 그 모든 것은 사람에게 씌인 그 어떤 것의 소행으로 여기고 그것을 떼어내는 것(제령)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근대를 배경으로 하는 교코쿠도 시리즈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하는 항설백물어의 차이점이 재미있기만 하다. 오히려 항설백물어의 배경이 되는 에도시대쪽이 요괴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당연히 여겨질만도 한데, 오히려 194,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교코쿠도 시리즈가 모든 사건의 바탕에 요괴 혹은 초자연적인 어떤 것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라 여기는 점이 재미있다.

항설백물어를 읽어 보면 마타이치 일행이 짜는 계획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판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 판위에서 움직이는 말은 그 판이 짜여진 대로 움직이게 된다. 처음 읽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도 결국 모든 것이 마타이치 일행의 계획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것이다.

드러나는 진실이 모두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벌인 그 추한 몰골이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모모스케의 말을 빌자면, "진상 따위 모르는 게 나았다"란 말이 절로 나온다.

즉, 모모스케가 마타이치 일행과 다니면서 보는 사건들은 전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추접스런 사건들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모르고 살면 더 좋았을 거란 그말에 완전히 공감이 간다.
단지 수상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물의 이치를 뛰어넘는 그런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불러낸 어둠이었다니.

가타비라가쓰지에서 구상시 그림 족자를 보면서 마타이치가 한 말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서글퍼. 그 노파만이 아니라고. 너도 나도, 인간은 모두 같아.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서 가까스로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지 않으면 살아있지 못해. 더럽고 악취 풍기는 자신의 본성을 알면서도 속이고 어르면서 살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무리하게 쥐어흔들고, 찬물 끼얹고, 볼때기 때려서 눈을 뜨게 해봐야 좋을 것 없어. 이 세상은 모두 거짓투성이야. 그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니 어딘가에서 무너지는 거야. 그렇다고 눈을 떠서 진짜 현실을 보게 되면 괴로워서 살아가지 못해. 사람은 약해. 그러니까 거짓을 거짓으로 알고 살아간다. 그것밖에 길이 없는 거라고. 연기 피우고 안개속에 숨으며 환상을 보고, 그래서 만사가 원만하게 수습되는 거라고. 그렇지 않나?"

마타이치 일행이 왜 모든 사건을 요괴가 벌인 사건으로 마무리 짓는지에 대한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인간은 온갖 추접스런 일들을 벌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추접스러운 진실을 피하고자 하는 것도 인간이다. 속은 썩어들어가도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고 싶어하는 게 인간이기도 하다. 현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본성. 그렇게라도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런 인간의 마음이 마타이치의 말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냉정하게 악당들을 퇴치하는 마타이치 일당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권선징악이란 교훈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꼬집고 있는 이 작품에서 죄를 짓고도 아무런 죄책감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이 결국 자신들의 죄의 댓가를 치르게 되는 장면은 통쾌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그물을 한 번 더 믿어 보자. 결국은 죄를 짓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없어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항설백물어 시리즈로는 <속항설백물어>, <후항설백물어>, <전항설백물어>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된 작품은 항설백물어 한가지이고, 앞으로 속항설백물어와 후항설백물어가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원서는 절대 못읽을 것 같아 한국어 번역판이 얼른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항설백물어 한 권에 7편의 이야기, 그렇다면 100편을 담을 이야기라면 적어도 10권이상의 책이 나올건가? 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항설백물어는 1999년에 출간되었는데, 10년동안 4권이니....
음.... 계산하고 싶지 않아졌다..  (笑)

그럼, 그럼.
교코쿠 나츠히코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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