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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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網恢恢 疎以不失(하늘의 그물은 엉성하지만 하나도 놓치는 것이 없다)

즉, 하늘의 그물은 그물코가 커서 다 빠져나갈 수 있을 것 처럼 보여도, 절때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마타이치가 사건을 한 건 해결하면 늘 하는 말인데, 이 말은 이 책의 내용과 딱 맞아 떨어진다.
죄를 짓고 그 죄가 감추어질 듯 보여도, 결국 그 진상은 다 드러나게 되고, 그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는 말이다.

이 책에는 총 7가지의 요괴와 7가지의 사건이 나온다.
얼핏 요괴와 관련된 사건인 듯 해도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마음속 어둠과 그 인간의 업에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결말은 요괴퇴치인듯 보여도, 결국엔 죄를 지은 사람을 응징하는 것이다.

추젠지 아키히코(통칭 교코쿠토)가 나오는 교코쿠 나츠히코의 교코쿠도 시리즈(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 광골의 꿈)에서는 모든 것을 눈에 보이지 않은 어떤 것 - 요괴일 수도 있고, 망량일 수도 있다- 를 떼어냄으로써 사건이 해결된다. 

항설백물어와 교코쿠도 시리즈가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정반대이다. 항설백물어는 겉으로는 요괴의 소행으로 만들고 일을 해결하지만, 교코쿠도 시리즈는 사람이 벌인 일이지만, 그 모든 것은 사람에게 씌인 그 어떤 것의 소행으로 여기고 그것을 떼어내는 것(제령)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근대를 배경으로 하는 교코쿠도 시리즈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하는 항설백물어의 차이점이 재미있기만 하다. 오히려 항설백물어의 배경이 되는 에도시대쪽이 요괴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당연히 여겨질만도 한데, 오히려 194,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교코쿠도 시리즈가 모든 사건의 바탕에 요괴 혹은 초자연적인 어떤 것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라 여기는 점이 재미있다.

항설백물어를 읽어 보면 마타이치 일행이 짜는 계획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판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 판위에서 움직이는 말은 그 판이 짜여진 대로 움직이게 된다. 처음 읽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도 결국 모든 것이 마타이치 일행의 계획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것이다.

드러나는 진실이 모두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벌인 그 추한 몰골이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모모스케의 말을 빌자면, "진상 따위 모르는 게 나았다"란 말이 절로 나온다.

즉, 모모스케가 마타이치 일행과 다니면서 보는 사건들은 전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추접스런 사건들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모르고 살면 더 좋았을 거란 그말에 완전히 공감이 간다.
단지 수상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물의 이치를 뛰어넘는 그런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불러낸 어둠이었다니.

가타비라가쓰지에서 구상시 그림 족자를 보면서 마타이치가 한 말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서글퍼. 그 노파만이 아니라고. 너도 나도, 인간은 모두 같아.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서 가까스로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지 않으면 살아있지 못해. 더럽고 악취 풍기는 자신의 본성을 알면서도 속이고 어르면서 살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무리하게 쥐어흔들고, 찬물 끼얹고, 볼때기 때려서 눈을 뜨게 해봐야 좋을 것 없어. 이 세상은 모두 거짓투성이야. 그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니 어딘가에서 무너지는 거야. 그렇다고 눈을 떠서 진짜 현실을 보게 되면 괴로워서 살아가지 못해. 사람은 약해. 그러니까 거짓을 거짓으로 알고 살아간다. 그것밖에 길이 없는 거라고. 연기 피우고 안개속에 숨으며 환상을 보고, 그래서 만사가 원만하게 수습되는 거라고. 그렇지 않나?"

마타이치 일행이 왜 모든 사건을 요괴가 벌인 사건으로 마무리 짓는지에 대한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인간은 온갖 추접스런 일들을 벌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추접스러운 진실을 피하고자 하는 것도 인간이다. 속은 썩어들어가도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고 싶어하는 게 인간이기도 하다. 현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본성. 그렇게라도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런 인간의 마음이 마타이치의 말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냉정하게 악당들을 퇴치하는 마타이치 일당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권선징악이란 교훈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꼬집고 있는 이 작품에서 죄를 짓고도 아무런 죄책감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이 결국 자신들의 죄의 댓가를 치르게 되는 장면은 통쾌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그물을 한 번 더 믿어 보자. 결국은 죄를 짓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없어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항설백물어 시리즈로는 <속항설백물어>, <후항설백물어>, <전항설백물어>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된 작품은 항설백물어 한가지이고, 앞으로 속항설백물어와 후항설백물어가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원서는 절대 못읽을 것 같아 한국어 번역판이 얼른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항설백물어 한 권에 7편의 이야기, 그렇다면 100편을 담을 이야기라면 적어도 10권이상의 책이 나올건가? 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항설백물어는 1999년에 출간되었는데, 10년동안 4권이니....
음.... 계산하고 싶지 않아졌다..  (笑)

그럼, 그럼.
교코쿠 나츠히코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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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자파 스트리트 - 행복유발구역
노나카 히이라기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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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랭크자파 스트리트.
이 책을 배송받고서 난 조그마한 감탄사를 내뱉았다.
너무 예쁜 표지 그림과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
책 표지를 보고 왠지 너무너무 예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멋지게 적중!
총 일곱편의 단편을 읽는 내내 내 입가에는 미소가 머물렀다.

프랭크자파 스트리트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종류의 동물들도 함께 산다.
사람으로는 극장 영사실에서 일하는 하루군,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는 미미양, 그리고 언뜻 보기엔 노숙자이지만 실제로는 부자인 가면맨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사람보다 등장 동물의 수가 더 많다. 그중에는 새침떼기 고양이 베호,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내는 쿨 뷰티 펭귄 그레이스, 헌책방에서 일하는 폭신폭신 포실포실 자이언트 팬더 와이와이, 너무나도 맛있는 칵테일을 만드는 마담 토끼 릴리, 프랭크자파 거리의 부동산업자 퍼그 공골라 씨, 테리어 종 정원사 보브와 아이스크림 소다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는 샤벳양, 그리고 기린 린키와 얼룩말 시마조, 레스토랑의 주인인 종마 안토니오, 우아한 타조 조세핀까지... 그 이름을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등장 동물(?)이 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등장하는 여러 동물들 역시 사람들과 같은 고민을 하기도 하고, 시샘도 하고, 사랑의 열병에 아파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등장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인간과 함께 오랫동안 살아온 반려 동물인 개와 고양이, 그리고 초식동물이나 조류다. 물론 잠깐 여러 동물들을 언급하면서 늑대같은 맹수가 언급되긴 하지만, 대부분의 등장 동물들은 사람에게 귀염움을 받는 동물들이다.
자이언트 판다 역시 육식대신 조릿대를 먹고 사는 동물이니, 육식동물은 아니다.

왜 그럴까?
그건 프랭크자파 거리의 따뜻하고 다정한 이미지에 맞게 인간들에게 친숙한 동물들을 전면으로 내세운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그리고 조금 확대된 생각이지만, 이렇게 동물과 사람이 아름다운 공존을 하며 사는 세상을 꿈꿔 본다.

일곱편의 단편은 다양한 주인공을 내세워 일상의 소소하고 즐거운 순간들을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물론 그곳 역시 갈등도 있고, 사랑의 아픔도 있고, 자신보다 잘 나가는 상대에 대해 시샘하는 모습도 있다.
연인들의 알콩달콩한 순간, 신혼 부부의 다정한 모습, 모두 다 함께 참가하는 피크닉의 즐거움, 서프라이즈 파티까지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게다가 이 책속에는 맛있는 음식 이름이 줄줄줄 연달아 나온다. 새벽에 읽을 때 심한 공복감에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경험까지 하게 되었으니, 배가 고플때는 이 책을 잠시 멀리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불어 각 에피소드의 마지막에는 그 에피소드와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요리의 레시피도 나온다. 요리에 대한 감각이 좋은 분이라면 그 레시피로 멋진 음식을 만들어 낼수도 있지 않을까?

저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라는 앤 셜리의 말처럼, 문앞에서 눈을 꼭 감았다가 문을 열면 그 앞에는 프랭크자파 스트리트가 펼쳐져 있을 것 같다.
길을 걷다 올려다 본 건물의 볕 잘드는 베란다에는 팬케이크를 나눠먹는 연인의 모습이 보일것 같고, 헌책방의 서가 사이에는 복슬복슬 포실포실한 와이와이의 모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극장에 가면 아이스크림 소다를 맛있게 만드는 샤벳양과 그녀에게 눈을 한시도 떼지 못하는 보브가, 공원에는 새침떼기 베호와 가면맨이 너른 풀밭에 담요를 깔고 맛있는 런치를 즐기는 모습이 보일것 같다. 마음이 울적한 날 들어간 바에서는 마담 토끼 릴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칵테일을 만들어 줄 것 같고,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그레이스가 만든 마네키네코 아이스케이크가 냉동고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현실이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면 다시 평범한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질테지... 그러나 프랭크자파 스트리트의 곳곳을 누비며, 내 눈에 담아 놓은 그 풍경들은 내 기억의 서랍 속에 고이 들어 있다가 눈을 감으면 다시 내 눈앞에서 펼쳐질 것 같다.

왠지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은 프랭크자파 스트리트.
예쁜 삽화는 프랭크자파 스트리트의 이미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 주었다.
나도 베란다에 테루테루보즈를 매달아 놓으면 그들의 피크닉에 함께 참가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본문 내용중 이런 말이 있다.
"행복은 걸어오지 않아. 그러니까 걸어가는 거야."
이 말에는 나도 이의가 없다.
행복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난 이번만큼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이 내게 걸어오는" 기적같은 순간을 맛볼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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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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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 잘 안 풀리십니까?
고민이 쌓였는데, 상담할 곳이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이라부를 찾아 주세요.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시리즈가 총 세 권이란 걸 책 검색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구매한 책들중에 그 세 권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인 더 풀 - 공중그네 - 면장선거로 이어지는 시리즈 중 어쩌다 보니 내가 제일 처음으로 읽은 건 공중그네이다. 하지만, 같은 콤비가 등장해도 연작이다 보니 무엇을 먼저 읽든지 상관은 없을 것 같긴 하다.

제 131회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공중그네. 역시 오쿠다 히데오식의 유머스러움으로 한껏 무장한 책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책은 가볍고 즐겁다. 유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하다. 내가 이제껏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공중그네에는 총 5편의 단편이 연작으로 실려있다.
뾰족한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하는 야쿠자 이야기인 <고슴도치>, 인간 불신으로 공중 그네에서 자꾸만 추락하는 곡예사 이야기인 <공중그네>, 장인이자 병원 원장의 가발을 벗겨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는 의사의 이야기인 <장인의 가발>, 제구력 통제 불능에 빠진 야구 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3루수>, 잘 나가는 소설가이지만 자신이 쓴 소설이 기존 소설과 겹치는 게 아닌가가 두려운 <여류작가> 이야기까지, 나름 잘 나가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에겐 숨겨진 고통이 있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들이 찾게 된 곳은 이라부 종합병원의 신경과.
그런데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일단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건 신경과 의사 이라부와 간호사 마유미이다.
이라부는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몸을 가진 의사. 그가 내리는 처방은? 일단 주사 한대!!
간호사 마유미는 초미니 스커트에 환자 앞에서도 담배를 물고 있으며, 세상 만사 관심없는 듯한 나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콤비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게다가 이라부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이라부의 말에 푹 빠져 다음 진료를 예약하는 환자들.

이라부의 진료 방식은 독특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이렇게 진료할 신경과 의사는 없어 보인다만은....
선단 공포증을 앓는 야쿠자에게는 극약 처방이나 다름 없는 뾰족한 물건을 들이대지를 않나, 점프를 하지 못하게 된 공중 곡예사를 치료할 때는 오히려 본인이 더 신나서 서커스장으로 간다. 왕진이란다. 서커스장에서 공중 곡예를 배우는 이라부. 거구의 몸이 하늘을 날다 뚝 떨어진다. 상상한 해도 웃음이 연신 터져나온다. 특히 몸은 안돌아가고 목만 돌려서 점프라니....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어 하는 의사 친구에게 내린 처방은 간판에 낙서해서 묘한 글자 만들기... 그러나 그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친구. 결국 이라부는 병원장의 가발을 홀랑 벗겨내는 큰 사고를 친다. 사실 가발이란 것이 보는 사람에겐 웃겨 보여도, 가발을 착용한 사람에겐 엄청난 컴플렉스다. 병원장이란 위치가 있어 모두 쉬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겁없는 이라부는 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듯 보인다.

제구력 통제 불능에 빠진 야구선수와는 캐치볼을 즐기고, 자신의 소설에 대해 불안해 하는 여류 작가에게는 자신이 글을 쓰고, 마유미가 그림을 그린 원고를 보여준다.

정말 이라부가 하는 일은 이해불가, 통제불가의 영역에 있는 듯하지만, 어느새 환자들은 그의 낙천적인 모습에 휩쓸린다. 치료가 될 것 같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이라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과 마주하게 되는 환자들. 이라부의 특기는 환자들이 자신이 직면한 두려움의 원인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 뿐, 실제로는 별 치료다운 치료는 하지 않는 듯 보인다.

마음의 병이란 어떤 것일까.
그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다. 무슨무슨 증상에는 무슨무슨 약을 처방한다라는 것이 신경과에서는 씨알도 안먹힐 소리 같다. 개개인의 삶은 모두 다른데, 그걸 일률적으로 처리하기란 애초부터 무리가 아닐까. 어찌보면 오히려 신경과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이라부로 보이지만, 그의 그러한 성격이 오히려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이라부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세상만사 고민투성이 어려움 투성이로 가득 찬것 같아 보여도 실제로는 별 것 아니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혼자서 고민하고 끙끙 앓고, 다른 사람 탓을 하다보니 그 상처는 더 깊어지고 더 악화되는 게 아닐까. 이라부처럼 산다고 해서, 또한 이라부가 내린 처방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자신에 대해 먼저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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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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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 제 1탄.
난 갈릴레오 시리즈를 용의자 X의 헌신를 시작으로 성녀의 구제, 그리고 탐정 갈릴레오 순으로 읽게 되었다. 먼저 읽은 책들의 트릭이나 스토리 짜임새가 워낙 탄탄해서 그런지 연작 단편 시리즈인 탐정 갈릴레오가 조금 기대에 미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탐정 갈릴레오에는 총 5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제일 첫 단편인 <타오르다>는 몇 년전 일본 드라마로 먼저 접했었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고 느낀 나는 드라마를 보기를 관두기에 이르렀고, 그새 몇 년이 흘러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탐정 갈릴레오는 데이도 대학의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를 일컫는다. 형사 구사나기의 대학 친구인 마나부의 역할은 경찰이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길 한가운데서 한 젊은이에게 발화 사건이 발생해, 그 젊은이는 죽고 나머지는 중상을 입는 사건인 <타오르다>, 저수지에서 발견된 사체와 그의 얼굴을 찍어 낸 듯한 데드마스크에 관한<옮겨붙다>, 심장 부근의 피부만이 괴저를 일으켜 죽은 사체의 수수께끼를 다룬 <썩다>, 바다 한가운데서 발생한 폭사 사건을 다룬 <폭발하다>, 목격자는 유체 이탈 상태였다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이야기인 <이탈하다> 등 이 작품에서는 통상적으로 그 원인을 짐작하기 어려운 괴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초자연적 현상이란 것도 대부분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 유가와는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 사건들이 가진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원리를 알고 보면 간단하다라는 말도 있듯이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면 이거 너무 간단한 것이었잖아, 하고 맥이 풀리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여기에 등장한 사건들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첫번째 시리즈라 그런지, 아니면 단편들이라서 그런지 추리를 해나가고, 트릭을 풀어나가는 것에 있어서의 긴장감은 사실 떨어지는 편이다. 다만, 내가 먼저 읽은 시리즈에 비해 과학적 이론에 근거한 트릭의 해명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범인들이 범행을 너무도 순순히 자백해서 좀 맥이 빠졌다고나 할까.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범인들은 소심했는지 모르겠지만, 단편 추리 소설은 장편에 비해 긴장감이 확실히 덜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까지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10종 중에서 이건 좀 덜 재미있었다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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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원숭이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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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읽고 받았던 충격과 공포가 아직도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인 <외눈박이 원숭이>를 집어 들면서도 내 마음은 평정을 찾지 못했다. 과연, 이번엔 어떤 이야기로 나를 옥죄어 올 것인가 하는 두려움에..

사립탐정 미나시는 신주쿠 뒷골목의 로즈 플랫이란 곳에서 팬텀이란 탐정 사무소를 차려 놓고 있다. 현재는 다니구치사에서 의뢰 받은 일을 위해 잠복 근무중이다. 그의 특기는 소리를 기막하게 잡아낸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엉뚱한 일로 흘러가 미나시는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되고 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귀로 살인 사건을 들은 것이지만)

이쯤되면 수상하다. 미나시는 소머즈라도 된다는 말인가? 책 앞페이지에서도 나오지만, 그의 귀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그것을 감추기 위해 늘 헤드폰을 착용한다. 과연 그의 귀는 어떻게 생겼기에 헤드폰을 벗으면 사람들은 그를 슬슬 피하게 되는 것이고, 그는 건물 밖에서도 작은 소리 하나까지 잡아낼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미나시가 고용한 후유에는 미나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굉장히 독특한 능력을 가진듯 하다. 그녀가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다닐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외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미나시의 스승인 노하라 영감님은 발음이 줄줄 새고, 마키코 할머니는 밤이 되어도 불을 켜지 않는다. 쌍둥이 자매인 도우미와 마이미는 게임을 할 때 하나의 조종기로 익숙하게 게임을 하고, 호사카는 퇴근할 때마다 의자를 가지고 퇴근한다.

도헤이는 트럼프를 만지는 일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 게다가 음침한 술집 '지하의 귀'의 마스터까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책을 읽는 내내 난 영화 X- 맨을 떠올린다거나 하는 등 이 사람들의 정체에 대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게다가 현재 미나시가 담당하고 있는 사건은 꼬이고 꼬여 살인 사건이 일어난 상태일 뿐만 아니라, 7년 전에 죽은 아키에는 후유에가 근무하는 탐정 사무소 요츠비시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자살인지, 살인인지도 묘연하게 되어 버렸다.

이 작품은 복선을 굉장히 잘 이용한 작품이다.
특히 도헤이의 트럼프 점은 그 모든 것을 암시하고 있지만, 트럼프 점에 대해서 또는 카드 각각의 의미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나중에 그 의미를 알게 된 후에서야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그제서야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되었다. 

모든 것은 책 속에 있다.
추리 소설을 맨 뒤부터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스로 알아 내라.
그러나 섣불리 결론을 내지 마라.

하지만 나는 미치오 슈스케가 파놓은 함정에 쉽게 걸려 들었다.
나는 별의 별 상상을 하면 혼자서 퍼즐을 끼워 맞춰보려고 했지만, 결국 내가 집은 퍼즐 조각은 조금씩 미묘하게 다른 조각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피식거리며 웃게 되었다.

이 소설은 책이란 것의 장점을 굉장히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것을 비주얼화 하면 우린 그 트릭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에 다 알아챌지도 모른다.
책이라는 것의 특성상 글자를 눈으로 읽고, 그 정보만으로 구체화시켜 가는 나의 뇌는 얼마나 단순한 사고만을 하는 구조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고는 선입견처럼 내 머릿속을 지배해 결국 끝까지 내 생각만을 고수하고 있던 나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큰 웃음을 터뜨릴수 밖에 없었다.

하드 보일드 소설처럼 시작해서 판타지가 되나 싶지만, 다시 본연의 탐정 소설로 또 돌아 간다. 그러나 그 미스터리들이 차근차근 풀리면서 가슴 한켠이 따스해져옴을 느낄 수 있다. 내 설명이 뭔가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아도, 이건 말로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직접 읽고 느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외눈박이 원숭이일 수도 있고, 억지로 외눈박이 원숭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외눈박이 원숭이라고 해서 슬퍼할 필요도,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
Let it be !
순리대로 받아 들이고 순리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 보고 제대로 사랑할 줄만 알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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