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에 검은 날개를 - 뉴 루비코믹스 625
야마시타 토모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야마시타 토모코의 만화를 보면 단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단편을 참 잘 그려내는 만화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장편도 좋지만, 짤막짤막한 이야기에 모든 걸 다 담아내는 건 역시 능력이란 생각도 든다. 소설도 장편보다는 단편이 어렵다고 하듯이 만화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장편이라면 그 충분한 길이안에 천천히 담아내면 되지만, 단편은 짧은 분량안에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걸 다 담아내야 하므로. 

<사랑하는 마음에 검은 날개를> 역시 단편집이다. 표지도 마음에 들었고, 제목 또한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구입한 책인데, 생각보다 단편수가 꽤 많았다. 

전했으나 전해지지 않은 마음의 아픔을 담아 낸 <사랑에 못을 박다>는 너무나도 안타까워 속이 상할 정도였다. 정말 내가 모토히사의 누나였다면 아시다를 늘씬하게 패줬을 거다. 누나의 속마음이 너무나도 잘 묘사되어 있어, 다른 두 녀석이 아닌 누나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지금도 모토히사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찢어질 것 처럼 아파온다. 

<이츠 마이 초콜릿!>은 보다가 한순간에 웃음이 폭발해 버린 단편이다. 여섯형제중 첫째, 그러다 보니 늘 동생들을 돌봐야 하고, 늘 양보해야했던 미노리의 입장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와닿았다고 해야 할까. 특히 미노리가 감정을 폭발시킨 장면, 더군다나 자신의 성벽을 저도 모르게 밝혀버린 장면에서는 이거 웃어야 하나 어째야 하나하고 고민했지만 결국 웃기로 했다. 그러나 더욱더 웃어버린 건 동생들의 반응과 부모님께 그 사실을 알렸을 때, 부모님의 반응이랄까. 심각해질 수도 있는 소재를 코믹함으로 담아낸 작품이라 너무나도 즐겁게 읽었다.

<악당의 이>는 굉장히 안타까운 단편이었는데, 오랜 기간 상대를 사랑했지만 보답받을 수 없는 사랑, 그리고 상대의 사랑을 눈치챘으면서도 되돌려 줄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왠지 바보같으면서도 순수해서 마음이 시려왔던 작품이랄까.

<사랑하는 마음에 검은 날개를>은 M속의 남자 이야기이다. 자신의 성벽이 M이라고 하며 나카즈에게 고백하는 후타카미. 둘의 실갱이가 귀여우면서도 안타깝고, 그렇게 밖에 전할 수 없는 후타카미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후타카미를 마구 응원해주고 싶다.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긍정의 힘을 발휘하는 후타가미의 모습은 슬픈 코미디 영화같은 느낌이었달까. 웃으면서도 눈물이 나와버릴 것 같은 그런 영화가 떠올랐다.

<그 불을 넘어와> 역시 <사랑하는 마음에 검은 날개를>과 비슷하다. 상대가 받아줄 것 같지 않아 기묘한 방법으로 상대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어하는 바보 녀석. 비록 상대가 마음을 열지 않을지언정, 그래도 고백은 진지하게 하는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직 어려서 그렇게밖에 표현 못하는 두 녀석이 어찌나 귀엽던지. 학원물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장면을 보면 귀엽다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FOOL 4 U>는 정말 제대로 된 바보 공이 나온다. 20년 넘게 사귐을 지속해온 두 친구. 한 친구의 시선은 늘 한 곳을 향해 있지만, 그 시선을 받는 주인공은 정작 '네가 여자였으면 좋았을텐데..'라는 말 뿐. 나중에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을 때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알고 보니, 공수 둘다 바보였잖아!!!!!

<포토제닉>은 워낙 짧은 단편이지만, 설정이 너무나도 웃겨서 폭소를 터뜨린 작품이다.

총 7 편의 단편, 나이대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른 이들이 등장해서 때로는 안타까움과 슬픔을, 때로는 슬픔과 웃음을 동시에, 때로는 연민을, 때로는 아픔을 한 권에서 동시에 느끼게 해 준 <사랑하는 마음에 검은 날개를>은 한 번 읽는 것보다는 두 번째 읽었을 때 그 맛이 더 진하게 우러나는 만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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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의 고양이
사이먼 토필드 지음 / 인간희극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구매하게 된 동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그건 다름아닌 고양이 만화란 것이기 때문이다.
난 강아지를 키우지만, 고양이도 무척이나 좋아하며, 또 부모님댁에도 고양이가 두 마리 있어 늘 그녀석들을 관찰해왔다.
사실은 그 녀석들을 길에서 납치(?)해 온 것도 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고양이 만화나 고양이 관련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또 눈에 띄는대로 구입하는 편이다. 이 만화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집어든 것이었다.

하지만 배송을 받고 책 표지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표지의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니라 개구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고양이같은 개구리!?
혹시 꼬리 달린 유전자 변형 개구리!?
오만가지 상상을 하면서 일단 책 표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왼쪽에 있는 스티커에는 유투브에 동영상으로 올라왔다는 게 보인다.
흐음... 평소 유투브는 별로 들어가지도 않는 사이트라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가끔 일본 니코니코동화에는 들어가도 유투브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것도 그 이유다.

어쨌거나, 책을 펼쳐보고는 좀 당황스러웠다.
내가 상상한 고양이 만화는...
복슬복슬한 털...
초롱초롱한 눈.
애교만점의 몸짓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것이었기에.
물론 책 표지만으로도 가히 고양이의 모습이 짐작은 되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라고 외치고 싶던 순간!!
역시 만화는 작화가 다가 아니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만화는 작화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내용이 중요하다는 사실말이다.

비록 개구리를 닮은 고양이인데다가,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만화라서 그림으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쳤다.
고양이의 기본적인 습성 +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만화라고 할까.

그 모든 것은 단 한마디의 말이 없어도 고양이의 행동이나 표정만으로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 물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장면만 봐도 그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고양이의 습성과 관련된 묘사가 많다.

특히, 빨래 건조대의 마른 빨래를 모조리 끌어 내려 그위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았을때 쓰러지도록 웃었다. 고양이들은 천성이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녀석들이고 푹신푹신한 걸 좋아하는 녀석들이라 완전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또한 여행용 캐리어에 들어가기 싫어서 반려인과 기싸움을 하는 고양이의 모습은 어찌나 웃기던지.....
다만, 고양이의 의인화 부분이 많아서 순수한 고양이 만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그 모든 것도 고양이의 습성을 잘 관찰한 것에서 나온 것이니 그다지 거부감은 없다.

한마디 말도 없이 단 한장면만으로 웃음을 안겨주는 사이먼의 고양이.
애묘가라면,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신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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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 책제목을 보고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이별에 좋은 이별이 어디 있어란 것이 원래 내 생각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럴 거라 생각한다. 이별은 슬픈 것이야. 이별은 아픈 것이야. 내게 이별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그런 식으로 연상되었다. 늘.
뭐, 가끔은 지긋지긋한 관계에서 놓여나는 상태가 되는 이별이란 것에는 속시원하다라는 느낌도 받았지만 말이다.

닌 감정 표현에 서툰 편이다. 그게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즐거워도 행복해도 잘 표현을 못한다.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도 표현을 잘 못한다.
그래서 좋아도 찡그리고, 아파도 찡그렸다.
그러다가 어느새 표정이 없어졌다. 아마도 사춘기를 지나면서 그게 좀더 가속화되었고, 긍정적인 감정 표현은 어느새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나의 상태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분명 현명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는 주변 분위기와도 상관이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한국인이란 것, 그리고 태생이 경상도란 것. 이 두 가지는 분명 나의 감정 표현에 있어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이란 것도.

어릴 땐 속상하거나 마음이 아프면 눈물부터 나왔다. 그냥 엉엉 울면 되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것이 꼴불견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후로는 냉소적인 미소를 짓는 것으로 바뀌었다. 특히 연인과의 이별에 있어서는..

인간은 살면서 누구나 이별의 순간을 경험한다.
그것은 가족일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으며, 내 경우에는 키우던 강아지와의 이별도 포함된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 살아야만 했던 것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상처가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두 차례의 입원을 계기로 동생과 한동안 떨어져 있었던 것이 내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있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난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누군가가 곁에 있지 않으면 한시도 참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하기에 당연히 이별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내가 누군가의 죽음이란 것으로 이별을 한 케이스는 크게 많지 않다. 아직 부모님께선 젊으신 편이고, 건강하시기 때문이며, 동생도 잘 지내기 때문이다. 조부모님의 경우 외할아버지는 내가 너무도 어릴 때 - 즉, 죽음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이 - 에 돌아가셔서 슬픔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맞이했던 할어버지의 죽음과 30대 초반에 맞이했던 할머니의 죽음은 내게 충격이었다. 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었을 때, 처음엔 멍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얼마 지난 후 눈물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왠지 할아버지께 전화를 하고 싶었는데..... 라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 왔다. 그리고 몇 년후, 할머니의 부고를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상태였던지라 그나마 받아들이는 것이 수월했다. 물론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그나마 그전까지 할머니를 자주 찾아 뵈었던 게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에도 커다란 상실감은 크게 느낄수 없었다. 물론 두 분다 초장수를 누리셨다는 것이 내가 그 이별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된 것도 두 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겠지만.

연인과 헤어질 때는 무척 힘들었다.
지금 내 나이가 서른 중반이니 연애 한 번 안해봤다면 말짱 거짓말이고, 여러 번의 연애와 여러번의 이별을 거쳤다. 처음엔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미친듯이 울고, 잡아 봤지만, 이미 끝난 건 되돌릴 수 없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교를 휴학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이니 그 충격은 내게 꽤나 컸던 모양이다.

연인과의 이별에서 난 여러 가지 패턴을 경험했다. 붙잡아 보기, 새로운 연애 하기, 도망치기, 착한 여자 되어 보기, 그리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여러 가지를 써놓았지만, 각각이 다른 건 아니다. 대부분 두 세개가 연결되어 이별에 적응해 나갔다. 붙잡아 보다가 안되서 결국 헤어지면 애써 담담한 척을 했다. 누군가 그 사람 잘 지내라고 물으면 웃으면서 잘 지낸다고 했다. 난 그게 정답인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애써 착한 여자가 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난 이별에 통 적응을 하지 못한채로 나이를 먹어 갔다. 헤어짐은 늘 아프다는 것을 뼛속 깊이 각인시킨채.

그러다가 20대 후반이 되면서 오랜 기간 사귄 연인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는 내 쪽에서 이미 이별 준비를 말끔히 마친 상태였다. 몇 년 내내 사귀면서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는 동안 그 만남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에 질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이별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만난 시간이 길면 길수록 공유했던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함께 먹은 음식, 함께 간 곳 등등 생각보다 이별 후에 정면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30대 초반 마지막 연인과 헤어졌다. 그때는 분노로 가득했다. 나를 속였던 사람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것을 진즉에 깨닫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 사랑이라 여겼던 것이 모두 거짓같이 느껴져 매일매일 검은 오라를 내뿜었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이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의외로 간단한 해답이 있었다. 모든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긍정도 하지 않는다가 그 해답이었다. 너와 만든 추억은 다른 사람을 만나서도 만들수 있는 거에 불과하다라는 생각. 그게 내가 찾은 해답이었다. 그렇게 되니,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한가닥 미련조차 남지않게 되었다. 오히려 속이 시원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을 스스로 익혀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이다. 이별을 긍정하고 감싸안는 것. 무척이나 힘들지만, 의외로 시간은 잘 흘러가고, 감정은 무디어 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해 왔던 이별의 패턴과 내가 이별에 대해 대처하던 여러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서 쓴웃음이 지어졌다. 나도 참.. 바보같았구나하고.
이별하면서 착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었고, 누군가 대체할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었고, 자신의 껍질속에 몸을 움츠리는 달팽이가 될 필요가 없었다. 

다만 현실을 바로 보고, 이별을 긍정하고, 마음을 다독이며 스스로를 더 사랑하면 되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닫긴 했지만, 내가 이별의 리비도를 잘 받아들이고, 그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받아 들였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왠지 속이 개운해진 느낌이랄까. 지금도 가끔 나에게 괜찮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난 정말 괜찮다고 하는데도,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젠 더욱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이별을 잘 극복했고, 그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해서 잘 쓸고 있다고. 비록 책에서 제시한 것처럼 야외 활동같은 행동은 별로 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을 독서나 공부 혹은 다른 대체적고 긍정적인 활동으로 바꾸어 생활해 왔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비록 혼자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충족감과 행복감이 충만하다. 

이 책을 좀더 일찍 만났으면 이별에 대해 더 잘 대처했을텐데라는 아쉬움도 들지만, 그러나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앞으로도 겪어야 할 수많은 이별의 패턴을 생각해볼 때, 지금에라도 이 책을 만난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왠지. 이제 더이상 이별은 두려워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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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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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에는 바다가 없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본 내가 무심코 중얼거린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달에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있어. 그리고 토끼는 절구를 찧고 있지라고 아무 의심없이 믿었건만, 학교에 들어간 후 달에는 토끼도 없고, 계수 나무도 없으며 있는 거라곤 황량한 땅뿐이라고 배웠다. 이미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주선은 이미 달에 갔으며, 우주인들은 달 표면에 그 발자욱을 남겼기 때문이리라.

뭐, 그렇다고 그후에 달을 보면서 현실적인 생각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어둠속에서 빛나는 어슴푸레한 달빛은 신비로웠고, 우주인들이 보지 못한 달의 이면에는 다른 것들이 분명히 존재할 지도 몰라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비록 계수나무와 토끼는 없을지 몰라도.

책의 제목인 달의 바다. 먼옛날 육안으로 달을 관찰했을 때 달 표면에 보이던 어두운 부분은 바다라 여겨졌고, 지금 그것이 바다가 아니란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칭은 바다로 불린다. 아마도 굳이 명칭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소설 달의 바다는 내게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제목도 그렇지만, 구성이나 스토리도 그렇다. 소설은 두개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편지 형식, 하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1인칭 화자가 서술하는 방식이다.

편지는 좀 읽다가 보면 알게 되지만 주인공의 고모가 자신의 어머니, 즉 화자의 할머니에게 보내는 것이고, 현재 일어나는 일은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우주인이 되어 우주선을 타고 우주 정거장에서 일한다는 고모는 벌써 오래전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혼 후 아이만을 한국으로 보냈다. 벌써 그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고모는 여전히 미국에 있다.

할머니의 부탁으로 미국에 고모를 만나러가게 된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 민이. 주인공인 은미는 기자로 취업하기를 희망하지만 번번히 낙방하는 신세고, 민이는 남자이지만 성전환 수술을 받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이 할머니의 부탁으로 미국에 가서 고모를 만나게 되고 고모와 관련된 진실을 알게 된다.

얼핏 보면 줄거리 자체는 참 간단하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줄거리보다 간단하지 않다. 고모가 보낸 편지에 담긴 건 완전한 거짓도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처음엔 그 사실을 알고 웃음이 터져 버렸지만, 고모가 그렇게 했던 이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니 고모가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제목인 달의 바다처럼 직접 확인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는 상상만으로도 달에는 바다가 존재헀다. 물론 우주선이 달에 우주인들을 내려준 후 달에는 바다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말이다. 즉, 존재한다는 것은 있다고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비록 사실이 밝혀지만 한낱 꿈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그 꿈을 꾸는 동안은 사람들은 행복하다. 차라리 진실을 모르고 꿈을 꾸는 편이 더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모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전해주고자 한 것은 그런 꿈이 아니었을까.  
사실 행복이란 건 사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굳이 진실을 파헤치고 그 속에 숨은 걸 까발린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모른 척, 가끔은 속는 척 하면서 현실을 우회해갈 때 행복한 순간을 더욱더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현실 회피에서 오는 충족감과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파헤칠 것 없는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름답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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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가무연구소
니노미야 토모코 글, 고현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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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작가가 <노다메 칸타빌레>를 그린 그 작가 맞아????
첫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뒷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화로 봐서는 노다메의 작가가 맞는데 말이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실 충격적일만큼 재미있었다가 맞는 표현일지도.

작가 자신을 모델로 술주정뱅이들의 생태를 거침없이 그려낸 음주가무연구소는 20대때의 내 모습을 여러 가지로 떠올리게 했다. 물론 작가처럼 그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술을 많이 마셨던 시기가 20대였던 만큼 웃지 못할 사건도 많은 건 사실이다.

한달을 30일로 기준으로 잡았을 때 25일을 술을 마시던 때였으니, 기억 몇 개쯤은 우주로 사라졌고, 물건 몇 개쯤은 행방이 묘연한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 술을 맛본 건 고교시절이었다. 수능 1세대라는 부담감이 백배 작용해서란 건 거짓말이고, 다들 백일주니 88주니 7땡주니 하면서 酒님, 酒님을 부르짖던 때라 호기심에 마셔본 것이 술과의 첫만남이다.

그후 대학에 들어가니, 완전 자유로운 생활에 그 여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듯이 술을 탐했다. 난 역사 전공이었는데, 사악했다 정말로... 사학을 공부한 게 아니라 사악을 배웠다. 게다가 동아리 활동은 풍물 및 마당극과 탈춤을 배우는 곳이었으니, 풍류를 즐기며 또 술잔을 기울이고.... 대학 다니는 내내 술과 친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만 마시면 사람을 기억 못하는 통에, 술을 즐겁게 마시고 다음날 만나면 사람을 알아 보지 못해 당황스러움을 겪은 일도 한두번이 아니요, 심하게 많이 마신 날은 말그대로 블랙 아웃(필름이 끊김)이 되어 이틀동안 기절한 적도 있고,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으니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뭐... 그렇게 살았던 인생의 10년을 반추해 보니, 이 책의 내용이 공감백배로 다가오는 건 당연하다. 내가 보기에 작가가 이 책을 펴낸 의도는 술을 적당히 마십시다라는 의도로는 절대로 안보인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술에 관한 에피소드 일색, 그것도 어디에 내놔도 절대 꿀리지 않을 만한 포스를 갖고 있는지라, 그저 킥킥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해도 벅차더이다.

술이란게 사실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울 조상님들의 말씀으론 술이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즐겁게 마시고 즐겁게 취하면 그 이상의 천국도 없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위장의 내용물을 다 확인해야할 지경에 이를수도 있고, 까딱하다가는 병원에 실려갈 수도 있고, 괜히 다른 사람들과 분란을 일으킬 소지도 주는 것이 바로 술이니까.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에피소드를 보자면 늘 술을 마시고 후회를 해도 또 술을 마시는 건, 술이 주는 즐거움이 더 컸기에 그런게 아닐까. 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자신의 입장에 맞춰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적당한 음주와 가무는 생활에 활력을 주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건 벌써 종점을 향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찬란했던 20대를 보내고 20대말 즈음 들어 운전을 시작하면서 술을 딱 끊었는데, 운전도 운전이지만, 술 먹고 주사가 심한 인간 한 둘을 상대하다 보니 술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술만 보면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을 보면 한심하단 소리가 먼저 나오긴 하지만, 나도 한때는 그런 시절을 보낸지라 대놓고 욕은 못한다. 그냥 슬며시 피할뿐.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 통쾌 상쾌, 더불어 미친듯이 웃고 자지러지게 웃고 쓰러지게 웃었다. 하지만, 왠지 술을 잘 못마시거나 술에 대한 황당한 경험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 혹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라 재미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도 한때는 주당의 한사람으로 이름을 날렸던 적이 있는지라 무척 즐겁게 읽었다.

후반부에 수록된 <한 잔 하러가자>는 엘리트 직원들의 술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파트로 이 부분은 작가의 순수 창작이다. 아무래도 직장인들의 로망을 그려놓은 만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생활하다가는 사회에 발 붙일 곳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픽션과 논픽션이 절묘하게 이루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술과 술주정뱅이들의 묘한 상관관계를 폭소로 그려낸 유쾌한 만화 음주가무연구소는 우울하거나 기분나쁜 일이 생길 때 하나씩 읽으면 바로 웃음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술이라면 떠오르는 생각 한 꼭지는, 덮어 놓고 마시다가는 인간의 탈을 벗게 될 수도 있으니 술마실때는 최소한의 자제는 필요하단 거다.   
색다른 만화를 즐기고 싶은 분, 한때 주당으로 이름을 날린 기억이 있는 분께 강추하는 만화, 음주가무연구소. 이 책을 읽다 보면, 분명 자신의 경험과 싱크로되는 부분 몇 개는 찾을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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