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월드 그린북
닐 게이먼 지음, 엘런 대틀로.테리 윈들링 엮음, 정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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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더 월드 시리즈 <그린북>은 판타지로 따지면 다크 판타지 쪽에 가깝다. 물론 전체 작품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인 성향은 다크 판타지 쪽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들을 각색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낸 13편의 작품중에는 내가 이미 읽어본 작품도 있고, 처음 접해보는 작품도 있었다. 이미 읽어 본 이야기의 경우 본편의 줄거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다른지, 어떤 부분이 새로운지를 알 수 있지만, 읽어보지 않았던 부분은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난감했다. 하지만 이미 읽어본 동화들 역시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각색된 것은 처음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게 또 이 책의 재미이기도 하다.

<마음속의 방>은 푸른 수염이야기, <빨강 망토 소녀와 못돼 먹은 덩치>는 <빨강 망토>, 물고기 이야기는 <어부의 아내>, 다락방 소녀는 <라푼젤>, 깨어남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 <알라딘 만들기>는 천일야화, <백조 동생>은 백조왕자에서 각가 그 모티프를 따온 것이고 내가 읽어본 동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많은 부분이 각색되어 있어 자칫하다 보면 아예 다른 이야기로 착각할 여지도 많다. 특히 라푼젤을 모티브로 따온 다락방 소녀의 경우에는 라푼젤이 머리를 내릴때가 마녀의 구속을 상징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소녀는 머리를 풀고 내림으로서 마음의 벽을 허문다. 이렇듯 모티프만 따오고 뒷이갸기는 완전하게 달라지는 동화들의 새로운 세계는 동화가 비단 아이들에게만이 아닌 어른들을 위해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황금털붙이>의 경우 마음을 시험당하는 한 왕자의 이야기이다. 그가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눈앞에 펼쳐진 금은보화보다도 달콤한 감언이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작은 생명이었다. 이렇듯 이 그린북에 나오는 새로 씌어진 동화들은 우리에게 색다른 교훈을 주기도 하고, 설정을 바꿈으로 해서 더욱더 재미있고 혹은 무섭고, 혹은 가슴 아픈 이야기로 바뀐다.

특히 <백조 동생>의 경우는 무척이나 가슴 아팠던 이야기이다. 실제 작가의 경험담을 쓴 동화로 태어나 얼마 살지 못했던 아기의 이야기였다. 실제 백조 왕자에서는 쐐기풀로 뜬 스웨터의 한쪽 팔을 완성하지 못한 막내 왕자의 한쪽팔은 날개로 남아 있다. 그것은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할지라도 늘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백조 동생은 한쪽 팔이 없는 스웨터를 자유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아마도 못다한 사랑의 안타까움에 대한 위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동화의 기본 모티브를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것은 또하나의 창작과정이며, 그것이 완전한 새로운 이야기로 보이게 만드는 건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틀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낸 작가들의 상상력은 우리의 생각 범주를 간단히 뛰어 넘었다.

자,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렸다. 당신은 그곳에 한 발을 내디딜텐가, 아니면 물러설텐가.
난 용감하게 발을 내딛었고, 재창조된 캐릭터들의 새로운 삶의 여정을 함께 밟는 행운을 누렸다. 미지의 세게는 두려움을 가져다 주지만 반대로 활력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당신도 그 행운을 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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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거리의 연인 - 러쉬노벨 로맨스 254
토노 하루히 지음, 카노 아유미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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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토노 하루히란 이름에 예쁜 표지, 그리고 왠지 그리운 향기가 물씬 풍겨올 듯한 골동품이란 말이 주는 어감까지. 난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했건만, 다 읽고난 후 조금 실망스러운 기분이다. 생각외로 이야기가 너무나도 무난한데다가, 등장 인물인 치나츠의 성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은 대학생이다. 간만에 대학생들의 귀엽고 풋풋한 사랑이야기란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하지만 귀엽고 풋풋하긴 해도 밋밋하다.
이소자키 토오루는 부잣집 도련님에, 키 크고 잘 생기고, 머리도 좋으며 대인 관계도 좋은 즉, 엄친아 부류에 속한다고 할까.
하토리 치즈나는 키도 165정도에 마른 체형. 엄마의 무관심으로 비뚤어진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지금으로부터 4년전 골동품 가게 주인인 대정낭만당의 주인 츠지모토를 만나 마음잡고 살게 된 녀석이다.

케이치가 골동품 골목에서 무심코 가게안을 쳐다보니 그곳에는 히나 인형만큼이나 예쁜 아가씨가 있어 한눈에 반해버린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보니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치는 치나츠가 점점 좋아진다. 그리고 치나츠는 쌀쌀맞게 굴면서도 그런 케이치가 싫지 않은 눈치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 그러나 그 둘을 연결시켜 준 건 따로 있었으니, 바로 자기 짝을 잃어 버린 히나 인형이었다. 우연하게도 프랑스 여행중에 그 짝인 여자 히나 인형을 케이치가 사왔던 것. 그것을 치나츠에게 건네주는 것을 조건으로 두 사람은 사귀기로 한다.

솔직히 말해서 여장 남자같은 설정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리여리한 체격에 예쁘장한 얼굴이면 기모노를 입었을때 여자처럼 보일테니까. 게다가 그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뿐 평소에는 까칠한 남자 대학생이니 그런 치나츠의 모습은 귀여웠다. 하지만 생김새와는 달리 성격이 얼마나 까칠한지. 허세 부리고 투정하고 앙탈부리고 오해하기 일쑤고... 솔직히 말해 치나츠를 보면서 여고생 캐릭터가 아닌가 싶었다. 
케이치는 뭐 상냥하면서도 남자다운 그러면서도 약간은 소심한 면이 있는 그런 캐릭터였지만.. 이렇다보니 남남 커플이 아니라 남녀 커플로 보였다. 치나츠가 남자란 걸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건 딱 남녀 로맨스물이다.

게다가 두 사람 사이를 큐트 발랄로 설정한 게 갑자기 끈쩍끈적하게 되어 버려서 당황스러웠다. 사실 감기 걸린 치나츠를 문병 온 케이치가 치나츠를 돌봐 주면서 키스하던 장면은 참 예뻤는데 말이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걸.. 차라리 소프트하게 끝을 내는게 이 커플에게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딱 한 씬이 있는데, 없는 것만 못하단 생각이다. 20대초반의 상큼 발랄한 커플이 왠지 30대 커플처럼 끈적하게 변해버려서 적응이 안된다고나 할까.

골동품가게나 히나 인형같이 신선한 소재를 사용한 것은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밋밋한 스토리에 갑자기 주인공들의 성향이 확 바뀌어 버린 듯한 느낌은 별로다. 하드하려면 하드하게 소프트하려면 소프트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끝에가서 일관성이 없어진 듯한 느낌도 좀 못마땅했다.
참, 하나더. 이 책은 오탈자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교정에도 좀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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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2 - 완결 마녀 2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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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 1권은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하여 그려졌다고 한다면 2편은 조금 다른 듯하다.

페트라 게니탈릭스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의 산간 지방에 사는 두 여자이다. 인간이 우주정복의 꿈을 펼치고 있는 현실과 여전히 자연의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

우주에서 날아 들어온 생명의 돌 페트라 게니탈릭스. 이것이 진정한 생명의 근원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것을 다시 우주로 돌려보내기 위해 나선 것은 마녀라 불리던 한 여인이었다.

여기에서 종교 단체가 자신과는 다른 존재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연의 흐름을 읽고, 자연의 소리를 듣는 자는 당연히 종교계의 유일신 신앙과도 배치되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것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한의 믿음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무한의 믿음이 충돌한다.

자신들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상대방을 비난하기만 하는 추악한 종교 단체의 우두머리들. 그대들은 결국 기댈곳은 그 여인밖에 없었으면서도,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도 상대를 깔아뭉개기만 한다. 비록 시대는 현실이나 종교 단체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또한 인간의 오만이요, 독선이 아닌지...

마녀에 대한 다양한 접근, 재인식, 그리고 새로운 해석. 
우리는 아마도 종교계가 주는 편견으로 인해 마녀에 대해서는 사악한 악마 숭배자란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자연의 흐름을 읽고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한없이 자연에 가까운 존재란 것은 잊고 살았다. 물론 실제로 남을 저주하고 불행에 빠뜨리기 위한 주문을 외는 자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어릴때는 자연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로 태어난다. 하지만 사람들의 행동을 배우고 말을 배움으로서 자연과의 교감도 자연히 잊게 된다.
우리는 자연과 공존하는 개체라는 것을 어릴 때는 자연스레 알고 있어도 크면서 당연하다는 듯 잊고 살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오만과 독선때문에 파멸의 길인줄도 모르고 내달리고 있는 애처로운 존재일지도 모르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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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1 마녀 1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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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魔女)란 단어를 떠올리면 난 먼저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검정색 망또에 얼굴을 쭈글쭈글하며 매부리코에 커다란 사마귀. 솥단지에 초록색으로 부글부글 끓는 액체를 휘저으며, 이상한 주문을 외는 사람.
동화나 만화를 통해 접해오던 마녀의 이미지는 늘 이런 것이었다. 누군가의 행복보다는 누군가의 불행을 비는 사악한 존재.

게다가 중세 시대에는 마녀 사냥이라고 해서 수많은 여자들을 화형시켰다. 그중에는 진짜 마녀도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 선량한 일반인이었다. 마녀로 점찍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의 모습을 해석할 수 있는 존재였다. 약초에 대한 지식이 있어 때로는 사람들은 치유해 주던 그런 역할을 하던 사람들은 마녀란 존재로 낙인찍히고 몰살되었다.

당시 종교적인 관점에서 무참하게 학살당했던 그런 존재들. 그들은 종교적 이념에 배치되는 존재로서 당연히 제거되어야 할, 그리고 권력자의 입장에서 당연히 배척해야할 존재들이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과연 마녀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만화이다.
스핀들의 경우 터키의 유목민 소너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양털로 직조를 한 천에 나타난 전언. 그것을 전하기 위해 유목민 소녀 시랄은 수도로 향한다.

그곳에는 수십년전 자신의 보답받지 못한 사랑을 증오하는 한 여인이 마녀가 되어 나타났다. 그녀는 바자르 밑에 잠든 영혼들을 깨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한다. 결국 그녀는 세계의 지혜를 손에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원한 갚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의 지혜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 그게 이 만화가 주고자 하는 교훈이 아닐까.

쿠아루푸는 브라질의 원시림속에 사는 한 부족과 그 부족의 주술사 쿠마리의 이야기이다. 자연의 힘을 존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속에서 살아왔던 한 부족은 일명 선진국이란 나라가 들고 나온 밀림 개발이란 명목하에 몰살당한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당연하다는 듯이 잊어 버렸다. 무자비한 개발 열풍속에 사라지는 건 하나 둘이 아니다. 태곳적 부터 숨쉬어 왔던 존재들이 한번에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오류가 얼마나 큰 것인지 도대체 알고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과 욕심이 불러온 재앙은 자연과 공존하는 삶이 주는 올바름을 잊게 만들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은 인간의 욕심과 욕망에 갈갈이 찢기지만, 자신만을 생각하는 인간은 눈을 막고, 귀를 틀어 막고,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 과연 인간의 앞에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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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 -상,하 전2권 박스세트 - 위니북스-X002
코노하라 나리세 지음 / 위니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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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여장 취미가 있는 남자 이야기라 그래서 반신반의했다. 과연 재미있을까 하고... 하지만 그런 우려는 금방 사라지고 난 금세 이야기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마츠오카 요스케. 그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 여자 친구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호기심에 그녀가 남긴 옷과 화장품을 사용해 보고는 그것이 자신에게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그후 주 1회 마츠오카는 여장을 하고 거리를 나서는 취미를 가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가벼운 마음으로 헌팅에 응했다가 심한 꼴을 당한 마츠오카. 그앞에 나타난 건 같은 회사의 히로스에란 남자였다. 자신의 신발을 빌려주고 택시비까지 쥐어준 히로스에에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마츠오카는 다시 여장을 하고 그를 만난다. 그렇게 만남을 반복하던 중 히로스에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게 되는데..... 

옷이나 화장으로는 남성이란 걸 숨길 수가 있지만, 목소리는 숨길 수가 없어서 병으로 목소리를 잃었다며 필담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마츠오카 역시 히로스에에게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히로스에가 호감을 느끼는 건 자신의 여장 모습인 요코, 마츠오카는 진실을 밝히기로 하는데..

마츠오카와 히로스에는 어찌보면 참 묘한 인연으로 만났다. 여장을 하고 만난데다가 같은 회사 동료이다 보니 마츠오카로서는 내 취미가 여장이요.. 라고 밝히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사실 그런 고백을 하면 100% 변태로 오해를 받을 건 뻔하기 때문. 사실 여장했다는 말도 필요 없이 그냥 마츠오카의 여장했을때인 요코라는 존재를 그냥 지워버려도 되었을텐데, 자신을 만난 역을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고 늘 그곳에서 기다리는 히로스에의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도 못한 마츠오카도 어찌 보면 참 마음이 무르다. 
 
어찌어찌하다보니 히로스에를 만날때면 늘 여장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호감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고백하는 건 아예 물건너 가벼렸다. 마츠오카는 남자대 남자로 만나고 싶은 욕심에 회사에서 히로스에와 말붙일 건수를 찾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마츠오카 입장에선 고백의 시기는 일찌감치 지나가 버리고, 결혼까지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히로스에의 모습을 보며 죄책감이 생기는 건 당연할지도.
 
결국 안되겠다 싶어 히로스에에게 진실을 고백하지만, 히로스에 같은 고지식한 남자가 그것을 얼마나 충격으로 받아들일지는 안봐도 뻔하다. 배신감과 충격, 자신의 사랑이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을 안 순간, 히로스에가 마츠오카를 죽도록 패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랄까. 아니면 저 인간 여장하는 취미가 있는 변태다라고 회사에 까발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랄까?

하여간에 한 남자의 순정을 짓밟혔고, 한 남자는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처음부터 엇나간 인연인지라 그게 순순히 진행될리가 없다. 게다가 히로스에는 전근을 가게되어, 그곳에 파견온 마츠오카의 동료와 사귀게 된다. 게다가 이번 상대는 여자다. 즉, 마츠오카에게는 승산이 전혀 없다.

어휴.. 이거 정말 큰일이다 싶은게 한 두 장면이 아니었다. 물론 여장을 하고 상대를 속이면서 데이트를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짜 연인같았던 두 사람. 마츠오카가 진짜 여자였다면 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남자란 것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

솔직히 히로스에를 보면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남자가 어찌나 우유부단하고 답답한지. 원래 성격이 그런거라 생각해도 이건 너무한다 싶을 정도다.

히로스에는 마츠오카를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호기심도 생긴다. 마츠오카를 쌀쌀맞게 대하는 건 틀림없이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마츠오카가 신경쓰여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츠오카와 이런 저런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밝고 명랑한 마츠오카와 있으면 즐겁고 마음 편안한 히로스에. 하지만 그게 우정인지 사랑인지는 자신도 모른다.

일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좋은 마츠오카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한편, 그런 마츠오카가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히로스에. 원래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일정한 법칙이 없는 것이요,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히로스에에게 내 말이 들릴리 만무하다.

하여간, 어정쩡한 상태의 두 사람을 보면서 왜이리 안타까운지. 마츠오카는 마츠오카대로 히로스에에 대한 마음을 보답받지 못하는게 안타깝고, 히로스에는 마츠오카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남자란 것, 또한 자신이 좋아했던 요코란 사람이 마츠오카란 것을 인정하지 못한채 감정을 질질 끄는 것도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마음이 통했나 싶으면 아니고, 이젠 마음이 통하나 싶으면 또 아니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히로스에의 갈등에 나도 짜증이 날대로 나버렸다. 게다가 히로스에는 회사에서 해고되는 상황까지! 마츠오카는 나름대로 신경써준다고 했는데, 그게 또 히로스에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히로스에는 도피하듯 자신의 고향으로 떠난다. 그곳에 혼자 있다보니 마츠오카가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히로스에. 역시 사랑은 가까이 있을 땐 눈치채기 힘든 법인가.

하지만, 그렇게 떠나버린 히로스에를 마츠오카 역시 용서할리 없다. 회사 동료의 결혼식장에서 만났지만 자신을 쌀쌀맞게 대하는 마츠오카에게 상처받은 히로스에. 당신은 상처받아도 할 말이 없소. 자신이 마츠오카에게 한 일을 생각해보면 히로스에는 애처롭단 생각도 안들었다.

리맨물이지만, 3년에 가까운 두 사람의 쳇바퀴 돌리듯 돌아가는 감정의 흐름은 답답하고 짜증날 것 같으면서도 마츠오카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다. 왜 하필 히로스에야! 라고 묻고 싶지만, 사랑이란 게 "나 오늘부터 이 사람을 좋아하겠소."라고 결심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리도 만무하니, 마츠오카의 마음이 보답받지 못하는 상황은 안타깝고 안타깝고 안타까울뿐.

사실 히로스에가 공이지만, 난 이런 공은 처음 봤다. 자존심은 되게 강한데 그에 비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자신이 없고, 때로는 마츠오카의 자신에 대한 마음에 비굴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우유부단하고, 상냥하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고...
어휴... 정말 한 대 치고 싶단 생각이 드는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반대로 수인 히로스에는 예쁜 꽃미남형 얼굴이지만 의외로 강단도 있고, 일에도 철저하며, 사교성도 좋고, 여자들에게도 인기 많은 타입이다. 사실 자신을 좋아해줄 사람은 널리고 널린 타입이지만, 의외로 외곬수적인 성향이 있기도 하다. 

삐걱삐걱 어긋난 첫만남에서 두 사람이 마주보게 될 때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때까지 거의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찌보면 3년이란 세월이 길면 길수도 짧으면 짧을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랑이 보답받을 수는 없다. 특히 이성간이 아닌 동성간은 더더욱 그러라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서로에게 상처입히고, 서로 상처를 받고... 너덜너덜할 정도까지 가버린 두 사람이지만, 그 상처는 이제 서로 핥아주고 기워주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간에 서로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었으니까.

이젠 제발 서로에게 상처주지 말고, 아름답게 사랑하면서 살아갈 것.
이게 두 사람에게 해주고픈 마지막 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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