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 평생 동안 서로를 기억했던 한 사자와 두 남자 이야기
앤서니 에이스 버크.존 렌달 지음, 강주헌 옮김 / 갤리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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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라고 하면 아프리카의 맹수, 그리고 맹수 중의 맹수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사자는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잠을 자고 있거나 멍한 눈빛으로 사람을 응시하는 모습의 사자들 뿐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여지는 사자들은 그 삶이 척박하기는 해도 눈빛이 살아 있다. 비록 자연의 삶은 혹독하지만 그곳에서 야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자들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크리스티앙은 1970년대 영국에서 살던 두 오스트레일리아 청년과 함께 살았던 사자의 이름이다. 그들은 헤롯 백화점에서 크리스티앙을 본 순간 크리스티앙을 키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구입을 한다. 현재는 백화점 같은 곳에서 사자같은 야생 동물을 판매 구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나 이때까지는 그게 허용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동물을 기른다는 것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동물들의 수명은 15년정도로 볼 때, 그 기간 전체를 책임져야하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책임은 아주 크다. 동물의 생명이라 해도 마찬가지 일텐데, 나도 처음에는 이 두 젊은이가 사자를 보고 한눈에 반해 구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러나 이들은 크리스티앙을 데려오면로부터 크리스티앙이 사람들과 함께 지내지 못하게 될 경우의 일까지 생각을 했다는 걸 알고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다.

현재도 가끔보면 야생동물을 구입해서 키우는 가정이 서양에는 존재하는 모양이지만, 동물을 기르려면 개나 고양이, 새와 같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도 많은데, 왜 굳이 야생동물을 키우는지 이해가 안간다. 부자들의 취미 정도로 보이지만 꽤나 고약한 취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에는 귀엽다고 키우다가 몸집이 커져서 감당이 안되고, 야생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사람을 공격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유기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우리 나라같은 경우 개나 고양이 유기가 많지만 미국같은 경우에는 동물 보호소에 버려진 호랑이나 사자들도 꽤 많다고 알고 있다.



사자 새끼는 작고 귀엽지만 엄청난 성장 속도에 다 크면 몇 백 킬로그램은 훌쩍 넘게 되니 인간과의 도시 생활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앙은 처음엔 고가구점의 마스코트로 두 사람의 반려동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점점 더 덩치가 커지면서 크리스티앙이 거처하게 될 공간에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고민끝에 크리스티앙을 사자들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보낼 결정을 하고, 어느 정도의 야생 적응 훈련에 들어가지만, 크리스티앙을 옮기는 일부터 크리스티앙을 방사할 곳의 확보까지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두 청년과 크리스티앙의 만남에서 런던 생활, 야생 적응기를 거치던 리즈 힐에서의 생활, 그리고 크리스티앙의 아프리카에서의 새로운 삶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크리스티앙은 인간을 아주 좋아하고 인간에게 친근하게 굴었지만 역시 야생동물임에는 틀림없다. 물소와 맞딱드린 순간 사냥 본능이 발동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크리스티앙은 자신의 고향 아프리카에 훌륭히 적응을 해나갔고, 그곳에서 함께 키워지던 사자들과도 친구가 되어 간다. 원래 사자는 고양잇과임에도 불구하고 무리지어 행동하는 동물인지라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특히 숫사자는 영역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사냥은 암사자들이 하게 되므로 수컷인 크리스티앙이 혼자서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분명 야생동물의 천국이지만, 농토의 개발과 더불어 밀렵으로 인해 야생동물이 살아갈 터전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인간이 야생의 땅에 발을 내딛으면 내딛을수록 야생동물들은 점점 척박한 땅으로 쫓겨난다. 밀렵이나 인간의 땅 근처에 갔다가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의 새끼들은 고아가 되기도 하는 경우도 많다.

크리스티앙은 비록 사자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결국은 모든 야생 동물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현재 야생 동물들이 처한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이 처음 발행된 것으로부터 벌써 40년이 지나 이미 크리스티앙은 존재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크리스티앙의 후손은 여전히 아프리카에 살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욕심부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 한 야생 동물 복원 계획과 보호 계획을 실행한다고 해도 야생 동물들이 차차 멸종해 가는 것을 막기는 힘들 것이다.



비록 우리 인간은 두 청년과 크리스티앙이 나눈 우정과 사랑의 형태처럼 모든 야생 동물과
그런 관계를 가질 수는 없지만, 그 아름다운 생명들이 우리들과 공존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줘야 할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런던에서 생활하는 크리스티앙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역시 사자는 아프리카에 있어야 제일 아름다운 법이다. 건조하고 뜨거운 사바나에서의 삶과 죽음. 크리스티앙의 영혼은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리라.



이 책을 다 읽은 후 유투브에 올라온 사자 크리스티앙이란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1년만에 다시 아프리카땅에서 만난 크리스티앙과 두 사람. 처음엔 쭈뼛쭈뼛하면서 다가오던 크리스티앙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달려와 안기고 얼굴을 부비는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린 동물들은 흔히 사람을 금방 잊어버린다 생각하지만 생각외로 동물들은 자신과의 유대감을 쌓았던 사람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면 하나만을 보고 사자가 애완동물로서도 괜찮지 않겠거니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모든 생명은 있어야 할 그 곳에 있을때 제일 아름답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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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 루비 돌 코믹스 6
타테노 토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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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오랜 기간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아무래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어 그런 내용을 담은 이야기에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타테노 토오코의 오랫동안은 고교 시절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여름 서로를 안았던 한 번의 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입밖으로 내지도 않은채 우정이란 걸 지켜오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날 일을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진 아베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미야기.

10년이 지난 후 새삼스레 그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면 10년이 지난 후 그날의 일이 기억에조차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여전히 그걸 기억하고 또한 미야기는 여전히 자신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아베는 바보다. 자신이 그걸 신경쓴다는 건 스스로가 잊지 못한다는 것인데, 왜 자신의 감정에 먼저 솔직해지지 못하고 미야기의 마음을 떠보려고 하는 건지. 사실, 미야기가 그걸 잊어 버렸다고 하면 스스로 충격을 받을까 싶어 먼저 자신의 마음에 보호막을 쳐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사랑이란 건 확인을 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딱 한 번의 일이었다면 더욱더 그럴 수 밖에. 그게 일시적이었고 충동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했기에 서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고, 10년이란 세월동안 그것은 모호해져버렸을 것이다. 그때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만 했더라면 그 오랜 시간을 돌아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바보같은 두 사람. 하지만 이미 고교생도 아니요, 어른이 되어 버린 두 사람이 그 이야기를 입밖으로 내기는 무척 어려웠을거란 생각이 든다.

두번째 이야기는 고교생 커플의 이야기이다. 학교짱인 3학년 세오와 건방진 2학년 후카다의 비밀스런 사랑. 고교생 이야기답게 풋풋하고 귀여웠다. 특히 겉으로는 서로를 적대시해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니 얼마나 애달팠을꼬.....

그림체가 전혀 땡기지는 않지만, 이야기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특히 오랜기간 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마음을 서로 확인하게 된 순간이 무척이나 따스하고 좋았달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BL이란 장르는 나의 로망을 담고 있으니 가끔은 이런 비현실적인 감각도 무척이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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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리와 시미코의 살아있는 목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시공사(만화)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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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제 1권.
내가 호러라는 장르를 무척이나 좋아하긴 하지만, 일본 호러 작가들을 접해본 기억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이토 준지만을 떠올리는 난 요즘 다른 작가들에게도 눈을 돌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본 호러에 대해 조금 안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요괴 이야기는 무척 좋아하지만 호러란 장르는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맞지 않다고 할까. 그래서 호러 장르는 서양쪽을 즐겨 봤었다. 하지만 요즘 일본 호러물에 손을 대면서 무척이나 즐겁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도 최근 접하게 된 작가인데, 독특한 느낌이 살아 있는 작가랄까.
물론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만을 접했기에 이것 하나로 작가의 이미지를 결정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알고는 있지만..

시오리와 시미코. 일단 여고생 콤비이다.
호러라는 장르와 여고생 콤비라. 일단은 왠지 안어울릴 것 같지만,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싸악 날아가 버렸다. 일단 표지에서 목을 들고 있는 쪽이 시오리이고, 뒷편에 자전거를 타고 안경을 쓴 소녀가 시미코로 집은 헌책방을 하고 있다.

살아 있는 목은 연작 단편으로 표제작 외에도 많은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살아 있는 목을 읽고서는 난 무슨 호러 만화 분위기가 이래?라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세상에나 토막 살해되서 유기된 사체의 목을 집안에서 기른다? 게다가 시미코는 <살아있는 목의 사육법>이란 책까지 들고 등장한다. 왠지 수상한 헌책방의 느낌이 풀풀 나지 않는가? 정답! 시미코네 헌책방은 기기묘묘한 책으로 가득하다. 여느 헌책방과는 달리 수상한(?) 책들로 가득한 곳인데, 시미코네 헌책방의 책들도 이후 꽤나 많은 등장을 해서 즐거움을 더해준다.

그외에도 100년에 한번 꽃이 피는 백년앵에 관련한 사연이라든지, 묘한 소문이 깃들어 있는 언덕, 친구가 쓴 호러 소설이 현실화 되는 이야기는 왠지 여느 괴담에나 나올법한 소재이지만, 쿠트르라는 소녀가 나오면서 괴담을 벗어나 판타지같은 이야기로 어느새 흘러 간다.

게다가 이 시오리와 시미코는 엉뚱하기 그지 없다. 뭐, 시오리의 경우엔 친구들도 인정한 나사 몇 개 빠진 아이라는 말이 정답일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어느 평범한 여고생이 집안 수조에서 사람의 머리를 기르겠는가. 또한 시미코 역시 묘한 책들로 가득한 헌책방을 하다 보니 왠만한 것에는 눈도 깜짝 하지 않고 너무나 순순히 받아 들인다. 이 괴짜 여고생 콤비와 함께 이런 저런 사건을 겪다 보면 정말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 진실인지 헷갈리게 된다. 물론 가상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솔직히 이런 세계가 없으리란 법은 절대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니까.

호러라는 장르에 엉뚱한 유머 코드를 삽입해 새로운 호러 장르를 보여주고 있는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총 6편이 번역 발간되어 나와있는데, 다음엔 어떤 이야기로 나를 즐겁게 해줄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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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뱀 - 히노 히데시 걸작 호러 단편 시리즈 1
히노 히데시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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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에 이 책을 봤을땐, 뭐 이런게 다 있나 싶었다. 사실 그림체도 그렇고 이야기도 도무지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노 히데시. 일본 만화계쪽에서는 무척이나 유명한 작가인 듯 하지만, 나로선 처음 접하는 작가인지라 호기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본 호러 만화라고 하면 이토 준지를 제외하고는 잘 모르는 나였기에 새로운 작가의 책을 본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나 마찬가지다.

붉은 뱀은 거대한 나무로 둘러싸인 미궁과 같은 집에 사는 일가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조부모, 부모, 누나, 그리고 소년.
소년은 늘 이 집을 탈출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왜인지 숲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몇 시간씩 헤매다 보면 늘 집 앞에 와 있게 된다.
그리고 집안도 구석구석 거울이 세워져 있어 그곳을 지나갈 수 없게 되어 있다. 할아버지의 말로는 그 거울은 요괴가 나올 수 없도록 봉인해 둔 것이라 하며, 그 거울 너머에는 지옥의 문이 있다고 한다.
이 정도까지는 음... 이해가 되는 군.. 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로 나오는 가족들의 모습은 나의 이해 범위를 넘어 갔다.

닭의 분장을 하고 나뭇가지로 둥지를 만들어 닭 행세를 하고 있는 할머니, 아버지는 그런 할머니에게 늘 달걀을 가져다 준다. 할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관계도 미묘하다. 할아버지의 턱에 있는 혹을 늘 주물러준 후 피고름을 짜내는데, 내게는 그것은 일종의 근친상간을 완곡하게 표현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나중에 할아버지의 혹에서 나온 피고름이 어머니의 얼굴에 뿌려지는데, 그후 어머니는 임신을 하게 되고 괴물같은 아이를 낳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할머니와 아버지 역시 묘한 관계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른 가족에 대한 할머니와 아버지의 적대감, 또한 할머니가 사라진 곳에는 커다란 알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국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반목으로 서로를 죽이게 되는데, 이건 아버지의 마더 컴플렉스, 혹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선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몰랐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가족간의 근친 상간을 표현하는 듯한 장면도 충격적이지만, 누나 역시 처음엔 벌레, 나중에는 뱀과 마치 교합을 하는 듯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울을 지나서 집안 깊숙이 들어가면 나오는 지옥문. 아마도 이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은 지옥의 안쪽이 아닐까. 지옥문을 열고 지옥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은 죄로 인하여 지옥속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형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윤회를 거듭해도 자신의 죄를 씻지 못하고 똑같은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가족들. 그들에게는 더이상 구원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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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로 1~4 세트 - 테츠카 오사무 시리즈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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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TV 케이블 방송에서 도로로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요괴를 없애고 자신의 몸의 일부를 되찾는다는 이야기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어린 시절 헤어진 동생과 대결을 벌이다 동생을 죽이게 된 햐키마루의 얼굴이었다. 그 외에는 딱히 기억날 것도 없고, 별로 재미가 없었다란 생각을 했는데, 그때까지는 사실 영화 도로로가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몰랐다.

얼마전 테즈카 오사무의 MW를 읽으면서 다시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도로로가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란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별로였지만, 책에는 무척이나 관심이 갔기에 읽어 보았는데, 역시 원작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로는 판타지 만화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사람답다는 것이 무엇인가란 문제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악이란 게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잘 보여주는 만화라 생각한다.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해 마물에게 태어날 자식의 몸 48군데를 헌상한 햐키마루의 아버지는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일그러진 형태로 나타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그렇게 아들을 산제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가책은 전혀 없다. 오히려, 태어난 아이를 괴물취급하고 버리기까지 한다.

이 아이가 우연히 의원의 손에서 길러지게 되어 햐키마루란 이름을 갖게 된다. 도저히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던 이 아이에게 인공적으로 인체 부위를 만들어 주고, 인간으로서 성장하게끔 만든 의원의 손에서 햐키마루는 사람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마물에게 자신의 몸을 빼앗겼던 햐키마루에게 요괴들이 들러 붙으면서 햐키마루의 머나먼 여정이 시작된다.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찾기 위한 여정이.

도로로는 도적의 아이로 부모는 이미 사망했다. 어린 아이 몸으로 험난한 전국시대에 살아 남기 힘들겠지만 도둑질로 근근히 연명하면서 살아가지만, 언제나 꿋꿋하다. 햐키마루와 우연히 만나 그 길에 동행하게 된 도로로는 햐키마루와 함께 온갖 요괴들과 온갖 종류의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요괴와 인간이 함께 등장하지만, 난 오히려 요괴보다 인간이 더 무서웠다.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위해서라면 마물에게 자신의 아이를 팔아 넘기는 비정한 아버지, 돈과 권력에 정신이 팔려 자신의 두목을 배신하는 남자, 햐키마루에게 도움을 받게 되지만 햐키마루를 괴물취급하고 쫓아내는 마을 사람들...

인간은 왜 이렇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살아갈까. 이 네 권의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그러한 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과업으로 형제간에 칼을 겨누게 만든 아버지는 오히려 햐키마루를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으로 몰고 간다. 햐키마루 또한 자신의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인간을 자기 자식만을 귀하게 여기는 존재라 했나... 물론 이런 비정한 부모나 사람들만 나오는 건 아니다. 그에 비해 도로로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존재이다. 특히 도로로에게 먹이기 위해 뜨거운 죽을 자신의 손에 받아가는 도로로의 어머니의 모습에선 눈물이 핑 돌았다.

과연 인간답다, 사람답다는 건 무엇일까.
햐키마루는 비록 마물들에게 신체의 일부를 빼앗겨 불완전한 몸이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위한다. 그러나 눈코입 제자리에 붙을 것 다 붙은 인간들은 오히려 서로 배신하고 죽이고 죽임을 당한다. 과연 겉모습이 멀쩡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사람답다고,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동글동글 귀여운 아톰이 생각나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가끔은 오래된 유머를 사용해 썰렁함(?)도 안겨주지만, 그것도 모두 사랑스럽다. 도로로는 요괴 퇴치란 소재를 도입해 판타지로 보이게 했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게 질문하고 있다. 비록 이 만화가 인기가 없었다는 이유로 연재가 중단되어 햐키마루의 여정의 끝을 볼 수는 없었고, 마무리가 엉성한 느낌을 주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햐키마루는 과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제일 소질있는 건 전쟁일지도 모른다. 도로로의 배경이 된 전국시대도 그렇지만 현재도 지구 곳곳에서는 서로를 파괴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점점 더 심해지고, 사람들은 권력을 좇아 서로를 배신하고 죽이기 까지 한다. 도로로에 나온 이야기는 시대를 바꿔 지금도 진행중이다. 인간은 언제쯤 이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과연 그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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