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미학 - 미적 안목을 기르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최소한의 디자인 미학 지식
최경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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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디자인"이란 말은 흔히 쓰인다. 예를 들어 작은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이건 디자인이 별로다', 아니면 '이건 디자인이 맘에 든다.' 등등 디자인이란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디자인이 뭐냐고 물어보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예쁜 것 같으면 디자인이 좋다, 별로 맘에 들지 않으면 디자인이 별로다라고 이야기하며 디자인 = 예쁨 혹은 美 를 동의어처럼 사용한다.

하지만 Design 이란 단어는 사실 순수한 아름다움보다는 산업화시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시기, 대량화하기 쉬운 단순하면서도 보기 좋은 외형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생겨난 개념이라고 한다. 실질적으로 아름다움보다는 기능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회화, 조각, 건축, 음악이 예술로서 인정받는 것과 달리 디자인은 예술이라기 보다는 상업적인 미술로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디자인의 발생이 대량생산으로부터 시작된 상품이라고 하더라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충분히 예술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1,2차 세계 대전 당시 물자 부족으로 공급보다 수요가 우위에 서자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능적 디자인이 등장했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되고 생산기술이 향상된 지금은 수요보다 공급이 항상 초과하면서 미학적 대상으로서 디자인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가 커졌고, 자연히 디자인은 생산자 중심의 논리에서 소비자, 수용자, 감상자 중심의 논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기능성, 생산성이 아니라 미학적 논리에 입각한 새로운 디자인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의 미학적 체계란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미적 쾌감을 중시하는 것으로 내용적 가치와 형식미를 갖춰야 한다.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정도로 뛰어난 내용과 형식 두 가지를 모두 갖추는 것은 쉽지 않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용자 또한 이를 알아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교양수준 뿐만 아니라 수용자 또한 이를 판단하고 느낄 교양 수준을 갖추는 것이 필요해진다. 아마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거나 미학이란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인데 미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 것은 예술이므로 미학은 자연스럽게 예술을 주된 대상으로 다루게 된다. 예술학은 예술 작품 그 자체에 대한 미적 논리인 예술미와 그 예술을 느끼고 감상하는 수용자의 체험인 미적 체험으로 구성된다.



아마도 예술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단어인 '고전주의'는 객관주의적 미학에 기반을 둔 예술로 미의 본질과 규칙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규정하며 그리스 조각상들의 황금비례와 같이 수학적 법칙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신조형주의로 발전해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몬드리안의 기하학적인 그림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런 객관주의적 미학에 대한 반발로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포스트모던 디자인을 시작으로 주관주의적 미가 대두됐는데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는 와인오프너인 안나 G가 중요한 사례 중 하나이다. 주관주의적 미에서는 아름다움이 표현된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 '미적향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감상자의 주체적인 재해석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곧 감상하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말이기 때문에 감상자가 미적 교양을 갖춰야하는 필요성과도 이어진다.



저자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단순한 흥미나 오락의 행위라기보다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순화 시키고 쾌적함을 제공하는 행위로 인간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미학에 대한 교양을 쌓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감상자로서 최소한의 미적 교양을 쌓아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제2의 창조작업이 되어 더 큰 감동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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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심리학 - 사소한 우연도 놓치지 않는 기회 감지력
바버라 블래츨리 지음, 권춘오 옮김 / 안타레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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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직장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꼭 로또를 사는 동료가 있었다. 이번에는 혹시나 운이 좋아서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그 한주를 또 버텨낸다고 했다. 물론 내가 퇴사할 때까지 당첨되는 행운은 없었다. 실망과 기대를 몇 년씩이나 되풀이 했지만 차라리 그 돈으로 붕어빵이나 사먹으라는 내 충고를 무시하며 매주 계속 로또를 샀다. 그 때 나는 어차피 저것도 다 복불복이고 무작위적인건데 되지도 않을 걸 뭐하러 쓸데없는데 돈을 쓰나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 「기회의 심리학」의 저자 바버라 블래츨리는 이런 생각을 신선하게 깨부순다. 그것도 심리학과 뇌과학을 근거로 들이대니 저자의 말에 설득 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저자는 운과 우리의 뇌가 과학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길래 운이 좋아지고 기회를 잘 잡는 방법을 학습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일까?

제 1장에서 저자는 신경과학자이자 의사인 제임스 오스틴이 제시한 행운의 4가지 유형에 대해 이야기한다.

★1종 행운:

행동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무작위적이고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행운인 '눈먼 행운'

★2종 행운:

계속 움직이고 무언가를 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더 나은 결과가 나오는 운

★3종 행운:

우연과 노력의 조합으로 관찰하고, 기억하고, 연관성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운

★4종 행운:

개인의 행동과 준비가 개인 고유의 성향과 결합해 발생하는 운으로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동을 실행에 옮길 때 촉발

이중에서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운이란 아마 대부분 1종 행운일 것이다.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이나 카드게임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패가 나오거나 로또에서 내가 찍은 번호가 나오는 것 같은 눈먼 행운 말이다. 물론 운이란 우리의 행동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무작위적이고 우발적으로 발생하지만 그래도 이 4가지 행운의 종류 중에 가장 발생하기 힘든 것이 아마 1종 행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오는 걸 보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책에서도 한 사람이 복권에 4번이나 당첨된 실제 사례가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확률은 몇 억만분의 1도 아닌 18자분의 1이라고 한다. 18자에서 '자'는 경 다음 단위로 10의 24제곱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0이 24개나 붙는 확률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행운 중에서도 1종 행운 보다는 나머지 2,3,4종 행운에 더 집중하는 것이 그래도 운이 좋을 확률을 높이는 방법일 것이다.

눈먼 행운인 1종 행운과 나머지 2,3,4종의 행운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개인의 준비, 노력 같은 어떤 행동과 실행이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 일 것이다. 계속 움직이면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거나 혹은 나의 일과 어떤 연관성을 찾으려고 애쓰고 신경쓰고 있을 때 자신에게 온 우연이라는 기회를 잡느냐 놓치냐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연이 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까?

그와 관련해 저자는 먼저 '자기 충족적 예언'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란 말 그대로 자신이 예언하고 기대하는 일이 현실에서 충족되는 현상으로 스스로 본인이 운이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면 실제로도 운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키우고 '주의'를 집중하면 실제로 운이 좋아진다는 이론이다.

이와 관련해 '행운 학교'를 운영한 리처드 와이즈먼은 인생에 행운이 따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아래 4가지 원칙을 지킨다고 설명한다.

★ 원칙 1: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 운이 좋은 사람은 늘 주의를 기울이기에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알아차리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 원칙2: 행운의 예감에 귀 기울인다.

- 운이 좋은 사람은 자신의 본능적인 직감을 믿고 앞날을 직관적으로 예측한다.

★ 원칙3: 행운이 오기를 기대한다.

- 운이 좋은 사람은 근거가 없어도 본인의 앞날이 행운으로 가득하리라고 기대하고 행운을 맞이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 원칙4: 불운도 행운의 징조로 여긴다.

- 운이 좋은 사람들은 불운을 겪어도 굴하지 않고 이 경험을 앞날에 대한 기대로 통합한다.

인간은 보통 어떤 무작위적인 사건에서도 무의식적으로 패턴이나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야지만 불확실성을 줄이고 불안감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모든 일의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운'에서라도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어떤 우연한 사건의 결과가 좋으면 '행운'이고 좋지 않으면 '불운'인 것으로 이 모든게 다 '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운=기회 가 동의어라고 말한다. '기회'란 예측할 수도 없고 대비할 수도 없이 갑자기 닥치기 때문에 인간은 근본적인 두려움을 갖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를 제대로 잡은 것인지 아닌지는 결국 '행동'을 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만 알 수 있다. 그러니 그 일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어쨌거나 그 행동을 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선 그것이 행운이었는지 불운이었는지 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그 행동이 실패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좋은 경험으로 남아 다음 번에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해답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스스로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일단 기회를 붙잡기 위해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행운의 여신도 어쩌지 못하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당신의 행동

p312 _ 나심 탈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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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그림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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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그림」 이라는 제목답게 이야기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그림들을 주제로 풀어나간다. 의미도 알 수 없고 약간은 기괴한 그림에 얽힌 진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퍼즐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결말을 맞게 된다.

총 4장으로 이뤄진 이야기는 각 장마다 완결성을 가진 에피소드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퍼즐 조각인 셈이다. 짧은 에피소드 4개가 이뤄져 있어서 각 에피소드마다의 재미가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다 읽어야지만 이 단편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가 가능하다.

처음 도입부에는 어머니를 살해한 11살 소녀의 심리검사 그림이 등장한다. 얼핏보면 평범해 보이는 집, 사람, 나무가 그려져 있다. 뾰족하게 그려진 나무나 문이 없는 집에서는 소녀의 공격성과 도피욕구가 보이지만 나무 속에 새를 보호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소녀의 다정함과 모성애가 엿보인다. 소녀를 담당한 심리학자는 소녀가 갱생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고, 그 소녀는 심리학자의 판단대로 자라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 엄마가 된다.






곧이어 본격적인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오컬트 동아리의 일원인 사사키는 같은 동아리 후배로부터 어딘가 이상하고 무서운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 신혼부부의 남편이 개인적인 일상을 올린 평범한 블로그 같지만 출산 중 아내가 사망하고 난 뒤 남편은 '그림 세 장의 비밀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블로그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 남자의 블로그에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내가 임신을 하고 출산 중 죽기 전까지 그린 그림들이 올려져 있었는데 얼핏보면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그 그림들에는 사실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과연 아내가 죽기 전 그렸던 그 그림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 첫 번째 에피소드였고,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여기에도 역시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들이 등장하고 그 그림에 얽힌 비밀을 풀어나간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이지만 이상한 그림이 주제이기 때문에 그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그렇게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장편 소설치고는 좀 짧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에피소드가 4개로 나눠졌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어 장편이라는 생각보다는 단편을 읽는 느낌이 컸고 사건 자체도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힌 건 아니었기 때문에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림에 얽힌 비밀이 주제이긴 했지만 사실 왜 그런 그림이 그려지게 됐는지에 대한 진실은 약간은 억지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굳이 이 그림을 이렇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그림에 얽힌 스토리 자체가 재밌고 흡입력 있다보니 약간의 껴맞추기 같은 느낌을 지우기에는 충분했다.

작가가 오컬트 크리에이터이자 유투버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짧은 글을 선호하는 요즘 취향에 어필할만한 빠른 전개를 보여준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들과 그에 얽힌 비밀을 차곡차곡 잘 회수해 하나의 결말로 몰고 가는 힘도 좋기 때문에 장편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좋아할만한 이야기였다.

솔직히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 비밀을 풀어나가는 뛰어난 미스터리 수작이라고 부를만 하냐라고 물으면 그런 건 아니지만 가볍고 흡입력 있게 읽기 좋은 재밌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았거나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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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 - 불안, 걱정, 회피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한 뇌 회복 훈련
샐리 M. 윈스턴.마틴 N. 세이프 지음, 박이봄 옮김 / 심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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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이다 보니 이게 원래 제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제목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는 제목은 하루에도 수 십, 수 백가지의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유명한 극작가이자소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라는 묘비명이 널리 회자되는 것만 봐도 우물쭈물 망설이고,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추후에 이 번역이 오역이라고 알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 오역이 유명세를 탄 건 그만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옷을 살까 말까, 아니면 옷 자체를 살까 말까라는 단순한 결정조차 쉽게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제목이 눈에 띄였다. 그리고 그런 성격을 고치고 싶어 이 책을 선택하게 됐는데 책은 단순히 망설이지 않고 빨리 결정내리는 방법(?) 같은 것보다는 좀 더 심도 깊고 근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불안과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을 우스갯소리로 걱정인형이라고 부르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걱정이나 불안, 망설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는 40년 넘게 불안장애를 연구해온 심리학자인데 책에서는 불안의 다양한 종류와 유형을 분석하고 불안과 망설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불안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저자는 예기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최근에는 tv에서 심리와 관련된 정보나 강연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보니 예기 불안이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수도 있겠지만 흔히 사용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예기불안이란 '스스로를 불안하거나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되는 사건과 상황들을 예측하면서 경험하는 불안' 을 말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불안하거나 불편한 상황에 처하기도 전에 그 상황을 미리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아마 불안을 잘 느끼고 걱정이 많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 예기불안 정도가 높을 것이다. 실제로 걱정과 불안은 예상하는 그 상황이 벌어지기 전이 가장 높다. 막상 걱정하던 그 상황이 벌어지고 나면 걱정과 불안보다는 그 상황을 해결하는데 집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책 서문에서부터 강조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성급한 마음에 근본적인 해결방법,혹은 치료법(?) 이 나와있는 마지막 부분부터 읽으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첫 장부터 차례로 읽을 것을 권장한다. 일단 불안이 일어나는 과정과 매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해야지만 불안을 대하는 자신의 근본적인 태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저자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마지막 챕터를 먼저 읽어보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ㅎㅎ. (아마 결론부터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게 뭐야, 결론이 너무 시시한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의 핵심은 해결방법보다는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불안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책에는 다양한 형태의 예기불안과 망설임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이해가 어렵지 않았다.

사소하게는 건강검진을 앞두고 암이 발견되는 상상을 하며 예기불안에 압도당해 결국 검사를 취소하고 즉각적인 안도감을 경험하지만, 그 이후에는 자기 몸에 암이 진행되고 있는데 검사를 받지 않아 모르고 있을 거라는 상상에 또 다시 예기불안에 휩싸이는 경우부터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발표를 시킬까봐 전전긍긍하며, 선생님이 자기를 부르고 모든 사람 앞에서 바보 같은 짓을 해서 굴욕을 느끼는 상상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례까지 이런 것도 예기 불안이었어라고 할 정도로 아주 광범위하고 다양했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예기불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그래서 이 불안을 잠재우려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라는 결론이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이런 다양한 예시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개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예기불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다양한 예시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 특히 관심이 있었던 챕터는 6번째 챕터인 완벽주의, 확실성에 대한 갈망, 후회에 대한 두려움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고 후회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옷을 하나 사더라도 2가지 중에 한 가지를 골라야 할 때 이걸 선택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보니 계속해서 생각하고 생각하다 결정을 못내리고 그 옷을 입을 철이 지나버려 옷을 못 산 적도 있었다.

저자는 만성적인 망설임에는 예기불안이 기저에 깔려 있고, 만성적인 망설임은 완벽주의, 확실성에 대한 갈망, 후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심화된다고 말한다.

완벽주의는 모 아니면 도, 옳거나 틀리거나, 잘하거나 못하거나와 같이 양극단만 인정하고 중간의 회색지대는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면 최선이 아닌 것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막대한 부담감과 괴로움을 불러오게 만들고 결점과 실수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실수할 여지가 있는 모든 선택과 결정에 극심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도록 마비시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게 만든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정하는 것들이 충분히 확실하다고 느끼고 하나하나 점검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성적으로 망설이는 사람들의 경우 너무나 많은 의심이 들어 모든 것을 확실히 알려고 한다. 대부분의 의심은 감각을 이용해서 확실히 확인할 수 있지만 상상력은 자신의 감각으로 인지한 것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가스를 껐는지 확인하고 나왔지만 혹시나 내가 급하게 점검하면서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아침에 문을 닫힌 것을 보긴 했지만 혹시 제대로 끝까지 꽉 안 닫혔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상상이 꼬리를 무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사실을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다. 수십, 수백 가지의 경우의 수는 언제든지 다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무시무시한 상상이 사실 자기 마음의 산물임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면 이런 의심들을 무시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후회에 대한 두려움은 나중에 후회할 어떤 일을 저지를까봐 불안해하는 마음이다. 큰 투자나 진로, 배우자 선택과 같은 중요한 문제 외에도 이 넥타이를 맬지,저 넥타이를 맬지, 버거를 먹을지 파스타를 먹을지와 같이 아주 사소하고 위험부담이 적은 상황에서도 선택하기를 어려워 할 수 있는데 이런 일은 전반적으로 어떤 감정을 털어내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성향을 가진 불안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흔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과거에 어떤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던 실수를 곱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자동반사적으로 만약에... 라는 의심이 떠오른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자동반사적인 의심과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정 이후에는 의심이 떠오를 것이라고 내버려두고 어떤 의심들이 드는지 살펴보기만 하라고 한다.

7장 이후부터는 예기불안과 만성적인 망설임에 대처할 수 있는 사고방식의 전환 방법과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예기불안을 없애거나 불안에 대처하는 기술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저자는 이런 기법들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법 자체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평소 자신의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느낌과 감각, 그리고 생각에 반응하던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시적으로 불안을 낮추는 강박행동인 '거짓 불안'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 이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발표를 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의 경우 거짓 위안은 '준비할 시간이 많아. 틀림없이 잘할거야.', ' 긴장을 풀고 발표에 대해 생각하지 마. 넷플릭스 코미디나 보면서 긴장을 푸는게 좋지 않을까.' 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위안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런 거짓 위안으로 얻은 안도감은 일시적일 뿐이며, 오히려 마음속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거짓 위안과 반대되는 대처 기술을 내놓으며 불안을 일으키는 사건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빠져들게 만든다고 한다.

저자의 관점은 불안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지에 알려주던 기존의 심리서적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오히려 이런 불안과 상상력과의 싸움을 그만두고 불안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애쓰는 것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한다.

불안해 하는 나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생각과 나를 분리시켜 한 걸음 물러나 관찰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만성적인 망설임과 불안감으로 힘든 사람들이라면 속는 셈치고 시도해보길 바란다. 회피와 불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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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공간, 없는 공간
유정수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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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비대면이 활성화 되면서 집 주변의 많은 상가들이 공실이 된 것을 보았다. 코로나 전만 하더라도 기존 가게가 빠지자마자 다른 가게가 들어왔던 자리인데도 공실이 한참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집 주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땅값 1위라는 명동도 마찬가지였다. 그 비싼 자리 조차도 공실이니 더 안 좋은 입지의 작은 상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떤 가게가 들어온다고 하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해야 할 상황인데 임대한 가게가 장사도 잘 되고 심지어 핫 플레이스가 된다고 하면 임차인은 그야말로 귀인 중에 귀인이 되는 셈이다.

이런 귀인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쓴 저자 글로우서울의 유정수 대표이다. 글로우서울 이라는 이름은 낯설 수 있지만 글로우서울에서 만들어 낸 브랜드나 공간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알 것이다. 도넛정수, 청수당, 온천집, 송암여관 등이 있는 익선동 한옥거리 부터 시작해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타임빌라스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F&B 브랜딩에서부터 공간기획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핫플레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글로우서울은 흔히 볼 수 없는 차별화된 F&B 브랜딩과 스타일리시한 공간 기획에 강점에 있는데 이 책에서는 브랜딩 보다는 공간 기획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같은 공간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몰려드는 핫플이 될 수도 있고 그저 그런 평범한 매장이 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 매력을 느끼는지에 대해 그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핫플을 만드는 공간 기획의 법칙을 총 6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1. 6대4의 법칙 2. 선택과 집중의 법칙 3. 차원 진화의 법칙 4. 최대 부피의 법칙, 5.경계 지우기의 법칙, 6.세계관 구현의 법칙 이다.

첫 번째 6대 4의 법칙은 영업 공간과 유휴 공간의 비율로 전체 면적 대비 유휴 공간의 면적을 최소 40%는 확보하고 그 유휴 공간이 고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업 공간을 더 늘려야 매출이 오르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가격 경쟁력 면에서 온라인 쇼핑 시장보다 메리트가 없는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일단 고객들이 일부러라도 찾아올만한 요소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기껏 40%나 확보한 유휴 공간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해야 하는데 가장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중앙에 두어 이용객들이 그 공간을 향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의 법칙에서는 힙플레이스에서 자주 보이는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가 왜 유행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실 노출 콘크리트는 단순히 힙해 보이려고 해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영세한 자본을 가진 창업자들이 비용을 절약하고 낡은 외관과 어울리는 내부를 살리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내부 마감에 아낀 비용을 콘텐츠에 투자하기 위해 비롯된 것인데 최근에는 무작정 노출 콘크리트면 힙하다는 인식에 마감도 제대로 하지 않아 먼지가 풀풀 날리는 매장들도 많아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공간의 어떤 부분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지 잠실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과 강남 '조선 팰리스'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실제 비용은 조선 팰리스가 소피텔보다 몇 배나 더 많이 들었을지 몰라도 사람들의 만족도나 인기는 조선 팰리스나 소피텔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건 소피텔이 주 고객층의 욕구를 잘 파악해 비용을 적절한 부분에 잘 투자했기 때문인데 소피텔의 자세한 전략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자.

세 번째 차원 진화의 법칙에서는 제일 처음 말한 40% 유휴 공간을 어떻게 꾸며야 효과적인지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챕터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포토 스팟'과 '원더'인데 포토스팟은 특정 장소에 고정된 자리, 위치를 말한다. 예를 들어 벽에 그려진 날개 모양인데 보통 그런 벽면이 있으면 사람들은 정확한 위치에 맞춰서 정면에서 사진을 찍곤 한다. 하지만 이 포토 스팟은 말 그대로 정면에 정해진 위치에서만 봐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그에 반해 원더는 뷰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어느 위치, 어느 각도에서 봐도 의미가 있고 그림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후미진 벽면이나 가장자리가 아니라 중앙 위치로 나와야 한다. 첫 번째 챕터에서 유휴 공간을 중앙에 두어야 한다는 원칙이 나오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 번째 최대 부피의 법칙은 최근 많은 사람들이 핫하다고 하는 장소가 대부분 대형공간인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챕터이다. '더티트렁크'나 '문지리 535' 등 요즘 인기 있는 빵집이나 커피숍 중에는 규모가 엄청나게 큰 곳이 많다. 옛날 공장이나 식물원과 같이 층고가 높고 면적이 넓은 장소들이 인기인데 아파트나 소형 주택에 사는 것이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넓은 시야가 확보되고 일시적이더라도 그 공간을 사용하는 동안은 내가 이 곳을 점유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공간이 인기인 것이다.

이 챕터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수직적, 수평적 공간을 인지하고 느끼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실제로는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면 사람들이 넓게 느낄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얻기에 좋았다.

다섯 번재 경계 지우기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공간을 선호하고 욕망하는지와 '자연스럽다'는 감각에 대해 설명한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나무, 바다, 산 등 자연 환경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이 튀거나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매끄럽고 편안하다는 감각을 말하기도 한다. 한 동안 인공적이고 기계적인 구조물이 유행한 적도 있었지만 인공적인 생활환경에서 나고 자란 현대인들은 오히려 인공적인 공간이 자연과 흡사한 형태로 구현된 것을 선호하는 추세이다. 어항이나 수중 조경이 유행하거나 차박, 캠핑, 등산이 유행하는 것 또한 이런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잇다.

여섯 번째 세계관 구현의 법칙에서는 일반적으로 고객들이 짧은 시간만 머무르는 상업공간의 특성상 컨셉을 극단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긴 시간을 머무는 주거 공간과 달리 1~2 시간의 짧은 시간만 머무르는 상업공간인 경우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주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성공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컨셉을 밀어붙이려고 할 경우 완성도 또한 높아야 눈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퀄리티를 높이려는 노력 또한 필수적이다.

이제 더 이상 건물주가 갑인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브랜딩과 공간 기획력만 있다면 건물주들이 무료로 임대할테니 우리 건물에 들어와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더 흔한 일이다. 건물주가 들어와 달라고 사정하는 임차인이 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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