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뇌 - 더 좋은 삶을 위한 심리 뇌과학
아나이스 루 지음, 뤼시 알브레히트 그림, 이세진 옮김 / 윌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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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어느 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다른 분야로 이어질 때가 있는데 나의 경우는 뇌과학이 그랬다. 처음에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으로 시작했다가 이런 마음의 변화도 결국엔 다 뇌 때문이겠다라는 생각에 뇌과학으로 관심이 확장되어 읽게 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뇌과학은 말 그대로 '과학'이다보니 뇌의 구조와 인간의 진화, 호르몬의 작용 등 생물학적인 내용을 비롯해 신경과학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다양한 내용을 다룰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예상보다 어려운 내용들에 종종 좌절할 때도 있었는데 이 책은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어려움 없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임상심리학자이면서 뇌의 경이로움에 매료돼 신경과학을 연구하게 됐다는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책에서는 주로 인간의 심리와 관련된 뇌의 작용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나는 도대체 왜이럴까?라고 스스로도 의문을 가지면서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왜 이렇게 집중력이 떨어질까,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걸까, 나는 왜 헤어진 전 연인을 잊지 못하는 걸까와 같이 누구나 생각해보거나 겪어봤을 법한 일에서부터 머릿 속에 어떤 노래가 계속 반복적으로 들린다거나 어디선가 경험하거나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데자뷔 현상까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소재들을 다룬다.


23가지의 다양한 주제들 중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두 가지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 중에 첫 번째는 영어에 한 맺힌 한국인 중 특히 자녀에게 영어 조기교육을 시켜야할지 말지 고민 중인 부모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법한 내용이다.


바로 " 아기에게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게 하면 언어 발달에 지장이 있는가? " 라는 주제인데 이것과 관련해서는 여러 전문가들이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하게 되면 모국어가 서투르게 되서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언어는 언어가 충분히 발달하기 이전인 어린 시절에 외국어를 배워야 체화돼 자연스럽게 2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저자가 어떤 게 맞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거나 환경에 따라 다르다거나 중립적인 의견을 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에서는 과학적으로 확실한 답을 내려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 아기에게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좋다. 이중언어 사용자는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메타언어 능력과 논리적인 능력, 창의성, 추상 능력도 더 뛰어나게 만든다" 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은 읽기과 쓰기를 더 빨리 배우고 단어와 의미의 관계에 대한 이해력도 더 높을 뿐만 아니라 두 개의 언어를 혼동하지도 않았으며, 두 언어 간의 차이를 통해 개념을 뒤섞어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창의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고 한다. 이런 이중언어의 긍정적 영향은 성인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특히 기억력에 중요한 신경 네트워크가 강화돼 알츠하이머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책에서 싫다거나 혹은 흥미가 없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외국어를 교육시키는 것도 좋다고 한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두 번째는 "뇌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선의 결과를 원하는 게으름뱅이"라는 주제이다. 한 마디로 뒹굴뒹굴 소파에 누워서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며 가급적 힘을 안 쓰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과제에 집중하는 것보다 차라리 화상을 입는 것 같은 고통스럽고 불쾌한 느낌을 견디는 걸 더 선호할 정도라고 하니 뇌는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게으르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뇌는 멀티태스킹을 하지 못한다"는 내용에 대해 자주 등장했었는데 실제로 우리의 뇌는 어떤 과제에 집중할 때 원하는 정보를 제외한 주변 정보는 모두 흘려버림으로써 에너지 소비를 아낀다고 한다.

난 아닌데 tv 보면서 공부하거나 글을 쓰는 것도 잘하는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건 뇌가 빠른 속도로 집중하는 대상을 옮겨가는 것이지 실제로 2가지를 모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왜 이렇게 운동은 하기 싫은 걸까?에 대한 답도 이 주제에서 밝혀지는데 뇌는 노력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몸을 쓰는 일에서도 역시 에너지를 쓰지 않는 방향으로 쉽게 기운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하는 활동을 자동적으로 선호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운동이라는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은 뇌의 자동성과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엄청난 일이었던 것이다. (역시 운동을 하기 싫은 건 내가 의지박약이거나 게을러서가 아니고 뇌가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렇게 에너지 소모가 적고 편한 것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많기 때문에 뇌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작가는 조언한다.



저자가 뇌과학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어서인지 전반적인 책의 문체 또한 이야기하듯이 구어체로 편하게 쓰여져 있고 평소 뇌과학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라도 쉽게 이해하고 빠져들 수 있게 흥미로운 주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뇌과학이라고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가벼운 교양서적으로 편하게 접근한다면 나도 모르는새 우리의 마음과 뇌의 작용에 대해 좀 더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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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마시 코트렐 홀.엘리자베스 엑스트롬 지음, 김한슬기 옮김 / 웨일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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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요즘 가장 두려운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 '나이들어 가는 것'이라고 할 것 같다. 어느 덧 파릇파릇하고 혈기 넘치던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들어서자 아침에 일어나기가 점점 힘들고, 여기저기 삭신이 쑤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주변 사람들의 부모님이나 가까운 지인들의 부고 소식을 들을 일이 늘어나니 새삼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외모나 재력, 체력 등 개인마다 각각 차이가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빠짐없이 공평한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수 백억 자산가든, 돈 한푼 없는 빈털터리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노화는 찾아온다. 물론 노화를 준비하는 방법이나 자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한 살 먹는 것만큼은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겪는 일이지만 모두가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늙는다는 것이다.

조금씩 늘어나는 주름살이나 뱃살, 흰 머리 외에도 정신적, 신체적으로 약해진 나의 미래를 상상해보면 암담하기만하다. 물론 요즘은 100세 시대라 노인의 기준인 65세를 지나도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런 노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상상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노화와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를 읽어 보게 되었다.

이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는 노인의학 전문의로 거의 30년간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노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찰해왔다. 물론 그 중에는 몸이 편치 않아 휠체어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현재 생활에 만족하며 쾌활하게 생활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저자는 이렇게 즐겁게 노년 생활을 보내는 노인들을 가깝게 지켜보며 이들이 이런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3가지 이유를 꼽았다.

이 3가지 이유에 대해 책에서는 3개의 챕터를 나눠 설명하고 있는데 이 중 첫 번째인 목적성은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게 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적성은 다른 말로 '삶의 보람'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다른 가족들에게 요리를 하기 위해서든 반려견 혹은 반려 식물을 키우기 위함이든 어떤 활동이 되었든지간에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 행동하고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적응력은 과거의 젊고 건강했던 시절을 계속해서 돌이켜보며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노화한 현재의 삶과 신체능력의 저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적응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자나 가까운 지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이나 암, 치매 등 병마와 싸우며 겪는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여전히 내가 누릴 수 있는 사소한 기쁨을 느끼고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가며 여전히 남아있는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마지막 계획성은 건강한 노년기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것들에 관한 것으로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인 심혈관계 질환이나 방광,신장,생식기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활동들과 이미 찾아온 통증에 대처하는 방법, 건강에 도움이 되는 지중해식 식단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실천할 수 있는 세부적인 지침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인구의 상당수가 100세 이상이며, 비교적 건강하게 장수하는 지역인 블루존의 노인들의 실생활에 대한 많은 인터뷰가 담겨있다. 인터뷰를 한 사람들 대부분이 90세가 넘는 고령의 노인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현재의 생활을 충분히 누리며 즐기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스스로 걸어서 거동하기가 불편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거나 병마와 싸우고 있는 노인들도 있었지만 본인의 현재 상태에 대해 절망하거나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하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도 크고 작은 행복들을 찾기 위해 노력해 주변사람들까지 행복이 전염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노화라고 하면 쉽게 병(病), 사(死)만 연관지어 생각하며 막연히 두려워 하기만 한다. 천하를 다 가진 진시황조차 불로초를 그렇게 찾아다닌 것을 보면 늙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만인에게 적용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행복한 노년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사례들을 보면서 그런 막연한 공포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상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준비해 나가는 것이 유병장수 시대를 맞이한 우리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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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기 부끄러워 묻지 못한 재무제표 상식 -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재무제표 상식 A to Z
이병권 지음 / 새로운제안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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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주식인구 천만시대이다. 기존에도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돈 좀 벌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20년 말에 비해 21년 말에는 거의 50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새롭게 주식 시장에 뛰어 들었다고 한다. 물론 계좌를 여러 증권사에서 만든 사람들이 포함되어 허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높은 증가치인 것은 분명하다.

돈복사(?)나 마찬가지라며 불타오르는 주식시장에 탑승하려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과연 주식시장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라고 생각해보면 막상 그러치는 않다. (당장 내 계좌부터 ㅠㅠ) 실제로도 주식시장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5~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팬데믹 때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주식 시장은 피크를 찍은 후 가파르게 하락했고, 꼭지에 투자해 물린 사람들의 계좌는 여전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년 꾸준히 성장하며 최고치 주가를 갱신해가고 있는 기업들은 있으니 이런 가능성을 지닌 기업들을 선별하고 투자하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물론 시장 분위기에 따라 실적과 관계없이 장미빛 미래를 꿈꾸며 주가가 상승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실적이 동반되지 않는 기업들은 언젠가는 곤두박질치게 된다. 결국 트랜드에 따라가는 종목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주가가 상승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꾸준한 이익을 내며 성장하는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재무제표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책 「물어보기 부끄러워 묻지 못한 재무제표 상식」 은 완전 쌩초보를 위한 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물론 회계의 기본 개념과 계정에 대한 설명들을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자산, 부채, 자본에 대한 기본개념이 없는 상태로 이 책을 읽기는 무리이다. 재무상태표나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의 구조나 계정과목의 의미 정도는 알고 있어야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에서 물어보기 부끄러워 묻지 못했다고 한 것만 봐도 재무제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겉핥기 식이라 계정이나 숫자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정확히는 몰라서 물어보기 부끄럽다라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오히려 아예 모르면 물어보기 부끄럽지 않다 ㅎㅎ

최근에는 재무제표를 보기 좋게 그래프로 변환해주는 사이트나 프로그램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머리 아프게 재무제표를 보지 않더라도 매출이나 영업이익, 현금의 증감 등 기본적인 정보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재무제표를 읽을 줄 알아서 겉으로 보이는 숫자만 볼 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재무제표를 읽는 법이 아니라 재무제표에 기재된 숫자의 숨겨진 함의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자본 증가 대비 매출이 비례해서 증가하지 못하는 기업은 일단 주의해야 하는 이유나 금융손익을 통해 부자회사와 가난한 회사를 구분해내는 방법이라던가 증자와 감자, 주식분할이 주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초보자라면 쉽게 알아채지 못했을 시그널들을 알아채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결국 주주가 된다는 것이고, 주주의 목적은 기업에 투자해 이익을 공유받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회사를 세우고 운영하기는 힘드니 주식 취득을 통해 우리보다 더 잘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기업을 맡겨 이익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 동안은 회사가 잘 굴러가고 있는지, 영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이 그저 그래프만 보고 투자하고 있었던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다.

재무제표를 보는 것에는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기업을 운영하는 것만큼 어렵거나 위험한 것은 아니니 작은 노력을 통해 긴 미래를 대비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통해 재무제표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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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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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의 유산과 외딴 섬, 비밀을 감추고 있는 가족, 그리고 예상치 못한 폭풍 등 소설 「속임수의 섬」은 미스터리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소설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싶은 배경이다.

명문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이다이지 가문의 대표가 사망하고 유언장 개봉을 위해 외딴섬에 유족들이 모이게 된다. 사이다이지가 사람들의 별장 하나만 덩그런히 있는 섬이라 선착장은 작은 배 하나만 겨우 들어올 수 있는데 마침 태풍이 찾아오고 사람들은 꼼짝없이 섬에 갇히게 된다. 그런 와중에 사이다이지가 일가의 한 사람이 살해된 채 발견돼 경찰에 연락하지만 태풍 때문에 당장 경찰이 섬으로 들어 올 수 없다. 누가 살인범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외딴섬은 외부로 나갈 수도, 외부에서 들어올 수도 없는 밀실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돼버린다. 경찰이 오기 전에 더 이상의 살인을 막고 범인을 밝히기 위해 자칭 명탐정 고바야카와와 얼떨결에 그의 조수가 된 변호사 야노가 살인사건의 비밀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속임수의 섬의 작가인 하가시가와 도쿠야는 미스터리 장르로서는 다소 특이하게 유머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다. 보통 미스터리 작품들은 원한과 복수가 담긴 살인사건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가 대부분인데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티키타카나 말장난 같은 유머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외딴섬에 누구인지 모를 살인자와 함께 고립되어 있다면 서로를 의심하고 패닉에 빠지는 상황이 일반적일텐데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사립탐정 고바야카와와 변호사 야노 또한 사건을 추적하는 내내 투닥거리며 톰과 제리 같은 케미를 보여준다.

현재 시점에서 발생한 외딴섬에서의 살인사건 외에도 곁가지로 다른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별 것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건들도 알고보면 모두 얽히고설켜 있다는 점에서 경쾌한 느낌에 반해 의외로 꽤나 집중해서 줄거리를 따라가야 한다. 분량도 500페이지 가까이 되다 보니 흘리듯이 나온 사건을 까먹기 쉬운데 알고보면 다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대부분 이 중에 누가 범인인지 모두가 의심스러워 보이도록 만들지만 속임수의 섬에서는 뚜렷하게 누가 범인인지 의심할만한 단서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후반에 가서야 의심스러운 정황이 드러날 뿐 그 전에는 섬에 갇힌 사람들 모두가 특별한 혐의점이 없어 보인다. 대신 과연 이게 지금 이 사건의 진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은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그 사건과 이 사건이 어떤 고리로 얽혀 있을지 추리해 보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후반까지 아무 감도 못 잡고 있다가 뒷통수를 세게 맞게 된다.

범인이 어떻게 이런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만들 수 있었는지 충분히 설명해주긴 하지만 주인공이 말하기 전까진 이런 방법이었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약간은 뜻밖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억지스럽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방법으로 풀어내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솔직히 누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라는. 그리고 유머에 대해서는 약간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다 싶은데 소설 속이지만 어쨌든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실없이 가볍게 얘기하나 싶을 수도 있고, 만약에 취향에 맞다면 소소한 말장난에 시종일관 피식피식하는 웃음이 새어나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특히 등장인물 중 사찰에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법사를 위해 참석한 스님은 그 정도가 지나치게 가볍다 싶기도 했다. (물론 알고보면 이런 경박한 스님의 등장도 다 이유가 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약간 만화같은 캐릭터와 설정 때문에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거나 잔인한 소설을 기피하는 독자들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미스터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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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비명 킴 스톤 시리즈 1
앤절라 마슨즈 지음, 강동혁 옮김 / 품스토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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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여성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킴스톤 시리즈는 영국을 비롯해 해외에서는 누적으로 1,300만권이나 팔렸을 정도로 인기있는 시리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출간된 적이 있었지만 23년 여름에 개정되어 3편이 연달아 나오고 최근 4편도 출간되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개정판을 번역한 작가가 10년이나 공을 들인 끝에 출간하게 됐다고 하니 기본적인 재미와 완성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작품이 2015년에 첫 출간됐기 때문에 현재도 여전히 매력적일까하는 의구심이 약간 있었지만 역시는 역시, 18권이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1권을 놓고 보자면 사건이나 소재 자체가 특이하고 눈길을 끈다기 보다는 캐릭터들의 매력이 강했다. 컨셉 자체는 전형적인 형사물, 혹은 수사물의 느낌이었는데 주인공인 킴 스톤이 워낙 매력적인 인물이라 주인공이 하드캐리 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여러 매체의 트랜드는 소시오패스처럼 뭔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혹은 냉철을 넘어선 냉혈한인 인물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는데 킴 스톤은 강한 자들에게는 강하지만 또 약자들에게는 한 없이 따뜻한 겉바속촉의 캐릭터다. 본인도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어렵게 자랐지만 짧은 기간 따뜻하게 자신을 품어줬던 가족들 때문에 삐뚤어지지 않고 형사가 되어 정의를 구현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난관들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권력욕이나 출세욕과는 전혀 거리가 먼 언니, 킴 스톤은 직장 상사고 뭐고 아니다 싶으면 들이받고 피해자들을 위한 수사에만 집중한다.


1편 「소리없는 비명」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크게 2개로 나눌 수 있다. 한 학교의 교장이 욕실에서 살해된 사건을 시작으로 과거 교장과 같은 보육원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살해 당하는 사건과 지금은 사라진 그 보육원의 부지에서 발견된 유골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게 됐는지 추적해 나가는 사건으로 나뉜다.


1편에서는 킴 스톤의 동료 형사들+살해당한 인물들+유골로 발견된 인물들+ 증인들 등 등장인물이 워낙 많다보니 인물들의 이름을 파악하는 것이 약간 어려웠다. 게다가 외국 명칭과 이름들이라 익숙치 않아서 눈에 익질 않았지만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대충 이게 누구겠구나라고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사건 자체는 크게 반전이 있다거나 의외다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형적인 의외의(?) 범인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간만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피해자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주인공을 보니 뭔가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애정이 가는 인물이었다.


자신들만의 안위와 탐욕을 위해 어린 아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시키고 또 그런 범죄에 동조하는 어른들 속에서 킴 스톤 같은 진짜 어른이 현실에서도 많아지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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