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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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는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매니아 층을 거느리고 있는 흔치 않은 호러 미스터리 작가이다. 호러와 미스터리라는 두 장르가 섞인 경우 호러가 다소 시시한 경우도 많은데 미쓰다 신조의 작품은 으스스하고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일품이다. 그러다 보니 밤에 혼자 있을 때는 잘 읽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밤에도 거뜬히(?)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호러보다는 추리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렸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공포스럽고 괴이한 사건이라도 사실 인간이 한 짓이라는 걸 알게되면 공포감은 훨씬 줄어들기 마련인지라 엄청난 겁쟁이이자 주인공인 덴큐 마히토는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평소 호러물을 잘 읽지 못하는 독자들이라도 주인공의 논리적인 사건 풀이를 따라가다 보면 '아, 결국엔 다 사람이 문제지'라는 생각에 공포감이 훨씬 줄어든다.


책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름인 명탐정 도조 겐야는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비롯한 다른 시리즈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도조 겐야의 이름만 나오기 때문에 굳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지 않았어도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걷는 망자」에서는 총 5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사건들이 전개된다. 각 지역에서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그 사건에 대한 기록을 도조 겐야의 부탁을 받은 대학생 도쇼 아이가 덴큐 마히토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다. 도쇼 아이는 영매사인 할머니로부터 능력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더 소름끼치게 다가 온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걷는 망자는 5개의 에피소드 중 가장 첫 에피소드로 덴큐 마히토에게 각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도쇼 아이가 직접 겪은 사건이다. 바다에 빠져죽은 사람이 망자가 되어 헤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씌이고 만다는 '망자길'을 걷던 도쇼 아이가 죽었지만 살아있는,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망자를 목격하고 벌어지는 일에 관한 이야기로 도쇼 아이가 덴큐 마히토와 인연을 맺게 되는 사건이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4번째인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으로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괴담과 비슷했다. 네 명이 방의 각 모서리에 각자 앉아 있다가 다음 모서리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다가가서 터치를 하면 중간에 한 명이 사라진다거나 혹은 4명이 시작했는데 1명이 더 나타난다는 괴담인데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동안 유행했던 이 구석놀이라는 강령술의 기원이 아마 일본이 아닐까 싶다.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도 방의 네 구석에 한 명씩 앉아 있다가 각자 방 한복판을 향해 기어가 옆에 있는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그 때 다섯 번째 머리가 나타난다는 괴담으로, 이를 직접 시험해 보기 위해 요괴 연구회 회원들이 한 오래된 여관에 묵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평소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상관 없겠지만 이 책이 첫 작품이라면 다소 일본색이 강하다는 점을 미리 염두해 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민속학과 호러의 결합이라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특유의 풍속과 요괴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호러를 논리적으로 풀어내긴 하지만 본격 추리를 생각한다면 결말에 이르는 추리가 약간은 뜬금없거나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충분한 조사나 단서 없이 사건에 대한 내용만 듣고서 추리를 해내는 과정이 논리적 비약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으스스한 호러의 분위기와 사건을 풀어나가는 저자의 필력은 여전히 흡입력 있고 덴큐 마히토와 도쇼 아이의 티키타카가 또한 돋보이기 때문에 평소 마쓰다 신조의 호러를 좋아했던 독자라면 충분히 기대에 부응할만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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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의 인생 수업
앨버트 엘리스 지음, 정유선 옮김 / 초록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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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아 얘기해보자. "당신은 참 비합리적이시네요." 라고.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아마 대부분 화를 내며 본인은 지극히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비합리적이란 말은 뭔가 이성적이지 않으면서 논리적이지도 않고 약간은 무식하다(?)라는 뉘앙스라 듣기가 거북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 「위대한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의 인생 수업」 에서는 일단 인간은 비합리적이란 사실을 전제로 시작한다.

저자가 말하는 비합리성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비합리성과는 약간 결이 다를 수도 있는데 "자기 패배적이거나 해로운 결과를 불러오는 모든 생각, 감정, 행동"을 의미한다. 저자는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길 비합리적이며, 이러한 비합리성이 인간의 생존과 행복에 큰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비합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비합리성이라고 하면 한 번에 잘 와닿지 않지만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들이 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거나 업무에서의 자신의 역량과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 한다거나 혹은 자신이 속한 학교나, 인종 , 나라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매긴다거나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세상에는 정의와 공정성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것 등이 모두 인간의 비합리성의 예이다.

이렇게 일일이 예를 들어보면 스스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도 '아, 내가 그 동안 비합리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 일반적으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던 생각이나 믿음들도 비합리성에 포함된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이런 비합리성에 대한 신념이 스스로를 괴롭고 불안하게 만들었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부터가 바로 저자가 개발한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 REBT)의 시작이 된다. 인간의 괴로운 감정의 원인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비합리적 신념이라는 필터를거쳐 불안정한 생각과 감정으로 모습을 바꾸기 때문이다.

"합리적" 정서행동치료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 치료법의 핵심이다.

저자는 "나는 반드시 성공해야하고, 실패하지 않아야 해."라는 것과 같은 독단적이고 무조건적인 사고를 "당위적 사고"라고 지칭하며 이런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요구에서 벗어나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성공이나 인정, 안락함을 간절히 원해" 정도의 '소망'은 "그것이 이뤄지면 좋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고, 그게 없다고 죽지는 않아. 그래도 행복할 수는 있어." 로 끝나기 때문에 실패의 가능성을 열어둬 이것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무조건 성공해야 해, 절대 결점이 없어야 해."라는 실패의 가능성은 1%도 고려하지 않는 강박적인 사고는 스스로를 신경증에 걸리게 만들고야 만다.

흔히 과학자들은 100%라는 건 없다고 말한다. 거의 100%라도 항상 99% 혹은 99.9% 라고 1%, 0.1%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곤 하는데 이렇게 과학적으로 유연한 사고방식과 대처를 우리 삶에도 적용하는 것이 정서적 건강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과학적으로 사고하면 자신이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바꿀 수 없는 성가신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노력없이 쉽게 이룰 수 있을거라는 허황된 기대나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당위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불안과 우울, 분노는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초조함의 강도가 약해질 것이고 서서히 줄어들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과학적인 저자는 100% 완치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ㅎㅎ)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당위적 사고에서 벗어나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거스르고 합리적인 사고와 감정으로 바꿀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단계를 나눠서 설명하고 있는데 각 챕터마다 REBT연습을 통해 구체적인 예시를 들고 , 어떤 식으로 당위적 사고에 대해 반박해야하는지 설명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상담실에 가지 않고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 로 자기계발서의 일종이니 심리학을 다룬 이론서적보다 쉽게 읽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당위적', '통찰' '비합리적 신념' 등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거나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이 자주 등장해 초반에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저자의 이론에 대한 설명 뒤에 이어진 구체적인 예시들 덕분에 초반의 걱정과는 달리 쉽게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도입부에 약간의 허들만 넘는다면 '세계 3대 심리학자' 라는 앨버트 엘리스의 상담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인 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 강박과 신경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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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바닥 -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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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워낙 재밌게 읽었던지라 신작 「끝없는 바닥」 도 기대하며 재빠르게 읽어 봤는데 한자와 나오키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이 있었다.

국내에는 한자와 나오키가 먼저 출간됐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끝없는 바닥이 이케이도 준의 데뷔작이다. 아마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의 전신이 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전직 은행원이었던 작가의 이력 덕분에 한자와 나오키에서는 은행의 비리와 부정을 주제로 등장 인물들의 탐욕을 현실적이고 적나라하게 그려 냈는데 이 작품도 역시 은행의 부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은행이 사건의 주요 무대이다 보니 채권, 채무, 대부, 어음, 도산 등등 은행에서만 주로 사용할 법한 전문적인 용어와 관련 내용들이 등장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추리 소설로 살인사건의 진실과 범인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관련된 세세한 내용을 몰라도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관련된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근무했던 은행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그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니 실제 은행의 부정과 비리가 꽤나 만연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좀 더 수직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것 같은데 그런 분위기에 전혀 굴하지 않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돋보였다. 한자와 나오키도 그렇지만 끝없는 바닥의 주인공도 누가 뭐라해도 원칙대로 마이웨이같은 스타일을 고수한다.

사건은 주인공인 은행 직원 이기 하루카의 친한 동료인 사카모토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너, 나한테 빚진 거다?" 라는 말을 뒤로 하고 외근 간 뒤 차 안에서 갑작스런 쇼크사로 죽음을 맞이한 사카모토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이기는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사카모토가 고객의 돈을 횡령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카모토의 결백을 믿는 이기는 사카모토의 누명을 밝히고 석연치 않은 죽음에 얽힌 비밀을 추적한다.

비밀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헤어진 전 연인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도쿄 실리콘이라는 회사와 은행과의 숨겨진 관계가 드러나고 그 회사가 왜 도산하게 됐는지, 은행 내부의 파벌 싸움과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어떤 짓들을 벌였는지가 낱낱이 드러난다.

일단 한자와 나오키의 경쾌한 활극 같은 분위기를 생각했다면 끝없는 바닥은 그것보단 다소 무겁고 느린 분위기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은행원이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한자와 나오키는 자신이 당한 건 배로 갚아주겠다는 신념으로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향해 사이다같은 통쾌한 복수극을 펼쳐 보이는데 끝없는 바닥의 주인공인 이기는 그런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당한 부당한 대우보다는 주변의 인물이 당한 무고와 결백을 밝히는데 집념을 보여준다. 다만 그 과정이 막 사이다 같거나 빠른 전개가 아니라 약간은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풍기기도 하기 때문에 한자와 나오키의 통쾌한 분위기를 생각했다면 약간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범죄를 추적해 나가는 촘촘히 잘 짜여진 전개와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주는 권선징악의 결말은 여전하기 때문에 한자와 나오키를 재밌게 읽었던 독자라면 이번 작품도 충분히 만족할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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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은 독
오리가미 교야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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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기 전부터 엄청난 반전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읽는 내내 어떤 반전일까라며 계속 의심하며 읽었다.

그래서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전에 대한 평보다는 조금 충격이 덜했지만 그래도 반전이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아마 반전에 대한 걸 의식하지 않았다면 더 크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평범한 중학생인 주인공 기세의 친척형이 학폭 가해자에게 뺏긴 할아버지의 시계를 찾는 일을 기타미 리카라는 동급생에게 맡기면서 시작한다. 기타미 리카는 돈을 받고 친구들의 사건을 의뢰받아 해결해주는 탐정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기세는 형이 이런 사실을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알리지 않고 수상한 친구에게 돈을 주고 의뢰를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형의 뜻에 따라 지켜보기로 한다. 며칠 후 어떤 방법을 썼는지 기타미는 뺏긴 시계를 찾아왔고, 친척형은 추가로 학폭을 멈추게 해달라는 의뢰를 하게 된다.

결국 이번에도 의뢰를 충실히 이행한 기타미 덕분에 친척형을 괴롭히던 가해자는 누명을 쓰고 전학을 가게 됐고, 그 과정에서 기세는 기타미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가지게 된다.

이후 시간이 한참 흘러 기세는 법대생이 되었고, 학창시절 자신을 과외했던 의대생 형 마카베를 우연히 만나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양심이 있으면 결혼하지 마라."

단 한 줄의 문장이었지만 과거 어떤 사건으로 학교마저 관두고 인테리어 가게의 점장으로 일하며 곧 연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던 마카베에게는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왔다.

어린시절 동경하고 좋아했던 형이 처한 위험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기세는 중학생 시절 인상 깊었던 기타미를 기억해내고 그녀의 이름과 똑같은 '기타미 탐정 사무소'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곳에서 중학교 시절의 그녀와 다시 재회한다.

이후 이야기는 기세의 의뢰를 받은 기타미가 기세와 함게 마카베를 협박하고 있는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카베가 숨기고 싶었던 과거의 사건과 주변인물들의 비밀도 함께 밝혀 진다.

기세는 검사장인 아버지와 고등법원 판사인 할아버지, 법원서기관인 어머니를 둔 법조인 집안의 아들로 누구보다 정직하고 솔직한 성격이다. 그래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조금의 불합리와 부정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과연 진실과 정의만이 정답인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선택이 맞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중학생 시절의 범상치 않았던 행보를 보여줬던 기타미가 탐정이 되었다고 해서 뭔가 특별한 수사과정을 거친다기 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뒷조사(?)가 주를 이룬다. 무작정 집 앞에서 잠복해서 기다린다던가, 당시 관계자들과 한 명 한 명 약속을 잡아 과거 사건에 대해 물어보는 등 다소 평범하게 조사를 이어 나간다. (뭔가 기상천외한 추리력과 미스터리한 해결능력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

하지만 이 과정이 절대 지루하거나 밋밋하게 묘사되지 않고 묘하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다. 그래서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한 100페이지만 읽을까라던 계획이었는데 결국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350페이지가 넘는 꽤 장편의 분량이었지만 중간에 한순간도 지루하다고 느낀 적 없이 마지막까지 쭉 흡입력을 잃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었다.

흡입력 있는 추리소설로 흔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많이 추천하는데 이 책은 오히려 그보다 더 재밌으면 재밌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크게 임팩트 있거나 혹은 피가 난무하는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 묘한 긴장감이 이어졌다. 이런 걸 보면 자극적인 소재나 사건들이 꼭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주로 주인공인 기세와 탐정인 기타미의 시점으로 사건이 서술되는데 시점이 고정되지 않고 2명의 시점으로 전개되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기세와 목적을 위해서는 다소 불법적이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타미라는 양 극단의 성향을 가진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어떤 것이 진짜 옳은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결말과 반전이 키포인트인 작품이라 결말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결말을 보고 '이게 뭐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본다.

잔인한 진실과 달콤한 거짓 사이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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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의 필로소피 - 계속 잘나가는 사람들의 비밀
최형렬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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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대학을 졸업하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취업일 것이다. 최근에는 꼭 취직이 아니더라도 개인사업을 하거나 다른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대부분 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졸업 후 천신만고 끝에 취직을 하고 신입 시절이 지나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면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 일인가, 이 회사에 계속 머물러도 될까, 같은 일만 계속 하다가 도태되지 않을까 등등 다양한 고민이 시작된다. 내 주변의 동료나 친구들이 모두 직장인이지만 막상 이런 고민에 대해 상담하려고 하면 마땅히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와 비슷한 직급, 연차의 동료라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선배와 대화 하자니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비춰질까 쉽사리 얘길 꺼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이미 겪어봤고, 그 고민을 잘 해결하고 성장한 선배와 대화를 해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오프라인에서 직접 그런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는 것이지만 사실 쉽지 않는 일이다.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그들이 겪어왔던 길에 대해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을 통해 나만의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아마 「내 일의 필로소피」도 그런 선배들의 조언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책은 굴지의 글로벌 기업인 SK,알리바바,쿠팡 등을 거친 저자가 자신의 일과 관련된 고민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이력 자체가 화려하다보니 평범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나에게도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나니 일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와 개인의 성장에 대한 열망은 기업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총 5개의 챕터로 첫 번째는 해결, 두 번째는 성장, 세 번째는 실력, 네번째는 공부, 다섯 번째는 이직을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해결 챕터에서는 동료라면 누구나 같이 일하고 싶고, CEO라면 누구나 붙잡고 싶은 인재가 되는 방법을 다루고 있는데 주로 회사 내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통해 인정받는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두 번째 성장 챕터에서는 자신의 현재 실력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성장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업무 통제력을 키우고 개인적 차원에서 조직 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세번째 실력의 필로소피 편에서는 삶과 일에 대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성과가 나도록 제대로 일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네 번째는 직장인으로서 어떤 공부를 해야 업무적으로나 업무외적으로나 성장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마지막으로는 이직과 관련된 주제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회사에서는 도저히 내가 성장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 어떻게 이직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한다.

직장인이라면 이 5개의 챕터 중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과 관련된 챕터가 적어도 1개 이상은 될 것이다.

어느새 직장인이 된지도 십여년이 넘어가다 보니 업무에도 익숙해지고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성장에 대한 욕구는 컸지만 어떻게 해야 굳이 회사를 옮기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는지 마땅한 방법을 알지 못해 답답하던 차였기 때문에 성장에 대한 챕터가 가장 눈에 띄었다.

성장의 필로소피에서는 회사의 비전과 미션이 내 일에 실질적으로 잘 반영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목표와 지표라는 도구를 이용할 것을 추천하는데 회사의 비전이 담긴 가장 최상위 목표 설정에서부터 차상위 목표 - 차차상위 목표 - 실무자 목표까지 어떤 식으로 설정해야 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업무와 방식이 지표인데 혹시 목표 달성에 실패하더라도 지표를 얼마나 잘 설정하고 충실히 이행했는지 복기 과정을 통해 실패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표를 잘 설정하고 이행했다면 목표는 자연스레 달성되기 마련이므로 개인적인 지표 설정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개인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수행하는 업무를 관찰하고 기록할 것을 추천하는데 이는 자기객관화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업무상 변수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자신의 에너지가 정확히 어디에 얼마만큼 쓰이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드물기 때문에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그 기록을 통해 업무에 부하가 걸리는 부분은 어디인지, 어떤 점에서 정체되고 있는지 등 기록을 세세히 검토하려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 밖의 자연인인 개인으로서의 기록도 필요하다고 하는데 건강관리나 자기계발, 취미, 소비, 투자 등 회사 밖에서의 내 삶 또한 회사 내 실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잦은 음주를 즐기고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고, 취미생활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커리어를 오랜시간 성공적으로 이어나가기 어려울 것이란 것은 굳이 기록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취업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생각을 했던 취준생 시절과 달리 막상 직장인이 되어보니 진로와 성장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따라오고 있다. 물론 직장을 다니는 동안 생계에 대한 걱정은 덜하겠지만 월급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고, 고민에 대한 답은 어디서도 속시원하게 얻을 수 없었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회사나 회사 밖이나 어느 곳도 녹록치 않다. 어딜 가도 힘든 것이 현실이라면 막연히 파이어족으로서의 삶을 꿈꾸며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나를 찾는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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