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맨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3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립맨』의 부제는 범인에게 고한다2 이다.  '범인에게 고한다' 와 중복되는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전작에 나오는 사건이 대화 중에 언급되기는 하지만 전작을 보지 않았어도 립맨을 읽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그러니 혹시나 범인에게 고한다를 보지 못해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라면 주저없이 읽어보길 권한다.

일단 600 페이지에 달하는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나 흡입력이 상당히 좋은 작품이다. 그래서 딱히 길어서 지겹다던가 스토리가 늘어진다던가 하는 느낌없이 마지막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소재가 우리 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보이스피싱과 유괴이기 때문에 더 피부에 와닿아 실감나기도 했고 흥미로웠다.

​립맨의 주인공은 도모키와 다케하루 형제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는 담쌓고 지낸 동생 다케하루와 달리 형인 도모키는 대학교 진학까지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아 간다. 하지만 갑작스런 부모님의 교통사고와 더불어 취직이 힘들던 시기, 어렵게 취직한 회사 미나토당이 유통기한 위조로 거의 경영파탄 상태가 된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입사 예정자들에게 강제로 입사포기를 권유했고, 이 일은 결국 도모키의 인생을 크게 엇나가게 만들게 된다.
그 후 생계가 곤란해진 형제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보이스피싱 업체에 발을 들이게 되고, 그것이 훗날 유괴사업까지 함께한 천재 범죄자 이와노와 만나는 계기가 된다.


​립맨의 초입부는 도모키의 시선에서 진행되지만 결국 사건의 큰 축에는 '이와노'와 '마키시마'가 등장한다. 이와노가 예측 불가하고 기발한 범죄를 설계하는 천재 범죄자라면, 그 반대편에는 뛰어난 직관력과 추리력으로 범인을 쫓는 마키시마 형사가 있다.

​일반적으로 영미 소설에는 뛰어난 인물 한 명의 활약으로 사건이 해결되는데 반해 립맨에서는 팀장인 마키시마를 비롯해 특별수사대라는 조직에 속한 여러명의 형사들이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 일본 특유의 집단문화의 영향인지 몰라도 일본 소설에서는 경찰 조직내 위계질서나 팀워크에 대해 그려낸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립맨에서도 예외가 아닌지라 마키시마의 탁월한 리더쉽과 수사능력도 빛을 발하지만 마키시마를 보좌하는 형사들 또한 각각 개인의 능력과 개성이 두드러진다. 

이런 특별수사대 형사들의 각기 다른 매력을 보는 것도 립맨에서 느낄 수 있는 잔재미 중 하나다. 그 중 오가와와 아유미 콤비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마지막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무래도 이야기의 소재가 보이스피싱과 유괴이니만큼 그 수법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와있는데 혹시나 이 책을 보고 실제로 따라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치밀하고 정교한 플랜이었다. 그리고 보이스피싱에 대해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법 외에도 다양한 기법들이 나와있어 미리 알고 있다면 실제 보이스피싱 예방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사실감 넘치는 묘사들은 백프로 작가의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실제로 이뤄지는 범죄를 참고한 듯 마지막 장에는 참고 문헌에 관한 정보가 나와있었다. 그만큼 사건 묘사들은 현실감 넘쳤고 크게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계속해서 긴장감을 잃지 않게 만들었다.


인간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도모키 또한 원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잇따른 불운이 겹치면서 순간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게되고,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그의 인생을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도모키와 다케하루 형제들같이 평범한 인물들도 순간의 판단착오, 혹은 지나친 욕심으로 범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운전 중 잠깐 몇 초의 졸음은 사망사고를 일으키는 위험한 행동이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이번 한 번만 딱 눈감고 저지른 그 행동이, 나중에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잠시 외면한 그 한순간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으니 눈을 크게 뜨고 현혹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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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혼
황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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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는 "떠난 것들은 무엇으로든,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는다."  고 했다.


이 책은 이런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이야기로 세상을 떠났던 자들이 다시 살아 있는 자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과 사연들에 관해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꽤 많은 편인데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인물들이 각자 나름의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따로 진행되다보니 처음에는 그들이 서로 어떤 사연으로 얽혀있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국적 조차 같지 않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각 인물들간의 연결고리가 하나씩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얽히고 설킨 그들의 인연이 한데로 뭉쳐진다.

 

"란코"는 도쿄에 있는 라멘집에서 일하고 있다. 시어머니의 엄청난 시집살이로 고생하고 있고, 남편은 병 때문에 제대로 일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지낸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어린 아들 히카루와 글 쓰기다. 때때로 공모전에 소설을 내지만 매번 떨어지고 만다.

 

"양희주"는 치매노모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싱글 여성이다. 그녀는 표지 일러스트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엄마를 편안히 모시기 위해 차를 사고 싶지만 남자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이번에는 꼭 받아내고야 말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강주미"와 "강나영"은 자매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곽새기"라는 인물로부터 쫓기면서 그녀들의 일상은 망가졌다.
부모님은 실종되고 두 사람은 허름한 여관을 전전하며 도망다니고 있다.

 

"이시현"은 약사다. 사고로 다쳐 다리 한 쪽을 절게 되었고, 다리를 고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여자친구를 외면해 버렸다.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 약국을 운영하며 전 여자친구를 애타게 찾고 있다.

 

"상원"은 아버지의 기사식당을 도와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열다섯 살 눈길에 미끄러져 의식을 잃었을 때 저쪽 세계의 "동욱"이 상원의 몸에 숨어 들어 그날 이후 쭉 함께 살고 있다.

 

 

『부유하는 혼』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의 '혼' 이 자리잡고 있다.
자살하는 사람, 혹은 사고로 의식불명이 되는 사람 등 여러가지 사연으로 원래 몸의 주인인 자의 혼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 때를 틈타 다른 혼이 그 몸을 차지할 수 있다. 
겉은 내가 어제까지 내가 알던 그 사람이지만 속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살고 있는 것. 모두 생각만으로도 섬뜩한 일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주로 희주와 노모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희주는 이야기의 비중이 큰 만큼 나름 주인공 격인 인물인데 거의 초반에 죽음을 맞이해서 놀랐다.  초반부터 죽는 주인공이라니...
하지만 혼을 다루는 내용답게 죽는다고해서 그걸로 끝은 아니다. 희주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희주는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죽게 된 후 혼자 남게 될 치매 노모를 걱정하며 죽어서도 엄마의 곁을 맴돌게 되고,  노모는 온전하지 않은 정신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딸이 곁에 있는 것을 느끼며 희주를 찾아 헤맨다. 이 모녀의 사연이 비록 소설일지라도 안타깝기도 하고 짠해서 감정이입을 하며 읽게 됐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에 대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필력 때문이기도 했는데 흡입력이 엄청나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다.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사연으로 맺어져 있는지,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어떻게 산 자의 몸에 들어가 대신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지 하나둘씩 궁금증이 해결되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쉬지 않고 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시작과 끝에 예상치 못한 어떤 인물이 숨어있으니 별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다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사소해보이는 모든 사건에도 다 이유가 있다. 프롤로그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말것.

 

『부유하는 혼』은 단순히 죽은 자의 혼이 다른 이에게 들어가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떠난 것들은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것이 악이든 선이든 내게서 실행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돌아와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러니 그 대가가 두렵다면 똑바로 살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자살률 1위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버리려한 이 생애서의 삶이 다른 누군가는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삶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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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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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수동적이라 모든 선택을 타인에게 미루는 여자.
결혼도 그저 남편이 원해서, 불륜도 상대방이 나와의 관계를 원해서 거부하지 않았을 뿐이지 절대 내가 먼저 원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안나의 기본 마인드였다.

 

안나는 남편을 따라 스위스로 이주해 살게된 37세의 미국인 여성이다. 스위스에 9년 동안이나 살았지만 그녀에게 스위스는 여전히 낯설고 냉정한 나라였다.
그녀는 아직도 운전면허증이 없었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계좌도 없었고, 독일어 또한 서툴었고 친구도 없었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스위스인 특유의 무뚝뚝함과 무정함으로 안나를 대했고, 남편은 늘 그녀가 원한만큼의 애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실 안나는 다른 사람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절대 불행한 인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편, 아늑한 집, 사랑스러운 세명의 아이들, 무뚝뚝하다곤 하지만 필요할 땐 언제든 아이들을 돌봐주는 시어머니.  트집을 잡으려 해봐도 충분히 평탄하고 무난한 삶이었다. 
그러나 권태로운 정도로 평온한 삶이 오히려 그녀에겐 오히려 무기력과 우울, 결핍을 불러온 것인지 그녀는 남편의 나라에서 언제나 혼자라고 느꼈고, 다른 나라 말을 쓰는 외지인일 뿐이었다.
그래서 안나는 항상 타인의 애정과 관심에 목말랐지만 남편과 가족들은 그녀의 이런 결핍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다른 남자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는 것으로 위안을 찾았다.

 

독일어 수업에서 만난 아치 , 남편의 지인인  카를 ,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스티븐까지. 모두 하나같이 불륜관계로 맺어진 남자들이었다. 
언제나 자신이 수동적인 사람이며, 불륜 또한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했지만, 가슴의 구멍을 메우는 방식을 불륜으로 정한 것은 결국 안나,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의미없는 섹스와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통해 위안과 쾌락을 찾았던 자신의 행동을 그저 자신의 수동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사실 안나는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며, 언젠가는 그 대가를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 안나가 자신의 슬픔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놓은 모든 이유만큼, 안나는 단순히 비참한 상태를 연장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런 목적도 수행하지 않는 핑계를 대고 있는 거예요. <난 까다로운 스위스인들을 마꿀 수 없어.> 안나는 징징대죠. <브루노가 좀 더 관심을 갖게 할 도리가 없어.>  안나, 단순히 남편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해 봤나요? <난 너무 내성적이라 친구가 없어.> <애들을 돌보는 데만도 기력이 전부 소모돼.> 인생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그게 바로 큰 핑계에요. 」 안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 ( p304 )

 


그녀가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있던 죄의 대가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 실현된다.
그 후 안나는 그 동안의 불륜을 모두 접고 가정에 충실하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남편도 자신이 돌아오길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 동안의 불륜상대들도 모두 자취를 감춰 버렸다. 친한 친구조차 도움이 되지 못했고 철저히 혼자였던 스위스에서 그녀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이런 모습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했던 그 모습, 딱 그모습 그대로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언언제나 수동적이었지만 최악의 순간 찾은 대단한 자율성, 그 자율성을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쓰기로 결심한다.

 


" 「 우리의 삶은 원인과 결과지요. 아무리 작은 선택이라도 중요해요. 한 도미노가 다른걸 치고, 그 다음 것을, 또 그다음 것을 치지요. ~ 우리는 어떤 특정한 몫을 받을 수 있는지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망가졌을 때 다시 시작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요.」"  (p382)

 

사실 안나에게는 다른 선택을 할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다.  한 도미노가 다른 걸 쳤을 때, 다른 도미노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녀는 도미노가 넘어가도록 그대로 두었고, 한 번 넘어지기 시작한 도미노는 마지막 도미노가 쓰러질 때까지 멈출 수 없었다.
방치. 사실상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타인에 의해 끌려가도록 방치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안나에게 손 내밀었던 유일한 친구이자 스위스에 정착한 또다른 이방인  "메리" 를 통해 안나가 다른 선택을 했을 때 펼쳐졌을 그녀의 인생을 그려볼 수 있다.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는 안나, 운전면허를 딴 안나, 계좌를 만든 안나, 친한 친구들이 많은 안나. 그리고 자식들이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보는 안나. 주말이면 친구 부부와 오붓하게 파티를 즐기는 안나.  이 모든 안나들이 안나,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었다.

 

늦지않게, 조금만 더 일찍 멈췄다면 안나가 누릴 수 있었을 평범하지만 평화로운 일상들. 하지만 이제는 다시는 꿈꿀 수 없는 일들이 돼버렸다. 후회는 언제해도 항상 늦다.
그러니 내 인생을 남에게 맡기지 말 것. 쓰러져가는 도미노는 시작한 사람 외에는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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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스토어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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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유명 가구 전문점 이케아의 저렴이 버젼인 '오르스크' 에는 총 318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고 그 중에는 주인공 "에이미" 도 포함되어 있다.
에이미가 일하고 있는 오르스크 쿠야호 지점에서 어느 날부턴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분명히 퇴근 전에는 아무 이상 없었던 가구들이 파손되어 있거나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들이 여기저기 투척되어 있는 것이다.
매장 곳곳에는 cctv 가 설치되어 있지만 어디에서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부지점장 '베이즐'은 직접 범인을 잡기 위해 '에이미'와 '루스 앤'에게 함께 경비를 설 것을 부탁한다.
단순한 밤샘 근무로만 생각했던 두 사람은 뜻밖의 인물들을 만나 함께 매장을 돌아보게 되고 모두가 퇴근하고 불꺼진 매장에선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책 디자인부터 얘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책은 그저 소설이 아니라 마치 오르스크의 카달로그처럼 디자인 되어 있는데, 일단 판형 자체가 직사각형보다는 정사각형에 가깝다.
그리고 책의 앞뒤에 나와있는 오르스크의 광고 내용들이 꽤나 디테일하고 사실적인데 그 중에서도 ​배송서비스 신청이나 직접 가구 조립하기 등과 같은 것들은 가구 카달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들인데다가 배송시 프로모션 할인 금액이나 빠른 배송 신청시 $15 추가와 같은 옵션들 또한 상당히 구체적이다.

 

이는 작가가​ 독자들이 오르스크가 실제 존재하는 곳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도 실제 가구 매장을 보는 듯 오르스크 매장의 전경을 묘사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여 더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감은 이야기 중반까지 이어지다가 이후 실체를 알 수 없는 유령들이 나타나면서부터 완전히 허물어지게 된다.
분명히 실제로 현실에 존재할 것만 같은 가구 체인점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 경계가 모호해지며, 유령들이 출몰하는 유령의 집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했던 등장인물들은 처음에는 비현실적인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결국엔 그 존재를 인정하고, 이미 유령들에게 점령당해버린 오르스크 매장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 하게 된다.

 

유령들이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가하는 행위들은 그저 실체가 없는 존재들의 짓이라기에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구체적이며, 심지어는 가학적이다. 가구 회사 답게 기존의 가구들을 변형시킨 고문기구들을 선보이면서 처음 이야기가 시작할 때는 평범한 가구에 대한 설명이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무시무시한 고문 기구들에 대한 설명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 아래 보다베스트에 대한 설명만 봐도 아주 후덜덜하다 -_-; )

 

 

 

< 보다베스트 >
 구속의자의 전통적 형태 이상의 장점을 갖춘 보다베스트는 참회자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병든 혈액이 뇌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참회자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마침내 외부 자극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제목부터 호러스토어에다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는 유령들이 출몰한다고해서 이유없이 시종일관 무섭고 잔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블랙코미디가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주인공의 냉소적인 유머나 재치가 돋보이고, 회사의 소모품 정도로만 여겨지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느낄 수도 있다.


거대 가구 체인점을 감옥으로, 그 곳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을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좀비나 죄수로 비유하면서 결국 이런 호러스토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거대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이라는 작가의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19세기 감옥에서 고문기구를 머리에 쓰고 끊임없이 노동하기를 강요받는 죄수들과 21세기에 월급을 받기 위해 쉬지않고 밤 늦게까지 일하는 직장인들과 개인의 개성과 의견은 무시하고 지시받은대로, 생각없이 일하기를 강요하는 회사.
작가는 19세기 감옥의 죄수들이 당한 형벌이나 21세기 직장이라는 출퇴근 가능한 감옥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거대 자본의 횡포와 그 속에서 계속해서 세뇌당하며, 결국엔 스스로 생각하길 포기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
19세기 '원형감옥'이 21세기엔 '직장'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탈바꿈되어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유령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곳이 된다.
직장, 이 곳이 바로 호러스토어의 실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의미없는 노동을 반복하도록 강요받는 현실에 대해 쿠야호가 교도소장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노동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평범한 금속 덩어리를 순금으로 변화시키는 현자의 돌처럼,일탈과 반항으로 병든 정신을 순수한 복종의 상태로 바꿔준다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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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로 풀고 세기로 엮은 대세 세계사 2 - 14세기부터 21세기까지 대세 세계사 2
김용남 지음, 최준석 그림 / 로고폴리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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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세계사는 학교 다닐 때도 싫어했던 과목이고, 지금도 딱히 좋아하진 않는다.

읽기도 어려운 외국 이름에다가 뭔 왕조들은 그렇게나 많은지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봐도 오래 기억에 남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세계사 성적은 늘 바닥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역사와 관련된 소설들은 좋아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들은 쉽게 파악이 됐다.

아무래도 단순한 나열식이 아니고 흐름이 이어지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머리에 좀 더 쉽게 들어왔던 것 같다.


​어떤 사건이든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한 나라에서 발생한 사건은 단순히 그 나라에만 한정되지 않고 주변나라에도 영향을 주게된다.

그런데 보통 세계사를 배울 때는 그저 단편적 사건에 대해서만 암기식으로 무장정 외우다보니 사실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외운 것도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  대세세계사2 』는 이런 일방적인 암기식의 세계사 공부에서 벗어나 말그대로 그 시대에 존재했던 전 세계의 나라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총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엮어놓은 세계사 책이다.

21세기 현대사까지 나와 있기 때문에 나와는 관계없는 옛날 옛적 얘기들이 아니라 이전 세기들이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유럽이나 미국 혹은 중국 등 강대국들의 역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역사에 대해 서술해 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역사는 다른 세계사 책에서는 흔히 등장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작가 역시 힘의 논리에 치우쳐 어느 한 쪽의 시각만 다루지 않고  다양하고 상반된 의견들을 골고루 반영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집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니 더 믿음이 갔다.

또 세계사 책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에만 치우치지 않고 경제, 문화, 과학 등 그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총제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때의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 대세세계사 1』에서는 인류의 탄생부터 13세기까지의 역사를,『 대세세계사 2』에서는 14세기부터 21세기 현재까지의 역사를 총망라해 놓았다.

1편에서 2편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1편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2편을  읽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으니 2권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굳이 한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8세기에 걸친 전 세계 역사의 방대한 양을 한 권에 모두 담다보니 각 나라 역사의 깊은 내용에 대해서는 알기 어려웠고, 당사국에서는 나름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건도 단순히 한 줄로 넘어가버린다는 것이다.

 

이번 대세세계사를 통해서는 세계사 전반에 대해 훑는 시간이 되었다면 다음번에는 한 나라 혹은 한 세기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룬 책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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