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
브리타 뢰스트룬트 지음, 박지선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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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계인 '만체보 씨'는 프랑스 파리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고 있다. 사촌 타리크는 식료품 가게 길 건너 맞은편에서 구두 수선가게를 운영하고, 매일 같은 시간 만체보 씨네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9시에 문닫는 똑같은 일상을 몇 십년째 반복하고 있던 그에게 어느날 갑작스러운 미션이 주어졌다.  "제 남편을 감시해주세요."

이런 부탁을 한 사람은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캣'이란 여자로, 작가인 남편이 다른 여자와 외도 중이라고 의심한다. 하지만 항공사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자주 집을 비우는 그녀가 남편을 항상 감시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그녀는 고민 끝에 식료품점 앞 의자에 앉아 항상 가게를 보고 있는 만체보 씨라면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고 남편을 감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소 황당할 수도 있는 그녀의 제안을 받고 만체보 씨는 간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최근 큰 사건을 해결한 후 극도의 피로로 인한 우울증을 진단받은 엘레나는 어느 날 커피숍에서 처음본 남자에게 질문을 받는다.

"혹시 벨리비에 씨를 기다리고 계신가요? "  자신은 물론 벨리비에 씨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지만 갑자기 기자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한 그녀는 자신이 벨리비에 씨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버렸다. 그 날 이후 그녀는 프랑스 굴지의 에너지 기업 꼭대기 층에서 이메일을 전달하는 일을 맡게 된다.

원래 벨리비에 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으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인지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료한 일상에서 잠깐의 일탈과 충동으로 알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인 두 사람에겐 과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살인사건과 같은 자극적이고 잔인한 사건이 주로 등장하는 미스터리에 비해 일상에서 소소하게 벌어질 수 있는 미스터리를 '코지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 는 이런 코지 미스터리 장르에 가깝다.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 두 주인공에게 벌어진 사건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마지막에는 두 사람의 사건이 중첩되면서 서로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드러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벌어질 경우 두 이야기가 서서히 오버랩되지만 이 책에서는 거의 마지막까지 상관관계를 쉽사리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독자들은 마지막 책장을 모두 덮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만체보 씨는 처음에는 호기심 반, 책임감 반으로 의뢰인의 남편을 감시한다. 하지만 일을 계속하면서 그 동안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서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비밀이 하나 둘 씩 밝혀지고, 상황은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책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의 제안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일상과 관계 속에서 가끔은 자신과 주변을 새롭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선을 아주 조금만 바꾸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도 반짝이고 설레이는 하루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만체보 씨가 알려주는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을 날려버리는 방법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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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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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인 <골든 슬럼버>의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출간됐지만 '애플이 선정한 2015년 최고의 소설'이라니 일본에서 출간된 건 지금보다 몇 년 전일 것이다

 

사카 코타로는 미스터리에도 물론 일가견이 있지만 휴머니즘 가득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 진가가 더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화성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닌자처럼 검은 옷을 입고 덩그러니 앉아 멍 때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화성 표류기쯤 되는 내용일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화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회비판과 블랙 코미디가 가득한 이야기였다. 거기에 본인의 장기인 미스터리까지 놓치지 않은 그야말로 버릴게 하나 없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책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남자가 부인에게 구조조정을 마녀사냥에 빗대 설명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은 진짜로 마녀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원인을 알 수 없는 재해나 재난에 대한 공포와 초조감을 풀기위해 원인을 마녀에게 있다고 단정짓고 아무나 마녀라고 붙잡아 처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마녀로 지목된 사람은 아무리 아니라고 호소해도 뽑힌 순간 끝인 것이다.

 

이야기의 서두에 나온 남자가 살고 있는 곳에는 안전지구라는 순회제도를 통해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평화경찰'이 배치되고 이 때 누군가의 제보로 인해 범죄자로 의심받게되는 사람은 평화경찰에게 끌려가 취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조사에서 범죄가 확정된 사람은 공개처형을 통해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단두대에 머리가 댕강 잘리게 된다.

 

이 제도는 명목상으로는 위험인물을 미리 발견해 사전에 범죄를 예방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시민들끼리 서로 의심하고 믿지 못하게 만드는 불신사회, 감시사회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밀고당한 사람이 범죄자이냐 아니냐와는 전혀 무관하다. 만일 범죄자가 아니라면 범죄자로 만들면 되는 것이고, 진짜 범죄자라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것이다.

 

" 중세의 마녀사냥도 사회불안을 해소하는 목적이 있었다고 하죠."

"마녀사냥이란 거, 정말 마녀가 있는 건 아니잖아?"

", 마녀는 웬만해선 찾을 수 없으니까요. 마녀가 틀림없다고 누명을 씌우는 것 뿐이죠. 그저 군중심리랄까, 모두 열광하는 느낌이었겠죠." (p36)

 

 

이들은 이름은 평화 경찰이지만 실제로 하는 짓은 평화와 전혀 관계없는, 오히려 가학적이기 짝이 없는 고문과 취조를 거듭한다

 

일단 잠재적 범죄자로 지목당한 사람은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아내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가족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가족들의 절박한 심정을 빌미로 나이든 노모에게 3분동안 철봉에 매달리면 아들의 죄를 감해주겠다고 거짓말을해 철봉에서 버둥대는 노모를 보며 낄낄대고, 아들은 자신을 위해 필사적으로 철봉에 매달리는 노모를 보며 울부짓는다. 이 때 나타난 것이 책의 표지에도 나와있는 '정의의 편' 인 검은 복면의 사람이었다

 

정의의 편은 평화경찰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취조실에 홀연히 등장해 목검과 골프공같은 알 수 없는 무기들로 경찰을 공격한 후 노모와 아들을 구해내 사라져 버리고, 평화경찰은 정의의 편을 잡기 위해 '마카베 고이치로'라는 수사관을 불러들인다

 

이 마카베라는 수사관이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인데 경찰 소속이면서도 정작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는, 오히려 정의의 편이라는 인물에게 동조하는 듯한 애매한 말들을 하곤 한다. 그리고 외모도 경찰이라기보다는 가수나 예술가에 가까운 단발 머리를 하고선 가끔은 얼빠진 듯한 질문을 해댄다. 하지만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점점 '정의의 편' 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히어로의 정체는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정의의 편으로 활동하게 된 동기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면서 오히려 꽤나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히어로가 정의를 실천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계몽하겠다거나 혹은 악을 응징하겠다는 엄청난 대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사람들을 구하게 된 것이 상당히 개인적이고 어떻게 보면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다.

 

책의 배경이 되는 시점이, 미래인지, 과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가 않다. 마치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하다는 기시감이 든다.

 

치열했던 군사독재 시절, 경찰에서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다며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발표를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국정원에서 인터넷 댓글을 조작하는 전담팀까지 운영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사카 고타로가 한국 정부를 모티브로 한것은 아니겠지만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지역적으로 근접한만큼 여러가지 공통점이 많고 정치적으로도 상당 부분 유사성을 띄고있다. 그렇기에 일본 작가가 창조해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 자체는 어둡고 비관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분위기가 무겁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종일관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래서 개인이 집단이 됐을 때 드러내는 가학적인 군중심리나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정부의 속셈을 대놓고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무거운 마음보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든다

 

 

"다하라 씨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리 불만이 많든,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야만 해. 룰을 지키며 올바르게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면 돼. 다만 어느 나라에 가든 이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지. 일본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도 있어. 약도 없고 에어컨도 없지. 말라리아 때문에 고민하는 나라도 있어. 이 나라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화성에 가서 살 생각이야?" (p121)

 

 

평화경찰은 여기서 살기 싫으면 화성에라도 가서 살라고 말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화성에 갈 돈도 없을 뿐더러 어느 나라에 가든 결국 이 사회의 연장선상이다.

그러니 지구인들이여, 이제 분연히 일어나 목검이라도 들고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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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석사냥꾼 케이스릴러
김용태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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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의 시작은 바로 이 곳, 구와로 돌아오면서부터였다.

'희령'은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고향인 구와면을 떠나 수도권에 있는 사립 명문고로 전학을 하게 된다. 그 후 이혼의 아픔을 겪고 딸 별이를 데리고 재혼한 후에도 쭉 서울에서 살았지만 기자인 남편의 실직과 생활고로 결국 구와로 돌아오게 된다. 희령이 구와에 정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와면에 운석이 떨어지게 되고, 그 날 희령의 딸인 '별이'가 실종된다.

희령과 남편 '면수'는 이상하게 딸을 찾는데 소극적인 경찰을 믿을 수 없어 직접 나서게 되고, 전직 기자였던 면수는 의심가는 동네 사람들을 조사하던 중 모든 사람들이 한 인물과 어떤 사건에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은 바로 구와 토박이이자 교감으로 퇴직한 후 지금은 교회의 장로인 전장로, '전종만'이었다. 그리고 전장로와 아내 희령이 얽혀있던 그 날의 사건이 딸의 실종과도 연관돼 있을 거라고 예감한다.

16년 전, 전장로와 희령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이번에 떨어진 운석과 딸의 실종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파고들면 들수록 진실은 미궁에 빠지고 결국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들 중 두 사람이 사망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일반적인 장편 소설에 비해 초반 스타트가 빠른 편인데 거의 몇 페이지가 넘어가자마자 구와에 운석이 떨어지고 연이어 딸이 실종된다. 그 이후부터는 면수와 희령이 딸을 찾아 주변을 탐문하는 것이 주된 이야기를 이루면서 장거리 레이스로 돌입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초반의 빠른 전개에 비해 진전이 더딘 편이었다. 본격적으로 딸을 찾아나서기까지 부부 간의 갈등이나 주변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범인인 듯 시종일관 의심스러운 분위기를 계속해서 풍길 뿐 별다른 진행이 없어 약간 느슨했다.

스토리만 보자면 희령이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범인을 찾아나가는 스토리가 진행될 거라고 예상되지만 의외로 의붓아버지인 면수의 추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동안 별이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며 이번에야말로 진짜 아빠로서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내인 희령이 구와를 떠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에 대해서도 깊이 추적하면서 16년 전의 그 날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자 주인공이기도한 희령은 예민하고 약간은 히스테릭한 면이 있으면서 동시에 딸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남다른 인물로 나오는데 솔직히 한숨이 나올 정도로 한심한 캐릭터였다.

사실 희령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일지 짐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저질렀던 그 날의 일에 대해 의식적으로 회피하면서 딸의 실종이 자신과는 무관할 것이라는 바람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희령이 무능력하다고 비판했던 남편 면수의 책임감과 기자로서의 탁월한 감이 딸을 찾는데 더 큰 공헌을 했고, 희령은 진실을 숨기는데 급급해 딸을 찾는게 방해만 됐다.

 

 

이 책에는 엄청난 반전이 있지는 않다. 처음부터 의심스러운 인물이 결국 범인이었는데 요즘같이 반전에 대한 강박이 많은 책들 사이에서 오히려 반전이 없는 것이 신선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토리 자체는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지나치게 16년 전의 그 사건에 대해서만 집중하면서 막판에는 그 사건이 뭔지에 대해서 궁금증이 증폭되기 보다는 오히려 식상해진다는 느낌이 있었다.


『 운석사냥꾼』은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운석과 딸의 실종이라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결국엔 인간의 탐욕과 죄책감, 그리고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희령은 처음부터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이기심으로 끝까지 자신의 죄를 외면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그토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죄의 십자가는 결국엔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가족까지 위험하게 만들었고, 숨기고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자신을 옥죄어 왔다. 나중에야 진정한 반성과 사죄 없이는 죽는 날까지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란 걸 깨닫지만 그 땐 이미 너무나 멀리 와버린 상황이었다.


만일 희령이 조금 더 일찍 용기를 냈더라면, 그 날의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뒤돌아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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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오만과 편견
이한월 지음 / 청어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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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굳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알만큼 유명한 고전이다.

그만큼 영화나 책 등 수도 없이 많이 리메이크되거나 혹은 패러디됐다. 심지어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영화까지 나올 정도이니 그 유명세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원작인 오만과 편견은 지체높은 가문의 오만한 남자 다아시와 편견에 사로잡힌 여자 엘리자베스가 만나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런 두 사람이 시대를 옮겨 조선시대에서 태어났으니 "심도헌"과 "이연리" 이다.

제인 오스틴의 열렬한 팬이자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보며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는 작가의 후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판 오만과 편견』은 말 그대로 오만과 편견을 조선시대 버젼으로 리메이크해 놓았다.

단순히 제목이나 모티브만 빌려온 것이 아니라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되 조선시대라는 배경에 맞게 각색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전의 조카이자 세도가 집안의 자제인 '도헌'은 원리원칙 주의자로 잘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는것 조차 좋아하지 않는 무뚝뚝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었고, '연리'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청렴하고 올곧은 종친의 자제로 영리하고 당찬 성격이었다. 연리는 당시 여성들이 글을 배우지 않았던 조선시대라는 상황에 맞지 않게 논어와 공자를 읽으며 군자의 도리를 논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 재산깨나 있는 사내에게 부인이 꼭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였다. 그래서 그런 남자가 고을에 들어오게 되면, 혼기가 찬 딸을 가진 집에서는 마음대로 그 남자를 자기 딸에게 적당한 배필로 점찍었다. 물론 그 부모들은 딸이나 사내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건 장연에 사는 혜인 홍씨도 마찬가지였다. " (p21)


원작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조선판 오만과 편견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한다.

홍씨가 재산이 많은 자에게 자식들을 시집보내고 싶어한다는 속물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는 동시에 연리의 어머니가 두 사람이 만나게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홍씨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지체높은 집안의 사윗감 후보들에게 딸들을 선보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연리는 처음 만난 도헌의 무뚝뚝하고 말수 없는 모습에 거만하다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고, 도헌은 처음 본 사이에 대놓고 혼인을 이야기하는 홍씨의 허영 가득한 말과 행동, 그리고 그들의 허름한 집안형편에 자신과는 격이 다르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첫인상만으로 서로를 오해해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된다.

그 후 두 사람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오해를 풀게되고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다.

 

『조선판 오만과 편견』에서는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격정적이고 애틋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의 사이는 예상보다 좀 밍밍한 편이다. 서로 조아하면서도 흔하디 흔한 키스신 하나 없이 결혼에 이르게 되니 말이다.^^;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충실하게 반영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해 타인을 얼마나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속물적 근성과 진정한 사랑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등 여러가지 감정들을 다루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에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반영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원작과 크게 다른 스토리나 열정적인 로맨스를 기대한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첫 눈에 반해 불타오르는 사랑보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배경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가까워져 가는 두 사람의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랑에 공감하거나, 혹은 원작에 충실한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라면 만족할만한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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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낭만 취미살이 - 직업 유목민 12인의 나답게 사는 법
정원 지음 / 피그말리온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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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빨리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회사원들에게는 꿈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하는 일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직장인들은 하루 24시간 중 절반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면서도 대부분 자신의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인생의 절반을 괴롭게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고통의 시간을 진짜로 내가 원하는 일,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실용낭만 취미살이』에서는 ​그런 꿈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12명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중에는 카페와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도예가도 있고, 출판가도 있고 바리스타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고정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직업을 바꿔 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본의아니게 '직업 유목민' 이라는 애칭 아닌 애칭이 붙기도 한다. ​


​첫 번째로 소개된 사람들은 부부였다. 두 사람 모두 여행을 좋아해서 결코 한 군데 정착해서 가정을 이루지 않을 것 같은 보헤미안 이었지만 여행 중 우연히 만나 현재는 제주도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현재의 삶이 결코 정착은 아니라고 한다.  정착이 아니라 '생존 여행'. 두 사람은 현재가 생존을 위한 여행 중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부부는 현재 게스트하우스와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밖에도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하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집수리를 하며 밥벌이를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뭘 해서 먹고 사냐며 자주 물어본다고 한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고 대답한다. 이것이 현재 부부의 삶이다. ​

​남들이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생활이 아니라 바람처럼 발길 닿는 곳이 집이고,  좋아서 하는 일이 생계가 되는 그런 삶.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인생이다.

세 번 째 이야기에서는 핸드메이드 도예가인 미코 의 사연이 등장한다. 원래는 디자이너이자 의류사업을 하던 사업가였는데 너무 일만하다 자신이 다 소진돼버려 어떤 것도 할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 그 때 만난것이 흙, 도자기였다.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온갖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일, 그녀에게는 그것이 바로 도자였다.  흙을 만지면서 잡념들을 떨쳐버리고, 1,000도가 넘는  불길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고요해지고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도예가라는 직업은 바쁘고 화려했던 예전과 같은 생활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지만 지친 영혼을 치유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실용낭만 취미살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일을 통해 떼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생계 유지가 될 정도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느끼는 행복과 편안함은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진짜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쓸데없이 많은 금전에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마음이 공허한 사람들은 그 구멍을 돈으로 메꾸려할 지 몰라도 여기에 나온 12인은 그 공간에 행복이 가득차 돈에 대한 욕심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 보였다.

 

누군가는 이들의 이런 자유로운 삶을 보며 무책임 하다거나 혹은 배부른 소리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을 통해 돈을 버는 이유는 결국엔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닌가. 안정적인 직업이나 좋은 집, 좋은 차도 결국엔 나의 만족을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인생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70년 혹은 100년의 시간동안 돈이 주는 만족감을 쫓기보다는 진정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즐거운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삶은 부러워는 할 수는 있으나 아무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손에 쥔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앞이 뻔히 예상되는 평탄한 미래를 버린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와 결심으로는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대리만족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지 못한, 혹은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하며 오늘도 꿈을 꾼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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