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유가 있습니다 : 거룩을 키우시는 하나님의 훈련 - 사무엘상 3 김양재 목사의 큐티강해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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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눌 책은 김양재 목사의 <사무엘상3 다 이유가 있다>이다.

 

우리는 삶을 살다보면 우리가 이유할 수 없는 상황들을 직면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자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더욱 더 의지해야 된다. 오늘 우리는 저자의 책을 통해서 이 사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길 원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의 삶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난의 연속적으로 일어날 때가 있다. 이 때 눈 앞이 깜깜해 진다. 저자는 시련과 고난의 삶을 살았던 다윗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안전과 부요함을 위하여 하나님께 왕을 요구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사울 왕을 세워주셨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괴롭힘과 미움받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이 기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무려 십 년간 동안 다윗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들을 넘겼다. 그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였다. 결국 다윗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함을 받게 되었다.

 

저자는 미로 같은 인생을 살았던 다윗에게 이와 같은 환경을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어 본 저서를 저술하였다. 저자는 그 이유를 그 속에 거룩함을 키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라고 말하였다. 이 내용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이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 이런 저런 환경을 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오로지 구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구원은 못 보고, 하나님이 내 구원을 위해 묶어 준 역할들을 날마다 좋아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다가 인생을 다 보냅니다. 너무 싫어서, 너무 좋아서 숨이 안 쉬어지는 메뚜기 증후군에 매여 있습니다. 만약 지금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는 사람을 품고 있다면 오늘 내려놓기를 바랍니다(p.80).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하나님은 왜 그에게 비싼 수업료를 치러가며 훈련받게 하실까?”라고 의문점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한 답을 다 알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다윗처럼 위기에 몰리지 않거나 긴급하고 갈급하지 않으면 온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사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것과 같이 우리의 인생에도 동일한 방법으로 인도하여 주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다윗은 그의 이해를 넘는 과정들을 잘 감당함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도 불평과 불만을 내려 놓고 앞서 가신 신앙의 선배님들의 본을 따라 믿음의 후배들에게 본을 보여주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책의 제목과 같이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우리의 이해로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모든 인생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살아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그 분의 인도하심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오늘도 내 삶의 이유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삶에 거센 풍랑 위에 서빙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ㅁ오늘도 그 분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그리 아니하실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 분을 찬양하며 의지하길 소망하는 분께 이 책을 추천하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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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프랜시스 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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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복음으로 하나의 부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영향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겉으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모양으로는 하나가 될 수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교회의 상황은 절망적으로 보인다. 물론 하나가 되어 보겠다고 초교파 행사도 열고 공동 교리서도 발간하고 심지어 연합을 위한 기도회도 마련한다. 하지만 뿌리까지 들어가 근본 문제를 다루지 않으니 이 모든 방법이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신학이나 방식의 차이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여러 성경 구절을 놓고 끝없이 입씨름을 벌인다. 상대편이 우리의 의견 쪽으로 돌아서야만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교회의 분열은 훨씬 더 깊은 문제에서 비롯했다. 서로 상충하는 욕심(4),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낳는 질투심과 이기적 야망(3),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미성숙한 믿음이 문제의 뿌리다. 신자임을 자처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 적으니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을 수밖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기계적이거나 아예 끊어져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사랑의 연합을 이루는 것은 그만큼 불가능하다. 사랑이 피상적이면 사소한 의견 차이 한 번으로도 서로 등을 돌리고 삿대질을 해 댈 수밖에 없다(p.34).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먼저 그 분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 주시고, 우리가 받은 사랑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매일 우리의 삶에 부어지는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자연스레 넘쳐나게 된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삶의 자리에서 분열을 일으키고 믿음의 동역자들을 향한 사랑이 고갈되어 있다면 스스로 내 안에 성령님께서 임재하고 계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올곧은 성도, 상황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성도, 이제 막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성도 등 크게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들 안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이기 위하여 서로 부단히 애써야 한다. 하지만 너무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안에 서로 연합하고자 애를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교회들의 연합이 불가능한 꿈으로 단정지었다. 그리곤 우리가 보이기에 가능해 보이는 목표들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즉 불신자들의 관심을 끌 다른 방법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불행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 또한 아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방법들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목회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의 역할은 교인들을 하나 됨으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하나 됨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분의 제자들을 알아볼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교회가 연합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성도들은 부담스럽지 않은 환경을 원한다. 설렁 그들이 그럴지라도 교회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을 추구해야 한다. 즉 그들이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인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저자의 주장대로 이 부분에 주의할 점이 있다. 하나 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당장 큰 규모의 성과를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좋은 의도로 그런 것이다. 그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기독교 전체가 부흥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삶이 뒷받침되지 않아 대중에게 전한 메시지가 그 힘을 상실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교회 안에 더 큰 연합이 나타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작은 데서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부터 정돈하라(p.229).

우리는 하나 됨을 회복할 때까지 함께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연합을 하려면 숱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다. 하나 됨을 이루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하다. 이 선한 싸움을 원하는 분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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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독서 - 김형석 교수를 만든
김형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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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눌 책은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김형석 교수의 저서 백년의 독서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정보가 넘친다. 그런데 그는 독서의 수준이 곧 국민의 수준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신문과 텔레비전 등은 살아가는데 상식을 제공할 수 있으나 내 영혼을 살찌게 하고 삶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역시 독서는 인간적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방법임을 의심할 수 없다(p.8).

먼저 1장은 책을 통해서 꿈을 키우게 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굶주림, 피난 등으로 표현될 만큼 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의 인생에 비극은 일찍 찾아왔다. 중학교 3학년 때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민족주의자들을 배출한 학교라는 이유로 폐교를 당했다. 당시 철없던 그는 자진해서 퇴학을 결정한다. 그리곤 시골집으로 가 1년 동안 매일 아침 등교 시간에 평양 시립도서관에 가서 독서로 공부를 대신하였다. 도서관에 많은 책들을 마음이 원한대로 읽었다. 주로 읽은 책은 철학과 관한 것들이었다.

 

당시 저자가 공감한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람은 어떤 학문을 하든지 그 학문에 관한 개론과 역사는 알아야 하며 그것이 학문으로 가는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철학은 내용보다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p.39)

 

그는 1장을 마무리하면서 독서의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독서의 목적은 더 새로운 것을 알고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하며 자기 성장에 도움을 얻는 데 있다(p.58).

 

그런데 우리는 어린 나이에 해치는 독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서적 성장뿐만 아니라, 학문이나 예술적 가치를 상실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강과 성장에 해로운 독서에 빠져서는 안 된다.


2장과 3장은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읽었던 수많은 인물과 책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4장부터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현재 한국 국민의 독서 실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한국인들이 독서를 멀리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나무로 설명한다. 나무가 크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뿌리가 깊어야 하고 튼튼한 밑동과 줄기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학문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처럼 튼튼한 기초이다(p.229). 그는 학문적 성장에 필요한 체계적인 독서를 권장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많은 대학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탁월한 학자나 사상가를 배출해 내지 못했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지를 단적으로 보이는 예이다.

 

그런 우리에게 그는 도서를 선정하는데 필요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예를 들면 자연과학이나 이공 계열의 책들은 항상 새로운 학설과 이론이 개발되기 때문에 새로운 저서를 읽는 편이 좋다. 하지만 사회과학 분야의 책은 보통 전통적인 책과 새로운 학설의 책을 반반씩 읽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과거의 학설과 사상을 알아야 현재의 이론이나 학문적 성과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에 선한 교훈 남긴 고전 읽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으면 좋을 책들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은 대부분 인류와 사회에 선한 교훈과 사상적 유산을 남긴 고전에 속하는 책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서의 깊이와 폭을 넓히기 위하여 오늘을 있게 한 과거를 먼저 읽으라고 말한다. 또한 정확한 개념이해에서 새로운 사상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하나같이 좋은 말씀이다. 독서인구가 늘어나는 사회를 향하여 나아가 위해서 가장 먼저 학교 공부의 부담으로 독서가 빈곤해지는 현실에 대해서 말한다. 시대적 흐름과 요청을 외면하거나 역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신적 뿌리가 없는 민족처럼 사고의 문제의식 없이 표피적인 과제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p.251).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어려운 문제를 지적한다. 지성의 가치와 학문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지도층 인사들이 정치·경제계를 지배하고, 사회는 온통 힘과 정신적 폭력에 편승해 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개념이나 지향점이 상식과 지성계를 짓밟아 버리는 경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p.252). 마지막으로 그는 한 가지를 더 말한다. 그 주제는 고전은 지성인의 정신적 양식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현재를 정보화 사회라고 말한다. 더 빨리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자가 승리자가 되고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우리의 생각에 대해서 한 가지 예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무의 잎사귀나 가지에만 의존하고 밑동과 뿌리를 키우지 못한다면 그 나무가 크게 자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질문하다. 그가 제시해 준 답은 독서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고전을 사랑하는 지식인층과 지도층이 확대될 수 있다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근간이 될 것이다(p.255).

 

이제 그는 책을 독서하는 국민, 책을 가까이 하는 민족이라는 주제로 마무리한다. 가장 먼저 그는 앞서 말했던 내용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바로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알려면 고전을 읽으라는 것이다. 법은 알지만 인간을 모르는 지도자보다는 인간을 이해하기 때문에 법적 기술이 정당하게 평가되는 법치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 뜻에서 고전적인 저작들을 찾아 읽는다는 것은 지성인과 지도자로서는 필수조건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p.260). 이어서 세 번째로 제시해 준 것이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는 건전한 독서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교육의 개혁을 외치며 종교가 제 구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교육을 바로잡는 방법의 하나도 건전한 독서를 수용하는 데 있으며, 종교적 신앙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길도 신앙의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기틀을 찾는데 있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독선적인 교리나 감정적인 자극을 일삼는 설교나 종교행사를 벗어나, 깊이와 내용이 있는 경전 연구와 신앙적 체계를 갖춘 넓은 의미의 학습과 독서가 필수적인 과제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p.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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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지성적 회심 - 과학, 신앙, 의심의 길을 걷다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홍병룡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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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저서 지성적 회심에 대해서 나누려고 한다. 처음 제가 그의 저서를 보게 된 책은 2003IVP출판사를 통해서 출간된 자존감이었다. 이 책은 십자가와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에 대한 내용이 담긴 훌륭한 저서였다. 이 후 그의 책을 사서 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의 이력과 저술들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분이다. 특히 우리가 이번 출간된 지성적 회심에 대해서 기대하는 점은 앞서 저자가 출간하였던 여러 책에서 애기되었던 그가 과학자에서 신학자가 된 배경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그의 저서는 복음을 통해서 한층 더 넓게 세상을 보게 된 자기의 신앙고백서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책의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과학을 사랑하는 불안전한 자유사상가이자 무신론자였던 내가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 가는 여정을 다룬 책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p.8).

 

실제로 저자는 자신의 회심과정을 전기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과학을 시작으로 무신론, 마르크스주의, 플라톤 철학, C. S 루이스의 글을 접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 모든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이제 그가 걸어온 삶의 과정 속에 드러나게 될 지성적 회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책의 구성을 보면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2부는 그의 성장과정과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탐구와 갈등하는 과정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다. 3부는 신앙을 갖게 된 이후 갖고 있었던 고민들이 해결되는 과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1·2부 과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조금 힘들었다.

 

1장은 불안정하고 초조한 자유사상가라는 소제목을 중심으로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을 상당히 좋아하였던 것 같다. 아마 그의 탁월함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같다. 그는 어린 나이에 천체망원경을 만들어 우주를 보았다. 이때 그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계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후 그는 세상을 보다 객관적이고 확실한 것에 대해서 알길 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소디의 도서관에서 C. P. 스노우의 첫 소설을 통하여 화란정원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이 개념의 의미는 혼란스러운 정글에 가져다준 질서와 구조를 통해서 정돈된 정원과 같이 보이게 만드는 이론이다. 이전까지 그는 과학 이론의 장점에 대해서 모호하고 흐릿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스노우의 저서를 통해서 더 정확하게 밝혀주었다(p28~9). 이 후 그는 더욱 종교에 대해서 구식 관념으로 여길 정도로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종교는 과학에 의하여 망상으로 드러난 과거의 해로운 유물로 여겼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가지게 된 종교에 대한 견해는 책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러셀의 성향철학사와 북아일랜드 사건은 통해서 그는 종교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무신론이야말로 과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자연스레 도달하는 결론이라고 여겼다.

 

이후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깊이 심취하게 되었다. 이때 마르크스주의는 종교로부터 멀어진 그의 입장을 지적으로 정당화시켜 주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책을 보면서 그는 큰 그림의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곧 인정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전체에 대한 갈급함은 지속되었다. 이런 자신의 입장을 플라톤이 사용한 동굴의 비유속의 사람들을 예로 들어 절적하게 표현하였다.

 

2장은 뜻밖의 회심이다. 그의 회심은 옥스퍼드 대학을 입학하던 때에 일어나게 된다. 어느 날 채플 때 찰스 쿨슨의 설교를 통해서 그동안 그가 그토록 목말라했던 큰 그림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찰스 쿨슨이 했던 설교의 논점은 과학과 종교적 신앙은 모두 제 각자 독특한 접근법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이해하는데 필요한 통찰들을 제공하여 준다는 것이었다. 이 무렴 그는 친구의 권면을 통해서 C. S 루이스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나는 해가 떴다는 것을 믿듯 기독교를 믿는다. 눈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가 찾아왔던 큰 그림을 향해 먼저 걸어간 동반자를 찾았다. 이 후 그는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며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 후 영국교회로부터 안수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짧은 시간동안 교회사역을 한다. 그는 과학과 신학에 대한 탐구를 병행하면 할수록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과학에 대한 철학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게 된다. 특히 앞서 말씀드린 칼 포퍼의 과학철학 접하면서 그의 과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

 

나는 칼 포퍼에게 시선을 돌려 그의 저술을 긍정적으로 면밀하게 읽었고, 특히 그의 에세이 '반증으로서의 과학'과 그의 책 '과학적 발견의 논리'가 인상적이었다. 만일 포퍼가 옳다면, 모든 과학 지식이 잠정적이고 추측적이고 가설적이라는 거북한 실재를 받아들이는 법을 나는 배위야 했다. 우리는 우리의 과학 이론들의 결정적인 증거를 결코 제시할 수 없고, 기껏해야 이론들을(잠정적으로) 확증하거나(확정적으로) 논박할 수 있을 뿐이다(p.70).

 

마지막으로 3장은 오랜 질문과 새로운 통찰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런 그에게 칼 포퍼의 반증 가능성의 개념은 그의 사고를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그가 언급한 것과 같이 과거에 정립되었던 과학 이론들이 이 후에 등장한 새로운 등장한 이론들에 의해서 모두 폐기되었다. 결국 모든 과학 이론은 반증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는 세상과 과학을 넘어 존재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밝혀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믿음을 선택하는 순간 그동안 그가 그동안 고백하였던 어렴풋한 느낌이 사라지고 실재를 경험하고 그 실재를 뚜렷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순간 그는 C. S 루이스의 책 제목대로 예기치 않은 기쁨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 복음은 다름 아니라 실재를 다시 상상하라는 초대, 보다 폭넓은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라는 초대,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형판을 채택하라는 초대,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실재를 뚜렷이 보여줄 망원경을 통해 보라는 초대였다(p.97).

 

그런데 그에게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된다. 과연 신앙을 가진 자로서 과학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될 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는 실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다양한 시선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인간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에 대해서 서로 다른 관점으로 상호보완을 해야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이 보지 못하는 부분은 과학이 밝혀주고 과학이 보지 못하는 것은 신앙이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그의 고민에 대한 결론이다.

 

이 책을 통해서 복음에 대한 큰 그림을 제공받길 원하는 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 과학과 종교가 대립하는 것이 맞는 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 아니면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분에게 추천하여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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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만나다 - 그리스도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증언
R. C. 스프로울 지음, 황영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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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R. C. 스프로울의 저서 예수를 만나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자기계시에 대한 말씀들을 간략하게 핵심적으로 서술해 놓았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저자가 R. C. 스프로울라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저자는 개혁주의 신학계를 이끄는 저명한 신학자이다. 그는 다소 딱딱하게 들리는 성경 교리를 명쾌한 논리와 적절한 예화로 풀어내는데 탁월한 분이다. 저자의 저서는 본서를 비롯한 최근작으로 거룩함으로 나아가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목회자는 신학자다, 모든 사람을 위한 신학등이 있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8가지 에고 에이미 강화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왜 저자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출간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일까?

 

저자는 1장을 시작하면서 이 책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견해들을 확인해 보면 상당히 피상적이고 그 분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하지와 노골적으로 이단적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P.7).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예수님에 진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적 토대에 대한 시대적 요청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시대의 요청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그는 요한복음 속에 담긴 8개의 에고 에이미이 책은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과 생명’,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 ‘참 포도나무’, ‘아브라함 전에 내가 있었느니라.’ 등 표현 속에 담긴 의미들을 구약과 신약성경을 통해서 설명해 준다.

 

예수님의 첫 에고 에이미는 요한복음 630절에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은 그 분께서 누구이신지에 대해서 증명해 주실 표적을 요구하였다(p.9). 그리하여 그분은 자신의 기원에 대한 그림자에 해당된 구약의 사건을 통해서 설명해 주셨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위해서 그 분은 모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사역의 차이점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 주셨다. 즉 이 과정을 통해서 그 분은 자신을 구약에서 하나님이 공급하셨던 것과 동일하게 말씀하신 것이다(p.11).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그 분에 대한 기원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 그 분의 승귀를 통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칼빈은 삼중직을 통해서 그 분의 기원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이끈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설득이나 강요를 당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끌려온 것 역시 아니다. 성령님에 의하여 온 것이다. 성령의 효과적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마음에 변화된 것이다. 우리는 의지적으로 온다. 아니, 심지어 기쁨으로 온다. 원래 그 사람이 하나님에 관해 무지했다면 이제는 눈에 덮였던 비늘이 제거된 것처럼 밝히 본다. 과거에는 그 사람의 영혼이 기뻐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달콤하고 매력적이며 모든 면에서 가지고 싶은 것으로 느껴진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하늘의 이끌림은 하나님에 의해 영혼의 내적 경향성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누군가를 아들에게 이끄실 때 그는 결국 아들에게 오게 되는 것이다. 아들에게 온 그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떡을 받아먹는다. 그리스도 말고는 하늘 아래 그 어디에도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원천이 없다. 그는 1장을 마무리하며 개혁주의의 중요한 개념인 예정과 이끄심에 대해서 잘 설명해 준다. “아버지께서 누군가를 아들에게 이끄실 때 그는 결국 아들에게 오게 되는 것이며 아들에게 온 그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떡을 받아먹는다라고 말했다(p.19). 이어서 두 번째 에고 에이미는 세상의 빛이다. ‘은 요한복음 전반에 걸친 가장 중요한 표현 중 하나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은 빛, 생명, 그리고 진리 등 3가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 사도는 빛을 생명과 관련된 것으로 기록해 놓았다. 예를 들면 그는 예수님을 세상에 오신 참 빛으로 그 안에 생명이 있는 분이라 소개하여 주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가 회심 전에는 종교가 불필요하고, 비이성적이고, 무엇보다 하찮아 보았다. 그런데 우리의 눈이 열리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광채의 달콤함을 보게 되고 모든 것이 바뀌게 된다(p.32)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에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셔서 새 생명을 주셨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에고 에이미는 자신을 양의 문과 선한 목자로 말씀해 주셨다. 먼저 양의 문은 목자가 자기 양을 지키기 위해서 만든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다. 이어서 선한 목자는 돌보고 보호하는 그 분의 역할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분은 자신의 양을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실 만큼 사랑하신 분이시다. 다섯 번째 예수님의 에고 에이미는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은 자신만이 죽은 자를 일으킬 권세와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진리를 직접 보여주셨다. 그는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p.83). 6번째 에고 에이미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는 유일한 기준을 가르쳐 주셨다. 그 분은 오늘날 만연한 자유주의 신학과 같이 산을 올려갈 수 있는 여러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해 주셨다. 이 진리가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말씀해 주신 것과 같이 오늘도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 아버지께로 나아갈 자가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7번째와 여덟 번째 에고 에이미는 요한복음 858절에 기록된 대로 참 포도나무, 그리고 아브라함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먼저 7번째 에고 에이미가 담겨있는 참포도나무 비유에는 농부이신 아버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그리고 그 안에 접붙임을 받아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의 관계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아버지의 심판을 받게 된다. 이어서 8번째 에고 에이미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 전에 계셨다는 분명한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아브라함보다 훨씬 먼저, 영원 전부터 계시고 영원 후까지 항상 계시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신성모독으로 돌로 치려했던 것이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번에 생명의 말씀사를 통해서 출간된 그의 책 예수를 만나다는 문고판과 같이 얇다. 하지만 그 깊이는 얕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도 그의 통찰력이 담겨있다. 이 책을 통해서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그 분을 만나길 원하는 분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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