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정상필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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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확실하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냉전과 데탕트, 양극화 이후. 시기마다 강대국 간 체계적 합의와 인류애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발에 대한 공동 대응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고자한 희망은 있었다. 동시에 진정한 공동 안보 노력은 얼마 못 가 흩어져버리곤 했다.

 

 냉전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데서 시작해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종말을 맺는 것으로 종종 정의된다. 다시 말해 양극화 세계로 지칭될 수 있는 역사적 시기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들은 매우 이른 시간 내에 이념적으로 나뉜 두 진영에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에는 철의 장막이라 불리는 단절의 상징이 있었다. 전쟁이 끝으로 치달을수록 연합의 와해라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진영은 냉전의 기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다. 

 

 

 한쪽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욕망이 전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무제한으로 키웠고, 그 욕망이 전쟁 중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소련을 통해 얻어낸 권리를 부정했기 때문에 냉전이 싹튼 것으로 봤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산주의 시스템 그 자체가 갖는 메시아적 시각, 영토 확장주의적 성격, 지배에 대한 욕구 등의 특성이 전통적 러시아 제국주의에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철의 장막으로 상징되는 베를린의 분할, 독일의 분할, 나아가 대륙의 분할 등 냉전의 핵심은 유럽에 있었지만, 아시아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기운이 확산되고 있었다.

 

 냉전의 최전선은 유럽 대륙이 최악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을 비껴가게 해준 곳은 아시아였다. 공산주의 진영은 1949년 마오쩌둥이 중국의 권력을 잡았을 때 이루어진 엄청난 외연 확장에 환호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소련 측에 그리 긴 기간 동안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또한 민족자결주의와 비동맹 운동이 활발하게 떠오르던 곳 역시 아시아였다.

 

 냉전의 정점이라 불리는 한국전쟁은 자칫 핵전쟁으로 이어질 뻔했다. 전쟁은 모스크바와 워싱턴이 전략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지역에서 일어났다. 충돌을 주도한 두 초강대국이 서로를 과소평가 한 데서 기인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전쟁에서 숨진 군인은 70만 명, 부상자는 90만 명이고, 일반인 사망자는 200만~400만 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한반도는 전투와 폭격으로 황폐해졌다. 특히 서울은 70% 이상이 파괴됐다.

 

 

 데탕트는 유로 미사일 위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함께 1970년대 말까지 동서관계의 특징을 드러낸다. 데탕트는 긴장의 완화를 뜻하지 화합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데탕트가 가능했던 것은 소련이 자신감에 넘쳐 있었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하향세여서 국제사회의 문제를 독단적이고 일방적으로 처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탕트 시기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어두운 시절로 규정된다. 종종 미국의 지원을 받는 폭압적 집권세력과 창궐하는 게릴라 사이의 내부적 폭력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부 지역에서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에 대부분의 내부 갈등이 해결되고, 민주주의와 문민세력의 복귀가 이뤄졌다.

 

 냉전의 종말은 군비의 효과적 제어를 실질적인 군비 축소로 돌려놓는 효과를 낳았다. 유로미사일 전쟁이 1980년대 동서 관계의 극단적 긴장 상태를 대변하는 반면,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협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유럽에 형성된 여론의 일부가 미국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 서독 배치를 반대한다 할지라도 대서양 연대 전체에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거의 50년 동안 국제관계를 구성한 것은 양극화 세계였다. 어떤 이들은 끔찍한 적대 관계가 일반화되면서 풍경화의 배경처럼 굳어져 양극화가 고착될 것이라고 여겼다. 한때 핵전쟁의 위기에까지 몰리기도 했지만 결국 총성 한 발 울리지 않은 채 평화적으로 양극화 세계는 자취를 감췄다.

 

 양극화 세계 이후 러시아의 정책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1990년대를 아우르는 보리스 옐친의 임기로 극심한 경제적 · 외교적 취약성과 합의에 따른 서방세계와의 느슨한 관계를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두 번째 시기는 푸틴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작된다. 러시아가 경제적 · 외교적으로 재정비를 하고 서방세계와 긴장관계를 조성한 것이다. 다만 2001년 9 · 11 테러 이후 미국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인 적은 있다.

 

 이제 핵전쟁의 위험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대립 구도는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다. 커다란 전략적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서방세계 국가들의 독점이 깨지고 남반구 국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다원주의 체제로 바뀌었다. 이는 서방 강대국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독점 구도가 더 이상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통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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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호프
조안나 메이시.크리스 존스톤 지음, 양춘승 옮김 / 벗나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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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가 더워지면서 사막은 늘어나고, 이상기후는 일상화되고 있다. 마실 물, 어족 자원, 표토, 원유 매장량 등 필수 자원은 줄어드는데 반해 인구와 소비는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안 좋으니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미래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의존하는 자원, 즉 음식, 연료, 식수가 앞으로도 원활하게 조달될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인류 문명이 살아남을 것이라거나 지구의 여건이 앞으로도 복잡한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계속 좋을 것이라고 보아서도 안 된다.

 

 경제적 · 기술적 발전으로 우리 삶의 많은 측며이 더욱 편리해졌다.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이 이야기가 제시하는 길은 '이제까지 한 것을 더 많이 하자.'는 것이며, 이것을 통상적 삶이라고 부른다.

 

 

 최근 연구에서 보면, 높은 수준의 고마움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삶에 더 만족해한다고 한다.

 

 고마움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첫 번째는 감사로, 일어난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귀인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한 누군가의 역할을 자신이 인지하는 경우다. 스스로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경우라도, 자신이 쓴 기술, 힘, 자질 등을 개발하는 데에 분명히 다른 사람들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고마움은 사회적 감정이며, 그것은 바로 다른 이들을 향한 우리의 따뜻함과 선의를 가리킨다.

 

 만약 우리가 남한테서 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남에 대한 고마움과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커지게 된다. 아마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들으면 그에게 더 따뜻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절망한다. 일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우리 인간이 다른 사람이나 세상의 이익보다 자신의 편안함과 편리함을 우선시하도록 유전자적으로 설정되어 있다면, 전망은 자못 암울할 수밖에 없다.

 

 

 위기는 사람들을 협력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효과인 공동체의 붕괴와 공유하는 통일체의 분열을 촉발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직면하고 있는 지구의 비상 사태에서 우리가 고갈시킨 세상에 남겨진 것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내분의 위험에 빠져 있다. 여기서 다른 가능성이라면 이 위기가 전환점이 되어 바로 그 위험으로부터 우리가 다음 단계로 비약적 진화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편하게 느끼는 집단은 작기 때문에, 서로 이름도 알고 관심도 같고 공통의 목적을 가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집단에서 편하게 느끼는 게 항상 곧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신뢰를 쌓고 편한 느낌을 가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우리가 공통의 대의명부노가 상호 지지라는 끈끈함을 느낄 때, 시너지를 만드는 강력한 여건은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 일련의 가능한 행동 경로와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이다. 비전을 잘 따르기 위해 정력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이 비전도 우리가 지지하는 것을 골라 주위 공간을 비워 두어야, 그 비전이 성장하고 번창해질 여지가 생긴다.

 

 

 우리가 이 비번들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맡은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전과 그 비전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우리 안에 확고하게 간직해야 한다. 그래야 그 비전이 이끄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갈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영감을 주는 비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을 때, 목적이 분명하고 진척이 이루어지면 힘을 얻게 된다.

 

 실천이란 우리가 선택한 습관이다. 그것은 우리가 삶의 평범한 일상에서 하기로 합의한 어떤 것을 지칭한다. 습관은 가속도를 만들어 낸다. 뭔가를 반복하면 할수록 그만큼 몸에 배기 때문이다. 세상을 위해 행동에 나서자는 우리 의도를 지지하는 많은 실천 행위가 있으며, 우리를 강하게 느끼게 하는 어떤 행위든 자양분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지지를 더해 줄 것이다.

 

 세상 문제에 대응할 때, 우리는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역경에 맞서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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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로마사 - 7개 테마로 읽는 로마사 1200년
모토무라 료지 지음, 이민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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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반도에서 탄생한 작은 도시국가가 반도에 이어 지중해 전역을 정복하더니 거대한 제국이 되어 평화를 확립했다. 지난 세기에 대국이었던 소련조차 국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기간은 불과 70여 년이었지만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로 불리는 로마의 번영은 얼추 200년이나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로마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미국의 패권은 종종 로마 제국의 패권과 비교되는데, 원래 로마에서 제국의 운영을 배운 것은 영국인이다. 미국은 영국을 따라 배움으로써 현재와 같은 패권을 구축한 것이다. 그리고 로마 문화를 배운 프랑스는 호화로운 궁정요리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파리를 세계 제일의 예술 도시로 만들었다.

 

 로마는 어디까지나 원로원이 주도하는 국가라는 신분제 질서는 로마사의 오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 같은 폴리스에서는 시민을 그런 식으로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경우 실제로는 귀족 계급이 존재하는 등 다양한 구별이 있었지만 표면적으로는 모두 평등함을 내세웠다. 이에 비해 로마는 신분의 구별이 명확하다.

 

 로마의 정치 제도라고 하면 우선 원로원을 중심으로 한 공화정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건국 당시의 로마는 왕정이었다.

 

 

 로마는 공화정 국가였으므로 그리스처럼 민중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문화적 측면에서 훨씬 선진국인 그리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로마에서도 독재자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시도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로마 사람들이 독재를 매우 혐오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로마인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자유민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혐오했던 것이다.

 

 로마는 독재를 싫어했지만 비상시에 독재관을 둔 데서 알 수 있듯이 권력의 집중을 완전히 기피한 것은 아니다. 왕이 로마인이든 에트루리아인이든 선정이 계속되기만 했다면 왕정은 더 오래 이어졌을 것이다.

 

 로마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래서 그들의 군대는 강했고 연전연승했을 것이라는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로마의 군대에 대하여 강인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반드시 연전연승, 천하무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로마군 또한 싸움에서 여러 번 졌으며 실패와 좌절도 경험했다.

 

 

 로마인은 오로지 조국을 강하게 만드는 것만 생각했다. 때문에 그들은 전장에서 싸우다 죽는 것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분명 개인보다는 로마라는 공적인 입장을 우선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그리스는 공적인 입장보다 개인을 중요하게 여겼다.

 

 언제나 무적이었다고 하기는 힘든 로마가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요인은 설령 싸움에 지거나 실패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는 것은 언뜻 보면 좋은 일 같지만 인간은 승리가 계속되면 자만하게 된다. 자만심은 방심을 낳아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초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패배하지 않는 사람보다 몇 번의 패배나 실패를 통하여 반성함으로써 단점도 장점으로 바꾸어온 사람이 결과적으로 강해진다.

 

 자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지만 최후에 로마가 승리를 거머쥔 이유는 한 번의 실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그의 가능성을 믿고 재기할 기회를 계속 부여했기 때문이다.

 

 

 로마인은 단순히 영토를 확대하기 위해서 주변 국가들과 싸웠던 것이 아니다.

 

 로마에는 무관과 문관의 구별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귀족인 이상 국방의 담당자인 병사로서의 명예가 필요했다.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로마에서 출세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명예를 얻는 가장 전통적인 수단이었던 셈이다.

 

 로마 사람들이 전쟁에서 진 장군이라도 용감히 싸웠다면 받아들인 것도, 전사자를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겨 극진히 대우한 것도, 전쟁에서 이기는 것 이상으로 명예나 용기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의 지배는 로마의 범위를 확대해가는 병합에서 시작하여 군사 동맹을 맺는 것이 우선인 동맹 지배로 나아가다 로마의 일부로 삼아 통치하는 속주 지배로 변화했다.

 

 로마에는 두 가지의 법률, 즉 로마 시민에게만 적용되는 시민법과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에게 적용되는 만민법이 있었다. 시민법은 시민이라면 성별, 연령에 상관 없이 적용되었으므로 그런 점에서 로마 시민권은 태어난 태어난 순간부터 적용되는 것이다.

 

 이 책은 1200년에 걸친 로마사를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먼저 중요한 키워드를 소개한 뒤 본론을 기승전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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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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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 오브 로마의 세번째 이야기인 이 책은 기원전 83년부터 기원전 69년까지 술라의 2차 로마 진군과 독재, 그리고 그의 사후 10여 년간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로마하면 떠오르는 것은 로마 신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신화하면 신들의 이야기란 생각이 들지만 이 신화도 결국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다. 이 말은 결국 인간들은 자신을 신격화하여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로마 신화 속 운명의 여신을 포르투나라 한다. 우리나라 옛날에 보면 왕은 하늘에서 허락한 자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왕이 된 후 정성들여 신께 경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께 선택받는 왕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닌 것이다. 이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르투나의 선택]은 일인자를 선택하는 그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폼페이우스는 영웅으로 불리는 군인이며 정치가이다. 또는 폼페이우스는 은둔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성공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던 중 슐라의 부하로 로마 정계에 등장한다.

 

 이 책에선 슐라가 나오는데, 이 슐라는 권력의 최고 위치에 있다. 하지만 용모와 기력은 쇄락해 간다. 또한 그는 전쟁 중 화상을 입어 외모가 일그러 졌고, 이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먹다보니 주정뱅이가 되었고, 이런 자신의 모습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기 보단 오히려 사람들 뒤로 숨어버리게 된다.

 

 

 로마의 일인자인 슐라가 늙고 쇄락했어도 그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이런 슐라가 어떻게 로마의 일인자가 되었는지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슐라는 늙고 쇄락해 가지만 이런 그에게 이십대의 폼페이우스와 십대의 카이사르가 나타난다. 슐라는 이 둘에게서 예전의 자신과 같이 야망과 열정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야망을 갖고 있는 젊은 폼페이우스는 뛰어난 외모에 능력까지 출중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만, 슐라와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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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읽지 못할 책은 없다 - 평범한 대학생을 메이지대 교수로 만든 독서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임해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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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이른바 독서법을 다룬 책이다. 책을 읽는 방법을 다룬 책이다. 더 나아가 책을 술술 잘 읽는 방법을 다룬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를 즐겨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책 자체를 폄훼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책의 유용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다만 TV나 인터넷과 비교해 약간 귀찮은 매체임에는 틀림없다.

 

 활자를 쫓아가는 작업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블로그나 SNS로 포스팅된 짧은 글은 큰 에너지 소비 없이도 바로 읽을 수 있다. 이와 비교해서 책은 아무래도 분량이 있어서 쉽게 읽어낼 수는 없다.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책만큼 지식과 정보로 가득한 매체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책은 동서고금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인류의 지혜를 담고 있는 만큼 깊이도 있다. 귀찮음만 극복하면 그 수고를 넘어서는 충분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다 읽는 데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무리해서 완독하려다 보면 독서 자체를 멀리하게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책을 끝까지 다 읽겠다고 생각하진 말자.

 

 사실 우리 주변에 이른바 독서가로 불리는 사람들은 그다지 완독에 집착하지 않는다. '완독하고 나서야 다음 책을 읽겠다'는 원칙을 정해두면 일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다. 그 누구도 세상에 존재하는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완독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시간 동안 얼마만큼 다양한 책을 접할 것인지, 책과 얼마나 잘 교감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며, 일단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기 전에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공간은 카페다. 책을 사면 곧장 카페로 간다. 읽고 싶다는 욕구가 가장 높을 때는 책을 구입한 직후다.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책을 펼쳐 들고 욕구를 충족하자.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독서 습관을 들이는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장만이라도 정리를 해보자', '이 부분을 이야기해줘야지' 등의 의지를 갖게 된다. 이런 작업이 가능해지면 읽은 책의 기본은 충분히 이해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다면 그 책은 오래 붙들고 있어도 의미가 없다.

 

 

 생활 리듬과 공간에 맞춰서 읽을 책을 배치함으로써 내용을 보다 쉽게 흡수하는 동시에 기분 전환에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독서에서만큼은 가는 곳마다 책이 있는 환경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가면 거기에 맞는 책이 기다린다. 이 또한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책 읽는 일상을 반복하다보면 정신이 건강해진다. 책을 읽는 행위는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것을 일상의 모든 시공간에 배치하면 정신의 지구력이 생긴다.

 

 한 권의 책을 몇 시간에 걸쳐 통독하는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지 못한채 통독만 하는 게 별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기껏해야 20~30퍼센트 정도만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면 핵심만을 이해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편이 얻는 것이 더 크다. 머리말과 결론 부분을 읽고 차례를 훑어보면 책의 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관심 있는 부분을 골라 읽으면 된다.

 

 만약 집중해서 읽어도 개요를 알 수 없다면 책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다. 기초 지식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 책을 내려놓고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찾으면 된다. 입문서들은 종류와 수량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자신의 니즈에 맞는 책을 반드시 발견할 수 있다. 독서는 한 권만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을 계기로 종횡무진 새로운 책을 접하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묘미다.

 

 

 작품을 보고 고르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자기와 맞는 작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의 인간관계에도 궁합이 있듯이 작가와 독자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없듯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작가는 없다. 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작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많이 읽지 않으니까 책장은 필요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책장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으려는 마음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독서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라도 우선 책장을 놓아두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책이 얼마 없을지 모르지만 미래를 생각해서 되도록이면 큰 책장을 추천한다. 텅텅 비어 있는 책장을 매일 바라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다 채워두면 멋지겠는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책을 읽는 방법으로서는 '사도'이지만 독서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라면 계기는 무엇이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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